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너다작품 소개“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영웅의 아들도 영웅이어야 하는가.”아버지 안중근 때문에 평생 일본인의 압박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안준생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부르짖는다.“나라가 망했으면 망한 대로 살면 되고 나쁜 놈 나서서 설치면 구경하면 되는 거지, 왜 집 안을 망치고 자식을 망칩니까?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아버지는 대답한다.“나는 너다. 바로 너다..”연극 는 아버지는 국가가 추앙하는 애국 영웅이지만 아들은 친일파로 몰려 역사로부터 배척받은 인물로 호랑이 같은 아비에 개 같은 아들, 즉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호부견자(虎父犬子)’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중근의 영웅 서사와 광야를 떠도는 영웅의 아들 안준생의 비참한 삶이 오버랩 되며 화해를 위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시작됩니다. 사실적인 영상을 투사한 접이식 무대를 퍼즐처럼 조작해 광대한 만주벌판과 하얼빈 시가지, 여순 감옥의 사형장 등 역사의 상징물들을 만들어내는 무대 메커니즘은 머나먼 역사속으로 우리들을 귀화시킵니다. 역사 속에서 영웅과 인간에 대한 정직한 애정을 들춰낸 명장 윤석화의 여눌과 2010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미술상에 빛나는 무대, 배우들의 열연이 황금비율을 이룬 2011년 예술의전당 명품연극 를 통해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진정한 영웅, 안중근의 이미지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줄거리1909년 10월 26일,하얼빈 역에 여섯 발의 총성이 울린 지 벌써 100년이 흘렀다....시간과 장소도 알 수 없는 어느 막막한 공간. 한 남자가 이곳을 떠돌며 헤매고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이다. 사람들은 그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굴욕적으로 절을 했다는 이유로 친일파, 변절자라 욕하고, 그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몰아세운다. 무대가 바뀌고 안중근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대한의군들을 이끌고 훈련 중인 모습이 그려진다. 이윽고 그들은 나라와 민족이 위급한 상황에서 남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목치는 영어 삼흥학교를 연 사실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학문을 민족을 살리는 수단으로 여긴 그는 강렬한 민족주체 의식을 바탕으로 열린 국제 감각도 동시에 소유한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학문을 출세의 수간으로 전락시킨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학문하는 자세는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민권·민족의식은 청국 의사 서원훈의 안태훈(안중근 의사의 아버지)구타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외세 청국의 간섭에 대해 ‘청국의사가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민생을 어찌 보존할 수 있으랴’라고 분노한 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가 그의 민족의식은 망명결심을 만류한 빌렘신부에게 ‘국가(민족) 앞에는 종교도 없다’고 한 그의 선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론 이는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민족문제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던 당시 천주교와 지배계층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천주교사에서 안중근 이사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이전의 천주교인들이 이루지 못한 종교와 역사의 결합을 통합적으로 이루어낸 인물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안중근 의사는 민족 문제해결의 추동력을 천주교라는 종교에서 얻었던 것이다.안중근 이사가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 운영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당시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교육운동에 전력하기 이전에 이미 의열투쟁을 구상하였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04년 러일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속에서 일제는 한국정부에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는 등 침략을 노골화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의 침략을 직시하도 있던 안중근의사는 당시 대리공가였던 하야시 곤스케와 부일파 처단을 일제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보안회에 제의하였다. 그러나 보안회 간부들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그의 의열투쟁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에 실망하지 않고 안중근 의사는 의병투쟁을 염두에 둔 해외 독립운동기지를 구상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르각신부의 조언리민족의 자랑인 것이다.글_신운용(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워/문학박사)이야기2에 담겨있는 희생과 역설의 미학2010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기를 맞은 지난해를 전후해 우리는 3편의 의미 있는 공연을 접했다. 첫째가 뮤지컬 이었다. 2009년 10월 26일 안 의사 의거 100주년에 맞춰 개막한 이 대형뮤지컬은 장중한음악과 화려한 무대연출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안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당시 쏜 일곱 발의 총성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고전적 영웅설화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안중근의 역사적 무게감에 짓눌려 위인전 속의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의 이미지를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좋은 드라마의 핵심요소로 뽑았던 ‘발견’과 ‘반전’이 빠져버리는 약점이 발생한 이유다.