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를 통해 느낀 영화 『일급살인』에 대한 감상2009130281 진한옥I.서론영국의 작가이자 성직자였던 찰스 콜튼(Charles Caleb Colton, 1780~1832)은 “진실의 최대의 벗은 시간이며, 최대의 적은 편견이다”라고 하였다. 영화 『일급살인』은 이러한 진실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24세의 젊은 국선 변호사인 제임스 스탬필(James Stamphill: 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은 일급살인 혐의로 기소된 헨리 영(Henri Young: 케빈 베이컨 분)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헨리 영의 3년 동안 비인간적인 생활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헨리 영을 살인자로 만든 알카트레즈 감옥에 대해 분노심을 갖게 된다. 시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오랜 시간 동안 재판을 끌어온 결과, 결국 배심원들의 편견을 벗기고 헨리 영의 형량을 낮추는 데에 성공한다.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에 문외한인 본인에게도 큰 감흥을 주었다. 케빈 베이컨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는데, 헨리 영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를 연기할 때에는 이것이 과연 연기인가 하는 의문조차 들 정도였다. 케빈 베이컨뿐만 아니라, 크리스찬 슬레이터도 이지적이나 다소 꺼벙한 면도 있는 변호사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고, 교도소의 부소장 밀튼 글렌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 또한 완벽한 연기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인이 이 영화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몇 가지 명대사들이었는데, 때문에 이어진 글에선 이러한 대사를 통해 느낀 본인의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II.본론“I don't want to think! I spent three goddamn years in the dark, smelling my own shit and piss doing nothing but thinking! I hate thinking!”헨리 영의 이 절박한 대사는 그의 3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독방 생활을 대변한다. 아무 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헨리 영에 대한 인내를 잃어버린 제임스 스탬필은 독방 생활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영에게 생각을 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영에게 생각이란,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독방에 갇힌 3년 동안 그는 생각 밖에 할게 없었고, 142X93의 답을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란 또 다른 감옥에 갇혀있었다.생각에 질려버린 헨리 영을 보며 본인은, 인간은 선택이 다양할수록 즐거움을 얻는 다는 생각을 하였다. 독방에 갇힌 헨리 영은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다른 재감자들과 달리, 다른 동료들과 어떠한 얘기를 할 지, 휴식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 지와 같은 사소한 선택조차 제한되었다. 그에겐 오직 기다리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현실의 삶에 있어서도 선택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고 생각된다. 선택은 일종의 ‘표현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선택을 통해 우리의 이해나 관심, 혹은 우리 자신 자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선택의 다양화는 개인에게 개인 특유의 속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무기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일례로, 인생에서 가장 선택의 범위가 넓은 학창시절 때의 행복지수가 다른 시기보다 더 높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학창시절의 행복감이 모두 선택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곤 보긴 어렵겠지만 본인의 경우에도 진로에 대한 걱정은 결국 꿈을 이뤄나가는 행복감으로 귀결되곤 하였던 것으로 보아, 선택의 다양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선택의 권리가 완전히 박탈당한 헨리 영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던 것이다.“In life for every action, there is a definite and distinct reaction. Action reaction. Now, if you escape, action:I lose my job. Reaction: I have a family that I will not be able to provide for!”밀튼 글렌 부소장의 냉혹한 궤변이 나타나있는 대사이다. 그는 탈옥을 기도하다 붙잡힌 헨리 영에게 고문을 가하며 행동과 반응에 대해 설명한다. 그의 말은 자신의 헨리 영에 대한 불법적인 처사를 합리화시켜준다. 영의 탈옥은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므로 그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한다는 미명 하에 영을 고문하고 독방에 장기간 감금한 것이다. 글렌은 결국, 잘못했다고 비는 영의 아킬레스 건을 칼로 그어 평생 장애가 생기게 만든다.모든 행동엔 반응이 따른다는 글렌의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옳다. 하지만 글렌의 문제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불법적인 일을 자행한 것이다. 