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문학의 상징, 시경을 다시 찾아 읽다.처음 문학사 시간에서 ‘관저’를 배울 때에는 이 작품이 남녀관계와 사랑을 그려낸 연가라고 배웠다. 에서도 ‘관저’를 결혼 축가의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평가했다. 는 ‘관저’를 문왕의 교화와 후비의 덕을 노래한 것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관저’에 대한 평가는 이와 다르다고 한다. 남녀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낸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옛날 작품에 의인화 등의 수법을 통해 왕과 왕실의 덕을 찬양하는 작품이 많다고 하지만, 확실히 ‘관저’를 읽어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요조숙녀에 대한 간절한 생각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중국 고전시가를 읽다 보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던 한자어나 성어들이 나올 때 뭔가 반가움이 느껴진다. 처음 ‘관저’를 읽었을 때 ‘요조숙녀’라는 표현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표현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의 작품 중 한 가지를 꼽자면 패(邶)나라의 시인 ‘이자승주(二子乘舟)’라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었다.二子乘舟(이자승주) 汎汎其景(범범기경) 두 자식이 배를 타니 둥둥 떠가는 그 광경이여願言思子(원언사자) 中心養養(중심양양) 기원하며 자식들 생각하니 속마음만 출렁출렁二子乘舟(이자승주) 汎汎其逝(범범기서) 두 자식이 배를 타니 둥둥 떠서 저 멀리 가누나願言思子(원언사자) 不瑕有害(불하유해) 기원하며 자식들 생각하니 허물이 되어 해롭지나 않을까자식을 객지로 떠나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작품에는 부모의 마음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글쓴이는 1장에서는 멀리 보내는 자식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신변을 걱정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2장에서는 자식이 잘 되기 위해 더 큰 곳으로 가는 것은 좋은 일임에도 기뻐하지 않고 걱정을 많이 하면 허물이 되어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았다. 즉 자식을 멀리 보내는 부모의 걱정스러운 마음은 이해하나 그렇다고 하여 계속 걱정만 하고 근심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책이나 인터넷 상의 ‘이자승수’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작품의 주제가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임은 확실한 것 같다.3,000여 편의 시를 300여 편으로 정리했다는 시경은 중국 고전문학을 상징하는 시집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중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도, 시경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경을 자세히 이해한다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평생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번 과제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여전히 시경은 양이 방대하고, 어렵고, 다 읽기에는 지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느낀 것은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르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시와 노래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 그리고 사람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선진국의 고령화와 국제적 노동 이동, 대한민국의 대응은?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 가나, 쿠바 등 제3세계 개발도상국과 서구 선진국 간의 고급 인력 수급 경쟁 상황을 보여주었다. 수업 시간에서 2국 모형을 가정하여 분석한 특수 생산 요소 모형에서는 노동 이민에 대한 장애물이 없을 경우, 양국의 임금의 실질 구매력이 서로 같은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노동의 국제적 이동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실질임금이 낮은 국가는 인력 유출로 인한 노동 공급 감소로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실질임금이 높은 국가는 인력 유입으로 인한 노동 공급 증가로 실질임금이 하락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국의 실질임금은 같아진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은 일정한 양국의 노동 수요를 가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설명이었다.하지만 다큐멘터리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노동 수요 측면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최근의 국제적 노동 이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 서구 선진국들은 빠른 고령화로 인해 의사와 간호사와 같은 의료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자체 인력 양성으로는 급증하는 의료 인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서구 선진국들은 높은 연봉의 매력을 앞세워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고급 의료 인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높은 연봉을 찾아 고국을 떠나는 고급 인력들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수 생산 모형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노동 공급 감소로 실질임금이 상승해야 하지만, 선진국과의 임금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이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에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의료 인력 유출은 쿠바에서 가나로, 가나에서 남아공으로, 남아공에서 서구 및 중동 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저개발국~개발도상국~선진국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인력 유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상태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이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인구의 고령화로 심각한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아주 짧게 언급되었지만, 머지 않아 일본도 의료 인력 수급을 위해 이민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일본만큼 빠른 고령화 진행 속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고급 의료 인력은 더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서구 및 중동 국가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이에 반해 신규 의료 인력 공급은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 분야는 다른 업종보다도 신규 인력 교육 및 훈련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미래에는 의료 인력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도 다양한 방면에서 의료 인력 수급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노동 이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제3세계 출신 인력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 의료 인력을 추가적으로 양성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다큐멘터리에서는 인도의 ‘백 오피스’를 소개한 바 있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콜 센터 업무와 회계, 금융업무를 노동력이 저렴한 인도에 하청을 주어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과 인도의 시차를 이용해 24시간 내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우리도 백 오피스를 활용한 원격 진료로 간단한 진료 업무를 개발도상국에 위탁할 수 있다. 