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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류표준화연구-물류표준화 개념, 추진대상,필요성,문제점,개선방향 등
    과 목 명: 국제기업물류론< 목 차>1. 서론2. 물류표준화의 개념과 의의3. 물류표준화 추진대상1) 물류기반 표준화2) 포장 표준화3) 수송 표준화4) 보관 표준화5) 운반 · 하역 표준화6) 물류정보 표준화4. 물류표준화의 필요성과 문제점5. 물류표준화 개선방안1) 정부의 물류표준화 정책 추진2) 유닛로드시스템의 구축3) 국제 규격의 부합화6. 결론※ 참고문헌1. 서론한국산업규격 KSA3001에서 표준(Standard)이란 관계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익이나 편리가 공정하게 얻어지도록 통일 · 단순화를 꾀할 목적으로 물체 · 성능 · 능력 · 동작절차 · 방법 · 수속 · 책임 · 의무 · 사고방법 등에 대하여 정한 결정을 의미하며 표준화란 이러한 표준을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조직적인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에서부터 자동차, 비행기 등 모든 제품 및 부품의 치수, 성능, 재질, 시험방법 등을 통일화 및 단순화시키고 그러한 통일화 된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최근 경제사회의 발달로 소비자 욕구가 다양해지고, 유가 및 인건비 상승, 도로교통 정체의 심화 등으로 인하여, 물류에 있어서도 시설 및 장비의 이용효율 향상을 위한 기계화 · 자동화 · 공동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물류시설 및 장비 간 호환성과 연계성을 확보하여 원활하고 저렴하며, 신속하고 안전한 일관수송이 이루어지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물류의 각 단계에 있어서의 표준화를 추진해야하고, 국경 없는 Global 경제 시대를 맞아 국가 간 교역확대에 따른 물류의 원활화를 위해 국제적 물류표준화가 필요하다.본문에서는 물류표준화의 개념과 추진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표준화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고찰해본 뒤 향후 개선 방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2. 물류표준화의 개념과 의의물류표준화는 “원활한 유통을 위하여 물류의 포장, 수송, 운송 · 하역, 보관 등 각 단계 및 이와 관련된 정보, 물류기기, 설비에 관한 표준”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즉 물류의 시스템화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물류표준화는 운송수단 간의 연결거점인 항만, 화물역, 공항, 트럭터미널, 물류센터 등에서 화물운반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운송, 보관, 하역 등 화물 유통의 각 단계에서 기계화 , 자동화를 촉진하고 일관수송이 가능하도록 포장규격 및 구조 또는 파렛트, 컨테이너, 등 각종 물류기기 및 트럭, 화차 등 각종 운송수단의 치수, 강도, 재질 등을 물류 활동의 효율성 차원에서 규격화, 통일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물류표준화는 물류의 일관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고 과다한 물류비를 줄일 수 있으며, 보관, 하역의 기계화 및 자동화, 수 · 배송의 합리화 등을 통하여 물류활동의 효율성을 제고시킨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3. 물류표준화 추진대상1) 물류기반 표준화(1) 물류 모듈(Module)물류모듈이란 포장화물의 유통합리화를 비롯한 물류의 합리화 및 표준화를 위하여 물류시스템의 각종요소의 치수를 수치적으로 관련시키기 위한 체계화된 기존 척도를 말한다. 물류모듈에 의한 유닛 로드 시스템의 구축은 생산자로부터 최종소비자까지 유닛화된 화물이 도중에서 그 유닛을 허물지 않고 일관해서 흐르게 하는 것으로써 바로 일관 파렛트화의 목표이기도 하다. 물류모듈이 설정되게 되면 이와 관련된 수송 및 보관설비들의 규격이 설정된다.(2) ULS(Unit Load System)ULS는 전형적인 일관수송시스템으로서 하역작업의 기계화 및 자동화, 화물손상방지, 상하역의 신속화, 차량회전율의 향상을 가능하게 하여 물류의 효율화 및 물류비 절감의 최적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ULS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물류과정 전반에 걸친 수단들이 표준화되어야 한다. 즉 수송 장비의 적재함, 포장단위, 운반하역장비, 창고보관시설, 파렛트 등의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중 파렛트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파렛트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ULS의 구축은 불가능하다.(3) 파렛트(pallet)파렛트란 물품을 하역 · 운송 · 보관하기 위하여 단위수량을 적재할 수 있는 면 표준파렛트에 적재시 적재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포장규격을 조정하고 일정범위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장표준화는 일관수송체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개별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전체의 원활한 물류활동과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필수요소이다.일반적으로 포장표준화는 치수 및 강도의 표준화를 기본으로 하고 재료 및 기법의 표준화는 이에 부수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훌륭하게 정비된 포장표준화의 내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포장재의 구매, 검수, 품질관리업무 체계를 확립하는 포장관리의 표준화가 특히 중요하다.