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한 의지와 설교의 관계에 대한 고찰Ⅰ. 들어가는 말인간의 전적인 무능력과 부패를 주장하는 개신교회의 케리그마는 그들 자신이 주로 행하는 설교행위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인간 편에서는 구원을 위한 어떠한 선의 가능성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설교행위를 통해 주어지는 교회의 메시지는 ‘선을 위한 분발의 촉구’이다. 그 누구도 강단에서 악을 행하라고 선포하지 않는다.근래에 행해지고 있는 개혁주의, 혹은 개혁파 유행은 이러한 고민 가운데, 더러는 좀 더 교의에 치우친 경향을 보인다. 때때로 행해지는 설교는 본문을 통해 주어지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교의를 통해 한차례 채색된 또 다른 교훈이다. 좀 더 지나친 설교자는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과 부패에 치우친 나머지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다소 동떨어진 교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성경에는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부패하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본문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본문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많은 영역에서 그러한 인간상들을 향한 메시지보다,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선을 행하라고 분발하고 촉구하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많은 선지자들이 악하고 무능력한 백성들을 향해 더 거룩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이 긴장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은 무능력하고 부패한 인간상의 샘플로서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산상수훈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일까? 바울을 비롯한 많은 사도들의 신약교회를 향한 권면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체념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호소에 불과한 것일까?이러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논자는 여기서 중생을 통해 변화된 영역 중 의지에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의 역할과 성경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연구에 앞서 교리신학의 미숙함에 대해 고백해본다. 때문에 기초적인 영역을 다루고자 하고, 장로교회의 표준 교리서인 웨스트민스터를 통해 인간의 부패와 무능력에 대해 살펴보며, 중생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나야함을 연관 지어 생각나게 한다. 우리의 불완전성은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과 악함에도 기인하지만, 긍정적인 영역에서 생각해볼 때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야할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씨가 뿌려지고 그 밭에 물이 뿌려지면, 그 식물은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설교자는 그분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물 뿌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자이다.Ⅱ. 본론1.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장로 교회의 신앙 표준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에 대해 제 6장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2.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義)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G. I. 윌리암스는 이를 주석하면서 죄로 인해 인간에게 세 가지의 상황이 주어졌다고 이야기한다. “?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고, ? 그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었으며, ?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다.” 여기서 부패란 정도보다는 범위를 가리킨다. 예컨대 물 한 그릇에 독약을 한 숟가락 넣었을 때에 물 한 그릇 전체가 오염된다. 더 많은 약의 독약을 넣는다면 정도가 심해질 뿐이다. 독약이 적게 들어갔다고 해서 그 물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부패란 마치 정도와는 상관없이 독약이 들어가 오염되어져 있는 물 한 그릇의 상태와 같다.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부패한 상태의 인간이 의지를 가질 수 있으나 그들의 오류는 하나님의 의지에 그들의 의지를 복종시킬 수 없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인간의 무능력에 대해서는 “제 9장 자유의지(自由意志)”에서 기록하고 있다.3.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수반하는 영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자연인은 영적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죄로 죽어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회개시키거나, 또는 회개에 이르도록 준비할 수 없다.주목할 만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타락 전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능력을 소유하였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벌코프는 부정적인, 긍정적인 두 가지 의미에서 답변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먼저 부정적으로는, 인간은 자신이 천부적으로 소유한 자유로운 동인(動因)에 의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벌코프에 따르면, “인간은 그가 책임적인 도덕적 행위자가 되는 데 필요한 구조적 기능들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벌코프는 실질적인 자유는 상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원초적이고 도덕적인 구조적 요소와 조화를 이루면서 최고선의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인간은 그가 원하는 도덕적 행위를 행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본래 그대로 소유하였지만, “참된 의와 거룩함의 방향으로 자신의 일생을 결정하는 능력은 상실”하였다.윌리암스도 주석을 통해 유사한 견해를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은 의지와 능력에 대한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지”란 인간의 의지가 강요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을 행하도록 자신보다 더 큰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상실한 것은 이러한 자유의지가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으나 타락한 상태에 있는 까닭에 오직 악을 행할 능력 밖에는 없다.