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주 제피부면역 시스템소 속:과 목:담 당 교 수:학 번:성 명:제 출 일 자:목 차Ⅰ. 면역의 종류와 작용1. 면역의 정의2. 면역의 종류와 작용(가). 선천적 면역(자연면역)(나). 후천적 면역(획득면역)ㄱ. 능동면역ㄴ. 수동면역3. 정상피부의 구조 및 기능1). 표피(epidermis)2). 진피(dermis)3). 피하지방(subcutis)참고문헌소감Ⅰ. 면역의 종류와 작용1. 면역의 정의인체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이물질에 대해 방어하는 능력을 면역이라 한다. 이를 항원과 항체의 반응이라 하는데, 외부에서 인체로 들어오는 병원소나독소를 항원이라 하고, 이에 대한 방어력을 가진 인체의 것을 항체라 한다.따라서 이 항원에 대한 항체의 방어작용을 면역이라 하며, 면역이란 항원에 대한 방어능력이 충분한 것을 의미한다.이때 항원은 병원체뿐만 아니고 어떤 특이성 단백질도 항원이 될 수 있고, 특이한 화학적 구조물도 항원으로서 작용을 할 수 있다.항원이란 생채에서 항체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물질이다.인체는 피부, 점막, 윗나 등으로 이루어진 1차 방어계, 식세포에 의한2차 방어계와 림프구로 이루어진 3차 방어계가 있다.2.면역의 종류와 작용(가). 선천적 면역(자연면역)선천적으로 출생시 부터 갖고 태어나는 면역이다. 종족이나 개체의 차이에 따라 면역능력이 각기 다르다. 1차적인 면역체계로서 타고난 방어력으로, 이물질을 방어한다.피부, 백혈구, 림프구, 위산, 침, 보체, 대식세포 등이있다.대부분의 병원체는 이 자연면역에 의해 방어된다.(나). 후천적 면역(획득면역)2차적 면역으로서, 처음 침입한 임루질인 항원을 기억해 두었다가, 2차 침입시 에는 특이적으로 대응하여 항원을 제거 할 수 있는 방어체제이다. 질병의 감염후나 예방접종 후에 획득하게 되는 면역이다. 이에는 능동면역과 수동면역이 있다.ㄱ. 능동면역자연능동면역 - 전염병 등 질병에 감염된후 획득하게 되는 면역을 말한다. (콜레라, 일본뇌염 등.)인공능동면역 - 백신을 통해 획득하게 되는 면역을 말한다.(파방품, 소아마비 등.)즉, 인위적으로 항원을 인체에 넣어서 항체가 생성되게 하는 방법의 면역기전이다. 생균백신, 사균백신, 순화백신 등을 이용한다.생균백신 : 생균백신은 한번 접종으로 면역이 장기간 지속된다.(결핵, 풍진, 두창, 볼거리, 공견병, 탄저병 등)사균백신 : 사균백신은 추가 면역이 필요하다.(독감, 소아마비(폴리오),일본뇌염,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등.)순환백신 : 순환백신은 세균의 체외독소를 불활성화 하여 백신으로 이용한다.(파상풍, 디프테리아 등.)ㄴ. 수동면역자연수동면역 - 태반을 통해서 항체가 태아에 전달되는 경우나 모유를 통해 항 체를 얻어서 획득하게 되는 면역.인공수동면역 - 이미 생성된 항체를 투여하여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면역으로서 항독소(antitoxin)나 면역글로블린같은 면역혈청을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질병에 대해 방어하게 하는 방법이다.인공능동면역에 비해 면역효과가 빨리 나타나나 지속기간이보통 2~4주 정도로 짧다.3. 정상피부의 구조 및 기능1) 표피(epidermis): 외부환경과 접함. 중층의 상피세포(1) 표피를 이루는 색소- 멜라닌 색소형성세포- 각질형성세포- 랑겔한스 세포: 피부면역 작용* 5층의 뚜렷한 세포층으로 구분① 각질층: 표피의 가장 외층으로 각화되는 세포② 투명층: 손바닥, 발바닥의 두꺼운 피부에서 볼 수 있는 얇은 투명층③ 과립층: 과립세포층④ 유극층: 극세포층 때로 말피기 층으로 분류됨⑤ 배아층:(기저층/ 기저 세포막층): 피부의 깊은 층으로 조직 재생 기능(2) 피부의 기능① 보호기능: 세균이나 이물질의 침입을 막음.② 감각기능: 손끝예민. 엉덩이, 등판, 발바닥 감각둔함.③ 항상성 기능④ 체온조절: 땀분비로 체온 저하⑤ 분비기능: 신장기능 부전시 피부로 요산분비-> 피부 거뭇거뭇⑥ Vit. D 형성(3) 피부의 부속장기① 누출분비샘(eccrine glands, 소한선): 피부의 모든 영역에 분포(예외, 음경표피의 내면 손톱 밑 고막 빛 입술가장자리)② 부분분비샘(apocrine glands, 대한선): 주로 겨드랑이, 항문, 생식기 주위 및 유방과 젖무리 주위 분포정서적 자극에 의해 땀 분비(채취, 암내유발)③ 기름샘: 손바닥과 발바닥을 제외한 피부에 분포? 피부피지: 안드로겐 호르몬에 의해 항진, 에스트로겐 호르몬에 의해 억제? 지방샘에서 지방산 분비-> 피부의 산도(PH) 4.2~5.6④ 모발: 털주머니로부터 자라나오는 각질화된 구조⑤ 손톱: 딱딱한 각질화된 표피 구조물2) 진피(dermis)① 구성: 교원섬유(collagen)망상섬유(reticulum)탄력소섬유(elastin)② 기능: 표피에 영양공급, 체온조절, 감각, 피부재생, 보호, 수분저장3) 피하지방(subcutis)②물리적 화학적 장벽에 의한 방어피부-제1차 방어선, 케라틴이라는 견고한 단백질로 구성되어 침입자에 대한 저항성 가짐. 땀샘이나 지방 샘에서 분비되는 지방산 박테리아에 대해 독성을 가지고 있어 피부가 손상되지 않는 한 효율적인 방어. 눈물 같은 분비액에 는 항박테리아 효소인 라이소짐을 분비하여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손상.
REPORT주 제한국 화장의 역사소 속:과 목:담 당 교 수:학 번:성 명:제 출 일 자:목 차Ⅰ. 메이크업의 정의(Ⅰ). 서론(Ⅱ). 메이크업의 정의Ⅱ. 메이크업의 기원설*. 메이크업의 기원(Ⅰ). 보호설(Ⅱ). 신분설(Ⅲ). 종교설(Ⅳ). 위장설(Ⅴ). 본능설(미화설)(Ⅵ). 장식설Ⅲ. 한국 화장의 역사(1). 고구려(2). 백제(3). 신라(Ⅰ). 고대시대(Ⅱ). 삼국시대(Ⅲ). 고려시대(Ⅳ). 조선시대(Ⅴ). 개화기 이후에서 해방직후(Ⅵ). 1960~1990년대참고문헌Ⅰ. 메이크업의 정의(Ⅰ). 서론아름다워 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아름다움을 가꾸기 시작했을까. 이 의문은 쉽게 궁금해지는 내용이지만 또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과제이다. 화장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첫째는 미적인 성적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먹고 싶어 하는 욕구와 혼인하여 자손을 낳고 싶어 하는 욕구와 더불어 미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3대 본능으로서 태고적부터 인간은 신체의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도록 하고 일부의 약점이나 추한 부분을 수정 혹은 위장하고자 노력해왔다. 