한국산업규격은 KS A 1002 (포장의 표준치수)에서 표준파렛트 1,100x1,100mm를 기준으로 69개의 수송포장치수를 규정하고 있으며, 길이x폭x높이 3방향을 전부 규정화하면 상자치수의 융통성이 없어 전체적인 규격치수의 이용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높이치수는 적재높이 1,900mm를 기준으로 하여 분할한 수치를 계열로 하여 16종의 권장치수를 사용토록 했다.3) 수송 표준화수송분야 표준화에는 트럭, 화차, 선박, 항공기 등의 수송수단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중 트럭은 파렛트화 화물이 적재 가능한 적재함 크기, 화차의 경우에는 파렛트화된 화물을 적재하고 기계 상하역이 가능한 화차의 규격 등이 있다.정부는 1997년 10월 KS규격(KS R 0102)으로 중형트럭에 대한 ULS통칙을 제정한 바 있다. 그 내용은 2,280mm로 광폭화 하여 T-11형 표준화 파렛트가 2열 적재 되도록 표준화하였으며 적재함의 길이는 5종으로 표준 설정하였다. 한편 1998년 7월에는 물류표준화 추진 및 파렛트 화물의 증가에 대비하여 일관운송이 가능하고 기계화 등 하역작업이 가능하도록 화차 양측면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는 전면개폐형화차를 개발하여 생산 공장에서 최종소비처까지 일관운송이 가능토록 하였다.4) 보관 표준화보관분야는 일반화물창고, 자동창고, 랙창고, 물류거점시설, 화물터미널 등이 있으며 이들 시설에 관한 시설 및 장비기준, 안전기준 등이 표준화의 대상이 된다.보관의 기능역 표준화운반 · 하역은 물류의 각 과정에 있어서의 연결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모든 물류의 기초단계에 해당한다. ULS에서는 화물을 주로 파렛트 단위로 취급하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수작업으로는 취급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운반 · 하역 장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파렛트화 된 화물을 취급하는 운반 · 하역 기기로는 지게차, 파렛트트럭, 컨베이어, 파렛타이저, 무인반송기 등이 있으며 이들 기기에 대한 제원, 기준치수, 작업능력, 용어, 안전기준, 관련부품 등이 표준화의 대상이 된다.6) 물류정보 표준화물류와 관련된 정보는 종합적인 물류활동의 원활화를 도모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서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물류활동을 구성하고 있는 운송, 보관, 하역, 포장 등의 제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전체적인 물류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물류에 있어서의 정보화는 EDI(전자문서교환), 물류바코드, 바코드스캐너, 관련 정보기기, 정보기기간의 인터페이스, 관련S/W 등이 대상이 된다. 물류단위 식별에 활용되는 표준물류바코드는 EAN-14로 14자리 코드로 구성되어 있고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제조업체, 유통업체, 물류업체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4. 물류표준화의 필요성과 문제점물류표준화의 필요성은 물동량의 증가와 노동력 부족현상 교통체증에 따른 물류 환경의 악화로 물류과정의 기계화 자동화가 불가피하고 물류장비 및 시설에 대한 국제표준화 추세에 대비하며 포장, 수송, 운반, 하역 · 보관 및 정보의 일관처리로 물류의 효율성 제고를 하기 위함이다 물류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경제 규모의 확대에 다라 물동량이 증가함에 따라 물류의 일관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표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둘째, 신기술, 신소재, 하역보관의 기계화 등의 기술을 경제적으로 대입하기 위한 물류표준화가 필요하다.셋째, 경제의 글로벌화와 시장개방으로 인한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연계되는 물류표준화가 요구되고 있다.넷째, 로드 시스템을 지향한 횡단적인 규격체계로 발전되지 않은 면이 있다. 개개의 기기단위에 개별로 용어, 치수, 품질, 시험방법 등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만 물류의 고도화지향 시스템구축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횡단적인 제시가 도모된 한국표준규격의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물류기기간의 규격차이로 인하여 규격 간 연계성 부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화물 일괄처리가 효율적이지 못한 상황에 있다. 물류표준화에 대한 분야별 현황 및 문제점을 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분 야현황 및 문제점포장분야-상품위주의 포장으로 파렛트화가 곤란하고 과대포장으로 인한 자원낭비-파렛트화 화물에 대한 라벨기준 및 취급지시 미흡-신 포장 재료 개발 미흡(친환경, 무공해, 재활용 재료, 신소재 등)수송분야- 트력 제조사별 적재함 크기 통일 필요- 기존 운행중인 미광폭 5톤 트럭의 적재함의 광폭개조 및 4.5톤 트럭의적재함 광폭화(T-11형 파렛트 2열 적재)- 철도 화차를 파렛트화물 취급가능토록 개조 및 신조 화차에 대한 기준정립(파렛트 · 컨테이너와의 정합성 확보)보관분야- 창고 시설의 사양 비규격화* 평창고의 경우 시설사양 비규격화* 입체 자동창고의 경우 파렛트와의 정합성 결여운반 및하역분야- 운반 · 하역장비의 규격화율 저조* KS 규격으로 보급된 물류기기는 10.2%에 불과- 업계 자체기준에 의한 비표준규격 제작 사용* 자체제작 57.6%, 협력업체 제작 22.6%, 수입업체 19.9%- 비표준규격 장비로 인한 기기간 호환성 결여정보화분야- EDI의 업계 및 국내표준의 미확립- 물류 바코드 보급 및 활용 미흡- 물류관련 정보기기 시스템 간 호환성 결여- 기기 간 또는 프로그램 간 인터페이스 기준의 표준화 미흡-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상이로 인한 기기 간 호환성 부재 및 네트워크화미흡물류신기술- 첨단물류시스템, 신운송수단, 친환경물류기술의 개발 부족- 폐기물 · 위험물 물류에 대한 기준 정립 필요- 물류신기법(제3자, 제4자물류, 물류공동화)의 도입 미흡5. 물류표준화 개선방안1) 정부다.