윌리엄스는 이러한 무능력한 인간의 본성이 거듭남을 통해 회복되어 진다고 이야기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거듭난 사람 간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이지, 자유면에서의 차이가 아니다. 양자 다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한쪽만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윌리엄스는 또한 이러한 신자가 원리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지만,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져 가는 과정 가운데 존재한다. 우리는 부패와 무능력의 교리에서 동일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 상실한 것은 중요한 요소이지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족은 중생의 사역을 통해 회복된다. 중생을 통해 신자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게 되고, 선을 행하는 능력을 통해 그들의 자유의지는 온전하여 진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의 자녀의 안에서 일하시어 무너졌던 그들의 성읍을 온전한 방향으로 세우시는 것이다.2. 중생을 통한 회복과 설교의 메시지.부패와 무능력의 교리는 신자의 현재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신자가 중생하기 이전에 경험한 사건, 혹은 전 인류가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부패와 무능력은 중생을 통해 해결된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과거의 문제이지 고민하고 정체되어져 있어야할 자리는 아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또한 장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죄악 된 인간의 상황을 가르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중생의 답안을 보여주며, 나아가 성화와 선행을 가르친다.제 13장의 1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1.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을 창조함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말씀과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그리고 직접 성화되며, 온 몸을 주관하는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그리고 그 죄의 몸에서 나오는 몇 가지 정욕들이 점차 약해져 줄어들고 그들은 점차 모든 구원하는 은혜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강건하게 되어, 참된 거룩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거룩한 생활이 없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성화란 앞서 윌리엄스가 주석했던 “그(하나님)는 지금 그들 안에서 일하시어, 그 자신의 선하신 뜻을 더욱더 많이 원하며 행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화를 통해 우리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점진적으로 고쳐나가게 된다. 중생을 하였더라도 “부패의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있기인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일까? 그저 막연히 우리는 수동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비문자적인 힘에 이끌리어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수동적일 것만 같은 인간의 역할과 기능은 설교를 통해, 가르침과 권면을 통해 부각되어질 수 있다.인간의 부패성과 무능력이 강조될 때, 인간을 향한 직접적인 권면과 가르침에 대해 의구심은 깊어진다. 정말 인간이 변화될 수 있는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한 인간에게 가능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앞선 두 가지의 요소를 망각한 것에서 시작한다. 첫째는, 인간이 상실한 것은 중요한 요소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적인 상태에 인간에게도 도덕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주어졌다. 참된 의와 거룩함에 대한 바른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그것을 실천할 능력에 있어서 그는 부족할 뿐이다. 직접적인 권면이 무능력한 인간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육적, 도덕적으로는 유효하다. 두 번째, 우리는 중생의 사역을 통해 부패와 무능력에서 회복된 존재라는 것이다. 특별히 설교는 거듭난 신자를 대상으로 한다. 비록 모인 무리 가운데 중생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설교는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선포된다. 거듭남은 부패와 무능력한 상태에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룰 수 없는 것으로, 회의적이라고 여겨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어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후자와 같은 맥락에서, 중생의 결과 중 하나인 의지의 변화는 설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참된 신자는 마음의 굴복과 순종의 행실을 맺게 된다. 윌리엄스는 ‘16장의 선행’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참된 신자라면 …어떤 “성령의 특별한 동작”만을 기다리고만 있는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회개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올바른 것을 행하고자 소원할 것이다. …신자는 그에게 자기의 의무를 행할 것을 요구하는 성경의 경고와 훈계의 말씀들의 권세와 권위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있다.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1-4장 (왜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가,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책은 어떤 도움을 주는가, 본서의 각 과정에 대한 개관)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만 있을 뿐 직접 그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성경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거나 별다른 유익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상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 필수적인 세 가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첫째는 영적 성장이고, 둘째는 영적 성숙이고, 마지막 셋째는 효과적인 영적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해줄 것이다.본서는 성경공부에 있어서 크게 관찰, 해석, 적용의 세 단계를 기준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관찰은 “본문에서 무엇을 보는가?”에 대해서 답하는 과정이고, 해석은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답하는 과정이고, 적용은 “본문을 나의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만한 것인가”데 대해 답하는 과정을 다룬다.