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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의노래 독후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잠든 악기, 가야의 금...가야가 쇠락해가고 신라가 강성해지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세우고 있던 때 우륵은 가야에서 태어나 왕의 총애를 받으며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와 춤을 행한다. 한편 가야의 무기 제조장인 야로는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신무기를 만들어내고 전쟁이 돌아가는 형편을 살필 줄 알았던 그는 가야의 멸망을 점치고 신라로 투항하기 위해 신무기를 신라로 빼돌린다. 또 지밀 시녀인 아라는 순장자로 선택된 그의 운명을 박차고 도망하고 도망하는 과정에서 야로, 니문과 관계를 맺는다. 그의 제자 니문과 온전한 악기를 만들어 자신이 바라던 소리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우륵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당대의 강국 신라에 투항하여 진흥왕의 수하로 들어간다.이 책은 장편 『칼의 노래』로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1년 동인문학상, 「화장」으로 ‘한국 문학사에 길이 기록될 대작 중 하나가 될 것을 확신한다’는 탄성을 얻어내며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훈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김훈은 이순신으로부터 시대를 거슬러 우륵을 찾는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 성웅 이순신의 신화로부터 살과 피로 구성된 실존으로 표현되었듯이, 『현의 노래』에서 우륵 또한 악성(樂聖)으로부터 먹고 마시며 춤을 추는 악사로 재현된다. 다양한 사료와 문학 작품의 전적이 있는 이순신은 그렇다 치고, 『삼국사기』와 구전설화 몇 가닥으로 남은 인물을 원고지 900여 매로 형상화한 김훈의 필력은 놀랍기도 하거니와, 『칼의 노래』가 성취한 득음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단순함에서 오는 절도는 몸서리치게 아름답다.당긴 줄을 튕겨 정과 동을 동시에 시간 사이로 스미게 하는 현악기(가야금)의 선율을 느끼게 하는 ‘현’의 문체는 작품을 읽는 내내 이명처럼 흐른다. ‘현’의 문체를 구사하기 위해 김훈은 직접적으로는 가야금 탄주를 묘사하면서, 느린 호흡으로 풍경과 이야기의 선을 고르다가 급격히 어조와 화제를 뒤튼다던지, 서사와 등장인물의 배치를 수시로 고르고, 순장과 전투, 악곡 연주와 대장간 등을 묘사하면서 물러섬과 나아감, 흐름과 중단 등 곡조를 느끼게끔 수사를 발휘한다.이 거친 적막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역시나 ‘소리’이다. 이 작품에서 세계는 소리로 이루어진 듯하다. 그것은 물과 바람소리로부터, 몸에서 나는 소리, 목소리, 신음소리, 종소리, 고을의 소리, 짐승의 소리, 세월의 소리, 북소리, 곡소리, 오줌 소리, 부르는 소리, 금(琴)의 소리, 말발굽소리, 불의 소리, 별의 소리, 함성 소리, 울음소리, 노랫소리, 너의 소리, 나의 소리, 사라지는 소리, 주인 없는 소리, 먼 소리 등 온갖 소리에는 인간사의 욕정과 곡절이 맺혀 있다. 소리는 모여 있거나 흩어져 있으며, 물결을 이루거나 장애물을 찢고 나아간다. 김훈은 생사가 ‘소리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라 말하며 그 과정에서 소리가 머무는 울림판으로 쇠를 논한다. 김훈은 쇠의 흐름, 쇠의 내막, 쇠의 세상, 쇠의 혼과 소리의 자리, 소리의 길은 같다고 말한다. 이 대립점은 정치와 예술, 권력과 욕망, 제도와 풍경, 국가와 개인, 언어와 자연에 배치되는 대립이며 이 모두를 아우르는 판단은 ‘덧없으면서도 새롭다’는 적극적인 생의 의지이다. 소멸해가는 육신과 기억, 그 질곡과 가엾음, 허망과 패망을 거슬러 인간에게 무엇이 기억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김훈은 소리와 쇠라는 원초적인 감각과 비유를 통해 삶의 의미와 세계를 해석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우륵과 야로. 이 둘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동일성을 이루나 만들어진 소리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소리의 원천과 소리의 주인이 덧없음을 둘은 너무나 잘 안다. 한 명이 나무와 줄로 사람의 몸을 빌어 소리를 만들어 낸다면, 한 명은 쇠와 불로 사람의 몸을 빌려 소리를 만들어 낸다. 한 명은 쇠와 불로 만든 소리로 사람을 죽이고, 한 명은 나무와 줄로 만든 소리로 죽은 사람을 달래는 소리를 만든다.두 사람은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핵심인물이다. 병창기가 내는 두려운 소리, 금(琴)이 내는 아련한 소리……. 이 두 가지의 소리가 덧없음으로 치닫는 데에는 가야의 멸망과 관계가 있다. 나라가 있고 몸이 있어야 소리를 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리는 순간이지만 영원하며, 개별적이지만 포괄적이기도 하다.
