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1) Metaphysica의 의미Metaphysica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본래 없던 말이다. Metaphysica라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 리케이온의 관장을 맡고 있던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을 편찬하면서 제목없이 전해져 온 14권의 저술을 묶어 한 권으로 편찬하게 되면서이다. 이 저서를 안드로니코스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 물리학(physica)의 뒤에 넣기로 하게 되면서 ta meta ta physica 즉, 물리학 다음의 저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형이상학은 존재로서의 존재의 기본적 특성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물리학의 다음에 오는 책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하였으나 이론적인 지위의 순서로 보아서는 가장 앞서는 이 연구 분야는 책의 이름 그대로 형이상학(Metaphysica)이라는 학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형이상학은 아무데나 있는 보편적인 존재 즉, 존재자체와 이것에 본질적으로 속해있는 모든 것을 고찰하는 한 가지의 학문이다. 즉 존재에 관한 학문 존재론(ontologie)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제1철학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모든 개별과학에서 전제로 삼고 있을 뿐 연구하지는 않는 가장 보편적인 것, 즉 존재와 존재의 본성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이 존재를 바탕으로 명맥을 이어가므로 존재가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며 형이상학은 그 가장 중요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기에 제1철학이라고 불렀다.2) 4원인설)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 관한 모든 지식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할 수 있는 한 개의 최고원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현상에 대한 연구자들이 탐구과정에서 물을 네 가지의 내용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4원인설이다. 그 네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 질료인? 그것은 무엇인가? - 형상인? 그것은 무엇이 만들어 냈는가? - 운동인? 그것은 무엇에 유용한가? - 목적인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들 모두를 실체로 보았고 이러한 실체가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작용에 의해서 생기며 모든 실체들은 그것에 목적이 있다고 본 것이다. 먼저 질료인은 그 사물을 구성하는 물질을 뜻한다. 예를 들면 항아리는 진흙으로 만들어지고 배는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형상은 존재하는 실체의 본질로서 A를 A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형상은 한 실체를 어떤 다른 종류의 사물이 아니라 현재의 그 사물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여러 실체에 깃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실체들은 질료에 의해서 다른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각각이 다른 질료들에 의해서 개별적인 한 명 한 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형상은 주어진 사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름이 되고 질료는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름이다.운동인은 생명체이든 무생명체이든 사물에다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자를 말한다.) 목적인은 그 사물이 담고 있는 목적을 뜻한다. 즉 종국적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에 대한 완벽한 지식은 이 네 가지 원인을 전부 알게 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3) 잠세태와 현실태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실체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불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가 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실체의 변화는 불규칙한 것이 아니라, 그 실체의 본질 여하에 따라 규정되는 방향을 따라서 이루어져 간다.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실체가 일정한 잠세테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 실체의 발전 또한 잠세태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결국 모든 변화는 잠세태가 현실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실태란 어떤 순간에 실체가 있는 상태를 뜻하고 잠세태는 그 실체가 장차 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처럼 이 잠세태란 것은 확실히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상태와 각각의 실체가 유리한 상태만 마련된다면 도달하게 될 완전한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태라고 불렀다. 