이를 통해 성경 공부에 대한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것이고, 이로서 자신의 능력이 개발되고 성장해나가면, 성경을 다루는 능력에서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직접 공부함으로 얻게 되는 새로운 기쁨과 함께 하나님과 더욱 친근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근면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갖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본서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길 바란다.제 1단계 : 관찰5장 관찰의 중요성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같은 본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관찰하는 가에 달려 있다. 사소한 것이라고 작게 여길 수 없다.6장 한 절을 가지고 시작하라그러므로 한 절이라는 작은 범위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절에 속해 있는 주요 용어를 살펴보고, 구절 속에 원인과 결과를 주목해보아야 하고, 용어에 대해 정의해 놓고, 특정한 지명이 있다면, 그 지명에 대해서 파악해 두어야 한다. 또한 한 구절에 대해 구체적인 정리가 완성되었다면, 책 전체와보는 것도 유익하고, 혹은 자신이 성경을 다른 표현으로 작성해보는 것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밖에 다른 사람에게 읽도록 부탁하고, 성경을 읽는 장소를 바꾸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아라.14장 묵상하며 읽으라다시 말해서 읽는 내용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인스턴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지만, 효과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15장 목적을 이해하며 읽으라목적을 이해하며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구상한 문법적, 문학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동사, 주어와 목적어, 수식어, 전치사, 접속사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본문이 전기적인 구조인지 지리적인 구조인지 역사적인 구조인지 연대기적인 구조인지 관념적인 구조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16장 내용을 소화하며 읽으라다시 말해 성경을 읽되 단지 그 내용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간직하려는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의 통계에 따르면, 들은 것은 10퍼센트를 기억하고, 듣고 본 것은 50퍼센트를 기억하지만, 듣고 보고 직접 행해 본 것은 90퍼센트를 기억하게 된다.17장 망원경 시각을 가지고 읽으라망원경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부분 부분을 전체 조명하에 읽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여러 권의 짧은 책들이 모여져서 만들어진 큰 책이 아니라 한 권 한 권의 책들이 모여져서 일관성을 지닌 메시지를 전파하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부분 부분들을 연구한다는 것은 연구의 반을 했다는 의미다. 나머지 반은 부분들을 다시 종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먼저는 접속사에 주의하고, 다음으로 문맥을 살피고, 책 전체 내용을 주목하고, 다음은 책의 역사적인 맥락을 살피는 등 점점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보는 방법이 필요하다.18장 단락을 단위로 공부하라단락은 어떠한 주제나 생각을 다루는 서로 관련된 문장들이보면서 이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가져보는 것은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은 어떤 야망을 가지고 있었나? 그의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었나? 그의 삶 속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그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등이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을 전해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더러운 빨래라도 앞마당에 그대로 넣어 놓는다.24장 전체의 그림을 이해하라이제는 “단원”이라고 불리는 단위를 보려고 한다. 단원은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여러 단락들의 묶음이다. 단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적인 개관을 파악해야 한다. 전체적인 개관을 통해서 몇 개의 단원이 속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후 단원 전체를 읽어본다. 그리고 단원을 다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의 내용을 근거로 제목이나 요점을 옆에 적도록 한다. 그리고 각 단락을 다른 단락과 비교하며 검토한다. 같은 실마리를 사용하여 그 단락이 속해 있는 책의 나머지 부분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 지 살펴본다. 단락의 주제를 끄집어 낸 후 관찰한 내용들을 작성해본다. 여기서 나타나는 인물들과 지명들에 대해서 연구해 놓고, 해결하지 못한 것들은 기록해두어 나중에 더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적용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공부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면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25장 관찰 내용의 요약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해하는 데 더욱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 이를 위해 차트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방법이다. 좋은 차트는 그림의 효과를 가져다주어 기억하는 데에 편의를 제공해줄 것이다. 그리고 차트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성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26장 무의미한 관찰관찰에도 무의미한 관찰이 있다. 관찰된 정보들을 종합하여 일반적인 원리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정보들 자체로는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이제까지 공부한 내용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가였다면, 이제부터는 그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공부할 것이다.혜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문학의 양식에서 저자는 지혜가 풍성한 인생의 노장으로서 아직 젊고, 경험은 없지만, 배울 자세가 되어 잇는 자들에게 자신의 통찰력을 나누어준다.여섯째, 예언과 묵시이다. 우리는 예언이라고 하면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에서 예언은 주의 말씀의 선포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 하나님께 세움 받은 예언자들은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자 하였다. 