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_구성 타당성]연구자가 측정하고자 하는 추상적 개념이 실제로측정도구에 의하여 제대로 측정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정도* 구성개념의 최적상태가 성공적인 직무 수행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줘야 함* 기초능력, 직무능력, 인성이 최적인 신입사원의 성과가 좋아야 함* 통계적인 분석이 들어가야 하므로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음* 회사 측 제공하는 정보는 인적성검사/면접과 입사 이후 성과와의 관계 정도 뿐 >자신의 측정 도구의 전문적/통계적 구성타당성 정도를 분석하는 회사도 많지 않음<중 략>소프트웨어 아카데미 설립: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도 2, 3년간의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 > 경기 성남시 판교에 아카데미 설립 > 실무 위주의 교육으로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키울 계획* 입학 > 2년 교육 > 6개월 현장실습 > 졸업 후 입사* 내 식구는 내가 키운다는 콘셉트*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직접 가르친 뒤 직원으로 선발
Black & Desker 사례1. Black & Desker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을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으로 구분하여 정리해보자.- 외부요인1) 전동기구 분야사업 하강: 1981년 Black & Desker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동기구 분야사업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하강 국면을 맞게 되었다.2) 달러화의 강세: 달러화의 강세는 Black & Desker의 경쟁력을 약화시켰으며 일본의 Makita사와 같은 외국 업체들의 경쟁압력에도 취약하게 되었다.Makita사는 글로벌 제품전략을 채택하면서 원가 우위를 갖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였으며 달러에 비한 엔화의 약세와 Black & Desker 의 문제를 이용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세계 전동기구 시장의 20%를 차지하여 Black & Desker의 점유율과 거의 비슷하게 되었다.- 내부요인1) 독자적인 인사체계로 인한 의사소통 부족: 1982년 6대주 13개 국가에 25개의 생산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본사 외에 3개의 그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각 그룹은 독자적인 인사체계로 인력의 중복과 과도한 충원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Black & Desker 본사의 기본 철학은 각 자회사로 하여금 현지 시장의 독특한 특성에 맞게 제품과 제품라인을 적응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지나친 현지화 전략의 결과 국가별 자회사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고 비효율적이었다. 예를 들면, 한 국가에서 성공된 제품들이 다른 국가에 소개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기본모델만 있으면 모든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음에도 몇 백 개의 모터를 생산하기도 하는 등, 생산시설의 가동률이 낮고 근로자수는 많았으며 직원 1인당 생산량은 낮았다.2) 신제품 개발 침체: 소비자용 및 전문가용 제품라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제품 그룹에서 운영되었으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협조를 하지 않았다.2. Black & Desker와 Makita의 전략을 비교 평가해 보자.Black & DeskerMakita1970년~1980년대 초반1980년대 중반국제 시장 전략현지화세계화세계화경쟁우위차별화표준화원가시장 세분화국가별/대륙별 세분화세계화+세분화전 세계를하나의 시장으로 봄포지셔닝프리미엄 제품 판매기본형형 제품과다양한 분야중가 제품 판매제품 전략잘 나가는 제품라인에집중- 기본형 제품에약간의 수정- 기업 인수로 인해새로운 시장 개척중가 제품의니치 마켓 공략- Black & Desker1970년대는 광범위한 시장으로 넓히기 전으로 전동기구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재무 전문가들도 낙관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이 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의 전략으로는 시장 세분화를 국가별 또는 대륙별로 세분화를 시켰고, 각 국가별 자회사를 설립해 그 국가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제품을 생산하는 현지화 전략을 진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적인 요소를 경쟁 우위로 가지고 있었고 포지셔닝 또한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었다. 제품라인은 잘나가는 제품라인에 집중하여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진행하였다.그 동안의 전략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위기를 맞이한 Black & Desker사는 1980년대 중반 놀란 아키볼트 CEO의 ‘절단과 구축’ 프로그램을 필두로 하는 글로벌 전략으로 바꾸었다. 