이 완전태란 각 실체가 그 자체의 본성에 의해서 이상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완전태란 것은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라고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있는 것이다. 고로 현실화되지 않은 완전태는 하나의 잠세태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적 논구들을 총괄해서 기관(organon)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이론을 완성했다. 논리학은 지식의 본성이나 기준을 분석해나가는 학문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세계에 대해 진정하게 알려주는데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결국 논리학은 형식적 원리를 가지고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성찰하는 것이 된다.플라톤이 인식의 단위를 하나의 형상으로 보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명제로 표현되는 판단을 인식의 단위로 보았다. 명제는 주어와 술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주어가 되는 것이며 형상이 술어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는데 사용하는 여러 명제의 유형과 이들 명제가 통일적 지식 체계 속에서 서로 연관을 갖게 되는 방식을 논하였다. 형상은 반복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어떤 명제들은 전칭적)이다. 실체들은 여러 점에서 각각 다르기에 어떤 명제들은 특칭적)으로 된다. 실체 하나하나는 서로 다르며 따라서 어떤 명제들은 단칭적)이 된다. 실체를 포괄하는 부류들은 광협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들 부류를 지칭하는 말을 유개념과 종개념이라고 한다.
Report退溪의 생애와 사상建國大學校哲學科200913878金東熙목 차1. 퇴계의 생애22. 퇴계의 사상42-1. 퇴계의 심(心)42-2. 리기론52-3. 퇴계의 리기론72-4. 사단과 칠정83. 고봉과의 사단칠정논쟁94. 참고문헌101. 퇴계의 생애퇴계는 1501년에 예안현 온계리(지금의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동)에서 이식과 부인 박씨의 6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지 109년 만이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지 133년이 되는 해였다. 국제적으로는 명나라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국내적으로는 세종과 성종의 문화 융성기를 거쳐, 국운쇠퇴의 조짐이 뚜렷한 시기이기도 했다.연산군7년에 태어나서 선조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섯 임금 가운데 네 임금에게 출사했지만, 그의 진퇴와 출처 그리고 학문의 향방은 이미 연산군 시대의 사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퇴계가 출생하기 3년 전에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네 살 되던 해에 갑자사화가 일어났다.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한 능력 있는 선비들이 삼사(三司)의 요직을 독차지하자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주장하는 훈구(勳舊)파와의 갈등과 대립은 갈수록 첨예해졌다.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는 차츰 삼사를 장악하고 왕도정치를 왕에게 강요했기에, 웬만큼 학문을 좋아하는 임금이라 할지라도 훈구파의 현실 유지 정책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연산군 대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는 물론, 1519년(중종 14년)에 일어난 기묘사화도 퇴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하지만 숙부가 사림파의 일원으로서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퇴계도 정치적 기류에 대해 자연히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20세가 되어 퇴계는 서울로 올라가 세상 구경을 했다. 이때가 바로 기묘사화가 일어난 이듬 해였다. 이 사화는 당시 선비들의 사기를 무참히 꺾어버린 불행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영수이자 희망이었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신임에 힘입은 조광조는 연산군으로 인거되었고, 퇴계 역시 수난을 당했다.명종 20년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윤원형의 횡포도 막을 내렸다. 퇴계는 윤원형이 집권했던 20년 동안에 숱한 요직을 거쳤지만 끊임없이 은퇴와 귀향을 되풀이 했다. 명종이 34세에 승하하고, 16세의 어린 왕 선조가 대를 이었다. 정권이 다시 사림파에게 돌아오고 조정과 백성의 신망이 퇴계에게 쏠리자, 왕은 퇴계를 중용하고 사부로 삼고자 했으며, 퇴계의 문인들도 대거 등용했다. 하지만 퇴계는 왕에게 『무진육조소』 『성학십도』 등을 올리고 표연히 도산으로 발길을 돌려 후진 교육에 남은 인생을 전부 바쳤다.여섯 살 때 이웃 노인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기는 했지만, 퇴계의 본격적인 공부는 숙부 송재공으로부터 『논어(論語)』를 배우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송재공은 참으로 엄격한 분이었다. 그는 먼저 공부의 일정을 분명히 정해 퇴계가 나태하거나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했다. 