예언서를 읽을 때에는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켜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에도 여섯 가지의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그래서라는 질문을 사용해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예언에 특이한 부류인 묵시는 세상의 종말에 관계되어 전 지구적으로 발생될 대변동을 다루고 있다. 상징적인 언어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공상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 무성해질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해석에 필요한 다섯 개의 열쇠30장 내용내용과 의미는 직접적인 인관관계에 놓여있다. 주어진 본문의 내용은 말하자면 해석을 하기 위해 사용할 원자재요 데이터베이스다. 앞서 제시한 여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본문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저자가 말하는 바를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다음 해석에 그만큼 짧은 시간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31장 맥락의 이해맥락이란 앞서 간 것들과 뒤에 따라 오는 것들을 함께 지칭한다. 한 절, 한 단락, 한 부분, 또는 한 책 전체를 공부할 때마다 그 절의, 그 단락의, 그 부분의, 또는 그 책 전체의 이웃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을 공부하다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된다면, 그 즉시 맥락의 언덕에 올라서서 선명한 시각을 얻어 다시 시작해야 한다.*몇 가지의 맥락들문자적 맥락 : 한 절의 문맥은 그 절이 속한 단락, 그 단락이 속한 부분, 그 부분이 속한 책이 된다. 그리고 성경의 통일성을 생각한다면, 어느 책이든가지고 반복해서 사용되곤 한다. 또는 중요한 절의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그 중요성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 용어를 중심으로 그에 적합한 예화를 들기도 한다. 그 용어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읽는 사람의 관심을 끌도록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특수 용어들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는 본문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앞 장에서 언급한 보조 자료 중 특히 성구사전과 성경사전은 이러한 면에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36장 비유적인 표현들의 바른 이해성경의 저자들이나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은 일상에서 비유적인 표현들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들을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해석을 낳게 된다. 본문이 비유적인 표현인지를 알아보는 데에는 열 가지 기술이 있다.첫째, 달리 요구되지 않는 경우에는 가능한 한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의 저자들과 평범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채 행해지는 무분별한 영해는 그릇된 성경해석을 낳는다.둘째, 본문이 요구할 때에는 비유적인 의미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본문들인 비유적인 표현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직접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꿈이나 환상을 기록한 내용을 접하게 될 때에는 대개 상징적인 표현들을 기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바로 꿈의 언어이기 때문이다.셋째, 문자적인 해석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색할 때에는 비유적인 해석 방법을 택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화된 상식이 필요해진다. 하나님은 아리송한 신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당신님을 감추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 무엇을 말씀하시기 원하시면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강조점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신다. 그때에는 그것들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 상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넷째, 문자적인 해석이 부도덕한 의미를 내포하게 될 경우, 비유적인 해석을 택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님의 성품에 상충되는 일을 하시는 다.
1. 본문의 연구성경의 본문을 연구하는 것이 설교 준비 과정의 제 1단계이다. 본문 연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본문을 상세히 관찰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상세한 관찰을 통해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본문의 상세한 내용들을 보는 작업본문을 상세하게 관찰할 때에는 먼저 중요한 단어들을 주시해야 한다. 단어들이 본문의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그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요한 단어들, 특이한 단어들, 반복되는 단어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런 후에는 관계들에 대해서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계에는 단어들이 어떻게 배열되어있는지를 살피는 문법적인 관계, 본문에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는 지를 살피는 논리적인 관계, 본문에 나타나는 시대적인 지리적인 관계, 본문에 표현된 단어들 속에 함축된 심리적인 관계, 본문의 문맥적인 관계, 마지막으로 본문이 어떠한 종류의 문학적 작품인지를 살피는 문학 양식의 관계가 있다.본문의 상세한 내용들을 통해 의미를 찾는 작업다음으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보는 데에는 먼저 질문을 하는 단계가 있다. 질문을 하는 단계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첫째는 배경에 관한 질문이다. 역사적인 배경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둘째는 사실에 관한 질문들이다. 본문에 나타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셋째는 의미에 관한 질문들이다. 본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 연유로 인해 작성된 것이지 생각해보는 것이다.넷째는 적용에 관한 질문들이다. 본문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오늘 날 우리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이러한 질문들을 나열해보고 여기에 답을 해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위해 억지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을 억제하고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로버트 트래이나는 나열된 질문에 잘못된 해석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첫째는 잘못된 해석으로 본태 변화 등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파악한 열쇠들을 이용해서 본문의 구조를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여기에 필요한 4단계를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문법과 열쇠와 내용 또는 주제의 열쇠를 찾아낸다.