현실에서도 글렌과 같이 가족 부양이나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된다. 자녀의 교육이란 명목으로 탈세를 위해 위장 전입한 국회의원은 인사 청문회 때마다 발견되고, 심지어 실제 우리나라에선 범죄자의 재활이라는 명분으로 형기를 마친 재소자를 다시 복역하게 하는 보호감호 제도가 실시되었었다.사실 필자 본인도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명분을 만들어 합리화하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난 학기에 미리 문제가 공지된 한 과목의 기말고사에서 여분의 시험지에 미리 답을 썼다가 그대로 제출한 일이 있었다. 2년 장학금 수혜자였던 본인은 3.5이상 학점을 받아야 장학금 수혜 자격이 유지된다는 규정 때문에 나름 공부를 했으나 자신이 전혀 없었고, 결국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부정행위까지 저지른 것이다. 후에 교수님께선 본인의 부정행위를 적발하셨고, 필자는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같은 본인의 경험과, 결국엔 유죄 판결을 받은 글렌을 볼 때 명분을 앞세운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반응이 따른다고 생각된다.“If I'd have lived in your house and they'd have switched us when we was babies I could have been just like you. If they stuck you in the hole you could be sitting here like me, asking why we couldn't be friends on the outside.”이 장면에서 헨리 영은 가장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아마 뒤에 대사에 나오듯 영이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자신이 기적과 같이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면 그 때도 친구가 될 수 있겠냐는 영의 질문에 스탬필은 당연하다고 답하지만, 영은 그렇지 않을 거라며 비관한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환경이 만든 비극이라 생각한다. 스탬필 역시 5달러를 훔친 적이 있으나, 그는 형에게 다시 하지 말라는 꾸중만 듣고 말았던 것이다. 환경에 따라 너무도 달라져 버린 현실 앞에 영은 억울함과 비참함이 뒤섞여 눈물을 흘리고 스탬필 또한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자신의 환경에 대해 비관하는 영의 모습은 본인에게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걱정 없이 적어도 평균의 생활은 할 수 있었던 본인의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왔지만, 대학교에 와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을 그 전에 비해 훨씬 많이 만나게 되었고 때때로 그들을 부러워하며 본인의 환경에 불만스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과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박탈된 채 살아온 사람들에겐 본인의 불만은 배부른 고민일 따름이며, 결국 주어진 상황에 맞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의 소임이란 생각이 든다.III.결론사실, 본인은 영화에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기에 이번 감상문 과제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업영화에 찌들어있던 필자의 눈에 이처럼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하는 영화는 신선하게 다가왔고 생각의 지평을 좀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어쩌면 헨리 영의 생애는 결국엔 강제적인 죽음에 이르기에 불행한 삶이었다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쓴 글씨와 같이 승리의 삶이었다고도 생각된다. 알카트레즈로 돌아간 뒤 글렌에게 하는 헨리의 말처럼 그는 행동에서 이겼고, 반응도 빼앗기지 않았다. —반응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말은 글렌이 그를 구타할 수도, 독방에 가둘 수도 있지만 그것에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하겠다— 승리 속에서 마지막을 보낸 헨리 영의 삶이 부러워지기도 한다.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 디마지오는 실제 야구선수였다. 헨리 영이 말하듯 그는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작성하였고,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승리를 한 것이 아니다. 디마지오의 통산 타율은 0.325인데, 이 것은 세 번에 한 번 꼴로 안타를 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에 한 번을 승리한 것도 타자에겐 대단한 기록인데, 그에 비해 현실 속에 우리는 열 번 중 한 번 실패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듯하다. 헨리 영처럼 진정한 승리를 깨닫게 된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진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훅 송(Hook Song)을 통해 본 한국 대중가요의 문제와 대안2009130281 진한옥서론본론훅 송(Hook Song)의 정의와 특징훅 송(Hook Song)의 정의훅 송(Hook Song)의 특징훅 송의 문제점대내적 차원대외적 차원한국 대중가요의 유행 쏠림 현상의 예와 이에 따른 문제점유행 쏠림 현상의 예유행 쏠림 현상의 문제점대안 및 결론서론최근 한국 대중가요에는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른바 훅 송이라는 것이 대유행이다. 이 글에선, 훅 송이 가진 특징과, 그것이 지난 대중가요의 유행 쏠림 현상과 가지는 관련성, 더 나아가 그것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본론훅 송(Hook Song)의 정의와 특징훅 송(Hook Song)의 정의훅 송이란 후킹 효과(Hooking Effect)를 가지는 노래라 정의될 수 있다. 