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후진타오의 화해 사회을 읽고과 목담당 교수학 과학 번이 름?목차1. 저자소개2. 내용소개3. 서평4. 퀴즈1. 저자소개장동근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문화일보사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등을 거쳐 현재 경제산업부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2003년 칭화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았고, 그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베이징, 상하이, 홍콩, 선전, 항저우, 쑤저우, 시안, 후허하오터 등 중국 곳곳을 방문했다.2. 내용소개후진타오는 1942년생으로 친구 후더핑에 의해 당시 총서기였던 후더핑의 아버지 후야오방과 대면하게 되었다. 후진타오는 후야오방으로부터 청렴결백한 기상과 실사구시 정신의 정신을 익히며 정치적인 품격을 높이고 1984 후진타오는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발탁되어 정치가로써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오늘날 후진타오의 과학적발전관과 화해사회정책의 등장배경은 개혁, 개방이후 새롭게 발생한 사회 경제적 문제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 발전한 동부 연해 지역과 낙후한 내륙 지역 사이의 격차, 계층 사이 격차 등 이들 격차에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중국이 새롭게 분화한 10개 계층에도 들지 못하는 농민공, 도시 빈민, 노인 ,장애인등을 가리키는 약세군체와 1990년 이후 군중들이 모여 사회 안전과 공공재산을 파괴하는 사건을 가리키는 군체성 사건,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한 중국의 발전에 따른 환경파괴 등이 개혁개방이후 주요 문제로 부각되었다. 오르지 발전과 성장을 중시했던 등소평시기에 따른 문제는 이제 후진타오가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과 화해사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2003년 16기 3중 전회에서 ‘과학적 발전관’이 등장하였고 과학적 발전관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은 지속 가능한 발전관, 인간 위주의 발전관, 균형발전 이다. 지속가능한 발전관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추구하는 발전관이다. 인간위주의 발전관은 WTO 가입 이후 급변하는 세계경제 경쟁속에서는 튼튼한 지식 기반이 필요한데 인간 위주의 발전관은 인간의 지식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세계의 경쟁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할 수 있다. 균형발전은 도시와 농촌, 계층과 계층, 연해와 내륙 사이등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화해사회가 변화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조응하는 목표라면 과학적 발전관은 화해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화해사회론은 2004년 16기 4중 전회에서 처음언급 되었고 2005년 16기 5중 전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2006년에는 공산당의 지도 이념으로 확정된다. 공평, 효율, 정의, 법치의 요소를 기반으로 공동 부유론을 제시한다. 이는 등소평의 선부론으로 일어난 계층 양극화 심화와 실업 증가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각된 것이다. 공동 부유론은 효율만을 중시하던 선부론과는 달리 효율과 공평을 동시에 고려하거나 공평 위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것, 공유제와 사유제의 협력과 발전, 양극화를 배제한 효율을 중점으로 한다.중국은 동부연해지역을 개발하고 난후 서부대개발과 동북3성의 발전을 시작한다. 특히 시짱 자치구의 라싸와 거얼무를 연결하는 칭짱 철도는 물류와 유통의 혁신을 유발해 중국 서쪽의 국가와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와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중국의 발전과 무역 활성화를 촉진시킬것으로 기대된다.일단 국내의 문제중에 도시와 농촌, 동부 연해와 내륙지역, 경제와 사회의 균형발전 같은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보기로 하겠다. 책에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내용을 짤막하게 다루고 있다. 책에서도 알수 있듯 중국의 전체 소수민족은 1억 64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토는 63.72%에 달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중국 역사는 합쳐지면 분열되고 분열하면 통일된다는 반복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의 영토에 한족들을 이주시키면서 한족과 소수민족의 융화를 꾀하며 변방의 소란을 잠재우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티벳자치구와 신장 위구르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한 동북공정을 통해 대두되고 있는 간도협약100년에 대한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한다. 소수민족의 활발한 독립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소수민족의 독립은 대략 두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해 보인다. 첫째, 시대적 상황이다. 고대의 소수민족이 한족에게 대항하여 독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흐름을 보자면 한족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혼란으로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소수민족들은 독립에 성공할수 있었다. 현재의 중국의 상황과 대비하자면 소수민족의 독립은 힘들어 보인다. 둘째 군사와 무기의 이유이다. 고대의 소수민족이 세력을 떨칠 때 모습을 살펴보자면 부족을 통합해 군사를 모아 한족과 전쟁을 펼쳐 승리하는 모습이였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무기 이다. 고대에는 한족이든 소수민족이든 무기가 기마병과 창, 칼, 활, 극, 전차, 같은 무기가 대부분 이였다. 물론 고대에도 무기간의 품질의 차이가 있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어쨌든 소수민족과 한족 모두 이런 무기들을 가지고 마구잡이 육탄전을 하거나 진법을 갖추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현대화된 대량 살상 무기를 갖춘 한족을 소수민족은 감당할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칭장 철도는 티베트에서 독립운동의 모습이 발생할 경우 즉각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소수민족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 또한 화해사회로 가는 한 갈래의 길이 될것이라 생각한다.국외문제로는 중국이 세계최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갖추고 준비할 것이 많다. 