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교육이 성윤리 확립에 기여하는가? >현재 성교육의 성윤리 확립에 대한 실효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성교육과 성윤리의 정의 및 의의에 대해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먼저 우리가 성교육이라 부르는 형태의 이 교육은, 성욕과 공격성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라고 주장한 근대의 프로이트에 의하여 본격적인 학문의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많은 전문가들이 성과 관련된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따라 조사와 연구를 체계화한 뒤 정립시킨 것이다. 그렇게 전문가들은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성적 발달에 관한 연구 보고와 더불어 성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데 힘써 왔고 그 결과 오늘날의 성교육이라는 분야가 확립되었다. 이에 따르면, 성교육이란 남성과 여성간의 정신적 육체적 관계, 즉 성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올바르게 지도하는 교육이자, 바람직한 성 역할에 대한 지도와 교육까지도 포함하는 교육이다. 이런 목적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성교육 지도내용은 성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 남녀 상호간의 도덕적인 태도 및 올바른 적응방법, 성적인 현상과 성에 관련된 문화적 행위에 대한 건전한 태도, 성적인 위험과 성병에 대한 예방지도 등이다. 한편 성윤리는 성과 윤리가 결합한 말이다. 인간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 윤리라면, 성윤리는 성과 관련하여 인간이 지키고, 고수해야 할 윤리적 규범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낙태나 혼전 성관계,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별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다. 성교육이 과학적인 지식에 기초하여 성립된 것은 사실이지만 성 역할 등도 교육시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초기의 목적과 의의에 따르면 성교육은 이러한 성윤리의 건전한 확립에도 기여하게끔 되어 있었고, 더불어 사회적 성 역할과 같은 부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교육은 성윤리의 확립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현재의 성교육이 내용적 측면과 형식적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일단 성교육은 초기에 발현한 이후 문화권마다, 나라마다,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본래의 성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83년부터 성교육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10단계로 나누어서, 정책적으로는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다분히 과학적이며 학문적인 것으로만 교육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 문화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즉 성을 공론화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문화가 기본 바탕이 되고, 그 위에서 성을 교육하다 보니 주로 다루는 내용은 다분히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된 것이다. 전형적인 학문의 편향성이다. 예컨대 우리가 학창시절 성교육 시간에 배웠던 것을 두 가지로 압축해 보면 크게 성기의 구조와 태아의 생장이다. 잭 볼스윅과 쥬디 볼스윅에 따르면 성은 출생시의 성(생물학적 성), 성 정체성, 사회적 성 역할, 성적 지향성 등 4가지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성교육 시간에는 성기와 태아로 대변되는 생물학적인 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은 딱딱하고 지루한 지식의 전달과정이 되었으며 따라서 호기심 가득한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에게 성기의 구조나 역할, 명칭을 외우게 하는 성교육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은 과장되고 왜곡된 음란물이었으며 그 결과 올바르게 확립되어야 할 성윤리는 방치된 상태로 병들게 되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라면 성의 요소와 정의, 성의 아름다움과 본질적 순수함, 성과 관련된 윤리의식 등을 설파했어야 했으나,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다분히 학문적이고 의학적인 내용만을 부각시켰고 이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아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두 번째로 언급할 문제점은 성교육의 방식이다. 현재의 입시위주의 교육방식을 성교육에도 그대로 도입해서 칠판 혹은 인쇄물에 의해 설명하거나 기껏해야 짧은 시청각 자료에 의존하는 방식은 성교육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다른 학문이나 교육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성교육은 탁상공론에만 치우치기엔 복잡하고 실질적인 학문이다.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몸소 느끼고 체험해 보게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정자와 난자의 결합부터 태아의 출생과정까지를 순전히 글로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그러한 이론적 부분이 아니라 실제로 눈에 보여지는 과정이다. 옛말에도 술은 아버지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렵고 복잡한 사회성을 띤 행위는 공론화시키고 노출시켜 학습시켜야 한다. 물론 성교육시간에 성행위가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는 식의 수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조금 더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교육자나 입법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서 말한 성의 4가지 요소를 모두 가르치거나 성과 관련된 생명윤리 사상과 인권 등의 개념은 주입식이 아닌 다른 교육방식으로 전해져야 한다. 이 역시 글이나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며, 몸소 사회적 성, 혹은 성적 지향성을 경험해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희롱은 어떤 점에서 지양되어야 하는지, 성차별은 어떤 점에서 부조리한 것인지 몸소 체험해보고 느껴보게 해야 비로소 참된 교육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각자의 성을 바꾸는 등의 역할극을 통하여 충분히 전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동성애나 양성애를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게 할 수 있다.