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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렴계, 장횡거, 주자의 사상 정리
    주렴계대자연과 융합하여 일체가 되려는 인생 포부애련설에서 드러나는 도가의 은일을 거부하고 세속의 부귀또한 거부하였다. 그는 결국 연꽃의 중정한 군자의 기품을 칭송하였다. 모란은 부를 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속을 좆는 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유가적 인격 이상이 담겨있는 표현이었다.그의 관심사는 공자와 안연이 즐거워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후대 송명리학에서도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그것은 안연이 빈곤한데도 어찌 즐거울 수 있었는가 이다. 즉 공자와 안연이 즐거워 한 것은 인생의 이상인 동시에 이상적 경지의 문제이다. 이윤이 지향한 바를 지향하고 안연이 배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윤은 임금에의 충성, 백성에 은혜 즉, 선비의 외적 지향 목표이고 안연은 자아 수양의 대표 격 인물이다. 전자는 외왕이고 후자는 내성이다. 이러한 견해는 본체를 밝혀 작용에 도달한다는 당시의 말과 일치한다.주렴계는 인생의 목표에 있어 부를 추구하는 것과 고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는 큰 도랑이 있다고 보았다. 부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는 속인들의 생활 태도에 불과하다. 군자는 반드시 부귀에 대한 추구를 초탈해야 한다. 그것이 더욱 중대한 것이고, 부귀와 영달은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즉 안연이 누리는 즐거움은 그가 이미 부귀를 초탈한 인생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느낀 즐거움은 인생의 이해관계를 초탈하여 도달하게 된 내재적 행복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진심으로 도를 터득하는 것이다.부귀를 초탈하였으나 은일과도 달랐던 주돈이의 기품은 지극히 고명하면서도 중용적인 기품이었으며 당시에는 새로운 기풍이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속세를 떠나 산림 속에 은둔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경지는 윤리 관계 속에서 사회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때 실현되는 경지 였기에 도가와 불교에의 비판의 개조 역할을 한다. 이는 문장위주의 학문에도 대립하는 정신 방향이었다. 문장은 도구일 뿐이다. 뜻을 싣는.주렴계는 인생의 이상추구라는 측면에서극 : 아직 분화되지 않은 혼돈 상태로서의 근원물질무극 : 혼돈의 무한즉, 근원 물질 자체로서 태극은 형체가 없고 무한하다. 이것이 바로 무극이 태극이다.우주만물의 끊임없는 생성은 결국 모두 하나의 기에서 변화하여 나온 것이다. 태극의 원기가 분화하여 음과 양이 생성되고 거기서 오행이 생기며 만물이 나오는 것이 하나의 기가 각각 상이한 만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우주의 다양성 속에는 통일성이 들어있고 통일성은 차별성의 표현이다. 주렴계는 태극원기를 자연 현상의 무한한 다양성에 대한 통일적 기초로 삼았다. 그의 우주론은 일종의 기일원론이라 할 수 있다.안을 보면 태극의 운동이 양기를 낳고 정지가 음기를 낳는다. 는 것에 운동의 의미를 밝혔으며 근본적으로 우주가 운동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운동의 과정은 정과 동의 두 대립면이 교차하고 전화하는 것이다. 즉 동이 극하면 정이되고 정이 극하면 동이 된다는 물극필반의 원리를 내포한다. 어떤 운동 상태도 불변이 아니라는 것이다.우주의 근본은 음양 두기의 대립과 통일이다. 양은 주도적이고 음은 추종한다. 우주는 쉼과 그침이 없는 영원한 생성과 변화의 운동 중에 있다. 신 : 우주 만물의 운동에 내재하는 본성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묘한 공능 신은 정지 중에도 운동하고 운동 중에도 정지한다. 신은 단지 운동의 내재적 활력만을 제공할 뿐 그자신은 결코 눈에 보이는 형체적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움직이나 움직임이 없다.후대에도 고요하나 고요함이 없고 움직이나 움직임이 없다는 렴계의 말을 사상도식으로 삼아서 본체론, 심성론, 수양론의 동정의 문제 처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장재 장횡거불교 도교 비판->기본론창시, 중용중시우주적 가족주의가 그의 학문의 특성이다. 이는 현학과 유학의 종합이다. 그러나 그는 우주의 구조 속에서 인간을 연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확대하여 우주를 설명한다.우주는 거대한 기의 이합집산이다. 인간 또한 이와 같다. 그렇기에 천지의 구성요소가 곧 인간의 구성요소이다. 천지의 원리가 곧 인간의는 것을 안다면 무도 없다.우주의 구조는 세단계로 나뉜다. 태허기만물이다. 태허가 본체이고 만물은 허상에 불과하다. 즉, 태허와 기, 만물은 모두 동일한 실체(기)의 각기 다른 상태에 불과하다. 이를 구성하는 물질적 실체로서의 기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영원하다. 이에 따르면 기로 구성된 모든 것들은 그 형태가 일시적인 것이며 도교의 장생불사는 (영원) 허구다. 또한 우주에는 허공이 존재하지 못한다. 허공조차도 기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기는 실체로 영원히 동일하며 소멸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교의 공, 허의 교의는 모두 미망에 불과하다. 이가 바로 도교 불교의 비판이 되는 본체론이다. 유를 강조했다 (존재)장횡거의 허공은 곧 직접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지극히 성글고 엷은 기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러한 무형 무상의 태허상태를 횡거는 기의 본래적 존재 상태로 여겼고 이를 본체라 이름 지었다. 즉 태허는 본체다. 거기서 나아간 기는 태허의 기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잠시간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는 무한한 실체이며 거기에 유무 구별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거기에는 명암의 차이일 뿐 기로 들어차 있는 것이다. 