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식의 힘 -사람은 누구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의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적인 것에 의존하여 살아가며 무의식적인 것에는 그냥 그런것이 있다는 것을 알 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는데 그렇게 영향을 끼친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DVD를 보면서 무의식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우리의 전체 의식중에 5%에 해당하고 95%정도가 무의식이라고 한다. DVD에서는 몇가지 실험을 통해 무의식을 증명했는데 인상깊었던 몇가지가 있었다.먼저 꿈에 대한 실험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실험자들을 모아 한군데서 잠을 자게 하고 잠들기 직전 무슨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면 실험자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정말로 그것에 관한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사람에게 물을 떨어뜨리면 그 사람의 꿈속에 물이 나타난다.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다 무의식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예는 평범한 사람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어 필자의 경우도 어릴적 꿈을 꿀 때 꿈 속에 물이 나오면 항상 이불에 소변을 보고 혼나곤 했었다.두 번째 실험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바로 사람이 높이에 대해 느끼는 공포에 대해 실험을 하였다. 사람들을 난간이 없는 공사장벼랑 끝에 서게 했을 경우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은 높은곳에서 떨어져본적도 다친적도 없는데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듯이 똑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것도 무의식의 영향이라고 했다. 인간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높은곳에서 떨어져 보고 다쳐보면서 그 무의식적인 성향이 우리인간의 유전자에 남아 현재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의 높이에 대한 공포는 기본적으로 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며 어떤일을 겪었느냐에 따라 그 강도가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앞으로 현재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공포에 대해서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무의식 적인 공포가 나타날지 궁금하다.세 번 째 실험은 동영상 속에 어떠한 사물 그림을 순간적으로 보여주고 사람이 그것을 인식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실험을 하였다. 이 실험에서 동영상속에 어떠한 화분 그림을 아주 순간적으로 정말 의식적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지나가게 하고 사람이 그것을 느끼는지 물어보았을 때 사람은 무엇인가 지나가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그 화분의 그림을 포함한 여러 개의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실험자는 다른 그림보다 그 화분그림에 대해서 더 많이 인식하였다. 바로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보면서 무의식을 이용하면 인간의 능력은 무한해 질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이 화분그림을 인식했다는 것은 우리의 인체가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되고 그 능력은 무의식을 이용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훗날 누군가 이런 무의식적인 힘을 이용해서 우리의 인체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빌게이츠에 버금가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다음에 DVD에서는 무의식이 신체에 어떤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먼저 치통을 앓고 있는 어떤 아주머니가 나왔다. 이 아주머니는 어떤 병원을 가도 치통이 전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로 언니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 때문이었다.의식에서는 언니에 대한 상실감을 치유했지만 무의식에서는 상실감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에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정신적인 치료를 거치자 아주머니의 치통은 금새 사라졌다. 이 아주머니는 무의식적인 이런 상실감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주머니의 사례를 보면서 왜 할아버지 할머니 중에 한분이 돌아가시면 남아계신 한분의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는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는 어떤 기자의 사례였다. 이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 손바닥에 이상한 피부질환이 생기고 호흡곤란이 생기기도 하는데 잘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기자의 경우는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압박과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신체에 나타난 경우였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치료를 거쳐서 기자의 병은 완치될 수 있었다.또 하나의 예가 나왔는데 평범한 직장인 아저씨의 이야기였다. 이 아저씨의 경우는 자신이 잘 자라왔고 착하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밀고 싶고 자꾸만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진다고 하였다. 