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깨고.......-헤르만 헤세, , 정성호 번역센터 옮김-Ⅰ. 들어가며Ⅱ.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Ⅲ. 끝나지 않을 베스트셀러Ⅳ. 나가며Ⅰ. 들어가며‘고전’은 왜 고전일까? 세기가 넘어가는 시간동안 꾸준히 전 인류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품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왜 인류는 그것에 ‘고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쏟고 있는가?이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이러한 ‘왜?’라는 의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들 중 하나는 주관적인 판단의 결여로 인하여, 객관적 판단에 의한 가치 평가가 아무런 의문 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정보의 범람과 자본이라는 권력에 의한 사회적 가치와 개인 스스로가 구현해야 할 가치의 혼란으로 야기 된 현상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인간은 어떤 물질(혹은 인간)에 대한 본질은 버려 둔 채 그것을 둘러싼 이미지와 같은 겉껍질만으로 모든 것을 ‘안다’라고 생각해버리는 오류를 종종 범한다. 그렇기에 이미 피상적인 앎에 익숙해져버린 스스로에게 새로운 각성을 꽤하기 위한 ‘왜?’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엄청난 가치체계가 과연 정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단지 빈 허상만은 아니었는지, 본질은 버려 둔 채 세계가 그리고 남들이 인정한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좋은 것’으로만 받아들여 맹목적으로 좇아왔던 것은 아닌지, 바로 이러한 물음의 정답을 찾기 위해 이미 우리에게 ‘좋다’고 각인 되어있는 ‘위대한 고전’을 파헤쳐보리라 결심했고,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헤르만 헤세의 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가? 사실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을 읽고 난 후, 결코 우연이 아닌 ‘내 강한 소망이 만들어 낸 성취)’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어느덧 이십대의 중간만큼이나 와버린 나. 그 끊임없는 물음표 속 도출되는 끊임없는 물음표. 그러한 물음표로 점나만의 깊은 상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p.31“이것은 성스러운 아버지의 세계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기둥에 가해진 최초의 톱질이었다. 그런 기둥은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서는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우리들의 운명의 내적이며 본질적인 선이 그어져 가는 것이다.”나는 가족이라는 선의 세계에서는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죄를 저질렀고 그 죄로서 나는 고립되어 자신 속으로 침착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상념과 상처를 지니게 마련이다. 이것은 외부적 힘에 의존하여 해결 될 것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것은 자신 만의 짊으로 자신의 힘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나는 생애 최초로 저지를 ‘죄’라고 하는 나만의 짊을 짊어 진 상태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다고 덜어 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즉 누구도 덜어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묵직한 짐을 짊어진 것이다. 그 짐은 나의 내면세계라는 자아와 연결시킬 수 있다. 즉 그것은 악에 눈을 떠버린 ‘나’라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세상의 진실과 본질에 대해 캐묻게 되는 시발점으로 작용케 된 것이다.2) 진리에 대한 회의- 선·악 개념의 혼돈 -> 첫 번째 각성내가 깊은 상념에 빠져있을 즈음 막스 데미안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무언가 특별함을 지니고 있는 아이였는데, 그는 내가 지금껏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무언가에 대해 회의할 수 있게 하였고, 또 해야만 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일깨워 주었다.사람의 사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률적이며 보편적인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선과 악. 고귀함과 천함. 밝고 어두움.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사람들의 의식 속 호불호를 분명케 갈라놓는다. 그것은 ‘당연함’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형성한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속 의심할 바 없는 선악에 대한 교훈적 진리를 더욱9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와 예지를 한 번에 꿰뚫어보고는 경멸했었다. 그렇다! 그 때 카인이 되어 표적을 가졌던 나 자신은 수치가 아니라 그것이 남보다 월등하다는 표시이고, 나는 사악함과 불행을 통하여 나의 아버지보다도 더 위대하고, 착한 사람이나 경건한 사람들보다도 위대하다고 생각했었다.”그리하여 세상의 ‘다른’면의 본질을 겪게 된 자신의 존재에도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3) 아벨의 세계- 진리추구와 자아발견의 포기하지만 이러한 나의 미미한 각성도 곧 악(프란츠)을 떨쳐버린 순간 밝은 세계, 즉 아벨의 세계로 다시금 편입하고 만다.p.66 “그 세계에 관해서는 나는 지금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나 자신 막 다시 아벨이 된 지금, 아벨을 포기하고 카인을 찬미하는 일을 도울 수는 없었고,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그래서 나는 맹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의 예속을, 옛날이 사랑하던 ‘밝은 세계’로의 예속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세계가 유일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그 세상의 보편적 가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과 룰. 이러한 법칙은 결코 인간을 구속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다. 외려 편한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 세계에서는 정해진 길을 걷고 정해진 사고를 하며 고민 따위는 불필요하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보편적인 가치에 의심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세계에서 사는 일은 그만큼 편하며 안락하다.p.67 “아, 이제야운 세계,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에 분명히 내재되어 있는 세계에 대한 존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획일화된 가치에 의해 은폐되고 묵살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無’라는 것으로 취급 될 수는 없다. 단지 숨길 뿐이고 그것에서 눈을 돌려버릴 뿐이다. 데미안은 그러한 절반의 세계에 대한 거짓성과 반영구성을 지적한다. 