형상은 모두 유이다. 유가 모두 형상이니 형상은 모두 기이다. 운동과 정지, 깊이와 넓이를 지닌 모든 현상도 전부 기라 할 수 있다.일물 양체는 모든 사물이 대립되는 두 측면을 갖는다는 내용을 가리킨다. 이러한 대립의 규정이 완전한 통일체를 구성한다. 대립이 없다면 통일체도 없다. 통일과 대립은 서로의 존재 조건이며 모든 사물은 통일된 것이면 모두 대립되는 것임을 가리킨다. 기는 각종의 대립 규정을 포함하는 통일체이고, 이 대립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근원이다. 쌍방사이에는 반드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작용을 느낌(감)이라고 하였다. 서로 다르다면 합이 없다. 다르기에 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교감 형십은 대립면들로 하여금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 연결되게 하고 이렇게 하여태허 기 만물이 있듯이 맘에는 성 심 정이라는 단계가 있다 만물이 객형이듯 정이 객형이다. 정이 일시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듯 하는 것이 객형과 비슷하다.천지지성은 사물과 인간모두에게 있으나 막히고 통함에 있어서 다르다. 사람에게 성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는 주렴계와 장횡거 모두 동의 한다 다만 주렴계는 태극원기의 본성이 표현이라는 인성을 명확하게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장횡거는 기일원론이라는 체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태허의 성에서 어떻게 인간의 인의예지로 전환이 되는 지 설명이 부족하다.장횡거는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다한다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만물에는 모두 이가 있으니 궁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횡거는 리의 객관성을 강조하여 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또한 존재한다고 보았다. 리는 사물 안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궁구함에 있어서는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물을 많이 보고 궁리를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을 요약하여 인간의 성을 다하고 사물의 성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궁리는 수단이고 우주 만물의 본성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진성이라 하고 그것이 목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궁리 뒤에 진성한다고 강조하였고 궁리로부터 진성한다고 주장하였다.횡거는 또한 기질을 변화시켜라(변화기질), 기의 습벽을 이겨라 주장했다. 학문을 통해 스스로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학문을 통해 기의 습벽 또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기질은 선천적인 것이고 습벽은 후천적인 것이다. 이둘 모두 진성을 방해한다. 따라서 이치를 궁리할 뿐 아니라 기질과 습벽을 극복해야 한단 것이다. 궁리하여 진성하면 그자의 성은 천의 덕이고 그자의 명은 천리가 된다. 기질중 변하지 못하는 것은 생, 사, 장수, 요절이다.주희 주자주자의 세계관주렴계는 태극이 움직인다고 보았다. 태극이 그자체가 운동하는 실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주자는 태극을 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리로써의 태극은 동정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주자는 동정이란 현상세계의 표현으로나의 태극일 뿐인 것을 만물이 각기 그것을 받아 하나의 태극을 온전히 갖추는 것이다.태극도의 해석에 있어서 보면 태극은 이이고 음양은 기 오행은 질이다. 태극은 도(이)이고 음양오행은 기에 불과하다.모든 사물은 우주의 본체인 태극을 품부 받아 자신의 성리로 삼는다. 모든 사물의 성리와 우주의 본체로서의 태극은 같다. 따라서 사물의 성리는 온전한 태극과 같은 것이지 태극의 일부가 아니다. 만물의 합도 태극이지만 각각역시 태극인 것이다.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태극을 지니는 것 이것이 바로 분수이다. 즉, 리일분수는 우주의 본체인 태극과 만물의 성간의 관계이다. 하지만 윤리적 의미에서 사물의 구체적인 규범에는 차이가 있다. 모든 사물에는 나름의 리가 있다. 사물이 다르면 사물에 표현되는 리도 다르다. 즉 만물의 동일성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다.리도덕원칙은 우주의 보편적인 법칙이 인류 사회에 특별히 표현된 것일 뿐이다. 주자는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기이다. 기가 되는 까닭으로서의 리는 도라고 말했다. 즉 사물과 기는 형상이 있는 것이며 감성으로 알 수 있다. 리, 또는 도는 사물의 본질과 규율을 가리킨다. 리에는 형상이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물의 본질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그 발전가능성 또한. 사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리는 존재한다. 이러한 리는 나중에 사물이 출현하도록 결정한다. 리재사선이 그것이다 리는 사물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 일은 없지만 도리는 있다. 임금 신하가 없어도 이미 그 도리는 먼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사물이 생성되기 전이었더라도 그 사물의 규율, 법칙, 원리는 이미 존재한다. 모든 사물의 법칙은 영원히 존재하며 바뀔 수 없는 것이다.리는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이고 형이상학적이면 기는 사물을 생성하는 도구이며 형이하학적이다. 생성 시에는 리를 받고서야 성이생기고 기를 받고서야 형이 생긴다. 이는 형상과 질료와도 결부될 수 있다. 리는 기보다 우선한다. 이를 좀 자세히 하자면 리와 기사이에는 실제로는 선후관계가것이다.
