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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중국의 시장과 통상
    1. 중국의 시대별 경제정책의 특징과 특히 개혁, 개방전후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하시오.국내외 상황의 변화는 경제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적합한 제도나 조치 역시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중국처럼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사회에서는 과거 어느 시기에 성공했던 경험이라 하여 영원히 불변할 수 없다. 즉, 경제개혁은 '과거식'이나 '미래식'이 아니라 끝이 없는 '진행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까지 진행되어온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1) 개혁?개방 이전오늘날 중국이라고 부르는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 1일에 탄생하였다. 건국 당시 중국은 거대하지만 낙후되고 지역 격차가 매우 심각한 국가였다. 중국은 1953년 1차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1992년 개혁개방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기 이전까지는 주로 자력갱생에 기초한 생산물의 자급자족에 역점을 둔 경제정책이 기본이었다. 1953년에서 1957년까지 행해진 1?5계획은 스탈린모델을 기반으로 농업합작사, 기업집체화 등의 사회주의 개조를 추구하였다. 1958년부터 1961년 까지는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였다. 모택동이 내놓은 이 슬로건은 최단 시일 내에 선진국들의 수준을 초과하여 이른바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과시한다는 목적에서 제정된 것으로서 '15년 내에 영국을 따라 잡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목표와 시간까지 명시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택동은 중화학 공업을 우선시하는 경제 발전전략을 추진했는데 그 결과로 전국의 경제자원을 중화학공업 분야에 집중시키는 일련의 정책 조치들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명분하에 나오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농업 집단화 정책은 본질적으로 중화학공업 발전을 위한 자원을 농민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제정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중국 자체의 낙후된 경제와 심한 지역간 편차로 물자와 정보를 중앙에서 관리할 수 없었으며,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적 농업체제였기에 경제계획을 수립?집행할 수도 다는 정치적 개혁이 중심이 된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문화대혁명을 거친 이후 1978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2) 개혁?개방 이후중국정부의 해석에 따르면 경제개혁은 '경제발전을 방해하는 모든 제도나 방법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등소평은 이를 간단히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를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유명한 '고양이론'으로 결론지었다. 즉 경제발전이라는 '쥐'를 잡을 수 있는 제도와 조치가 곧 '좋은 고양이'이며 경제개혁이란 바로 부단히 이러한 제도와 조치를 찾아내는 과정인 것이다.개혁개방 이전까지 공유제의 중앙집권제 계획경제 체제와 구소련 및 서방과의 적대 관계로 인한 폐쇄경제 하에서 중공업 중심이 생산량 증대에 주력함으로써 농업과 경공업 발전이 심각하게 정체됐다.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개혁은 중국 경제발전의 새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구도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 시기 중국의 개혁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민간 시장경제가 완만하게 성장한 뒤 나중에는 국유 계획경제를 대체해 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점진적 대외개방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점진적 개혁과 단계적 개방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중국의 경제개혁은 재정분권, 이중가격제 등을 통해 단계적인 시장화를 도모하였으며 대외개방을 실시하였다. 대외개방도 점(경제특구 4개 설치, 1980)에서 선(연해지역 도시 14개 개방, 1984)그리고 면(모든 지역 개방, 1992)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아무리 점진적, 부분적인 개혁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혼란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혼란 속에서도 국가적 위기로 확대되지 않은 상태로 성장세를 이끌어 갔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좀 더 '심화'된 개혁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1990년에 들어서 시장화가 더욱 확대되고, 자원과 거시조절기능이 재집중화 되었으며, 미루어졌던 공유제 경제의 민영화와 대외개방이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개혁과 성장의 동시추진에있다. 2002년 제 16차 당대회를 통해 최고 권력을 장악한 제4세대 후진타오-원자바오 지도부는 그 전 제3세대 지도부와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 전세대보다 다른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줘야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부로서의 능력과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계기는 WTO 가입이다. 중국경제가 대외개방을 이루게 된 마지막 환경변화는 2001년 WTO 가입을 들 수 있다. WTO에 가입함에 따라 중국은 이제 과거처럼 국제규범과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대내외 경제정책을 수립,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성장을 계속해 가야만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2003년부터 연속 5년째 두 자리 수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였던 중국 경제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에 따라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예상에 못 미치는 9.6%를 기록했다. 