    독후감/창작| 2014.06.25| 2페이지| 1,000원| 조회(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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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의 이해-종교와 법
    종 교 와 법부제 - 법안의 종교는 어떻게 존재하나Ⅰ. 서 론1. 종교가 법에서 차지하는 위치, 혹은 정의. 정의를 통해 알아보는 종교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어떻게 존재하는 지 탐구할 의도를 밝히는데 초점을 둔다.Ⅱ. 본 론1. 종교의 법적 정의(1) 법에서는 종교가 어떻게 정의되는가를 알아본다. 그리고 가장 먼저 종교를 법의 정의에서 다룬미국 내 헌법을 알아보고 그 밖의 정의를 알아본다. 종교를 일반적으로 초월(transcendence)에연관된 신앙(belief)과 실천(practice) 및 조직(organization)의 체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헌법상의 종교규정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2. 종교 자유의 원칙(1) 현행 우리나라 헌법 제 20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여기서의 종교의 자유는 흔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 즉 첫째는 내심상의 신앙의 자유이고,둘째는 외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이다. 이러한 종교의 자유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이 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고 종교라는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과의 연관관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여러 판례를 중심으로 알아본다.Ⅲ. 결 론서론과 본론의 본고를 요약하여 결론에서 앞으로 종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세계화의 중심 이데올로기에 맞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고민하며 글을 마친다. 물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양상에 한해서 방향을 모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Ⅰ. 서 론Ⅱ. 종교와 법A. 종교의 법적 정의B. 종교 자유의 원칙Ⅲ. 결 론Ⅰ. 서 론사회적으로 종교가 문제시되었을 때 공식적 판단기준은 역시 법이다.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최소한 법이 정의라는 점은 굳이 말해두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약속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관련된 법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현실적 사회생활 속에서 종교의 위치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인 위치에서의 종교를 고려하여 현대사회에서의 종교에 대한 법적 인식의 틀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Ⅱ. 종교와 법A. 종교의 법적 정의종교는 법적으로 흔히 국민의 기본권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현대국가의 헌법에는 종교에 대한 규정이 있고, 이것이 종교를 법적으로 취급하는 토대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국가가 헌법상 종교규정으로 채택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나 국교금지의) 원칙들은 사실상 종교다원주의가 폭넓게 인정되면서 등장하게 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헌법상 종교규정의 본보기적 모델이 되어온 것은 역시 일찍부터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온 미국의 경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종교관계 법적 문제는 미국 헌법이 본보기가 되어 유럽 및 일본 그리고 심지어 한국 헌법 등의 제정에 영향을 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러면 미국 헌법상의 종교규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실제 미국 헌법의 종교규정은 부칙(흔히 수정헌법 제1조 the first amendment라고 함)d 나타나고 있다. 즉 “연방의회는 국교화나 종교의 자유행사를 금지하는 입법을 할 수 없고……”(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로 되어 있다. 결국 헌법상의 종교규정은 비국교화(no establishment)와 종교의 자유행사(free exercise)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 국가의 헌법들은 이 비국교화와 종교의 자유를 양대 원칙으로 삼고 있고, 또 거의 모든 종교에 대한 법적 논의는 이 두 원칙에서 비롯된다.