    인문/어학| 2011.04.29| 8페이지| 1,000원| 조회(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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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과서양 독후감
    이 책은 서론부터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서양 문화가 큰 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지금, 과연 서양 문화가 지금의 자리에 합당한 가장 우수한 문화인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문화들은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그 미래가 암울해 보이는 비 서양 문화들 가운데 오직 동양 문화만이 서양 문화 못지 않은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표층적인 부분만 보고 동양 문화의 특성에 대해 정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저자는 동양 문화의 저력이 보다 심층적인 부분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동양 문화를 서양 문화와 같은 차원에서 서로 비교, 분석해 보아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저자는 우선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가장 큰 차이를 환경적 측면에서 찾는다. 서양 문화는 해양 문화, 동양 문화는 대륙 문화라고 정의한다. 서양 문화를 대표하는 유럽은 위치적으로 굉장히 축복받은 땅이다. 비옥한 토양과 온건한 기후를 가지며, 잔잔한 바다와 많은 섬이 있는 지중해는 바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주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동양 문화를 대표하는 중국의 들쭉날쭉한 기후와 거친 바다는 농사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리적 요소가 동양과 서양의 생활 방식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신화만 보더라도 중국의 경우에는 흙을 오행 가운데 으뜸으로 보고 세계의 창조 시에도 천지가 생겨났다고 할 정도로 땅에 대한 비중이 높다. 반면 서양의 경우에는 여러 지방의 대홍수 신화, 크리스트교의 창세기, 그리스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등 땅보다는 물이 중심이 되어 신화가 서술 된다. 이러한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삶의 방식의 차이가 인간의 사상적 측면에도 큰 차이를 주게 된 것이다.그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매우 상이한 곳에 존재한 두 문화는 그 환경 때문에 자연을 대함에 있어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서양 문화는 바다를 개척하며 살아갔기 때문에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대상, 투쟁의 대상으로 보았고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분리를 이끌어 내었다. 저자는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분리'로 잡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분리는 나아가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이끌어 내었고 이것은 서양 문화의 가장 저변에 위치하는 개념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바다로 나아가지 않고 대지에 머물러 농사를 택한 동양 문명의 경우에는 자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롭게 순응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 즉, 동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을 '조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이 '분리'와 '조화'라는 두 개념들 사이에는 우열을 따질 수 없다. 다만 그에 따른 문화적 특성이 존재하기에 저자는 동양 문화를 음의 문화로 서양 문화를 양의 문화로 정의한다. 그와 동시에 문명들의 타락한 상태를 제시한다. 분리의 개념을 갖는 서양 문화는 '분리'를 절대화 하여 극단적인 투쟁의 상황을 유발시킬 수 있으며 동양 문화는 조화에 빠져서 안일함과 나태함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동양 문화의 경우에 닫힌 문화라고 표현될 정도로 여러 가지 지리적 요건들에 의해 고립되어 동양만의 문화를 쌓아올렸지만 결국 그 속에서 정체되어 수 세기 전까지만 해도 훨씬 앞서있던 서양 문화에게 주도적인 위치를 넘겨주고 말았다. 하지만 서양 문화역시도 파시즘이나 나치즘처럼 극단적인 이론을 만들어서 극한의 투쟁 상황에 치닫기도 했다.이상이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성립 배경과 그 차이의 연원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저자는 3장에서는 육체와 정신(영혼)에 관한 서양과 동양의 관점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4장에서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주의 깊게 보았던 부분은 바로 2장 '동, 서양 문화의 기반'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 그 출발점은 같았다고 보인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의 정신은 분리와 투쟁의 개념보다는 균형의 비중을 더 크게 보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신봉하던 다신교에서 나타나는데 한 신이 절대 권력을 갖는 게 아니라 여러 신들이 상호 견제하는 가운데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 문화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을 넘어서려는 반항과 인간이 가지는 지식의 절대화, 그로 인한 정신의 절대성에 대한 추구로 방향을 돌린다. 