지금은 비록 ‘진리’라고 박혀 있는 가치가 언젠가는 변화될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5) 탕아 생활- 자기멸시좀 더 나이를 먹은 나는 세상에서 금지된 자신의 본능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과는 점점 동떨어지고 고립되며 고독해 진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 자신조차 확신 할 수 없는 자아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알 수 없는 자기파괴 욕구를 느낀다. 매일을 술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자신을 비참함으로 몰고 가는 행위를 하면서 한편 금기에 대한 반발의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p.102 “이처럼 고통 받는 것이 내게는 또한 쾌락이 되기도 했다. 너무 오래 나는 맹목적으로 무감각하게 기어 다녔고, 너무 오랫동안 내 마음은 침묵한 채 초라하게 한쪽 구석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와 같은 자기 탄식과 공포와 무서운 감정에까지도 환영의 손을 들었던 것이다.”6) 구원자(베아트리체) 발견하지만 이러한 방탕한 생활도 곧 한 여인을 숭배하게 되면서 그 생활의 종지점을 찍는다. ‘어두운 삶’ 속에 살고 있던 내게 다가온 그 여인은 ‘밝은 세계’의 상징처럼 보였고 나 역시 그 여인을 좇아 다시금 ‘밝은 세계’로의 귀환을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인을 그림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의 이상형인 그녀를 그린 그림은 그녀의 형상이 아닌 다른 무엇, 비현실적인 무엇이었지만, 그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나의 내면세계의 형상으로 다가왔다.p.114 “그때 점점 그것이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를 만나게 되며 자아를 더욱 공고히 형성해 나간다.p.141 “어떤 형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것과 불합리해 보이며 난잡하고 괴상하게 느껴지는 자연 형상에 몰두하는 일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우리들이 이형상을 만들어 낸 어떤 의지와 조화되어 있는 존재라는 깨우침을 갖게 해준다. 이 훈련으로 우리는 어디서보다도 단순하게, 쉽게 우리가 창조자라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의 영혼이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얼마나 부단하게 참가하고 있는가를 발견했다.”p.142 “우리는 흔히 개인의 한계를 너무 좁게 책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소.(.......)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는 각각 우리의 육체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의, 아니 더 먼 곳까지의 진화의 족보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한번이라도 체험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소.”8) 나의 ‘소임’- 나에게 도달하는 것나는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와 내면의 꿈을 통해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 중의 하나가 바로 ‘소임’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존재의 이유’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차츰 나의 힘을 깨닫게 됨으로써 인간은 누구에게나 ‘존재의 이유’, 즉 세상에서 책임 져야 할 ‘소임’이 있음을 깨닫는다.p.172 “우리들 누구에게나 ‘소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자신의 임의로 선택하고 변화시키고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새로운 신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었고 세계에 무엇을 주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 이었다! 성장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고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던지 간에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전진하는 일밖에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진정한 천직은 다만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 한가지뿐이었다.”p173 “나는 자연의 시도였다. 불확실 속에의 시도, 어쩌면 새로운 것에의, 아마도 허무에의 시도였다. 그리고다.
현실과의 타협,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1814) 최문규 역< 목 차 >Ⅰ. 들어가는 말Ⅱ. 상징의 의미Ⅲ. 슐레밀과 샤미소의 삶Ⅳ. 마치는 말Ⅰ. 들어가는 말? 한 인간이 그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현실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속세를 떠나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 역시 세상과의 완전한 격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갔기에 나타난 하나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등지는 것 역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하나의 방법일 뿐인 것이다.? 이렇듯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세상은 우리에게 크고작은 선택들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일이 생기곤 한다. 이러한 타협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 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고통스러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원제는 “페터 슐레밀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가난했던 슐레밀은 일자리를 얻기위해 추천장을 가지고 부자인 존씨의 파티에 섞여 들어간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접근해 그림자를 내어 달라 하는 회색옷을 입은 남자에게 원하는 만큼 금화를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은 슐레밀은 냉큼 그림자를 팔아 버렸다. 그 덕에 백만장자가 되지만 그림자를 잃어 버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자신을 숨기고 고독과 후회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다시 접근한 남자는 그림자를 다시 줄테니 영혼을 팔라 유혹하지만 슐레밀은 그를 거부하고, 끝내는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여 자연과학도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이 이야기속에서 샤미소는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원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부(富)와 그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더 적인 소재들이 의미하는 바에대해 생각해 보자.1. 회색옷을 입은 남자? 그때 파티에 참석한 누군가가 “터키산 양탄자를 여기에 펼쳐놓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고 말했다. 그런 소망을 꺼내자 회색옷을 입은 남자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겸손하고 공손한 몸짓으로 매우 귀해보이는, 금테를 두른 양탄자를 꺼냈다. ……”혹시 텐트도 있어요?” 그는 마치 너무 황송하기 이를 데 없다는 듯 공손하게 절을 함으로써 대답을 대신했고, 이미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공 있었다. 천, 막대, 끈, 쇠연장. 