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읽고나서...막상 과제를 받고 백범 김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막상 그에대해 떠오르는 단어는 독립투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립자정도라고나 할까... 초등학교 때 위인전집과 고등학교 때 입시용으로 읽어 본 그의 일대기가 전부였고, 그 것마저 기억이 가물가물하였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집어 드는 순간까지도 왠지 모를 창피함이 몰려 왔다...그러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나는 과제라는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백범 김 구 라는 사람에게 점점 매료 되어갔다...처음 그가 이 책을 발간하는 목적에 대해서 말을 할 때 그의 신념과 그가 왜 이토록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가게 되었는지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그가 말 한 인용구를 빌리자면『 오늘날 우리의 현상으로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을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예전 동경(東京)을 우리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나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 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독립을 이루고 나서 두 가지 이데올로기에서 주체성을 찾지 못하던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문구였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독립을 하였으나 다시금 양 갈래로 갈라지는 대립을 보고 분통함을 느꼈을 림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또한 다른 문구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시체로 발등상을 삼아서 우리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자주 독립을 얼마나 갈구 했는지를 느꼈다...또한, 그가 그의 어린 두 아들 인(仁)과 신(信)에게 쓴 편지에서는 독립투사로서가 아닌 한사람의 아비로서의 모습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여느 다른 어린 아이와 같이 개구지고 장난도 많이 치는 모습이 보였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개구 지고 장난꾸러기였던 그도 점점 성장해 가면서 지금의 대범하고 비범한 모습으로서의 그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상놈과 양반이 아직까지 남아있던 시절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글 공부에 매진도 하고, 자기성찰을 배워 가는 모습에 가끔 철없던 그 나이 또래의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올라 조금 머슥해 지기도 하였다... 그가 마음을 다잡으며 읽었던 《마의성서》의한 구절인『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 얼굴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도 나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그는 심신의 중요성을 알고 삶에 매진한 것 같다...나중에 동학군이 되어 동학운동에 참여하여 군을 이끌었던 것도 훗날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그 후 큰 뜻을 품고 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그가 청으로 떠나게 된 계기는 그가 믿고 따르던 고 선생의 말이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청으로 떠났던 그가 처음으로 마주쳤던 중국 장교에게 보여 주었던 문구가 나에게도 괜한 울분을 일게 만들었다...『 통피왜적여아불공대천지수(痛彼倭敵與我不共戴天之讐) - 왜적과는 더불어 평생을 같이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다.』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을미사변 이 후의 그의 신념이라 글을 읽는 나또한 괜히 모를 울분이 올라왔다... 또한 단발령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이것 또한 반일감정에 의해 나왔다는 것에 다시금 알게 되었다...김구 또한 한 남자이기에 사랑얘기가 빠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한남자로서 흠모하고 연민하던 여인이 있음에 다시금 그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책을 읽으면서 스펙타클함을 느낄 수 있었던 왜인을 벌하는 구절에서는 나 또한 손에 담을 쥐게 하였다. 그의 용맹함과 굳은 의지에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만약 나라면과연 그처럼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내자신에게 들 정도였다.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된 그는 그를 보살피던 부모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마음에서 나 또한 울컥하였다.부모와 자식은 천천생(千千生)의 은애(恩愛)의 인연이란 말이 다시금 나로 하여금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젊은 시절 모진 고통에도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김 구의 기지는 제판을 받는 중에도 잘 나타났다.『 소위 만국공법 어느 조문에통상, 화친하는 조약을 맺고서 그 나라 임금이나 황후를 죽이라고 하였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감히 우리국모 폐하를 살해아였느냐. 내가 살아서는 이 몸을 가지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맹세코 너희 임금을 죽이고 너희 왜놈들을 씨도 없이 다없이 해서 우리 나라의 치욕을 씻고야 말 것이다.』이 구절에서 난 속 시원함과 그의 대한 존경심이 다시금 생겨나게 되었다... 재판장에 서게 되면 누구나 떨리고 겁을 먹게 돼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말함으로서 왜에게 큰 경각심을 주었다.그 후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범한 모습과 남을 더 배려하는 모습, 또 큰 뜻을 위하여 위험을 무릎 쓰고 탈옥하는 장면에서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특히 탈옥을 하기 위해 위트와 재치를 발하는 대목에서는 참으로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 후 그가 겪은 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겪을 수 없는 격동의 인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속세를 떠나 스님도 되어 전국을 유랑하면서 아마도 그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에 더 빠져 들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조국의 독립에 혼신의 힘을 가했는지도 모르겠다. 도산의 동생과 결혼할 뻔도 하고, 부친을 잃은 슬픔에 허망함을 보내기도 하고, 약혼녀의 죽음으로 망연자실도 한 그의 모습에 참 백범의 인생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리 평탄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결혼을 한 백범의 모습에서 한 남자의 진한 향기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상권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다시금 김 구의 용맹함과 굴하지 않는 그의 의지에 감탄하게 되었다.을사 신 조약으로 인해 독립의 큰 뜻을 품고 계몽의 길로 들어선 그... 하지만 여전히 조여 오는 일본의 그림자... 결국 지식인말살 정책에 의거 하여 다시금 수감이 되어 모진 수모를 겪으면서도 일언반구 말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이미 독립투사를 넘어선 한 대한민국의 수장이었다.수감 전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그가 외친 말.『 양반도 깨어나라, 상놈도 깨어라. 삼천리 강토와 2000만 동포에게 충성을 다하라 』이 문구는 필시 독립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약속 이었는지도 모르겠다.그는 수감중에도 기지가 여전하여『나의 목숨은 너희가 빼앗아도 나의정신은 너희가 빼앗지 못하리라.』그 어떤 강심장이라도 할 수 없는 말을 하여 동지들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게 한 행동을 보아도 그는 독립의 의지는 물론 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였던 것 같다. 그 후 그는 임시정부를 세우고 대한민국이라 지칭을 한다. 민국 5년에 내무총장을 거쳐 민국 8년 12월에는 국무령이 되어 대한민국의 원수가 된다.상권에서서 본 그의 일대기는 여느 다른 독립투사와는 다르게 참 인간적인 면이 많이 베어 있었다. 자기를 하양하면 쓴 그의 자서전적인 일대기를 보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라의 독립에 힘쓰느라 늘 뒷전이었을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베어 나오는 글에선 그도 한 가정의 금쪽같은 자식이요, 한사람의 지아비요, 한사람의 아버지라는 것을 느끼면서 막연히 이름만 알고 있던 백범 김 구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14년 후에 쓴 하권에서는 3.1 운동 이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3.1운동 이 후 제대로 된 정부 수립에 몰두하여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엔 안창호, 경무국장엔 김구가 내정되어 정부를 다스렸다. 경무국장으로서 왜 활동을 감시하는부분에서는 그의 지략도 느낄 수 있었다.임시정부 내에서도 그 당시 공산주의와 데모크라시(Democracy)의 대립은 여전하였던 것에 그가 한 말이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 독립운동은 우리 대한민족의 독자운동이요, 어느 제3자의 지도나 명령에 지배되는 것은남에게 의존하는 것이니 우리 임시정부 헌장에 위반되오. 총리가 이런 말씀을 하심은 대불가니 나는 선생의 지도를 받을 수가 없고, 또 선생께 자중하시기를 권고하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파로 갈라져 임시정부에 위기가 왔을 때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그후 김구의 국무령 취임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 듯 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다시 위기가 왔을 때는 존폐위기까지 갔다는 점이 안타까웠다.여러 의사들을 동원하여 일왕 저격 등의 행동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그가 얼마나 독립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