그들이 육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역설하던 절대적 정신 때문에 결국 인간 소외를 일으키고 현대에 이르러 여러 문제점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것은 데카르트 이후로 이어지는 철학의 흐름을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을 지나 마르크스로 가면서 보여지는 점점 극단적이 되는 흐름은 육체를 경시하고 정신만을 극도로 추구한 나머지 극단적으로 치달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리적인 사고방식은 서로 간의 의견 충돌이나 분쟁을 해결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조화의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동양의 경우 현실 지향적이고 딱딱한 북부 유교에 반발해 발생한 남부 도교가 처음에는 다소 분쟁이 있었지만 곧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점을 채워주어 마치 태극의 음과 양처럼 조화롭게 중국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했지만 서양은 남부 유럽의 카톨릭에 반발해 발생한 북부 유럽의 신교간의 극한 대립을 이루어 전쟁만 30년 이상을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이와 같은 폐단은 종교에서도 드러난다.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나 조로아스터교의 불 숭배처럼 자연물 가운데 특정 대상에서 자연 전체를 찾으려는 시도의 단계를 거쳐 추상화하고 절대화하게 된 신에 대한 개념이 모세5경을 통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름도, 형체도 없는 신이 모세를 비롯한 여러 인간의 청에 의해 이름도 생기고 기적도 베푼다. 그런데 이러한 속성은 서양인들의 필요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겨난 것이지, 결코 신 스스로가 인간에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원래의 이치를 비틀어 기적을 행한다는 사실은 신이 자연과 대립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을 본떠서 만들어진 인간이 스스로를 신과 동일시하면서 자연과 대립할 수 있는 자격이자 면죄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자연을 어떤 특이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그대로 전체적으로 파악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찍이 노자의 사상이 자연을 추상화, 절대화는 하였지만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도'라는 개념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서양에서 그렇게 만들어낸 신의 이미지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다. 자신만을 섬겨야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징벌을 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유대교인들은 엄격한 율법으로 사람들을 다스렸고 그들의 권력의 유지를 돕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가 득세 했을 당시에는 유대민족은 이미 로마에 정벌 당한 뒤라 권력자의 입장에서 행사하던 율법이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예수는 신에 충실 하라는 율법을 지키기보다 보편적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율을 널리 퍼트렸던 것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분리의 사회에서 예수가 제시한 愛는 위대한 깨달음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가치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에는 노자의 '도' 사상 덕분에 서양과 같이 신에 기대지 않고도 愛와 같은 개념인 仁을 공자가 무리 없이 주장할 수 있었다.이렇듯 조화의 사고방식, 음의 문화인 동양 문화는 닫힌 세계에서 그 효용이 매우 크다. 반면에 분리의 사고방식, 양의 문화인 서양 문화는 열린 세계에서 그 진취적인 태도로 큰 효용을 가진다. 실제로 나치즘, 공산주의처럼 극단적인 경우로 치달은 적은 있지만 서양 문화가 근대 이후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지구촌이라는 하나로 묶어버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제 유럽 외에 지구의 다른 영역은 미지인 열린 세계였던 이전과는 달리 지구라는 하나로 묶여 닫힌 세계가 된 지금, 저자는 다시 한 번 닫힌 세계에서 큰 효용을 발휘하는 동양 문화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이라 믿으며 끝마치고 있다.이 책을 읽으며 얼마 전에 수업했던 '서양 철학의 기초' 강의를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강의에서 교수님은 '문화란 인간 생활의 총체로서 인간이 활동하며 만든 모든 결과물의 집합'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즉, 그것이 군사력이 되었든 경제가 되었든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결합된 것이 문화로서 문명 간의 충돌로 그 우열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이 충돌했을 때 동양이 서양에게 졌기 때문에 동양 문화가 서양 문화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비록 가장 광범위하게 문화가 접촉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전쟁의 승패만으로 그렇게 단순히 문화의 우열이 가려진다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했지만 과연 아테네의 문화가 스파르타보다 덜 발달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가졌던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비록 