상담을 해보니 아저씨의 경우는 어렸을 적 받은 심리적인 상처가 잠재되어 있다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 아저씨도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끌어냄으로써 치료할 수 있었다. 요즘 아침 TV를 보면 이런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문제를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 이 아저씨와 같이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거나 학교에서 심하게 맞거나 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나 나중엔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신상담을 통해 쉽게 극복하지만 정도가 심한 아이는 치료조차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어렸을 적에 엄한 일을 당한적은 없지만 이런 성향이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되도록 빨리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이오매스에 대하여서론-바이오매스의 정의본론-바이오매스를 만드는 방법-바이오에너지 사용하고 있는곳과 방법-바이오매스의 장점-바이오매스의 단점결론- 최근 근황과 앞으로 개선할점산업화가 가속화 됨에 따라 지구자원의 고갈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위기감을 느낀 인류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기 시작했고 그 새로운 에너지원중 하나가 바이오매스이다.바이오매스는 에너지 전용의 작물과 나무, 농산품과 사료작물, 농작 폐기물과 찌꺼기, 임산 폐기물과 부스러기, 수초, 동물의 배설물, 도시 쓰레기, 그리고 여타의 폐기물에서 추출된 재생가능한 유기 물질로 현재 에너지원으로 쓰여지고 있는 목재, 식물, 농·임산 부산물, 도시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 내의 유기 성분등을 일컫는다. 즉 태양광을 이용하여 광합성되는 유기물(주로 식물체) 및 동 유기물을 소비하여 생성되는 모든 생물 유기체를 바이오 매스라고 한다.그리고 여기서 얻어낸 에너지를 바이오 에너지라고 한다. 우리가 예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인간에게 해가 되고 자연파괴의 주범이라고 여겻었던 그런 것들을 21세기에서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다..그럼 바이오 매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먼저,바이오매스를 통해 바이오 에너지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이오 매스를 통해 바이오 얻기 위해서는 생화학 변환,광생물학 변환, 열화학 변환 중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른 여러 과정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 세 가지 과정만 다루도록 하겠다.먼저 생화학 변환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자.생화학 반응에는 효소나 미생물이 이용된다.효소나 미생물은 촉매제 작용을 하고 당을 에탄올로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주로 보리나 옥수수 같은 전분 작물에서 에너지를 얻을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광생물학 변환은 말 그래도 빛을 이용하여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것인데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이용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녹조류가 물과 태양광으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있다. 세 번째 방법은 열화학 변환과정인데 이 과정에서는 지공상태에서 바이오매스를 고온에 노출시켜 분해시킴 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다음사진은 바이오 에너지 종류별 변환원리를 나타낸 것이다.(출처:http://www.knrec.or.kr/->에너지 관리공단)그럼 이렇게 얻어낸 바이오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것인가?이렇게 얻어낸 바이오 에너지는 우리 생활의 여러부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에탄올과 메탄올은 각종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말할수 없이 많은 곳에 쓰이고 있다.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얻어낸 열과 전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직까지는 큰 부분을 차지 하지는 못하지만 열난방, 가스난방, 부탄가스,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생활을 도와주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매스를 통해 얻어낸 에너지를 자동차 연료로 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이제 바이오 에너지를 이용했을때의 장점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먼저,페기물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파괴를 막는다. 과거에는 항상 환경오염으로 말썽을 부렸던 페기물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영향력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대기오염의 한부분을 차지했던 메탄가스, 토양오염의 주범이었던 각종 페기물등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바이오 매스야 말로 진정한 그린피스가 아닌가 싶다.두 번째, 에너지 수입 대체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모든 에너지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게 정말 필요한 것, 바로 자체 생산이 가능한 대체에너지이다.특히 요즘과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더욱더 이 점을 눈여겨 볼만 하겠다.