요컨대 멋진 야외용 텐트를 치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이 그 주머니에서 나왔다.회색옷을 입은 남자는 그 주머니 안에 수없이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 만능 상자같은 인물이다. 이러한 물건들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 주는 신비한 물건들 역시 한가득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며 사람들이 혹할만한 매혹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 남자 자체가 바로 자본주의이며 그것이 19세기의 현실임을 고려해 더 보편적으로, 인간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2. 행운의 자루? 행운의 자루는 회색옷을 입은 남자가 거래의 댓가로 제공하려던 수많은 신비한 물건들 중 슐레밀이 선택한 것이다. 행운의 자루는 원하는대로 무한히 금화를 꺼낼 수 있는 마법의 주머니로, 이는 회색옷을 입은 남자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며 직접적으로 금전과 연관된 물건이다. 이는 회색옷을 입은 남자와의 거래로 얻은 현실적인 이익이며, 또한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얻은 보상물이라 할 수 있다.3. 그림자? 그림자 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자의 존재는 일상생활에 별반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아무말 없이 조용하게 빛 아래에 서있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존재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한 속성때문에 그림자는 수많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고, 오랜 알렸고, 이들은 곧 나를 혹평하고 추잡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한번은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 부모를 따라가던 어느 예쁘고 귀여운 소녀가 우연히 내게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던졌다가 그림자가 없는 내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는지, 자신의 예쁘 얼굴을 스카프로 감싸고는 머리를 숙인채 소리없이 지나가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슐레밀은 절망을 느낀다. 처음에는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으로 느꼈던 그림자의 부재가 심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 마음에선 벌써 어떤 예감이 싹트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돈이 업적과 덕성보다 훨씬 중요할 지라도, 그림자야 말로 그러한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바쳤지만 지금은 단순한 돈 때문에 그림자를 바치고 만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이 지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림자가 인간의 중요한 속성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업적과 도덕성과는 다른 무언가 이며 양심과 비슷한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추측할 수있다.? ? “교수님” 나는 말을 꺼냈다. “혹시 불행하게도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짜 그림자를 그려주실 수는 없는지요?”……”그런데……” 그는 나에게 물었다. “어떤 서투른 행동을 했기에 아니 뭘 잘못해서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렸답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중요할 수도 있겠군요.”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거짓 대답을 했다. …… “제가 그사람에게 그려줄 수 있는 투사된 가짜 그림자는 가벼운 움직임 만으로도 다시 잃어 버릴 수있습니다.”? 슐레밀은 가짜 그림자를 그려보려 하지만 그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림자라는 것은 가짜로 꾸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새 들통나고 말겠지만 임시적으로 나마 남의 이목을 속여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행세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슐레밀은 그것을 돈과 바꾸었다는 것에 부끄러움과 참피함을 느끼고 있다. 그 키가 컸고 몸집도 컸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슐레밀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를 평생 모시겠다 맹세한 충직한 하인인 벤델이 그의 약점을 보완해 주며 그를 도와주는 장면이다. 슐레밀은 그의 도움으로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숨길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그는 다시 사회로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의 구성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과 일맥상통함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특징들을 살펴보면 그림자는 인간이 인간의 사회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하며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속성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양심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잃으면 정신적인 피폐함과 고통을 느끼게 되며 그것이 있는 척 남의 이목을 속여도 금새 들통이 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낯 돈과같은 것과 바꾸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것.? 이러한 그림자는 인간의 정체성 즉, ‘스스로에 대한 존재의식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돈이 바로 권력이고, 무소불위의 힘 그 자체인 사회에서 그 이익에 눈이 멀어 그저 종이조가리, 쇠덩이에 불과한 돈을 탐하며 양심과 마음을 무시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뒤늦게 깨닳고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텅텅 빈 빈 껍질뿐 일 것이다. 또한 이 정체성은 민족의 정체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것은 샤미소의 인생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더욱 명확해 지는데, 그것은 다음에서 계속 알아보기로 한다.?Ⅲ. 슐레밀과 샤미소의 삶? 샤미소(1781~1838)는 독일의 문학사에서 소위 낭만주의(1795~1835)로 구분되는 시대에 살았다.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 문학에서 표현하는 것은 외부의 존재나 사실이 아니라 자신 내면의 자기의식이고, 그 자기의식은 바로 시적 상상력이다. 여기에서 시적 상상력이란 현실 가운데에 있지만 현실너머의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고아있다. 이러한 유사성, 그리고 문학과 삶을 합일화 시키고자한 낭만주의의 이념을 생각한다면 슐레밀의 이야기는 바로 샤미소 본인의 내면을 형상화 시킨 자전적인 글로 볼 수 있다. 