여기서 후킹 효과 (Hooking Effect)란 훅(짧고 반복적인 중간 후렴 부)이 삽입된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의 특징이 기억으로 남아서 무의식 중에 기억을 다시 반복 재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Wonder Girls의 Nobody, Brown Eyed Girls의 어쩌다, 손담비의 미쳤어, 소녀시대의 Gee 등이 훅 송이라고 일컬어 진다.훅 송(Hook Song)의 특징첫째로, 훅 송은 매우 간결한 후렴구를 가진다. 훅 송에선 1~3음절 정도의 짧은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에 중독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데, 적절한 예로는 소녀시대의 Gee가 있겠다. 이 노래에선 ‘Gee’라는 단음절의 단어가 무려 53번이나 불려지는데, 이것은 3분 21초의 노래 길이로 볼 때 단어의 음절에 비해 매우 큰 비중이다.둘째로, 훅 송의 훅 부분은 대체적으로 라임(Rhyme)이 맞춰져 있다. 라임이란, 시나 노랫말에서 압운을 맞춰 운율 감을 살리는 방법을 말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라임이란 개념은 일반 청자뿐만 아니라 작사자들에게 있어서도 익숙지 않은 것이었지만, 현재 유행하는 훅 송들의 훅 부분 가사를 보면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반복되는 라임의 특성이 잘 살아있다. 일례로, Super Junior의 ‘쏘리 쏘리 (SORRY, SORRY)’를 들어보자.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내가 내가 먼저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빠져 버려 babyShawty Shawty Shawty Shawty 눈이 부셔 부셔 부셔숨이 막혀 막혀 막혀 내가 미쳐 미쳐 baby굵게 표시된 부분은 모두 라임이 맞춰져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비슷한 발음의 반복을 통해 청자들이 훅 부분을 더 강렬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훅 송의 문제점대내적 차원음악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잃어버린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생산자들은 간편하고 단순한 멜로디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통화 연결음과 벨소리가 음악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이상, 짧고 강렬한 훅 송의 범람은 노래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 치부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음악 시장에 있어서 다양성은 전체 대중 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이 분명하기에, 작금의 상황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중가요 가사가 문학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선 가사의 기승전결이 요구되는데, 훅 송은 이 원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음악과 가사 두 가지 측면에 있어서의 질적 하락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에서 훅 송의 지나친 유행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대외적 차원음악 그 안에서뿐만 아니라, 훅 송은 대중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나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는 듣는 이에게 강박을 주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의 최병철 전임교수는 “음악에는 기승전결이 있는데, 최근 유행하는 훅 송은 기승전결이 없고, 일정 부분만 반복된다. 이에 두뇌 전체가 활동하지 않고 특정 부분만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된다”며 "장시간 이러한 소리에 노출되면 의존현상이 일어나서 청각적인 중독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학생들은 훅 송에 중독되면 귀 속에서 리듬과 가사가 계속 맴돌아 학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결국 청자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한국 대중가요의 유행 쏠림 현상의 예와 이에 따른 문제점유행 쏠림 현상의 예지금 한국 대중가요계의 훅 송 유행현상은 거의 쏠림 현상으로 까지 진행된 상태이다. 이런 쏠림 현상은 비단 지금 훅 송의 경우만이 아니었다.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큰 유행이었던 테크노란 장르를 떠올려보자. 비록 본질이 왜곡된 채 국내로 유입되긴 했으나, 당시 테크노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이정현, 조PD, 채정안, 한스밴드, 젝스키스, 클론 등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많은 가수들은 테크노 음악과 그 것의 마스코트라 볼 수 있는 도리도리 춤을 자신들 가수 활동의 주무기로 삼았다.좀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 보자면, 2000년대 중 후반 큰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의 코드로 ‘미디엄템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장르라고 칭하기엔 다소 모호한 이 ‘미디엄템포’는 느린 발라드 곡보다는 빠르고, 빠른 댄스곡 보다는 느린 곡을 통칭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SG Wannabe, Monday Kiz, Seeya, 김종국, 장혜진 등이 ‘미디엄템포’곡을 불렀는데, 당시 미디엄템포의 황제라고 불렸던 작곡가 ‘조영수’씨는 2년 연속 작곡가 상을 수상하는 등 2000년대 중후반은 그야말로 미디엄템포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유행 쏠림 현상의 문제점이러한 유행 쏠림 현상의 문제점은 결국 음악 산업 전체의 질적 하락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디엄템포’곡들은 멜로디 라인, BPM(Beats Per Minute), 가수들의 창법이 모두 다 비슷비슷 했는데, 덕분에 노래만 들어선 누구의 곡인지 구별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모든 가수가 같은 형식의 노래만 부르는 가요계. 