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현*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
검색어 입력폼
  • 난중일기를 읽고
    난중일기를 읽고...이순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유년기부터 수없이 들어온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이순신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로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 에 대한 답변으로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이순신에 대하여 단편적인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여 거북선을 만든 인물, 임진왜란에서 한국을 구한 영웅으로써의 이순신만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이순신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인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고통과 고뇌를 겪어야했다. 나 역시 이순신을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나 막연히 군중심리에 의해 존경한다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이순신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욱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다.난중일기는 실제로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작성한 일기로 임진왜란의 경과와 상황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감춰진 여러 사실들과 함께 한 인간으로써의 이순신의 일상과 생각까지도 엿볼 수 있다.실제로 난중일기에서는 이순신의 여러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임금과 국가를 걱정하는 충성심과 더불어 어머니와 아내, 아들 등 가족들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이 일기 곳곳에 등장한다.이순신은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나라를 위한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는 장수였는데 백의종군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국가만을 위해 모든 것을 잊고 전투에 임하는 충신 중에 충신이었다. 만약 나에게 이순신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즉 국가가 나에게 부당한 사유로 형벌을 줬다고 했을 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과연 그 임금, 그 국가를 위해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을 임할 수 있었을까? 비록 군 장교가 될 사람으로서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긴 하나 실제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나’ 이런식의 반응을 하며 충성은커녕 임금과 국가를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여기서 문득 의문점이 든다. 글을 쓰다 보니 충성심을 국가와 임금을 동일시하여 충성심을 논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이순신은 선조에게도 충성을 하였을까? 아니면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한 충성을 한 것일까?선조는 매우 형편없고 무능력한 왕이었다고 생각 된다. 임진왜란을 발생하게 한 주범이기도 하며 전쟁 시 국가와 백성을 외면하며 피난을 간 것도 모자라 자신의 피난을 도왔던 신하들을 별 이유 없이 충신이라 일컫는 등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선조는 이순신을 두려워하였고 경계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순신을 불신하고 간신들의 간언을 따르는 등 충성을 하기에는 분명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그러한 선조에게 이순신은 진심으로 충성을 했을까? 만약 내가 이순신이었다면 선조가 이순신을 싫어했던 것 이상으로 그 역시 선조를 싫어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다시 전쟁터에 나서겠다는 충성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과연 선조와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을까, 아니면 오직 국가만을 위해 신하된 입장으로써 형식적으로 선조에게 충성된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순신 자기 자신만이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사실이 어찌됐든 간에 이순신의 충성심이 어느 누구 못지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이순신의 충성심은 전쟁에 임하는 모습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13척의 배로 330여척의 적 앞에서 물러나지 않고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등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 죽음을 무릎 쓰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전쟁에 임한다는 것은 그의 정신력과 더불어 무조건적인 충성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이순신은 이와 같은 충성심외에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 하였다. 난중일기 곳곳에서 등장하는 어머님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과 가족들의 꿈을 꾸며 걱정하는 내용은 임진왜란의 영웅으로써의 이순신이 아닌 한 부모의 자식으로써 한 아내의 남편으로써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의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인데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이순신의 어머니는 고령이었으며 몸도 편치 않으셨다. 그러한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하고 출정한 것이 마음이 걸렸던 모양인지 이순신은 일기 곳곳에서 어머니의 안부를 걱정하고 부하들을 시켜 수시로 안부를 묻는 등 지극 정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 유교적 사상과 전시중이라는 외롭고 힘든 상황이었기에 더욱더 편찮으신 어머니가 걱정되었을 것이며 몸과 마음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더욱 안타까움을 느껴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이순신의 효심은 평소 부모님께 연락도 잘 드리지 않고 부모님께서 먼저 해 오신 연락마저 무뚝뚝하고 귀찮게 여기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쁜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순신의 효성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어머니는 백의종군 하는 자식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는 중 목숨을 거두고 만다. 