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이해 레포트생명의 신비, 과연 그 신비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철학의 이해 리포트]생명의 신비, 과연 그 신비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우리는 간혹 스스로에게 자문하곤 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물론 1차적인 물음의 해답은 - 부모님에게서 나왔다 - 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심층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확고히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얼버무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정규교육을 통해 세포의 구조와 형성과정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이로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본다. 그러면 ‘그런 메커니즘을 누가 만들었을까’의 질문을 누구든 한번 가져 보지 않았을까. 그러고 그런 질문의 답을 구하려 하지 않았을까. 본인은 언제나 지금의 문제의 대한 답을 일단 과거의 누군가에게서 찾아보려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지금 하는 고민은 과거 누군가도 분명히 했을 것이라, 게다가 과거의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지식에 비춘 답을 내려놓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지금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희랍의 철학자에서부터 그런 원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인데, 그들은 신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을 모두들 품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그들의 생각은 창조론에 가까웠지 않았을까 싶다. 단지 그들은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고, 어떤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골똘이 연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 과학이 진보한 지금에 와서도 창조론은 신봉되고 있는데, 조금 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여 내세운 것이 바로 ‘지적설계론’이다. 이것은 지적존재가 세계를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가설인데 이는 과학이 증명해 낼수 생명의 복잡성은 절대적인 지적존재가 설계하여 창조하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지적설계론은 절대 기독교의 교리만을 위해 세워진 가설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목적의 기독교의 세계관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에 기독교도들은 이 가설에 큰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다. 또한 이 지적설계론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개념이 바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개념이다. 이는 쉽게 풀이하면 어떤 시스템이나 기계 - 여기서는 신체의 세포/기관들도 기계라고 상정 - 는 모두 각각의 쓰임새 있는 부품들로 만들어져 있고, 부품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완벽하게 청사진이 짜여 있지 않으면 그 기계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지적설계론은 과학적인 증명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종의 창조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로 지적설계론의 논거 전개를 보면 기존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에 대한 반박을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을 보면 복잡한 생물의 지금의 자연선택론에서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 하는 부분들에 ‘지적 설계자의 손길’이 들어갔단 믿음이다. 아주 복잡한 생명체 구조, 불완전한 화석증거들, 또는 아직 확실한 설명이 불가능한 생명체 탄생의 순간 등을 예로 이러한 과정에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가 들어갔다고 주장하며 자연선택론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복잡함의 정확한 정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또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논하고 있기에 과학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과학의 신빙성은 계량화과 논리적 인과관계의 정립이 만족되어야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지적설계론은 자신들은 과학적이고 과학자들에게 인정받은 이론이라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과학적이지 못하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아직까지 자연선택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그러나 과거에 천둥, 번개의 생성을 설명할 수 없어 신의 권능으로 보았던 과거의 무지한 인간의 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인간은 자신이 인식하는 것 밖에 인식할 수 없고, 또한 아는 것 까지만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점차 과학이 발전하여 생물의 신비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벗겨가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과학적 이론으로 그 심연의 바닥에 닿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심연의 바닥에는 과연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로 리처드 도킨스가 이야기 한 ‘눈먼 시계공’이 기다리고 있을지, 신학자 윌리엄 페일 리가 이야기한 ‘시계공’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잡지 못한 친일행위의 교육적 파급효과요즈음에 고등학교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교육 받을 때만 하더라도 사회 과목은 선택식으로 이루 어 지고 있었다. 즉, 한국의 근현대사와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고등교육 자체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되겠고, 또한 그러므로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 진학에서의 선호학과가 합리주의적,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지배방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경영 / 경제에 몰리는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학생들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현상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러한 현상이 단지 물질만능주의가 범람하는 현대 21세기 사회의 흐름이라고만 치부하고 말 문제인 것인가?이번에『인물로 보는 친일파역사』란 책을 읽어 보면서 나는 그 기원을 일제침략의 친일행위에서부터 찾아보고자 했다. 