이 안에서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나, 많은 고민에 의한 완성도 높은 음악은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음악에서 또한 발전이란 것은 다양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다양성이 무너지는 순간 대중 음악예술의 진보는 불가능 한 것이다.대안 및 결론좋은 음악의 조건을 완성도와 실험성에 있다고 본다면, 훅 송을 비롯한 특정 형식 음악의 유행 쏠림 현상은 좋은 음악의 조건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다. 대개 이러한 유행의 범람 현상의 원인을 파고들어 보면, 처음의 특정한 형식의 음악이 큰 히트를 치고, 이것을 모방한 아류 음악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결국 음악에 대한 숙고 없이 오직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음악을 ‘찍어내는’ 일부 생산자들의 태도가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이런 해석을 두고, 음악도 하나의 사업인데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 오기 위한 행위가 뭐가 잘못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유행에 편승한다고 음악의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수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상업적 성공을 얻는 경우 또한 무수히 많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의 경우를 보면, 당시의 유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통 발라드 곡이었지만, 한 인터넷 사이트의 음악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유행에 얽매이지 않은 음악 또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이것은 음악 시장 전체의 다양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음반 시장 전체의 질적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음악의 생산자들이 좀 더 진보적, 창의적인 감성을 가지고 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체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요약] PAGE * MERGEFORMAT 2
프로이트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 관한 요약과 비평2009130281 진한옥요약쾌락 원칙이란 말 그대로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자신의 정신분석학의 기초로 쾌락 원칙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글에선 쾌락 원칙과 상반되거나 그것을 초월하는 새로운 원칙에 대해 논하고 있다.프로이트는 우선 쾌와 불쾌를 흥분의 양을 통하여 정의한다. 쾌란 흥분량의 감소를 나타내고, 불쾌는 흥분량의 증가라고 말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이것은 항상성의 원칙을 가진다. 즉, 인간은 흥분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데에서 쾌를 얻는다는 것이다.다음으로 프로이트는 현실 원칙에 관해 이야기 한다. 프로이트는 현실 원칙이 쾌락 원칙에 대치한다기 보다 쾌락 원칙을 보완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때때로 쾌락 원칙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위험한 영향을 끼치는데 이를 극복하게 해주고 이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더 나은 쾌를 얻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현실 원칙이란 것이다. 이 현실 원칙은 주로 두 가지 경우에 요청된다고 하는데 하나는 유기체로서의 자기 보존을 위할 때이고 나머지 하나는 여러 본능 충동들이 서로 충돌할 때 이다. 프로이트는 후자의 경우를 억압된 성본능이 표출되려 할 때, 단순한 쾌락 원칙에 의해서라면 그것을 해소해야 하겠지만 사실은 현실원칙에 의해 그것을 불쾌로 받아드리고 감내한다는 예를 통해 설명하였다. 특히, 이러한 종류의 불쾌를 다른 일반적인 불쾌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것이 쾌락 원칙에 크게 모순되지는 않으나 좀 더 탐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강박을 제시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은 외상성 신경증을 겪게 된다. 이 외상성 신경증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하는 강박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일종의 집착으로까지 보여지기도 한다. 이것을 단순히 경험의 강도가 너무 강하여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진리와도 같은 꿈의 원칙에 따라 이를 반박한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기본적으로 소원 성취적 취의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꿈의 소원 성취 지향적 속성에 따르면 외상성 신경증을 앓는 환자들은 그들의 건강한 과거 모습, 혹은 치료 후의 모습을 꿈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꿈에서까지 병을 유발시킨 현장의 기억에 강박되어있고, 때문에 이런 현상을 이해하긴 위해선 단순히 기억의 고착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프로이트는 이런 반복강박의 형태를 어린아이의 놀이에서도 발견한다. 