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 - 방현석이 소설에는 네명의 인물이 등장한다.(주변인물 두세명은 빼고)80년대 운동권을 같이 했던 재우, 문태, 창은과 베트남에서 만난 영화 감독이자 시인 레지투이.이 네명은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존재의 형식”은 틀리다.80년대 운동권 출신인 재우는 “베트남의 역사와 현실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 사람”으로 평가 된다.그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자문 역할로 번 돈으로 선후배들의 의식주 까지 책임지며 지낸다.하지만 베트남 노동자를 한국인 간부가 신발로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글을 신문과 잡지에 실고, 그로 인해 한국 기업 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제공받았던 선후배까지 떠나며 외톨이가 되어서 지낸다.그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가면서 스스로의 고립을 선택했다.자본주의 사회를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 관련자” 였던 재우는 자본주의로 흘러 가는 한국의 시대적 변화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로 흘러간 한국이 실패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재우가 하는 번역일에서 만난 레지투이는 월맹에서 게릴라를 하던 300명 중 295명이 죽고 살아남은 5명 중 한명이다. 그는 지나치리 만큼 번역일에 꼼꼼했고, 좋은 음식을 시킬적에도 굶고, 죽어가는 동료들의 잔상을 생각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다.레지투이가 준비중인 다큐멘터리에서 호치민(베트남의 공산주의 지도자) 루트로 사용된 증선산맥을 관광 상품으로 소개시켜 달라고 하자 레지투이는 단호하게 작업을 거절한다. “너희 자본주의에서 좋아하는 말이 있지. 고객은 왕이라고” 레지투이가 재우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위에 관한 생각은 레지투이와 재우가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라고 본다.문태는 재우가 좀 더 합법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 내세운 학생 회장이였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법률”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그 돈의 사용 목적을 토론해 붙였다.그 질문에 재우는 “우리가 언제 명예를 잃은 적이 있었나요? 지금까지 한번도 내게 회복해야 할 명예가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해서.. 보상은 더욱 모르겠네요. 누가 누구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누가 누구로부터 보상을 받죠?” 라고 반문하였다. 그의 말에 누군가 “여전히 잘났어요"라고 했지만 그때 재우에게 상처를 준 것은 그 말이 아니라 노동자가 되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잃은 오른손 대신 왼손에 들린 창은의 침묵하고 있는 술잔이였다.재우는 자신과는 다른 한국에서의 생활이 외로워서 떠났고, 완벽하게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앞에는 창은이 있었던 것이다.베트남에서 레지투이와 번역 작업을 하던 재우에게 문태는 베트남을 방문하였고, 보상 문제로 다시 한번 다툰 그들은 똑같이 서먹하게 헤어진다. 그런 재우에게 레지투이는 “살아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며 둘의 화해를 도왔다. 재우가 아는 시인 “반레”가 레지투이의 필명이자 시인이 되고 싶어했지만 전쟁 속에 죽어간 레지투이의 동료의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를 살았어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쪽에서 우리는 십년을 싸웠지만, 최소한 그 십년 동안 나와내 친구들은 공산주의의 삶을 살았어요. 자기가 살지 않은 것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겠어요?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기르면서 가르쳐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내가 군대에 지원해서 전쟁터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말했어요. ‘아들아,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고 욕할 수는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어머니의 그 말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요”
플라톤의 「향연」 - 사랑에 관하여이 책은 각자가 향연을 벌이면서 에로스를 주제로 삼아 대화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철학 책이라면 덮어놓고 어렵게 여겨지는 나에게 희곡 같은 친숙한 방식의 전개가 다행이내용을 이해, 공감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사랑에 관하여 - 말만 들어도 로맨틱하지 않은가?부유의 신, 포로스(poros)가 넥타주에 취해 있는 동안 빈곤의 신, 페니아(penia)가자신의 "無策性"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만들어낼 계획을 짜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사랑의 신, 에로스(Eros)이다.어머니인 빈곤의 신 페니아 성향 덕분에 항상 무엇인가 모자라고 빈곤하지만아버지인 부유의 신 포로스의 성향 닮아 부유함을 갈망하고 쫒아가는 신 에로스.이렇게 극과 극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으로 인해 태어난 에로스를 사랑의 신이라고 일컷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절묘할 수가 없다. 더구나 아프로디테의 생일 축하연을 계기로 태어났기 때문에 본성상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다니.그는 언제나 결핍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획득하기 위해 용감하고 현명한 뛰어난 사냥꾼이며, 그로 인해서 평생 동안 지혜를 탐구하며 산다고 한다.사랑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드라마, 음악, 영화, 시 등 요새 우리가 표현 하는 많은 방식에 사랑이 소재로 쓰여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일반적인 호감을 뛰어넘어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주어진 것이 자손을 생산하여 불명성을 위한 것이라 해도 정말 신기하다!) 