이순신은 이러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오는 어머니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그 슬픔을 차마 글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슬픈 사실은 백의종군하는 중이였기에 어머니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하였는데 이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또한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에 막내아들 이면까지 잃게 되는데 그 심정을 ‘통탄하다’는 말로 표현하였으며 며칠 밤낮을 아들을 그리워하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평소 전장에서도 아들과 부하들을 대하는 것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 등 장군으로써의 모습만을 보였으나 그도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것 없는 아들을 사랑하는 한 아버지였던 것이다.난중일기를 읽는 중에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는데 이순신은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과 닥쳐올 미래에 대한 꿈을 자주 꾸며 이러한 꿈에 대하여 점괘를 보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보통 우리가 꿈을 꾸는 경우에 있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떠한 일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거나 걱정할 때 그러한 꿈을 꾸게 된다. 이순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았을 때 이순신은 백의종군 후 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을 맡은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남에게 말하지 못할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들이 꿈을 통하여 표출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점괘를 보는 모습 역시 꿈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이나 앞날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함 을 자기 스스로 위안 삼으며 안정을 갖기 위해 점괘를 본건 아니었을까? 실제로 난중일기 중에 점괘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라는 구절 등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운세를 보고 궁합을 보듯이 이순신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난중일기에는 이처럼 정 많고 따뜻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담겨있으나 그와 반대로 누군가를 증오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드러나 있다. 그 대상은 주로 원균으로 둘의 갈등은 옥포해전 이후부터 시작되게 되었다. 원균은 이순신을 시기 질투하며 모함하여 이순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기도 하였는데 이순신은 이러한 원균을 탐욕스럽고 음흉하다고 하였으며 가소롭다며 흉을 보기도 하였다.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했던 이순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을 때 이러한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원망은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원균의 행위 때문만이 아닌 조선수군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그로 인해 조선 전체를 큰 위기에 처하게 한 원균에 대한 원망이었을 것이다.이순신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그의 리더십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빼어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그의 리더십이 어떠한 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난중일기에는 이러한 이순신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이순신은 부하들과 함께 어울려 고통을 함께하며 생활하였으며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옷이 없는 군사들에게 옷을 챙겨주는 등 자상한 리더로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관심의 대상은 병사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그의 참모들과 일반 백성들까지 진심으로 보살피려 노력하였다.또한 모든 병사들을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대부분의 장군들은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일반 병사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인데 이순신은 자신의 아들들과 병사를 다루는 것에 차별이 없을 만큼 모두를 평등히 대하였다. 또한 회의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좋은 의견이 있으면 그 누구던지 의견을 제시 할 수 있게 하여 이를 적극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병사 모두가 소속감을 가지게 하고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게끔 하였다.하지만 이처럼 부드러운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이순신은 상벌을 엄중히 하여 잘잘못을 분명히 가렸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수와 병사들에게는 칭찬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하였는데 이와 같은 이순신의 모습은 손자병법에서 손자가 말하였던 신상필벌과도 일치하는 내용으로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지휘체제가 확실한 질서 있는 군의 모습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이러한 지휘통솔을 바탕으로 전쟁에 임하여서는 전장의 앞에 나서 “나를 따르라”하는 솔선수범하는 지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이야말로 자발적이고 진심어린 충성을 이끌어 내는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라 평가된다.
    독후감/창작| 2011.10.03| 5페이지| 1,500원| 조회(205)
    미리보기
  • 간디 자서전을 읽고