둘째, 더 중요한 열쇠들과 덜 중요한 구별한다.셋째, 중요한 열쇠들의 의미나 그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넷째, 열쇠들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본문 구조의 아웃라인을 작성한다.다음으로 본문의 주요 부분을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약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성경 전체, 각 권, 각 장, 그리고 각 단락 등의 문맥을 이해하면서 연구하려고 하는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본문의 흐름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본문의 주된 내용을 알아내게 된다.3. 본문의 중심명제앞선 제 2단계를 통해 본문이 주된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이제 여기서 파악된 주제를 중심 명제로 조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심 명제는 주제를 중심으로 본문이 얽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본문 속에 있는 모든 상세한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또한 그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하나의 사고 단위인 것이다. 이러한 중심 명제의 형태는 반드시 완성된 문장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개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저자가 본문에서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를 파악한 본문의 주제이며, 둘째는 저자가 본문의 주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파악한 본문의 술어이다.이제 설교를 조각해가는 과정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본문에 대해 연구했던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본문에 대해 연구한 내용들을 글로 옮겨 적으면서 조직화하는 일은 유익하다.? 본문에 임시 제목을 붙여보라.? 할 수 있다면, 본문의 흐름이나 논리의 전개를 반영해 가면서 본문을 직접 다시 번역하든지 또는 풀어서 써본다.? 본문의 중심 명제를 글로 쓴다.? 아웃라인을 작성하여 글로 쓴다.4. 목적의 다리설교의 목적의 목적와 잔 뼈들설교에 있어서 굵은 뼈대는 서론, 본론, 결론이다. 그리고 설교의 중간 크기의 뼈들은 서론 내에 있는 몇 개의 요지들과 본론내의 대지들이다. 잔뼈에 해당하는 것은 본론의 대지 사이사이에 있는 소지들이 될 것이다. 하나의 대지 아래에는 몇 개의 소지가 있을 것이고, 또 그 소지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각기의 더 작은 소지들을 갖게 되기도 한다. 뼈대가 다 갖춰지면 여기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서론, 본론, 결론의 큰 세 개의 뼈대는 가장 중요한 흐름이다. 그리고 이 세 개의 흐름 속에는 다시 부차적인 흐름들을 가지게 된다.그런데 설교를 구조하는데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본문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되는 것인지 성도들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본문의 중심 명제가 설교자가 임의로 설교를 구성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서는 설교의 흐름의 형태는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론의 내용은 본문 중심이지만, 성도들에 관한 고려는 설교의 형식적인 또는 외형적인 면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설교의 요소들먼저 설교를 이루는 구성 요소에는 설교제목이 있다. 설교에는 반드시 제목이 필요하다. 그리고 설교를 해 나가는 도중에 몇 번에 걸쳐서 설교 제목은 나타나게 된다. 만약 설교의 중심 명제를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변환시키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설교의 중심 명제의 주제 그 자체를 설교의 제목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교 제목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와 광고의 효과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설교의 제목은 명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달하려는 내용 이상의 것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설교 제목은 재미가 있어야 하며, 짧고 분명해야 한다.다음으로 성경 본문을 언제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설교에 사용할 성경으로부터 성경 본문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은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본문을 미지나치지 않는다. 설교가 시작된 후 처음 몇 분 동안에 성도들로 하여금 설교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지 못하면, 설교의 효과는 크게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서론의 본론에는 네 가지의 중요소가 있다. 순서는 상관없으며 다음과 같다.첫째, 관심을 끌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네 가지의 요소 가운데 가장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수도 있다. 설교자가 강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사실상 관심은 쏠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관심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성도들의 필요를 제기해 줘야 한다.둘째, 필요를 제기하라는 것이다. 서론의 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다루려고 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필요를 인식시켜 주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전달함에 있어서 아주 전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교가 해결해 줄 성도들의 필요를 확실하게 설명하는 일과 또 그것을 위한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설교의 우수성을 측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제시된 필요를 얼마나 잘 해결해 주었는가가 될 것이다.셋째, 주제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서론의 본론에서 성도들의 관심을 끌고 문제를 제기하는 작업은 당연히 설교의 중심 명제의 주제와 관련을 맺게 된다. 