아프리카 북부지방에서 발견된 흙으로 빚은 여인의 나체 조상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 가슴이 유난히 크고 얼굴에 눈을 강조한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허리가 잘록한 조상의 모습은 실제 모습이 아니라 당시 여인의 이상형이었다는 것이 문화학자들의 주장이다.둘째는 주술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서 얼굴에 색칠을 하는 관습은 아직도 미개발 민족 간에 남아있고, 질병이나 신, 그리고 악마를 믿는 사람들이 마귀를 쫓기 위해서 얼굴이나 몸에 색칠을 하는 관습도 계속 남아있다.셋째는 성별, 사회적 지위, 소속 집단을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머리 형태는 남년 성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으나 화장법 중에는 성별을 나타내기 위해 시작한 경우가 많이안정과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장점으로 구성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스타일을 완성시켜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룬다.Ⅱ. 메이크업의 기원설?. 메이크업의 기원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점차 공동사회를 형성하게 되고, 내부적으로 계급 체계가 형성되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어짐에 따라, 조직 내에서의 위치를 구분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또한 각종 제전의식을 위해 주술적인 상징(symbol)을 표시하거나, 종족, 신분 및 계급 등을 나타내거나,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자연 및 기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 본능의 수단 등으로 부터 원시적인 치장(治裝)이 생겨나게 된다.그리고 원시적인 치장은 그 당시 자연(나무, 풀, 열매, 흙, 동물, 조개류, 어류 등)이나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러한 메이크업의 정확한 유래와 더불어 메이크업이 시작된 시기 등을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은, 이를 입증할만한 자료의 부족과 함께 메이크업 기법의 상이함 등의 이유로 인해 매우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몇 가지 가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Ⅰ). 보호설적으로부터 은폐, 위장자연의 위협 에서 추위나 무더위로부터 몸을 지키고 태양광선이나 건조로부터 몸을보호하 점토광물이나 유지를 신체에 바르거나 향유를 바르거나 향기를 뿌려서 불쾨한냄새를 완화 시키거나 각종 천연물을 비누대신 사용하여 보건위생 의 역할을 하여왔다.눈 화장을 짙게 하여 태양으로부터 보호(야구선수)향료(곤충으로부터 보호)문신(악령으로부터 보호)(Ⅱ). 신분표시설유사 이래 인간은 점차 공동사회를 형성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종족을 표시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또한 종족 내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어짐에 따라 신분이나 계급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거나 타인보다 우월해 보이려는 본능적인 욕구로 인해 타인과 구분되는 치장을 원하게 된다.이를 위해 자연(동식물 등)에서 채취한 장식물이나 색 백제보다 화장은 늦게 시작했으나 기술은 더 뛰어났다고 한다.화랑들은 여성들 못지 않은 화장을 하고 치장을 했으며 잇꽃으로 연지를 만들어 이마와?뺨 입술에 바르고 백분으로 색을 만들어 사용하고 다녔다고 한다.(Ⅰ). 고대시대의 화장우리나라 여성들이 언제부터 화장을 했느냐 하는 것도 확실하지 않으며 분명한 기록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저분하고 징그러운 돼지기름이 피부를 보호하고 유연하게 하며 동상을 막아준다는 인식은 퍽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돼지기름은 햇볕 그을림과 눈 그을림의 예방 및 피부를 희게 하고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있다하여 응고시켜 고약처럼 가공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고조선 기대에 만주지방에 살았던 읍루인들이 돼지기름을 좋아 하여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며 기름은 몸에 발라 추위를 막았다는 기록에 의해 확실히 알 수 있다.또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준 쑥과 마늘의 용도를 생각해보면 조미료와 약재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미용재료로 보는 견해 또한 존재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흰 피부의 소유자를 귀인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한민족과 같은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백색을 호상한 사실과 연관 지어 볼 때 미백용 미용재료로써 쑥과 마늘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쑥과 마늘은 소염 작용을 하여 민간요법에 이용되며 쑥을 삶은 물이나 우려낸 물에 세수해서 미백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사용하면서 백일동안 햇볕을 보지 말도록 한 것은 백색 피부 가꾸기를 시험한 사실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그 외에도 말갈 사람들이 미백의 수단으로 오줌으로 세수했다는 색다른 미용법이 있었으며 낙랑시대의 화장 또한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낙랑유물인 체협총에서 출토된 채화필협의 그림에서 이마를 넓히기 위해 머리털을 뽑은 흔적이 뚜렷하고 눈썹이 굵고 진하게 그려진 것을 찾아 볼 수 있다.그림1.채화칠협, 채협총 출토(Ⅱ). 삼국시대(2)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화장도 알 수 있듯이 완벽한 미남 미녀에 대한 동경을 알 수 있다. 신라인들은 지혜와 용기 미모를 모두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뽑았으며 이 때문에 박혁거세가 목욕 수단을 강구하여 지도자의 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있다 (목욕후 광채가 났다:분장의 의미로 해석) 이런 지도자의 요건은 신라의 화랑과 원화 역시 미모를 강조한데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화랑은 미소년이어야 했는데 여기에 장식을 더하였다. 