라는 것을 뜻한다. 아직 중국이 국외정세를 안정화 하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바쁜 오늘날 북한의 핵 실험은 중국에 있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흔들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북한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 중국발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 숙제로 남는다. 다음은 타이완의 문제이다. 사실 독후감을 작성하면서 타이완을 국내문제에 두어야할지 국내문제로 다루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중국과 타이완이 두 개의 중국, 하나의 중국에 대해 서로 말하기 때문이였다. 일단은 타이완과 중국이 각기 정부를 수립하여 정치와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기에 국외문제에 삽입하여 글을 작성하였다. [타이완은 2000년 타이완은 독립 국가이다. 국민 투표로 타이완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겠다.]라는 발언을 하여 중국을 자극 하였고 이에 중국은 [반분열국가법]을 재정함으로써 타이완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05년 베이징에서 후진타오와 롄잔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타이완과 중국은 온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중국은 등소평의 유언을 잘 받들어 화해사회가 완성되어 세계로 나아가는 그날까지 타이완과 북한과는 온화적인 태도를 취할 듯하다. 화해사회가 완성되는 날,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시작은 타이완이 될지도 모른다.
차이나스 리더스- CHINA'S LEADERS -과 목담당교수학 과학 번이 름제출날짜목차1. 서론1-1. 저자소개1-2. 개요2. 본론2-1. 제4세대 지도자 테크노크라트2-2. 제4세대 지도자의 특징2-3. 칭화방 : 학연과 엘리트 등용3. 결론3-1. 제4세대 엘리트의 특징과 중국 권력구조4. Quiz1. 서론1-1. 저자소개리청 (Li Cheng)문화대혁명 당시 상하이에서 성장한 리청은 1985년 중국을 떠나 버클리 대학에서 석사학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투옥된 뒤 출소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2년 중국문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해밀턴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의 중국계 정치학자인 리청은 중국 정치학 연구의 대표적 인물로 방대한 자료와 조사를 통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중국의 재발견 Rediscovering China』등이 있다.2-1. 개요이 책은 중국의 현재 지도부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책이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업에서 중국의 정책방향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알기 위해서는 앞으로 새롭게 중국을 이끌고 갈 4세대 리더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역량이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가진 여러 가지 불확실성 중에 일부를 다소 조금이나마 해소 할 수 있다고 본다.중국 4세대 지도자로 대표되는 후진타오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중국의 지도자 세대들은 마오저뚱 - 등소평 - 장쩌민 -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지도자 라인을 이루어 오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각 세대의 특성과 현 중국지도부 구성에 있어 이들이 형성되게 된 배경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중국 엘리트 등용에 있어 학벌주의와 편애주의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교육 수준과 기술적 전문성이 계급 배경이나 혁명경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부터이다. 원로혁명 군인들은 자녀가 간부지위를쩌민 전 주석의 사임, 그리고 본격적인 후진타오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세계 각국에선 자신들의 관계와 이익을 따지는 언론매체의 뉴스들이 연이어 보도되었다. ‘누가 일인자인가’, 중국 지도자의 교체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지도자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방향이 달라지고, 변화가 급속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마지막 세대인 장쩌민 주석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제4세대가 새 시대를 주도하게 되었다. 제4세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문화대혁명 초기에 마오쩌둥을 믿었지만, 교육의 기회와 직업을 잃음으로써 사상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 제4세대 지도자들 사이에도 서로 대립하는 하위 그룹이 존재하는데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했는지, 언제 공산당에 입당했는지, 학우나 가족들의 배경은 어떠한 가 등을 기준으로 분류한다.제4세대는 테크노크라트라고도 불리는데 이 시대의 최고 지도자들은 엔지니어로서 교육을 받은 후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지도자들 중 엔지니어 출신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미국에 변호사, 프랑스에 국립행정학원 출신이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술관료 지도자라고도 하는데 그 대표로는 장쩌민을 들 수 있다. 그는 사실상 카리스마 없는 단순한 테크노크라트로서 대중과의 접촉이 부족하고 군대나 공산당 계급 내에 강력한 힘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리더가 되었고, 이때부터 테크노크라트의 힘은 발휘되었다. 마오쩌둥 사후 혁명군 출신에서 테크노크라트로 바뀐 것은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엘리트 교체이다. 덩샤오핑이 권력 구조의 최고 자리에 오르자마자 간부등용정책은 바뀌게 되었다. 지식인들도 사회계급이기 때문에 이색분자로 취급하지 말 것과, 지식인이 현대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은 혁명가들을 계승자로 선택하라고 요구하였다.중국의 테크노크라트의 출현은 1982년 중국 공산당 제12기 전국대표대회에것은 덩샤오핑의 장기집권 뿐 아니라 문화대혁명 이후라는 역사적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덩샤오핑의 권력기반은 문화대혁명 이후 복권된 사람들로 대 다수가 70세 이상이었다. 덩샤오핑은 급변하는 상황에는 젊은 엘리트가 필요하다고 보고, 혁명군 출신 지도자들이 권력을 포기하도록 했다. 그 대신 그들에게 재정적 보상, 특수구역주거권 유지, 자녀들의 취업과 승진 등 몇 가지 유인책을 적용했다. 결국 혁명군 출신 지도자들은 상당수가 그들의 직위를 자녀나 절친한 친구들에게 물려주게 되었다.