하지만 헌법상의 종교규정을 적용하려면 그 적용대상 자체가 종교라는 가정부터가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법적으로 종교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도 종교를 정의하기란 여러 이유로 인해서 어려운 일이지만, 법적으로 정의하기는 더욱 어렵다. 특정한 종교만을 종교라고 정의한다면, 그 외의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셈이 되어 결국 특정 종교만을 국가가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른바 비국교화라는 헌법적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헌법적으로 무엇이 종교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데 사실상 관심이 없다. 법원은 그럴 능력도 그럴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흔히 “법은 이단을 모른다.”(Law knows no heresy)라고 말을 한다. 법원은 교리 등에 따라 특정 종교만이 합법적이거나 정통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단 논쟁은 그 종교 단체의 내적 자율의 문제이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나 법적으로 종교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아무나 다 헌법상 종교규정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특정 종교가 헌법상의 종교규정에 보호를 받고자 하는 경우, 법원은 그것이 과연 종인가 아닌가를 비록 판단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성실성(sincerity)은 물을 수는 있다. 예컨대 계시받은 교리를 믿기 위한 종교임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그 교리와 상관없는 아주 속된 생활을 하고 있다면 결코 성실하다고 할 수 없다. 즉, 그런 것은 믿음을 빙자한 사기일 뿐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헌법상의 종교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한편 종교라는 것이 쉽사리 정의될 수 없고, 오늘날에는 종교가 사회문화현상 속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어서 아주 광의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판례상 종교로서 간주되는 데는 대체로 보수적 입장이 깔려 있다. 즉 종교를 일반적으로 초월(transcendence)에 연관된 신앙(belief)과 실천(practice) 및 조직(organization)의 체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점들과 관련이 약하다면 헌법상의 종교규정을 고려하기 어렵다.B. 종교 자유의 원칙현행 우라니라 헌법 제 20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의 종교의 자유는 흔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 즉 첫째는 내심상의 신앙의 자유이고, 둘째는 외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이다. 하지만 첫 번째 내심상의 신앙의 자유는 혼자서 마음 속에 일정한 신앙을 지니는 경우에 해당하되므로 이것에 대하여 시비를 가리거나 부당하다고 제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적 기본권이고 실제로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없다. 이에 비하여 두 번째 외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제 겉으로 드러내어 행사할 수 있는 자유이다. 구체적으로는 예배의 자유, 종교적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및 선교의 자유 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외부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외면적 종교행위로 표현되었을 때는 무조건 다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조건하에서 행해졌을 때에만 타당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우리가 행한 종교적 행위가 자유로운 행사라고 생각될 수 있는가? 여기서 종교의 자유의 주체는 국민 또는 종교(단체)가 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가 주체로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종교(단체)가 헌법상의 종교자유의 보호를 받고자 할 때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적용원칙에 부합되는가를 판례들에서는 따지고 있다.우선 앞서 지적되었듯이 과연 종교인가 아닌가는 문제삼지 않더라도 그 종교를 성실하게 믿고 행하고 있는지는 물을 수 있다. 성실성(sincerity)이 없이 신도들을 모아놓고 사기행각을 벌였다면 아무리 계시에 따라 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의 자유행사로 생각될 수는 없다. 