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Ⅰ. 포스트모더니즘- 개념 및 특징Ⅱ. 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필요성-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교육형태-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역할 및 관계-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교육과정 및 내용Ⅲ.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한계점Ⅰ. 포스트모더니즘-개념 및 특징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 조류는 ‘포스트’라는 접두사에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 중엽을 휩쓴 서구정신인 리얼리즘이나 제 1차 세계대전 전후에 시작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서구를 풍미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기로서 이른바 ‘탈현대’ 정신 및 현상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새 시대에 낙관적 의미로 사용되다가 건축분야에서 이론적 정립이 되면서 국제적 용어가 되었으며, 사회과학 이론에 적용된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이다.포스트모더니즘은 가변적인 개념으로 정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모더니즘과의 관련성을 통하여 살펴보면, 모더니즘의 절대성, 합리성, 진리성을 비판하고, 해체와 불확정성, 상대성, 다양성, 탈정당성을 표방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사회의 대표적 문화양식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모더니즘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현대에 대한 반동과 연장의 이중성을 지녔기 때문인데, 시간적인 면에서는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 현상을 가리키고, 속성적인 면에서는 모더니즘의 논리적 발전이며 계승인 동시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작용과 의식의 단절로 볼 수 있다.Ⅱ. 포스트모더니즘과 교육-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필요성새로운 정보 양식의 대두, 과학 기술 혁명과 같은 변화들은 삶의 조건을 변화시켜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상황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근대의 구조주의적 특성 아래 분화되었던 각 영역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문화와 소비형태의 변화,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영향력 증대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을 사라지게 했고, 이러사회, 생태계와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중시하는 공동체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안교육이란 모더니즘적 공교육에 대해 반대되는 의미를 가지며, 교사가 학습자 개개인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쓰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 수,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과과정, 성적 지상주의 등의 공교육제도에서 일어나는 교육 현실의 문제를 넘어서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이제까지 공교육 제도 안에서 교육 그 자체는 국가적인 발전에 치중하여 학습시켜왔다. 따라서 여러 가지 공교육의 문제는 불가피했으며, 학교 부재론이나 학교 무용론이 대두되었고, ‘생명이 없는 교실에서의 수업,’ ‘사제 간의 존경과 사랑이 사라진 학교,’ ‘더 이상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하는 교육현실’ 등 다양한 모습으로 현재 공교육의 한계성이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다운 인간이 중심이 되는 교육, 즉 대안교육을 제시한다. 물론 모더니즘적 교육과 달리 한다고 해서 모두 대안학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안교육 안에는 공교육의 결함과 모순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교육학적 대안 방향과 교육문제점을 개혁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Young, 1990). 그리고 대안교육의 교육적 실천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목적의식적인 사회 연대성을 확립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을 띤 대안교육에 대해서 더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식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인데, 예를 들어 대안교육이단지 모더니즘적 교육에 대한 시대적 도전으로서 유행처럼 나타난 교육학적 개념인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2) 생태학적 교육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은 생태계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전환할 수 있는 교육을 말한다. 모더니즘적 생태학 교육은 모든 생태계의 기본질서를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으로 본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생태학 교육은 경쟁이 아닌 공존, 즉 거시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중심적인 생태계를 떠나 새로운 상생(相生)의 패러다임으로 전환 되는 교육을 말한다.3) 자율 중시 교육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은 기계적인 틀에 박힌 형식주의에 벗어나 학생들을 위한 학습의 공간을 제공하는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모더니즘적 교육은 철저히 지능 위주의 교육 즉, 아동기 시절부터 자신의 주변에 살아 있는 대상으로 유리되어 머리로만 세계를 파악해왔다. 