이에 중국정부는 경제성장의 연착륙을 위하여 다양한 경기 부양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하였고, 특히 성장전략을 내수진작과 긴축완화로 바꾸어 빠른 성장을 유도하였다. 중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경기부양책을 살펴보자면 첫째로 통화정책이 있다.중국인민은행은 기준금리와 금융기관 지급준비율을 인하함으로써 긴축통화 정책에서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둘째로 재정정책이 있다. 중국 국무원은 내수 활성화를 위한 10대 조치를 발표하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총 4조 위안을 투입하여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기위한 조치를 마련하였다. 중국의 내수 진작 대책은 서민 임대주택 공급 확대, 교통, 의료, 문화 인프라 건설 부문에 집중 투자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부동산 부양책이 있다. 중국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 시키고 가격 급락을 방지하기 위해 담보대출 금리와 세율을 인하하고 일부 세목에 대해 면세 조치를 취하였다. 넷째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책이 있다. 수출 둔화에 따른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결을 위해 중소금리 인상, 수출부가가치세 환급율 인하, 대출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출구전략은 검토되지 않은 상태이다.2. 중국 지도부가 추구하는 발전전략과 주요 경제정책에 대해 논하시오.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는 1980년대 등소평, 1990년대 강택민, 2000년대 후진타오로 대표할 수 있다. 등소평은 세걸음 전략을 추진했는데 1단계는 1990년까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온바오 사회이다. 2단계는 2000년 까지 의식주 해결 외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소강사회이다. 3단계는 21C 중엽까지 인민을 선진 국민으로 만드는 대동사회이다. 강택민은 3대 대표이론으로 생산수단의 질 향상에 힘을 써 성장 방식을 바꾸었다.현재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중국 지도부는 기존의 4대 지도이념(막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이론, 3개 대표론)에 더불어 '과학적 발전관'을 5번째 이념으로 추가하였다. '과학적 발전관'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전면적 협조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본으로 하는 발전원칙이다. 이는 지도부의 민생과 균형발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지속성장을 위해 '인재강국', '자주창조', '화해사회', '취옥사석'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인재강국'은 그동안 제품공장이었던 중국을 인재공장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자주창조'는 기술도입이 아닌 자체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해사회'는 발전부터 먼저하고 그 후에 분배를 하는 것이 아닌, 모두 같이 잘 살자는 공부론 으로의 변화이다. '취옥사석'은 배고프니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는 기불택식의 시대에서 비계는 피하고 살코기만 골라먹는 도비간수로의 전환이다. 이는 외자유치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아무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환경도 생각하면서 중국에 가장 알맞은 것만 선택하겠다는 의도이다.현재 중국 지도부의 경제 발전 전략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것은 2005년 그 초안이 발표된 제 1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계획의 목표는 '소강사회' 건설과 2010 성장 일변도 정책을 통해 급성장했지만 불균등 발전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적 안정 유지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는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사회주의 조화사회'를 제기하고, 종합적이고 조화로우며 지속 가능한 발전관에 입각하여 도시와 농촌, 연해지역과 내륙지역, 경제와 사회, 인간과 자연, 국내와 대외 개방 다섯 가지 균형 발전을 이룩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채택했다. 경제사회적 격차의 해결을 위해 이른바 농촌, 농민, 농업 등 삼농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농촌의 노동력 과잉문제를 해결하고 농민의 도시 진출 장벽을 완화하기 위해 호구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것도 그 일환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수년간 지속된 서부 대개발 전략을 지속하고, 새롭게 동북3성 등 전통적 공업지역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한편 계층간 격차와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 부패문제에 대한 엄중한 처리를 천명하는 한편, 사회보장제도의 구축에도 정책의 역점을 두고 있다.중국정부는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빠른 성장보다 건실한 성장'을 정책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성장의 질과 효율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이제까지 빠른 성장을 강조하여 성장우선 정책을 추진하였던 중국의 경제정책에서 변화한 것이다. 성장우선정책은 빈부격차 및 도농격차를 확대시켰으며, 고정자산투자의 과열과 물가상승, 수출드라이브로 인한 무역 상대국과의 마찰, 자원낭비 및 에너지 과소비형 경제구조, 환경오염 등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였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정책과 관련해서는 3가지 정책이 제시되었다. 독자적 기술개발능력과 이를 위해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을 추진하였으며 동시에 '혁신형 국가' 건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계획은 과학기술 관리체제 개혁, 지적재산권 전략 실시, 국제과학기술자원 이용 확대 등을 세부과제로 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향후 내수 및 투자다.