글을 읽을 때도 원문뿐만 아니라 주석까지도 한 자 빠뜨림 없이 그 의미를 철저히 탐구해서 이해하게 했다. 퇴계의 공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다 배우고 나면 반드시 그것을 전부 다 외운 뒤에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책을 배우면 앞에 배운 책과 함께 외우게 했다.퇴계가 17세 되던 해 11월에 송재공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주변에는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스승이 없게 되었다. 퇴계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열아홉 살 때 퇴계는 주희의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읽었다. 이 책은 그동안 길을 몰라 어둡기만 하던 퇴계의 마음에 환한 등불이 되어 주었다. 특히 성리대전 속에 들어 있는 주돈이의 태극도설로부터 퇴계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퇴계는 스물세 살 때 성균관의 하제에 있었는데 성균관에 있을 당시 상사인 황씨 성을 가진 자에게서 『심경(心經)』을 얻을 수 있었다. 퇴계 스스로 말하기를 『심경』을 부모처럼 사랑하고 하늘처럼 공경한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육조소』를 12월에 『성학십도』를 임금에게 올렸다.1570년 11월 9일 종갓집 제사에 참석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악화되어 자리에 누었다. 5일에는 관을 짜라고 명하고, 8일 아침에 평소 사랑해 오던 매화 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저녁 5시경에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2. 퇴계의 사상2-1. 퇴계의 심(心)『성학십도』의 서문에서 퇴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군주의 마음은 온갖 일이 비롯되는 곳이며,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모든 욕구가 서로 공격하고 사특함이 번갈아 뚫고자 하는 곳입니다. 한 번 태만해 소홀해지고 방종이 계속되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넘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니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퇴계는 왜 이렇게 ‘마음’을 중시한 것일까? 인류의 보편적 이상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아름답고 선한 사회를 만들며, 이를 바탕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유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학(大學)』에서는 가정이 ‘질서가 잡힘’, ‘나라가 다스려짐’, ‘천하가 화평하게 됨’ 이라고 표현한다. 가정의 질서를 세워 국가를 다스리고 세계를 화평하게 하는 주체는 인간 자신의 몸이다. 그러므로 ‘몸 닦음(修身)’이 먼저 요구된다. 그런데 몸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유교에서 ‘마음은 몸의 주인’이라고 해서 ‘마음을 올바르게 함(正心)’을 유달리 강조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치, 경제 등 외적인 사회 문제의 최종적 원인은 바로 인간의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군주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로서 막강한 권력이 집중되는 자리이다. 퇴계는 사회가 혼란에 빠져 국가가 멸망하게 되는 근본 요인은 군주의 오만하고 태만하고 방종한 마음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성리학에서 마음은 성(性)과 정(情)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심통성정’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성과 정을 통합한다는 뜻이다. 성은 인간과 사물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으로서 마음의 본체이며, 정은 마음의 구체적인 란 무엇인가?유학사상은 송(宋) 대에 이르러 ‘신유학’이라 불릴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을 총 정리해 체계화한 학자가 주자이다. 이 신유학을 성리학 또는 주자학이라고 한다. 성리학에서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그 이전의 유학과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전의 유학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세계의 전체로 인식하고, 운동의 원인을 현상계 자체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주자는 세계를 운동하고 변화하는 현상계와, 그 형이상학적 근거가 되는 원리의 세계라는 이중 구조로 파악했다. 인간의 마음은 사물의 자극을 받지 않을 때는 발동하지 않아서 고요하다가 자극을 받으면 발동하여 움직이고, 그러다가 다시 고요해지는 반복운동을 거듭한다. 자연계도 밤과 낮이 순환하며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는 반복 운동이 계속된다. 인간의 마음과 자연은 동일한 유형으로 변화한다. 주자는 마음의 작용과 천체의 운동을 관찰하고 역법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해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 필연적인 근거를 탐색했다. 그리하여 순환적으로 운동해 변화하는 현상계를 기(氣)로 규정하고, 그 근거를 리(理))로 규정했다.