또한 명제된 지식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들어오면서 이성에 대한 강한 반발을 일으킴으로서 객관적인 지식 못지 않게 주관적인 지식도 중시하게 된다. 즉, 주·객관적 지식이 일치 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대사적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소사적인 사건에도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가시적 지식보다 영혼이 깃든 자율중시의 교육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식의 자율중시 교육 방법의 예로 슈타이너식의 교육)을 들 수 있다. 현대의 공교육은 너무 지적으로 편중에 있어 어린 학습자들의 정서적, 신체적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에 따라 거기에 대안 방안으로 지적인 특별활동을 덧붙이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지식과 학문의 시대에 지적 활동의 물리적 양을 줄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활동의 내용과 지향점을 교육 목표에 근접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자율 중시 교육은 모더니즘적인 이성과 명제된 지식을 해체시키어 또 다르게 재해석된 이성을 말하며, 이에 대해 슈타이너 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4) 평등적 성교육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은 교육학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모더니즘과 많은 차이를 가지고 해석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더니즘적 교육학의 ‘해체(Demonstration)' 혹은 ’재건(Reconstruction)'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재로 간주되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저술들이 무시당해왔고, 직업에 종사하는데 있어서도 성적인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 또한 남·여를 차별화하여 학습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교육에서는 새로운 차원에서 이성,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강조한, 성 담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더니즘교육의 성 모순 앞에서 단순한 ‘해체’가 아닌 ‘극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성 평등에 대한 전환 교육이란 여성의 다원적 상황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하면서, 오늘날의 성의 경험이 더 이상 특별한 성(性)의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종, 계급, 역사적, 특수성, 개인차 등에 의해 매우 다양하게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또한 모더니즘적 여성들의 삶이 아무리 성 억압적인 것이었다 해도 그 과거를 거울삼아서, 성의 역사를 ‘남성들의 역사'가 아닌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교육에서 강조한 성 평등에 대한 교육은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의 상호의존적인 방식의 교육을 의미한 것이라 보겠다.-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역할 및 관계포스트모더니즘은 교사관의 변화를 요청한다. 즉 전통적 ‘교사-학생’ 관계의 타당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며, 교사와 학생의 역할 또한 그 경계가 모호해짐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볼 때 교사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관리자의 성격을 가진 교사는 학습자의 행동을 예언하거나 통제하고 수정하는 방식을 통해서 학습을 촉진시키려고 한다. 또한, 모더니즘적 학생관을 가진 교사는 전체 학습과정을 통제하고 학습자의 행위를 수정하는 것을 교육의 중심활동으로 삼는다. 즉, 교사를 관리자, 평가자, 분석가, 행동수정자 등과 같은 역할로 봄으로써 교사에게 우월적이고 지배적인 지위를 요구하였고, 이것이 교사가 학습자와 상호관련을 맺을 때 주도적 역할을 하려고 했던 이유가 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에서 교사는 학습의 상황을 창조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조력자이며, 정답을 요구하는 수렴적 담론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확산적 담론으로 교실을 구성하는 사람이다. 포스트모던 교사들은 학습자들과 관계를 맺을 때 Bakhtin이 사용한 ‘대화’의 의미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규정하려고 한다. 이런 대화적 상호작용의 목적은 학생을 진단하거나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의 계기 안에서 실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공동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 작용을 통해서 학생은 자신을 둘러 싼 실재를 재해석 할 수 있게 된다(McNamee,1996:149). 그렇게 되면, 포스트모던 교사는 학습과정을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그 일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은 교사에게 교육적 상호작용 속에서 좀 더 다양한 역할들과 상호작용의 방식들에 대해서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 해 준다.-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교육과정 및 내용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은첫째, 객관적 지식의 거대 서사적 해석을 거부하면서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해석을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추구한다.둘째, 인간은 영적, 심미적, 역사적, 윤리적 입장 등의 다차원적 영향 속에서 그 존재가 구성된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심미적, 역사적 등을 교육과정 논의 안에 포함시킨다.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개별주체가 성장해 온 자서전적 역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기존의 교육과정 논의에서 배제된 내리티브 교육과정을 재조명한다. 따라서 교육내용의 기본은 ‘객관적 진리’라는 이름의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경험세계가 되며,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넷째, 학교 안에서의 교육적 경험과 학교 밖에서의 다양한 개별적 경험들의 연관성을 추구하여 학교와 학교 밖의 인위적 경계를 허물고 지식, 학습경험,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의 삶이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교육경험의 제공을 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면에서 추구한다.다섯째, 교육과정을 국가수준에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