    경영/경제| 2015.03.13| 7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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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그들이 사는 세상
    일본, 그들이 사는 세상한국에서 일본을 지칭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함께 고대부터 불교, 한자, 율령을 기본으로 공유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다. 또한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수용함으로서 유교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같은 문화권에 속하지만 그 내면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과거 두 나라는 士農工商의 신분질서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士’의 의미는 두 나라가 서로 상반되었다. 일본에서 ‘士’ 는 사무라이, 즉 무사를 뜻한다. 반면 한국에서 ‘士’ 는 양반, 즉 문인을 뜻한다. 이는 일본은 ‘武’ 가 중심이 되는 사회인데 반하여 한국은 ‘文’ 이 중심이 되는 사회임을 의미한다. ‘武’ 보다는 ‘文’ 이 더 부드러운 이미지이다. 부드럽고 상냥함의 성질은 친절한 특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추론으로 본다면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더 친절과 연관이 있을 것 같지만 일본인의 친절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하지만 일본인의 친절함 속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서양인, 특히 백인에게는 진심어린 친절을 베푸는 반면에 동남아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친절한 척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일상 언어생활의 측면에서도 일본인의 이중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은 보통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비교적 쉽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본인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말하는 것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고, 직설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은 피하고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경향을 보인다.이 외에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방식, 행동양상의 차이점은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것에 비하여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먼 나라 일본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특징과 문화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한국과 일본은 지형적 측면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은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반가 주어진다면 철저히 구분해 놓은 신분 질서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생긴다. 이러한 혼란은 사회 내부적인 갈등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자리하며 결국 ‘和’를 깨뜨린다. 즉 각자 분수에 맞는 삶을 살 것을 강요한 일본이기에 과거제도가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和’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인은 집단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 할 경우 사회 전체적인 균형이 흐트러져, 평화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성향은 일본의 특수한 사회 현상인 ‘이지메(いじめる)’와 연관된다. ‘이지메’는 동일집단 내의 상호작용 과정에 있어서 우위에 선자가 의식적 또는 집합적인 타인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로 규정된다. 집단에서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약자 등 ‘和’를 깨뜨린다고 판단되는 자에게 ‘이지메’가 가해진다.‘이지메’는 일본의 역사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에도 시대에 막부는 ‘에타(歲多)’와 ‘히닌(非人)’으로 구성된 천민집단을 만들었다. 이 집단을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무사들로부터 고통 받는 농민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농민들이 천민을 학대하는 것을 용인하여 그들의 분노를 해소하도록 하였다. 이는 공인된 집단적인 학대인데, 집단적 학대의 측면에서 현대 사회의 ‘이지메’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도록 맞춰가게 된다. 자연스레 진실 된 자신의 모습은 감추게 됨으로써 겉과 속이 다른 성품을 형성한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의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허용된 영역 내부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마니아(マニア)’, ‘오타쿠(オタク)’ 문화를 형성한 요인 중 하나이다.‘마니아’는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가를 의미하며, ‘오타쿠’는 ‘마니아’를 뛰어넘은 일본사회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도 ‘오타쿠’, 본인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되면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며, 서로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和’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일본인은 자신의 진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은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항상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이것이 ‘혼네(本音 ; 속마음)’과 ‘다테마에(建前 ;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라는 일본인의 이중성이 생겨난 요인이다.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욕을 나타내는 단어가 한국처럼 많지 않다. ‘지쿠쇼(ちくしょう ; 짐승)’, ‘바카야로(ばかやろう ; 바보)’ 의 단어가 대표적인 욕의 범위에 들어가는 단어이다. 