이제 소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제가 이 자리에서 즉시 당신의 고귀한 그림자를 들어올려서 제게 집어 넣을 수 있도록 허락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제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 대가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저는 이 주머니 안에 갖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 중 하나를 당신께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행운의 자루!”……그 안에서 그는 우선 열개의 금화를 꺼내더니 다시금 열개, 다시 열개, 또다시 열개를 꺼냈다. 나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 “좋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주변에는 햇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고, 나는 제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이 대목은 슐레밀이 회색옷을 입은 남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림자를 팔게되는 장면이다. 슐레밀이 이야기 하듯, 그는 눈앞에 쏟아지는 금화에 눈이 멀어 ‘제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여기에서 샤미소는 자신의 내면에 꽁꽁 감춰두었던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프랑스 태생으로 프랑스 혁명때문에 독일로 망명와 독일인으로 살았으며, 독일을 지극히 사랑했다. 당시의 프랑스가 정치적 개혁만을 부르짓은 것에 반해 독일은 그에게 철학적, 문학적 사상을 일깨워 주었고 그로 인해 그는 본국의 딱딱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의 삶과 내면, 그리고 정신적인 풍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중심인물이었던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은 “프랑스 혁명보다도 자기의식에 대한 사유가 더 중요하다” 는 말도 남겼다. 이런 점은 샤미소가 독일이라는 정신적 풍요를 안겨주는 공간을 일종의 도피처로 여겼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낭만주의사상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로의 몰입을 도왔고, 그가 대면해야 했던 프랑스)
클라우스 만 의 ‘메피스토’를 통한 19세기 초중반의 사회 엿보기Ⅰ. 서론여러 독일 작품 중에서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를 선택한 계기는 토마스 만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는 토마스 만의 작품과 연관시켜 그의 소설을 재평가해보고 싶었으나, 그러기위해서는 토마스만의 소설까지 완벽한 이해를 요구했다. 따라서 주제를 변경하여야 했는데, 그때 눈에 뛴 것이 ‘메피스토’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 시기인 19세기 초중반, 약 1919년에서 1933년 정도에 시대적 배경이었다. 이 시대는 1차 대전 종전 후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전까지의 시대이다. 이런 독일의 사회에서는 어떤 상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의 환경은 어떠한지 등에 의문이 생겼다.이 소설은 연극배우의 심리적 측면이 강조되며있으나 그를 완전히 배제하고 초점을 배경사회에 맞춘 채 이 소설의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 시대 생활상을 알아보기로 한다.Ⅱ. ‘메피스토’의 간략한 줄거리이 작품에서 시대적 배경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소설에 내용이 꽤 많은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이 소설은 헨드릭 회프겐이라는 사람의 출세기 일대를 다루고 있다. 그 사람은 나치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함부르크에서 유명인이었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진출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베를린에서 유명세를 타는 데에 일조한 것은 그의 부인인 바바라의 가문이었다. 그 후 나치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헨드릭 회프겐은 프로이센 총리에게 빌붙어 다시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된다.이런 구조이기에 나치가 들어서기 전의 모습과 들어서는 과정 그 후를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Ⅲ.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대적 상황1. 빈부의 격차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시간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따라서서 지금 언급되는 내용은 나치정권이 들어서고 헨드릭 회프겐이 권력과 손잡은 후 의 상황이다.“임금이 정말로 그렇게 형편없었답니까?”“비참하대요. 게다가 임금은 자꾸 떨어지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잖아요.”“오늘 밤 파티를 위해 이 오페라 하우스를 장식하는데 6만 적게 잡아도 4만 마르크는 더 들었을 겁니다. 오늘 무도회 준비 때문에 닷새 동안 오페라하우스의 문을 닫아 발생하는 경영 손실을 빼고도 말입니다.”)이 소설 내 당시 시대는 1933년 쯤 나치가 정권을 잡은 초기이다.근로자들의 임금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는 상황 , 즉 소시민들에 삶은 더 살기 힘들어 져만 가는 상황을 나타낸다. 그에 비해 파티 (프로이센 총리) 에 투자된 자금을 보면 막대하다. 고위층 직위를 가진 사람들은 시민들과는 달리 부유함을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그녀는 신중하고 사려 깊고 다정하게, 독일의 활발한 전쟁 준비 덕분에 화려한 목걸이 와 기다란 귀걸이를 하고 파리에서 유행하는 옷들을 입고 온갖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이 수다스런 부인을 바라보았다.)수다스런 부인은 독일 군수 공장 사장의 부인이다. 독일의 군수 관련 사업이 호황이었으며 그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소비를 문제없이 소화 가능 한 것으로 보인다.2. 화폐의 단위이 소설에서는 돈에 단위로 마르크가 나온다. 마르크는 시대대 독일에서 얼마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추측할 수 있는 문구가 나온다.‘걸어가려면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몇 분 정도는 늦을 거야. 율리에테는 아마 엄청나게 화를 내겠지? 택시를 타고 가면 정각에 도착할 거고 전차를 타면 아슬아슬할 거야. 그런데 주머니에는 지금 5마르크짜리 한 장밖에 없어. 적어도 율리에테에게 이 정도는 주어야 하는데. 그럼 택시는 꿈도 못 꾸겠군. 전차도 안 되고, 전차를 타면 4마르크 85페니히가 남는데, 이걸 율리에테에게 주기에는 부족해. 잔돈까지 털어서 줘야 하니까. 아마 그녀는 그걸 무지 불쾌하게 생각할 거야.’)여기서 우리는 전차를 하번 타는데 15페니가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100페니가 1마르크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이 시대 독일 전차도 많이 실용화 된 것처럼 보인다. 택시가 존재하고 비싸므로 전차는 서민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 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버스와 거의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짐작 된다. 6666원 이다. 마르크는 이 부분을 제외 한 여러 부분에서 많이 나온다. 회프겐의 월급이 800마르크에서 1000마르크, 1500마르크로 오르는데 이 돈의 정도는 몸으로 느끼기 힘든데 월급이 530만원에서 660만원, 1000만원 이라고 하면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온다.다른 예로도 이 점은 확실해진다.그가 1층의 방을 임대해서 살고 있는 이 낡은 주택은 30년 전에는 이 도시의 최고급 주택가에 속했고 거리도 아주 조용했다. 