현재 우리는 성윤리가 올바르게 확립되지 않은 사회 속에 있다. 이는 비단 청소년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성윤리라는 키워드를 치기만 해도 몸이 불편한 여자를 강간한 청소년들의 사건, 혼전 성관계에 대한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대학생들의 인식, 낙태인식에 대한 통계자료 등에 대한 뉴스기사나 소식들이 창을 가득 메운다. 이는 그 동안의 전통적인 성교육이 성윤리의 건전한 확립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올바른 지식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의식, 윤리를 교육시켜야 하는 성교육의 사명감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교육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성교육의 문제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한 만 하더라도 이러한 성윤리 확립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상투적이고 딱딱한 수업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유익한 수업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애정 관계에만 국한시켜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이는 성교육이라기보다 오히려 연애교육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생물학적 성에만 집중하던 성교육에서 사회적 성에 집중하는 성교육으로만 바뀐 것일 뿐 성윤리의 확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이었다. 가장 진보적이고 앞선 교육이 행해지는 대학에서조차 성교육의 본질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에 대한 의식이 비교적 동등해졌고, 여성의 인권이 성장한 것에 주목하여 성윤리가 성장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성은 성을 무조건 숨기고 순결하게 간직해야만 하는 존재여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현재는 어느 정도 여성 역시 남성과 같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인빙자간음죄와 같은 죄목이 사라진 것만 보아도 여성에 대한 인식과 여권은 크게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성교육으로 인한 결실이 아니다. 여성의 인권이 성장한 것은 성교육에서 평등한 사회적 성을 가르치고 성 의식을 교육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의 줄기차게 권리회복운동을 하고 시민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성교육에서 바람직한 성 역할에 대한 지도와 교육을 포함시킨 것은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된 이후이므로 오히려 성교육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사례에 불과한 것이다.정리하자면 그 간의 성교육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성인들의 성윤리 확립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이는 학문적 편향성에서 비롯된 내용의 한계, 입시위주의 교육방식의 틀을 고수한 채 진행된 수업방식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전통적인 성 금기 문화 위에 무분별하고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는 현재의 다양한 성 문화들은 자칫 잘못하면 대중들에게 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만을 심어줄 수 있다. 현재의 성교육은 성윤리를 비롯한 건전한 성의식의 확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 그 내용과 형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야만 우리는 보다 건전하고 아름다운 성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Impossible(2012) 영화감상문-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대응의 불가능성을 엿보다-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쪽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쓰나미가 되어 태국 푸켓 해변가를 강타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쓰나미로 인해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했으며 Impossible은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휴양 차 떠난 태국에서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고통을 겪게 되는데 갖은 고생 끝에 결국 무사히 귀국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주제 혹은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상기후에 대한 경고, 거대한 자연과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대립, 혹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휴머니즘 등이 그것이다. 이는 아름다웠던 휴양지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는 장면과 쑥대밭이 된 현실 앞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들의 모습, 그리고 결국 가족들을 다시 찾아 눈시울을 붉히게 하던 장면 등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끔찍한 자연재해가 일어난 지역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태국이라는 사실과 주인공 가족들은 서양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배경과 주인공의 실제 모델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로 당시 태국으로 휴양을 갔던 서양인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들은 타국에서 각자의 가족을 찾기 위해, 또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이 절망과 희망을 겪으면서 나타난 아름다운 휴머니즘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이를 해피엔딩으로만 볼 수 있을까? 먼저 태국이라는 지역은 아직까지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이다. 물론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고는 있지만 여타 선진국과 같이 자급자족의 수준 높은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태국이라는 나라를 덮친 것은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노출, 민감도, 그리고 잠재능력으로 함수화되어 정의되는 취약성은 태국이라는 나라에서 분명 높게 나타난다. 