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창작과 비평사우리의 ‘삶’은 문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밑거름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문학도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변형하여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권정생의 는 작가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시대의 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제목 그대로 6.25 전쟁 속에서 살아가야했던 그 시대 수많은 언니들 중 하나인 `몽실`의 삶을 담아낸 소실이다. 이 책의 작가 권정생은 작품 속 몽실언니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46년 우리나라로 돌아와 가족을 잃고 부산에서 재봉틀 가게 일을 하다, 19살이 되어서는 늑막염, 폐결핵, 신장, 방광결핵 등 여러 병을 알았고,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방랑생활을 자청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후 병세가 심해져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 종지기로 일하였고 2007년 작고하였다. 이처럼 책 속 몽실의 다사다난한 삶처럼 권정생의 삶도 매우 험난했다. 작가 의 이야기같은 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전한다.이 책은 거침없는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을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몽실에게 겪어내야 일들은 하나하나가 인생에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작가는 사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그저 에피소드처럼 흘려보냄으로써 단 한순간도 평탄하게 살지 못했던 몽실의 삶을 담담하게 표현해낸다.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우리 시대의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또한 해방 직후와 6.25사변 등을 몽실을 통해 글로써 보여주어, 많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역사’와 그 당시 고통스러웠던 우리 민족의 삶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또한, 작가는 비록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몽실이를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모두가 굶주리고 배고플 지라도, 깡통 하나를 든 몽실을 지나치는 사람이 없다. 명성을 믿고 괜찮을거라고 자신을 위안하는 모습은 충분히 동감을 얻을만한 것들이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소재는 이메일이다. 우리는 이메일‘에 대해 인터넷 매체가 손쉽게 자판을 두드리고,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순식간에 편지를 보낼 수 있는 편리한 도구로 생각하고 사용하면서도, 그 편리한 사용방법 때문에 인간미를 상실한, 정이 없는 도구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인 받은 편지함 에선 이메일이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을 끈끈한 정과 유대감을 형성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관계 매체로 등장한다.독재자 순남이 친구와 이혜숙 선생님은 처음에는 독자와 작가의 관계로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진다. 물론 순남이가 순남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평소 부러워하던 혜민이 행세를 하긴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와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 쓴 것은 분명하다. 이런 서로의 마음이 담긴 메일은 인간미를 상실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각박해진 현대 사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이메일이 서로와 서로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다.극 후반에서, 이혜숙 선생님은 순남이의 정체와 거짓말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혜민이 행세를 할 수 밖에 없는 진짜 귀여운 독재자, 순남이에 대해서. 이 책이 깊은 감동을 주는 건 순남이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덮어준 이혜숙 선생님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난 괜찮아. 너한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 그리고 내가 정말 바라는 건……. 메일을 보고 바로여도 좋고, 한 달 뒤여도 좋고, 일 년 뒤여도 좋으니……. 언제라도 좋으니, 네가 네 진짜 이름으로 보내는 메일을 받아보는 거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도 괜찮아. 널 내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 왜냐면 넌 내 소중한 첫 번째 독자니까. 우리 그때는 더 많은 이야기 나누자.』순남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친절한 극의 전개였다.다음으로 불쾌했던 것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만약 이것이 아동문학이 맞다면, 어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모범생보다는 말없이 파리를 관찰하는 은둔형 아이가 선생님께 더 사랑받을것이다? 장애우 친구가 우리 반에 왔을 때는 아무 조건없이 내 것을 모두 내어주면서도 미소를 잃지 말아라?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형성을 위해 반말을 사용하라?혹시 예비교사 혹은 현직교사들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무엇을 전달하려던 것일까.학생들을 위해서라면 넝마를 걸치고 고물을 팔 수 있어야한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도 자신의 교육신념을 지켜야한다? 초임교사인 고다미선생님을 보고 똑같이 행동하라?지나치게 미화된 겐지로의 글을 읽다보면, 위와 같은 질문들이 튀어나온다. 서문에 제시된 일본의 한 예비교사의 말마따나, 나도 ‘이 책이 싫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밉다’. 나 역시도 강하지 못한 인간이고 고다미 선생처럼 내 모든 것을 희생사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내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혹은 내가 조금만 더 세상물정에 대해 몰랐더라면 이 책에서 감동을 느꼈을 지 모른다. 