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돈과 명성을 모두 움켜진 예술가는 드물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앤디 워홀이다. 그렇다면 과연 앤디 워홀에 대해 시대를 앞서 간 위대한 미술가로 평가할 것 인가? 아니면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로 볼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나는 둘 다라고 말하고 싶다. 평면 조형시간에 디자인의 분류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던 중 김의나 교수님께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이것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즉 예술가이면서 사업가여야 합니다. 현대에 와서 디자인의 폭은 넓어졌고, 소비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역할이 새로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만의 자질만 가지고 있거나, 혹은 작품을 사업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업가, 이 두 유형은 절대 예술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말이 앤디 워홀을 나타내는 것 아닐까?그는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노동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인 피츠버그의 카네기 공과대학를 졸업하고 상업 디자이너로 출발하여 타고난 예술적 재능, 성공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후원 덕분에 60년대 팝아트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미술, 영화, 저널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구보다도 많은 부와 명성을 쌓았다. 그는 뉴욕의 화려한 광고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누구보다도 ‘순수’예술가로 인정받길 바랐다. 그는 추상표현주의가 지나간 60년대 초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작품의 주제와 스타일을 찾는데 골몰했다. 워홀이 택한 것은 바로 미국 일상의 풍요로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민 온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워홀은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백화점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감동 받고 미국 소비사회의 본성을 이해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일생동안 돈에 강하게 집착했으며, 그에 대한 욕구를 숨기지도 않았는데, 그의 돈에 대한 집착은 그의 작품 ‘달러 사인’에서도 잘 나타난다. 워홀은 돈을 상징하는 화폐 기호만을 거대한 크기로 그려, 돈을 신격화시키고 있다.그는 광고 디자이너 시기에 사치스러운 상품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장식할 것인지, 즉 일상의 풍요로움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몰두하게 된다. 결국 찾아 낸 것이 실크스크린이다. 그는 와 를 판화기법의 하나인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것을 시작해서 과 같은 익숙한 이미지, , 등과 같은 스타 이미지를 닥치는 대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했다. 이들 작품 덕분에 워홀의 작품은 미술계에 순조롭게 진입할 수 있었고,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을 바탕으로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에서 조수들과 함께 대량생산하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미술의 본질이라고 여겨왔던 작품의 독창성과 유일성이라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게 되었고, 이러한 점 때문에 순수미술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그 후 1963년, 워홀은 첫 영화 을 촬영하였다. 1965년에는 영화 만드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회화와의 작별을 선언하였다. 1970년대부터 사교계나 정치계의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1972년 시리즈로 다시 회화 제작에 전념하였다. 워홀이 , , 등의 스타들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그 배우들의 성적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미국의 성공 신화의 화신이었고 워홀은 그것을 실크 스크린의 방식으로 확고하게 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워홀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대중 스타와 상품의 이미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실크스크린이라는 상업미술의 기법을 과감히 사용했다. 그는 그 기법을 이용해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그의 팝아트는 미술의 정체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 미술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야기했고, 그 결과 순수 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미 알고 있듯이 워홀은 명성과 돈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60년대 중반 이후 미술사적 의미는 퇴색했지만 워홀은 꽃과 추상화, 인물 등 새로운 주제를 채택하였으며, 실크스크린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 주제에 따라 다양한 표현 기법을 첨가하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작품들 하나하나에서는 워홀의 번득이는 색채 조합과 그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