세계화 전략으로 제품 표준화를 추구하여 전세계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하도록 했다. 시장 세분화를 전 세계를 시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제품은 국가별로 약간의 수정된 제품을 판매하였다. 이러한 개선으로 보다 적은 수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효율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게 되었으며, 판매 조직과 신제품 및 엔지니어링 부서도 확장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전 제품 분야에 내수 시장이 확고하게 구축되지 않은 Makita 등 경쟁 일본 기업들보다 우위를 선점하기 위하고 다양한 제품 라인을 생산하기 위해 기업 인수에 힘썼다. GE의 소형 가전부문을 인수해 Black & Desker를 확장하고 규모의 경제를 더욱 구축하여 엠하트까지 인수했다.- MakitaMakita는 엔화의 약세와 경쟁사인 Black & Desker사의 문제를 이용해 성장했다. 처음부터 다른 경쟁 기업과는 다른 전략으로 나간 Makita는 국제시장을 하나로 보아 세분화를 하지 않는 세계화 전략을 택했다. 기본형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원가 우위를 선점하여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고 이는 포지셔닝과 제품전략 또한 원가 우위를 강조한 중가 제품에 초점이 맞춰 있다.3. 향후 Black & Desker의 바람직한 글로벌 전략 방향에 대해서 논의해보자.Black & Desker는 이제 여러 제품 라인을 보유한 글로벌 회사다. 하지만 기업 인수를 통한 여러 제품 라인을 늘렸으므로 더 이상 국가별 차별화는 지금 재무상은 어렵고, 추구하던 대로 기본형 제품을 조금 수정하는 정도로만 제품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제는 제품 라인 확장이나 인수보다는, 제품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히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전동 기구 브랜드에서 소전 가전까지로 확장된, 달라진 브랜드 이미지의 확립이 필요하고 거기에 대한 소비자에게 제고, 제대로 된 홍보가 필요할 것이다. 제품 라인 구축과 내실을 다졌으니 강력한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하지만 Makita를 의식해 가격을 내리는 등의 시도는 필요치 않다. 이미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제품 라인을 확장한 Black & Desker는 다양화가 더 중요하지 원가 우위를 우선해서는 안될 것이다. 차라리 더욱 뛰어난 기능과 튼튼한 내구성을 가진 제품을 생산하도록 노력하고 그 프리미엄 제품이미지의 강력한 구축과 지속이 필요하다. 가격이 싸거나 제품 라인만 많은 것보다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서< 목 차 >1. 주제 선정 동기2. 이탈리아 축구의 역사와 현재 상황3. 이탈리아 축구의 특징4. 이탈리아 축구 선수와 감독5. 느낀 점1. 주제 선정 동기‘이탈리아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조사하기’라는 주제의 과제를 하게 되어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궁금한가 생각해 보았다. 여행, 음식 등 좋아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특히 보통 여대생들과는 조금 달리 축구에 관심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신문 스크랩을 하고 선수 이름과 포지셔닝을 꿰고 다니고 축구 용어를 구사하며 대학 와서도 EPL을 가끔 보고 남자 친구들이 축구 게임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해외여행을 간다면 스페인, 이탈리아, 브라질 같이 축구 문화가 발달해 있고 유명한 나라를 가서 축구를 꼭 보고 싶은 게 꿈 중 하나였다. 스페인을 다녀온 친구가 바르샐로나 FC와 레알마드리드의 경기를 호프집에서 보았는데, 직접 경기장에서 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고 한다. 우리가 2002년 한일월드컵에 열광했던 수준만큼은 아니겠지만, 일반 국내 리그인데도 나라의 큰 행사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꼭 외국의 축구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도 축구 강국으로서 그 나라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기에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2. 이탈리아 축구의 역사와 현재 상황2-1. 역사와 현재 상황(1) 1930년: 영광시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32개국이 예선을 보고, 16개 국이 본선에 출전 가능한 경기였다. 이탈리아는 결승을 진출했고, 그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였다. 파시스트식 경례와 함께 시작된 이 경기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는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파시스트당의 총수이자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선수들이 우승하지 못할 경우 모두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선제골을 먹었지만 죽음을 각오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당시 어지럽던다.