    간디 자서전을 읽고...간디의 자서전을 읽기 전에도 간디는 인간의 영원한 스승 중 하나이고 세계의 가장 높은 정신적 지주라고 생각했다. 간디는 인도에서 화폐에 등장할 정도로 위인이고 그의 생애와 업적은 후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흔히 마하트마 간디라고 하는데 여기서 마하트마라는 칭호는 위대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절대 아무에게나 함부로 붙여주는 그런 접대성 호칭이 아니라고 한다. 간디 자서전은 참으로 자기자신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고 결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담백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은 책을 덮은 후에 간디에 대해서 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그는 성인이면서 동시에 영웅이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그의 웅대한 정신력은 결코 타고난 천부의 능력이 아니고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것이 간디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그는 깊고 높은 정신적 수양을 위하여 피눈물나는 노력을 계속했다.그의 정신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한없이 올라갔다. 그의 인고의 세계는 끝없이 깊어지고 강해졌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 하였다. 자녀가 울 때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것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성애 혹은 부성애는 자기의 가족에 국한되기 쉽다. 그러나 간디의 가슴은 가족을 넘어서 온 인도인에게 확대되었고 다시 인도인을 넘어서 온 인류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인류가 있었다. 그는 온 인류를 품을 수 있는 크고 넓은 가슴의 소유자였다.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고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은 부처님은 대자대비의 정신과 통한다. 그것은 그리고 하나님에 가까운 마음이다. 그는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간디의 경우에 정치와 종교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인간의 정신력이 완전히 개화하면 가장 무서운 힘이 될 수 있다. 그 힘은 원자력보다도 강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정신력을 갖는다. 피부가 검건 희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 이런 정신력을 지닌다. 그런데 왜 이 정신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가용하지 못하는가?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경우에 이 위대한 정신력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우리는 이 잠자는 힘을 깨우쳐야 한다. 이 정신력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간디는 인간은 모두 신의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저마다 신성의 빛과 힘을 갖는 신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이 힘은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땅을 파야 맑은 샘물이 솟듯이 우리의 정신력도 개발해야 강해질 수 있다. 옥이 흙에 가려지면 그 빛을 발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력, 우리의 천부적인 힘도 이기심, 게으름, 과욕, 교만, 시기, 질투 등의 어두운 그늘에 가리어져서 그 빛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의 할 일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이 정신력을 갈고 닦고 기르고 개발하여 그것을 고도로 발휘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아성찰이요 자기완성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특히 간디는 이 힘을 스스로 깨닫고 이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간디는 인간의 평등을 믿었다. 그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에게 가능하다고 하였다. 간디는 자기의 인내심을 밑바탕으로 정신력에 관한 여러 가지의 실험을 하였다. 간디는 타고난 재주꾼은 아니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누구나 느끼는 것은 소년시절과 청년기의 간디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일의 성인을 방불케 하는 특별한 능력과 기질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식민지의 조국에 대한 열등감마저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남달리 정직하고 충성심과 그로 인한 동기 부여가 있었으며 또한 부지런하였을 뿐이다. 그는 수치심이 강했다. 남 앞에 나아가면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다. 두뇌가 명석한 수재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만 그는 정말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간디로 하여금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성인으로 만들었는가. 그가 전설적인 인물이 된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때그때 당하는 일을 성심껏 재량껏 온 힘을 다해 해결하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마침내 비상했다. 간디는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하고 이 날은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진중하게 사색했다. 우리는 쓸데없는 잡담이나 무의미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심신을 낭비하기 쉽다. 간디는 하루 종일 침묵 속에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이러한 인내와 노력이 간디의 인격을 고양하고 그의 정신을 향상시켰다.간디는 독서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소량의 책을 성심성의껏 읽고 애독하고 탐독했다. 그리고 자기가 읽은 글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곧 실행에 옮기고 생활 속에 살렸다. 다량의 잡서를 읽는 것보다도 소량의 양서를 통독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서를 통해서 보다도 생활의 발견을 통하여 더 귀한 것, 더 많은 것을 배웠다.간디의 생애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부분은 바로 금전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설파하면서 본인도 그러한 명제를 지켰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간디는 이를 항상 강조하기까지 했다. 간디는 행동으로 이를 보였다. 그는 자급자족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사치스러운 의복이나 식사를 피하고 청렴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Simple life, high thinking이 바로 그의 생활수칙의 하나였다.간디는 유달리 봉사의 정신이 강했다. 봉사는 그의 생활의 낙 중에 하나였고 인성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는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인간에 봉사했고 진리에 봉사했고 인습에 봉사했고 선에 봉사했다. ‘위대한 것 앞에 나를 바치자’도 그의 행동지침이었다. 위대한 인물들,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봉사의 인물들이다.
