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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지리적 구분
    Ⅰ. 서 론지리적 구분의 필요성역사를 보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우선 공간적(지리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전개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역사를 4천년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만주지방이었다. 그러면서 최근 1천년간 한국인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과 지정학적 특성을 최대로 활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 및 문화전통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이처럼 역사적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유용하다. 자기가 연구하는 공간의 역사적 특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여타 지역 공간의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매우 필요하다.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한반도라고 하며, 이러한 지형적(지리적)특성 때문에 대륙의 문화와 해양의 문화가 결합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위치, 강대국(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기 때문에 독자적이고 능동적일 수 없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한강이라는 지리적 특징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백제를 중심으로 지리적 해석을 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백제의 지리적 특징백제는 지리적으로 서북과 동북 방면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집단이 거치게 되는 위치였다. 그리고 백제가 처음 차지한 한강유역은 백제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 정착한 유이민 집단들을 통합하고 인근 마한의 여러 읍락들을 병탄하면서 집권력 있는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동북과 서북 방면에서 침공해 오는 세력들을 저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백제의 초기 기록에는 동예나 낙랑군과의 분쟁에 대한 것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백제는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성장, 발전, 쇠퇴하였다. 그리고 백제는 삼국 중에 제일 먼저 전성기가 되었다.밑의 그림1-1은 백제의 전성기 사진이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왕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자료가 별로 없어 백제의 영토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남쪽으로는 마한의 잔여세력을 복속시켜 전라도 지역을 모두 확보했고,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가야에도 손을 뻗쳐 백제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남쪽을 평정한 뒤에는 북쪽으로의 진출을 도모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고구려와 부딪치게 되었다.두 나라의 군사적 충돌은 근초고왕 24년(369)에 치양(황해도 배천)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고구려를 다스리고 있던 고국원왕이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와 백제군과 격전을 벌였다. 당시 백제군을 이끌었던 근초고왕의 아들 근수구 태자는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5천 여 명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371년, 고국원왕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패하(예성강)에서 크게 패해 고구려로 돌아갔다.[그림 1-1]같은 해 겨울, 근초고왕은 태자와 함께 정예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평양성에 쳐들어갔고, 이 전쟁에서 고국원왕은 백제군의 화살을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써 백제는 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과 강원도·황해도 일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근초고왕은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에도 각별히 신경 썼던 왕이었다.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와의 동맹 관계를 강화했고, 중국의 동진(東晋)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동진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백제는 대륙의 선진 문물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발전으로 이어졌다.한강 유역에 터전을 잡은 백제는 유리한 지정학적 조건을 활용하여 국내외 상업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대(漢代)이래 중국 황해 연안에서 한반도의 서남해안으로, 다시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해상교통로는 고대의 중요한 상업로였다. 한강이 흘러들어가는 서해에서 연안항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황해도, 평안남·북도, 요동·요서 지역, 중국 대륙으로 이어지는 항로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일대와 전라도 지역을 거쳐 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항로가 있었다. 낙랑군과 대방군이 멸망하면서 이 전통적인 해상교통로와 상업로는 백제가 계승하게 되었고, 근초고왕 때에는 강력해진 힘을 바탕으로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했다.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백제는 일찍부터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고, 이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특히 백제에는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의 《수서》 동이전에는 “백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 출신이 잡다하여 신라, 고려, 왜 출신 뿐 아니라 중국 사람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의 주민 구성이 상당히 복잡했음을 알려주고 있다.