프로이트는 만 한 살 반 정도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아이는 엄마를 매우 사랑하지만, 엄마가 외출을 해도 울지 않는 이상한 특징이 있었다. 때때로 아이는 실패를 구석진 곳으로 던져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 뒤, 실을 잡아당겨 다시 실패가 나타나도록 하는 놀이를 반복했다. 프로이트는 이 놀이가 엄마의 외출과 귀가를 재현한다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란 고통스러운 일임이 틀림없는데 왜 이 아이는 이런 고통스런 경험을 반복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이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아이가 달콤한 결과를 바라고 고통을 반복한다는 가설, 반복을 통해 상황에 익숙해지려 한다는 가설, 엄마에게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이란 가설, 마지막으로 모방 본능에 따른 행동이란 가설이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 가설들이 모두 쾌락 원칙에 반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허나 그는 외상성 신경증이나 어린아이의 놀이 속에는 쾌락 원칙만으로 설명하기엔 불가능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들에게서 또한 반복강박은 나타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신경증 환자들은 쾌락의 가능성을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한 그 때의 경험을 끊임없이 재생한다. 이들이 만약 과거를 ‘기억’한다면 상황은 나았겠으나, 이들은 그저 억압된 과거를 반복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여인은 결혼할 때마다 남편을 사별해야 했고, 어떤 이는 성공이 가까워질 때쯤 다시 재난을 겪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런 반복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결국 프로이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쾌락 원칙을 뛰어 넘는 반복 강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반복강박이 쾌락 원칙보다 더 원초적, 근본적,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이제 프로이트는 이러한 주장에 근거를 내세운다.프로이트는 반복 강박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외상성 신경증의 유발엔 내적 흥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역설한다. 이 내적 흥분의 원천은 ‘본능’이다. 그런데 이 본능이 ‘묶이지 않을’경우 쾌락 원칙에 반하여, 뭔가 악마적인 속성을 지닌 반복 강박으로 드러나곤 한다. 결국 쾌락 원칙이 무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본능’은 일종의 과거로 회귀하려는 힘으로 볼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본능’은 ‘죽음 본능’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가장 근본적 반복 강박, 즉 ‘죽음 본능’은 자아 본능에만 해당할 뿐 성 본능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이 논리를 조명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바이스만을 참조한다. 바이스만은 죽음을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기능이라고 간주한다. 이는 죽음이 어떤 본능에 의한 것이란 프로이트의 생각과 대비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원생 동물 또한 죽어간다는 실험에 주목해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죽음 본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고 말한다.프로이트는 이러한 ‘죽음 본능’이 쾌락 원칙에 철저히 반한다고 결론짓는다. 오히려 쾌락 원칙이 실제로 죽음 본능에 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까지 말한다. 그러나 쾌락 원칙과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의 관계는 명확히 밝힐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프로이트는 새로운 연구 방법과 논리적인 결론을 기대하며, 우리는 선명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탐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끝맺는다.견해 및 비판이미 대중에게 인정받은 학자의 견해를 비판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프로이트의 경우, 그가 정신분석학의 대부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어 특유의 만연체 문장은 그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명 그의 주장에도 맹점이 있었고 이제 그 것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프로이트의 저서 ‘쾌락 원칙을 넘어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인간의 행동은 주로 쾌락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실 원칙과 반복 강박에 의해 쾌락 원칙은 파괴되기도 한다. 특히 가장 근원적인 반복 강박은 ‘죽음 본능’이고, 모든 생명체에 이 본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쾌락 원칙이 무시될 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라고 볼 수 있겠다. 