한 순간에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집이 부서지는 장면들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혹자는 그 정도 위력의 쓰나미라면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는 방조제, 레질리언스, 연안침식 모니터링 체제 등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의 예측, 대응 능력을 고려해보건대 선진국에서는 영화에서와 같이 집이나 건물들이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마술과 같은 현상은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간 후 주인공 가족이 고통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구호단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차오르는 물과 부러진 나무들이었다는 것은 태국의 적응능력, 피해완화 정도, 대응,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쓰나미가 나라의 전체를 뒤덮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을 구한 것은 당국의 숙련된 구조요원들이 아닌 마을의 원주민들이었다. 거기다가 병원이라고 간 곳은 몰려드는 환자들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엔 인력이나 자본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서 태국의 자국민이 아니었던 주인공 가족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태국 현지인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편으로 보였는데 그들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염두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원래 살던 집과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지역이 삶의 터전이었던 태국의 자국민들은 상처를 치료하거나 가족을 찾게 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었고, 이는 근본적으로 피해의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가 달랐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밑을 내려다보며 태국을 떠나는 장면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아직 고통 받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관객들에게는 일종의 안도감을 심어주며 영화를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 안도감은 ‘나는 살았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태국이 어떤 피해를 받건 간에 나와 우리 가족은 안전하게 귀국하고 있다는 생각이 주인공 가족과 관객들을 안도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관객들이 태국 국민들에게 감정을 이입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여기서 나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하여 COP 당사국 총회나 UNFCCC가 애초부터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비록 이런 이기주의가 영화에서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주인공들과 같이 ‘나만, 우리나라만’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대응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것이 바로 불편한 진실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이상기후에 대해 어느 정도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고 이는 여타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현재 자신들이 가시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몰위험 지역의 군소도서 국가들의 국제적 공조를 바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이유가 국제사회의 무정부성 때문이든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든 간에 이상기후, 구체적으로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범지구적이고 완벽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는 비록 아름답게 끝났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지구의 청사진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소유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인 권리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따라서 인간은 항상 권리의 주체가 된다. 이러한 권리는 법률요건에 의해 발생, 변경, 소멸하게 된다. 또한 권리의 객체도 나타나게 되는데 권리의 객체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중 권리의 내용을 기준으로 구별하였을 때 나타나는 것 중 하나가 재산권인데, 이 재산권에는 물건에 대한 권리인 물권과 사람의 일정한 행위에 대한 권리인 채권, 무체 재산권 등이 포함된다. 이 중 물권은 사람이 특정한 물건을 직접 지배하여 배타적 이익을 얻는 권리로서 현재 민법에서는 이러한 물권에 대해 세부적으로 점유권, 소유권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유치권, 질권, 저당권 등 8가지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공동소유는 이 중 재산권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소유권에 해당하는 성질이다.Ⅰ. 소유권1. 의의소유권은 물건을 사용 수익 처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로서, 사실상의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점유권과는 달리, 물건에 대한 법률적 관념적 포괄적 전면적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소유권의 객체는 물건에 한하며, 권리는 소유권의 객체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2. 성질소유권은 계약, 취득시효, 선점 습득 발견, 첨부 등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취득될 수 있으며, 이렇게 소유권을 가진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소유물을 사용 수익 처분 할 수 있다. 사용 수익은 목적물을 이용하거나 목적물로부터 발생하는 과실을 수취함으로써 사용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처분은 소비 파괴 등의 사실적 처분과 양도 담보제공 등의 법률적 처분을 통하여 교환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소유권에 기해 소유자는 소유물반환청구권, 소유물방해제거청구권, 소유물방해예방청구권 등 물권적 청구권을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 있게 된다.Ⅱ. 공동소유1. 