세계의 변화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는데 이것이 도(道)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주자는 “음양이 순환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기이며, 그 리가 곧 도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세계는 리와 기의 이중 구조로 파악된다.리와 기의 개념은 사실(fact)와 가치(value)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리는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포함해 모든 사물을 존재하게 하고, 그 존재 양상을 규제하는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자연계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말하듯이, 리는 사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질서 있게 운동하도록 통제하는 법칙이다. 이것을 ‘주재한다.’고 표현한다. 기는 사물들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질료이며 운동에너지이다. 즉, 현실 세계를 구성하고 운동, 변화하는 모든 것은 기이며, 그 존재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속성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은 인간에게 내재된 천도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하늘 곧 천(天)은 지극히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모든 선악의 기준이 되는 절대자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처럼 고귀하고 아름답고 선한 절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천과 성을 리기론으로 정의하면 ‘하늘은 리이다.’ ‘성이 곧 리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리는 바로 모든 가치의 근거가 되는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성이 곧 리이다.’라는 말의 뜻은 인간의 본성은 모든 가치의 근거가 되는 절대선 그 자체라는 것이다.2-3. 퇴계의 리기론퇴계의 성리학의 가장 큰 특색은 리존설(理尊說)에 있다. 그는 기보다 리를 더 우위에 두는 리귀기천설(理貴氣賤說)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사단칠정론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단은 리가 발한 것으로서 순선하지만, 칠정은 기가 발한 것으로서 악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리(理)는 퇴계 성리학에 있어서 핵심개념이다. 그는 “리는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는 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곧 고금의 학술의 차이라고 보아 이를 투철하게 이해할 것을 강조하였다. 리는 지극히 허(虛)하면서도 지극히 실(實)한 것이며, 지극히 무(無)하면서도 지극히 유(有)한 것이고, 동정(動靜)하면서도 동정이 없는 것이다. 리에는 덧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리는 음양오행 만물만사의 근본이 되면서도 그 가운데 구속되지 않는다. 리는 기의 주재자로서, 기를 명령할 뿐 기에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리와 기를 섞어서 일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리는 형이상자로서 하나이며 두루 다 있으며 영원히 존재하므로 증감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기는 생극, 순미, 승강, 왕복, 내거, 합벽, 왕쇠의 운동을 통하여 천차만별하게 전개되는 것으로 불선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기는 하나이고 영원하며 보편적인 리와는 당연히 품격이 다르다고 본다. 그러므로 퇴계에 있있다.
Real Steel 감상문1. 줄거리2020년, 관중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복싱 경기장. 링 위에서 숨 막히는 승부를 펼치는 이들은 무려 900kg에 2m 50cm가 넘는 거대한 로봇 파이터들이다.인간이 아닌 로봇 파이터들이 사각의 링을 지배하는 시대! 챔피언 타이틀 도전에 실패한 전직 복서 출신 찰리 켄튼(휴 잭맨)은 지하의 복싱 세계를 전전하며 삼류 프로모터로 살아가고 있다. 겨우 번 돈으로 구입한 고철 덩어리를 로봇 파이터로 만들어 지하의 복싱 세계를 벗어나 재기하려는 찰리는 어느 날 존재도 모르고 지낸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의 소식을 접하고 임시 보호를 맡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한 팀이 된 그들은 맥스가 우연히 발견한 고철 로봇 ‘아톰’을 최고의 파이터로 키워내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무자비한 사각의 링 위,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찰리와 맥스, 그리고 ‘아톰’의 불가능한 도전이 시작된다!(출처 : 네이버영화)2. 상실의 시대.주인공 찰리 켄튼은 첨단테크놀로지가 일상생활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2020년을 살고 있다. 기계, 과학 문명에 대한 중시로 사람들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다. 쾌락의 쾌락을 탐하는 쾌락의 정점은 언제나 허망함으로 채워지기 일수 이므로 사람들은 다시 그 쾌락의 정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 발견한 것이 로봇복싱이다. 인간이 직접 하는 복싱은 사람을 죽인다거나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보니 아무래도 식상한 대접을 받게 되었고 로봇복싱은 첨단 과학기술의 경연장이자 쾌락의 정점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특히 그 WRB(World Robot Boxing)의 챔피언인 제우스는 무자비한 인간성의 대명사가 된다. 