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은 혁명 3세대 지도자를 선발하기 위한 기준으로 ‘간부사화’를 요구했다. 이는 연소화(30~40대 연령), 지식화(학사 학위나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았을 것), 전문화(과학기술 분야에서 기술훈련을 받았을 것), 혁명화(공산당 근무경력이 있고 문화대혁명시기에 급진주의로 낙인찍히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혁명 3세대는 제4세대 지도자들의 중추가 되었고, 이들 대부분이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제4세대의 90%는 대학교육을 받았고, 70%가 전문가며 대부분이 엔지니어다.2-2. 제4세대 지도자의 특징제4세대 지도자의 특성은 먼저, 문화대혁명 당시 나이는 17, 25세 사이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남성이고, 한족이다. 출생지는 중국 동부지역, 특히 장쑤성과 산둥성 출신이 많다. 반면 국민당 집권 시기에 대부분 지위를 차지했던 광둥성, 중국 최고 인구가 살고 있는 쓰촨성 지역 출신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분포한다. 개혁기 중국 지도층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고등교육, 특히 엔지니어와 자연과학을 전공한 정치 엘리트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엔지니어와 자연과학분야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우세하다. 하지만 3세대 지도자들과 비교해보면 전공이 꽤 다양해짐을 알 수 있다. 엘리트 연구자에 따르면 엘리트의 직업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유형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사회가 새로운 부류의 엘리트를 원함으로써 엘리트 그룹의 구성도 바뀌는 것이다. 제4세대 지도자들이 교혁 세대’인 제5세대 지도자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 추측한다.2-3. 칭화방 : 학연과 엘리트 등용교육은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합법화하는 시스템역할을 한다. 또한 엘리트 채용에서 학연이 지니는 중요성은 여러 나라에서 널리 드러난 것이다. 영국의 이튼 컬리지, 프랑스의 국립행정학원, 일본의 도쿄대학 법학부, 인도의 둔 스쿨 등 모두 정치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칭화대학이 있다. 리더의 지위에 오르는데 기술적 전문성이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칭화의 정치적 네트워크이다. 칭화대학의 네트워크는 지앙난시앙에 의해 처음 형성되었다. 그는 야오이린, 평전, 류사오치 등 뛰어난 지도자들과의 유대관계로 칭화대학 교장으로 임명되었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세력기반을 만들었다. 가장 우선한 것은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이 교육개혁의 열쇠’라면서 정치보도원 제도를 만든 것이었다. 주요 임무는 새로운 공산당원과 중국공산주의 청년단원을 선발하는 일이었다. 젊은 칭화의 간부들은 지앙난시앙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핵심인물이 되었고 일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반우파 투쟁 때부터 문화대혁명까지 지앙난시앙은 칭화대학을 이념적인 엔지니어들의 요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엔 마오쩌둥 주의자들 통제 하에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중국의 개혁기에 칭화방은 부활하게 되고, 덩샤오핑의 지지를 받아 이념과 전문성을 겸비한 정치세력이 된다.칭화방의 가장 대표적인 다크호스가 바로 후진타오다. 후진타오는 중국의 가장 빈곤한 성인 구이저우성과 민족마찰이 잦은 티베트자치구의 당 서기를 맡았다. 또한 공청단과 중앙당교 같은 가장 중요한 리더 자리를 차지했었으며, 바로 칭화대학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대표할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후진타오의 정치적 미래와 정책방향을 보면 먼저 장쩌민을 계승할 후진타오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그리고 국가 부주석으로 임명된 다음부터 후진타오는 연설할 때마다 민족주의 제4세대 리더 그룹에서 나타나는 태자당의 우세는 중국 정치 제도의 결함을 반영하는데 이는 먼저 덩샤오핑 시대에 들어서면서 원로혁명군인들 자녀가 간부지위를 계승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자당의 우월성이 글자 그대로 출생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태자당은 공산주의 테두리 안에서 자랐으며 권력시스템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태자당은 혈연, 학연, 직업상의 연계, 정략결혼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제4세대 태자당을 특권층의 삶을 향유해 왔는데, 특권을 누린 덕분에 정치적으로 제3세대 지도자들보다 더 불안하며, 정치경력과 하층 대중을 위한 리더로서의 경험부족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혁기에 많은 태자당 출신들이 리더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에 대한 제도적 저항과 공개적인 거부감 역시 명확하게 표출되었다. 제도적 저항은 엘리트 등용에 있어서 족벌주의 문제를 처리하면서 보다 강력한 대의정치를 위한 정치 조직 설립을 요구하는 최고 지도층의 압력으로부터 발생하였다.1990년대 중국에서 주목 할 만 한 정치발전 중 하나는 차세대 지도자들의 경우 전임자들에 비해 그들의 견해와 정책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시회나 TV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필름, 책, 인터뷰 등은 대중들이 그들과 밀접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실제로 정신적 외상과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 그 결과 전임자들보다 관념적으로는 덜 교조적이고 지적으로는 더욱 철학적이며 보다 건실하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문화대혁명 경험을 통해 정부 정책이 항상 국가의 현실적 상황에 기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계획 경제의 실패와 공산주의 정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문화대혁명이 국가적 재해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개인 성장 면에서는 재산이 되었다는 것. 하방운동으로 인한 파괴를 통해 그 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들에게 형성된 정신력은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제4세대 지도자들이 이미 모든 종 있다.