    독후감/창작| 2011.10.03| 4페이지| 1,000원| 조회(350)
    미리보기
  • 난중일기를 읽고
    난중일기를 읽고...본인은 이순신 장군과 김구 선생, 그리고 부모님을 항상 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살았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그가 가지고 있는 끈기와 용감무쌍으로 그 부분에 대해 비교적 모자란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난중일기는 실제로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작성한 일기로 임진왜란의 경과와 상황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감춰진 여러 사실들을 기술함으로써 그 당시 정황이나 풍습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한 인간으로써의 이순신의 일상과 생각까지도 엿볼 수 있다.임진왜란이 한창인 정유년(1597년)에 적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보낸 일본의 이중첩자 요시라로부터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가토와 고니시는 상대를 적대시 하는 라이벌 관계임). 한양을 점령한 가토는 조선침공의 상징적 존재였고, 선조는 그런 가토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선조는 유일하게 군전력이 정상적으로 가동 가능했던 이순신에게 가토가 바다를 건너올 때 그를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중첩자로부터 넘어온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떠한 사전정보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적 함대를 기다리는 것은 수적 열세와 보급부족에 시달리는 조선해군에겐 자멸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명을 받들어 부산으로 출정했다. 이순신은 가덕왜성에 포화를 퍼부으며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토를 잡지 못해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순신은 서울로 압송되고 원균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은 실로 가혹한 고문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하들의 상소 끝에 이순신은 4월 1일 풀려나 백의종군을 시작했다. 7월 16일 벌어진 칠천량 해전에서는 원균의 용렬한 지휘에 기강이 해이해진 조선해군이 왜군의 기습을 받자 전부 육지나 바다로 도주하였다. 이로 인해 이순신이 힘겹게 모아놓은 300척 이상의 배가 고스란히 사라졌다. 단 한 번의 전투로 조선해군 전력 전체가 소멸한 것이다. 당황한 조정은 7월 23일 모친상을 당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이었던 임금에 대한 충의를 몸소 실천하고 하달된 임무 완수를 위해 위험까지 무릅쓰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순신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었기에 부하들과 백성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순신은 위험을 감당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보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열세를 알면서도 부산진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순신은 귀인경향 중 하나인 환경민감성도 뛰어났던지라 당면한 상황과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여 가토를 잡을 수 없음을 파악하고 대신에 왜성을 포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자신이 보유한 전력에 대한 분석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석력을 갖추게 되면 무엇을 수행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수행할 수 없는지를 알고 목표나 주변 환경을 유리하게 이용해 나갈 수 있다. 부산 출정 전에 이순신 장군이 보여주었던 모습 중에는 역시 카리스마적 행동 특성인 전략적 비전 제시와 구체화 행동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군대의 규율을 잡는 것이다. 탈영, 물자횡령, 적전도주는 현대에 와서도 심하면 사형까지도 당할 수 있는 사유이다. 게다가 당시 상황은 왜군의 계속되는 침입상황. 이렇게 철저히 규율을 다졌기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왜군을 상대로 그 많은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이순신이 지휘할 해군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해군 없는 해군제독이었다. 9월 16일 이순신은 수습한 전함 13척과 어선 일부를 대동하고 명량에 출격했다. 정부에서는 그 빈약한 병력이라도 온존하기 위해 후퇴를 권하였으나,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이라는 장계를 올리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이때 왜군의 총 함선 숫자는 약 330척. 절망적이다 싶은 전투였으나, 명량에서 이순신은 '확실하게 격파한 배만' 31척이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게다가 수군 총대장 도도 다카도라가 부상당하고 군감이 물에 빠졌다. 이는 사실상 후방까지 괴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의 사망자는 단 2명이었다. 이 전투로 인해 칠천량 우회는 좌절되었다. 정유재란 초반 일본군은 영남 남부지방의 통로를 무인지경으로 통과해 호남을 싹쓸이 했으나, 직산에서 명군의 빠른 진군과 완강한 저항에 직면해 패퇴한 후 충청도 일대에서 급히 퇴각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명량에서 이순신의 경이적인 승전보는 일본군의 뇌리에 임진왜란의 악몽을 되살리게 했고 일본군은 완전히 북진의지를 꺾은채 남해안으로 후퇴하여 수성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이후 노량해전이 벌어질 때까지의 2년간 해전은 3회 밖에 벌어지지 않았다. 일본 수군은 철저하게 이순신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처음에 이순신의 지배유형은 관직에 따르는 합법적인 지배였으나 나중에는 그가 갖춘 비범함까지 만백성에게 알려짐에 따라 조직의 일원들로부터 진정한 경의를 이끌어 내어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통솔력을 갖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에 대한 애국과 영토 수호, 백성 보호의 숭고한 기치를 내세워서 피지배집단의 의지를 하나로 단단히 묶고 그 의지를 사리사욕 없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이용하였다. 