지하국대적퇴치 설화Ⅰ. 서론Ⅱ. 본론ⅰ.줄거리ⅱ.유형과 의미ⅲ.연관된 고전소설 작품Ⅲ. 결론Ⅰ. 서론“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필 시절에 ...”로 시작하는 구수한 우리의 옛이야기. 말이 안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어처구니없지만 더 빠져드는 설화. 그 중에서도 좀 더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좀 더 서민적인 민담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들어봄 직한 이야기로써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자아와 세계의 치열한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허무맹랑하지만 늘 어떻게든 자아가 승리하는 해피엔딩이 보장되어 있는 민담은 우리로 하여금 힘든 현실을 잊게 하고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민담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살이 더 붙기도 떨어지기도 하며 또 다른 민담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담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인 지하국대적퇴치 설화를 통해 민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ⅰ. 줄거리‘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한 장수가 지하국에 살고 있는 괴물에게 납치되어 간 공주를 구하고 그녀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의 민간설화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자면 지하에 살고 있는 괴물이 세 명의 공주를 납치해갔다. 왕궁에서는 공주들을 구하기 위해 장수들을 모집했다. 이에 한 장수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공주들을 구출 해 오겠다고 나섰다. 공주를 구하러 간 장수는 산신의 도움을 받아 지하국을 찾아내공주를 구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수는 욕심이 생긴 부하들에게 배반당하여 혼자 지하국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또다시 산신의 도움으로 지하국을 탈출할 수 있었던 장수는 자신을 배반하고 공주들과 함께 떠났던 신하들을 응징하고 공주들 중 한명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ⅱ. 유형과 의미지하대적퇴치 설화는 이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많음에 따라 변이 형태도 다양한대 이것은 결말에 의해 구분할 수 있다.1. 임신 출산형임신 출산형의 이야기는 대적을 퇴치하고 공주를 구출하여 돌아오자 공주에게 태기가있어 최고운을 낳았다는 결말이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소개될 때 신비한 출생을 위해 차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부녀를 납치하는 내용을 차용하여 최치원의탄생을 이야기한 것이다.2. 결혼 ? 해후형민담은 대부분 낙관적인 결말을 요구하나 배반모티브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또 다른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배반 모티브가 없는 경우배반 모티브가 없는 경우 공주가 대적에게 납치되자 장수가 대적과 싸워 공주를 찾아돌아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랍된 여인은 대부분 기혼자가 많고 피랍된 여인을 찾으러 가는 장수의 역할은 대부분이 남편이 하게 된다. 배반모티브가 없는 경우이기 때문에 남편과 대적과의 갈등만이 존재하게 된다.-배반 모티브가 있는 경우종자 배반형종자 배반형은 장수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지하국으로 들어갔을 때, 동행했던 종자들에게 배반당하여 굴 속에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동했했던 자들은 공주를찾기 위해 공주의 부모가 내준 수행자들이거나 결의형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또한 여인을 가로채기 위한 욕망을 감추지 못했고, 그 결과 죽음을 맞게 된다.아내 배반형아내 배반형은 배반 모티브의 배반 주동자가 납치된 유부녀로서 갈등이 한층 심화되면서 상당히 말로가 비극적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부녀자들의 배반은 이전의 부부 관계에 대한 배반이다. 예전의 결혼 관계를 파기하고 새로운 관게를 형성한 것이다. 부녀자들의 대적의 옆에 있음으로써 대적과 정을 통하게 되고 자신을 찾으러 온 남편을 가두게 된다. 이러한 싸움은 변질된 관계 후에 있을 청산을 예고하게 되고 결국 부녀자는 죽음을 맞게 된다.- 교육적 의미상상력의 확대 및 미화상상력은 민담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보상적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준 다. 더군다나 민담은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이야기들이 많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도한다.