즉, 개인적인 겸손에 관한 필요를 제기하고 나서, 천국의 인구 밀도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론의 본론에서는 성도들이 앞으로 다루게 될 주제에 대해 일종의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혹 연역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면, 여기서 주제를 성도들에게 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넷째, 목적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목적이 다리는 앞서 완성했으니 이제는 설교의 목적을 적어 나간다. 성도들에 목적을 분명히 말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 선언은 성도들에게 설교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그리고 성도들이 설교의 여행에 함께 동참하도록 해준다.서론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서론의 요지는 서론이 끝난 후 본문의 배경을 야 할 것이다. 물론 현대의 감각에 맞게 구체적인 표현들로 변형시키기도 해야 한다. 한편 설교의 목적을 더욱 효과적 달성할 수 있다면 대지의 순서를 재배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훌륭한 설교의 아웃라인은 아래와 같은 요소들을 보여준다.첫째, 통일성이다. 설교 전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둘째, 질서이다. 설교의 부분들이 설교 전체를 구성하는 질서 정연함을 보여준다.셋째, 비율이다. 각 부분들이 차지하는 적절한 비중을 갖게 된다.넷째, 진전이다. 각 부분이 어떻게 설교의 진전을 이루어 나가는가를 알게해준다.또한 아웃라인의 각 요지들은 “S.A.V.E. (a) Point!” 요약될 수 있는 요소들을 보여주게 된다.첫째, 요지를 주장하라(State). 성도들은 설교자가 주장하는 요지를 들어야 한다. 현대 감각에 맞는 구체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분명하게 요지를 전달할 수 이싿.둘째, 요지를 본문과 연결시키라(Anchor). 이 요지가 본문의 어느 부분으로부터 도출된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증명을 통해 요지에 권위를 부여하게 된다.셋째, 요지를 증명하라(Validate). 본문으로부터 왜 그 요지를 끌어내게 되었는지를 증명해 보여주어야 한다.넷째, 요지를 설명하라(Explain). 여기서는 요지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준다. 제 1단계에서 다뤘던 내용을 잘 활용하면 설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을 지적해 가면서 성경적인 요지를 예화 등을 사용하여 성도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모르고 있는 것으로, 이미 성도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성도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넘어가야 한다.마지막으로 다섯째, 요지를 적용하라(apply). 때에 따라서는 요지 하나하나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적용해야 할 경우가 있다. 다른 경우에는 설명이 있고 난 후에 따로 적용을 시킬 수도 있다. 적용의 시기는 설교의 구상과 관련이 있으며 설교의 목적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겠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다.
1. 책 소개테아 반 할세마, 『이 사람 존 칼빈』, 강변교회 청소년학교 도서위원회 옮김, 성약출판사, 2007년, p318, 10.000원2. 저자 소개이 책의 저자인 테아 반 할세마 여사(1924-현재)는 부군인 딕 반 할세마 박사와 함께 미국 미시간 주의 그랜드래피즈에 있는 개혁 성경 대학(Reformed Bible College)에서 봉직했다. 부군은 21년 동안 학장이었고, 여사는 학생 과장 및 사회복지과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88년에 은퇴한 뒤에도 부군과 함께 I.D.E.A. 선교회를 통해 선교 안내 교육과 선교사 선발과 현장 훈련의 일들을 하는 한편, 저술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했다.『이 사람, 존 칼빈』은 1959년에 칼빈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썼고, 이제까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과 귀도 드 브레』(성약출판사, 2006년)가 있다.3. 요약1) 인생의 전반기 ? 육신의 아버지의 영향 아래서 목적이 늘 좌절되며 방황하던 삶.존 칼빈은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누아용에서 1509년 7월 10일 오후 1시 27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라르 코뱅이라는 인물로 사제들과 대성당 참사회의 법률 자문관이었고, 어머니는 잔 르 프랑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칼빈이 세 살 때에 숨졌다. 칼빈은 이들 부부 사이에서 넷째 자녀로 태어났는데, 첫째 샤를을 제외하고 앞선 둘은 이른 나이에 죽었다. 이밖에도 칼빈은 자기 아래 앙투안이라는 사내동생을 데리고 있었고, 어머니 사후 새 어머니가 데리고 온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육신의 아버지 제라르 코뱅은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성직자로 기를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관행을 이용하여 자식들을 성직록 명부에 올렸다. 당시에는 성직에 임명이 되면 그 대가로 수입의 일부를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성인 사제에게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기 재산으로 모으는 관습이 허용되고 있었다. 이 관습을 이용해 큰 아들 샤를에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별한 사건에 대해서 기록되어지지 않았지만, 칼빈의 증언에 따르면 “갑작스런” 일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누아용 성당에 돌아가 성직록과 성직봉록을 포기했다. 이제 본격적인 신앙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이후 칼빈은 화형 당할 이단으로 몰려 추적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핍박을 피해 성경의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아갔다. 그는 많은 비밀 모임에서 가르치고 격려하며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1535년에는 ‘벽보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어로 쓰인 벽보는 로마 가톨릭의 미사를 비난하고 있었다. 공공장소에 붙어졌는데, 심지어 국왕의 침실 서랍에도 한 장 들어있었다. 벽보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프랑수아 왕은 분노하여 복수를 감행하려 했다. 이로 인해 감옥이 북적거리게 되었고, 프랑스 안에 신교도들의 안전은 더욱 불안해졌다.칼빈과 그의 친구 뒤 틸레는 이를 피해 스트라스부르로 갔다. 하지만 그곳 상황도 역시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남쪽을 향해 떠났다. 결국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잠시 머물게 된 곳은 바젤이었다. 칼빈은 이곳에 은신처를 만들고 그의 친구인 콥과 만나며 본국의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자신이 시작했던 저술을 마치기 위해 힘을 쏟아 부었다. 21쪽 분량의 헌사가 첨가된 『기독교 강요』였다. 그는 이것을 프랑스 왕에게 헌정했지만, 끝내 프랑스 왕에게 읽혀지지 않았다. 기실 칼빈도 이 책을 프랑스 왕에게 무엇을 간청하기 위해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진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종합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었다.1536년 2월 책의 교정본까지 작성한 칼빈은 뒤 틸레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그는 페라라의 헤라큘레스 공자과 혼인을 하게 된 르네 공주를 찾아가기 위해 이탈리로 갔다. 