이 고급주택가의 대부분 주민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난해졌다. 주택들의 장식과 박공들은 이미 떨어져 나갔고 주택을 에워싼 큰 정원들도 황폐해져 버렸다. 그에게 커다란 방 한 칸을 임대해 주고 매달 40마르크를 받는 묑케브르크 영사 부인의 경제 사정도 어려웠다.)매달 40 마르크를 받는다면 매달 27만원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싼 방 값으로 인식하게 하여 소설 속 마르크의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6666원이라는 것을 더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위에서 나온 4만 마르크 등의 가격들도 우리 돈으로 생각해보면 독일의 경제적 상황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3. 정치세력들의 분할이당시 독일에서는 정치적 세력이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소련을 방문하는 동안 우익계로부터 증오를 사고 민주계로부터는 약간의 의심을 받았던 이 시민계급의 학자는 마지막으로 수도에 머무는 내내 많은 친구들, 정치가들, 작가들,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대화는 아주 격렬한 의견 대립으로 끝이 났다. 친구들은 비꼬는 투로 물었다.)위에서 알 수 있는 내용으로는 독일에는 우익께와 민주계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리고 두 세력에게 다른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두 세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헨드릭은 생각했다. 그러자 아직도 건재한 거대 야당의 존재가 떠올랐다. 사회민주당원과 공산당원들이 저항을 할 것이다. 혹 무장 저항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호텔 방에서 샴페인 반병을 마신 헨드릭 회프겐은 그렇게 무섭지 놀라울 정도로 빨리 뒤바뀔지도 모르잖아. 독일 민족을 파시즘에 떠넘기려는 시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사회민주당과 공산당 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나치가 독재를 시작 하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서 우익계는 여러모로 보아 사회민주당을 의미하고 있다.따라서 독일에서는 그 당시에 사회민주당 공화당 나치당 크게 이 세 갈래의 세력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4. 나치(독일민족주의)주의나치는 독일혈통 우수 주의를 내걸고 국민들에게 나치의 사상을 침투 시킨다. 그럼에 따라 민중들에 의식에는 나치의 사상들이 들어간 행동들을 많이 보이는데 이 소설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 예가 나타난다.“그래도 그녀는 유태인인걸.”그는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직이 말했다. 방금 순수한 마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구했던 오토 울리히스만이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음 그를 나무랐다. )1926년 젊은 미클라스의 말로 이 시기는 아직 나치정권이 들어서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나 젊은이들부터 반 유태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독일 나치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일 것이다.“우리는 독일 극장에서 빌어먹을 유태인 계집을 보고 싶지 않아.”관객으로 가장한 폭도들이 악을 쓰자 불이 켜지고 영화 상영이 중지되었다. 호기심으로 이 비밀스런 영화를 보러 왔던 대담한 관객들은 혼비백산해서 극장을 떠났다. 도라 마틴을 보기 위해 상당히 많은 유태인들이 왔는데 도망치는 사람들 중에서 유태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붙잡혀 두들겨 맞았다. 선전 부는 런던에 독일의 자유주의 정부는 그 영화의 상영을 허락했지만 베를린 관객들이 그런 류의 영화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퍼트리게 했다.)도라마틴은 미국에서 매우 성공 한 상태였다. 영화도 흥행이 잘되었으며 연기 실력도 입증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내 상영에서 이런 일이 있어났다는 것은 그 당시 정부는 질과 내용 다른 노든 것을 일단 배제한 채 배우가 유태인인 것만을 가지고 일단 조작을 가해 민중에게 나치의 사상 주입에 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자들은 모든 나쁜 일은 유태인들과 베르사유 조약 탓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그 더러운 말을 믿어 누가 진짜 죄인인지 망각하게 되지요.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그래요.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유인 정책’이라는 겁니다. 아는 것도, 올바르게 생각할 능력도 없는 이런 혼란스런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정책이 먹혀들게 마련이니까요. 그 후 그들은 풀이 죽어 지내다가 빌어먹을 ‘나치’가 되는 겁니다.”)국가 전반적으로 민중을 선동하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나치정권은 들어설 수 있었다.321그가 흑인 여자와 관계를 갖고 있고 더욱이 그녀에게 채찍으로 맞으며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 그들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모든 것이 끝장일 것이다. 흑인 여자는 유태인여자나 진배없이 질이 나빴다.이것은 지금 일반적으로 ‘종족의 수치’라 불리며 가장 비난 받는, 정확히 바로 그런 일이었다. 독일 남자는 금발 여인과의 관계에서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이 단락에서 독일의 나치사상에 유태인 박해가 있었다기보다는 독일 우월 정책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태인 박해뿐만 아니라 흑인에 대한 차별도 나치 정권에는 있었다.5. 나치 정권 속 탄압의 실태울리히스는 공산당에 관한 일을 하다 붙잡혀 고문을 당한다.“한번은 꼭 저렇게 생긴 나무에 기어 올라가야 했어. 올라가는 일이 상당히 힘들었지. 내가 나무 꼭대기에 도달하자 그들이 나에게 돌을 던졌어. 돌멩이 하나가 내 이마에 맞았지. 여기 흉터가 보이지? 나는 나무 꼭대기에서 수백 번도 넘게 ‘난 더러운 공산주의 개다’라고 소리쳐야 했네. 그들이 다시 날더러 내려오라고 하더니 채찍을 들고 기다리더군.…….”)나치시절에 비인도적인 고문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만약 네 얼굴에 나타난. 말할 수 없이 거만한 표정을 보았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거야. 그러나났어.
전쟁이라는 이질적이고 모순된 세계의 삶과 죽음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목 차I. 시작하는 글II. 줄거리III. 전쟁이라는 이질적이고 모순된 공간IV. 전쟁 속에서의 생명V. 맺는 글I. 시작하는 글평소 독일 문학을 자주 접하지 않았던 터라 책을 선정 할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해 보았었다. 독일 문학 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졌었기 때문에 쉬운 작품을 선정하려고 노력 했었다. 그 와중에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책을 발견 했는데 왠지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영화로도 있는 유명한 소설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책을 선정 하였다.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레마르크 자신이 18세의 나이로 제1차 세계대전에 반 강제적으로 참전하였으며 전쟁의 실상을 보고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전쟁의 경험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모체가 되었다.