이 이야기에서는 산신령이 일러준 대로 바위 밑에 흰 조개 껍질이 있어 들어내니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길이 점점 넓어지면서 지하에 별천지의 딴 세상이 나타난 모습 ,피랍녀가 탐색 주체에게 산삼물 먹으라고 해서 도둑과 대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과정,산신령이 준 말을 타고 일순간에 공중으로 나오는 모습 등등 상상력을 자극지키고 미화시키기에 좋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위기 극복 노력과 과업의 성취상상력과 더불어 대표적인 민담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만큼 우리의 민담은 거의 대부분 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담의 주인공 들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주저앉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하며 용맹하다. 또한 이러한 상 황 대처 뒤에 얻는 행복한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포상금의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 민담 속에서 이러한 특징이 보여지는 부분을 찾는다면 모든 나쁜 일은 겪은 후에 공주와 혼인을 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반성이 민담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장수와 함께 갔던 조력자가 한 순간의 욕심에 못 이겨서 배신을 했던 것과 또 하나는 납치되었던 여 인이 구출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남편을 가두려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배신은 첫 번째 배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배신이었는데 이로 인해 결국 여자는 죽임을당하게 된다. 이를 통해 결국, 착한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사람을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ⅲ.연관된 고전소설 작품1.아내를 훔쳐간 산돼지 퇴치어떤 부부가 달아나는 토끼를 잡으려다고 쫓아갔는데, 갑자기 산돼지가 나타나서 부인 을 업어갔다.남편은 아내를 찾아 산 속을 헤매다가 깊은 굴 속 나라에 있는 산돼지의 소굴을 알아냈 다.집으로 가서 칼을 가져온 그는 다시 그 굴 속으로 들어가 아내를 만났다. 얼마 후, 산돼 지가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산돼지에게 아주 상냥하게 대하며 술을 많이 먹여 잠이 들게 하고, 남편을 도와 산돼지를 죽였다. 그리고 갇혀 있는 많은 여자들을 구하고, 그 안에 있던 재물들을 가지고 나와서 잘 살았다.2 .땅 속에 사는 도둑 퇴치옛날에 훌륭한 아들을 둔 서울의 어느 높은 사람이 사방으로 며느릿감을 찾던 끝에 시 골 색시를 며느리로 맞이했다.그런데 마적단이 그 색시의 친정집에 와서, 딸을 한번 보여주면 많은 재산을 준다고 하 였다. 재산이 탐이 난 그 색시의 친정 부모가, 병이 위급하다고 속여 서울에 있는 딸을 데려오자 도적들은 색시를 아주 빼앗아가고 말았다.딸을 빼앗긴 부모는 거짓 장사를 지내고는 딸이 죽었다고 했으나, 신랑은 속지 않았다. 그리고는 배를 만들고 장정을 뽑아 색시를 찾을 떠났다.
의 작품의 구조 비교Ⅰ. 머리말Ⅱ. 본말1. 조신몽2. 원생몽유록3. 구운몽Ⅲ. 꼬리말Ⅰ. 머리말꿈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인 몽유 양식에는 몽유록과 몽자류 소설이 있다. 몽유록은 주로 사대부들이 자신의 심회나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토로하고 이상 세계를 설정하여 지향 의식을 묘사하는 허구적인 이야기 양식이다. 몽유 사실을 실제 체험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꿈에 의탁하여 사건을 서술한 것일 뿐인 것이다. 이 그 대표적이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몽자류 소설은 제목에 ‘몽’ 자를 달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생의 한 단면을 그리지 않고 완전한 소설의 서사적 세계를 갖추고 있으며, 각몽 이후에 입몽 이전과는 다른 인생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몽유록과 차이가 있다. 김만중의 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렇게 볼 때 은 몽자류 소설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부터 이 세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말1. 조신몽ㄱ. 줄거리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의 장원이 명주 날리군에 있었는데, 본사에서 중 조신을 보내서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공의 딸을 좋아하고 아주 반했다. 여러 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 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꿈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 게 되어 마음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갔었습니다. 지금 내외가 되기를 원해서 온 것입니다. "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여 그녀와 함게 고향으로 돌아갔다.그녀와 40여년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식마저도 계속해 갈 일어나지도 못하니, 10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한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50년 동안에 정은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쇠약한 병이 해마다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욱 닥쳐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이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와 난초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서 더 누(累)가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 함께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행하고 그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니 여인이 말한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는데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히 세상 일에土寺)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ㄴ. 작품구조조신몽은 현실-꿈-현실이라는 전형적인 환몽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꿈’부분이 내화이고, ‘현실’부분이 외화로써 입몽과 각몽의 구조를 띄고 있다 볼 수 있겠다. 