이는 한국의 욕에 비한다면 애교부리는 수준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이 과거 오랜 무사정권 시기를 보낸 것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사무라이는 ‘기리스테고멘(切捨御免)’의 특권과 ‘다이토(帶刀)’의 특권을 지녔다. ‘기리스테고멘’은 평민이 사무라이에게 누를 범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목을 칠 수 있는 특권이며, ‘다이토’는 칼을 허리에 차고 다닐 수 있는 특권이다. 칼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감정이 격화되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게 된 것이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발언은 삼가게 되었다. 항상 신중하게 언어적 표현을 하는 태도가 욕을 나타내는 단어의 수가 적고, 그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된 것은 아닐까?지금까지 일본인의 특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인과는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본인. 이 차이점은 결국 일본 고유의 ‘和’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인의 친절성과 이중성도 ‘和’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기쿠바리’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和’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 되어도 결국 인간 사회에서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이처럼 신체적 접촉을 꺼리는 태도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것에서 비롯된다.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영국인의 특징은 영국의 계급사회로 이어진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에 계급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의아스럽지만 최초에 영국의 정치는 귀족 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참여가 가능했다. 신분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분쟁이나 갈등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같은 계급, 신분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도록 하여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士農工商 의 철저한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갈 것을 강요하였다. 이것은 섬나라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영국은 현재까지도 선진 서구 국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계급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엄연히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의 차이는 존재한다. 모든 영국인은 입을 열자마자 자신의 계급이 밝혀진다. 영국 상류층에는 절대 무오류의 분별 기준인 일곱 단어가 있다. 일곱 단어 중 하나라도 잘못 사용하면 하류층으로 여겨진다. 일곱 단어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화장실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류층은 화장실을 ‘toilet' 이라고 하지만 중산층은 'lavatory’, 상류층은 ‘loo’ 라고 칭한다. 식사 후 먹는 후식을 상류층은 ‘pudding’ 이라하며 결코 ‘sweet', ‘after', 'dessert'라 부르지 않는다.영국의 술집인 'pub'에서도 계급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중산층의 출입구는 'bar', 하류층 출입구는 'pub'이라는 표시가 있고 2층은 중산층, 1층과 지하는 하류층의 공간으로 사용된다. 의회의 공식 명칭에서도 계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상원은 귀족원이라 부르며 하원은 평민회라 부른다. 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만 상원은 아직도 상당부분 세습되는 것이 현실이다.영국인은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강하게 의식한다. 을 알아야 한다.‘기쿠바리’에서 보여 지는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인간관계를 서로 은혜를 입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恩’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일본인들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으로 여긴다. 이것도 결국은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형성하여 사회의 ‘和’를 유지하고자 함이다.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지니고 있다고 인식한다. 지나가 버린 과거, 다른 사람과의 일상적인 접촉 등 모든 것이 인간이 지닌 채무가 된다. ‘恩’을 입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하여 의무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일본의 역사에서 살펴볼 때 일본인들이 빚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 중에 최고의 인간은 철저한 신분질서 속에 그들이 소속된 사회의 가장 높은 윗사람이었다. 지방의 다이묘, 쇼군, 천황이 그 대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인들은 특히 천황에 대하여 무한한 ‘恩’을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恩’을 주는 모든 사람은 ‘恩人’이 되는데 ‘恩’은 일종의 부채이므로 ‘恩人’에게 반드시 갚아야 한다.‘恩’에 대한 보답은 ‘기무(義務)’와 ‘기리(義理)’로 나뉘는데 ‘기무’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기무’ 안에 천황에 대한 보은인 ‘주(忠)’의 의무가 포함된다. 이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의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이해하는 핵심요소이다. 천황이 전쟁을 시작했을 땐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을 땐 천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평화의 길을 걷는 것이 일본인에게는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기무’의 일종인 천황에 대한 ‘주’가 발휘된 것이다.또한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토(神道)’를 이해해야 한다. 神道는 일본인들만의 종교로 고대 일본인들의 ‘物活論’적 믿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神道는 종교적 절대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이나 그 지방의 수호신, 그 까?