그 한 예로 주식회사 에코에너지(http://www.ecoenergyholdings.com)에 따르면 ‘수도권 MFG 50mw자원화사업‘ 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이 사업에서는 바이오매스를 통해 년간 64만배럴의 중유 수입을 대체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한다.세 번째,생성에너지의 형태가 다양하다.위의 바이오 매스를 얻는 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바이오 매스를 이용하여 얻는 에너지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만큼 그 활용도가 높다는 말이다. 가스는 일반 가정용 가스나 부탄가스에 이용되고, 전력은 우리의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를 제공해주며, 천연화학물은 여러 가지 분야에 응용되어 사용된다.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바이오매스에는 단점이 없을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것이라도 단점은 있기 나름이다.첫째,자원이 흩어져 있어 원료수거.처리비용이 크다. 바이오매스는 각종 유기물과 유기물에서 파생된 페기물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페기물과 유기물들이 어느 한 장소에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폐기물들을 공장까지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다. 각지에서 발생한 페기물과 유기물들을 바이오매스 공장으로 수송하는데 드는 수송비용이 많이 든다.둘째, 에너지량에 비해 공장설치비용 및 처리비용이 많이 든다. 바이오매스는 환경오염도 막아주고 에너지도 생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발생하는 에너지의 양에 비해 초기에 공장을 세울 때 막대한 자본이 소비되고, 그 페기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과도한 비용이 사용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서울도시계획이야기3권 1장-능동골프장이 어린이 대공원으로- 를 읽고어린이 공원 설립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부분이다. 굳이 어린이공원에 관한 내용을 택한 것은 어렸을 때도 가보았던 기억이 있고 지금도 여자친구의 집이 아차산(어린이대공원 후문)이어서 자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지금은 어린이대공원이 어떻게 어린이 대공원이 되었는지 , 그 과정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이 대공원이 만들어지기 까지 과정을 살펴본다.먼저 어린이 대공원은 골프장이 대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대공원의 건설과정을 알기 위해 어떻게 골프장이 생겼는지가 설명이 나와 있었다. 1949년 정부수립 1주년 기념축하연이 베풀어졌을 때 주한미국장성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요즘은 휴일을 어떻게 지내느냐’라고 묻자 미국장성들이 ‘한국에서는 골프코스가 없어서 군용기를 타고 일본이나 오키나와에 가서 골프를 치고 온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이 대통령은 총무처장에게 골프코스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능동 골프장 답사가 끝난지 한달이 안되어 6.25전쟁이 터지고 계획은 무산된다. 6.25전쟁이 끝난 후 이 대통령은 다시 외자관리처 처장에서 골프장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당시 전쟁직후 우리나라는 굉장히 어려웠다.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 이었을 텐데 왜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골프장을 고집했는지 나는 의문이 든다. 골프장은 사단법인 서울컨트리클럽이 주도하게 된다. 건설과정 중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바로 골프장을 건설하는데 한국일보에서 그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용감한 개척자‘ 라고 표현한 내용이다. 왜 건설만 하는데 용감한가는 다음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불도저도 없었고 잔디씨도 없었고, 잔디를 깍는 기계도 없었다. 불요불급한 것은 수입이 금지 되었던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각나라의 장성급들에게 부탁을 해 저것들을 밀수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걸렸다면 당시에는 정말 뼈도 못추릴 일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우 바로 컨트리클럽 회원들의 재력이었다. 골프장이 개설되고 나서 15년 동안 잘 지내다가 서울시국유지였던 능동의 값을 지불하라고 하자 클럽 회원들이 1960년대 당시 50명이 500만원씩 은행에서 7억대출을 받고, 신규회원들에게 150만원씩을 걷어서 총 10억5천만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10억이라고 하면 지금도 굉장한 금액이다. 하지만 당시에 100명도 안되는 인원이 순식간에 10억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골프장 건설내용이 끝나고부터 본격적으로 대공원 건설 에피소드가 전개되었다. 골프장이 어린이 대공원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골프장을 드나들던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 칼을 던진다는 소리를 듣고 골프장을 다른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와..어떻게 우리나라의 유명인사 들한테 칼을 던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됐다. 골프장에는 담장이 없다. 그래서 고위급 사람들이 여유롭게 골프를 치는 모습을 동네주민들 모두가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 전쟁 직후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자기들은 삼시 세끼를 고민해가며 살아가는데 골프를 치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싫었을지 예상이 된다. 어쨌든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명령한 것은 단지 주민들이 칼을 던져서라는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이건 지극히 작가의 의견이다.)