자신과도 바꿀 만큼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처럼 자웅동체의 인간이 신들에게 대적하려고 하다가 반으로 나뉘어 진 이후부터 원초적 본성을 결합 시키고, 인간의 본성을 치료해왔다는 사랑.플라톤의 사랑을 인간으로서 더욱 완전해지기 위한 기본적 욕구라고 생각하였다.[인간의 기본 욕구는 우선순위의 계층(hierarchies of prepotency)을 이루고 있으며, 욕구의 발로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동기부여 이론을 말한다. 대표적인 학자가 머슬로(Abraham H. Maslow)다. 그는 인간의 기본 욕구로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안전욕구(safety needs), 소속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 존경욕구(esteem needs),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의 다섯가지를 제시하고, 하위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어야, 차상위 계층의 욕구가 부상하게 된다고 설명한다.(출처-NAVER용어사전)]우리는 굶주리는 아이를 위하여 자신의 몫을 포기하는 부모들의 일화를 동화나 고전 소설에서 많이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일화의 끝에서는 항상 부모님의 사랑을 숭고하게 표현하곤 한다.(지금 현재도 곳곳에서 식량난이 일어나고 있지만!)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단 옛날 일이나 내려오는 속설일 뿐만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 그 이상이라도 기꺼이 희생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쉴새 없이 속삭여 준다.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포기하는 일들은 가슴 아프지만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가슴 한켠을 꾹 누르는 것 처럼 만든다. 비극적인 사랑은 영화 및 드라마, 소설 등에 많이 쓰이는 코드 중에 하나이다. “난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라는 진부한 대사가 여러 곳에서 남발하는 것도 입에 발린 소리만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불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고그로 인하여 자손을 번성 시켜야된다. 이것은 일종의 본성이다.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것과는 또 다르다.항상 단 둘이 함께 있고 싶어하고, 혼자 있는 것을 못견디며, 그로 인해서 원활한 사회적 관계에서 뛰쳐나오기도 한다. 사회적인 소속보다는 사랑하는 이와의 소속에 더 견고한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이 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는 어떠한 군대보다도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는 어떠한 나라보다 강하다고 하였다.그것은 서로 사랑함에 있어서 진실된 사랑은 자신의 좋은 것만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고 설마 위험한 사항이 처하더라도 자신의 반쪽을 남겨두고 도망가는 거짓된 사랑을 할 리가 없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 없는 기막힌 상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좀 무리수적인 말이지만 10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지구에 존재하였다니..이런 사랑이 비단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에릭시마코스의 이야기를 보면 의술이란 신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현상에 대하여 어떤 부분은 보충해주고 어떤 부분은 비워주는지에 대한 지식, 대립된 음들 사이에 사랑 또는 완전 일치가 만들어내는 음악, 그 밖에 천문학, 예견술도 사랑을 기본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 음악과 결혼했어요”라는 대단한 음악가를 본 적도 있고 사랑의 기본 바탕이 되는 가족과 연인 보다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많이 봐왔다.그 사람들은 사랑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랑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음악이나 의학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그것이 인간적인 것이든 신적인 것이든) 속에서 가능한 최대로 각각의 사랑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네(향연 - 77P)어떻게 하면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가 정교하고 섬세하게 빚어질 수 있을까 그것이 플라톤이 다른 무엇보다 사랑을 중점으로 둔 이유일 것이다.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의 대화 중 “결론을 짓자면, 사랑이란 좋은 것을 자기 자신 속에 영원히 간직하려는 행위, 그 자체를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이랍니다” “사실 그러한 행위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름다움을 생산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름다움을 생산해 내는 것은 특히나 까다롭다.영혼보다 육체를 사랑하는 세속적인 사랑, 그것은 불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의 꽃이 시들면 곧장 사랑이 식어버린다. 플라톤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면에 서로 지혜를 추구하고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였다.의술, 음악, 천문학, 예견술에도 근본이 되는 사랑. 항상 기본이 되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울 수 없다는 그 사랑.원래 하나였던 자웅동체가 둘로 갈라짐에 자신의 반쪽을 갈망해도 그렇게 갈망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성이요, 기본 욕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