    인문/어학| 2015.03.13| 8페이지| 3,000원| 조회(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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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明夷待訪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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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어학| 2015.03.13| 36페이지| 1,000원| 조회(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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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양과 세습의 갈림길 평가A+최고예요
    선양과 세습의 갈림길‘선양’ 이라는 표현에 대한 필자의 막연한 생각은 ‘좋은 것’ 혹은 ‘도덕적인 것’ 이다. 그럼 선양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양은 중국의 상고시기에 존재한 왕위 계승 방식의 하나로 군주가 자신의 자손에게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다. ‘세습’ 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불려 받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보면 선양과 세습은 서로 반대되는 표현인 것 같지만 정확히 따져보면 세습과 반대되는 표현은 비세습이라 볼 수 있다. 세습이 혈연적인 것이라면 비세습은 비혈연적인 것이다. 비세습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무력과 강압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전자는 ‘선양’으로 볼 수 있으며 후자는 ‘찬탈’로 볼 수 있겠다.그렇다면 중국 역사상 선양이 최초로 행해진 때는 언제일까? 문헌에 등장하는 기록으로는 요임금에서 순임금으로 선양이 처음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이 시기에 행해진 선양은 아주 이상적인 왕위계승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순이 요를 핍박하고, 우가 순을 핍박했으며, 탕이 걸을 내쫓고, 무왕이 주를 벌하였다.요의 말년에 덕이 쇠하여 순에게 구금당하게 되었다.순은 요를 구금하였다.순은 요의 왕위를 찬탈했다.이는 『한비자』 와 『정보』 에 실린 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은 요에서 순으로의 계승이 강압적으로 이뤄졌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선양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여씨춘추』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요에게는 아들이 10명이 있는데, 아들들에게 (왕위를) 주지 않고 순에게 주었다.요와 순은 어진 군주였다. 모두 어진 군주를 후계자로 삼고, 자기 자손에게 주려고 하 지 않았다.비슷하게 『순자』 에서도 요는 어진 이에게 양위했고, 능력 있는 이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이 문헌들은 요에서 순으로의 계승이 자발적으로 이뤄졌음을 암시한 않다고 묘사한다. 『선양과 세습』 의 저자인 사라 알란 또한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요가 자신의 아들이 아닌 외부 사람을 선택한 것은 왕족뿐만 아니라 전체 귀족에게 세습권익에 대한 위험한 선례를 제공한다.” 라는 표현 등 요가 순에게 선양한 것이 바른 선택이 아님을 암시한다.결국 선양과 세습의 갈림길에서 선양을 택한 요는 잘못된 것인가? 선양은 덕이 있고 현명한 자에게 자신의 권위를 양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습은 자신의 권위를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족관계가 있는 자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곧 세습으로 권위를 양도받은 자는 유능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무능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유능한 사람이 세습된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능한 사람이 세습될 경우는 한 집단의 존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일본의 가족제도인 ‘이에’(家)를 통해 살펴볼까 한다. 보통 가족은 혈연에 의해 구성되는 집단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일본의 이에는 비혈연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혈연과 무관히 입양은 일본에서 가계를 계승하는데 매우 보편적으로 시행되던 관행이다. 이에는 맏아들 이외의 다른 아들이나, 장녀, 막내, 혹은 가족성원 이외의 사람에 의한 계승으로 존속되었다. 즉 계승자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계승되는가 보다 이에가 영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에의 구성원들이 동일한 가업에 종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에를 계승한 자의 중요한 역할은 가산을 유지,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에의 계승자가 현명하지 못할 경우 집안 전체가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계승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몇 대에 걸쳐 계승되어 온 일본의 가업 계승자 중에는 그 집안의 자식이 아닌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원리로 제시되는 가족에서도 집단의 번영을 위해 세습을 고집하지 않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더욱이 국가의 태평성대를 위하여 현명한 자에 서술한다.