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건축사/독후감)-고대 로마를 찾아서-‘고대 로마를 찾아서’ 책의 제목에서부터 고대 로마에 대한 호기심이 끓어 올랐다. 고대 로마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들로 인하여 나에게 로마를 다시 떠올리고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을 품으며 한 장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책 속에서 정의하고 있는 고대 로마란 15~16세기, 즉 중세에 접어드는 시기에서의 고대 로마이다. 당시 문예 부흥이 일어나며 그 속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바라본 로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물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르네상스 초기 유럽의 시각이다.책을 읽어나가며 어제는 생생한 로마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그 현장이 오늘은 르네상스기의 땅속에 묻혀버린 로마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 당혹스러우면서 동시에 즐거운 기분이 교차하는 심정이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역사를 접하느냐에 따라 같은 것을 보는 재미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역사의 놀라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르네상스부터 시작해 근대에 이르기까지 로마유적발굴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짚어가면서 발굴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아쉬움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자료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고고학적인 사료들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밀도 있게 갖추어져 있어서 수월하고도 넓은 지식을 쌓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반면에 책을 읽는 동안 부족한 나의 지적 수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더 열심히 공부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대 로마라는 매력적인 이름에 이끌려 많은 기대를 하고 읽었고 발굴의 역사와 유적이 발굴되는 과정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대 로마의 많은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된 것 외에도 근대 건축물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이 많아 현재도 꾸준히 발굴작업 중이라고 한다. 로마를 비롯하여 전 세계 건축 유적들을 발굴하고 잘 보존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세대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자그마한 의지도 가질 수 있었다.책을 읽는 내내 로마를 다시 한 번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함을 주는 도시, 로마! 독서는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시간,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자극을 주어 늘 내게 기쁨을 선물해 준다.
(서양건축사/독후감)-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지금 수업 시간에 배워 나가고 있는 파트인 이집트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유물에 대한 자세한 그림과 내용을 모두 담고 있기에 늘 궁금증을 가지고 언젠가는 꼭 가볼 수 있기를 소망하던 이집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장거리 통학을 하는 나는 대중교통에서 틈틈이 책을 읽어야 했지만 읽은 후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서 이집트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고 후에 기회를 내어 꼭 한번 이집트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알렉산드리아 인근 로제타에서 프랑스 육군 장교가 흑색 현무암 비석을 발견하였다. 비석에는 같은 내용의 문장이 세 가지 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을 수행하던 학자들은 이 비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로제타스톤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 생각했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책은 이로써 잊혀진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신비를 벗기려는 호기심 많은 사람의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수많은 도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그 수많은 고고학자와 탐험가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위해, 혹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때로는 부를 얻기 위해 발굴의 역사에 참여했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전설적인 보물의 발견, 탐욕스러운 도굴꾼, 열정적인 고고학자, 파라오의 복수, 파라오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연상시키며 이집트에 대한 환상과 궁금증을 유발했다.프랑스와 영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것이 아닌 역사, 토지와 곡물, 자원과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이집트를 탐구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그 무한한 역사의 증거물들을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으로 모두 옮겼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써 이를 이용했고 한다. 이 책은 이집트 문명이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고 공개되어온 역사를 알려 주고 있기에 책을 읽으며 인간의 탐욕적인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신비와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집트 문명. 그 찬란한 인류 역사의 기록은 아직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도굴꾼들과 몰지각한 학자들 때문에 현재 이집트에는 그 문화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지만 가까운 미래 언젠가는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물과 문화가 꼭 이집트인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며 문명과 역사의 보존, 그 가치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 비교자연철학적 관심은 배격하고 윤리적 문제에 골몰한 소크라테스는 동시대의 철학자였던 소피스트와 함께 처음으로 인간에 대해 철학적 관심을 가진 철학자로서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을 철학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소피스트와는 반대로 진리에 대해 절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며 보냈다. 그는 무지를 악으로 간주했기에 상대방의 무지를 깨닫게 한 대화법인 산파술을 대화에 사용하여 상대의 이야기에서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행동을 취했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결코 답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종결점이 없는 아포리아의 상태로 이끌어 간다. 대화의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려 무지를 자각시켰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포리아에 의한 놀라움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식은 글이나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해서만 전달된다고 역설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림으로 기록할 때 그 그림은 죽어있듯이, 살아 있는 말을 문자로 쓸 때 문자로 기록된 말은 죽어있다고 말한다. 