그 로봇은 전 경기에서 KO승을 거두지만 상대방 로봇은 언제나 선수생명을 끊긴다. 무지막지한 파워로 아무표정 없이(로봇이 표정이 있을 리는 없지만) 상대방을 박살낸다. 이 제우스를 향해 주인공 찰리 켄튼이 던지는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저것은 복싱이 아니야, 그냥 파괴일 뿐이야.” 제우스라는 로봇 자체만이 인간성을 상실한 무자비함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제우스팀의 프로그래머와 구단주 파라렘코바와 탁 마쉬도 또한 인간성 없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영화에서 그리는 세계처럼 인간성 말살의 과학 문명 시대로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그러한 궤도에 올라있다고 보았기 때문일까?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현재와 그다지 멀지 않은 2020년으로 잡고 있다. 불과 9년 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로봇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9년 후에 영화에서처럼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가지고 인간대신 격렬한 스포츠를 한 만한 로봇을 탄생시킬 지는 의문이다.(미래는 모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고작9년 후를 영화의 배경으로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볼 수 있다. 로봇기술은 2020년 까지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인간성 상실의 문제는 2020년이라는 영화의 배경 그 이상이면 이상이었지 현재 상태도 그 이하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현재 우리 시대도 스마트폰 태블릿PC등을 선두로 한 첨단 테크놀로지의 시대이다. 인간에게 유익하게 하기 위한 이 기술들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함을 만들어 내면서 결국 우리를 다시 뒤집어 삼킬 지도 모른다.3. 인간이 최선이다. : 인간성 회복에 대한 희망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시대에 비인간성을 대표하는 로봇으로부터 대항하는 찰리켄튼과 맥스켄튼 그리고 그들의 로봇 아톰의 이야기 이다. 그들의 로봇 아톰은 제우스와는 다르다. 겨우 초창기 버전인 G-1세대의 후속인 G-2세대 로봇이다. 최신 버전의 로봇이 되어 가면 되어갈수록 인간성과는 멀어지지만 고철더미에서 발견된 이 로봇은 상당히 많은 인간성을 담고 있다. 동작을 따라하는 동작인식기술에다가 맥스켄튼이 밤새 프로그래밍을 해서 음성인식기술까지 담고 있다. 가르치는 동작을 저장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동작들을 익히는 최신로봇들과는 방식이 상당히 인간적이다.마지막 제우스와 아톰의 대결은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대결이다. 한쪽에서는 두 명의 컴퓨터전문가가 매달려 연신 자판을 두드리며 로봇 제우스를 제어한다. 반면 아톰쪽에서는 찰리켄튼이 실제 복싱코치가 된 것처럼 연신 아톰을 독려한다. 이 로봇은 정말 인간의 심장을 가진것인가 싶을 정도로 쓰러지면서도 일어나는 그 끈기가 꼭 인간을 그대로 닮았다. 결국 마지막 5라운드가 시작되기 직전 아톰의 음성인식장치가 고장 나고 만다. 아들 맥스켄튼은 찰리켄튼에게 동작인식으로 전환해서 직접 복싱하라고 말한다. 그나마 인간적이던 로봇 아톰의 마지막 비인간적 요소가 제거되는 순간이다. 사실상 마지막 라운드는 제우스와 찰리켄튼의 대결이다. 다만 로봇이 대리할 뿐이다. 진정한 비인간성과 인간성의 대결이 시작된다. 연신 몰아붙이던 제우스는 결국 에너지가 바닥나고 끈기 있게 참고 있던 아톰에게 패배직전까지 몰리며 겨우 판정승을 거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승자가 아니었다. 모든 관객들은 인간감성을 보여준 아톰에게 환호하고 있으며 경기에서 패한 아톰과 찰리, 맥스 두 명이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전투에서는 패했을지 모르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셈이다.
현대철학의 쟁점(하버머스의 삶과 철학의 도정)목 차● 논문 내용정리---------------------------------3p1. 위르겐 하버마스 (1929- )의 삶과 철학의 형성------------------------3p2. 하버마스의 전기 사상-------------------------------------------5p3. 하버마스의 후기 사상-------------------------------------------8p● 자신의 견해----------------------------------10p● 참고 문헌------------------------------------12p● 하버머스의 삶과 철학의 도정1. 위르겐 하버마스 (1929- )의 삶과 철학의 형성위르겐 하버마스는 1929년 6월 18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에는 쾰른에 가까운 작은 도시 굼버스바흐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이 곳에서 시 상공 국장으로 일했고, 할아버지는 그곳의 목사였으며 목회 연수 원장이었다. 중 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마치고 졸업증을 받은 것은 1939년 봄이다. 그가 정치적 의식을 처음 가지게 된 것은 2차 대전이 끝나는 1935년 열 여섯 살 때 였다고 한다. 그는 뉴른베르그 나치수용소에 관한 기록영화들을 보면서 그의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이 싹트게 되었다고 체험담을 이야기 했다. 