요는 단주가 불초하여 천하를 건네줄 수 없음을 알고, 그래서 순에게 건넬 것에 대해 저울질하였다. 순에게 건네주면 천하가 그 이익을 받게 되고 단주만 고통을 받게 되지만, 단주에게 건네주면 천하가 고통을 받고 단주는 그 이익을 얻게 된다. 요는 “어쨌든 천하를 병들게 하고 한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마침내 순에게 천하를 건넸다.요는 아들이 불초한 것을 인지하고 천하를 위하여 순에게 선양한 것이다. 만일 요가 아들 단주에게 세습하였다면 천하는 무질서한 혼란의 상태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즉 요가 순에게 선양한 것은 사회전체를 생각한 도덕적인 행위이다.『순자』 에서는 허유가 의로움을 중시하고 이끗을 경시한다고 말한다. 『선양과 세습』 의 저자인 사라 알란은 또한 “왕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대로 이끗을 중시하고 의로움을 경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은 세습의 원칙을 위배했기 때문에 덕이 조금 못 미친다.” 고 표현한다. 순과 허유는 둘 다 요에게 왕위를 제안 받은 성현이다. 둘의 차이점은 허유는 왕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은거하였으나 순은 왕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즉 허유는 세습의 방식을 지지하여 스스로 은거한 것이고, 순은 선양의 방식을 지지하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위의 서술들은 요에게 선양을 받은 순을 탐욕스러운 자로 취급하려 한다.결국 선양과 세습의 갈림길에서 선양을 택한 순은 잘못된 것인가? 만일 순이 요가 제시한 왕위를 거절하고 허유와 같이 은거하였다면 요는 또 다른 성현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요는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그의 아들 단주에게는 왕위를 계승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들 사이에서 왕위를 받는 것을, 순수한 도덕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순수한 덕을 지키고자 성현들은 요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고 순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요는 단주에게 왕위를 계승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덕치의 실현이 아닌 천하와 백성들에게 불행을 안 향유하지 못하니, 반드시 천하 사람들은 왕위에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 임금의 지위에 오를 만한 자질이 있는 이들 가운데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허유와 무광이 그들이다.위의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오히려 요의 왕위 제안을 거절한 허유가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허유는 고생한 것에 비하여 얻는 것이 없으니 왕위를 거절하고 요를 피하러 다닌 것이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폭력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선양은 도덕적이며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와 비교하여 세습은 혈족의 이익을 위한 탐욕적인 행위일까? 그 전에 세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세습은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세습이라는 것은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유형적인 것이나 무형적인 것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신석기 혁명을 거치면서 이 시기에 농업이 시작되었고 잉여산물이 발생하였다. 또한 부계를 중심으로 한 1부 1처제가 확립되기 시작하면서 자식에게 잉여산물의 상속이 가능해 졌다. 혈족의 이익을 위해 자식들에게 자산을 상속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습을 탐욕스러운 것이라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하지만 세습이 탐욕으로 여겨질 때가 분명 존재한다. 이를 기업의 사회성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선진국들의 기업은 그 규모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단계에 이르면 경영권의 세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영자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서 기업의 존망과 성장에도 관계가 있으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벌기업이나 대기업은 국가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소유권이나 경영권이 세습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은 소유자 한 사람의 것이 아니고 국민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소유자 위주로 경영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유자의 입장에서는못한 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들은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런데 경영자가 일처리를 잘 못하여 그 기업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파산하는 사태에 이른다면 개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가 휘청거리게 될 것이다.