기록된 바로는 ‘미모남자장식’이라 했는데 아름다운 색깔의 옷차림에 귀고리를 달고 분을 바르고 구슬장식 모자를 썼다고 한다. 이는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 사상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미에 대한 중시는 화장품의 발달에서 역시 드러난다. 신라에서는 백분의 사용과 제조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종래의 백분은 쌀의 가루였다. 또 쌀, 서속 등 곡식의 분말 혹은 분꽃씨의 분말, 조개껍질의 분말, 백토, 활석의 분말, 따위로 만들었는데 이러한 백분은 부착력과 퍼짐성이 약하여 절타가 복잡할 뿐 아니라 곱게 발라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백분은 납 처리함으로써 부착력이 좋아지고 잘 펴 바를 수 있었다. 이는 화장품의 발달사상 획기적 발명으로 평가된다.신라인들은 연지를 만들어 볼과 입술을 치장하였는데 연지는 홍화로 만든 것이었고 나무재를 유연하게 개서 만든 눈썹먹 또한 제조되었다.통일 전후에 신라인의 화장술에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으나 통일 전에 옅고 은은한 화장이 통일 이후에는 다소 화려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문무왕 4년(664)에 부인의 복제를 중국식으로 바꾸라는 왕명이후 화려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중국과 신라의 빈번한 문물교류를 의미한다. 당시 중국여인들은 짙은 색조의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하였는데 이 역시 신라에 영향을 주었고 더불어 통일 이후 정국이 안정되고 문물이 융성해져 일상생활이 사치해 졌으므로 화장 역시 사치해 졌을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 때는 올리브유 추출물이 피부를 희고 곱게 만든다는 것이 알려져 귀족층에게 선 여자 뿐 아니라 남자도 항시 사용한 안면용 화장품으로 추측된다. 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고, 희게 하기 위한 피부 보호제 겸 미백제 였으며 지금의 크림과 로션의 중간단계정도로 보인다.*고려회화 ~시두말대성*일본 신왕원소장고려시대에는 화장품기술을 일본과 중국에 전할정도로 발달했고 화장술 또한 수준에 도달했었다.화장뿐 아니라 모든 생활이 사치풍조였다.짙은 화장은 즐기지 않았으나 버드나무 같이 가늘고 아름다운 눈썹을 그렸고 비단 향료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그러나 고려 시대 초의 기생들은 반질거리는 머리.짙은 눈썹과 연지화장외에 백분을 많이 펴바른 짙은 분대화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그러나 여염집 여성들은 엷은 화장을 고수하고 기생의 분대화장을 경멸하는 풍조가 생겨나기도 했다.고려인들은 향을 애용하고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Ⅳ). 조선시대*고려시대의 사치와 퇴폐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검 절약 강조~자유연애와 외출금지*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 강조*방물장수, 매분구 출현: 최초의 화장품 방문판매*지와 덕과 체의 합일을 추구-조선시대의 화장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사치와 퇴폐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과 장신구, 화장에 대하여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린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일반인의 평상시 치장이 고려 시대에 비하여 훨씬 담백해졌다. 그것은 조선 시대 지배층의 생활 사상 탓이지만, 기생과 궁녀 등 직업여성들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분대 화장에 대한 기피 관념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또한 경제적인 이유도 없지 않다. 장기간에 걸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산업구조가 복구되지 못하여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화장품 산업도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임진왜란 직후에 일본에서 아침이슬이란 상표의 화장수가 발매되었는데, 광고 문안의 서두가 “조선의 최신 제법으로 제조된 화장수는...”이고 보면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에서는 고도의 기술로 화장품이 제조되고 있었다. 화장수 외에도 여러 가지다.”
REPORT주 제일러스트레이션 역사소 속:과 목:담 당 교 수:학 번:성 명:제 출 일 자:목 차Ⅰ.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1. 선사시대의 동굴화2. 이집트의 파피루스 그림3. 그리스 시대4. 중세5. 르네상스6. 현대 일러스트레이션7. 일러스트레이션 신문과 잡지의 등장8. 만화의 등장과 발달9. 풍자 일러스트레이션 시대10. 19세기 영국의 북 일러스트레이션11. 현대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Ⅱ. 이집트 미술Ⅲ. 이집트의 파피루스 그림Ⅳ. 일러스트레이션 활용도참고문헌소감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인류의 시각적 기록의 시작1. 선사시대의 동굴화이 시기의 그림의 목적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문제였고 이러한 먹이 감을 위한 주술적 의미의 수단으로 미술은 행해진다. 우리가 문자를 사용하기 훨씬 이전에 인류는 그들의 표현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는 크로마뇽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주술적 수렵의식의 한 부분으로 인류는 시각적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에는 사람은 거의 묘사되지 않았고, 주로 동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시대의 그림은 각 동물의 개성을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당시 예술가들의 도구는 날카로운 돌이나 갈대 따위였다.