첫 번째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체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박 대통령에게 권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시간의 여유도 잇는 계층이 골프를 치며 한가롭게 지내는 모습은 혐오감이 들게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당시에 새마을 운동이 진행중이었다.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 운동이 한창 진행중일 때 사치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골프장은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 였을 것이다. 이렇게 두가지 이유로 박정. 박정희 대통령은 사범대학교를 나와 초등학교를 지내서 인지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역시 어린이도서실을 만들고, 어린이 회관을 만들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후로 해서 1970 12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장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어린이 대공원을 설립하라고 명한다.골프장이전지시 가 있은 후 진행은 순조롭게 진행 될것 같았지만 난관에 부딕힌다. 당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서울컨트리클럽의 회원들은 모두 자기의 돈을 내고 골프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골프장이전에 적극협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협상은 계속 결렬되었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고서 1년이 지난 뒤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로써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독재정권이라는 것이 이래서 무섭구나 하는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약 1300명 가까이 되는 국내 유명인사들이 소유한 골프장을 말 한마디에 옮기려고 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힘들긴 하지만 실행되었다는 사실도 굉장히 놀라웠다. 박정희 대통령 ....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골프장 이전 명령 이후 가장 궁지에 몰린것은 양택식 서울시장 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서울시청을 직접방문해 서울시가 골프장을 직접인수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의 예산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골프장을 인수하라는 명령은 정말 거절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하자니 방법이 없는 그런 난감한 명령이었다. 양시장은 궁리 끝에 서울신탁은행장 김진흥 행장에게 찾아가 21만 3천평중 북쪽 9만 3천평을 25억원에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몇 번의 부탁에도 김 행장은 이를 거절했다. 김 행장도 서울컨트리클럽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에는 김 행장이 이 조건을 수락했다고 한다. 바로 박종규 경호실장의 힘이었다. 양시장의 부탁을 김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나와선 그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사실 제 2인자나 마찬가지 였는데 그 경호실장 중에도 박종규 경호실장은 보통의 스케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경호실장과 은행장과의 대화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계약은 체결 되었고, 신탁은행이 9만3천평의 부지를 인수하게 되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그 경호실장을 꼭 만나보고 싶다. 사람이 대체 얼마나 강한 파격적이길래 작가가 보통의 스케일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그 사람이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런 카리스마와 힘을 느껴보고 싶다. 21년간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그런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중에라도 한번 꼭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다. 그렇게 9만평이 인수되고 12만평을 기증 받으면서 서울시는 어린이 대공원 건설을 시작한다. 후에 김종필 국회의원이 9만평역시 서울시가 인수하라고 명하면서 9만평역시 서울의 땅이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자부심을 느꼇다. 바로 김종필 총리 때문이었는데 내가 나온 공주고등학교 선배님이시기 때문이다. 김종필 총리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를 찾아와 거액의 장학금을 주고 가셨다. 지금도 김종필 총리가 들어올 때의 장면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관악부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김종필 총리가 타고 있는 차가 교문에 들어서길 기다렸다가 들어섬과 동시에 빵빠레를 울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이 사람이 그냥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왠지모르게 자부심이 늘고 애교심이 생기는 부분이었다.어린이 대공원 건설이 본격화 된 것은 1971년 4월 중순이었다. 양택식 시장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분야의 거물 급들이 나서서 어린이 대공원 건립을 추진했다.주요 계획을 세우고 각계인사들에게 그 책임을 맡기고 공사준비를 시작하였다.1972년 11월 3일 금요일 대통령 영부인과 남녀 두 어린이의 첫 삽질을 시작으로 시공이 시작 했고, 양시장은 180일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대공원을 여러개로 나누고 각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와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 시공을 맡았다. 