안중근의 안티고니스트로 부각시킨 이토 히로부미가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형상화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토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여주인공 설리가 무의미한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에선 일본 군국주의의 ‘죽음의 미학’에 포섭된거 아니냐는 탄식까지 나올 정도였다.두 번째 작품은 그해 11월 국내 초연된 연극 이었다. 일본 극작가 가네시다 다츠오의 원작을 토대로 한 이 연극은 당시 80석밖에 안되는 초라한 극장에서 공연됐다. 하지만 한국공연계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안중근 거사의 진정한 의미를 ‘반전’을 통해 ‘발견’해내는 미학적 성취를 보였줬다.이 작품은 안중근이 쏜 총탄 중 이토에게 명중된 세 발의 총성 소리에 초점을 맞췄다. ‘쾅.쾅,쾅’하고 들리는 이 소리는 일본인들에게 죽음의 소리로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안중근이 어머니 뱃속에서 들은 심장 박동소리, 곧 생명의 소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안중근 의거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근대일본을 사로잡았던 ‘죽음의 윤리’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생명의 윤리’를 새로 쓰기 위한 역설의 저항이었음 이었다.작품의 대중적 성공과 별개로 이러한 미학적 깊이의 차이가 필자를 괴롭혔다해도 코러스와 마찬가지로 그를 민족의 치욕이라며 등을 돌리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드 불편한 존재를 대면해야만 하는가.한바탕 바람이 불로 2막이 시작되면서 1막에서 준생 역으로 출연했던 송일국 씨가 이번엔 안중근으로 변신해 등장한다. 그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 일본군 포로를 학살하려는 독립군 동지들을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적까지 지키며 살리는 것이 우리 배달족의 도리”라고 설득한다. 이어 단지동맹과 하얼빈에서 이토 저격 그리고 뤼순감옥에서 재판과정에서 시종일관 조선과 일본의 상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뜻을 피력한다.1막에서 숨죽였던 관객들은 2막의 익숙한 이야기에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낀다. 장면 장면마다 거침없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특히 일본법에 의지해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안중근에게 어머니 조마리아가 “항소하지 말거라. 목숨을 구걸하지 말거라”며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가장 큰 박수가 터졌다. 김아려가 손수 지은 옷을 남편에게 입혀주며 “당신을 위해 오늘은 한 벌 옷을 짓고 당신 위해 내일은 한 독의 술을 빚겠습니다. 진달래 흐드러진 봄 들판에서 우리 기쁨을 마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대사를 읊을 때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많았다.마지막 3막에서 관객은 1막의 견자와 2막의 호부가 대면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면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설 것인가. 1막에서 준생이란 ‘발견’이 있었다면 3막에선 마땅히 그에 걸맞은 ‘반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범 같은 아비의 준엄한 질책에 개 같은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뻔한 결말로는 그런 반전을 기대할 수 없다.3막은 1막과 수미쌍관의 구조를 이룬다. 까마귀 떼를 연상시키는 코러스는 비에 젖은 생쥐 같은 준생에게 모진 비난의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생쥐의 저항도 만만지 않다. “아버지는 영웅이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늑대우리에 던져졌을 뿐이었어. 일본 사람들에게 아첨을 하던 사과를 하던 네 발로 기어가던 나는 내 목숨을 지켜야 픔과 고통을 외면하면서 안중근을 끊임없이 영웅으로만 호명하는 우리들의 허위의식을 매섭게 통타한다.글_권재현 (동아일보 기자)이야기3작은 외침, 큰 울림지난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던 극단 돌꽃컴퍼니의 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2011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정복근작 윤석화 연출 송일국 박정자 한명구 배해선 등 선명한 얼굴의 배우들이 출연해서 만들어진 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각종 무대 중에서 손꼽히는 무대로 지목되어 올해 영광스러운 재공연을 갖게 되었다.무엇이 의 큼직한 성공을 가능케 했을까?그것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역사를 보는 공명정대한 시각, 연출의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힘을 모으고 쌓아 성취해 낸 무대의 힘, 그리고 열정과 단심이 드러난 배우들의 연기의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사실 지금까지 우리 무대에는 한일간의 불행한 역사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 대개가 불행 그 자체에 대한 아픈 마음이 너무 커서인지 혹은 지나간 역사에 대한 공전한 시각을 너무 의식해서인지 오히려 형평성이 약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무대의 표현애서도 강약의 조절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생긴다. 여자무용수가 많은 무용무대에서 만세군중은 여성 무용수가 맡고 일본 경찰은 남성 무용수가 맡아 힘의 안배에서 이상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던지 일제에 대한 편견이 없는 시각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군 일본관리 일본의 명사 심지어는 닌자나 야쿠자들 같은 무뢰배들에 대해서조차 후하고 멋있게 그리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세는 역사의 죄로 부끄러워야한 일본의 입장을 우리가 나서서 옹호해주는 이상한 균형의 어긋남을 보게 된다. 그래서 만세 군중이 부끄럽고 약하게 그려지고 정신대라는 대한제국의 여성수난사는 무대 위의 부끄러움으로만 그려지기가 십상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자들에게 너무 충분하게 변명의 기회를 주고 그래서 무대 위에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