한 시대의 그림은 그 시대의 관심사를 담고 있다. 이들의 그림을 보면 그들의 관심사가 사냥에 관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이 초창기부터 미술은 이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원래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단순한 감상용이 아니었다. 감상용을 위한 작품이었다면 동굴의 깊숙한 곳에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미술이라는 존재는 생활을 위해 필요했던 수단, 좀더 정확히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신석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미술의 형태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난다. 사고 능력이 발전하며 추상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또 자신들만의 언어 수단으로 기호나 상징의 형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먹이 감을 구하기 위한 주술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미술이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에서부터 점차 추 같은 이미지들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묘사하였다. 특히 7세기경 그리스의 그림들은 그 시대의 삶에 대한 풍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도자기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장식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실용적 기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 꽃병들은 매매에 의해 거래되었는데, 유행과 수요팽창에 따라 도시국가에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이로 인해 예술가와 장인들의 기술과 개인적 재능이 장려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초기 일러스트레이터가 생겨났는데, 그들은 고객의 취향과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신전들이 지어졌는데, 훌륭한 *프리즈와 조각 장식들 위에 그림들이 그려졌다. 벽화나 모자이크 그림들이 도시국가와 귀족들에 의해 사치스럽게 제작되었다. 새로운 힘을 가진 국가인 로마가 등장한 이후에도 그리스는 여전히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그리스 예술가들에 대한 주문이 그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당시 대부분의 작품들이 주문이나 수수료를 받고 제작되었다는 점이다.실제적인 요구 없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이 중 신화는 적지 않게 양식의 변화와 해부학에 대한 지식들에 대해 설명해준다. 로마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름과 등장인물들을 추가하거나 변경시켰지만, 대부분 그리스 신들의 성격과 덕성을 충실히 따랐다. 로마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그들의 신화 역시 발전해갔고 신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대한 믿음도 증대되어갔다. 점성학, 길조, 마술사 등이 나타났다. 이러한 발전 속에 기독교의 등장은 수많은 신들에 대한 관념이 사라지고 유일신만을 섬기는 계기가 되었다.4. 중세서양중세의 미술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스·로마 미술은 인간 중심의 미술이었으나 중세는 기독교 중심의 미술이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민중을 천국으로 이끄는 안내자였다. 교회는 일상생활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예술의 중심지였다. 벽화, 조각, 모자이크 등의 중세 미술은 교회미아 전쟁, 보물 전쟁, 미국의 남북 전쟁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무궁무진한 주제를 제공했다. 이 때에는 사진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각 저널리즘은 여전히 일러스트레이션을 장악하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그들 앞에 주어진 사물이나 상황을 정직하게 표현하였다. 전쟁 외에도 철도부설과 같은 산업적인 발전이나 미개척지에로의 대여행 등을 소재로 다루었다.8. 만화의 등장과 발달연속만화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만화는 원래 일러스트레이션에 문구를 삽입한 연속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는 각기 독립된 사건들을 그 자체로 다루거나 아니면 다른 시대와 세계의 사건들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최초의 연속만화는 신문에 게재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세기말에는 애니메이션 기술이 적용된 만화책이 등장하게 된다. 영화 기술적인 효과가 만화에 도입되었는데, 분위기나 신비함을 나타내기 위해 고전적인 원근법은 물론이고 명암법 등이 활용되어 빛과 어두움만으로 형태를 단순하게 표현한 그래픽 효과가 주목할 만하다. 이런 그림들의 스타일은 미술과 일러스트레이션에서의 운동들만큼이나 다양했는데, 초인적인 영웅들의 고전적이고 로맨틱한 묘사에서부터 연속적인 꿈을 나타내기 위해 초현실적인 배경이 사용되기도 했다. 1930년대의 만화책은 신문지와 같은 종이로 만들어졌는데 4분의 1 크기로 접쳐져 인쇄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8 × 11 인치로 규격이 정해졌다. 이 지면들을 통해 작가들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내거나 스타일을 변화시켰으며 또 정치적·사회적 논평을 하고 환상을 펼치기도 하였다. 초인적인 영웅에 대한 아이디어는 1938년 '수퍼맨' 을 창조해 낸 미국의 제리 시겔과 죠 슈스터에 의해 시작되었다. 어린이들을 주요 독자로 삼으면서 만화출판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 가기 시작했다. 