여기서 권위와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정말로 우리나라 각 분야의 역사서에 자주 얼굴을 들이내밀 정도의 유명인사들이었다고 한다. 이 유명인사들은 거의 무보수로 이 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돈 보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대공원 건립에 참여한다는 대에 의의를 둔 것 같았다. 정말 나도 나중에는 이렇게 뜻깊은 일을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이런 봉사 정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서울시의 재정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최악의 재정상태에서 대규모 공원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양시장은 입장이 난처해지자 구걸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삼성,현대, 삼양사, 럭키그룹 등 당대 대기업과 내놓으라는 기업의 총수들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총수들은 작지 않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돈을 내어 주었다. 대공원에 있는 벤치, 음수대, 화징실, 분수대의 동상 등은 다 이런 기증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지금도 유명한 어린이대공원의 벚꽃축제는 제일교포가 벚꽃묘목을 3500주나 기증하면서 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각계인사들의 기증이야기와 무엇을 기증했는지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어린이 대공원이 각 계의 성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나는 여기서 가장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야 할 사람은 양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어린이대공원 입지 확보에서부터 자금확보까지 물신양면으로 일을 한 양시장이야 말로 진정 대통령 표창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대공원은 또 건설당시 전국 곳곳에서 조금씩 성금을 받아서 건설 될 수 있었다. 어린이 대공원은 이런 각 계의 성원을 받아서 지어 졌다는대에 또 의의를 둘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공사는 180일간 철야작거둔다.
◆전쟁발발 배경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국민의 굴욕감과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항, 바이마르 공화국을 괴롭힌 사회 혼란 및 정치 불안은 극렬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를 지향하는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초래했다. 1933년에 독재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은밀히 독일을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유럽 강국들이 독일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주저하는 것을 이용하여, 히틀러는 1936년 3월에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라인란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1936년말 이미 에티오피아에서 침략행위에 들어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와 베를린을 잇는 '추축'을 선언했다. 이듬해 이탈리아는 독일과 일본이 1936년에 맺은 반(反)코민테른 협정에 참여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1936년부터 스페인 내란에 개입했다.1938년 3월 히틀러는 독일군을 보내 오스트리아를 점령했고, 오스트리아는 당장 독일에 병합되었다. 1939년초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점령하기로 결심했다. 폴란드는 독일이 공격해올 경우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원조를 보장받고 있었지만 히틀러는 어떻게 해서든 폴란드를 침략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련이 서쪽의 인접국가가 침략당하는 것에 반발할 가능성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 히틀러는 소련과 비밀협상을 벌여, 8월 23~24일에 모스크바에서 독일·소련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동서로 나누어, 폴란드 영토의 1/3에 해당하는 서부를 독일이 갖고 나머지 2/3에 해당하는 동부를 소련이 접수한다는 데 합의했다. 8월 25일에 영국과 폴란드가 정식으로 상호원조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을 며칠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제지하려는 서양 열강의 외교적 노력을 무시하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1939년 8월 31일 낮 12시 40분, 마침내 히틀러는 이튿날 새벽 4시 45분에 폴란드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침공은 명령대로 시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남방작전 이전에 미국 태평양 함대를 먼저 공격해두지 않으면 남방작전 내내 두고두고 골치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야마모토 제독의 주장은 일본군 수뇌부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고, 어디까지나 대구경 함포를 장착한 전함이 해군의 주력이라는 사상을 지녔던 다른 제독들도 반대 의사를 표시하였다. 하지만 야마모토 제독이 강한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에 결국 수뇌부는 남방작전과 동시에 진주만 공습을 실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일본이 진주만 공습에 앞서 연구한 것은 바로 영국군이 실시한 이탈리아의 타란토 공습이었다. 그 결과 진주만과 타란토의 조건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어뢰를 통한 공격이 가능하며 400기 정도의 항공기와 숙련된 조종사만 동원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해군의 조종사들은 여름부터 철갑탄을 이용한 폭격과 뇌격훈련에 돌입하였다. 