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 나라끼리 붙는 최강전을 가리는 자리였는데, 우루과이를 가볍게 이기고 올라온 사기가 충만한 브라질을 독일과의 혈투에 지친 이탈리아 선수들은 결국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의 재기를 보여주는 월드컵이었다.(5) 1971년~1978년: 이탈리아 축구의 겨울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축구는 점점 발전했다. 1968-69 시즌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1971년, 1972년 인터밀란과 유벤투스가 결승에 진출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제 2의 시련기에 봉착하게 된다.- 1974년 독일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던 이탈리아는 멕시코 월드컵의 멤버를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초호화 엔트리에 비해 아이티라는 무명국과와 졸전을 펼치는 등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다. 그에 비해 바로 전 이탈리아에 발목을 잡힌 독일은 우승을 하며 토탈축구의 시대가 열렸다.(6) 1978년~82년: Forza Italia1980년대가 되면서 파올로 로씨라는 풍운아가 나타난다. 1977-78시즌에 21살의 어린 나이에 득점왕을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죽음의 조에서 가볍게 1위를 하며 2라운드에 들어가지만, 네덜란드와 브라질에 패하며 4위에 머무르고 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위상을 회복하고 3골을 터트린 22살의 로씨도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후로 로씨는 축구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선수활동 금지라는 엄중처분을 받게 된다. 사실상 선수 생활의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로씨만한 선수가 없었기에 월드컵에 대비해 사면령을 내린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이탈리아는 아슬아슬하게 1라운드에서 카메룬에게 다득점에서 우위를 점해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같은 조가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이겼지만 브라질은 실로 두려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누구도 승리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로씨가 브라질을 상대로 첫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3:2로 이기차기에서 무너지고 만다.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무난히 4강까지 오고,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는 골키퍼 톨도의 활약이 빛났다. 페널티킥 2개나 막아내며 그 동안 고질적인 요인이었던 승부차기까지 와서도 모두 막아내는 저력으로 결승에 올라가게 된다. 프랑스와 결승전에서는 토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연장전에서 지고 말아, 1994년 월드컵만큼 아쉽게 2위를 한다.(4강전의 영웅 프란체스코 톨도)(9) 2001년~2004년: 월드컵에서의 좌절, 새로운 도전- 2002년 한일 월드컵무난히 예선을 통과했지만 크로아티아 전에서 비에리의 경고, 인자기의 석연찮은 노골선언, 토티의 골대 맞은 프리킥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멕시코전에서도 강한 수비 때문에 많은 기회를 만들지 못하며 16강에 진출했다. 이 때, 우리나라와 만나게 된다. 당연한 자신감을 보이며 경기를 시작하고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선제골을 넣으며 무난히 진행하는 듯 보였지만, 후반 43분 동점골을 허용하고 세리에 A에서 냉대를 받던 안정환에게 골든골까지 먹히며 지고 만다.(퇴장 당하는 토티)2004 유로 예선에서 웨일즈에게 지기도 했으나, 포메이션의 변화 전술로 다시 승승장구한다.(10) 2005년~현재: 어려움 속 단결- 2006년 칼치오폴리‘칼치오폴리’라고 불리는 이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탈리아 축구계의 근간을 흔들리게 되고 많은 팬들에게 외면당하며 유벤투스는 우승을 하고도 강등, 유럽 축구 리그에서도 독일에 이어 4위로 떨어지고 만다.- 2006년 독일 월드컵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냈다. 위기 때 더 잘나간다는 말을 증명하며, 언론 통제 속에서 강도 높은 훈련으로 프랑스를 승부차기로 눌러 우승까지 차지해 월드컵 4연패의 위엄을 달성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최악의 경기력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1974년 이후 처음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신구 세대의 조직력 부족과 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토티 등의 뒤를 잇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다.