근초고왕이 재위하던 시절에는 백제 건국을 주도한 부여계통을 이주민들과 고구려에서 남하한 사람들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4세기 초,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낙랑과 대방의 유민들이 백제로 귀화하기 시작하면서 중국계통의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북진을 거듭하고 동진으로부터 ‘진동장군 영낙랑태수’라는 작호를 받자 흩어져 있던 유민들이 대거 백제로 흘러 들어왔다.또한 왜와의 교류가 시작된 이후에는 두 나라 사이에 인적 교류가 활발했는데, 이때 백제로 건너와 정착했던 왜인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경우 대중국 외교를 담당하는 인물 중 상당수가 중국계였는데, 대일본 외교 역시 이와 비슷하게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6세기 중반 이후에는 백제의 위계를 가진 왜인 10여 명이 외교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어 근초고왕 때에도 왜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활동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문/어학| 2012.09.11| 4페이지| 1,500원| 조회(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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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화사 서평
    1. 문화사란문화사는 역사학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먼저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가 생활해 온 시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나열한 것이다. 여기서 경제학, 인류학, 예술학 같은 개별적인 목적을 갖는 학문과 차별성을 가진다. 이런 개별적인 목적을 갖는 학문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다.문화사는 역사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써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전체적으로 포괄한다. 단지 역사나 예술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정치·경제적인 면을 비롯하여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전체적인 화합체이다. 인류가 생활하며 남긴 흔적의 특수성이나 보편성을 다뤄 인류문명 특유의 생활방식을 인정하기도 한다.즉, 문화사란 인간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여러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2. 책 제목, 목차, 저자, 사진, 글씨크기 등에 대한 생각이 책의 제목은 중국문화사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국 문화를 서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문화가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발전했으며, 시대 상황에 따른 손익을 어느 정도 따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목차는 고대·중고·근세 총 3부로 구성 되어 폭 넓은 시간을 다루고 있다.중국문명 발전의 초반부터 시작해서 왕조와 지식인의 문화, 신앙과 민간 생활 등등 중국 역사 5천년이라는 넓은 분야를 이야기한다.저자 두정승은 대만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만 중앙 연구원 원사로 재직 중이다. 정치 및 사회 분야에 대한 연구에 중점적이다. 머리글에서 밝히 듯 중국 문화를 다양하고 넓게 바라보려 노력하였다.중국 문화사와 관련된 책은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은 친구 덕분에「한권으로 읽는 중국」 이란 책을 얻었다. 이 책을 봤을 때 중·고등학교 때 수업 받던 국사 교과서가 생각났다. 사진자료와 그림 자료, 인물과 관련된 일화까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450p정도의 두꺼운 책이었지만 부담 없이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중앙에는 책의 내용이 적혀있고 내용 가장자리에는 중요한 사진부터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 자료까지 들어서 있었다.중국 문화에 대한 내용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지만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꾸준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책 구성에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설명이 쓰여 있어도 실제 사진자료가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는데 「중국문화사」에는 사진자료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되 아쉬웠다.이 책의 구성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또 있다면 이 책은 367p까지 있는 두꺼운 책이다. 큰 주제, 작은 주제에 따른 이야기들로 빼곡히 들어 차 있다. 이 구성이 자칫 읽는 이를 지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 문화의 흐름을 일깨워 주려는 책 인 것은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전력질주를 하는 느낌이다. 중국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일화들이 있을 것이다. 관련된 일화들을 중간 중간 문단 첫 머리쯤에 넣어 쉬어가며 관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했다. 일화가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무언가 아쉬울 정도로 짤막한 내용이다.3. 책의 내용 비판, 평가, 비교제 1부에서는 신석기 혁명을 통해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갔다.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삶을 영위했다면 자연 상태를 가공하여 영위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2절의 주제가 신석기 혁명과 원시 촌락인데 이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추가 되었으면 한다. 직접적으로 이용하던 도구의 사진이나 생활 모습 등이 첨부되었으면 더욱 빠른 이해를 도왔을 것이다.제 2부에서는 서양의 중세시대와 비교하여 중국의 중고시대 문화의 발전을 말하고 있다. 중고시기의 전환에 있어 상당 부분은 외래적인 요소의 힘이었다는 것이 특징이다.제 3부에서는 근세시대에서는 중고시대와는 달리 현대와 많이 밀접해졌다. 그리고 경제력을 발전으로 서민문화의 발전이 두드러진 시기를 주로 다뤘다.제 4부에서는 중국이 대변화를 겪은 근현대이다. 저자는 이 시기를 선진시대와 위진 시대 이후 중국 역사상 세 번째 맞이하는 사상의 해방기라고 특징지었다. 서구에 의해 중국이 세계의 가운데에서 먼 동쪽이 되었고 중국 문화가 천한 야만으로 추락했던 시기이다. 중국인은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이지만 이를 계기로 새로운 문화를 모색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4. 추천 여부와 이유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몇가지를 들겠다.