더불어 진주만의 지형을 그대로 옮긴 모형을 보여주면서 지형을 익히도록 하였으며, 정확하게 미국의 전함과 항공모함을 식별할 수 있는 훈련도 병행하였다.이와 동시에 일본군 정보계통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태평양 함대의 정보를 수집하였다. 하와이에는 첩보원이 상주하여 어느 장소에 항공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어느 군함이 어느 장소에 정박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전달되었다. 게다가 태평양 함대의 모든 군함이 토요일에 입항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가장 최적의 공격시간이 일요일 새벽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군 수뇌부는 1941년 11월 17일에 공격하기로 결정을 하였으나, 몇 가지 사정이 겹쳐서 결국 12월 7일이 최종적인 공격일로 확정되었다.작전일이 확정되자 야마모토 제독은 제 1 항공함대를 주축으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 지휘하는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조직하였다. 무엇보다 작전이 노출되면 안 되었기 때문에 11월 22일까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쿠릴 열도 부근의 히도카푸 만으로 집결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항해중에는 절대 무선교신을 해서 안 항로도 민간상선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 미국 정찰기가 비행하지 않는 곳 위주로 선정되어 이동하였으며, 선박이 배출하는 배기가스로 인해 발각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군함의 연료로 경유를 사용[1]하는 철두철미함을 선보였다공습12월 7일 새벽 일본함대는 하와이에서 북서쪽 370km 해상에 도착하였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일본군은 공격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이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는 최신 정보를 수령하고 나구모 제독은 미국이 공습을 눈치채고 항공모함을 배치한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당시 일본군은 태평양 함대에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렉싱턴, 새러토가가 소속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당시 요크타운은 대서양에 가 있었고, 새러토가는 당시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 정비를 받고 있었으며, 렉싱턴은 미드웨이 섬에 전투기 셔틀하러 간 상황이었으며, 엔터프라이즈는 웨이크 섬에 전투기 셔틀하고 막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미국 항공모함의 정보를 확인한 후에 움직일 정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구모 제독은 공격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1차 공격대가 이륙하였다. 그리고 한 시간 후 2차 공격대가 준비를 마치고 이륙하였다.당시 태평양 함대는 일본군의 공격을 눈치챌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우선 일본군은 잠수정(2인승 5척)을 파견하여 항공대의 공습작전에 호응하여 어뢰 몇 발쏘고 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척은 좌초했고 최소 2척이 공습이 시작되기 전 진주만에 접근하다가 초계중이던 구축함에 걸려서 꼬르륵. 하지만 사령부에서 보고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판단하는 바람에 1차 기회를 날려먹었다.두 번째는 당시 진주만에 갓 설치한 레이더였다. 당시 레이더 병들은 무수히 많은 점이 북서쪽에서 다가오는 장면이 포착된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보고를 하였지만, 때마침 미 본토에서 B-17 폭격기 편대가 오고 있었으므로 그들일 것으로 판단한 상황실 선에서 무시되었다.[5] 결국 마지막 기회도 날려먹었다.덕분에 일본군은 별다른 저항없이 진주만에 있음에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으며[7], 폭탄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일본군의 공격을 인지하고 반격에 나섰다. 포드 섬 항공기지가 제일 먼저 폭탄에 얻어맞았으며, 곧 포드섬 인근에 정박중인 전함들이 폭탄과 어뢰를 얻어맞았다. 이때 해군 항공대 참모 램지 중령은 방송실로 뛰어 들어가 총원전투배치(General quarters) 신호와 함께 훗날 역사적으로도 유명해진 "진주만 공습. 이건 연습이 아니다.(Air raid Pearl Harbor. This is not drill)"를 방송으로 내보낸다. 이 말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된다.제일 먼저 어뢰를 얻어맞은 BB-37 오클라호마는 20분만에 전복당했으며, BB-48 웨스트 버지니아도 먼지나게 두들겨 맞고 침몰중이었다. BB-43 테네시, BB-44 캘리포니아, BB-46 메릴랜드 등도 각각 폭탄과 어뢰를 얻어맞고 떡실신당했다. 그나마 BB-36 네바다만큼은 분전하고 있었다. 어뢰 한 발이 명중되었지만 신속한 조치로 피해확산을 막았으며, 필사적으로 응전하면서 어떻게든 진주만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배가 탈출하다가 수로상에서 격침되거나 좌초할 경우 오히려 진주만으로 드나드는 진입로를 봉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탈출을 포기하였으며, 여기저기 두들겨맞고 좌초되었지만 결국 항구의 봉쇄는 면했다. 실제로 일본군은 항구의 봉쇄를 노리고, 진주만을 탈출하려는 네바다에게 급강하폭격기를 집중시켰으므로 네바다의 판단은 매우 적절했다.더불어 진주만 공습의 상징이 되어버린 BB-39 애리조나도 이 무렵 먼지나도록 두드려맞고 있었는데, 철갑탄이 하필이면 영 좋지 못한 탄약고에서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요단강을 건너버렸다.