하버마스는 종전 직전 열다섯 살에 히틀러 소년단에 편입되어 베스트발에서 반년 동안 복무 한 적이 있었고, 집안에서도 별로 나치 독재에 대해 항거하지 못하고 복종하는 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나치의 범죄 사실이 알려지자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범죄적 집단의 지배체제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역사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1949년에 괴팅겐 대학에서 그는 철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스위스의 쥬리히 대학, 본 대학에서 철학, 역사학, 심리학, 독문학 등을 공부하고 1954년 아홉 학기 만에 본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의 대학 시절은 전후 독일의 것은 1956년 비판 이론의 본고장인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의 연구 조교 자리를 얻어 가면서부터이다. 여기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비판 이론에 본격적으로 접합하게 되며, 루카치나 마르크스 사회,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하며 자기 사상의 줄거리를 만들어 가게 된다. 1959년에 “학생과 정치”를 내는데 이 책은 경험적 사회 조사를 통해 학생의 정치의식에 관해 연구한 책으로 1961년에 출판되어 하버마스의 첫 출판물이 된다.1959년에 하버마스는 독일 연구 협회에서 장학금을 받아 교수 자격 논문의 작성을 위해 2년간을 보낸다. 61년에 마치고 출판된 이 책은 “공론의 구조 변환”으로 여론과 사회의식이 당시의 정치체제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진보적 민주성을 촉진시키는지 저지시키는지를 탐구하였다.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정치적 변혁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공론이나 여론의 성격과 구조를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서 분류해 본 이 논문은 하버마스의 첫 사회 철학적 작품이라 볼 수 있으며, 오늘에 와서 보면 이것이 사실상 하버마스사상의 핵심적 테마로 생각된다.하빌리 과정을 채 마치기도 전에 사상적 경향이 전혀 다른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뢰비트와 가다머 교수의 초청을 받아 하버마스는 1961년에서 3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도 우리는 전통 철학과 비판 이론, 사회철학과 사회과학, 실존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극단을 왕래하며 사상적 폭을 넓히는 하버마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펴낸 “이론과 실천-사회 철학적 탐구”는 그의 철학의 방향을 천명하면서 이를 위해 사상사적인 점검을 해본 것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탐구하겠다면서 그는 그 예증을 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헤겔, 마르크스 등을 통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특히,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문제를 비판 이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한 논문들은 하버마스 사상의 중요한 토대였다고 보여진다.1964년 서른 다섯의 나이에 프랑크푸르트 이성의 입장에서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적 철학과 사상이었다는 점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특히 비판 이론의 선배들이 1930년대에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항거하면서 모색한 대안적 이론들이 마르크스의 실천적 철학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데 하버마스는 예리하게 주목하였다. 그래서 그는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마르크스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며 그 결과물이 “이론과 실천”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하버마스는 이 때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히 정치경제학이나 노동사회학 혹은 인간 소외론과 해방을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인간학이나 실존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 과학에 토대를 두면서 삶의 세계의 위기를 진단하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한 ‘실천적 의도를 가진 경험적 역사철학’ 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이 바로 철학과 과학의 사이에 있으며 양자를 매개하는 비판 이론의 한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하버마스와 마르크스주의의 문제는 따로 논구해야 할 테마이지만, 적어도 하버마스에게 정치경제학적 내용보다, 철학적 방법과 자세의 면에서 많은 영향과 시사점을 주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 점에서 하버마스는 스스로를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거리낌 없이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전기 사상인 비판 이론적 사회 철학에 방법론적인 영향을 준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만은 아니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1956년경에 프로이드의 심리학 강의를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의 정신 분석학이 실천적 이론, 곧 비판 이론에 중요 토대와 전기를 제시해 준다고 깨닫게 되었다.