문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나오지 않지만 서양 문화가 가지는 장단점, 동양 문화가 가지는 장단점을 같은 위치에서 비교하며 서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문화가 인간 생활의 총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문화의 우열이 모든 문화적 요인을 합하여 그 크기로 가늠한다는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화의 성립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리적 요소나 주변국과의 역학관계 등 수많은 요인들이 문화의 성립에 영향을 주고 그에 따라 문화가 발달하는 양상이나 분야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생활, 활동의 분야가 다양한 만큼 각각의 분야의 우열이란 것을 따지기 힘든 분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재대로 가늠할 수 있는 지도 모를 문화적 요인의 합, 그리고 전쟁 수행 능력만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보였다.
    독후감/창작| 2011.04.19| 4페이지| 1,0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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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문화와철학 독후감
    동서 문화와 철학을 읽고 처음 느낀 것은 막막함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집필한 양수명 선생의 폭넓은 지식과 사유에 대한 놀라움이 뒤를 이었다. 이 책은 매우 방대하고 또 다방면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포트를 어디서부터 써가야 할지,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룬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의 능력으로 레포트에 다 적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던 주제인 종교부분에 관련해서 레포트를 써내려가기로 했다.종교는 내가 평소부터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흔히 천주교라 불리는 신앙을 부모님으로부터 계승해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고 있던 나는 초등학생시절까지만 해도 하느님은 당연히 존재하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것, 예수님의 기적 등을 당연하게 믿어왔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신앙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되자 그 때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겨나왔다. 그리고 성당의 신부님이나 수녀님이셨던 고모, 심지어 목사이신 친구의 아버지 등 누구에게도 나의 물음들에 대한 확실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신입생 OT를 가서 김수종 교수님이 자신이 종교에 대해 가졌던 의문들이 철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라는 말씀을 듣고 참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을 철학에 바쳐 오신 교수님조차도 근래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답을 찾으셨다는 말에 종교란 매우 심오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조금 나의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동서 문화와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종교는 내가 궁금해 하던 부분이 아니라 종교의 성립과 역할, 필요성,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종교가 성립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약한 정신이 어딘가 기대고 위안을 받을 곳을 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위안의 단계는 원시 신앙과 같은 하등 종교들보다는 크리스트교나 불교와 같은 보다 고등종교에서 더 뛰어나게 발휘된다고 한다. 이런 위안과 격려에 대해서도 조금 느낀바가 있었다. 내 주위에서는 암으로 죽은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내 불알 친구의 어머니이고 한 명은 둘째 큰어머니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평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지라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의외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중1밖에 안 되는 자식을 두고 젊은 나이에 떠나심에도 역시 중1인 나의 눈에는 평안하게 가신 걸로 보였다. 반면에 둘째 큰어머니의 경우에는 무교셨다. 그 분은 자식들도 자립하고 나이도 꽤 되신 분이셨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강구하시고 또 그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솔직히 말해 깨끗하지는 못한 죽음을 맞으셨다. 이 차이들을 보면서 당시에는 인간성의 차이로 보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종교의 유무가 인간의 최대의 공포라고도 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감탄이 생겨났다.또 다른 종교의 조건 중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것 역시도 매우 올바른 것이라고 느꼈다. 아무런 신비가 없는 종교는 믿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를 해내고 보장해주는 종교야말로 인간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조건일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종교만이 인간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종교가 진정으로 필요한 이유는 위안과 격려만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양수명 선생은 종교의 진정한 필요성을 불교의 문제의식에서 찾았다. 