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사랑. 결혼)나의 연애관과 결혼관스무살 나이에 연애관과 결혼관이라는 주제가 뜨거운 감자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요즘 특히나 중요한 문제이다. 20살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못한 내가 얼마 전 연애라는 것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연애관이라는 것을 대학교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남자 중학교와 남자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연애보다는 성적과 축구 그리고 동성친구들간의 관계에 오히려 관심이 많았다. 여자친구라는 것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뭐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오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대학교에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성친구들을 알고 여러 커플들을 보면서 나도 ‘진정한 연애란 무었인가’, ‘내가 원하는 연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그렇게 형성된 나의 연애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간이다. 연애를 하기에 앞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시간이 사귀기 앞서서의 적당한 시간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은 시간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다. 왜냐하면 연애라는 것은 혼자 잘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연애라는 것은 혼자하는 수영이나 권투와 같은 개인종목이 아니라 한팀이 되어 벌이는 축구와 복식경기와 같은 팀플레이이다. 예를 들어 축구 시합을 할 때 있어서 내가 우리팀 아이들과 전혀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우리팀 아이들 모두를 잘 알고 친한 상태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분명히 경기력에 차이가 있다. 만약 같은 팀 끼리 서로를 잘 안다면 일단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기대치와 보여줄 실력이 일치함으로 서로는 긴장할 필요가 없으며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 는 적어지고 만약 실수가 나오더라도 서로를 쉽게 이해해 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격려해 줄 수 또한 있다. 이런식으로 경기가 계속 될수록 서로의 실력은 향상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한다면 이와 같은 상황보다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서로의 기대치와 서로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은 일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며 이는 곧 실망감을 가져 올 것이고 둘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도 경기를 같이 해나가면서 친해질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일단 한팀이 되고 경기를 하면서 그렇게 다투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안 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이렇듯 친하고 한팀이 되는 경우와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팀이 되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연애를 함에 있어서 즉, 서로 한팀이 됨에 있어서 먼저 서로를 잘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연애관의 기본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도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만 한 팀을 할 것 이다. 헤어진 친구들의 말을 가끔 들을때면 자기는 정말 잘했는데 왜 헤어진지 조차 모르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서로를 알아갈 사전 작업을 하는 시간이 분명히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헤어질 때 마저도 왜 헤어지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를 확실히 알고 한 연애의 시작은 그만큼의 충돌을 막아줄 것이고 이는 보다 행복한 연애생활을 가져다 줄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연애를 시작한지 1주일이 갓 넘은 나에게 요즘 고민거리는 서로의 이성친구 문제이다. 사귀기 시작했을때 “나는 여자친구에게 너가 다른 남자 친구들과 밥먹고 그러는거 싫어. 그래도 되지만 싫어” 라고 말했다. 그냥 그게 나의 속마음이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믿음’ 이것이야 말로 서로의 이성친구 문제를 해결해줄 답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누구보다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아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또는 사귄다고 해서 다른 친구 관계 모두를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이성, 동성을 떠나 마찬가지이다. 간혹 애인과 헤어지면 주위에 남은 친구가 없어서 외톨이가 된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애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작 자신에게 역시 중요한 주위 친구들에게 소홀히 해서 애인과 헤어진 뒤에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돈까스라고 해서 돈까스만 매일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돈까스가 정말 먹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반찬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며 맨날 돈까스만 먹다가는 영양 불균형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오늘 아침 밥상에 돈까스가 나오지 않는다 해서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만날 시간 역시 필요하며 애인과의 관계만 중시하고 다른 친구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주위에 친구를 잃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이 매일 같이 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나와 사귀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친구를 하는 것은 절대 반대 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다른 이성과 친구를 하는 것도 같은 문제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의 친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서로가 손해를 입을 것이다. 따라서 연애를 함에 있어서 서로의 친구 관계는 개방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나와 내 여자친구 이렇게 둘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어려운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비록 지금 나와 함께 있지는 않지만 나를 가장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는 믿음,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믿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나 스스로 믿을 수 있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을 가진다면 질투를 할 일도 괜한 걱정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나의 연애관에서 중요한 부분은 책임과 이해이다. 이는 나의 요즘 가장 관심사인 스킨쉽 문제의 해답이기도 하다. 스킨쉽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막무가내식의 책임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아이를 책임질 꺼야. 