이 책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전경을 느끼는 것 보다는 정쟁으로 인해 어린 한 청년이 변해가는 모습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생명이 체스 판의 말처럼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쟁이라는 모습의 참혹성과 그로인해 한 인간의 꿈과 희망이 짖밟혀 지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다.II. 줄거리독일인인 18세의 소년 파울 보이머는 학교 선생님의 자극을 받아 학우들과 같이 학도병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동안의 사회에서와는 다른 상황이었고 단순히 적을 죽이고 살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일 뿐이었다. 전쟁의 목적 정당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도 못한채 그렇게 전쟁을 계속되고 주위의 친구 전우들은 한명씩 죽어가게 된다.전쟁중 휴가를 나온 파울은 그토록 꿈꾸던 집에 돌아오지만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괴로워한다.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서 무의미한 전쟁을 되풀이 하는 것 밖에는 현재 파울에게는 의미기 없었다. 결국 파울도 전사하게 되고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III. 전쟁이라는 이질적이고 모순된 공간전쟁터라는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사회가 더불어 살기를 꿈꾸는 공간이라면 전쟁터에서는 적과 나와의 공존이라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살고 나의 전우가 살아 집에 돌아 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살기를 원하는 것은 성경에도 불경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왜 싸우는 것일까? 이러한 고민을 파울과 그의 동료들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그렇지만 정말 우스꽝스럽지 뭐야. 우리들은 여기서 이렇게 우리들의 조국을 지켜야겠다고 하고 있지, 저쪽 프랑스 인들 역시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면서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말도 안 되는 거야.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은 거지?”(중략)“그렇지만 생각해보아라. 우리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뿐이야. 그리고 프랑스 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나 직공이나, 그렇지 않으면 말단 월급쟁이야. 그런데 어째서 그 프랑스 인 자물쇠 장수와 구두 수선공이 우리들과 전쟁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그럴 이유는 없단 말이야. 그것은 전부 정부가 하는 짓이야. 나는 여기에 올 때마다 프랑스 인이라고는 한 번도 본 일이 없어. 대부분의 프랑스 인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고 있단 말이야. 요컨대 그들도 정신없이 전쟁에 끌려나왔단 말이야.”(중략)“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전쟁으로 득을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놈이 숨어 있단 말이야”(중략)“그렇지만 나는 전쟁이란 것은 오히려 일종의 열병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놈은 없다. 그런데도 갑자기 불쑥 전쟁이 터져버렸지 않느냐. 우리들은 전쟁 따위는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어. 다른 놈들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고ㆍㆍㆍㆍ.그런데도 어떠냐, 이렇게 세계의 절반이 정신없이 덤벼들고 있지 않느냐 말이야”이상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쟁과 별 관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으로 그들은 어떠한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상대 적군도 마찬가지 이다. 결국 전쟁의 세계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인 것이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자들의 싸움에 끌려와서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고 승리한다고 해도 슬픔과 상처만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 가야한다.전쟁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파괴한다. 전쟁의 현실은 너무나도 이질 적인 것이라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잃게 만든다. 즉 현재의 자신은 과거와는 달라짐을 의미한다.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환경들이 현실에는 어울리지 않고 어긋나게 된다. 이는 휴가를 나온 파울의 모습에서 나타나 있다.“내 마음속에는 어떤 무서운 미지의 감정이 갑자기 솟아오르기 시작 했다, 나는 돌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완전히 밖으로 쫓겨났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탄원하고 노력해보았자 아무것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없었다.”“나는 마치 죄의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멍하니 한심스러운 모습으로 거깅에 앉아 있었다. 과거는 딴 데를 돌아보고 말았다. 동시에 나는 과거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서워졌다.”“이제부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데 과거 때문에 의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 병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 병졸이라는 것에 매달려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결국 파울은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가족과 편안한 집에 휴가를 얻게 되어 돌아가지만 자신이 자라온 그 어떠한 공간보다도 익숙한 그 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전장에서의 생활로 정신적인 압박감 살육으로 인한 자신의 변화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과거의 자신의 흔적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전쟁의 병졸로써의 그의 모습은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진 후 인 것이다. 결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돌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 즉, 돌아갈 곳은 전쟁터뿐이라는 냉정한 현실에 직면 하고야 만다. 쟁쟁으로 인해 희망을 꿈꾸어야 할 18살 청년은 돌아갈 곳과 앞으로의 희망을 잃은 채 전쟁터의 병졸로써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고 말았다.IV. 전쟁 속에서의 생명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파울을 비롯한 친구들도 한명한명 씩 전쟁터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만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친구를 잃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병졸로써의 그들은 그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갈 준비를 한다. 