- ‘중국은 지금 몇 시인가’을 읽고과 목담당교수학 과학 번이 름목 차1. 저자 소개2. 책 소개3. 평가 분석4. 퀴즈1. 저자소개- 허칭리엔1956년 중국 후난성 출생으로 중국의 저명한 여류 경제사회학자이다. 후난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푸단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후난성 재정경제 단과대학과 광둥성 지난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이 책 외에[경제학과 인류의 관심], [인구-중국의 현안]등이 있다. 이 책 [중국 현대화의 함정]은 중국 내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나타난 중국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도덕적 용기는 전 세계 중국인들로부터 '개혁의 양심'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으며, 뉴욕타임즈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2. 책 소개항상 중국의 밝은 면을 보여주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중국의 실상이라는 이름하에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중국내 많은 사회 문제점들을 집중 해 서 다루고 있는데, 부정부패의 만연, 심각한 자본의 해외유출, 극심한 빈부격차, 인구 문제 등 을 다루고 있다. 지금 중국은 부정부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중국의 경제개혁으로 자연스레 중국내 부정부패가 만연해졌고, 이 부정부패로 중국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심지어 부정부패는 중국의 교육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중국내 부패와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사례다.중국의 학비 부정지수와 관련해 미국에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뇌물을 주는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있다고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교육계 부패가 도처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한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중국의 명문 중고등학교의 경우 1만 위안당 시험 성적을 1점씩 가산해주며,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 시키기 위해 몇 만위안의 기부금을 지불하고 있다. 심지어 교실 뒷부분에 앉아 칠판 글씨를 잘 볼 수 없자 자리를 앞으로 옮기기 위해 담임 선생님께 수백 위안을 건네주었다고 한다.또한 일부 초중학교에서는 강제 보충수업을 실시해 빈곤한 가정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보충수업은 자유 선택이었으나 지금은 학교 측에서 보충수업에 참가 시키지 않으면 성적을 책임 질 수 없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추가 학비를 지불하길 강요하면서 전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보충수업에 참여시키고 있다고 한다.중국 내 빈부격차를 볼 수 있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장시성에 거주하는 천(陳)씨의 조카는, 금년도 고교 수험생으로 20점 차이로 명문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측에 1만 위안을 지불해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천씨의 어머니는 30여년 간 일했지만 월급은 아직도 300위안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번 뇌물로 인해 천씨 어머니의 3년치 봉급이 전부 날아가버렸다.또, 어느 성적이 우수한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이 올해 합격하지 못하도록 빌었다고 한다.딸이 합격해도 학교에 보낼 돈이 없으며 차라리 합격하지 않으면 부모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밝혔다중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빈곤층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데 소수 엘리트계층의 자녀들은 학교내에서도 특권을 받으며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인양 살아간다는 것이다.몇 년전 중국의 빈부격차를 다룬 방송을 보았는데, 농촌의 아이들은 교육은커녕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그에반해 엘리트계층의 자녀들은 일명 “小皇帝”로 불리며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 小皇帝로 불리는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대다수의 많은 가족들이 값비싼 중형차를 끌고 아이들을 마중나온 것이였다.기자가 말하길 이 중형차들 사이에서 소형차를 끌고 자녀를 마중나오는 것은 불가능 하며 심지어 걸어서 하교하는 아이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물론 빈부격차는 비단 중국의 문제뿐만은 아니다.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빈부격차는 있기 마련이지만 중국 경제 개혁으로 인해 더욱 극심해 진 것이 빈부격차라는 것이다.이 빈부격차는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그냥 못사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빈곤층 집단의 범죄로 까지 이어지기에 각종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이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는 경제만을 개혁해서 국가의 경제성장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 정치적인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일부 학자들도 중국의 근본적인 부패에 관해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반부패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정치개혁을 하면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정치개혁을 하지 않고 반부패 운동만 하게 되면 부패를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한 학자는 공산당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중국은 부패를 철저히 없애버리려 하지 않지만 동시에 부패가 계속 만연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만약 부패를 철저하게 소멸한다면 중국 공산당 체제는 유지해 나가기 어렵고, 부패가 과도하게 만연하게 되면 체제에 위협이 가해져 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또한 공산당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부패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지만 자신의 이익과 국민의 분노로 인해 어느 한 시점에서는 악랄한 부패세력에 대해 조금은 제한할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이런 부패와 빈부격차가 특히나 중국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경제개혁으로 이 문제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빈부격차는 사회의 범죄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빈곤층 계층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아 최후의 수단으로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이 사회문제는 시간을 가지고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루 아침에 부패와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중국 공산당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중국 공산당도 부패와 빈부차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 하고 있으니 조금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저자는 인구문제를 들었다.