    독후감/창작| 2012.09.11| 2페이지| 1,5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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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92 콜럼버스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에 대해 배운적이 있다."발견한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여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인디언이라 불렀으며...." 이정도는 콜럼버스 하면 거의 ‘공식’같은 수준으로 읊곤 했다. 내 기억속에서 그저 모험정신 강한 항해가였던 콜럼버스에 대해 이번 과제를 계기로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1492 콜럼버스’라는 영화를 선택해서 과제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인터넷으로 영화를 찾아보며 이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았다. 자주 접하는 영화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없이 본다면 분명 두세번 돌려보며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아주 유명한 영화이며 콜럼버스의 항해에 대해 의미해석의 논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으로 제작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인의 시각에서 콜럼버스를 위대하게 그려내 그를 영웅화 시켰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콜럼버스와 역사 속의 콜럼버스를 구분해 내야 한다. 이처럼 콜럼버스를 미화해서 영웅적인 모습으로 만들려 했다는 비판적 입장을 불러일으켰고 반대로 그의 진보적인 면과 침착하며 흔들림없는 개척정신을 칭찬하는 긍정적 입장을 존재토록 하였다.나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향료와 금이 풍부한 그 대륙을 발견해 자신의 국가를 더 발전된 국가로 발전시키려는 국가에 충성하는 진보적인 항해가로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면도 돌아보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영화를 보았다.시대적 배경과제의 주제는 ‘15세기, 16세기 식민지 정책과 강대국의 논리’에 대해 쓰는 것이다. 이 영화를 당시 배경지식을 모르고 본다면 당최 어떤 것이 식민지이며 어느나라가 강대국인지 모를 것이다.먼저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무역은 행해지고 있었다. 동양과의 무역의 교역로는 오직 지중해 하나였다. 이탈리아는 베니스를 중심으로 동양과의 무역에서 독점적으로 우세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국가들은 동양과의 무역에 불리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를 거치지 않는 교역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이슬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스페인은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대항해시대의 해외팽창 선두국가로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들 수 있다.콜럼버스는 아시아로 가는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이민 온 이탈리아 인이다. 그는 왜 아시아로 향하길 원했을까? 당시 아시아는 향료와 황금이 넘치는 곳인 보물섬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당시 스페인보다는 아시아 국가들이 좀 더 발전된 국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쪽의 ‘부의 고장’과 무역을 하여 스페인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그는 원했다.영화 속 콜럼버스‘역사’ 속의 콜럼버스가 아닌 ‘영화’ 속의 콜럼버스 이다. 영화를 보던 중 내가 조사한 콜럼버스가 다르게 표현된 부분도 있고, 이해 안될 부분도 이해하여 그를 정당화 시키는 장면도 있다. 이런 장면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몇가지 장면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첫번째, 영화 속 강대국인 스페인은 평등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사회였다. 화형으로 마녀사냥을 시행하며 기독교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장면을 보면 알수 있다.이런 시대에 아무도 건넌적이 없는 길을 건너겠다는 콜럼버스는 환영받지 못했다. 귀족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귀족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만하는 우물안 개구리같은 사람들이고 콜럼버스는 진보적이고 도전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왜 귀족들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반기지 않았을까? 그가 성공한다면 스페인은 새로운 영토를 얻으며 무역이 가능해져 더욱 발전될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말이다. 콜럼버스가 항해에 성공해서 얻을 명예에 대해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했던 것일까? 혹은 그가 실패해서 스페인이 웃음거리가 될까봐 였을까 ... 콜럼버스는 자신의 항해를 정당화 시키기위해 항해 일정을 단축시켜 모두에게 거짓말시켰다. 