이제 하버마스에게서 중요한 학문적 문제는 현실을 바르게 분석하면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이론, 실천적 이론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느냐는 방법론적인, 메타 이론적인 문제였다. 이론과 실천의 매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것이 하버마스에게서 첫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론과 실천”은 철학사 속에서 그래도 실천적인 이론과 철학이 어떤 양태로 존재해 왔으며 오늘 우리에게식과 관심”은 비판 이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면서 비판이론이 반성적 인식, 이성의 성숙한 인식에 토대를 두게끔 새로운 인식론적 토대를 구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다른 면에서 “인식과 관심”은 60년대의 새로운 학문 이론이요 이데올로기인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었다. “과학적 합리성”이란 것은 2차 대전 이후 현대 사회에서 서구와 후진국을 막론하고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며 군림해 온 가치관이요 철학이었다. 국가들은 앞을 다투어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최대한의 예산을 투입했고, 과학기술 없이는 나라도 민족도 존립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심어놓았다. 그러나 60년대 월남전과 인종차별 제국주의 제 3세계의 예속 문제 등이 터져 나오면서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문명이나 정치는 바로 인간을 억압하며 소외시키는 역기능을 갖고 있다는 반성과 회의가 풍미하게 되었다. 반성과 비판이 없는 과학적 합리성이나 실증주의적 가치관은 독재와 전쟁, 억압과 지배에 엄청나게 봉사할 수 있다는 회의적 평가가 그의 새로운 인식론과 사회과학 논리의 근저에 깔려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것들을 윤리적이나 정치적으로만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를 인식론적으로 근본 토대에서부터 비판하려고 한다. 실증주의의 고전적 형태인 꽁뜨나 카르납, 논리적 실증주의 등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이들을 현대적으로 수용하고 계숭하는 포퍼와 알버트등의 신 실증주의에 대해서 근원적인 비판을 시도했다. 포퍼는 물론 초기 실증주의자들의 독단론적인 주장들을 많이 수정하고 보완했지만, 그의 “탐구의 논리”는 엄밀한 과학주의를 조장하며, 실증적 지식을 절대화하여 그 이론이나 지식이 갖는 성립연관이나 적용관련성을 도외시하고 사실을 기만하는 오류에 빠진다고 하버마스는 비판했다. 특히 이런 과학 이론이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에 적용되었을 때 형식적으로만 기능적이고 사회 공학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보만을 생산해 냄으로써 실천이 배제된 경험 분석적인 지식만을 산출한다는 것이다.이제 그의 관심은 이러한 실증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등이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이 산출해낸 함축적 개념이었으며 철학적 탐구의 과제였다.3. 하버마스의 후기 사상하버마스의 삶과 학문에 있어서 1971년은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주는 해이다. 그는 이 해에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철학과 사회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뮌헨 근처 슈타른베르그 호숫가에 새로 지어진 막스풀랑크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프랑크푸르트대학을 떠나게 된 데는 60년대 말부터 격렬해지기 시작한 학생운동과의 갈등이 한 배경이 되었다고도 하고 이론적 탐구과정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연구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론과 실천을 매개하는 시도에서의 몇 가지 난점들” 이라는 긴 제목의 이 서문이 지금까지 자기의 철학적 업적들을 스스로 평가해 보면서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한 구상을 밝힌 것으로 이미 후기 사상을 배태하고 있는 서설과 같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여기서 비판 이론이 해방적 관심을 가진 반성적 이론이 되고, 억압과 지배가 없는 이상적 대화에 근거한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 교환행위가 필수적으로 탐구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래서 그는 의사소통 행위 능력에 대한 언어철학적 탐구, 즉 보편적 화용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인식 주도적 관심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이것이 준 선험적 성격을 가진다고 하고, 인식의 과정에서 적용하는 관심의 구조를 보다 면밀히 분석해 보면, 유용성이나 실천성 해방성과 같은 행위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그런 가치나 규범의 보편적 타당성을 묻는 담론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새로운 영역을 들어냈다. 담론으로 번역하는 Diskurs는 단순히 깨끗한 토론이란 뜻뿐 아니라 보편적 타당성을 묻고 따지는 검증적 논의를 의미한다. 이제 합리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이론적, 인식론적 관심으로 확대 발전하는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막스풀랑크 연구소로 옮긴 뒤 1970년대의 연구는 “후기 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을 위해” 등 비판적 사회 이론이나 사회 발전에 관하 ㄴ진화론적 논것이다.