또 종교라면 역시 무언가 초월성(transcendence)을 보여야지 다른 세속적 회사들과 똑같이 영리사업만을 하면서 종교단체이니 면세 혜택을 받겠다고 주장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또 정당한 종교의 자유 행사로 판단되려면 그 행위가 그 종교의 입장에서 중심성(centrality)을 인정받아야 하는 수가 있다. 예컨대 미국의 한 인디언 교회는 비록 기독교의 한 교파지만 그들의 예배의식에서 선인장에서 추출한 액체인 피요트(peyote)를 신비경험의 매체로서 사용해 오고 있다. 이 피요는 마약성분이 있어서 한때 금지되었지만 그들이 전통적으로 이를 사용해 오고 있고, 또 그들의 제의에서 이를 통해야만 성스러운 신비경험에 이를 수 있다는 이른바 중심성이 인정되어 합법적이라는 법원 판례가 나온 바 있다. 그러자 다른 급진적인 종교단체들도 대마초 등의 다른 마약의 사용을 법적으로 주장하였지만 대부분 중심성을 인정받지 못해서 결국 허용되지 않았다.그리고 종교의 자유는 대체로 분명하고도 현재적인 휘엄이 있을 때는 금지는 경향이 있다. 즉 성서에 있는 비유적 표현을 글자 그대로 믿어서 예배에 독이 있는 뱀을 위험하게 사용한 경우는 불법이라고 미국 판례는 규정한 바 있다.또 종교의 자유행사는 국가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경우에만 인정되기도 한다. 예컨대 아무리 종교적 자유행위라도 공곡의 시설을 파괴하거나 국가에 중대한 손실을 가져올 경우는 합법적이라고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도 올바른 종교의 자유행사는 아니다. 즉 자기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또 전도를 한답시고 너무 시끄럽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정당한 종교의 자유를 행사한다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덧붙여 종교의 자유행사는 다른 대용수단이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교파는 토요일에 예배를 보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 신도들이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결근을 하여 그들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참다못해 그들을 해고시켜 버렸다. 신도들은 이것이 종교의 자유행사를 침해한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했었으나, 법원에서는 근무 시간 이외에 예배를 보거나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꼭 토요일에 근무해야 하는 회사에 들어가 결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시를 내린 바 있다. 즉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문/어학| 2014.06.25| 7페이지| 1,0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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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음의 대학 관람기
    일본은 한국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연도별로 새로운 정책을 실시하였다. 초기 통치시기에는 헌병을 앞세운 강력한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3.1 운동의 여파로 인해 문화정치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일종의 회유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친일파를 육성하고자 하는 게, 일본의 의도였다. 이로 인해 많은 문인들과 지식인들이 친일을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무자비한 말살정책을 시행하게 되고 이는 1940년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신사 참배 강요는 물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쟁에 동원한다. 민족의 시인이라 불리던 미당 서정주는 앞장서서 천황을 찬양하며, 시대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나가게 하는 글을 잇달아 발표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각지에서 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하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연극 『웃음의 대학』은 바로 이 시기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둥그런 안경과 아무렇게나 엉클어진 퍼머 머리, 한 눈에 봐도 영양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원고뭉치를 들고, 대일본제국의 검열 사무소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출발한다. 곧이어 일본제국의 까다로움이 엿보이는 검열관이 등장하면서 연극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연극의 내용은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검열관은 전쟁과 공포의 시기에 어울리지 않는 희곡 따위에 경멸감을 표시하고, 작가는 웃음을 잃어가는 시기일수록 더욱 웃어야 한다며 끊임없이 원고를 검열관에게 들이민다. 