문자로 된 말은 질문을 던지지도 질문을 받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쓴 것 역시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거리의 대화로서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혐의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정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가주의를 주장하게 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그리스에서 반사회적이라는 혐의를 받아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된다.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젋은 때에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가 사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의 철학의 시작은 소크라테스 철학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며 소크라테스의 절대주의적 입장과 이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이상적 사상과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한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로서 참된 진리와 진실이 존재하는 이상향과 같은 세계이며 철학자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세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세계는 현실 세계로서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진리가 없고 진실이 없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를 체험한 철학자들이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계급을 인정해 세 개로 나누었으며 이들이 각각 추구해야 할 덕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 군인, 일반 백성이 각기 덕을 추구하면 사회의 덕으로서 정의가 실현된다고 주장했다.둘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동질성을 갖는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기록하지 않았기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의 기록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글을 통해서 하나의 철학적 동일체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철인의 말을 기록한 대필가로 존재하지 않음은 분명한 이유를 가진다. 초기 대화편과 후기 대화편에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를 고대 철학사의 연구가들은 플라톤이 젊었을 때 쓴 초기 대화편에서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철학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 원숙한 나이에 쓴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에서는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서 플라톤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처음에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대변하는 글을 썼다면 그 후는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자신의 철학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종착점을 의미하는 아포리아의 상태로 상대를 이끌어서 무지를 자각시킨 엘렌쿠스로서의 철학은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일 없이 동일한 것으로서 머무는 영원불변한 것인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근거를 얻게 된다. 즉 우리는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통해서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제대로 독해 할 수 있게 되며 아포리아가 해결불능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탐구의 시작이 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독후감)-간디 자서전을 읽고-간디는 20세기의 인류사에서 하나의 조명탄과도 같다. 간디라는 빛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길을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869년 인도에서 태어나 1948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간디는 개인적 진실의 추구로부터 사회적 진실의 추구에까지 평생을 진실의 추구로 살았다고 한다. 그가 거부한 것은 영국이 아니라 서양 제국주의 문명 자체였다. 간디의 비폭력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소극적인 무저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도리어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서 서양적이고 근대적인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지역 자치를 중심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돈을 최고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철저한 무소유를 추구하며 소유욕뿐만이 아닌 성욕을 포함한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했고 또 실천하고자 했다. 출생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일생의 표어는 ‘진실’이었는데 그는 평생을 수난과 고난을 겪으며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폭발하는 혼이었기에 누르면 누를수록 더 일어섰고 뺏으면 뺏을수록 더욱 커졌다. 그는 사랑을 모든 선의 근본으로 여겼으며 민족주의가 박해하면 민족을 초월해 인도주의에 오르고, 인종 차별로 인해 업신여김을 당하면 인종을 초월해 세계로 올라갔다. 그는 일생을 통해 반서양주의, 비폭력주의, 아나키즘을 주장했다.간디의 반 서양주의는 영국이 인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인도인이 영국인에게 인도를 내주었다고 말하며 영국인이 인도에 있는 것은 자신의 무력 때문이 아니라 인도인이 그들의 지배를 지속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인도가 자본주의에 젖었기에 자본주의 침략을 받았으며 이러한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 지배를 몇백 년간 스스로 받았다고 진단하며 무엇보다도 근원적인 해결은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임을 주장했다. 지배를 지속시킨 본질이 자본주의 내지 산업화 내지 근대화라고 보고 그것에 반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인도의 독립이란 영국이 생각하는 서양문물에 대한 반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상징인 물레잦기와 비폭력 운동을 주장했고 물레 잦기는 지배 대상이었던 개인, 가족, 마을, 지역을 주체로 하는 자치 생산, 자립 노동의 상징이며 비폭력 운동은 소위 인민 전체를 동원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자치, 자립적 운동 방법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모든 인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재창했다. 그는 자유 -> 자치 -> 자연의 길이라는 제3의 길을 주장했고 도덕과 양심의 하나로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며 사유재산제도 부정하고 자급자족의 농장을 설립(균등한 분배를 이상으로 삼았으나 그것은 실현될 수 없기에 공정한 분배를 위해 일함)하고 인간의 노동력으로 맡을 수 없는 공적 사업을 위한 기계는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본은 반드시 노동의 종이어야 하지 주인이어서는 아니 되고 노동과 자본은 서로 의존관계로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인민은 국가에 대항해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어떤 환경에서는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개인주의적인 사회주의자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간디의 진실 종교는 비폭력 주의였고 그의 신앙의 대상은 진실이었다. 