우리의 뛰어난 ICT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고급 의료 인력과 결합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원격진료 도입을 두고 의료계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장기적으로 간단한 문진 수준의 진료는 원격진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비용 및 효율성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또한 간단한 문진은 원격 진료로 위탁하고, 국내 의료 인력은 보다 난이도가 높은 진료와 첨단 의료 기술 연구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방안은 의료업계 종사자의 이해관계와 외국인 의료진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를 하루빨리 준비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장기적으로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다.
라다크, 세계화의 축소판냉전 체제가 종식된 이후 지금까지 국제 사회에서 끝임 없이 강조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세계화’이다.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모든 국가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실제로 냉전이 끝나고 구 공산권 국가들이 문호를 개방하고, 과거 서구 국가들의 식민지였던 제3세계 국가들 역시 개방을 가속화하며 무역을 비롯한 국가 간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그 예로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국가연합(AESAN), 아프리카연합(AU) 등 국가 공동체는 각자 출범 시기는 다르지만 대체로 1990년대에 세력을 확장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 통합이 대세를 이뤘다. EU, ASEAN, AU 등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끼리 모여 통합을 이루었다면, FTA는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 간이라도 이해 관계가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경제 통합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FTA 체결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시기에 따라 경제 통합의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각국은 이러한 경제 통합이 서로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경제 통합 이후 국가 간의 무역 장벽이 완화되고 거래 비용이 감소하였고,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큰 성과를 이루었다.세계화의 흐름은 인도의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까지 들어왔다. 티베트 문화권이지만 정치적으로 인도에 속하는 라다크 지역은 상당 기간 독립적인 자치를 해왔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 간의 분쟁 이후 인도 정부가 실질적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였다. 개발을 시작하며 서구식 교육, 문화, 경제, 생활양식이 라다크에 들어왔지만 이 새로운 시스템은 서구식을 어설프게 모방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많았다. 라다크의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 및 의료 시스템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했다. GNP 수치에 집착한 서구식 개발 논리는 라다크 주민의 후생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었다. 라다크의 젊은이들은 전통 문화에 싫증을 느끼고 서구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외지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라다크의 자급경제는 붕괴되었고, 가구 단위로 이루어지던 소규모 경작 및 목축은 큰 타격을 입었다. 외국산 제품은 라다크에서 자체 생산된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국제 무역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특화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선진국의 대기업들은 기술적 우위와 대량 생산 체계를 확립하였다. 이를 통해 제품 생산 원가를 낮추고 대량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농산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국적 농업 기업들은 넓은 평야에 대규모 경작을 하며 저렴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종자 개량과 유전자 연구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에 성공했고, 경제 통합으로 더 넓어진 세계 무대를 뛰어다니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다국적 기업이 갈수록 그 세력을 넓히며 성장한 반면, 기존의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기업들은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력, 생산성, 유통망과 경영기술 등 모든 측면에서 다국적 기업과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런 상황을 ‘뉴질랜드에서 수송된 사과가 왜 파리의 식료품점에서 프랑스산 사과를 밀어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젖소를 2,500만 마리나 사육하는 몽고의 식품점 진열대에 왜 유럽산 우유 제품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생산성이 낮고 비싸기만 한 국내산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느니 생산성이 높고 더 저렴한 외국 제품을 수입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이 발상은 리카도 모형을 비롯한 여러 국제 무역 이론의 기본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기존의 경쟁력이 낮은 재화를 생산했던 업종이 사라지면 그 업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은 다른 업종으로 이동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경쟁력이 있는 업종으로 이동하여 더 높은 임금을 받음으로써 후생이 증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업종 간 노동자의 이동은 쉽지 않다. 