그녀의 남편은 신교의 신앙을 꺼려했지만, 르네 공주는 핍박받는 이들을 보호해주었다. 칼빈은 이 현숙한 여인과 만나 로마 가톨릭 사회에 거하게 된 절망적인 그녀의 상황을 위로하고 복 돋아 주었다.페라라를 떠 그의 조력자들은 제네바에서의 장악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터였다.이런 시기에 파렐에게 칼빈은 큰 인재였다. 그는 법학 공부를 했으므로 도시 안의 당파 문제뿐 아니라 시의회의 문제들도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민한 젊은이이자 그 누구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을 잘 깨닫는 사람이었다. 성신께서 도우시면 그가 제네바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칼빈이 잠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제네바에 들린 날 밤에 그는 달려가 전심을 다해 설득했던 것이다.칼빈은 본래 제네바에 오래 거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제네바의 상황을 이겨내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며, 역경에 맞설 배짱도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소원이 있다면, 몸을 추스릴 수 있는 한적한 곳에 가서 학자로서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뿐이었다.이런 그에게 파렐은 불호령을 내렸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예보다 자신의 영예를 구하고 있다며 책망 했다. 결국 파렐의 불호령은 큰 효과를 거두게 되고 칼빈은 제네바에 머물게 되었다. 27세의 병약한 젊은이가 종교개혁자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이후 파렐은 칼빈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칼빈은 편지에서도 몇 번이나 그를 아버지라고 칭했다.제네바에서 활동하게 된 칼빈은 의회로부터 ‘신령한 책의 교수’라는 직함을 받았다. 봉급은 없었다. 그는 성 베드로 교회에서 매일 강연을 했으며, 『기독교 강요』의 프랑스어 판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삶의 안쪽에는 분노와 슬픔이 있었다. 제네바 사람들이 다시 방탕한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칼빈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21개의 조항으로 되어있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해 의회의 승인을 받아 사람들에게 서약하도록 하는 한편, 여러 가지 법률을 준비했다. 이중 대부분 수용되었지만, 교회에 출교권과 성찬 참여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출교권은 오랫동안 권력을 휘둘러온 교황의 권력을 주어주는 것만 같았고, 성찬 참여권과 더불어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실을 제이었다. 수월한 목회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서를 통해 부드러운 목회자의 자세를 배울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되도록 논쟁을 피하고, 다른 이에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1540년 칼빈은 이들레트라는 두 자녀를 둔 과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현숙하여 어려운 환경을 인내할 뿐 아니라 남편을 섬기고 사역에 도움을 주었다. 칼빈은 부인의 사랑을 받으며 복된 생활을 누리게 된 것이다.이런 내부적인 평화 속에서 외부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을 갖추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카를 황제가 제국을 향해 진격해오는 터키 군 앞에서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종교간의 화합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1539년-41년 사이에 네 번의 제국 의회가 열리게 되었다.칼빈은 의회에 독일 도시 대표의 한 사람으로 초대 받았다. 하지만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화합이 될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멜랑히톤 등과 만나 관계를 맺게 되고, 계속적으로 그와 향후 개혁교회의 통일에 대한 논의를 갖는 유익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개혁의 교회의 통일은 칼빈의 바람이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는다.1540년 3월 경 제네바로부터 추방당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던 때에 칼빈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라 왔다. 제네바 의회로부터 온 정중한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그들에게 칼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야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칼빈은 고민했다. 지독한 아픔을 주었던, 죽기보다 가기 싫은 곳이었지만, 자신이 필요하다면 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칼빈의 재능을 알고 있는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보다 많은 친구들이 그가 다시 제네바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그해 10월 23일 칼빈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제네바로의 복귀가 그것이었다. 그는 파렐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심장을 주님께 바치는 심정임을 드러냈다. 마음은 원치 않았지만, 주님의 뜻임을 믿고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제국 의회까지 모두 마친 후 1541년직한 풍모를 유지했다. 제네바에서 할 일은 아직 많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은 끝난 것이 아니며, 제네바인들의 나쁜 습성은 칼빈을 다시 청빙해오고도 고쳐지지 않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칼빈에게는 외부보다는 내부의 적들이 더욱 많았었다. 심지어는 그와 함께 했던 학자 중 카스텔리오라는 청년이 그에게 대항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네바 안의 방탕주의자들이 그의 가장 큰 적들이었다. 피에르 아모와 파브레 가문의 아들 가스파르드, 그리고 페렝 코르나와 그의 아내 프란체스카, 베르텔리에, 방델 등은 민중들을 다시 방종한 삶으로 유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동하여 목회자들의 생명의 위협을 가했다.1549년에 의회는 방종주의자들이 과반 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페렝은 수석 행정 장관으로 선출됐다. 표면적으로 방종주의자들이 승리한 셈이다. 방종주의자들은 우쭐해져 목회자들에게 험하게 굴었다. 제네바 시민들도 자신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는 목회자들을 조롱하고 고되게 하는 일에 동참했다. 그때 칼빈은 자신의 삶에 든든한 동반자도 잃어버린 시기였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제네바에 큰 이단자가 등장해 칼빈을 더욱 심난하게 했다.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제네바에 도착해 칼빈에게 발각된 것은 1553년 8월 13일이었다. 세르베투스는 이미 1531년에 저작을 통해 삼위일체를 부인했던 전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알아본 어떤 사람이 칼빈에게 귀띔을 해줬다. 칼빈은 그를 경찰에 고발했고, 그는 감옥에 갇혀 종교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당시 세르베투스의 죄목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는 이미 가톨릭교회에 잡혀 화형이 선고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제네바에서는 너무나 당당하게 행동했다. 칼빈을 대적하는 방종주의자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재판에서 오히려 칼빈을 비난했고, 자신은 무고하고, 오히려 무고하게 자신을 고발한 칼빈이 감옥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내어 놓기도 했다.이 무렵 칼빈은 베르텔리와 성찬