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산아제한을 기본 시책으로 삼았지만 농촌지역의 관료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아이를 낳거나 제한하는 것을 농민의 뜻에 맡기고 벌금으로 벌어들인 돈을 자기 생활을 영유하는데 소비했다. 이런 이유로 농촌지역은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이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으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이 인구문제는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라 취업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이 취업문제는 범죄증가를 야기시키기도 한다.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구와 도시로 유입된 유동인구로 인해 실업 노동자들에게 취업의 기회는 없다. 2001년 중국 통계연감의 자료를 보면 중국의 실질 취업률은 고작해야 20.2%이다.이 실업자들은 각종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자리도 없는, 더군다나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농촌 노동자들은 생존 압력에 직면하여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범죄 동기는 그저 도시생활에 대한 불만감이 적대감으로 표출되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설명되어진다.또한 도시의 엘리트계급의 실업자 같은 경우도 범죄를 일으키는데, 최근 ‘컨라오족’이라 하여 중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2005년 9월, 중국 신장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이 친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범은 27살의 무직 청년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집에서 잠을 자거나, 아버지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 뿐이였다.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 아침, 일 나갈 준비를 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담뱃값 2위안을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하자 아들은 순간 화가 치밀어 아버지를 밀치자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에 화가 나 아들을 꾸짖자 아들은 바로 근처에 있던 흉기를 집어들어 아버지를 찔렀다.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그를 ‘컨라오 살인범’이라고 지칭했다.'컨라오'란 주로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이 늙은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로서, 이렇게 부모를 '갉아먹고' 사는 사람들을 '컨라오족'이라고 한다.‘컨라오족 살인사건’은 2004년에도 일어났었는데, 마찬가지로 무직 청년이 어머니가 매일 주는 용돈 10위안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했다.‘컨라오족 살인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실업자가 범죄를 저지른 것 뿐만이 아니라 고등교육까지 받은 청년들이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모님들께 빌붙어 살아간다는 것이다.이런 ‘컨라오족’이 최근들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노령과학 연구센터는 2004년 중국 성인들의 30%가 부모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는 컨라오족이며 65%의 가정에서 이러한 컨라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컨라오족이 나타난 원인은 의존심을 더 많이 배우고 자란 중국 특색의 독생자녀 세대의 출연이라는 것이다. 일명 小皇帝로 불리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부모에게 의지한채 성장하다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것이다.컨라오족의 문제 해결은 어릴때부터 자녀들에게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주어야 하며 극심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중국당국은 새로운 정책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기업의 인턴제도를 장려, 구직자를 대상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 조기 퇴직자들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등 많은 해결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정운영의중국 경제 산책과 목 명 :학 과 :이 름 :제 출 일 :담당교수님 :1. 개요2. 저자 소개3. 정운영의 중국 경제 산책3-1. 개혁 개방의 빛과 그늘3-2.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함정 - 부패3-3. 중국 지도층4. 저자의 논술에 대한 의견5. 퀴즈1. 개요알면 알수록 어려운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세계는 중국시대가 될 것이라는 절망과 외면이 함께 공존한다. 이러한 중국을 경제학자 정운영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중국 경제 산책'이 그 삐딱한 시선의 결과물이다.내륙과 해안지방의 경제적인 격차를 해소하기 시작한 서부 대개발이 ‘자원 고갈 작전의 하나’라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을 들려주거나, 이상하게 발달한 중국의 지방 자치 덕에 지나는 지방마다 고속도로 요금을 내야하는 불합리성, 일본의 마쓰시다가 휴대전화기의 국가 코드에 대만을 중화민국으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한 중국의 째째함에 대한 사례 등도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그러나 ‘경제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정운영의 산책은, 대국적인 기질과 철저한 장사 속으로 무장한 중국인들의 처세술에 감탄하며 종종 정치로 빠진다. 적대국으로 마주보고 있는 대만의 중국통일연맹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이니 중화민국이니 복잡하게 부를 것 없이 그저 중국으로 쓰자”고 제의한다. 