아무리 고급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라고 해도 업종이 변경되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욱이 라다크처럼 타 지역과 멀리 떨어진데다 경제 규모도 작은 지역은 업종 간 이동 자체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업종이 사라지면 그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결국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개발도상국의 실업률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저 서구식 교육의 틀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은 신식 교육은 현실과의 괴리가 커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고, 그 결과 개발도상국 주민들은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한다.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주먹구구식 교육 시스템이 개발도상국 주민의 빈곤 문제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글쓴이는 이 책을 통해 지역 고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개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정책을 추진하면 외형적인 성장은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르나, 주민의 후생은 반대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농업에서는 바나나 전염병 TR4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바나나 품종은 1,000여 종에 이르지만 전염병에 강한 것으로 알려진 캐번디시 품종이 글로벌 작황의 45%, 수출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TR4가 캐번디시 품종에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바나나의 멸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단일 경작을 추구한 결과 생태계의 다양성이 파괴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커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머지않아 인류가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라다크가 좁게는 인도 사회, 크게는 세계 사회에 편입되며 겪고 있는 변화의 양상은 저개발 시대를 겪었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최근에는 경제 통합 및 단일화와 관련된 갈등과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의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쌀 생산성은 미국보다 한참 떨어진다. 게다가 한국산 쌀이 미국산 쌀보다 훨씬 비싸다. 단순한 국제 무역의 논리에 의하면 한국은 쌀 생산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쌀을 수입해 먹으면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경제통합 및 단일화와 관련된 논의는 대부분 경제적 논리에서 이루어지지만, 이 논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해 식량 주권 문제와 쌀 농가의 생계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세계화는 여러 국가들이 점차 하나의 공동체로 융합해 나가는 과정이다. 경제 통합으로 기업은 외국에 생산 시설을 건설해 더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무역을 통해 더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과정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일방적인 흐름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개발이 시작된 후 외부 문물과 시스템이 라다크로 일방적으로 들어왔을 뿐, 라다크의 문물과 시스템은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지 않은 것과 같다. 세계화는 선진국이 내놓은 발전 논리에 기반해 추진되었고, 각 국가 및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개발과 개방 정책은 해당 주민에게 많은 부작용을 남겼다. 하지만 라다크 프로젝트와 ISEC의 사례처럼 작게나마 세계 각국에서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경제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또 다른 예로 커피를 들 수 있는데, 커피는 과거 개발도상국 농가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동 착취로 악명이 높던 작물이지만 최근 다발적인 공정무역 캠페인을 통해 개선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최근 국제사회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변화는 개발도상국의 발언권 확대에 있다. 중국과 인도, 아세안, 아프리카 등 세계 경제의 비주류였던 개발도상국들은 최근 중요한 세력권을 형성하여 선진국의 논리에 대항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화 과정에서 비주류의 신장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양방향적 세계화는 동등한 지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1인 1표이지만 자본주의는 1원 1표’라는 말처럼 국가 간에 존재하는 부의 차이로 인한 격차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불합리함에 대해 비주류가 제 목소리를 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당당하게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그 격차가 완화될 수 있다.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배워 나갈 때 경제 통합과 세계화의 이점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다.
도(道)로 시작해 도(道)로 끝맺는 붉은 누각의 꿈“중국인은 왜 이리 홍루몽에 빠져 있는가?” 홍루몽과 관련해서 제기된 많은 질문 중 하나였다. 한국인인 우리들이 보기에 홍루몽은 이해하기 어렵고,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소설이다. 마치 100회짜리 대하 드라마처럼 소설에 알 수 없는 수 백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앞부분에서 왠지 나중에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인물이 중반부로 가서는 거의 역할을 하지 않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야기를 정리하기도 한다. 스펙타클하고 첨예한 대립이 등장하는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화끈한 육감적인 로맨스가 등장하는 소설도 아니다. 큰 ‘한 방’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더더욱 홍루몽이 지겨운 소설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홍루몽이 중국 고전 문학에서 가지는 가치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엄청나다. 중화민국 초기 갑골학, 돈황학과 함께 당시 중국 3대 현학으로 꼽힌 홍학이 바로 그 증거이다. 홍루몽만을 연구하는 홍학은 중화민국 초기부터 근, 현대 중국까지 중국 고전 문학 연구에서 근간을 이루었다. 