그는 싯다르타의 사문출유 가운데 첫째 문제가 모든 중생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살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과 거기서 비롯되는 고통이라 파악하고,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한 어찌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는 전혀 위로받을 길이 없는 문제이며 유일한 해결방안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인 출세라고 보았다. 양수명 선생은 바로 이러한 문제와 그에 대한 불교의 문제의식이야말로 종교의 진정한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둘째와 셋째 및 넷째, 즉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양수명 선생은 무상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젊음과 건강과 생명이 유지될 수 없고 결국 그것들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무상의 문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늙고 병들고 죽은 것을 다시 젊고 건강하고 살아있는 것들로 만들 수는 없으며, 유일한 귀의처는 오직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곧 출세뿐이므로 여기서도 종교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종교의 특징으로 꼽는 초월과 신비가 바로 불교의 출세와 동일한 것이라고 보아, 종교의 진정한 필요성을 불교의 문제의식에서 찾은 것이다.이 대목에서 양수명 선생이 말하는 불교의 문제의식이 과연 모든 종교에 통용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지금 가장 교세를 널리 떨치는 종교인 크리스트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고등 종교들은 분명히 불교의 문제의식과는 같지만 다른 부분을 충분히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원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원죄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서 아담의 자손이기에 가지는 최초의 죄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며 스스로는 그 죄를 사할 수 없고 그 속죄를 위해 속세에서 교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장차 이 세상을 벗어나 완벽한 이상향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종파마다 조금씩 교리는 다르지만 속세에서 속죄라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충실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 크리스트교의 원초적 문제의식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삶에 대한 허무감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예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뛰었다. 죽음과 같은 인생의 근원적인 허무감 내지 무의미감에 대해, 사람들은 삶을 부정하여 자살을 택할 수도 있지만 종교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 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에 매우 관심이 많은 편이라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책에서 이 부분에 할애된 지면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인생에서의 허무감을 어떻게 종교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부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결국 뚜렷한 답은 찾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결국 양수명 선생이 내리는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결론은 결코 위안과 격려만으로는 종교의 필요가 성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충분히 다른 것으로 대체적인 위안을 갖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도 말하였듯 양수명 선생은 계속하여 종교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인생의 근원적인 허무감, 즉 무상은 아무리 인간의 지식과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결코 변하지 않고 소멸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와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 한 종교는 필요하고 또 영원히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그 문제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이 세상을 벗어나는 출세에 귀의할 수밖에 없다. 양수명 선생은 종교란 우리의 지식으로 구성되는 이 세상에서는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과 이성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초월과 신비의 영역에서 해답을 찾아 정서, 의지의 면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그는 출세의 경향을 종교의 욕구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1.04.19| 3페이지| 1,000원| 조회(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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