입몽 전 조신은 승려의 신분으로써 태수의 딸을 사랑하고, 그녀와 인연을 맺기를 관음보살께 기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관음보살을 원망하며 잠이 든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강한 욕망과 좌절이 입몽의 계기가 된 것이다. 입몽 후 김씨녀가 찾아와 부부의 연을 맺자 하고, 그들은 부부가 되어 다섯 자녀를 둔다. 하지만, 행복할 것 같은 결혼 생활은 궁핍으로 인해 자녀마저 잃게 되고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생활고에 지친 김씨녀가 헤어짐을 요구하자 조신은 오히려 기뻐한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각몽한다. 조신의 세속적 욕망으로 입몽하게 되고 그 욕망이 꿈 속에서 성취되었으나 냉혹한 몽중의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구조인 것이다. 꿈에서 깬 조신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와 같이 현실에서의 어떤 집요한 생각 때문에 꿈속에서 이와 연관된 사건을 체험하고 꿈을 깬 뒤 참된 이치를 깨닫게 디는 구조를 가진 설화를 ‘환몽 설화’라고 한다.ㄷ. 이해와 감상이 작품은 삼국유사에서 출전되었으며 주인공이 사모하던 여인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욕망을 성취하지만, 이후 생활고를 겪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생의 욕망이나 그 성취는 한갓 순간의 꿈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이 겪는 고통의 근원은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집착이란 불교적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있다.또한, 이 설화는 조신이 깨달음을 얻고 ‘정토사’를 세웠다고 한 점에서 사원 연기 설화에 해당하며, 돌미륵, 사원 등의 실제적인 증거물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전설적인 성격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2. 원생몽유록ㄱ. 줄거리주인공 원자허는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선비이다. 가을 밤에 달빛을 이용하여 독서를 하다가, 밤이 깊고 정신이 어지러워 책상에 기대어 잠단종과 사육신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먼저 복건을 쓴 사람이 중국 고대의 성왕인 요순우탕이 선위를 통해 왕이 된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단종은 그를 타이르며 네 성왕은 죄가 없고 다만 그들의 양위를 빙자한 자기 도적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단종과 사육신 중에서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이 차례로 울분을 담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하여 품은 원한을 비분강개(悲憤慷慨)조의 시를 읊는다. 다음엔 복건 쓴 사람과 원자허가 애절한 심회를 시로 읊었다. 끝으로 뒤늦게 참석한 무신 유응부가 강개한 심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갑자기 벼락치는 소리가 나서 원자허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 이야기를 들은 해월이 현명한 단종과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화를 당한 것에 대하여 하늘을 원망한다.ㄴ. 작품구조원생몽유록은 원생이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는 이야기로써 원생이 꿈 속을 유랑한 이야기이다. 원생몽유록은 현실-꿈-현실의 구조로 입몽 전 ‘현실’에서는 강개지사로 살아가고, 입몽 후 ‘꿈’에서는 비분을 토출하지만, 각몽 후 ‘현실’에서는 갈등의 미해결로 남는다는 구조를 띄고 있다. 우선, 입몽 전 몽유자 원자허는 도량이 넓었으나 운이 닿지 않아 과거에 여러번 실패하여 가난하게 사는 선비였다. 하지만, 나라의 흥망에 대한 식견과 의지가 분명하였고, 좌절된 역사에 대한 비애감을 느낀다. 이러한 원자허의 성격과 ‘꿈’의 성격이 맞아 떨어졌는지, 8월의 어느 날 책을 보다 잠시 졸던 원자허는 몽중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단종과 다섯 신하를 보게 되고 그들의 토론을 듣게 된다. 즉, 원자허는 그 토론의 참관자로써 참여하는 것이다. 그들의 토론이 이어지던 중 유응부의 칼춤이 벌어지고,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꿈에서 깬다. 각몽 후 원자허의 벗인 해월거사의 논평으로 마무리 되는데, 이때 원자허의 갈등이 몽중세계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했음을 유의해야한다. 현실과 이념의 모순을 인식하기만 했지 그에 따른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원생몽유록은 단종과 사육신의 억울함을 드러내며 은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이에 참석한다. 육관대사는 제자인 성진을 용왕에게 사례하러 보낸다. 이때 형산의 선녀인 위부인도 팔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 모처럼의 법회에 참석하지 못함을 사과한다. 용왕의 후대(厚待)로 술에 취하여 돌아오던 성진은 마침 돌아가던 팔선녀와 석교에서 마주치자 잠시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희롱을 꾀한다. 선방에 돌아온 성진은 팔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불문(佛門)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대신 유가(儒家)의 입신양명을 꿈꾸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팔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성진은 회남 수주현에 사는 양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팔 선녀는 각기 진채봉, 계섬월, 적경홍, 정경패, 가춘운, 이소화, 심요연, 백능파로 태어난다. 양처사는 곧 신선이 되려고 집을 떠나고, 아버지 없이 자란 양소유는 15세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던 중, 화음현에 이르러 진어사의 딸 진채봉을 만나 서로 마음이 맞아 자기들끼리 혼약한다. 그때 구사량이 난을 일으켜 양소유는 남전산으로 피난하였는데, 그곳에서 도사를 만나 음률을 배운다. 한편 진채봉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원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간다. 