이러한 관계 설정에서 유발되는 웃음은 뻔하다. 검열관은 억지를 써서 원고 내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것이고, 작가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다가, 말도 안 되지만 그럴 듯 해 보이는 내용으로 수정할 것이다. 검열관은 최초 원고의 내용에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가 싫다며, 노골적으로 남성주의를 찬양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햄릿을 좋아한다며, 로미오와 줄리엣 대신 햄릿을 추가시킬 것을 명령한다. 작가는 어떻게 바꿨을까. 설마 햄릿과 줄리엣으로 바꾸지는 않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연극을 계속 바라보았다. 정말로 햄릿과 줄리엣으로 원고를 바꿨다. 여기서부터 쓴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연극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억지웃음을 유발한다. 천황폐하만세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검열관의 명령에, 작가는 연극에 등장하는 말 3마리의 이름을 각각 천황, 폐하, 만세로 짓는다. 나까무라 총경이 꼭 등장해야 한다는 말에 작가는 의미없이 나까무라 총경을 단역으로 집어넣기도 한다.뭐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연극이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 어쩌면 이 연극은 어떠한 것을 의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즐겨라 하는, 일종의 킬링타임용연극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와 절망만이 세상을 가득 채운 시기에, 한 연극, 그 중에서도 희곡작가 1명이 웃음의 연속성을 위해 어떠한 시련과 멸시라도 견뎌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씁쓸한 웃음과 동시에 희망의 웃음을 발견하다.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연극을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웃음이 아니었다.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을 없애야 되는 검열관과 웃음을 살려야 하는 작가와의 관계로만 진행된다. 관계. 여기서 관계는 상명하복의 관계이다.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복종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연극이 계속 진행되면서 상명하복의 관계는 상부상조의 관계로 변하게 되고, 복종의 대상은 어느새 타협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심지어 검열관과 작가는 후일을 약속하는 관계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연극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연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웃음이 아니라 관계였다. 웃음은 관계를 설정하는 데 필요한 제공 자료일 뿐이었다. 애초에 검열관은 작가의 작품을 윤허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부에서 허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작품을 수정한다는 것은 작품을 생산한 작가에게는 상당한 아픔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에서 작가는 마지막까지 검열관의 요구대로 작품을 수정한다. 이러한 관계의 연속성에서 연극의 대본은 애초에 지어졌던 작품보다 더한 재미를 가지는 작품으로 변하게 된다. 상명하복의 관계가 상부상조로 전이되면서, 웃음을 더욱 유발하게 되는 셈이다. 연극의 중간 부분에 어느 경찰관이 수정된 대본을 보다가 너무 웃겨서 까무러치는 장면이 나온다. 연극의 대본은 얼음같이 차가운 피를 가졌을 것 같은 그 시대의 경찰관마저 웃음을 나오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여기서 나는 인간의 관계를 보았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요즘 시대에 아무리 개인주의 시대가 판을 친다고 해도, 사람은 결론적으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사는 동물이다. 그것이 극한의 공포가 엄습한 2차 세계대전의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투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투쟁 속에서도 한 줄기 꽃은 피게 된다. 투쟁이 유발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참사이다. 투쟁이 유발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는 협력이다. 협력은 서로에게 웃음을 지어지게 만든다. 그 웃음은 생산적인 웃음이며, 인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원천적인 의지로서 작용하게 된다.