난 충분히 책임질 수 있어’ 라는 생각만으로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킨쉽 뿐만이 아니라 연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여러 행동과 의사 결정에 있어서 이해가 선행되고 책임이라는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즉 나의 연애관에서 중요한 부분은 서로를 알아갈 충분한 시간과 믿음, 그리고 이해가 전제된 책임이다.연애의 끝은 결혼이다. 물론 시작부터 결혼을 전제로 또는 결혼을 생각지 않고 하는 연애도 있지만 연애의 끝이자 연애의 가장 이상적인 종착점은 결혼이다. 결국 연애의 연장선은 결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음줄이 될 수 있는 연애와 결혼은 결코 같지 않다. 흔히들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고 하며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따라서 나의 결혼관 역시 연애관과는 다르다. 서로 좋아하면서 한팀이 되는 것이 연애라면 결혼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살고 같이 아이를 키우고 같이 재정을 관리하고 같이 같은 꿈을 가지고 살며 같이 늙어가는 결국 같이 같이 같이 ... 이렇게 모든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한팀과 하나는 다르다. 둘이서 하나가 되는 일은 한 팀이 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그렇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희생이다. 이는 요즘 큰 문제거리인 육아 문제의 해답이기도 하다. 둘이 하나 됨에 있어서 어쩔수 없이 버려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만 한다면 하나가 될 수 없다. 또한 한 사람만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진정한 하나됨은 불가능하다. 서로는 몇 십년간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결혼을 시작함과 동시에 희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야 한다. 자신의 파트너를 위해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할 용기도 있어야며 육아문제와 집안 살림과 같은 문제도 한사람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 희생해야 한다.
공공이익을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야 하는가?- 개인의 ‘내부고발행동’을 통해서한 거대한 회사의 중역이 그 회사의 제품이 대중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회사가 숨기고 대중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에 대해서 회사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회사는 그의 의견을 듣지 않고 회사내부 사정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한 문서에 서명을 하게 한 후 그를 해고하고 만다. 그가 회사를 나간 뒤에도 외부로 회사의 치부를 발설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회사는 그를 압박하고 가족들에게까지 위협을 가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자기 가족의 안위와 대중의 건강을 위해 진실을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위와 같은 상황은 영화 ‘인사이더’속에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사건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결국에는 회사의 비리를 사회에 밝히게 되고 대중들의 건강을 위해 제품은 개선되게 된다. 이러한 주인공의 행동을 ‘내부고발’이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whistle blow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단어 뜻 그대로, 어떤 특정의 불법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묵과하지 않고 호루라기를 크게 불어 그 사실을 공적으로 알리는 행동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황우석 박사의 실험결과 조작사건을 거쳐 김용철 변호사의 기업비리폭로까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내부고발’에 대해 여러 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과연 강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며,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양심의 문제이므로 강제할 수 없다.영화나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겪는 어려움은 극적인 전개를 위해 약간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길을 걷고 있다. 내부고발자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문옥 감사관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문옥 감사관은 1989년 감사원 근무 당시, 재벌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에 관한 과세 실태를 감사하면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비율이 과거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훨씬 높은 43.3%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감사관은 상부로부터 과잉감사로 물의를 빚지 말라는 주의를 받게 되고, 감사는 갑자기 중단된다. 이루 이감사관은 감사가 중단된 배경에 재벌기업의 로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관한 보고서를 1990년 5월초에 상부가 아닌 신문사에 제보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공무상 기밀누설로 구속되었으나 국민의 알 권리등에 비추어 볼 때,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이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는다. 이후 그는 만 6년에 걸친 소송 끝에 1996년에 복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부고발자가 겪는 어려움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 중 황우석 박사에 대한 정보를 처음 언론사에 전해준 모 의사는 그가 다니던 병원에서 권고사직을 당해 1년 동안 무직신세였으며 그 이후로도 동료의사들의 무시와 무언의 비난을 당하고 있다.이렇게 내부고발자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사회의 투명성제고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얻는 이익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부고발 이전에 살았던 인생이 뒤바뀔 정도로 사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내부고발에 관한 한 연구에서 내부고발자 16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그들 중 62%가 직장을 잃었고 11%가 감봉을 당했으며 나머지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직을 옮겼다고 했다. 이런 사례들로 봤을 때 내부고발문제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다시 말해, 이런 상황은 당사자의 문제이고 우리가 내부고발 이후를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에 내부고발을 결정하는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고 강요될 수 없다.현재 세계적으로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를 법제화하고 보호기구를 만드는 추세이다. 