일제침략기에 역병처럼 창궐한 친일파세력들의 특징을 보자면, 그들은 민족적 자각이 부족하고, 신분상승과 부에대한 욕구가 누구보다도 강했던 중인, 서민계층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즉, 자신의 억눌려 있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와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충족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법론적 행위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사상이 박혀있던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일제사대주의 방향으로 그 행위가 실현되었고 그로인해 그들은 부와 권력을 원했던 대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해방이후 그 친일파세력들의 친미파로 매우 쉽게 자신들을 변태시켰는데, 이렇게 그들이 쉽게 사대성향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일종의 합리주의적 논리-그들에게 민족주의란 활용가치 없는,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사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를 그들이 그대로 답습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부추긴 것이 바로 미군정의 현상유지정책이었다. 그로인해 기존의 친일세력들은 자신의 지위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고, 또한 자신들을 살려준 미군을 당연히 찬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당시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서 외세의 힘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친일세력의 몰염치함과 그런 상황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던 혼란했던 국내외 정세를 개탄할 수밖에 없다.이 친일세력은 이로 인해 남한단독정부에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구가할 수 있었고 이는 계속 이어져 박정희에 까지 이르게 된다. 박정희에 이르러 경제개발정책으로 대표되는 근대화지상주의가 팽배된 사회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세력의 각 사회영역(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서의 고착화가 그 이후에 친일파에 대한 대국적 숙청 없이 이어져 사회 상부계층의 인물들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그러한 현실의 반영이 바로 현재의 교육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교육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보수적이고 가치편향적일 수 있는 분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로 늦어도 박정희 정권의 붕괴이후 이러한 경제적 합리주의에만 기대는 사회적 풍조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민족의식을 사회 전체적으로 세웠어야 했다 본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후 계속 각자(覺者)의 입을 막고 민중의 눈을 멀게 한 ‘극우반공이데올로기’가 쭉 이어져 오면서 제대로 된 민족의식의 성립을 방해하였고, 거기에 극우반공의 계보를 이어가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집권으로 민족에 대한 올바르고 바람직한 교육의 때가 다시 늦춰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양문화사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서평Ⅰ. 서론서양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된 촉발제가 된 사건이었던 산업혁명, 그리고 그로 인해 성립된 서구식 자본주의, 그리고 급속도로 펴져가 2000년대 현재에 주도적인 헤게모니가 된 자본주의의 신위.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으로 생긴 사회생산구조의 변화는 곧 경제체제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다방면에 영향을 끼쳐 서구식 문화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기관차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구의 이런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화폐의 증가와 같은 단순한 경제적 요인이 아닌, 종교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 상관관계를 분석한 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이다.1991년 12월 31일 소련이 해체되면서 선두적 헤게모니를 쥐게 된 자본주의는 이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이념이 되었고, 원치 않더라도 모두들 그 중점에 서있는 인물이 되다 보니 언제나 경제적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도 그런 위치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본인 개인적으로 요즘 난립하는 물질만능주의와 서구문명 사대주의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마저 느끼고 있는 차에 자본주의의 발전 동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어 흥미가 동하였다.베버는 그 특유의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베버가 있을 당시의 독일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사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독일은 관념론적 철학이 조류를 형성하던 때였는데, 이 관념론적 철학은 사건은 '해석'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 기초로 삼고 있다. 베버가 사회과학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문화적 의미에 대한 감수성과 역사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근본적인 인과적 열할에 대한 주장을 결합시키며 그의 논지를 이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베버는 그의 저서『프로자본주의 발전의 추동력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베버의 명제를 직접 현실에 대입하려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여러 개인적 성향에 따라 그의 명제를 수정, 보완하여 접목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의 저작이 아직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고,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이 논의가 사회학적으로 매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볼 수 있겠다.하지만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미래의 변화를 결정짓는 경제적 조건이 독특한 문화적 총체성 안에 잠겨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 문화적 총체성 중의 한 가지 방법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을 선택한 것이고 이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 양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Ⅱ. 본론1.『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내용베버는 먼저 종파와 계층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베버는 근대적 기업의 자본가와 기업 경영자, 또는 상층 숙련 노동자층, 특히 기술적 혹은 상업적으로 훈련 받은 수뇌들은 두드러지게 프로테스탄트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근대경제 안에서 자본소유와 경영적 지위를 보다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과 관계가 그리 명백하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교육으로 습득한 정신적. 