이듬해 다시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던 양소유는 낙양 천진교의 시회(詩會)에 참석하였다가 기생 계섬월과 인연을 맺는다. 서울에 당도한 양소유는 어머니의 친척인 두련사의 주선하에 거문고를 탄다는 구실로 여관(女冠)으로 가장하여 정숙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정사도의 딸 정경패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과거에 급제한 양소유는 정사도의 사위로 정해지는데, 정경패는 양소유가 자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준 모욕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시비 가춘운으로 하여금 선녀처럼 꾸며 양소유를 유혹하게 하여 결국 두 사람은 인연을 맺는다.이때 하북의 세 왕이 역모하여 양소유가 절도사로 나가 이들을 다스리고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을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는데, 이튿날 다시 보니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었다. 두 여자와 후일을 기약하고 상경한 양소유는 예옥된다.
‘헤르만헤세의 안개’와 ‘김승옥의 안개’Ⅰ. 머리말Ⅱ. 본말1. 헤르만 헤세와 그의 작품2. 헤르만 헤세의 안개3. 김승옥과 그의 작품4. 김승옥의 안개Ⅲ. 꼬리말Ⅰ. 머리말‘새벽녘, 뿌옇다, 신비롭다, 차갑다..’ ‘안개’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연상되는 말들. 누구나 한번쯤은 다 보았고, 그 분위기에 취해보았을 안개. 나에게는 그저 몽롱하고 신비로운 안개이지만 안개에 관련된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몽롱하고 신비로운 안개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게는 어떠한 단어, 크게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도 같은 소재로 다양한 뜻과 효과를 낼 수 있는데 문학을 감상하는 다양한 관점 중에서 작가의 삶이나 성격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는 표현론적 관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시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말1. 헤르만 헤세와 그의 작품‘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낭만주의, 음악성, 종교적 성격이라 할 만큼 헤세의 문학에서 이 세 단어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헤세의 전기를 쓴 후 고 발 Hugo Ball은 헤세를 가리켜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라고 말했으며, 또한 치올코브스키 역시 헤세가 문학사적으로 볼 때 신낭만주의에 속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그는 낭만주의 작가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헤세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작가였다. 헤세 자신도 스스로, 시대를 초월한 낭만주의 계열의 작가에 속한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노발리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은 헤세는 그의 초기 시에서 자연물을 주소재로 하거나 죽음, 밤, 어린시절 등 동경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성격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한 그의 초기 시는 동경의 문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동경’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어떤 예술보다도 낭만주의 정신에 부합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낭만주의와 뗄 레야 뗄 수 없었던 음악은 독일 문학에서 수많은 서정시들과 뛰어난 낭만주의 독일 가곡을 탄생시킨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헤세의 문학에서도 풍부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음악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바로 이 서정적 음악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음악성이 깊게 흐르는 헤세문학의 성격 덕분에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시에 곡을 붙였고, 그를 우리 시대의 훌륭한 가곡시인 Liederdichter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음악성은 비단 그의 시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나타난다는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헤세에게 낭만주의가 긍정적인 관계 속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기 시작할 무렵 그는 예술종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문학은 유미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그가 1899년경에 쓴 “예술에 부쳐”라는 시의 첫머리 부분에서 헤세는 “그토록 혹독하게 길었던 여러 해 동안 내가 믿었던, 그대 숭고한 예술이여”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헤세가 여러 해 동안 종교적인 차원에서 예술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인 성격이 훗날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바탕으로 둔 종교적 태도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는 그가 ‘자연 속에서 신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강한 종교적 열망을 지니고 있다’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2.헤르만 헤세의 안개기이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숲도 돌도 모두가 외로움에 잠기고나무들은 서로를 보지 못해모두가 다 홀로이다.내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이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 찼건만이제 안개가 내리니아무도 보이질 않는다.