이 큰일 날 일에 대해 대만의 천수이벤 총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겨버렸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국가보안법으로 상대방을 겨누는 우리의 남북 대치상황을 떠올린다.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며 “내 것을 포함해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는 비장한 결의를 토한 주룽지 총리에게서 이런 정치인을 수입할 수 없냐고 한숨을 내쉬는 것 등이 그렇다. 저자인 그도 대국 기질에 대한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정운영의 경제산책’에는 현지인들의 목소리가 많이 등장한다. 삽과 괭이로 토관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해서 하루 일당이 우리 돈으로 4800가 도대체 중국이 고집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제도’ 가 무엇이냐는 것 이였다. 분명 중국은 지금 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고집하고 있다. 사회주의 장점과 자본주의의 장점만 받아들이겠다는 것일까?이 책은 중국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와는 거리가 멀다. 책 분량도 그렇고 애초의 기획의도도 그랬던 듯하다. 그 보다는 중국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2. 저자 소개194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96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197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에 잠시 몸을 담았다. 1973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학부 과정부터 경제학 공부를 새로 시작해 1981년 이윤율 저하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귀국해 한신대학교 경상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0년대 말부터 10년 동안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강의했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로 시작해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끝마쳤던 그의 강의는 당시 학생들에게 암묵적인 필수과목이었다. ‘때로는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말로 〈이론〉창간을 주도하는 등 진보 운동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었다.‘MBC 100분 토론’ ‘EBS 정운영의 책으로 읽는 세상’ 등을 진행하며 보여준 날카로운 화술과 르네상스적 지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한겨레〉〈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보인 그의 칼럼은 칼럼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6년에는 언론인클럽 언론상(신문칼럼상)을 수상했다.주요 저작으로 《세계 자본주의론》(1984) 《한국 자본주의론》(1984) 《노동가치이론 연구》(1993) 《자본주의 경제 산책》(2006) 등의 경제학 이론서와 《광대의 경제학》(1989) 《피사의 전망대》(1995) 《레테를 위한 비망록》(1997 아랑곳 하지 않고 비포장도로의 좁은 농촌 길을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곡예 운전을 하는 택시 운전사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농민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무엇이 운전기사를 그처럼 미친 듯이 달리게 했을까? 그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 답은 노력에 따른 보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미구에 그는 소득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자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봐야 더는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 중국 경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좌절이라도 좋으니 미친 듯이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농민의 간절한 열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쪽의 과속, 그럴수록 심해지는 다른 한쪽의 무력감과 좌절! 거기 대격변의 명암이 교차되고 있었다.”)여기서,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 계획 경제 체제하에서 중국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곡예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손님을 도착지까지 빨리 모시든 그렇지 않든 정부로부터 배급받는 자신의 몫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보상’. 이것이 중국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사람들을 설득시킨 문구이다. 하지만 노력에 따른 보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중국보다 먼저 산업화를 겪은 많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노력을 많이 한 만큼, 보상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상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상은 자본에 더 많이 비례한다. 노력하는 사람보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 원리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면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이면으로 발생하는 중국인민들의 좌절과 불만을 두려워한다. 이런 불만과 좌절들이 쌓여 중국의 성장이 멈춰버릴 때,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농촌인 들의 시선에 대해 언급한 것도 흥미롭다. 근대화를 뒤늦게 추진 시장에 내 놓아야 했고, 그것은 농가의 부채로 고스란히 이어졌다.중국의 농민들도 이러한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중국 역시 저가의 상품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중국 농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중국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동안 경제 성장으로 커져버린 ‘떡’에 대한 혜택이 자신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도농 간의 소득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는 통계학적 사실을 꼭 들이대지 않더라도 직감적으로 그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도시는 계속 지원하고 정체하는 농촌은 그대로 방치하는 근대화의 역설")은 중국에서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에 따른 농민의 좌절과 무기력은 공산당을 잉태한 자신들의 노력에 더해, 우리의 농민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게 그들에게 다가설 것이다.3-2.