그 와중에 야전에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승리와 신출귀몰한 전략은 군영 내외에서 신격화되어 이순신의 카리스마를 부각하고 확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해군 재건에 주력했다. 다행히 명량 직후에 승전 소식을 들은 칠천량의 패잔병과 피난민들, 흩어진 전선들이 고금도의 새 해군 수영에 속속들이 합류하여 조선 해군은 불과 한 달 사이에 본래의 위용을 되찾는 데에 성공했다. 그 뒤 명의 수군 제독인 진린이 합류하였는데, 그는 무능하고 탐욕스런 인물이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처음에는 명 해군의 행패를 핑계로 본진에서 백성들과 함께 떠나려는 척을 하여 그에게서 명 해군의 지휘권까지 넘겨받는 한편, 이후 진린에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전부 넘겨주는 식의 '채찍과 당근'을 병용하여 그를 마음으로 감복하게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후 왜군은 철수를 결정했다. 이순신 함대는 명 함대와 합류해 철수하는 적 주력과 노량 앞바다에서 충돌한다. 뒤로는 조정과, 앞으로는 .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이순신과 만나기 전까진 무능하고 부패했던 전형적인 명나라 장수였던 진린은 그의 죽음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통곡했고,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대부분의 명군과는 달리 꽤나 엄한 군율 때문에 곤욕을 치뤘던 명나라 해군 장졸들도 눈물을 흘렸다. 장군의 유해가 실린 운구가 아산까지 올라가는 길엔 여기저기서 백성들이 너도나도 운구를 붙들고 통곡하여 운구가 옮겨지는 데에 매우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한국 역사상 이 정도로 민초들의 경애를 받던 위인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전후 선조는 이순신을 선무공신 1등으로 제수하였다.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의 죽음은 그만큼 민초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카리스마 리더십의 추종자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이순신에 대한 신뢰와 존경, 이순신의 비전에 대한 감성적인 몰입과 동일화 시킨 덕에 그의 사후에 더욱 애통한 슬픔, 자발적 충성과 헌신, 높은 성과(승전) 창출 몰입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일각에서는 이순신을 두고 '군사독재정권이 띄운 조작된 영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건 정말 근거 없는 소리. 조선시대만 해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이순신의 사당을 세운 경우도 있고, 순조 시대까지도 통영 백성들은 이순신의 기일에 모두 소복을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이순신의 운구행렬 때 모인 백성들의 머릿수만 봐도 그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조선 후기에는 이순신 같은 대장군이 조선왕조 장수들의 모범이 되다 보니 정말 사정이 어려웠던 전쟁에서도 "이순신은 했는데 넌 왜 못해?"라고 지탄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독재정권이 이순신의 영웅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이순신 장군은 그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포격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며, 일시 집중타로 벽력같이 적선을 분멸하는 전략을 사용하곤 했다. 이는 그 시대로부터 몇백년은 앞선 것이었다. 조선 수군은 당시 아시아권에서 널리 쓰이던 해전 전술보다 한 단계 이상 발전한 전술을 기록들에서는 이처럼 화력을 중시한 경향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전에서는 불패의 전적을 세운 인물로 싸워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고 이길 수 있는 작전과 전장만을 택해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적의 피해를 높이는 전술을 썼다. 그리고 첩보와 정보를 무척 중시해서 단 한번도 왜군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왜군이 어설프게 기습이나, 야습을 기도하다 조선수군의 매복에 걸려 역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왜군은 계속된 참패로 본거지 부산마저 위험해지자 아예 요충지마다 진지를 쌓고 해전을 극력 회피하는 방어일방도로 나오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 군율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보다 이순신을 더 두려워했으며, 전사자보다 군율에 의한 처형자 숫자가 더 많다. 게다가 이순신이 지휘한 전투에서 침몰선은 0척, 사상자 합하여 100여 명밖에 안 되는 숫자다. 오히려 역병으로 죽은 이가 더 많다. 즉 이를 본다면 이순신은 위대한 전술가이며 카리스마 리더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의 위대한 장군들은 모두 첩보를 철저히 하고 자신의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싸웠으며, 병사들의 군율을 철저히 한 뒤 자신의 군대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짰다. 특히 전술적인 부분만 본다면 이순신은 항상 왜군의 기동을 묶어놓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웠다는 점을 볼 수 있다. 한산도 전투에서 유인한 뒤 포위하여 묶어놓은 것이나 명랑 대첩에서 좁은 길목으로 유인해 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투시 조선수군의 화력과 배의 튼튼함이라는 장점은 극대화 되었으며 일본 수군의 숫적인 우세와 뛰어난 기동성은 매우 약화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만들기 이전의 철저한 첩보 능력, 이 상황으로 유인할 때까지의 계략과 기동 능력, 그리고 전투 개시의 타이밍, 적을 이길 수 있는 포진, 전투시 발휘되는 뛰어난 통솔 능력 등을 본다면 이순신의 군사적 재능은 당대 최고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장군이 하필 임다.
    독후감/창작| 2011.10.03| 5페이지| 1,500원| 조회(231)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10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