전함들 이외에도 순양함, 구축함 여러 척이 피를 봤으며, 주요 항공기지들도 공습을 당해서 많은 비행기를 잃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무사한 몇몇 기지에서 항공기를 날려보내기는 했지만 숫적열세로 인해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격추당했으며, 이미 정신줄을 놔버린처리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죄다 어디갔는지 알 수 없었던 관계로 1차 공격대가 처리하지 못한 잔여 함선과 비행장을 공격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 무렵 미군은 이미 한 차례 공격을 받았으므로 운용가능한 전투기도 이륙시키고 대공포도 쏘아재끼면서 맹렬히 대응하였고, 그 결과 예정된 목표물들은 공격하지 못하고 공격 가능한 임의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여담으로 당시 서쪽에서 접근중이던 엔터프라이즈는 남쪽을 수색하여 일본함대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는 일본항공기가 남서쪽에서 접근했기 때문인데 정작 일본해군은 북서쪽에 있었던 관계로 실패.한편 일본함대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에 기뻐하고 있었으며, 3차 공격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 2 항공전대를 이끌던 야마구치 다몬소장과 몇몇 참모, 조종사들은 3차 공격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으나 나구모 제독은 미국이 대비를 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피해가 증가할 것이란 점과 미국 항공모함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공격중지를 결정하였다. 모든 항모가 출항해 있다는 점으로 보건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대실패가 된다. 나구모로서는 도상 연습에서 일본 함대에도 반수의 피해가 나올거라는 결과도 있었고 야마모토 이외의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반대하는 작전의 결과로는 함정 피해없는, 이 정도의 전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군령부에서 진주만 기습 계획을 계속 반려하자 야마모토는 사령장관을 사퇴하겠다며 반 협박으로 겨우 승인을 얻어냈다. 사실 항공부대 지휘 경험이 전무한 나구모가 기습함대 사령관으로 오른 것도 그가 해군에서 손꼽하는 조함 전문가라는 이유였다. 요는 작전은 실패하더라도 배는 어떻게든 살려 오라고 임명했던 것.나구모 제독의 지시에 따라 일본함대가 신속하게 퇴각하면서 진주만 공습은 종료되었다. 이 결정이 알려지자 일본 연합함대 사령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참에 태평양 함대를 완전히 궤멸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야마모토 제독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려야된다고 진언하6척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이하 상상력엔진)라는 책은 큰 파트 속에 작은 파트로 나누어져 있어 주제별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굉장히 많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주제별로 그림들이 소개되고 그 그림을 설명하고, 거기서 교훈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진이 있어서 자칫하면 지루해 질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이 멈춰져있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흥미진진했다.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곳도 있고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간 부분도 있었는데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먼저 ‘치열함이 없으면 젊음이 아니다’라는 부분이다. 처음에 제목을 읽었을 때부터 가슴 한구석이 뭔가 뜨끔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뜨끔한 이유는 아직 나의 젊음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해봐야 얼마나 치열하겠어 , 다 똑같겟지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곧 숙연해졌다.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부끄러웠다. 치열함이 없으면 젊음이 아니다라는 부분에서는 스티브잡스라는 애플컴퓨터CEO 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이 나온다. 잠시 스티브잡스가 했던 연설의 내용을 말하자면 그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 대학을 다니다가 대학에서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수업을 들으면서 양부모의 재산을 쓰는 것이 너무 싫어서 자퇴를 하게 된다. 자퇴를 하면서도 스티브잡스는 자신감에 차고 확신에 차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퇴 후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과목들을 청강하며 공부를 했고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거대한 회사를 세운다. 회사가 커지고 나자 회사에서 퇴출을 당하게 되는데 스티브잡스는 여기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회사를 새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좌절할만도 한데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 대단해보였다.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이렇게 계속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한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과연 내가 지금 서울시립대학교를 2년 째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좋아하는 일조차 찾지 못하고 뭐하는 건가, 이대로 세월이 지나면 과연 난 뭐가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어떻게 수능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오긴 왔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직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한참을 그렇게 좌절하고 나서 다시 책을 열었고 공교롭게도 이 책의 다음 주제는 'HOPE'였다. 