심성적 특성이 직업의 선택과 그 후의 직업상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로테스탄트는 두드러지게 합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카톨릭교도는 어느 경우에도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다른 생활태도에 대한 원인은 오히려 주로 각각의 신앙의 항구적, 내면적 특질 속에 있는 것이지, 그때그때의 외면적인 역사적, 정치적 생활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자본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본주의에 윤리적 특색을 갖는 생활의 원칙과 관련된 성격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합법적으로 획득한 화폐는 근대경제조직 중에서 직업상의 유능성의 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루터는 각 사람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부과되는 세속내적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이 바로 신에게서 받을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수도원 생활은 신 앞에서 의롭기 위해서 아무 쓸모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세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냉혹한 이기적인 산물이라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세속의 직업 노동이야 말로 그에게는 형제애의 외적인 표출로 여겨졌다. 세속적 직업 생활에 대해 이러한 도덕적 자격을 부여한 점이야 말로 의심할 바 없이 종교개혁, 특히 루터의 업적 가운데 후대에 끼친 가장 커다란 영역의 하나이다.캘빈파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교파인데, 16,7세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발생하였으며, 가장 특징적인 교리는 은혜에 의한 선택 즉, 예정설이 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의 결의를 인간이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영원한 구원에 대하여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향해 고독한 길을 더듬어 가야한다는 것과 단적인 비인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고립화의 사상은 감각적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인간의 내면적 고립과 사회조직과의 결합은 신이 바라는 바가 사회적인 일 이라는 사상에 의해 가능해진다. 신은 인간 생활의 사회적 구성이 자신의 계명에 따라 자신의 목적에 합치하도록 조직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리는 현세 전체의 사회적 도움이 되는 직업 활동과 동일한 성격을 갖게 된다.그러나 문제는 신의 선택에 따른 인간의 확신이다. 구원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은 선택된 자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의혹은 악마의 유혹으로 단정하여 이를 무조건적, 의무적으로 거부하라고 충고하였다. 이리하여 회개하는 겸손한 죄인 대신에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성도가 육성되었다. 그리고 자신확신을 획득하기 위도식 하는 일이며, 성스러운 생활에의 노력으로부터 빗나가려는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박스터는 엄격하고, 끊임없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가르침을 설파하는데, 노동은 금욕의 수단이며, 유혹에 대한 독자적인 예방 조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 그자체로 신에 의해 정해진 생활 일반의 목적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퓨리턴의 견해에 따르면 사경제적 이해관계를 작동하는 분업의 섭리적 목적은 그 결과에 의해 식별되고, 이는 아담 스미스의 분업 찬미론과 유사하다. 즉, 신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합리적인 직업노동이다. 그리고 실천상 중요한 기준은 사경제적 수익성에서 발견된다.이렇게 확정된 직업의 금욕적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전문화된 근대적 분업의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윤 획득의 섭리적 해석은 실업가의 활동을 정당화하였다. 퓨리턴의 직업관과 금욕 생활에의 도덕적 요구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의 발전에 대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이러한 금욕이 온 힘을 기울여 현세의 생활과 그것이 주는 즐거움의 자유분방한 향유에 대항했다는 점이다. 이는 재화획득에 대한 전통주의적 윤리적 장애를 극복하여 이윤 추구도 합법화시켰으며, 한편으로 필요한 실천적인 일을 위해 부의 사용을 요구하고, 부의 비합리적 사용에는 반대하였다.체계적인 세속적 직업노동을 종교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신에 의해 의도된 이윤추구와, 금욕적 절약의 강제를 통한 부의 소비에 강요된 제한은, 자본의 생산적 투자를 가능케 하여 자연히 부를 증대시킬 수 있었고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퓨리턴적 이상은 부의 유혹이라는 과도한 압력에 대해 무력했다. 웨슬리는 부의 증가는 오만과 분노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의 현세에 대한 애착도 증가 한다고 하였으며, 신의 나라를 구하는 열정이 경제적 덕성으로 해체되면서 종교적 뿌리는 천천히 생명을 잃고, 공리적 현세주의로 바뀐다. 깨끗한 양심은 안락한 부르주아적 생활을 향유하는 한 수단이 되었고, 독특한 부르주아적 경제 정책적 윤리의 내용에 대해 갖는 중요성, 그리고 가정집회에서 국가에 이르는 사회공동체의 조직과 기능에 대해 갖는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며,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이 그 형성과 특성에서 사회적 문화조건 전반, 특히 경제적 조건을 통해 영향 받은 방식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2.『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비판가.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1913)에서 그는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방법론에 있어 베버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베버의 주장과 다르게 스페인, 아일랜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가톨리시즘은 자본주의를 조장하고 촉진하였다. 스콜라 철학의 합리주의는 자본주의적 성장에 큰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검약을 강조하고 나태를 금지하며 장사에 있어서의 정직을 중요시여긴 그들의 가르침은 자본주의 발전에 귀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스콜라 학파는 고리 대금업의 금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근대 부르주아적 자본 개념을 지지하고 화폐가 자본으로 전화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후기 스콜라 학자들은 자본의 투자와 단순한 금전의 대부를 뚜렷이 구별 짓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 대가를 받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적 경제 활동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며, 이는 칼뱅주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프로테스탄티즘의 어떤 요소들은 무의식중에 그 성장을 용이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이런 영향을 끼친 윤리적 태도들은 스콜라 철학의 원리와 동일한 것이며, 프로테스탄트가 보여준 엄격성의 원인은 17세기 이르러 종교적인 감정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일 뿐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발달에 끼친 영향은 결코 대단한 것이 될 수 없다. 좀바르트의 이 연구가 발표되었을 무렵, 이 문제는 학문적인 격렬한 논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많은 논지자들이 베버의 명제에 대해 부여하는 평가는 그들 자신의 경제적 지향성이나 종교적 소속 관계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하여 베버의 명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