현재 나와 같은 예비교사인 내 친구는,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꿈을 키웠나갔다고 하나. 순수한 아이들에게, 이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교사와 학생의 따뜻한 교감이 만들어내는 감동일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책을 읽었을 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저서야 말로 진정한 아동 문학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천효정/ 문학동네본 작품은 ‘도깨비’라는 한국의 고전적인 소재를 등장시키면서도,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여 기존의 옛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험상궃게 생긴 얼굴에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괴물의 모습을 가지면서도, 셈에 능하지 못해 밤새 계산에 쩔쩔매는, 다소 상반되는 양면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도깨비를 소재로 다룬 는, 비장한가 하면 발랄 유쾌하고, 존재’들은 대개 불사의 존재인 동시에 뛰어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저 부러웠던 생명체였다. 그러나 ‘트리갭의 샘물’의 터크 가족은 어떠한 능력도 없고 단지 죽지 않을 뿐이다. 작가가 ‘영원히 사는 것’을 경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터크 씨는 비참한 삶을 억지로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불사의 존재. 터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추어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작가는 터크 가족을 수레바퀴 밖으로 밀려나 버린 쓸모없는 존재로, 자신의 무한한 시간을 즐기며 살려는 지니를 철없는 어리광쟁이로 묘사해버렸다. 작가는 생명의 수레바퀴 속의 삶에 만족하라는 것일까?생명의 수레바퀴는 무언가의 흐름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버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존재는 어떻게 해야할까. 작가는 본인의 의지에 관계 없이 생명의 수레바퀴에서 배제된 터크 가족을,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로 표현할 뿐 그 어떤 대안이나 해결방안도 내놓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터크 가족처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배제된 이들은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이어야 하는 것일까.독자를 대변하는듯한 어린 소녀 위니는 결국 생명의 수레바퀴 안에서의 삶을 택했다.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이 책이 어린 독자들로 하여금 허황된 꿈은 꾸지도 말며, 정해져 있는 길로만 걸어갈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이러한 기독교적 사고관을 내비치는 글귀를 한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몹시 불쾌한 기분이 들었고,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내면화 할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비록 편향된 시각이기는 하지만, 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이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에 대해 아동의 시각에 맞추어 써냈다. ‘영원한 삶’이라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소재, 신화라든지 전래동화라든지 에서 접할 법한 소재를 세련되게 잘 풀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주제 전달이 아니고도 생각할 거리, 토론할 거리를 가는 장면을 읽으면서, 독자 역시도 직접 환상의 세계를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 역시도 이 책과 연결된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겉표지에 있는 2마리의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이야기. 그래서 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사계절출판사책의 첫 장은 ‘나에게 동화는 삶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며, 아이들과 더불어 나 또한 성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하나의 행위이다.’라는 작가의 글귀로 시작한다. 작가 황선미는 이 글을 쓰면서 객사리의 삼거리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을 늘 좇았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가 살았던 유년의 기억으로 이 책을 쓰진 않았지만 그의 기억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완성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마당을 나온 암탉의 부제는 ‘꿈과 자유를 향한 여정을 그린 우리 시대의 동화’이다. 극 초반의 잎싹은 양계장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나약한 암탉일 뿐이다. 더 이상 알도 낳지 못하는 폐계면서 자신의 알을 품는 것을 꿈꾸는, 거기다 화가 날 정도로 멍청한 늙은 암탉이다. 사육장 밖의 현실들을 잘 알지 못함에도 마당의 규칙에 맞서며, 마치 어린 아이처럼 말도 안되는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런 규칙이 싫을 수도 있잖아. 그럴 때는 어떡해?”···54p)···“내가 품었고 내가 키울 거니까 틀림없이 내 아기야"···75p)잎싹은 ‘난용종 암탉’이었다. 누군가가 이 사실을 잎싹에게 말해주었더라면 알도 낳지 못하는 늙은 폐계는 자신의 병아리를 기른다는 꿈과 희망을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예비 교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예비 교사로서, 잎싹과 같은 아이들의 꿈을 좌절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소설 속 마당만 해도 다양한 동물들이 나와있다. 세상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보호받고 자라는 마당 안 장닭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리에서 버림받고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