오순절 사건과 성령의 이해목 차 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 오순절 사건에 나타난 성령세례에 관한 문제 오순절 사건의 단회성에 대한 견해 게핀 교수의 견해 카이퍼의 견해 존 스타트의 견해 박윤선 박사의 견해 박형룡 박사의 견해 오순절 사건이 연속성에 대한 견해 제임스 던의 견해 박희천 목사의 견해 정원태 교수의 견해 차영배 교수의 견해 안영복 교수의 견해 오순절 사건의 바른 이해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임하여 오셔서 그의 마음을 진리에 대한 참된 이해 ,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이해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 그리고 그렇게 임하신 성령께서 믿는 자의 마음을 장악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시키시는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은사들을 그에게 주시는 것이다 .단회적인 사건인가 견해 1 연속적인 사건인가 견해 2 vs 카이퍼의 견해 게핀 교수의 견해 존 스타트의 견해 박윤선박사의 견해 박형룡박사의 견해 제임스 던의 견해 박희천 목사의 견해 정원태 교수의 견해 차영배 교수의 견해 안영복 교수의 견해 오순절 사건에 나타난 성령 세례에 관한 문제카이퍼의 견해 저수지의 비유 오순절에 쏟아 부어진 성령이 수원지에 물이 갇혀 있듯이 오순절 교회에 임재해 있다가 여기서 가이사랴 , 사마리아 또는 에베소에 유출된 것이다 . 성령은 대개 이미 오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또 다시 우리에게 오실 수 없다 . 성령 세례는 오순절 때에 예루살렘에 모인 120 문도가 대표로 받은 것이다 . 팔당댐에 고인 물이 서울 전역에 퍼지듯이 , 오순절에 쏟아 부어진 성령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유출된 것이다 .게핀 교수의 견해 사도 시대는 ‘ 세대적 단회성 ’ 이다 . 사마리아 , 가이사랴 , 에베소 사건들은 단회적인 오순절 사건과 밀접히 관련된 복합체의 일부이다 .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단회적으로 완성된 사도 시대 사람들이 경험한 사건들은 되풀이 될 수 없다 . 사도 시대 사람들이 경험한 사건들은 되풀이 될 수 없다 .존 스타트의 견해 오순절 성령 강림은 ‘ 구원의 역사 ’ 이다 . 단회적으로 성취된 구속 역사의 한 사건이다 . 그리스도의 오심 , 부활 , 승천이 반복될 수 없듯이 오순절 성령강림도 반복 될 수 없다 . 그리스도의 사건을 신앙생활의 표본으로 삼을 수 없듯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도 신앙생활의 표본으로 삼을 수 없다 . 구원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이다 .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역사는 반복될 수 없다 .박윤선 박사의 견해 오순절 성경 강림 사건은 교회를 인 쳐주시는 단회적인 사건이다 . 성령 강림의 결과로 교회는 영원히 있게 되고 , 택함을 받은 백성 은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된다 .박형룡 박사의 견해 오순절 성령강림은 구원사적인 면에서 세기적인 사건이다 . 때때로 일어나는 일련의 성령강림 중의 첫째가 아니며 , 혹은 필요에 따라 반복되는 여러 세례중의 하나도 아니다 .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령은 계속적으로 사역하신다 . 오순절 자체의 반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회적인 사건인가 견해 1 연속적인 사건인가 견해 2 vs 카이퍼의 견해 게핀 교수의 견해 존 스타트의 견해 박윤선박사의 견해 박형룡박사의 견해 제임스 던의 견해 박희천 목사의 견해 정원태 교수의 견해 차영배 교수의 견해 안영복 교수의 견해 오순절 사건에 나타난 성령 세례에 관한 문제제임스 던의 견해 오순절 성령 강림이 특례적인 것을 인정한다 . 그러나 사마리아 , 가이사랴 , 에베소 에 성령 강림 있었기에 예루살렘에 일어난 오순절 사건의 단회성을 믿을 수는 없다 .박희천 목사 요엘 2: 28 에 예언된 ‘ 그 후 ’ 는 부활 승천하신 후 첫 명절인 오순절 때에 이루어 진 것이다 . 오순절에 성취되기 시작한 성령의 약속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 오순절 이후에도 성령을 받은 사건이 있다 . 따라서 , 요엘이 예언한 성령 강림은 오순절에 일차적으로 성취된 것이고 ,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이러한 역사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 성령 강림은 오순절 이 후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만민에게 계속 될 것이다 .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정원태 교수의 견해 오 순절 성령강림은 역사적 , 언약 신학적 , 교회론적 , 기독론적 , 성령론적 차원에서는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 사역론적 , 목적론적 차원에서는 연속적인 사건이다 . 사역적인 측면에서 신 , 구약에 많은 인물들이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 충만을 체험하였다 . 행 1:18 성령 강림의 목적은 전도와 선교이다 .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때까지 성령 강림은 계속 될 것이다 .차영배 교수의 견해 오순절 성령은 단회적으로 오셔서 영원토록 그들을 떠나시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에 , 그 동일한 성령이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지 않을 수 없다 . 다시 오신다는 것은 단회적으로 놓여진 초석 위에 동질의 건물을 세우기 위함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지기 위해서는 오순절 성령과 같은 동질의 성령이 계속 강림되어져야 한다 부패한 인간을 구원하시고 , 그들의 중심에 충만하게 내주하기 위해서는 오순절 성령에 못지 않은 강력한 능력의 성령이 오셔야만 한다 .안용복 교수의 견해 단회적 견해 첫 째 , 오순절 성령세례를 받은 사도들이 교회 창설의 12 초석이 되었으며 ( 계 21:14) 그 직권이 되풀이 될 수 없다 . 둘 째 , 오순절에 성령의 부음을 받은 사도들이 기록했다 . 셋 째 , 오순절에 오신 성령이 영원히 제자들을 떠나지 않았다 ( 요 14:16). 반대로 연속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연속적 견해 오순 절 성령강림은 대표적인 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 . 오순 절 성령강림 사건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속하지 않는다 . 오순 절 성령 강림은 구원역사가 아닌 구원의 서정에 속한 것이다 .오순절 사건에 바른 이해 중생에 있어서 단회적이다 성화에 있어서는 계속 갱신적이다 .Thank you.. ♥{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