피할 수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조용히사람을 고립시키는 어둠을알지 못하는 자는참으로 현명하지 못하다.기이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인생이란 고독한 것,사람들은 서로를 모르고모두가 다 홀로이다. (안개 속에서)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생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해 해석해 보자면 작가는 지금 ‘안개’라는 단어로 압축된 현실 속의 고비와 역경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음에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또한 ‘내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 찼으나 이제 안개가 내리니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는 부분에서 내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 작가가 어린 시절, 안개가 내렸을 때는 나이가 들어 하나둘 각자의 삶을 찾아가고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시점을 말하는 듯하다. 만약 이 관점에서 시를 보자면 자신의 삶에 바빠 친구들과 함께 노닐고 즐기던 어린 시절이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문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낭만주의적 성격과 부합한다. 이렇게 봤을 때 이 시에서 ‘안개’는 흘러가는 시간, 어린 시절을 동경할 수밖에 없게 만든 깜깜하고 부정적인 현실을 의미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내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는 작가가 성공을 했을 때, 안개가 내렸을 때는 실패를 했을 때라고 본다면 이 시에서 ‘안개’는 내가 가졌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을 빼앗아간 끔찍한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3. 김승옥과 그의 작품1962년 단편 ‘생명역습’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된 김승옥은 감각적인 문체와 정확한 언어사용으로 ‘60년대 대표작가’라 불리 울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들은 첫째로 4.19 체험으로 인해 생겨난 자유에 대한 그리움이 ‘환상’과 ‘자유에 대한 깊은 철학적 추구’를 낳아 ‘현실과의 교섭을 통한 창조적인 자기 갱신이 불가능’하여 끝내 현실에 타협하고 마는 주인공을 그려내거나 황폐한 삶에 대한 처절한 리얼리즘과 그것을 표현하는 서정적인 언어의 상징주의를 융합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도시화의 초기 징후에 대한 인상주의적 포착과 함께 인간의 내면도 사상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제적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비평 등이 있다.4. 김승옥의 안개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기행 중)무진엔 명산물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무진의 명산물을 바로 안개라 생각하고 있다. 즉, 주인공에게 무진이란 안개로 뒤덮인 몽환적인 이미지의 장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반수면 상태에 빠지는 ‘나’, 수면제에 대한 엉뚱한 공상, 무진에 가면 항상 엉뚱한 공상에 빠진다는 ‘나’의 이야기들은 이러한 몽환적인 이미지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무진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고향의 느낌인 정겹고 포근하다는 것 보다 나른하고 나태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인지 무진은 생산보다는 소비가 주를 이루며 누구나 다 탈출하고자 하는, 삶의 활력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무기력하고 침체적인 분위기를 띤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리고 '나'의 떨칠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주의로 점철된 과거가 묻혀 있는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장의 명산물인 '안개'는 화자가 젊은 날에 겪었던 고독과 우울 등의 혼돈을 나타내는 동시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에서 오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 속에서 인식하게 되는 존재론적 허무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안개는 서울과 무진의 경계를 표현하며 이 경계는 현실과의 단절을 뜻한다. 세속적 가치에 얽매여있는 현실과의 단절은 안개라는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추억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개로 둘러싸인 무진이란 공간은 이상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아내의 도움으로 승진을 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아내의 배려로 무진으로 오게 된다. 그런 현실에서 그가 무진에 들어서는 순간 안개의 짙은 형상물은 주인공을 바깥 세계와 차단시키고 주인공은 그 곳에서 이상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내의 전보가 도착하게 되고 그는 하선생의 편지를 찢어버린다. 이 부분에서 결국 무진도 안개도 모두 추억이 되고 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안개는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되는데 답답한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해왔을 때는 바깥세계와의 차단을 통해 안정의 공간을 제공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공간에 있던지 안개는 주인공의 깜깜한 내면을 형상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무진을 빠져나오면서 본 안개는 앞의 안정적 공간과는 반대로 이상세계를 볼 수 없는 차단물이 되어 주인공의 마음을 깜깜하게 한다. 이렇게 안개는 이 소설에서 이중적 역할을 하며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