프로이트는 모든 생명체에 죽음 본능이 있다는 가설을 불사의 생명체로 알려진 원생 동물 또한 생명의 유지를 위한 적절한 환경이 없어질 경우 자연사하게 된다는 주장으로써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실험으로서 확실히 드러난 것이 아니며, 특히 짚신벌레가 자신의 물질 대사 산물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혹, 이들이 진정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과연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죽음 본능’에 의해서 죽게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외적인 요건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 개체로서의 본능에 의해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자살의 경우만이 – 만일 죽음 본능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 죽음 본능을 확연히 보여준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주장은 다소 근거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겠다.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일종의 순환 논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죽음 본능은 쾌락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죽음 본능’은 ‘쾌락 원칙’을 근거로 삼는다. 만일, 죽으려는 본능으로 우리의 쾌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죽음 본능’은 곧 ‘쾌락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결국,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한 ‘죽음 본능’은 사실 ‘쾌락 원칙’의 기초 하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여진다.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그가 마지막에 밝혔듯 당장의 이론으로 여러 의문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가 가장 자주 썼던 말도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증명 없이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것의 존재를 거의 공리로서 받아들인 프로이트의 인식은 결국 어떠한 명확한 결론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즉, 프로이트는 주장의 반복만을 했을 뿐 논리적 근거나 이유의 제시에 있어서 다소 무관심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독자들이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방해를 초래한 것이다.
‘라쇼몽’에 나타난 현대 사회의 언론과의 관련성과 우리의 역할영화 ‘라쇼몽’은 우리에게 인간의 추악함, 이기심,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애까지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관객들이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은 바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는 세 사람에게서 나타난 이기적 태도이다. 그들은 비록 자신들이 범인이라 자백하긴 했지만 상황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형량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애쓴다. 사실 중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점만을 끌어들여서 그것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이러한 인물들의 행동을 현대 사회에 비춰보자면, 특정 계층의 ‘입’의 역할을 하는 일부 언론을 떠올릴 수 있다. 언론은 특정한 사실을 자신들의 시각을 통해 해석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여 진술하는 영화의 인물들과 닮아있다. 물론 언론의 궁극적 역할은 시민들의 건전한 여론 형성에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추악함만을 보여주는 3명의 등장인물들과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사실을 놓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언론사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때때로 진실을 은폐, 엄폐하는 경우도 발견한다. 즉, 등장인물들에게 나타난 이기적 면모가 우리 시대의 언론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다시 영화로 돌아가 봤을 때, 영화는 마지막 나무꾼의 이야기를 진실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나타낸다. 그것이 100% 진실이든 아니든, 나무꾼의 이야기가 가장 객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나무꾼은, 누가 범인이든지 자신에게 해가는 것이 없으며 단지 여자의 단검을 훔쳐간 것이 사실을 증언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뿐이다. 만일 나무꾼이 사실을 증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왜 3명의 관련자들이 자신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지, 자신들을 범인이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을 끌어들여 죄질을 순화시키려 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현대 사회에 적용시켜 봤을 때, 나무꾼을 현대 사회의 시민이라고 비유한다면 그의 ‘입’은 여론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객관적 타당성을 가진 여론은 편향된 언론에 의해 왜곡된 사실을 수정하고, 진실에 가까운 결론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