그만큼 홍루몽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 중국 고전 문학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홍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나타날 정도로 홍루몽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하였다고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 홍루몽이 오랜 기간 중국 대중의 폭넓고 꾸준한 사랑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을 읽는 일반 대중들은 홍루몽이 학문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이유로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 마치 국제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정작 멀티 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부진한 실적을 내는 것처럼, 학문적, 이론적 가치와 대중의 선호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홍루몽은 청대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문학 이론의 측면에서 발견한 가치만을 가지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부족할 것이다.홍루몽은 유가, 불가, 도가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소설이다. 현실 세계에서의 주인공인 가보옥은 입신양명이라는 가족의 기대를 등에 업고 있지만 출세에 미련이 없는 인물이다. 비록 과거에 응시하여 7위로 급제하나 결국 속세를 떠나려 한다. 이와 함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승려와 불교 도사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유불선 사상이 저마다 가치를 내뿜고 있는 홍루몽이지만,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도가에 있다. 작품 앞 부분에서 여와가 하늘을 기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남겨둔 돌 하나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이 돌은 공공도인과 망망대사와 같은 도인을 만나 인간 세상으로 보내진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사은과 가우촌은 재회하게 되고, 그들이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난 뒤, 도사와 스님은 인간 세상에 내려갔던 옥을 다시 가져와, 여와가 하늘을 괴던 곳에 놓아두고 사라진다. 홍루몽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당시 중국을 주도하였던 유교 이데올로기 하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과 갈등이 주도하고 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도가로 시작하여 도가로 끝맺음 맺는다. 홍루몽의 주제 의식은 대체로 주인공 간의 사랑, 그리고 능력이 출중하지만 성별의 한계로 인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여성의 좌절 등으로 정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 의식은 대체로 유교적 논리와 관련되어 해석된다. 하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만약 글쓴이가 유교 문화를 거부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소설의 앞과 뒤에 나타나는 도인들은 무엇이며, 왜 돌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낸 후, 결말 부분에서 다시 그 돌을 원래 자리로 돌려 보내는가? 이 때 등장하는 도사들은 단순히 엑스트라에 불과한 것일까? 한국인이 홍루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설정들이다. 이렇게 한국인이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꼽자면, 한국에서는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에 대한 이해가 유교 및 불교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홍루몽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 역시 도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교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고 매우 현실적인 중국인이라고 하지만, 중국 내 종교 중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도교이다. 도교는 도가 사상과 다르게, 노자가 신격화되면서 크게 변화하였기에 도교와 도가는 구분되어 설명해야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중국인은 도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또한 평소 생활 속에 도가와 도교가 보편화되어 있다.도(道)로 시작하여 도(道)로 끝맺는 홍루몽이지만, 작품의 전개는 지극히 유교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출생부터 예사롭지 않게 옥돌을 입 안에 물고 태어난 남주인공 가보옥은 가족들의 기대를 한 가득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가보옥은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시대의 가치와는 상반되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보옥이 태어난 가씨 가문은 온갖 대립과 갈등, 비리로 얼룩져 있었고, 세상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문 사람들은 보옥과 가옥의 결혼을 반대하며, 철저히 가문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속임수를 동원해 보옥을 설보차와 결혼시키고, 이들은 사랑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유가적 논리에 순응해 살아가야 했던 보옥은 과거를 급제한 후에는 속세를 떠난다. 치열한 유교 사회에서의 삶이 결국 덧없고 무의미함을 보여주고 있다. 입신양명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결과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된다 한들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 진짜 또한 가짜가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곳에서 있음 역시 없음이다.’라는 문장은 마치 세상의 모든 원리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와가 남겨둔 돌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길 끊임없이 원한 결과 도사의 도움으로 속세에 내려가지만, 결국 그 돌은 치열한 인간 세상을 겪은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달이 차면 기울고, 그 기운 달이 한 달이 지나면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자연의 원리 역시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원형으로 끊임없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비록 도교가 도가 사상의 중심인 노자를 신격화한 일종의 종교라고 하지만, 중국 민중에게는 사상적 이론으로서의 도가보다는 민중 종교로서의 도교에 더 친숙함을 느낀다. 비록 사상이론과 종교라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도가와 도교는 분명 노자와 장자의 중심적 가치인 ‘도’를 중히 여긴다. 그리고 중국 민중들은 오래 전부터 서민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도(道)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중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도교 사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도(道)는 서민 생활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각종 종교 사원들이 처참히 파괴되고 종교 숭배가 철저히 부정되었던 시기를 겪고도, 도교는 여전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홍루몽(紅樓夢)’이라는 작품 제목을 풀어보면 ‘붉은 누각의 꿈’으로 해석된다. ‘붉은 누각(紅樓)’은 과거 풍족한 삶을 누렸던 고위층 및 부유층을 상징한다. ‘붉은 누각’으로 상징되는 가씨 집안의 흥망성쇠는 결국 꿈(夢)으로 끝난다. 