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영성을 찾아서...들어가며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물론 아주 안타까운 말 일테지만, 한국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영성이 실종되었다는 말, 한국 강단에서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일반인들도 기독교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곤 하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 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 십자가는 “이 건물은 교회의 용도로 사용됩니다”를 표시하는 일종의 상징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왜 우리 기독교에 대표적인 상징이 이 십자가가 됐을까? 하는 물음에 진지한 답변을 내려보면, 그것은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고, 그 분의 보혈을 상징하고, 또한 그것이 우리의 구원과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가능하게 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길은 편안하고 안락하고 넓은 길이 아니라,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상기 시켜주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십자가의 본질이 훼손되고, 그 십자가의 의미가 약해지면서, 우리는 그 십자가의 감격과 또한 십자가의 능력을 상실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며, 또한 성도가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이 십자가를 악세사리 정도로 하찮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힘을 잃고 빛을 잃고 맛을 잃고 땅에 밟혀 짓밟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그런 상황에 이한수 교수님의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라는 책은 우리가 상실한 십자가의 영성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고, 회복하는데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 십자가는 우리 성도의 삶의 기초이다. 참된 신앙인의 초석과 같은 이 십자가를 다시금 소중하게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본 론본서는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의미에 대해 장황하고 그것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십자가를 통해 다시금 교회와 성도를 거룩케 하는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분명 십자가는 이 혼탁한 시대에 악한 세력들을 대적할만한 무기가 될 것이다.바로 이 책이 침몰해가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가 회복하고 추구해야 할 참된 영성의 좌표를 올곧게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먼저 ‘영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말을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성경에서도 ‘영성’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경건’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목회서신에 자주 이 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또는 그의 뜻을 아는 지식에 일치하는 변화된 삶을 가리킨다. ‘영성’이란 하나님을 올바로 경험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신자의 내적인 생활을 가리키는데 그런 생활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기초를 둔 경건과 실천으로 나타난다.우리는 먼저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역자들로서 성경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와 뼈대가 된다. 그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성도의 실천적인 삶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성’임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아는 지식에만 머물다 보니, 이러한 실천적인 삶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앞에 날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반응하며, 또한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그 겸손한 삶을 본받기 위해, 즉 다시 말해 이러한 영성을 본받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결코 기독교라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십자가 앞에 우리의 자아가 부딪혀 모든 죄가 밝히 드러나 나의 죄인됨을 발견하는 경험이 없이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 온 신학과 사역과 가정과 자녀의 문제들은 나를 계속해서 내 안에 가둬두는 역할을 했다. 그것과 씨름하느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사랑과 선행의 삶을 살아가는데 미흡했음을 고백한다. 결국 나는 신학적 지식은 늘어갔지만, 그것이 내 삶으로 쏟아내지지 못했다. 결국 영성 없는, 경건의 능력 없는 껍데기 신앙으로, 사역자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라고 하면, 고결하고 아름다운 상징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십자가는 적대적인 세상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복음 증거자들의 거친 현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뜻을 내가 알고 있다면 나의 만족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감내하며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발자취를 끝까지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하지만, 나는 이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온갖 핑계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며 나의 영성 없는 삶에 구차한 변명거리를 늘어 놓았다. 비겁한 모습이다.신약 성경에서 십자가는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죄인들을 변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드는 능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십자가가 영적 생활에 있어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점차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무게 중심을 십자가에서 오순절로 옮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없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령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진다.바울 사도는 고린도인들에게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겠다고 선언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 때만 성령의 능력이 경험될 수 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신앙이며, 이 사실이 인정되어 질 때 내 삶의 변화는 일어난다.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죽는 데 기꺼이 내주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 극진한 사랑,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 사랑에 감동하여 조금이라도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영성이 시작하고 마치는 지점이다.바울 사도는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삶이 변화되어 평생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나 또한 예수를 만났고, 그가 가신 길을 가려 한다.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걸으신 길, 그것이 비록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 된다면 그 길을 기꺼이 따라가는 것을 뜻한다.사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헌신하고 이 바닥(?)에 내 삶을 드렸지만, 얼마나 그 길에서 돌아서려 했던 나의 모습인가! 예수께서 가신 길보다, 남이 가지 않으려하는 길보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로 가려 했던 안일한 나의 모습 속에서 형편없는 신앙을 꼬집어 보게 된다. 여러 가지 욕심에 사로 잡혀있고, 나의 안녕을 위해서 살아간 나의 모습, 인정 받으려 하고, 높아지길 원하는 나의 욕심 가운데 있던 나에게 우리 주님은 당신이 어떤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 설명해 주셨다.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고, 사람들의 으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종이 되기 위해서 왔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들에게 권세부리는 꿈과 야망을 추구하지만, 천국의 제자들은 예수처럼 섬김의 삶으로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상에 섬기는 종으로 살았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은 종으로서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영성은 예수의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자신의 일생생활에서 논증하여 나타내는 것이다.오달리 깜짝 놀랄 만한 역전현상들을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세상에서 아무리 화려한 신분과 지위를 가졌다 한들 속으로 평생 돈과 명예와 권세만을 추구했다면 그는 분명 거짓된 제자일지 모른다. 하나님은 결코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 비록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처럼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겸손의 삶을 살고자 갈망했다면 그는 천국에서 예수의 참 제자로 귀히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름도 빛도 명예도 없을지라도 예수의 참 제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다. 지금은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먼지 날리는 길에서 예수를 따라갈 수는 없다.하지만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자신과 같이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겸손의 길을 가자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것이 영광의 길, 권세의 길이 아닐지라도 어디든지 기꺼이 예수를 좇겠다고 결심하는 참 제자들을 찾고 계신다. 여리고를 지나시다가 소경 거지 바디메오를 찾으신 것처럼 말이다.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경험한 신자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첫째로 신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변화를 경험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해 살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다.둘째, 신자는 삶의 주체의 변경을 경험한다. 딤후3장에 보면 마지막 때의 표징이 나타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때의 특징을 사도바울이 언급하면서,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주인된 하나님을 그 주인의 자리에서 이탈시키고 이 세상의 쾌락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참된 신자의 모습이 아니다. 신자는 반드시 삶의 주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게 된다.셋째, 신자는 삶의 목적의 변화를 경험한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이 목적이 나를 향해 있다는 이야기다. 나를 향해 삶의 목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쾌락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나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