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 이유사명감으로 다가온 한권의 책......매월 초 사단 정훈부에서 소개하는 ‘이달의 추천도서’는 나의 관심사이다.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진중문고 / 참고도서에서 선정하거나 사단 자체적으로 오랜 고심 끝에 선정한 책이라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할뿐더러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고 또한 軍 생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 즐겨 읽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3월의 추천도서 「덕혜옹주」. 제목만 보고 조선시대 황족인 덕혜라는 여자의 가슴 미어지는 사랑을 다룬 소설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난 덕혜가 일제강점기 하에서 조선 마지막 황녀로 살아가면서 겪는 비참한 내용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아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내가 잘 몰랐던 역사, 황녀라는 고귀한 신분임에도 한 번도 영광되게 살지 못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간 그 삶을, 두렵지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조선 마지막 황녀, 그 비참하고도 쓸쓸한 삶.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로 인해 일본의 탄압이 극도로 심해지던 시기, 고종의 막내딸이자 덕수궁의 꽃인 덕혜옹주가 태어났지만 궁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지라 처음에는 이름도 부여받지 못했다. 지나치게 영민했던 그녀는, 그 영민함이 주위의 걱정거리였다. 덕혜가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고종은 자신의 심복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의 약혼을 추진하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고종황제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옹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한편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로 인한 것이라며 가슴에 비수를 세우게 된다. 황족에 오름으로써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지만 그 대가로 옹주는 일본 고관 및 조선 양반의 자제들이 다니는 히노데 소학교에 유학을 가게 되지만 사실상 볼모였다.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는 학교에서 일본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지만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해나간다.그렇게 덕혜옹주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대한제국의 황녀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한편 돌아가신 아버지, 조선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생활하게 된다. 그러던 중 순종황제가 타계하게 되었지만, 덕혜는 일본정부에 의해 조선으로 국장을 치르러 갈 수가 없었다. 뒤이어 덕혜의 어머니인 양귀인 마저 유방암으로 영면하게 되고, 덕혜옹주는 조선으로 갔지만 복상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월은 덕혜의 가슴에 상처만을 남긴 것이다.이러한 고통도 잠시 덕혜옹주는 일본에 의해 쓰시마섬 도주의 양자인 쇼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슬하에 딸 정혜가 있었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 정혜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조선인임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딸과의 관계마저 틀어지자 덕혜의 병세는 악화되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결혼생활도 끝이나 버린다. 그리고 딸 정혜마저 자살을 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덕혜는 구국청년단에 의해 탈출에 성공, 조선으로 귀국하여 그토록 그리던 창덕궁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게 된다.대한제국 황녀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은 덕혜옹주를 기리며......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느낀 점은 ‘아! 책이 참 무겁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서, 간결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책이 의미하는, 軍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둡고 암울했던, 그래서 더더욱 알기를 꺼렸던 역사의 한 장면을 나는 목격하고 말았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에게,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라고.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또는 그 시대를 사는 민중의 심정이 되어, 여러 사건들을 이미지화하여 五感을 통해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의 억압과 멸시에 분노하기도 하고, 망국의 서러움에 눈물도 흘렸다. 내 조국, 우리말과 글,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있는데, 그들의 것을 익히고, 그들의 것이 옳다고 교육받는 당시의 현실에 나는 너무 분노했다. 일본 정부에 의해 조선 황족은 황족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무시 받았다. 사실상 간판만 걸려있었던 조선정부의 현실을 보면서, 오늘날 내 조국이 있고, 그 조국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로 따지면 덕혜옹주는 ‘국민여동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조선을 상징하는 국민여동생 덕혜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조선인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는 것이었다. 김연아가 올림픽 챔피언으로 인해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자 일본인과 강제결혼을 시켰다고 생각해보자.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하물며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 본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그 신분으로 인해 아프고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참고 견뎌야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부러지느니 휘어지는 게 낫다며 비바람이 불면 숙였지만 그 속에서 비수를 세우고, ‘모든 것은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라는 의친왕의 말을 가슴에 새겼지만 그 순간은 이미 그녀의 심신이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져서 왔다.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선의 황녀라는 존엄과 위엄, 조국애를 잃지 않았던 덕혜옹주. 우리가 그녀를 기려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본 학교에 다닐 적에 일본의 황녀 앞에서도 “나도 조선의 황녀”라며 당당하게 맞섰던 대목에서 가슴 뭉클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어 조선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던 그녀는 조선에 돌아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그녀의 조국애에 눈물이 핑 돌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혼란의 시기, 그럴 때일수록 정직하게 살아야.소설 속에는 일제치하라는 혼란한 시기를 헤쳐 나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지고 있다. 갑수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혼란한 시기를 틈타 신분상을 꾀하고, 한창수는 주요 고위직에 오름으로써 그 권력을 이용해 같은 민족을 핍박한다. 반면, 허승, 박무영, 기수와 같은 인물은 일본 앞잡이들을 색출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살아간다. 또한 애국청년들을 위해 뒤에서 조용히 원조를 해주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옳은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이러한 격변기를 살고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라는 자문을 던져봤다. 솔직한 나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는데, 사실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사람은 그 상황에 부딪혀봐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하지만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역사를 가르치고, 위대한 조상들의 정신을 기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덕혜옹주」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관과 자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건 바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자신의 가족, 이웃, 친구, 연인들이 불행하지 않고 그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하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 바로 그 자체가 나라사랑이며, 나라사랑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정직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영광과 안녕을 위해 이웃과 조국을 욕보이는 삶은 결코 정직하다고 할 수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가짐이 공동체의 행복이자 나라사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