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함정 - 부패중국의 부정부패 문제는 심각하다. 경제 개혁을 가로 막아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부정부패 문제이다. 중국 최대 밀수 사건으로 알려진 ‘홍루’)라는 사건이 있다. 원래 홍루는 7층짜리의 홍색 건물을 의미하지만. 이 건물이 밀수 사건의 온상 구실을 했기 때문에 이 밀수 스캔들을 ‘홍루사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홍루’스캔들은 유류와 자동차등 530억 위안 규모의 초대형 밀수 사건으로서 관세 포탈만 300억 위안이 넘었다. 1996년부터 범죄가 저질러졌고, 97년 한 해의 디젤유 밀수만 해도 100만톤 규모였다. 밀수로 문을 닫을 위기에 직면한 자동차 회사들과 유류회사들이 수사를 의뢰하였지만 그러한 수사 요청은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루에서 수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향응과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은 주룽지 총리의 결단으로 그 전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에 연류 된 자들 중에서 8명은 사형을 17명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으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 되‘홍루’사건에 반영되어 부정부패 사범에게 사형이나 무기 징역을 선고하는 등의 강력한 처벌로 이어졌다. 또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마무리 한 후에 ‘홍루’를 부정부패의 교육관으로 만들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 뒤 같은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 치부를 공개한 것이다.부정부패가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도가 인간의 활동을 불필요하게 규제하는 등 인간 생활을 잘못 규정짓고 있는 것도 부정부패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중국이 겪고 있는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를 중국의 제도가 적절히 담아 내지 못하고 있거나, 제도가 변화에 지나치게 앞서 갈 때에 부정부패가 창궐하기가 쉽다. 중국은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다. 부정부패의 해결을 위해서 집권층의 단호한 부패 척결 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확히 제시해 주고, 예측 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 이것이 중국 정부가 해야 할 과제이다.3-3. 중국 지도층전국 대학에는 고시 열풍이 밀어 닥치고 있다.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이에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은 점점 고시준비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가적으로 아까운 것은, 떨어진 사람들이 고시 공부에 쏟아 부은 시간과 정열이다. 탈락자들의 반에 반만이라도 고시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창조적인 일에 매진하였더라면 미국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일자리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만 탓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공계를 대우해 주지 않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 이공계로 진학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갑자기 이공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정운영씨와 칭화 대학의 후안강 교수의 인터뷰 장면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내용은 철학, 경제, 모택동과 등소평의 사상,
목 차Ⅰ. 저자 소개Ⅱ. 들어가며Ⅲ.‘선부론’에 대한 이해와 나의 서평Ⅳ. 퀴즈Ⅰ. 저자 소개- 던컨 휴잇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던 중 1986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는 중국에서 선전 지방이 최초의 경제 특구로 지정되어 새로운 변화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기여서 저자는 20년간 그 변화의 물결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동남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BBC에 입사해 BBC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는 상하이로 옮겨 상하이 특파원으로 2002년까지 일했으며, 현재 《가디언》《옵서버》《파 이스턴 이코노믹》《뉴스위크》에 기사를 쓰고 있다.이 책의 저자인 던컨 휴잇은 당시 선전 지방이 중국에서 최초로 경제 특구로 지정되어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는 이 변화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중국을 다룬 책들이 ‘중국의 성공’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다룬 것과는 다르게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중국인 개개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내용을 들려주되, 한 발 뒤로 물러서 현실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필치로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독자들은 중국 정부 관료들, 민간 대기업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들, 야심찬 미래를 설계하는 대학생과 동거하는 젊은 연인들, 부동산 중개업자, 레스토랑 주인, 공연 예술가, 새롭게 신앙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까지 만나며 중국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Ⅱ. 들어가며우리나라와 중국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두 나라는 대립관계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나라의 관계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으며 중국의 성장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저자인 '던컨 휴잇'은 80년대 중반 이후로 20여 년을 중국에서 생활하며 저자 스스로가 몸으로 부딪히며 느낀 중국의 변화에 대해서 저자 본인도 놀라면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이 책 '선부론'을 통해 객관적 시각으로 개혁개방의 언저리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시대상을 다루고 있다.