이는 절대적인 원리나 진실이 간디에게 있어서의 신으로서 여겨지며 구체적 인물 혹은 대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간디는 유신론자이나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한다. 즉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인 진실 추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의 추구, 곧 진실에 가까이 가는 것뿐이며 그것을 간디는 사랑이라고 하며 [사랑 = 아힘사 = 비폭력]을 주장했다. 그에게 종교란 언제나 행동과 실천을 의미했으며 이는 절대적인 가치인 진실에 대한 탐구일 뿐이라고 여겼다. 간디의 ‘진실인 신’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존재 속에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명상이라는 것을 항상 현실 속에서 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동굴에 숨어서 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의미가 없음을 말하며 즉 자신의 실험은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이지 골방에 숨어 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그의 모든 삶의 목적은 진실이며 그 수단은 비폭력이었다. 그의 비폭력은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것조차 필연적으로 다른 생명의 파괴, 즉 폭력으로 이루어지기에 따라서 완전한 비폭력이란 있을 수 없었고 폭력이란 살상은 물론, 분노, 증오, 악의, 자존심을 가지고 직접, 간접으로 생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까지 포함하며 모든 권력의 지배도 역시 폭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폭력에 대한 그의 비폭력은 그러한 폭력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이자 그것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투쟁을 뜻했으며 이러한 비폭력은 엄청난 수난과 인내를 요구함은 물론이었다. 그의 폭력의 거부는 진리의 법에 어긋나는 세속의 법을 모두 거부함을 뜻하며 어떠한 행정 활동에도 협력하지 않는 것이었다. 즉 그는 권력 자체를 폭력으로써 거부하며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을 거부함과 동시에 자신의 권력도 부정하며 간디주의라고 하는 것도 거부했다.그는 “노예의 쇠사슬을 끌고 정규 교육을 받느니 차라리 자유를 위하여 무지한 채로 돌을 깨는 편이 낫다.”라는 말을 하며 자식들에게 정규적인 학교 교육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박함과 봉사의 정신을 가르쳐 줄 수 있었던 자기만의 방식의 교육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진정한 행복은 손과 발을 적절하게 사용할 때 가능하다.”라는 말을 통하여 기계문명의 무분별한 수용을 경고했다. 기계문명은 결국 수공업을 사라지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인도는 더 가난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간디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상의 상징으로 물레를 언급했으며 “물레가 내 방에서 윙윙 즐겁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그에게 신문 발행은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서 매우 중요했다. 처음으로 발행한 을 통해 그는 인도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간디는 스스로가 자신이 아나키스트임을 일찍이 자처했다. 그는 비폭력적 아나키스트이고 특히 애국주의자 아나키스트임을 분명히 밝히고 조국을 사랑하는 아나키스트임을 강조했다.강압 대신 비폭력, 착취 대신 봉사, 소유욕 대신 포기, 계급이나 국가나 중앙집권 대신 계급도 국가도 없는 지역별, 개인별 창의력에 기반을 둔 자치적 마을공동체의 민주주의에 의해 실현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의 폭력적 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비폭력 행사에 근거한 조직을 통해 각 개인의 최대한의 협력이 이루어질 때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목적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행동의 역동적인 기술인 진실관철 투쟁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에 아나키즘을 넘어설 수 있었다.간디는 중앙집권적인 산업을 부정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는 간디가 구상한 경제 재건의 기본이었으며 간디는 마을을 기본으로 한 국가의 위계질서를 인정한 점에서 다른 아나키스트들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국민 복리를 증진하는 국가의 행위를 긍정한 점에서도 달랐다.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고 생각했으나 정치의 힘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디는 국가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적인 직접 행동에 의해 정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공공 봉사 기관이 생겨야 한다고 보았다.결과적으로 간디는 국가권력, 기계와 대공업, 그리고 도시로 상징되는 서양 근대문명을 부정하며 국가가 개인의 개성을 압살하는 조직적인 폭력이고 국가는 물질적 안락한 증대만을 목표로 하는 물질문명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목표는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로 나아가 상대적으로 저개발인 외국을 침략, 착취하고 제국 간의 우위 유지를 위한 전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는 노사 대립이 격화되고 기계화에 따른 실업의 발생을 초래하고 그런 기계화, 공업화에 의한 이익은 결국 소수의 지배계급에만 주어진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간디의 반 근대-반국가-반 도시 사상은 소박한 자연생활에 대한 동경과 농업 및 농촌의 중시, 촌락공업의 진흥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 그리고 지방분권 사회의 수립, 정치의 원리로서 지방분권 공동체 분권의 사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책을 읽으면서 간디라는 사람은 참되고 진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평생 자아의 실현을 원했고 모든 그의 실험은 감춘 것이 아닌 드러내놓고 한 것이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경험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항상 솔직했으며 당당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그러나 내가 절대의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는 한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 상대적 진리를 굳게 잡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 말은 나의 마음에 세차게 와닿았고 지금까지 나의 관념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주었다. 그는 자기 정화를 원했으며 “완전한 정화에 이르려면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절대적으로 정욕을 버려야 한다며 사랑과 미움, 친밀함과 소원함의 대립이 이어지는 세속의 흐름을 초월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아직도 그는 자신의 교활한 정욕을 정복하기란 무력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 부분에서 더할 나위없는 공감을 했다. 간디의 실험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간디의 진솔함과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는 한 권의 책으로 메말랐던 마음을 풍성하게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