이는 특히 국제적인 자본거래가 하루에도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계 비리 등의 기업범죄를 고발하여 투명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내부고발자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상대적으로 이른 2001년에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어 부패통제를 위한 전문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를 설립하고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서 내부고발자가 법적으로 이전에 누려왔던 사회적 지위 등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법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예에서도 보았듯이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조직내부의 융화와 단결, 공동체 의식 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내부의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는 행위가 심정적으로 용인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법적으로 아무리 내부고발행위를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현실에서 수용되지 못한다면 법규의 효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고발에 따른 불이익조치를 취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형태의 차별이나 보복이 가하여 질 수 있고, 이것은 법이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고발을 강제한다면 선뜻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설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성매매는 국가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익명의 섬’을 읽고 -익명의 섬은 주민 구성원이 대부분 친족으로 이루어진 동족부락을 배경으로 한다. 화자는 교대를 졸업하고 인적 드문 외딴 마을의 초등학교로 부임하게 된다. 그 마을엔 타지에서 넘어온 걸인 하나가 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깨철이다. 마을 사람들은 깨철이를 병신 취급하며 무시하지만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깨철이는 아낙들의 성욕을 해소해주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다른 구성원들도 그 사실에 대해 공공연히 알고 있지만 부락의 질서 유지를 위해 묵인하고 있다. 인척들끼리 상피(相避) 붙거나 사돈끼리 배가 맞아 집안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뒤탈 없는 깨철이 쪽이 낫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깨철이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가 성매매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한국은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004년 건전한 성윤리 확립과 매춘여성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성매매특별법을 시행된 바 있다. 성매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나? 정부의 ‘성매매특별법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이후 7년간 전국 집창촌 업소 39%가 폐업했고 집창촌 매춘부 수는 46% 감소했다. 얼핏 보기엔 성매매특별법이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키스방, 포옹방, 오피스텔 매춘 등 각종 변종 업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성매매의 규모는 오히려 커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변종 성매매는 전체 성매매의 84%에 이를 정도로 크게 확산되었다. 양성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더욱 퇴폐적, 변태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도 문제였다.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다 그룹섹스나 동성애, 심지어 미성년자를 매개로 한 성매매까지 등장하게 되었다.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본래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또한 인간에게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기 때문에 억압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절하게 해소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욕을 무시하고 가둬버린 채 해소구를 막아버리니 더 큰 반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창제가 잘 정립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국가보다 인도, 사우디, 한국, 중국, 필리핀, 파키스탄 등 매춘을 전면 금지하는 국가에서 각종 성범죄의 발생빈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성욕 해소가 성범죄 예방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이다.여성인권단체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성매매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작 당사자인 성매매 여성들은 이런 국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위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그녀들을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매도하고 그녀들의 자유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성매매가 음성화되면서 오히려 매춘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국가가 등을 돌려버리니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가 음지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제대로 된 성병 정기검진이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이로 인해 에이즈 등 바이러스성 성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성매매는 성매매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며,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 성매매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을 사고파는 행태가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가진 정치인, 기업인들이 스폰서라는 명목으로 연예인들과 섹스를 즐기고 있는 것도 현실이며, 어린 여성이 돈을 목적으로 늙은 부자의 애인 노릇을 하는 것도 더 이상 놀라울 게 없는 일이다. 과연 성매매가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 주범이며, 성매매가 없어진다고 그런 풍조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성매매 반대론자들은 성매매를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풍기문란행위라고 간주하는데 이것 역시 성매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매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해야 한다.- 영화 ‘트루맛쇼’를 보고 -그 제목의 유사성에서 알 수 있듯 는 의 한국판 버전이다. 다만 그 대상이 맛집으로 국한되었을 뿐 전하려는 큰 메시지는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실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에서 전하는 정보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많은 부분을 미디어에 의존하여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정보의 조작가능성은 치명적일 것이다. 어느 소식 하나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셈이 될 테니 말이다. 때문에 나는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대중매체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현대인은 미디어 소비자로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그 사실이 특정 개인 또는 단체에게 유리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진실을 알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만약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권리 중 하나를 잃은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천안함 사례에서 미디어 소비자들의 알 권리가 존중되고 있지 않음을 보았다. 천안함 사건 발생 후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있었다. 요점은 각 언론사의 보도내용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조작되고 가공되었다는 것이다. 그 진실여부 공방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즉, 한국의 미디어 소비자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진실을 알 수 없었고 판단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대중매체의 정보조작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권리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가공된 사실의 전달로 인한 피해는 미디어 소비자의 몫이다. 