개괄일반적으로 소유를 권리 주체의 면에서 보면, 한 사람의 권리 주체가 하나의 물건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물건을 다수의를 공동소유라고 한다. 즉 다시 말해서 공동소유는 하나의 물건을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소유는 물건자체를 분할하여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분할하여 소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민법에서는 공동소유의 형태로 공유, 합유, 총유 세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2. 공유(1) 개념 및 성립공유란 수인이 물건을 지분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소유의 원칙적인 형태로서 이러한 공유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 의해 성립된다. 하나는 법률행위, 즉 하나의 물건을 수인이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의하여 성립하는 경우로서, 공유로 하기로 하는 물건이 부동산인 경우에는 공유 및 공유지분의 등기를 하여야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 다른 하나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 당연히 성립하는 경우로서 그 예로 타인의 토지 기타 물건으로부터 발견한 매장물, 주종을 구별할 수 없는 동산간의 부합 혼화, 구분소유하는 건물의 공용부분, 경계에 설치된 경계표 담 구거 등을 들 수 있다.(2) 공유지분공유지분의 비율은 공유자의 의사표시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 정해지며, 불분명한 경우에는 균등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공유지분을 등기하지 않은 경우에는 실제의 지분비율을 가지고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분이 다를 경우에는 등기를 통해 지분 비율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러한 지분에 대해서는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도 자기 지분을 자유로이 처분 즉 지분의 양도 담보제공 포기를 할 수 있으며, 공유자가 그 지분을 포기하거나 상속인 없이 사망한 때에는 그 지분은 다른 공유자에게 각 지분의 비율로 귀속된다. 이는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가 대지사용권을 포기하거나 사망하였을 때 대지사용권이 국고에 귀속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며 후술하게 될 합유의 경우, 부동산 합유자 일부의 사망 시 상속인이 있더라도 해당 부동산이 잔존 합유자의 합유 혹은 단독소유로 귀속되는 것과도 차이를 보인다.(3) 공유물공유자는 공유물 전부를 지분의 비율로비율만큼의 배타적 사용 수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물 전부를 사용 수익의 대상으로 하되 지분 비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유물의 보존행위는 각자가 할 수 있으나 공유물의 관리에 관한 사항은 공유자의 지분의 과반수로써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보존행위라 함은 목적물의 멸실, 훼손을 방지하고 그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로서 수선 유지 보관은 물론 제3자 혹은 다른 공유자에 의해 공유물이 침해된 경우의 방해배제, 공유물의 인도 또는 명도, 공유물에 관한 원인무효등기의 말소청구도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야채의 처분행위는 보존행위에 해당된다. 관리행위라 함은 임대와 같은 공유물의 이용, 개량행위로서 처분, 변경의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만일 공유물의 처분 변경에 있어 공유자의 1인이 공유물을 처분 또는 변경하려면 다른 공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따라서 공유자 1인이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공유물을 처분 변경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다만 그 공유자의 지분 범위 내에서는 유효성이 인정된다. 또한 공유자는 그 지분의 비율로 공유물의 관리비용 기타 의무를 부담하며 공유자가 1년 이상 그 의무이행을 지체한 때에는 다른 공유자는 상당한 가액으로 지분을 매수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매수대상이 되는 지분 전부의 매매대금을 제공한 다음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여야 한다.(4) 공유물의 분할각 공유자는 분할금지특약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자유로이 공유물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공유물분할청구권은 공유관계에서 수반되는 형성권이니만큼, 공유관계가 존속하는 한 그 분할청구권만이 독립하여 시효로 소멸될 수 없다. 또한 각 공유자는 공유물에 대해 5년 내의 기간으로 분할하지 않을 것을 약정할 수 있고 분할금지기간은 갱신할 수 있으나 갱신일로부터 5년을 넘을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분할은 그 방법에 관하여는, 협의가 성립되지 아니한 때에 공유자가 법원에 그 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협의분할원가 있는 때에 법원이 물건의 경매를 명할 수 있는 현물분할원칙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공유물이 분할 되면 공유관계는 종료되고 공유자 역시 담보책임을 지며 특정지분 위에 설정된 담보물권도 종전의 지분비율대로 공유물 전부의 위에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원칙이다.3. 합유(1) 개념합유는 법률의 규정 또는 계약에 의해 수인이 조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의 한 형태로서 대표적인 예로 조합을 들 수 있다. 조합이란 2인 이상이 상호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며, 아직 단체로서의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을 말한다. 합유하는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의사한 목적이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지분이 내부적이며 공유의 지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부동산을 합유하는 경우에는 그 취지를 등기해야 하며, 이 때 전부의 명의로 등기해야 한다. 합유의 대표적인 예로 영농조합, 수리조합 등을 들 수 있다.(2) 성질합유자의 권리는 합유물 전부에 미치며 합유물의 보존행위는 각자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반면에 합유물을 처분 변경할 때에는 공유와 마찬가지로 합유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합유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공동소유하는 것이므로 공유와는 달리 합유자는 합유물의 분할을 청구할 수 없으며 분할을 청구하려면 먼저 조합의 해산 또는 합유물의 양도 등으로 인해 합유관계가 종료되어야 한다. 