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세습은 탐욕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을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 삼성家가 3대째 세습하는 것과 비교하여 풍자하는 글들이 종종 인터넷 상에 게시되곤 한다. 이는 세습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며 ‘불순한 세습’이라 칭하고자 한다. 하지만 세습을 비도덕적이고 탐욕적인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순수한 세습’은 어떤 것인가? 먼저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집단인 발렌베리 그룹을 살펴보자. 발렌베리 그룹은 현재 150여 년간 5대째 세습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여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오너 경영을 기본방식으로 취하고 있다. 하지만 발렌베리의 세습 방식은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조금 다르다. 발렌베리家의 후계자들은 어려서부터 손님이 집을 방문해 조부나 부친과 대화하면 문 옆에 앉아 경청해야 할 정도로 힘든 경영수업을 참아내야 한다. 또 장성해서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거친 바다 생활을 경험한 뒤, 해외 선진 금융회사에 들어가 국제금융과 산업의 흐름을 익힌다. 또 발렌베리家는 총수 1인의 ‘황제경영’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산업과 금융 분야로 나눠 2명의 총수를 두는 특유의 ‘투톱 방식’을 운용한다. 투톱의 한 축은 장남에게 우선권을 주지만, 다른 한 축은 수많은 후손 중 능력과 의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준다. 즉 세습자의 능력이 충분히 기업을 이끌어 갈만하다고 여겨졌을 경우 혈족에게 세습을 하는 것이다. 물론 세습은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를 비롯한 합법적인 절차에 의거하여 진행된다. 다음은 세계 최대 화학회사로 불리는 듀폰의 사례이다. 듀폰家의 자손들은 모두 신입사원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입사 후 5-6년이 지나면 원로들의 엄격한 평가를다.
    인문/어학| 2015.03.13| 6페이지| 3,0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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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소지향의 일본인
    축소지향의 일본인한 나라의 국민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문화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태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문화는 어떤 것일까? 를 쓴 도이 다케로는 "일본인 심리에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어의 특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이라고 그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에 근거하여 그가 일본어 특유의 어휘라고 확신한 것이 '아마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마에'라는 말이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에는 '아마에'란 말보다 더 세분화된 '어리광' 이나 '응석' 이라는 말이 있다. 왜 이웃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를 일본 특유의 어휘라고 확신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탈아시아 주의와 관련이 있다. 영어는 곧 서양이고 , 서양은 곧 세계라는 일본인의 관념 속에서 구미와의 비교를 통해 '아마에' 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이다. 서구의 언어보다도 일본어와 유사성이 많은 한국어부터 조사한다는 개념이 일본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이 쓴 일본론에는 주로 빵과 밥을 비교한다. 하지만 밥과 밥을 비교하는 것이 일본인만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밥상위에 놓고 먹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작은 공기에 떠서 들고 먹는다. 한국인은 놓는 문화이고 일본인은 들고 다니는 문화인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작게 줄여 간단하게 손에 들고 다니려는 지향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의 문화는 축소지향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자기 나라의 문자가 생기기 전에 한국과 일본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자기 나라의 문자를 만들어낸 발상법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한글'은 한자와는 전혀 관계없이 자음과 모음을 조립해서 만든 독자적인 고유 체계의 표음문자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자를 본보기로 하고 그것을 간소화하여 가나 문자를 만들어냈다. 즉, 일본의 문자들은 한자를 생략해서 변형한 축소지향의 산물인 것이다. 