    경영/경제| 2014.06.01| 9페이지| 2,500원| 조회(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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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國史記와 三國遺事 연구
    < 목 차 >1. 머리말2. 삼국사기 분석1) 저술 및 편찬 배경2) 내용 및 서술방법3) 사관 및 문헌적 성격3. 삼국유사 분석1) 저술 및 편찬 배경2) 내용 및 서술방법3) 사관 및 문헌적 성격4. 맺음말※ 참고문헌1. 머리말고려시대 초 지식인들은 그때까지 고대사에 관한 역사서가 마땅히 없다는 것을 문제로 삼아 역사 편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에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와 같은 대표적인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역사 편찬은 이전 시대 역사를 정리하는 사업으로서 그 당시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던 왕권의 힘을 더하고 또 유교사상에 입각한 정치를 펼쳐나가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삼국사기』는 김부식(金富軾)이 여러 사관들과 함께 편찬한 것으로 유교적 통치사관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사실적 내용을 위주로 하는 기전체(紀傳體) 양식의 관찬(官撰)사서이자 정사(正史)이며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서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서적이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일연(一然)이라는 승려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불교 사상을 기본으로 저술 되었으며『삼국사기』에 누락되어있는 삼국 이전의 역사와 설화나 민요 등 민중들의 이야기를 편년체(編年體)에 입각하여 부가해서 수록하고 있다. 이 두 역사서는 그 내용과 서술방식 등에 있어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드러난다.고려 초기의 역사서를 비교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 또 그 시대의 사상과 저자의 사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이해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하여 이 글에서는 두 사서를 편찬배경, 내용 및 서술방법, 저자의 사관 및 문헌적 성격에 따라 분석 해보고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여 역사적인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2. 삼국사기 분석1) 저술 및 편찬 배경저자인 김부식은 선대로부터 유학자의 집안이었는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유교 경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사관이 구축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교에 대한 이념이 『삼국사기(三國史記)』의고, 북진정책과 숭불정책으로 세력을 굳혀가고 있었다. 이후 성종 대에는 중앙과 지방의 관제를 대부분 개혁하고 학문과 산업을 장려함으로써 국가의 기반을 다져나갔으며, 문종 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제도가 완비되고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완성되었다.그러나 『삼국사기』의 편찬 당시인 고려 인종 대에는 대내외적으로 민족적 시련기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집권귀족들 간에 정권다툼이 심각하였는데 그것이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으로 나타난다. 또한 국외에선 금과 군신관계를 맺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하에서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하여 김부식은 당시의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역사서의 편찬을 통해 국가의 권위를 회복하며 교훈을 주기 위해 왕명에 의해 편찬하게 된다. 이 시기 고려조의 사상계와 학문의 두 가지 중심 기둥 역할을 한 불교와 유학에서 모두 국제화와 합리화가 크게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된 지적 상황은 국초에 편찬된 고대 의식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록한 『구삼국사』가 다시 쓰여야 한다는 역사의식으로 발현되어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된다.2) 내용 및 서술방법삼국사기는 본기(本紀) 28권, 연표(年表) 3권, 잡지(雜志) 9권, 열전(列傳) 10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본기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를 통틀어 삼국의 왕을 중심으로 건국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생겨났던 역사적 사실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였다. 