만화책을 고정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1965년 무렵부터는 *옵셋인쇄의 기술적 혁신으로 그래픽 소설이라고 불리는 질적으로 고급한 만의 모티브들은 상징적 힘을 획득한 채 뚜렷한 이미지와 순수한 디자인들로 엮어졌다. 1890년대에는 환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채색 *하프톤 기법이 도입되었다. 19세기 중후반 동안 *아르누보가 전 유럽과 미국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예술개념이 그런 것처럼 아르누보 역시 그 기반이 되었던 본래적 정열과 논리는 유명무실하게 끝나버렸다. 산업화의 전진과 엄격한 순응에 반발하는 표현이었던 복잡한 선과 자연적인 형태는 디자인의 순수한 요소로 되어버렸다. 이는 어떤 면에서 과거의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공식이나 구조와 다를 바가 없었다.풍부히 쏟아져 나온 정기간행물들의 영향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개념도 보다 확고해져갔다. 텍스트와 결합된 미술은 일종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으로서, 어떤 사실을 발언하거나 독특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더러 통찰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편 일러스트레이션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에 관한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하여 관심을 유발시키는 만큼 광고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정받게 되었다. 20세기 초 라디오와 TV가 등장하기 이전, 이들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정기간행물들은 매우 인기있는 오락과 정보의 수단이었다.11. 현대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진 유럽에 비해 미국은 아직 과도기에 있었으며 재능을 가진 유럽인들의 이주를 환영하였다. 미국에도 이미 많은 잡지들이 있었지만 특히 영국에서 출판된 일러스트레이션 잡지들이 그들의 시장을 미국의 가정으로까지 확대하고 있었다. 위대한 문학과 환상 그리고 모험이 이 시대의 한 장을 장식할 때 미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하워드 파일은 일찌감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들 선조들의 유럽적인 배경이 미국의 의식과 혼합된 것처럼, 파일의 예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초기 일러스트레이션은 아르누보,라파엘전파, 알프레히트 뒤러의 기법을 도용한 펜화였다. 펜화는 목판공의 기술을 활용하여 쉽게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많이 등의 화가들이 그린 '장난감' 책을 출판하면서 삽화에 색채가 도입되었다.그전까지의 삽화에는 흑백의 조화로만 이루어졌기에 색채를 넣는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모되었다.Book of the Dead, B.C 1070~945 Diamond Sutra, A.D 868Sir Roger L'Estrange illustration, 1694 Edmund Evans illustration, 1800Kate Greenaway illustration, 1880사진이 발명되자 삽화를 앞지르게 되었다. 인쇄된 책에 사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 쯤이다. 사진은 삽화에서의 리얼리즘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때 사진을 모방하여 사실에 좀더 가깝게 표현하려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오히려 상상력을 가미하여 리얼리즘과는 멀어지는 경향의 일러스트레이션간에 갈등이 나타났다.19세기는 기술면에서 인쇄기계와 공정의 발달을 가져왔을 뿐아니라, 색채를 사용하게 됐다는 점에서 코발트나 카드뮴 등이 쓰이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염료와 안료가 더욱 발전하여 다양한 색채를 사용할 수 있었다.또다른 면의 진보가 있었는데 그것은 하프 톤(Half-Tone:망판)의 재현에 의해 스크린 농담으로 여러 색채의 잉크를 겹쳐 인쇄함으로서 톤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본래의 작품이 갖는 색채를 그대로 보여 줄수 있었던 것이다.일러스트의 범위가 넓혀지자, 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가 등장하였다. 그것이 바로 광고이다. 산업혁명이후 산업의 발달과 확대로 인하여 시장 경쟁이 심해지자, 광고의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포스터를 통한 광고가 나타났다. 포스터가 가지는 시각효과와 전달효과는 광고의 수단이 되기에 충분했다. 포스터의 제작은 더욱 확산되어 갔다. 수요가 증대되고, 색채의 인쇄기술이 세련되고 간편해짐에 따라 포스터를 사용한 광고는 인간 생활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그후 필름 그래픽, 특히 애니메이션은 일러스트레이션의 영역을 또 한번 확대시켰다. 여기에, TV의.
REPORT주 제동학농민운동소 속:과 목:담 당 교 수:학 번-성 명:제 출 일 자:목 차Ⅰ. 정의 및 개설Ⅱ. 역사적 배경 및 발단Ⅲ. 이용태Ⅳ. 홍계훈 장군Ⅴ. 의의 및 평가참고문헌Ⅰ. 정의 및 개설1. 동학농민운동의 정의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정쟁이라고도 한다.2. 동학농민운동의 개설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과 서학에 반대하고 척왜양을 주장하는 반외세 사상이 내포되어 있었다. 때문에 위정자들은 동학을 사교로 지목하고 1863년(철종 14) 교조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하였으며, 이어 동학도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그러나 동학은 제2대 교주 최시형의 노력으로 농민 대중 속에 광범위하게 침투하여 그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였다. 