합유는 조합체의 해산 또는 합유물의 양도로 인하여 종료되며 이 때 합유물의 분할에 관하여는 공유물의 분할에 관한 적용을 준용하여 협의분할과 현물분할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부동산의 합유자 중 일부가 사망한 경우 원칙적으로 사망한 합유자의 상속인이 있더라도 해당 부동산은 잔존 합유자의 합유 혹은 단독소유로 귀속된다.4. 총유 (1) 개념총유는 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의 한 형태로서 종중, 문중, 교회, 동창회 등이 총유의 대표적인 예이다. 총유는 지분이 인정되지 않으며 총유물 전체가 전체구성원의 것으로서 대부분 권리능 대표자나 관리인이 신청하여야 한다.(2) 성질총유물의 관리 및 처분은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하여야 하며 보존행위를 할 때에도 법인 아닌 사단 명의로 하거나 또는 구성원 전원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원총회의 결의를 거쳤다 하더라도 구성원 개인이 소송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또한 각 사원은 정관 기타의 규약에 좇아 총유물을 사용, 수익할 수 있으며, 총유물에 관한 사원의 권리의무는 사원의 지위를 취득상실함으로써 취득상실된다. 그리고 총유는 지분이 인정되지 않는데 이 때문에 교인들이 집단적으로 교회를 탈퇴한 경우 법인 아닌 사단인 교회가 2개로 분열되고, 분열되기 전 교회의 재산이 분열된 각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각각 총유적으로 귀속되는 교회의 분열은 인정되지 않으며 종전 교회 재산은 잔존 교인들의 총유라고 한 판례가 있다.5. 준공동소유준공동소유란 수인이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 즉 채권, 지상권, 지역권, 저당권 등을 공동으로 가지는 것을 말하며, 이 경우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상 공동소유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Ⅲ. 검토공동소유란 하나의 물건을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을 말하며 민법에서 공동소유는 공유, 합유, 총유 3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중 공유가 공동소유의 원칙적인 형태이며 물건을 지분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공유지분은 비율로 나눌 수 있으며 등기를 해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반면에 합유는 법률의 규정 또는 계약에 의해 수인이 조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로써 당사자들이 의사한 공통의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분이 있다 하더라도 내재적인 지분이며 공유지분처럼 자유스럽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등기할 때에 전부의 명의로 등기하여야 한다. 또한 총유는 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로서 지분이 인정되지 않으며 대표자나 관리인이 그 사단이나 재단의 명의로 등기를 신청하여야 한다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준공동소유는 수인이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을 .
이 책은 전반적으로 프레임이라는 하나의 큰 개념을 가지고 일상생활 전반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잘못된 오해들을 바로잡고 있다. 목차는 크게 프롤로그와 7개의 장, 그리고 마지막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프레임이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7개의 장 중에서 6개의 장은 우리의 생활 각 분야에서 어떤 프레임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혹은 어떤 프레임이 착각 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7번째 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십계명 형식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10가지의 프레임을 소개하고 있으며, 에필로그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프레임들을 적용한 경우에 사람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라는 서양동화와 저자 본인의 짧은 일화, 그리고 연구결과를 곁들여서 프레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핑크대왕 퍼시가 분홍색 안경을 쓰고 세상이 핑크색으로 보이는 것에 만족하듯이, 저자가 배가 고픈 상태에서 음식 프레임을 견지했을 때 세상이 음식과 관련된 것만 보이듯이,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안전 프레임을 견지했을 때 세상이 안전과 관련된 것만 보이듯이 프레임은 사람의 안목, 기호, 나아가서는 세상을 보는 정보, 가치관까지 바뀌게 하는 개념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프레임을 세상에 접근하는 방법, 애매함에 대한 대처방법, 자신의 자기중심성에 대한 치유방법, 과거와 미래를 왜곡시키지 않는 방법, 경제활동에 있어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방법,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사람의 10가지 프레임의 순서로 7가지의 각기 다른 장에서 각기 다른 프레임과 그와 관련된 일화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을 예시로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은 말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가지는 프레임은 보다 상위 수준이며 의미 중심의 프레임이라고 말하면서 프레임의 수준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며, 질문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프레임에 대한 분석, 동일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순서를 바꾸면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다는 모순, “내 그럴 줄 알았어.” 등과 같은 과거에 대한 비판이 사실은 질서 정연한 현재라는 프레임이 비추어 보았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착각이라는 것 등 여러 가지를 흥미롭게 예시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좋은 프레임들 속에서 일맥상통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올바른 프레임을 견지함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을 마치는 에필로그에서도 저자 본인이 생각하기에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개념이 프레임이라고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프레임을 잘 활용하여 좀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의무이자 축복이라 말하며 끝을 맺는다.