하지만 2012 유로에 규칙을 깨거나 도덕에 반하는 행위로 이득을 얻는 것을 좋아하며 상대방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이탈리아인은 심판의 중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을 찾아내려 한다.(3) 유럽무대에서의 고전축구 그 자체의 레벨 저하도 문제다. 과거 ‘7공주’의 시대, 스쿠데토 경쟁의 레벨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 세리에 A는 여전히 세계의 톱레벨이다. 그러면 어째서 UEFA랭킹에서 이탈리아는 독일에 뒤쳐진 4위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로파리그에서 12시즌 동안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분명 챔피언스리그가 더 인정을 받고는 있지만 규정이 있는 한 거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4) 전술대국으로서의 자신감 상실이탈리아 축구로 말하면 전술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는 우리 DNA에 새겨져 있으며 조직적 압박도 축구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팬들은 카테나치오라는 단어가 이미지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견ㄱ노한 수비와 속공전술 그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저번 시즌 밀란이 원정 경기에서 바르샤를 이긴 것도 이 전술이다. 카테나치오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에게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카테나치오를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확실한 자신의 전술에 이해와 자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5) 유스팀을 툴러 싼 촌극유스팀에 대해서는 ‘촌극’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누구나 미래의 킴피오네를 키워낸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젊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적인 없는 어린 선수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2경기까지이며 이 때 결과를 남기지 못하면 감독은 베태랑에게 의지한다. 팬, 미디어들도 연패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인 감독을 지지한다. 감독은 용기가 없고, 팬들은 인내가 부족하다. 무조건 바르셀로나의 방법론에 따르기에는 맞지 않으므로, 젊은 선수가 그에 걸맞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살아나야 한다.(6) 클럽 경영의 글로벌화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됨에 따라 유럽의 국경사정과 경제상황은 크게 달A를 세계 최고 전술의 격전장으로 만들었다. 그 틈을 파고들 전술에 대한 부분전술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멀티플레이어보다는 정확한 역할수행 능력을 지닌 선수를 선호한다. 각각 역할수행이 뛰어난 선수진은 감독이 그린 그림 안에서 지속적으로 공격을 진행해가며 단 한곳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물어 뜯기기 때문에 보완을 위한 수비전술도 역시 발전하는 것이다.3-3. 너무 정형화된 플레이전술적으로 완벽을 요하는 이탈리아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정형화된 플레이를 들 수 있다. 공격을 진행함에 있어 포지션을 파괴해가며 진행하는 변칙 플레이에 능하지 못하다. 그리고 멀티플레이어가 아닌 특정 역할에 충실한 팀을 구성하다 보니 공격 전개방식에 있어 너무 제한적인 플레이유형이 발견되는 것이다.이런 단점은 스타 선수 1명에 의존해서는 이길 수 없고 멀티플레이어의 중용, 더블플레이메이커 등의 전술이 가동되는 현대 축구계의 흐름과 함께 가지 못하고 있다.4. 이탈리아 축구 선수4-1. 잔루이지 부폰- 출생: 1978년 1월 28일 (이탈리아)- 신체: 191cm, 83kg- 소속팀: 유벤투스 FC 골키퍼- 포지션: 골키퍼- 경력2010 남아공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2006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2004 유로 2004 이탈리아 대표2002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2001~ 유벤투스 FC1999,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81998 프랑스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1997 이탈리아 국가대표1995~1997 이탈리아 U-21 청소년 대표1995~2001 파르마 FC- 수상2011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 선정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1위2009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지난 20년간 최우수 골키퍼 1위2007 2006 오스카 델 갈치오 올해의 골키퍼2006 유럽축구연맹컵 올스타2006 독일 월드컵 야신상2006 월드컵 우승으로 이탈리아 4급 훈장-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우리와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