연표에는 삼국의 연대와 중국의 연대를 대조한 연대표를 삽입하였으며, 잡지에는 제사(祭祀), 악(樂), 색복(色服), 거기(車騎), 기용(器用), 옥사(屋舍), 지리(地理), 직관(職官) 을 삽입하였고, 열전에는 삼국시대에 활약한 중요한 인물들의 충성과 학식, 효행에 대해 전기적으로 기록하였다.서술방법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사론(史論) 부분을 제외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디까지가 사료이고 어디까지가 편찬자의 의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연월일 순라는 태도를 밝히며 이에 따라 본래의 사료를 개작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삽입하여 객관적인 역사서술방식을 유지하였다.3) 사관 및 문헌적 성격김부식은 역사를 교훈이나 후세의 귀감으로 삼는 교훈주의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역사서술을 현실비판의 도구로 삼았으며. 이러한 교훈주의 사관은 이후 전통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그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지닌 불교?풍수지리사상과 신화적 세계관을 배격하고 유교적 도덕 정치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삼국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하여 사실에 입각한 정사만이 드러나며 신화나 전설과 같은 확인되지 않은 야사들은 삽입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김부식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려는 객관적 서술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는 삼국사기 편찬 시에도 『구삼국사』,『자치통감』 등 기존사료를 원본 그대로 삽입하였으며, 사료들을 삭제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그는 신라의 고유왕명이나 관명을 신라본기에 그대로 기록하였으며, 이처럼 신라 고유의 명칭을 사용한 것은 사실의 객관적 서술인 동시에 독자적인 자아의식의 표현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된다.김부식의 역사인식은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는 사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본기 내용은 정치·천재지변·외교·전쟁의 4항목으로 되었으며, 그 속에서 국가를 구성한 3요소인 왕·신하·백성이 각기 그들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천인관계는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면서 역사발전의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김부식은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웅주의사관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주의적 역사관이 아니라,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의무와 도리를 강조한 공적덕목을 제시함으로써 국가의식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그는 또한 사대주의 사관의 면모도 드러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으로 나뉜다. 일단 긍정적인 입장에 입각하여 보면 김부식의 역사관은 조선시대의 역사가들보다는 덜 사대적이었고, 나아가 사대적인 성격을 김부식 개인의 문제로에 대해 공손했으며, 삼국사기의 실질적인 내용에서 유교적 입장에 따른 인물평가와 중국과의 사신왕래 기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김부식이 사대주의 견지에서 역사를 서술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서술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고려의 정국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데서 김부식의 사대주의 사관이 더욱 구체화 되어 나타난다.삼국사기의 문헌적인 성격을 살펴보면 우선 역사서인 만큼 그에 관한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단 사대주의에 입각한 사대적인 역사서적인 성격이 확인되는데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않고 중국 연호를 인용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제일주의를 내포하고 있는데 삼국본기 중 신라본기를 앞에 내세우며 권수도 제일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고 열전에서 신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면을 볼 때 그를 확인할 수 있다.삼국사기는 유교적 문화사로써의 면모도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건을 유교적인 표현으로 서술함으로써 마치 고대의 문화적 전통도 유교가 확립된 것처럼 혼동할 정도로 서술되어 있다. 잡지에서는 그 기록이 삼국 후반기의 자료가 거의 태반을 차지함으로써 삼국에서 유교 문화의 정착이 대단히 이루어진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하여 삼국의 고유한 문화나 불교문화는 제대로 서술되지 못하고 상당 부분 소홀히 다루어졌다. 