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프레임이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지혜로운 프레임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의 선택이 보편적이라 믿는 이유’, ‘공돈과 푼돈’, ‘후견지명 효과’ 등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흔하게, 그러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편견, 착각 또는 오해들이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프레임 때문이며 이를 좀 더 상위의 프레임,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바꾼다면 훨씬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은 그 동안 당연히 견지해왔던 프레임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며 좀 더 상위의,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견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 자신이 부끄러웠으며, 또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야겠다 하는 것을 다짐하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예측하기 힘든 내일의 감정’, ‘계획표의 함정’ 같이 현재 프레임으로 바라본 미래는 모든 위험요소와 나태한 마음가짐을 배제한 미래라고 설명한 파트를 읽으니 또다시 나는 과오를 범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어디든 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내면의 변화과정은 다소 복잡했다.먼저 내가 가장 부끄러웠고 또 동시에 많은 것을 느낀 프레임이 나오는 부분은 ‘자기 프레임, 세상의 중심은 나’ 부분이었다. 나는 평소에 자존감이 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내왔다. 따라서 책에 나온대로 내가 남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고, 만약 남이 나를 파악했을 때, 남이 파악한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다르면 오랫동안 나를 봐왔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라고 생각해왔다. 이 때의 파악의 괴리는 대체로 내가 파악한 나는 긍정적인 측면이었으며, 남이 파악한 나는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자아도취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객관적인 프레임으로 보는 지혜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딱히 나를 남보다 우월하고 더 나은 존재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프레임이 건강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 자존감이라고 표현되는 이 자아도취의 프레임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 프레임과 충돌해서 경합이 일어날 때는 다른 사람보다 못한 나 자신에게 좌절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나 중심의 프레임이 지혜로운 프레임이 아닌 것은 나중에 따지고서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중심의 프레임 자체가 올바른 자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부끄러움은 마음의 CCTV, 조명효과에서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정작 다른 사람은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데 나는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는 것처럼 생각했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자존감이 세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그러한 조명효과에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발동한 자존심이 자존감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둔갑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다른 프레임 부분을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건방지고 허황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누구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공돈과 푼돈의 프레임 그리고 신용카드와 포인트의 프레임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누구보다 과거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철저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후견지명 효과, 과거 죽이기, 계획표의 함정 등의 효과를 유발하는 현재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자 말 그대로 나는 지능지수는 높을지 몰라도 지혜롭지는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느끼고 나는 바로 다짐에 들어갔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이것이 과연 미래를 제대로 내다볼 때에 알맞은 프레임인가, 형식이 아닌 의미 중심의 프레임인가 하는 자문을 스스로에게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짐을 하고 다시 책을 읽자마자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래를 더 낙관적으로 보는 어리석은 현재의 프레임 부분을 읽게 되었다. 현재의 프레임이란 오늘 있었던 감정상태를 내일은 없을 것이라고 배제해 버리고, 현재에 존재하는 상황들이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어리석은 프레임이었다.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다짐한 것이 물거품이 되기에 딱 좋은 프레임이었다.이렇게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번갈아 가며 경험하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을 덮은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순간의 가르침 혹은 멋있어 보이는 말에 혹해서 또 다시 허황된 목표를 세우는 사람, 건강하지 못한 자아중심의 프레임에 휩싸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프레임이 무엇인지, 즉 다시 말해서 나에게 필요한 자세와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까 위에서 현재의 프레임에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렇게 느끼고 다짐하고 있지만 저자가 대학생 때 vocabulary 22000을 방학 동안에 하루에 일정한 분량을 정해 모조리 외우겠다고 다짐만 하고 실현은 하지 못한 것처럼, 혹은 초등학생들이 무리한 생활 계획표를 짜고 결국 구석에 박아놓는 것처럼 다짐이 희미해져 갈지도 모른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미래에는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고, 현재 존재하는 것들이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확실히 미래를 예측할 때 현재 존재하는 자기 내면의 의지만 보는 그런 지혜롭지 못한 사람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하나는 확실히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프레임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나를 바꿀 수 있고, 바꾸려는 프레임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바꾸려는 나의 모습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다짐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고 이 책에서 얻은 지혜이다. 