일본의 문자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의 언어 사용에서도 축소지향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모 문화' 이다. '도모'라는 말은 참으로, 대단히, 매우 와 같은 부사어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도모' 만을 사용하여 감사, 축하, 유감 등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말을 잘라먹는 버릇이 일본어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축약어가 존재한다. '정모(정기모임)' , '출첵(출석체크)'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용어들은 현대 문명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람들의 성격이 조급해져서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어에 나타나는 축약의 특징도 일본인의 성격 때문이 아닌, 현대 사회의 환경 탓은 아닐까? 하지만 일본어에 나타나는 축약의 현상은 과거 에도 시대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당시의 '도모'는 더 짧은 '모'의 형태였다고 한다.한국과 일본 모두는 가계를 존중한다. 하지만 가계를 존중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족보를 만들어 가계를 존중하였다. 이는 가계를 관념적 시스템으로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족보가 아닌 문장으로 그 역할을 대신 하였다. 문장은 가계를 감각적인 표상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문장은 관념 문화가 아니라 감각 문화이다. 추상적인 족보 문화는 '확대 지향적'인 것이나 구상적인 '문장 문화'는 축소지향적인 것이다. 가문의 문장은 노동자 세계에서는 '한텐'이 되고 상인의 세계에서는 '노렌'이 된다. 사람들은 가문의 무늬를 보고 곧 그 사람의 가계를, '한텐'을 보고 기술과 책임의식을, '노렌'을 보고 가게의 신용도를 판단한다. 개인은 '문장'에 의해 집단과의 일체감을 얻고, 사회 전체는 '문장'의 구별에 의해 집단적 질서를 유지한다. 즉, 관념이나 조직 등을 응축한 축소지향이 일본의 역사와 사회 조직을 지배해온 것이다.자연물에도 축소지향의 문화는 나타난다. 한국인은 자신이 직접 자연을 찾아가려는 성향이 강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선승은 세속의 땅을 떠나 자연과 직접 대면하면서 선적 경지를 터득 하였다. 하지만 일본인은 거대한 자연을 자기 집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일본의 선승은 도시 한가운데 있으면서 자연을 자기 마루 앞으로 끌어들였다. 정원의 자연은 더욱 축소되어 분재가 되었다. 이는 고정적인 자연물을 가동적인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가져다 놓으면서 아름다움을 즐기려한 일본인의 욕망에는 부정적 측면 또한 존재 하였다. 자연이 축소되면 될수록 인간의 지배력은 점점 커진다. 가위로 싹을 자르고, 가지를 치고, 잎을 자르고, 철사로 형태를 고정시킨다. 인간의 미적인 만족을 위해 자연의 섭리는 무시되고 파괴된다. 이러한 인간의 무자비한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 소나무를 소나무로 조각하는 분재의 문화에서 우리는 창안하는 문화가 아닌 이미 있는 것을 다시 개발해 내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이는 '나루호도(과연)'의 문화이다. 쥘부채, 접이식 우산, 트랜지스터 라디오, 계산기 등은 모두 일본이 개발한 것이지만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 내의 연구소에서는 기초 과학적 연구를 하기 보다는 기술 개발에 관한 국내외 정보 수집에 치중한다. 수집된 기술이나 정보를 역수출 하는 것이 일본의 방식이다. 일본인은 새 기술의 개척자가 되려하지 않고 품질과 가격을 중시한다. 이러한 일본인의 축소 지향적 정신과 '나루호도'의 사고방식이 일본을 전후 폐허 상태에서 오늘날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킨 셈이다.그러나 '나루호도'의 사고방식은 부정적 측면이 있다.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누군가 앞에서 기술을 창조하면 그 기술을 개발하여 역수출 하는 것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앞에서 기술을 창조하지 않는 다면 일본의 사이클은 멈출 수밖에 없다. 축소 지향적 사고에도 부정적 측면이 있다. '안'이란 축소 공간으로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구상적 세계, 피부로 느껴지는 세계이다. 이에 반하여 '밖'은 확대 세계이며 추상적인 넓은 공간이다. 일본 말로 '우치'는 자기 집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안'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토'는 집 이외의 공간으로 '밖'을 의미한다. '우치'의 경계선은 일본이라는 국가이다. 즉 국가를 '안'으로 보고 세계를 '밖'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외국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일본 내에서 일본인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의 참상을 그린 영화는 많지만 한국인 피폭자를 다룬 영화는 찾아 볼 수 없다. 영화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한국인 피폭자는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한국 전쟁이나 월남 전쟁에서 일본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일본은 피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국가이다. 즉 일본인은 '우치'의 세계에서는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지만 '소토'의 세계에서는 냉담한 사람인 것이다.
    인문/어학| 2015.03.13| 3페이지| 1,500원| 조회(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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