비록 유교적 성향에서 서술되었지만 상고의 고유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가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왕조 중심의 국가발달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서인 『삼국사기』는 독자적 특징이라기보다는 동양에서 서술된 기전체의 왕조사에 통용되는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왕위의 계승, 영토의 확장, 제도의 정비, 왕권의 강화 이외도 전쟁, 외교, 자연현상, 통치제도 등을 중심적으로 다룬 국가 중심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3. 삼국유사 분석1) 저술 및 편찬 배경13세기에 고려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게 된다. 국내에선 묘청의 난 이후 30년 간 무신집권기가 이어지고 지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며 , 국외에서간의 대몽항전, 그리고 원의 간섭 등이 이어져 당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렇게 이민족의 압박과 간섭이 격심해지는 상황 하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역사인식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일연은 민족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다. 그는 1219년 구족계를 받은 후 1260년 대선사에 오르고, 1283년 국존에 책봉되었는데, 그가 생각했을 때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그 지위에 따른 의무감과 사명감이 따른다고 보아, 이런 맥락에서 일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종교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삼국유사를 편찬하게 되었다.2) 내용 및 서술방법삼국유사는 인용된 사료와 저자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일연은 다양한 사료들을 선별하여 인용하였고 그에 대해 편찬자의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의 기술태도를 유지하였다. 인용한 사료를 통해서는 역사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실들을 전달하고 있으며, 필요시에만 사료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거나 논증을 하였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연월일 순으로 기록하고, 그것에 대해 인용한 자료가 있을 경우에는 그 근거를 일일이 밝히는 편년체(編年體) 서술방식을 택하였다.일연은 우리나라의 고기류의 서적뿐만 아니라 중국 측 자료들까지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자료를 일일이 제시하고 있으며, 한 사건에 대한 기사 내용이 상반되는 자료가 있을 경우에는 다같이 인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삼국유사는 2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편에는 2권이 있으며 왕력, 기이의 내용이 수록되어있다. 그 내용은 왕력은 삼국과 가야 및 후삼국의 연대표에 관한 것이며 기이는 통일신라 이전과 이후를 비롯하여 가야와 후백제 등에 관한 유사를 기록한 것이다. 제2편은 3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은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이다. 자세히 살피면 이는 불교가 삼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고승들의 행적격
    인문/어학| 2014.06.01| 8페이지| 1,5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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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高麗史 편찬과정-고려사편찬과정-고려사에 대한 편찬배경 및 과정
    1. 머리말2. 편찬 배경3. 편찬 과정4. 맺음말※ 참고문헌1. 머리말고려는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진 왕조였지만 그 시대에 쓰여진 역사서가 없다는 점이 흠으로 남아왔다. 물론 고려 때 쓴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지만 그 역사서들은 고대부터 삼국의 역사를 저술한 것이라 고려의 역사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려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몇 개의 책을 편찬하였고 그것이 바로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이다. 고려사가 비록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고려실록(高麗實錄)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이 책에는 조선의 역사가들의 사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시각에서 역사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저술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고려사로만 고려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고려에 대한 진실된 역사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고려실록이 사라지고 없는 지금으로서는 고려사가 고려의 역사를 알아보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서 이용되어짐이 틀림없다.