이 지혜만 까먹지 않고 있는다면 항상 나 자신이 올바른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지 피드백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피드백의 기간이 짧다 하더라도 계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전체적인 틀 속에서 보면 올바른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쪽으로 나는 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프레임이 있고 사람마다 그 프레임의 수준이나 의미부여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혹시나 하위 중심의 프레임은 아닌지, 형식 중심의 프레임은 아닌지 항상 자문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현재의 프레임으로써가 아닌 미래의 프레임으로써 다짐해본다. 다시 말해 보다 상위 중심의 프레임을 견지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또 보다 의미를 중시하는 프레임을 견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재량행위재량행위는 행정법규가 행정행위를 규율함에 있어서 행정청에게 자기 판단을 행할 여지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에 행정청이 행하는 행정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써 재량행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행정행위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Ⅰ. 행정행위1. 행정행위의 의의행정행위란 행정입법과 행정계약, 행정계획, 사실행위 등과 함계 행정의 행위형식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행정행위개념은 원칙적으로 실정법상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 아니며 실정법 상으로는 허가, 인가, 면제, 금지, 확인, 결정 등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즉 잡다한 행정작용 중에서 공통된 성질을 가진 것을 통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론상의 개념이다. 따라서 행정행위의 이론상의 개념은 다의성을 가질 수가 있는데 크게 4가지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최광의의 의미로 행정청이 행하는 일체의 행정작용을 뜻하며, 두 번째로 광의의 의미로 행정청이 행하는 공법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세 번째로 협의의 의미로 행정청이 구체적 사실에 대한 법집행행위로서 행하는 공법행위를 뜻하기도 하며 마지막 최협의의 의미로 행정청이 구체적 사실에 대한 법집행으로서 외부에 대하여 직접적인 법적효과를 발생시키는 권력적 행위인 공법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최협의의 의미일 때의 행정행위의 개념이 실정법상의 개념인 처분, 즉 행정처분과 일치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두 개념이 일치한다는 일원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원론이 있으며, 이원론이 다수설이다.2. 행정행위의 기능전통적 행정법이론은 행정과정의 기본적 골격을 먼저 법률이 일반적, 추상적 규범을 정하고 이에 의거하여 행정행위가 행하여지고, 그 행정행위의 효과를 담보하기 위하여 행정강제가 행하여진다고 하는 3단께 구조로 파악하고 이 3단계 구조모형에 의하여 여러 행정작용을 정리하는 한편, 행정의 법적 통제도 행정행위가 상위법률에 위반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법원이 심시하는 방법으로 체계화하였다. 따라서 전통적 행정법이론에 있어서는 행정행위는 가장 중심이 되는 법형식으로서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행정흐름을 보면 전통적 행정법이론이 전제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단순한 구조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다양한 단계에 의하여 성립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행위가 전통적 행정법이론에 있어서와 같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행정흐름 속에서 행정행위가 행정흐름의 법적 통제의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행하고 있다.3. 행정행위의 종류행정행위는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하여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법률행위적 행정행위와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로 나눌 수 있으며, 여기서 살펴볼 기속행위와 재량행위, 쌍방적 행정행위와 단독적 행정행위, 불이익 행정행위와 이익 행정행위 그리고 복효적 행정행위 등으로 나눌 수 있다.(1) 법률행위적 행정행위와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이는 행정행위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구별로써, 행정행위의 내용이 행정청의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행정행위를 법률행위적 행정행위라 하고 의사표시 이외의 정신작용의 표시를 요소로 하는 행정행위를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라고 한다. 전자에 있어서는 효과의사에 따라 발생하고, 후자에 있어서는 법효과가 직접 법귝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발생한다. 법률행위적 행정행위는 다시 하명, 허가, 면제 등의 명령적 행위와 특허, 인가, 대리 등의 형성적 행위로 나눌 수 있다. 준법률적 행정행위는 인식, 판단, 관념의 통지로써 공증, 통지, 수리, 확인 등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2) 쌍방적 행정행위와 단독적 행정행위이는 행정행위를 상대방의 협력을 요건으로 하느냐의 여부를 기준으로 한 구별로써 상대방의 협력을 요건으로 하는 행정행위는 쌍방적 행정행위로 보고 그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 행정행위는 단독적 행정행위로 보는 구별이다. 여기서 쌍방적 행정행위는 그 필요로 하는 협력의 내용에 따라 다시 동의를 요하는 행정행위와 신청을 요하는 행정행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3) 불이익 행정행위와 이익 행정행위 그리고 복효적 행정행위이는 행정행위의 법효과를 기준으로 한 구별이다.