아름답지만 허구성으로 가득 찼던 가씨 가문의 이야기는 한 편의 꿈과 같은 것이다. 작품 제목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이 의미 역시 도(道)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공공도인은 청경봉 아래를 지나다 버림받았던 돌이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돌에 새겨진 사연을 보며 ‘내가 이전에 이 돌양반의 신기한 이야기를 읽고서 이만하면 세상에 널리 전할 만한 사실이라고 생각되어 베껴 놓았는데 지금 보니 이 양반이 이미 본연의 상으로 되돌아와 있었구나. 어느 새에 또 이런 가화(佳話)가 생겨났던 것일까? 이로써 이 돌 양반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단련을 받은 끝에 밝은 빛을 내고 수도를 하여 원만하게 각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유감은 없다 할 수 있겠다’라고 감탄했다. 그리 가고 싶어하던 인간 세상에서 온갖 일을 다 겪으며 단련을 받고난 후, 결국 원래 자리하던 자리에 돌아온 돌의 모습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도(道)’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노자의 철학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은 최고의 선은 마치 물과 같다는 의미를 가진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휘어진 길을 따라 부드럽게 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거칠고 모난 곳을 부드럽게 한다. 이러한 물의 속성은 독선과 경직성이 만연한 인간 세상의 속성과 대비된다. 공공도인은 돌멩이가 인간 세상에서 겪은 이야기를 ‘기이하면서도 기이하지 않고, 속되면서도 속되지 않고, 진짜이면서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면서도 가짜가 아닌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에 나아가 명예를 추구하고자 안간힘을 쏟는다 한들, 결국 올라서게 되는 그 자리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홍루몽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민중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간 세상은 치열한 경쟁과 시기질투, 대립과 갈등이 난무한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다툰다. 하지만 민중들은 홍루몽을 통해 이러한 삶의 고단함을 위로 받는다. 현재의 고통은 물처럼 흘러 언젠가는 완화되고, 모든 것은 본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PAGE * MERGEFORMAT - 1 -
, 70명의 선인(仙人)이 각자의 재능을 뽐내는 단편소설집을 소설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70명의 인물 중 실존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의 인물 70인 중 노자, 여상, 개자추, 범려, 동방삭, 구익부인 6명은 실존 인물이고, 64명은 전설 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실존 인물에 대한 서술도 역사서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고 있다기 보다는, 이들 인물의 예사롭지 않은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노자에 대한 서술을 보면 노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기를 받아들이고 내보내지 않는 것’, 즉 방중술(房中術)을 구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주나라의 덕이 쇠하자 소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떠나 대진국으로 가는 길에 만난 관령이 글을 부탁하자 도덕경 상하 2권을 지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방중술이란 남녀가 성관계를 가질 때 정력을 소모하지 않고 상대의 정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이 남성이 여성의 정기를 흡수하는 경우이지만, 예외적으로 여성이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는 이야기가 수록된 경우도 있다.이 소설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세상에 떠도는 신비한 설화를 정리한 책으로 보는 관점이 많다. 각 에피소드가 길지 않고, 도입부에서는 간단히 그 인물의 이름과 살아 있던 시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신비로운 능력과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그 인물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 정도가 곁들여진 후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런 식으로 에는 70인의 인물이 소개되고 있다. 과연 이런 70편의 짧은 인물 소개를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할 수 있다. 현대 문학의 관점에서 소설의 범주에 설화나 전설, 사화, 야담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 범주는 서양 문학 이론의 관점에서 영어의 ‘novel’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이다. 그러나 중국 문학 이론에서 보았을 때 은 전형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중국 문학에서만큼은 소설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小說)’이라는 말은 과거 한서(漢書)에서 유래된 말로, 황제가 세상이 돌아가는 세태를 살피기 위해 패관(稗官)이라는 벼슬을 두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정리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즉, 을 소설로 볼 수 있는지의 없는지를 따질 때, 이 작품이 작가가 상상해내어 창작한 글인지의 여부 또는 이 작품이 현대적 문학이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소설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기 보다는, 중국 고전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개연성, 현실성이 결여된 작품을 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면 판타지나 무협 소설의 구분이 애매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허황된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서 소설이 아니라면 우리의 소설은 더 건조하고 삭막해지지 않을까? 작가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담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해 그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소설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이 안에 인물과 그의 성격, 그가 가진 능력과 관련된 일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구성한 ‘선인의 세계’에 ‘비범한 인물’들이 각자의 재능을 뽐내며 그 세계에서 자유로이 놀고 있는 은 적어도 소설의 성격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