그리고 항해에서 중요한 관직에는 자신의 형제를 앉혔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도 그가 인간적이라고 느껴야 할까두 번째, 콜럼버스는 난관을 헤치고 결국 신대륙을 발견한다.여기서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원래 있던 땅을 발견한건데 그것이 왜 신대륙 발견이라며 좋아한 것일까. 그 땅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엄연한 공동체였는데 그 땅을 발견하기 전부터 식민지하려는 것을 장담이라도 하는 듯, 발견과 동시에 마치 자기네 땅이라고 여기듯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다.여기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은 원주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것같다.세 번째, 콜럼버스의 식민지화 방법의 변화이다.그는 원주민과의 교류에서 처음부터 어려움없이 친해질수 있게 되었다. 낯선 이들이 자신의 땅을 갑자기 찾아와 처음보는 건물을 짓고, 금을 캐오라고 하고 노동을 시키는데 순순히 따라주는 장면에서 콜럼버스의 긍정적인 식민지화 방법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반대파인 ‘목시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식민지라 하면 아무래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 목시카가 그런 인물을 대표하는 듯 했다. 섬에 남겨졌던 스페인 인들이 원주민에게 살해당하자 목시카가 복수하자며 반대파를 형성하자 콜럼버스는 민주적으로 신세계를 건설해가자고 한다. 콜럼버스의 식민지화 방법을 지적하며 자신의 방법을 옳다 주장하며 콜럼버스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콜럼버스는 귀족도 노동을 시키며 차별을 없이 하려했지만 목시카는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말로 안되면 무력으로 해결하는 인물이었다. 콜럼버스에 대한 목시카의 반란으로 피를 보게된 원주민들이 분노하여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이성적이었던 콜럼버스도 결국 원주민들을 죽여가게 된다. 결국 그의 신세계 건설은 모두 무너져버리고 만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콜럼버스의 식민지화 방법이 무리였음을 보여준다.네 번째, 영화에서 원주민의 입장은 강력히 표현되지 않았다.원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콜럼버스의 방식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원주민들에겐 이미 자연의 신이 있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화려한 건물 없이도 잘 살고 있었고 발전은 없었겠지만 무역 없이도 무리없는 생활을 하였다.콜럼버스는 이기적이었다. 그는 원주민과 소통을 원했지만 그가 직접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세계 건설을 위한 조건 제시는 항상 콜럼버스가 먼저 하였다. 원주민들의 기존의 생활 방식은 유지시켜 주지 않으며 그는 스페인의 것들을 가져와 옮겨놨다. 이것이 그가 말한 식민지화 방법인가 싶다.역사 속 콜럼버스이 영화를 볼 때에는 역사 속 콜럼버스와 영화 속 콜럼버스를 구분해 내야 한다.영화로써 미화되거나 왜곡된 부분까지도 역사라고 믿어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역사와 다르게 연출된 콜럼버스의 장면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첫 번째, 신세계를 건설할 때 콜럼버스는 원주민을 인격으로 존중해주며 그들과 대화로 타협하며 평등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의 반대적인 인물로 목시카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시 콜럼버스의 살육으로 원주민들의 인구 반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 그의 항해일지에서 50명만 있으면 원주민들을 모두 정복할수 있다고 쓰여져 있다고 한다. 그가 ‘정복’하자고 신대륙 항해를 떠난것인가. 역사 속에서 그는 정복자이자 살인자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원주민을 죽이게되는 어쩔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그가 원주민을 죽인 것을 나쁘게 보이지 않게 하였다.그의 식민지화 방법은 목시카와 다를것이 없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는 타협적이며 이성적인 개척자로 연출되었다.두 번째, 영화의 시작인 첫 장면은 콜럼버스가 아들에게 지구가 둥글다고 이야기해주는 장면이다.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는걸 처음으로 증명했다고는 볼수 없지만 당시 중세시대에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에 대해서는 거의 반론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전조사가 없이 봤다면 마치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콜럼버스 항해의 의의그의 항해는 신대륙 발견에 실패했지만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입장들이 많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먼저 긍정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독후감/창작| 2011.06.03| 5페이지| 1,500원| 조회(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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