그리하여 지방 분산적이고, 일시적인 농민 대중의 저항을 결집시켜 전국적인 운동으로 성숙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확대 조직화된 동학에 가담한 농민들이 대규모적인 군사 행동을 일으킨 것은 1894년(고종 31)의 일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동학교인 전봉준의 지휘 아래 고부군청을 점령하고, 이 여세를 몰아 경상도를 비롯한 삼남 지방 일대까지 점령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동학농민군은 그 여세가 꺾여 무력해지고 이듬해 4월 전봉준 이하 동학지도자들이 처형을 당하면서 이 운동은 끝이 났다.Ⅱ. 역사적 배경 및 발단1. 동학 농민운동의 역사적 배경여수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순천에 설치된 영호도회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순천의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7일 전주화약이 체결되어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해 각자 지역 활동에 들어가자 전라북도 금구 출신 김인배의 지도하에 순창을 경유하여 순천 지역으로 돌아왔다.김인배는 총령관 김개남을 지지하는 인물로서 전라좌도의 핵심적인 농민 지도자로 추측된다. 따라서 김인배는 좌도의 남쪽 요충지인 순천부를 점령하라는 지시를 받고 순천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순천 지역 동학농민군들은 순천에 영호도회소를 설치하였다.영호도회소는 전라남도 지역 동학농민군의 구심점으로서 이 지역의 통치권을 장악한 상태로 폐정개혁 활동을 주도하고, 전주도회소나 남원의 도회소로부터의 지시 사항을 각 군·현의 농민군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즈음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할 조짐이 보이자 조선을 완전한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개화파 정권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였다.이런 상황 하에서 8월 19일 남원의 동학농민군은 남원읍성과 교룡산성을 공격해 점령하였다. 8월 20일에는 동학농민군의 총령관이었던 김개남이 남원으로 들어와 25일경 동학농민군대회가 열릴 것임을 각지에 알렸다.동학농민군대회가 개최된 자리에서 농민군들은 더 이상 정부 측과 전봉준의 요구대로 치안 유지에 협력할 수 없으며 일본의 만행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결의를 하였다. 이로써 지금까지 수개월간 유지되어 온 정부와의 화해 국면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각지의 동학농민군들은 곳곳에서 읍내를 무력 점거하고 무기를 빼앗는 등 급격히 재봉기의 분위기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순천의 영호도회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김개남과 투쟁노선을 같이 하던 영호도회소 대접주인 김인배와 영호도회소는 8월 말부터 그동안 자제해 오던 방침을 바꿔 본격적인 무력 진출을 기도하였다. 김인배는 원래의 궁극적인 목표대로 수접주 유하덕과 함께 직접 동학농민군 주력 부대를 이끌고 하동·진주 방면으로 출전하였다. 이 지역을 장악해야만 전라도 지역에 대한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을 미리 차단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영호도회소 주력 부대가 광양을 거쳐 하동 방면으로 출전한 상태에서 나머지 농민군은 영호도회소의 본거지와 그 후방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순천에 잔류한 동학농민군은 평소 그들에게 비우호적이었으며, 만에 하나 자신들의 뒤에서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낙안을 점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영호도회소의 후방은 다소 안전하게 되었으나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 군대는 동학농민군에게 있어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항상적인 충돌을 예비하고 있었다.2.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전라좌수영은 동학교인이나 농민군의 활동이 두드러진 곳은 아니었다. 당시 전라좌수사 이봉호는 동학교인에 대해 호의적이어서인지 그 부하 중에서도 상당수가 동조했던 것 같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이봉호는 곧바로 면직되고, 1894년 7월 3일 그 후임으로 김철규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였다.김철규가 부임할 당시 그는 동학농민군에게 봉변을 당했는데, 그러한 소식이 전봉준에게 알려지자 집강소의 성찰들로 하여금 호위하게 함으로 김철규는 여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규는 부임하자마자 군교들과 동학농민군에 대한 방어책을 숙의하면서 동학농민군의 토벌을 구상하였고, 전라좌수영의 전력을 대폭 증강하여 동학농민군을 토벌할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김철규는 전라좌수영 안의 군인들과 주민들을 결속시켜 농민군의 체포와 탄압에 힘을 기울였다. 이후 전라좌수영의 동학농민군 세력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측된다. 뿐만 아니라 김철규는 서울 사람 이풍영으로 하여금 일본군 수백 명을 끌어 들여 전라좌수영 바깥에 주둔시켜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였다. 이와 같은 전라좌수사 김철규의 동학농민군에 대한 강경 대응과 시시각각 불리해진 동학농민군은 그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 좌수영을 공격하게 되었던 것이다.Ⅲ. 이용태(1854.7.13 ~ 1922.7.23)이용태 (조병갑에 이어 안핵사가 됨, 동학 농민 운동을 반란으로 규정하고탄압하여 제 1차 동학 농민 운동의 직접적 계기가 됨)?한말의 정치가. 고부민란 때 안핵사로 임명되어 농민들을 약탈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만행을 하여 동학교도 재궐기를 유발시켰다.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유배생활을 했으나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의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본 관:전주활동분야:정치출 생 지:경기도 안성?본관 전주. 