블랙스완 을 보고예전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본 적이 있다. 한 남자아이가 지나치게 울고불고 떼를 쓰는 아이였는데, 전문가들의 진단결과 그 아이의 결벽증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 결벽증이라는 강박적 심상이 주위 사물, 환경 등등이 하나라도 흐트러졌을 때 이 아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유발하게 하고 그 불편함이 이 아이의 지나친 떼쓰기로 이어졌다는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이 아이의 결벽증에 대한 원인으로 엄마의 결벽증을 꼽았다. 아이엄마 자신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엄마의 결벽증으로 하여금 흐트러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아이 또한 결벽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강박적 심상이 아이에게 전해져 아이의 고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영화 “블랙스완”의 주인공 니나 또한 상당한 강박적 심상을 가진 사람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시간관념, 항상 놓는 자리에 두는 코트, 자로 재듯이 하는 화장품 정리, 완벽이외에는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 삶의 태도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그 아이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니나 또한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텍스트 자체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림을 전공했을 것이고 뜻하지 않은 니나의 임신으로 자신이 원하던 삶의 목표를 더 이상 추구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니나와 토마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인 완벽에 대한 목마름을 아마도 딸을 통해서 해소하려는 듯 했다. 28살이나 된 딸을 엄격히 통제하는 삶을 살게 함으로써 딸이 완벽을 추구하도록 나아가게 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런 강박적인 심상을 통해서 성장한 그녀는 최고의 주연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틀을 깨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에 가깝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연기에서 좌절하고 방황하게 된다. 이렇게 강박적 심상은 언제나 자신을 학대하고 스스로를 파괴로 몰아넣을 위험성이 있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자신의 적(릴리)을 환상 속에서 제거함으로써 얻어진 해방감으로 인해 자신의 틀을 깨트리고 진정한 완벽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강박적 심상에서 이어진 자신의 파괴였다. 완벽함을 마치고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완벽함을 얻은 그 순간 그녀는 영화 내내 보여주었던 불안하고 딱딱한 표정에서 벗어났다. 강박적 심상에서 벗어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 과정마저도 행복이었는가? 전혀 그 누구도 행복이라 표현할 수 없을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던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의하면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며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라고 요약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위해 성취를 위한 고통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얗던 것이 하얗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자면 잠깐의 고통 또한 그 고통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고통이 아닌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의 자아를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 성취를 위한 고통 혹은 발전을 위한 고통 진보를 위한 고통 등이 결국 행복이 아닌 자아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란 기대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행복할 것을 권하면서 동시에 발전마저 포기하기를 권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성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상의 성취를 위해서 발생하는 노력은 분명히 행복보다는 고통과 거리가 가깝기 마련이지만,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갖지 않고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경계하는 것 쾌락적인 삶의 태도로 돌아가는 것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