파울의 친구 캠머리히가 한 쪽 다리를 절단 하고 밀러는 켐머리히의 좋은 가죽으로 되어있는 장화를 얻고자 했다.“밀러는 자꾸만 켐머리히의 장화를 탐내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을 감히 생각하지도 않았던 다른 사람들보다도, 밀러가 동정심이 적은 사나이란 것은 아니다. 밀러는 다만 동정과 탐욕을 구별 지어서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 장화가 켐머리히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밀러는 그런 것을 손에 넣을 방법을 생각하기 보다도 차라리 철조망 위를 맨발로 걸을 정도의 의리를 가지고 있는 사나이였다.”(중략)(켐브리지가 죽은 후) “밀러는 바르크 앞에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주었다. 나는 장화를 밀러에게 주었다, 그런 다음 둘이 함께 안으로 들어갔는데, 밀러는 당장이 구두를 신어보았다. 조금도 크지 않고 꼭 들어맞았다ㆍㆍㆍㆍ.(중략)(밀러가 죽은 후) “드디어 숨을 거두기 전에 나에게 자기 지갑을 주고 장화도 유품으로 주었다ㆍㆍㆍㆍ. 그 장화는 켐머리히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장화를 신어보았다. 내발에 잘 맞았다, 내가 죽으면 차덴을 주겠다고 약속했다.”이처럼 사람이 죽을 때 장화를 챙기는 모습이 담담하게 쓰여지고 있다. 물론 일반 사회였다면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 유품을 바로 신는 다거나 친구가 죽어 간다고 그 장화를 탐내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보면 죽어가는 친구와의 우정보다 발에 잘 맞는 장화가 더 현실적인 필요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상대 적군을 사살 하고 난 뒤 상대 진지에서 통조림 등 을 챙겨오고 이를 통해 배를 불리는 모습을 보면 전쟁터에서는 살인으로 인한 죄를 떠안으며 살아가기 보다는 배를 불려 더 삶을 지속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졸로써 그들이 적을 죽이면서 또는 그 시체를 보면서 마냥 무감각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파울은 자신이 숨어있던 참호 속에서 프랑스 적군을 죽이고 같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정신적이 죄책감을 격게 된다.
그때도 라인하르트는 있었다.Hans Peter Richter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를 읽고〈목차〉Ⅰ. 들어가는 말Ⅱ.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 분석Ⅲ. 전체주의 사회성과 인간의 본성Ⅳ. 맺는 말Ⅰ. 들어가는 말과학계에는 흔히 “유대계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노벨상을 탈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는 유대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학계, 권력과 부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학계, 정계, 경제계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유대인에게도 숱한 박해의 역사가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십자군 전쟁기를 거쳐 제 2차 세계 대전까지 그들의 수많은 박해는 세계 역사의 흐름의 변화를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되었다. 바로 유대인의 유능한 모습은 힘든 억압과 박해를 견뎌내며 생긴 강인한 생활력과 끈질긴 인내력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유대인이 고통스럽게 당했던 박해는 영화『쉰들러 리스트』, 소설『안네의 일기』 등으로 알 수 있다. 소설『안네의 일기』는 안네라는 실존 유대인 소녀의 눈으로 나치의 만행을 그린 것이라면, 소설『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유대인 소년을 친구로 둔 독일인의 시점에서 유대인을 향한 독일의 불화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Hans Peter Richter의 작품으로, 그는 1925년 독일 쾰른에서 출생하여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1년 이 작품을 통해 ‘청소년 서적상’ 을 수상했으며, 이 작품 외에도 히틀러 독재 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이 소설 속의 ‘나’는 작가이며 프리드리히는 실제로 어린 시절의 친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독일인 소년의 눈으로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증거하고 애도하며, 독일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로 의미가 있다.이 작품에서 유대인 소년 프리드리히와 독일인 소년인 ‘나’는 친구였고, 두 가정도 매우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독일인 소년의 아버지가 . 프리드리히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수용소 감금으로 외톨이가 된다. 연합군의 총공격 중에 라인하르트의 가족들은 지하 대피실로 피한다. 미처 피하지 못한 프리드리히는 지하 대피실로 가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주인공인 ‘나’ 와 ‘프리드리히’가 독일의 유대인 박해 정책 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유년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 ‘나’의 아버지인 주변 인물의 유대인 차별 제도 아래서 서로의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각 인물들의 상황과 그에 따른 대처 장면을 전체주의 사회상과 인간의 본성을 통해 이야기 해보고, 남아있는 전쟁과 차별 속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알아보겠다.Ⅱ.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 분석1. 프리드리히프리드리히는 주인공인 ‘나’ 와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독일 안에서 핍박받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리드리히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주인공과 쉽게 어울려 다니지도 못하고 정든 학교도 떠나게 된다. 이러한 차별 속에서 한번쯤 유대인이라는 틀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프리드리히는 그것보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유대인은 우리의 불행이다.”꼽추 사내는 순식간에 프리드리히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일어나! 나하고 말할 때는! 그리고 큰 소리로 대답해!”프리드리히는 똑바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창백했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유대인은......너희의 불행이다!”))검소한 생활 습관과 엄격한 규율이 밑바탕이 된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돌며 어느 곳에서나 재력을 가지고 되고 독일에서도 재력을 확보하면서 일부 독일인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소설 속에서도 나타난다. 프리드리히의 가족은 공무원인 아버지를 통해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나’의 독일인 가족은 실업 상태로 어려운 생활을 한다. 물론 여기서 프리드리히는 당시의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인의 열등감을 알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프리드리히의 마지막 말은 유대인을 무시하는 독일인에 대한 일갈로가의 의도로 느껴지는 이중적인 부분이다.