군수로 1885년(고종 22) 증광시 병과로 급제, 홍문관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1891년 참의내무부사가 되었다.남양부사, 장흥부사를 지낸 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인 고부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고부군 동학농민군 민란의 책임이 농민들에게 있다 하여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가산을 불태우며 약탈까지 자행하였으며 심지어 가족을 살해하는 등 만행을 하였다. 이일로 그는 경북 금산군에 유배되었으며 동학교도의 재궐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중추원 의관, 1899년(광무 3) 평리원 재판장, 1901년 주미공사를 거쳐 비서원경 ·사직제조 등을 지냈다. 찬성에서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다가 내부대신에 옮겼으며, 궁내부 특진관을 여러 차례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매국노를 처단하는 상소를 올리고 기금을 모금했다가 체포되어 전라남도 지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은사금 2만 5천원을 받았다.
REPORT주 제모발의 종류와 기능, 특성소 속:과 목:담 당 교 수:학 번:성 명:제 출 일 자:목 차Ⅰ. 모발의 종류1. 모발의 굵기에 따른 분류(Ⅰ). 취모(Ⅱ). 연모(Ⅲ). 경모(Ⅳ). 중간모2. 형태에 따른 분류(Ⅰ). 직모(Ⅱ). 파생모(Ⅲ). 축모Ⅱ. 모발의 기능(Ⅰ). 인체 보호의 역할을 하는 모발(Ⅱ).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Ⅲ). 장식의 기능을 하는 모발(Ⅳ). 감각 전달의 기능Ⅲ. 모발의 특성(Ⅰ). 모발의 구조적 특성(Ⅱ). 모발의 생리적 특성1). 성장기2). 퇴행기3). 휴지기4). 발생기(Ⅲ). 모발의 화학적 특성(Ⅳ). 모발의 물리, 역학적 특성*모발의 ph참고문헌소감Ⅰ.모발의 종류1. 모발의 굵기에 따른 분류1)취모(배냇머리, lanugo hair)태아에 존재하는 선세하고 부드러운 엷은 색의 털로서 출생 무렵 탈락되고 연모로 대치되고 모발의 색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배냇머리라고도 하며 아직 큐티클이 관찰되지 않은 특징을 지니며 임신 8개월차에 연모화 된다. 출생 무렵 탈락되고 연모로 대치된다,2)연모(솜털, vallus hair)피부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섬세한 털로서 출생 후 성장함에 따라 부위별로 성모로 바뀌고 모수질이 존재하지 않으며 연갈색의 색상으로 사춘기이전의 모발에서 볼 수 있으나 탈모진행형 모발에서도 볼 수 있다.4)경모(종모, terminal hair)단단한 단백질이 결합된 길고 굵은 털로서 머리카락, 속눈썹, 수염, 겨드랑이등을 구성하고 있는 털이다. 경모는 모수질과 색소를 가지며 30대 이후 점차 연모화가 이루어진다.3)중간모(intermediate hair)출생 후에 볼 수 있는 털로 연모와 종모 두 종류 사이에서 구분이 힘든 털을 말하는데 구분은 길이 보다 직경에 좌우되고 일반적인 연모는 직경이 20~40 마이크론이며, 대부분의 종모는 60~120 마이크론 이다.2.형태에 따른 분류?1) 직모(straight hair)모모세포간의 동일한 세포분열이 이루어져 굵기가 굵으며 모경지수가 75~85 정체 보호의 역할을 하는 모발우리 인체의 피부 중에서 모발이 두상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데 그것은 인체에서 머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모발은 자외선이나 추위, 더위, 기타 충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며 특히 머리카락은 두뇌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2)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모발은 유해한 중금속 등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도 있습니다.머리카락은 혈액순환에 의해 받은 영양분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혈액 내에 있던 유해한 성분들이 머리카락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게 된다.3) 장식의 기능을 하는 모발우리 인체에서 쉽게 장식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머리카락이다.같은 사람이라도 헤어스타일과 컬러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은 개인적인 장식의 기능이 보호의 역할만큼이나 크게 부각되고 있다.4) 감각 전달의 기능두피 밖에 존재하는 모간부는 스스로 세포분역 능력이 없는 죽은 세포로 모간부위만을 볼때는 감각이 없는 실과 같지만, 모근부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지각 신경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자극에 우리의 인체가 반응하도록 하는기능을 지니고 있다.Ⅲ. 모발의 특성모발의 성장주기우리 몸은 입술, 손바닥, 발바닥, 귀두부들 일부분을 제외한 전신에 털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약 500만개의 털이 있다. 이러한 털은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몸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모발은 언제까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명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쉬고 다시 금 빠지는 과정을 되풀이한다.이것을 모발주기, 모주기, 모발 사이클이라 하며 이처럼 모발은 일정한 주기를 지닌 채생사를 되풀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경우 4~6년, 남성은 3~5년이며 한달에 1.2~1.5Cm정도 자란다.인간의 모발은 동물의 털처럼 모두 함께 빠졌다가 다시금 나는 털갈이를 하지 않으며 예컨데 한 가닥 한 가닥이 독자적인 모발 주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동물처럼 모발전체의 모주기가 일치하는 것을 싱크로니스틱 타입, 사람처럼 유두의 기능 정지 또는 쇠퇴,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의 혼란, 내분비의 장애로 인하여 달라 질 수 있다.(1). 모발의 구조적 특성1).모발의 구조?모근부의 구조와 기능모낭(hair follicle) 모근을 감싸고 잇는 세포 층으로 모낭내에는 피지선과 입모근이 부착되어 있다.