마치 내가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 것 이란걸 예상이라도 한 듯이 바로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부분에서 앞에서 겪었던 절망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스나미 폐허속에서 자라나는 나무를 보며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또 인상깊엇던 부분은 ‘당신의 무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의 파트였다. 나무와 연필을 이용하여 무기를 만든 isidro ferrer의 작품을 보여주며 시작한 이 부분에서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무기를 개발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구성 되어 있다. 38선,사오정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평생직장이 없어지고 날이 갈수록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자기의 무기를 적어보라고 준 여백을 난 채우지 못했다. 5개정도 되는 빈칸을 보며 이 정도는 채울 수 있겠지 했는데 막상 적어보니 3개정도 밖에 적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개발하지 않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토익만 잘하면, 학점만 잘 받아놓으면 나중에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이 책에서는 남들이 다 하는 토익,학점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책을 다시 볼 때는 빈칸 5개를 정말 알차게 채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읽는 내내 웃음을 짓게 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저녁은 찾아오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는 파트였다. 처음 시작은 폐타이어를 싣고 가다가 바퀴가 펑크가 나서 당황해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과, 페인트칠 완성단계에서 개가 그것을 밟고 지나가자 어의없어하며 개를 쳐다보는 노농자의 모습, 그리고 너무 많은 짐을 옮기다가 위기에 처한 어느 알바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진을 보면 굉장히 당황스럽고 어의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다면 누구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일을 겪어도 저녁은 오니까 술 한잔에 털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유명한 노래가사가 있다.‘새파랗게 젊은것도 한 밑천인데~...내일은 해가 뜬다~내일은 해가 뜬다~’ 작가는 이 노래를 예를 들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순간을 참으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새파랗게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길지 않음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젊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재산이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전해볼 수 있고,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했지만 끝부분에서는 왠지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새파랗게 젊은 것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젊음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실천이 쉽지가 않다.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젊다는 이유로 놀고 먹기만 했지 , 무언가 도전해보려고 한건 없는 것 같다. 입시가 인생을 결정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는 그 이유가 수능시험 이후로 목표를 잃어버린대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상상력 엔진에서는 교훈적인 내용 뿐 아니라 책 제목에 걸맞게 상상력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주로 광고나 우리 일상속의 디자인들을 놓고 이야기 했는데 기발한 것들이 많아서 흥미진진했다. 그 중 ‘제대로 지워내는 일도 훌륭한 아이디어다 ’라는 파트가 인상깊었다. 처음 사진에 뒤통수가 큰 CRT모니터를 보여주고 그 뒤를 지워 LCD모니터를 만드는 것과 전화기의 선을 없애 무선 전화기를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ideas appear with pencil and eraser 라는 멋진 문구로 아이디어라는 것이 새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완하고 지워내서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것도 중요한 것임을 설명한다. 세계적인 연필회사의 예를 들어 지워내고 버림으로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결과가 굉장히 좋다. 지워내다 보면 사물이 단순해 지고 거기서 단순함이 주는 매력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역시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 복잡한 생각을 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해 질 때 하나하나 지워나가다 보면 생각의 방향도 정해지고 복잡했던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디자인이란 것이 머리를 짜내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만 되는 것 인줄 알고 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LCD모니터도 새로운 발견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지우는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잘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잘 지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