프리드리히는 독일인들의 행동적인 박해를 피해 집을 나가게 되며 소유품을 팔아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힘든 생활과 하나씩 없어져가는 소유품 속에서 프리드리히는 엄마, 아빠를 잊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 즉 ‘유대인 프리드리히’는 잊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끔찍해요. 이렇게 혼자서....... 자꾸 옛날 생각이 나요. 하지만 전 많은 것을 잊어버렸어요. 이젠 아빠와 엄마를 제대로 떠올릴 수도 없어요. 부모님을 기억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계도 팔아야 했거든요. 하지만 이것만은 아직까지 가지고 있어요.”프리드리히는 안주머니에서 자기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 뚜껑을 꺼냈다. 노이도르프 선생님이 열세 번째 생일 선물로 준 만년필 뚜껑이었다.)프리드리히는 차별과 박해라는 힘든 과정에서 성장을 한다. 유년기 시절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속에서 성격이 밝았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한 삶에 찌든 모습으로 변모된다. 그 와중에도 유대인 성인식에 선물을 받았던 만년필을 간직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유년 시절과 다르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 속에서 볼펜을 통해 유년시절의 행복한 시절을 마음속으로 간직한 것이다.2. 나(라인하르트)주인공인 ‘나’는 프리드리히와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박해를 받는 프리드리히를 전적으로 도와주고 감싸준다. 내가 프리드리히와 함께 고통을 나누는 모습은 영화관에 몰래 함께 들어가서 서로가 긴장하는 것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 도 파괴욕을 통한 쾌락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나는 망치를 내리치면서 복도를 지나갔다. 의자 다리, 쓰러진 장롱, 유리컵 할 것 없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뭐든 쳐서 옆으로 밀쳤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자니 내가 무척이나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망치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즐거워서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중략) 갑자기 피곤해지면서 구역질이 났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나 폭력성으로 표현된다. 그와 동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행동’ 이라는 관점에서는 전체 속에서의 개인으로 표현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가령 혼자서는 못할 행동을 여럿이서 행할 때 생기는 자신감 등의 것이다. 하지만 곧 피곤감과 구역질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옳은 것이 아닌 전체주의 집단의 가치에 잘못됨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 나타난다. 또한 작가의 그 당시의 전체성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모습을 슬며시 보여주고 있는 부분으로도 해석된다.3. 주인공의 아버지주인공의 아버지는 소설 전반부에 실업을 당한 무능력한 가장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법적인 제재가 많아지면서 생긴 일자리를 통해 가장의 역할을 하고 또한 독일노동당의 일원으로 바뀌게 된다.아빠는 손을 내저으며 슈나이더 씨의 위로를 거부했다.“올해 ‘기쁨을 통한 힘’의 도움으로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가족이 휴가여행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동안에도 저한테는 좋은 자리가 또 제공됐습니다. 이게 다 제가 당원이기 때문이죠. 슈나이더 씨, 저는 제 가족과 저에게 이득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가 사회주의 독일노동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주인공의 아버지는 무능하지만 소설 전반부에 외할아버지의 유대인에 대한 강한 증오에 대해서도 별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은 평화로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의식은 슈나이더 씨와 사이좋게 지내고 프리드리히를 아껴주게 한다. 하지만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 독일인은 평화가 아닌 적대감을 가져야만 가족이 행복해지는 모순이 보인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유대인 박해의 중심에 선 노동당원에 가입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개인의 가치를 집단의 가치로 수렴하는 전체주의 사회상을 볼 수 있다.Ⅲ. 전체주의 사회상과 인간의 본성전체주의는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근거로 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 생활을 간섭 · 통제하는 사상 및 그 체제이다. 이러한 전체주의는 독일의 나치즘에 의한 2차 세계 대전에서 잘 나타난다. 전체주의를 밑바탕으로 전쟁을 벌이의 가치와 어긋나는 집단을 배척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배척적인 집단의 가치와 이미지를 임의로 만드는 해석적 전체주의도 나타난다. 가령 유대인은 유전인자는 열성이고, 독일인 자신들이 우성이라고 해석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독일인의 유대인 핍박은 그러한 차이와 서열을 기반으로 하여 남을 이겨야지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슈나이더 씨, 당신은 마치 소수의 광분한 유대인 증오자 들만 무서울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군요. 하지만 당신들의 적은 하나의 국가예요.』)라는 부분은 전체주의의 이름으로 한 집단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전체주의의 위험한 모습중의 하나가 집단의 목표로의 개인성의 수렴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연합군의 압력 속에서 집단의 긴장감과 피해 의식을 완화시키기 위해 유대인 박해라는 것을 내놓았다. 물론 독일인들도 처음부터 유대인들의 핍박과 차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 더 크게는 자신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의식을 전체주의로 수렴했던 것이다. 이것은 『재판장님, 이 유대인은 세계 유대인의 사신으로서 내 사업을 망칠 것입니다. ‘돌격대’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우리 독일 경제가 입은 엄청난 피해가 유대인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하지만 그러한 전체주의의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선한 본성이 살아있는 모습도 보인다. 프리드리히는 숱한 고통과 핍박의 나날 속에서 한 가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만년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개인의 정체성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나타내준다. 또한 청소년기는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시기로 프리드리히가 차별 속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소설 속의 공습 대피소에서 육군 상사의 『비루먹은 개라고 해도 공습이 지나갈 때까지는 안에 있게 하시오!)』부분은 나치즘을 대변하는 군인마저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