모구(hair bulb) 모근의 아래 부분에 원형으로 부풀려져 있는 부분으로 모세혈관, 모유두, 모모세포 등이 위치하고 있다.모유두(hair papilla) 마치 젖꼭지 모양처럼 위로 돌출 되어 있는 부분으로 모유두 아래쪽에 모세혈관이 지나면서 모발에 영양분을 공급한다.모모세포(hair mother cell) 모발의 기원이 되는 세포로 모유두 위에 접해있고 모세혈관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세포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난다.내.외모근초(inner outer root sheath) 모근을 감싸고 있는 모낭과 모표피 층 사이에 존재하는 세포층으로 내모근초는 다시 외측으로부터 헨레(henle)층, 헉슬리(huxley)층, 초소피층으로 구분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모발이 완전히 각화 되어 밖으로 나갈 때까지 보호하고 함께 운반하는 역할을 하며 모발이 피부 밖으로 나오게 되면 이들 세포층도 비듬이 되어 소멸된다.피지선(sebaceous gland) 모근부위의 위 부분으로부터 1/3지점에 부착되어 있고 피지선에서 분비되어 형성된 피지 막은 수분증발을 억제시키고 모발에 광택을 제공한다.입모근(arrector pili) 모근부위의 아래 부분으로부터 1/3지점에 부착되어 있고 갑작스런 온도 변화라든지 공포감에 처하게 될 때 이 근육이 수축하면 모공이 닫히게 되어 체온손실을 막아준다.멜라닌 형성세포(melanocytes) 다양한 형태의 모발 색은 멜라닌이라고 하는 색소에 의해서 좌우되는데 이 멜라닌은 멜라노사이트라고 하는 멜라닌 형성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멜라노사이트는 모모세포 층에 주로 분포되어 있고 광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부터 피부와 모발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모근의 구조입모근과 소름현상?, 습윤, 광택이 나며 마찰에 대한 강도가 높다.모피질(cortex)- 모발의 80-90%를 차지하는 부분으로 모발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각화섬유세포가 종으로 연결되어 있고 주변에는 간충물질이 메워져 있어 모발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모피질은 과립상의 멜라닌 색소를 함유하고 물과 쉽게 친화하는 친수성으로 약제의 작용을 쉽게 받기 때문에 permanent wave, hair coloring 등과 가장 관련성이 있는 부분이다. 탄력, 강도, 감촉, 질감, - 색상(melanin 색소 함량에 따라)을 좌우하며 모발의 성질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모수질(medulla)- 모발의 중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멜라닌을 가지고 있으며, 모발에 따라 수질이 없는 것도 있다.- 모수질의 성분, 기능 등은 아직 충분하게 해명되지 않지만 한랭지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모는 모수질이 약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모수질은 다공성으로서 공기를 머금어서 보온의 역할을 한다.- 모가 생존하기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가진 이유중의 하나이다.2). 모발의 생리적 특성1. 성장기머리카락이 살아서 성장하는 시기로써 뿌리도 완성된 상태에서 털을 만들어 낸다.즉, 모유두와 접촉하는 모구의 하반부에서는 모모세포의 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 머리카락이 생성된다.이때, 모모세포의 분열은 어느 다른 세포의 분열보다 활발하다. 만들어진 머리카락은 각, 화대에서 각질화하면서 위로 올라가고, 내모근초와 외모근초는 모발의 성장과 발육을 돕고 보호한다. 이 시기에는 음식물, 호르몬, 비타민 등에 영향을 받는다.이같이 생성되어 성장한 모발은 피부 밖으로 나와서 자라게 되는데 머리털의 경우 성장속도를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한달에 1cm정도 자란다. 즉 피부 속에 있는 뿌리에서 모발이 계속 생성되어 머리가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는 보통 남성은 3~5년, 여성은 4~6년이며 모발의 85%~95%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신체 표면에 드러나 있는 대부분의 머리와 체모는 성장기의 모발 기간이다. 이때 이미 곤모 밑에는 새로운 모발이 형성되고 있다. 수명을 다하고 곤모가 된 휴지기의 모발은 그 밑에서 생성된 새로운 모발에 떠밀려 빠지게 되는 것이다.이시기에는 모발의 고착럭도 약해지고 멜라닌 색소도 줄어든다.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마다 쑥쑥 빠지거나, 드라이를 할 때 빠지는 모발은 실제 모두 휴지기의 모발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와 같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발 교체가 이루어지는 데는 모발의 10~15%가 이 시기에 해당되며 약 3~4개월 정도가 소요된다.만일 휴지기가 이 기간보다 더욱 길어지게 되면, 그것은 비정상이고 모발은 이상탈모, 즉, 휴지기의 탈모라 일컽는다. 이러한 휴지기의 모발은 대체적으로 전체의 약 5~15%정도가 이에 해당된다.4. 발생기배이세포의 세포분열에 의해 모구가 팽창되어 새로운 신생모가 성장하는 기간으로 한 모낭안에 서로 다른 주기의 모발이 공존해 휴지기의 모발탄력을 유도한다. 질병, 유전, 체질, 연영 등에 차이를 보인다.(3). 모발의 화학적 특성굵은모발 = 10% 외피 + 90% 피질 : 신축성 높고 스타일링과 화학적 시술에 잘 반응가는모발 = 40%외피:모발의 변화나 화학적 시술에 저항성이 있습니다.(4). 모발의 물리, 역학적 특성? 1). 모발의 강도와 신장성?? 모발을 잡아당기면 늘어남과 동시에 굵기는 가늘어지고 결국은 끊어진다. 여기에서 모발의 늘어난 비율을 신장률(%), 절단시의 하중을 인장강도(g)라 한다. 인장강도는 몰발의 굵기에 따라 따르기 때문에 절단시의 하중을 단위면적으로 나눈값으 '모발의 강도'라 한다.? 일반적으로 모발의 굵기는 60~95마이크론이지만 머리카락 한 가닥의 강도는 150~160그램이나 된다. 따라서 사람의 머리털을 10만 개로 계산할 때 머리털이 견딜 수 있는 힘의 강도는 무려 15톤에 이른다.(150gX100,000개=15,000,000g=15ton).? 머리카락 한 개를 뽑을 때 들어가는 힘을 고착력이라 하는데 고착력은 약 50g정도 된다. 머리카락 수를 10만 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