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등 상대방에게 불리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정행위를 불이익 행정행위라고 하며 하명, 특허의 철회 등이 그 예이다. 이익 행정행위는 권리 또는 이익을 부여하거나 권리의 제한을 철폐하는 등 상대방에게 유리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정행위를 말하며 허가, 특허, 인가, 하명의 취소 등이 그 예이다. 복효적 행정행위란 불이익적 효과와 이익적 효과의 양 효과, 즉 복효적 효과를 발생하는 행정행위를 말하며 건축법 상의 이웃보호규정에 위반하여 행한 건축허가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Ⅱ. 재량행위재량행위는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분류될 수 있는 행정행위를 법의 구속 정도를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써 기속행위와 함께 행정행위의 근간을 이룬다.1. 재량행위의 의의재량행위는 행정법규가 행정행위를 규율함에 있어서 행정청에게 자기 판단을 행할 여지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에 행정청이 행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재량행위는 다시 요건의 인정에 부여되어 있는 요건재량과 효과에 부여되어 있는 효과재량으로 단순구조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재량의 여지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행정행위의 법률적용에 있어서 판단의 단계를 보면 대체로 요건에 관한 판단으로 일정한 사실 그 자체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행정행위의 요건을 정하고 있는 행정법규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의 문제, 당해 사실이 그 행정법규가 정하고 있는 사실에 들어맞는가의 문제, 어떠한 절차를 거칠 것인가의 문제, 행정행위를 행할 것인가의 여부, 어떠한 행정행위를 행할 것인가의 여부, 행정행위를 언제 행할 것인가의 문제, 어떠한 형식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재량행위란 행정법규가 행위의 요건, 절차, 효과의 결정, 행위의 시기 및 형식 등의 결정에 있어서 행정청에게 정책적, 행정적 판단의 여지를 전속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경우에 행정청이 행하는 행위이다. 이때 재량의 폭과 내용은 재량행위마다 수권법규인 행정법규에 따라 정하여진다.2. 재량행위의 전개고전적인 권력분립론에 의하면 재량문제는 행정권을 사법권에서 내용적으로 구별하는 것으로서 행정의 고유한 영역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법에 엄격하게 기속되고, 위반하면 위법행위가 되는 기속행위와는 달리 재량행위는 법에 의하여 공익실현을 위한 찬단의 여지가 행정청에 부여되어 있는 이상 행정에 고유한 자기권한의 행사이며, 재량을 그르쳐도 부당행위가 될 뿐이고 따라서 법원의 심사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를 재량불심리의 원칙으로 설명하여 왔던 것이 종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량불심리의 원칙에 의하면 법원의 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재량행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가능성이 있었고, 따라서 법원의 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재량의 범위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그 노력의 결과가 재량을 다시 기속대량과 자유재량으로 나누는 구별론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독일에서 행위요건에 있어서 불확정개념의 구체적 내용의 일의적 확정화와 법원에 의한 전면적 사법심사의 가능성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학설과 논의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면서 재량과 판단여지의 구별논의가 되었다. 최근에는 기속행위와 재량행위의 차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인식되면서 둘의 구별은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합리적 분업의 문제, 법원의 심사밀도의 정도문제로 귀결되고 있다.3. 재량행위의 종류재량행위의 전개에서 보았듯이 재량행위의 범위를 좁히려는 노력으로 재량행위를 다시 기속재량행위와 자유재량행위로 나누는 구별론이 있다.(1) 기속재량입법자가 입법을 함에 있어서 행정행위의 요건 및 효과 등을 일의적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행정청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 법이 예정한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는 경우의 재량(2) 자유재량입법자가 입법을 함에 있어서 행정행위의 요건 및 효과 등을 일의적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행정청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 법이 예정한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재량(3) 오늘날의 경향오늘날의 학계에서는 부분적으로 양자의 구별의 실익을 인정하는 견해도 없지 아니하나, 대체로는 양자의 구별을 부정한다. 기속행위와 재량행위를 상대화하여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한, 기속재량과 자유재량의 구별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4. 재량행위의 성질(1) 재량과 판단여지의 구별1)구별긍정설행정법규가 행위요건을 정함에 있어서 불확정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 불확정개념은 법개념이고 법개념 적용의 문제에 대하여는 전면적으로 사법통제의 대상이 되지만, 때로는 거기에도 사법통제가 미칠 수 없는 행정청의 고유한 판단, 결정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행정청의 고유한 판단, 결정의 영역은 판단여지라고 해서 행정행위의 효과의 측면에서만 존재하는 재량과 구별한다.2)구별부정설요건부분의 불확정개념에 대한 판단여지와 효과부분의 재량은 구별할 필요가 없고 양자 모두 재량이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2) 검토요건재량의 문제는 법률요건에서 사용하고 있는 불확정개념의 해석, 적용의 문제이다. 불확정개념은 원칙적으로 법개념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행정청이 1차적으로 행한 불확정개념의 해석, 적용은 원칙적으로 법원에 의한 전면적인 사법심사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이 점은 행정행위의 요건을 정하고 있는 행정행위의 요건을 정하고 있는 행정법규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요건에 관한 판단으로 일정한 사실 그 자체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당해 사실이 그 행정법규가 정하고 있는 사실에 들어맞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행정청의 전문적, 기술적 판단을 존중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행정청에게 최종적인 판단권이 맡겨져 있다는 의미에서 재량으로 부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