의 맛집의 경우에서 보듯 허위의 맛집을 진짜처럼 보도하는 행위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는 그 방송을 보고 그 음식점을 방문하는 소비자일 것이다. 맛집 방송 보다 더 큰 규모로 이러한 허위 정보의 조작이 이루어진다면 그로 인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는 공영방송의 신뢰성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대중매체 관계자들의 소비자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정보를 허위 가공한다는 사실이 폭로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최악의 사태는 국가 등의 권력이 미디어의 정보조작 가능성을 악용하는 경우로 위의 어느 경우보다도 심각한 악영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독재정권에서 핵심은 대중매체를 장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음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견제 능력을 마비시키고 독재정권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지금 세계에 남아있는 독재정권들은 모두 언론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은 자연스레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기반은 사실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전한 언론이며 이를 통해 시민들은 견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혹자는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서 대중 매체가 적절하게 사실을 가공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시청률 등의 인기에 목숨을 거는 대중매체들의 경쟁에서 적절한 자극성의 주입과 가공을 통한 대중들의 관음증 이용은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방송사들간의 경쟁으로 인해 그들이 가져야만 하는 기본정신이 훼손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진실성 마저 갖추지 못한 미디어의 보도는 보도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한편, ‘진짜 리얼한 사실’은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조작된 가상현실에 매몰되어 실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권력에 이용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진실은 원래 불편한 법이다.
유기동물 안락사 과연 최선인가?- 뮤지컬 ‘도도’를 감상하고 -부잣집에 살던 애완견 ‘도도’는 어느 날, 사모님에게 실례를 한 이유로 사모님에게 버려진다. 버려진 도도는 자신의 어미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오줌 냄새를 따라 사모님의 집에 찾아 가지만 쫓겨나고 만다. 사모님의 집을 떠나 방황을 하던 중 도도는 버려진 개들과 만나게 된다. 갈 곳이 없는 도도는 그들과 함께 지내다가 도도가 나무냄새라고 부르는 박스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 비슷한 처지에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던 중 불의의 사고로 도도는 동물보호소에 보내지게 된다. 동물보호소에서 열흘 안에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살 처분이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도도는 박스 할아버지(나무냄새)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기견들과 힘을 합해 동물보호소를 뛰쳐나온다.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시장규모 1조원, 반려동물 양육인구 천만명 시대에 살 고 있다. 이와 비례해서 유기동물의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농림수산 식품부의 통계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3년 유기동물수가 2만 5천여 건에서 2010년에는 그 수가 10만 900여건으로 4배가량 증가하였다. 현재 유기동물에 대해서는 전국 223개의 동물보호소에 보내져서 10일안에 주인이 찾아오면 귀가 조치시키거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면 분양을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락사하여 소각처리 하고 있다. 분양률도 전체 유기동물 수에 20~30%에 지나지 않아 동물보호소가 동물보호가 아닌 동물처리소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애완동물들은 인간의 반려동물로서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때로는 친구역할과 자식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그러나 그런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단지 관리가 어렵고 편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이름아래에 수많은 유기동물들을 안락사 시키는 현실은 결코 옳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별다른 생각없이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소중한 생명을 가진 동물들에게 열흘이라는 시한부를 주고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좌지우지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행동이다. 유기동물안락사에는 많은 부작용이 뒤따르며 안락사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안락사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물들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들이 갖고 있는 가장 1차원적인 욕구는 바로 생존의 욕구일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신분이 귀하고 천하고를 떠나서 모든 이들이 인권을 갖고 보장받을 권리가 있듯이, 말 못하는 동물들도 보호받고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지 버려진 개체 수가 워낙 많고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명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들 또한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유기동물들이 급증한 원인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교육 없이 무분별하게 구입을 하는 구매자의 책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유행처럼 번지게 한 미디어의 책임, 반려동물의 개체 수 조절이나 구매자의 자격요건을 따져 보지 않은 국가의 책임이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따른 정책제도와 지원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많은 반려동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행동일 것이다.현재 유기동물들에 대한 안락사 절차 방법으로는 마취약을 투여한 뒤에 의식을 확인 후 안락사약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좁은 보호소 안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보다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사를 통해 안락사에 이르는 경우는 일부분에 해당하고 대다수는 질병에 걸려 앓다죽거나 식용농장으로 넘겨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2005년 11월 ‘세븐데이즈’ 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좁은 견사에서 물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굶어죽는 위탁보호소의 유기견들의 실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렇듯 안락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의 미비와 정책적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는 시점에서 안락사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 단순한 희생을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