이 책은 총 13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트의 주제는 사회의 다방면에 걸쳐 있다. 교육, 문화, 미디어, 복지, 삶의 스타일, 성, 종교, 등 사회의 주요 부분들에 대해 기자라는 그의 이력을 잘 살려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 그것들은 상당히 자세하고, 매우 객관적이다. 저자는 지인들을 통해 보고 들은 사실들과 취재한 내용들을 빠짐없이 서술 하였다. 그 때문에 여과 없는 중국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중국의 모습을 한눈에 이해하기 쉽다.70년대 말부터 중국의 개혁개방이 선언된 이래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총설계사라 불리는 덩샤오핑은 92년 남순강화시 처음으로 ‘선부론’에 대해 언급했다. 선부론이란 '일부 지방, 국민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지역과 국민들이 나머지 지역, 나머지 국민들을 이끌고 도와 점진적으로 모두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으로 중국 동부연안의 경제특구들이 먼저 부를 이루고 그 부가 중국 내륙까지 퍼져 중국 전체가 부와 번영을 공유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의 이 발언으로 인해 동부연안 지역은 타지역에 비해 더욱 많은 경제적 특혜가 지원되었으며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게 되었다.하지만 문제는 먼저 발전을 이룬 지역과 사람들이 그 부를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과 공유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중국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그것은 2000년 대 이후 중국 지도부조차 선부론이 아닌 균부론과 조화사회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국 사회 내에서 빈부의 불평등을 포함한 온갖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 책의 제목은 선부론 이지만 지은이는 선부론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Ⅲ. ‘선부론’에 대한 이해와 나의 서평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은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그렇지 않은 듯 하면서도 슬며시 시장경제 체제로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는 중국.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다. 그것이 사회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 파트인 '변화하는 도시'에 대한 내용이었다.그들은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귀한 유물 유적들이 많다. 하지만 발전을 위해서 도시 내에 있는 소중한 유적들을 망설임 없이 허물어 버리는 그들. 깨끗이 무너뜨리는 능력만큼이나 다시 세울 수 있는 능력도 있음을 과시하는 그들에 대해 놀라움을 가졌다.반면 80년대 초 덩샤오핑은 “전국 모든 지역, 모든 국민들이 한꺼번에 다 부자가 될 수는 없으니 국민들 일부, 그리고 국가 일부 지역만이라도 먼저 부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능력 있는 자, 먼저 부자가 되라” 라는 선부론에 대해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선부론에 대한 정확하고 디테일한 분석이나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어떤 분석은 나와 있지 않았다. 나의 생각과는 어느 정도 다른 관점이 적용 되어 있었다.중국이 급성장하고 초고속 발전을 하면서 겪게 되면서 야기되는 사회문제, 교육문제, 성문제 그리고 환경문제 까지 나아가서는 문화재문제, 민족성에 대한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가면서 분석해놓은 ‘지금 중국을 정밀하게 해부하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만한 책 이였다.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깊게 느낀 것은 너무나도 닮아가고 있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모습이었다. 겉으로만 화려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 속에서도 그렇다.일본에 문화가 들어오고 받아들이면서 한국이 느꼈었던 이질감, 배신감, 친근감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문화에 부조화와 사회문제 그 모든 것이 지금 한국을 닮아가면서 일본을 닮아가면서 중국이 겪고 있는 문제였다. 아니 겪어가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외래문물에 무조건적인 통과는 중국에 새로운 퓨전 건축법과 문화를 만들어냈고, 중국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초고속 발전은 생활의 편리성도 가져 오지만 사람의 마음이 없는 빈 로봇과도 같다.책의 내용은 여러 가지의 중국을 세세히 표현하고 있었다. 도시개발에 밀려나는 사람들과 사라져가는 역사의 흔적들, 중국인들의 부에 대한 과시. 주택과 자동차 소유에 대한 열망, 국영기업의 구조조정과 해고 노동자들의 삶, 일본문화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10대들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 동거문화와 동성애, 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도시거주민과 농촌거주민의 격차, 도시로 밀려드는 농촌 인구, 농촌의 빈곤과 농촌 지역 공산당 관리들의 만연한 부패, 갈수록 커지는 소비자 의식, 중국 예술 시장과 문화계 흐름, 사회주의 신념과 가치관의 위기 그리고 종교의 확산 등등 중국인들의 가장 큰 고민인 자녀 교육, 주택, 의료비 문제와 중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엄청난 변화와 개발의 물결 속에 정치, 경제, 문화의 다양한 측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저자는 이렇게 성장의 어두운 뒷면을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중국의 현재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해야했고, 많은 이들을 직접 인터뷰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독자를 위해 발로 뛰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공감할 수 있었고 또 함께 경험했다. 수많은 도시 속 다양한 직업군과 각각의 계층,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최대한의 사람들에게서 도움이 될 수 있을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그로인해 단순한 정보전달 그 이상의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은 현재 이렇다,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생한 증언의 목소리를 들음으로 인해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고,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