    인문/어학| 2014.06.25| 2페이지| 1,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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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인간 '맨발의 의사들'다큐멘터리평 레폿
    역사와 인간 (다큐멘터리 감상평 - SBS스페셜 ‘맨발의 의사들’)이번 수업시간에 본 SBS스페셜 ‘맨발의 의사들’은 쿠바 의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대통령 궁 연회실에서부터 영상이 시작되었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이 시작됐을 때부터, 빈곤으로 인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을 무상으로 쿠바로 보내 의료지원을 해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쿠바에서는 이들의 치료부터 시작해서 재활까지 전액 무상으로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는 사실이다.우리가 알다시피 쿠바는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 불과한데다가 40년 째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막혀있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국가이다. 그러나 국민 질병 발생률과 영아 사망률이 최저라고 한다. 게다가 ‘기적의 작전’이라는 시각장애인 무료치료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중남미 국가의 백내장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백내장 수술은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600달러가 없어서 평생을 못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를 30여국으로 확대하여 4년 동안 30만 명의 시력을 회복하게 하는데 이바지 했다고 한다.이러한 쿠바가 선진 의료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팔할(八割)이 연대정신이고 이할(二割)은 사회 환원의식이다. 1959년의 쿠바 혁명이후 의료인 약 6000여 명 중, 약 3000여 명이 미국으로 망명했다니, 이 후에 연대정신이 더욱 고취된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의 경우에 의사들의 대부분이 망명했다면, 의사들은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는 둥 핑계를 대거나 언론에서는 그들에게 엄청난 기세로 퍼붓기만 할 줄 알지, 어떠한 대책을 내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선진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국방비의 55%나 삭감했다는 자료를 보고서는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특히 역설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국방비를 절반이상 삭감하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면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쩔 것이냐?’ 며 분쟁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국방비가 예산의 대부분을 깎아먹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반응이 상반되는 이유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신이 다르다는 것인데, 쿠바 국민들의 특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대정신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든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같은 특별한 사건이 터져야만 연대정신이 발휘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대정신이 지속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혜성같이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한국인의 속성이자 그 연대정신의 한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군사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렇게도 칭송하는 듯하다. ‘반짝 정신’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약 20여 년간을 독재하며 새마을운동이라든지, 각종 경제 살리기 운동을 했으니 말이다.한겨레신문의 기획의원이자 작가인 홍세화씨는 ‘현실은 ‘공화국’으로서의 가치가 실종되었다.’ 고 했다. 우리 헌법 제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홍익인간을 제도화하는 데 실패하여 대신 서구의 제도를 차용했다. 문제는 우리가 공화국이라는 제도화된 이념을 지배 형태로만 알고 있을 뿐 공공성이라는 본래의 정신은 실종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대다수는 공화국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기본 덕목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며 모두가 사욕을 추구하는 존재들로 머물고 있는 것 같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사익을 추구하고 경쟁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익의 추구는 공공성의 문제와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한다. 이런 긴장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결국 모든 공적 부분들까지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장으로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을 당연하다시피 여긴다. 그러나 사회는 ‘모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만을 원하기만 할 뿐이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한 해의 등록금이 이미 1000만원을 넘어가는 시대에 앞의 나만 손해 보기 싫다는 심리로 일단 대학에 진학하지만 비싼 등록금은 개인인 우리가 전부 부담해야 하는 것과 같다.게다가 우리는 사회 환원의식도 없다. 무한경쟁시대에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에 드는 사교육비용과 대학등록금 등을 들였으니 철저히 자신이 투자한 만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의대와 법대 등을 입학하여 수많은 과정을 밟고 학생이 아닌 사회 구성원이 되면, 고액의 연봉을 챙기기에 바쁘지, 우리의 이웃을 돌보는 것은 전혀 개의치도 않는다.
    인문/어학| 2014.06.25| 2페이지| 1,0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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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은 먼그대 독후감
    < 줄 거 리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가는 문자는 아동도서를 간행하는 H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보는, 10년 경력의 말단 사원이다. 노처녀인 그녀는 전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에 비참하고도 힘든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타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꾸고 누리며 살아간다. 한수라는 사내를 알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겐 이미 처자식이 있기에 결혼을 하지 못 한다. 그러나 그녀는 한수의 아이까지 낳게 되지만 아이는 한수의 본처가 와서 빼앗아 간다. 어느 날, 한수가 물주를 만나겠다고 거액의 돈을 요구해온다. 문자는 돈을 구하러 이모네 집을 찾아가고 이모는 문자에게 좋은 신랑감이 있으니 이번에는 꼭 결혼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승낙을 받지 못한 이모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돈을 만들어 준다. 그녀가 이모네에서 돈을 구해 왔을 때 이미 한수는 술에 곯아떨어진 뒤였다. 그러나 문자는 담담한 얼굴로 한수에게 돈을 내어 준다. 한수는 그 돈을 받고 유유히 사라진다.서영은의 『먼 그대』는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이다(대부분의 문학작품이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문자라는 여성, 즉 유부남과 불륜관계를 저지르는 문자라는 여성에 대한 문제다. 이것은 문자라는 주인공이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마땅히 유부남과의 일탈된 만남을 이어가는 불륜 여성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불륜관계. 문자라는 여성은 이미 처자식이 있는 한수와의 만남을 계속 유지하며 그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만남을 유지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획일화 된 삶을 거부하고 있다(물론 특출 나게 개성적 삶을 살아간다는 의지를 보이는 건 아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 경대하나 없는 초라한 방, 이런 것들이 문자의 생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꽤 초라한 삶을 살면서도 그 삶에 처량한 회의를 느끼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 또한 다른 여느 사랑과는 다르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닌 헌신적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아이도 빼앗기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고행하듯 많은 시련에서 더욱더 강해지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그리고 자신이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체념하듯 혹은 의지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분명 그녀는 사회적 질타를 받는 불륜 여성이며 그녀의 존재는 문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이기적인 남성(한수)의 횡포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문자’라는 여성상에 대한 평가이다. 이 소설은 노처녀와 유부남의 혼외관계에서 여성의 일반적인 희생 속에 군림하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남성의 횡포를 보여준다. 여자의 맹목적이고 희생적인 사람 속에 정신과 물질까지 그리고 낳은 자식까지 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묘사했으나 몰개성적인 여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주인공 문자는 갈등을 조용히 수용하며 살아가는 직장여성의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을 변화시켜 보려는 의지가 없다. 더구나 자신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는 남자를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작가는 불륜관계의 부도덕이라는 점을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통념에서 벗어나 일탈된 삶 속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는 한수라는 이기적인 인간을 어떠한 불평도 없이 받아들이고 그를 끊임없이 사랑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에게서 받는 어떠한 시련을 통해 더욱더 강해지는 여성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문자는 한수에 대한 사랑을 애증으로 변하려하지만 결국 그를 신의 등불 즉 성장을 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로서 인식함으로써 그녀는 다시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처음 문자의 무소유적인 모습, 물질에 대한 것은 물론 자식까지 포기하고 한수에게 완벽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현실세계를 포기하고 다른 이상의 세상을 바라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점점 문자의 굳은 모습 그리고 한수를 신의 등불이라고 여기게 되고 더욱더 큰 시련을 극복 할 수 있는 그런 열렬한 갈망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정말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이겨나가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시련들이 점점 그녀를 강하고 크게 성장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어리석고 미련하기까지 한 여성상인 ‘문자’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강한 메시지이다. 이 소설 작가의 의도는 처와 자식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 혼외정사로 아이까지 두고 아내를 앞장세워 빼앗듯이 데리고 가서 그 아이를 끈으로 문자에게 돈과 몸을 요구하는 철면피적인 남성전제의 전위주의의 횡포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엇보다 여성문제 인식으로 부각되는 것은 문자의 삶의 자세이다. 아무런 희망도 설정하지 않은 채.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남자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굴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는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모성적 윤리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처지에 혼외관계로서 아이를 가진다는 모순이 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을 피할 방법이 많았을 텐데, 그냥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한수가 요구하는 돈을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도 융통하는 갸륵함을 보여 준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여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작가의 부당한 여성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한수와 문자와 같은 관계에서 문자라는 여성이 보여주는 한 남성을 향한 태도는 마치 조선시대의 여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현실적으로 요즘 세태에서 과연 이러한 여성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여성 작가로서 문자와 같은 여성을 묘사함에 있어서 보여주는 어떠한 문제해결 의지도 결여된 채 내면세계로만 침잠해 들어간다는 작품의 결말은 현대 여성관에서 볼 때, 너무도 시대착오적이고 밀실 속의 사고라 폄하하지 않을 수 없다. 희생적 사랑을 통해 과연 희생적 사랑이 부조리하고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상황에서의 사랑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독후감/창작| 2014.06.25| 3페이지| 1,0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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