고려사가 아무리 조선역사가들의 사관이 녹아들었다 할지라도 그 책은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뽑는 정사로 칭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가 고려 중기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았던 삼국에 관한 역사적 인식을 보여준다면 고려사(高麗史)는 조선 초기 사대부들이 생각하였던 고려에 대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태조 원년부터 시작하여 문종 원년에 가서야 빛을 본 이러한 사서의 편찬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하며, 본문에서는 고려사를 저술하기까지의 배경과 편찬과정을 주축으로 써내려가도록 하고 그와 더불어 고려사의 구성과 내용에 대한 얘기도 덧붙여 설명해보고자 한다.2. 편찬 배경고려왕조가 멸망한 이후 나타난 조선은 혁명을 통해 건국한 나라였고 당시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는 지식인층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조선의 입장에서는 전왕조사를 정리함으로써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 고려사(高麗史) 편찬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태조가 고려사 편찬을 명하였고 고려국사 편찬이 착수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개정을 반복하여 마침내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고려사를 정리함으로써 태조는 전왕조인 고려의 토지제의 문란, 사회윤리의 해이, 정치의 부패, 왕실 혈통의 단절로 인한 부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렸고 이에 조선왕조가 들어섬이 당연하다는 것과 조선의 건국은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민심을 수습하고 천명을 받아 건국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 오랜 과정은 역사학적 발전이 진행되는 한편 새로운 조선의 국가체제가 역사인식의 정립을 통하여 심층적인 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역사 편찬 작업은 다만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고려시대의 군신들의 발자취를 참고로 하여 새로운 조선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응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관찬사서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모두 조선 초에 등장한 필연적 산물로 확인할 수 있다.3. 편찬 과정편찬의 연원은 고려 말기 이제현(李齊賢)·안축(安軸)·이인복(李仁復) 등이 고려를 기록하고자 했던 국사에 있다. 그러나 이제현이 태조부터 숙종까지의 본기(本紀)만을 편찬하였던 것에 그쳐 완성되지 못했다. 그 본기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으나 편찬방식 등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하고 있다.태조는 건국 직후인 1392년(원년) 10월에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 등에게 고려사의 편찬을 명했다. 이에 따라 1395년(태조 4) 정월에 그들에 의하여 편년체로 서술된 37권의 고려국사가 편찬되었다. 이 때 정도전은 개경의 수창궁에서 보관하던 책들을 참고 자료로 하여 과거의 사초를 토대로 3년 만에 연대를 좇아 차례차례 사실을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고려국사는 편찬을 맡은 개국공신들의 사관이 포함되었고 또 빠른 시일에 편찬되어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조선건국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평을 들었다.태종이 즉위한 뒤에도 조선 건국 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1414년(태종 14)에 하륜(河崙)·남재(南在)·이숙번(李叔蕃)·변계량(卞季良) 등에게 개정을 명하였다. 이 작업으로 공민왕대의 사실과 특정 인물을 미화한 내용 등을 상당히 바로잡았으나 1416년 개수의 책임자인 하륜이 죽음으로써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때 쓰여진 책이 편년체로 쓰여진 고려사인데 책으로 간행되지는 않았다. 그 뒤 세종은 고려국사의 공민왕 이후의 기사 서술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고, 1419년(세종 1) 9월 유관(柳觀)·변계량(卞季良)에게 개정를 명해, 1421년(세종 3) 정월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이때 개수 내용은 공민왕 이후의 기사 중 고려시대 사신의 사초와 다르게 기술된 부분과 고려의 왕실용어 가운데 중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일치하는 것 중에서 정도전 등이 다 고치지 못하였던 것을 전부 개서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적이고 사대적인 관점이 강화되고 제칙(制勅), 태자(太子)등을 교(敎), 세자(世子)등으로 고치고 있어 이것도 반포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개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역시 참칭(僭稱)의 개서문제에 있었다. 1423년(세종 5) 유관과 윤회(尹淮)에게 제2차 개수작업에서 실록을 대조하여 당시 썼던 용어를 그대로 직서하도록 하여 세종 6년 8월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이를 수교고려사(晩校高麗史)라 칭하였다.앞서 고려사의 개서를 맡았던 변계량은 편찬체재나 용어의 변개를 당시에 사용하던 것 그대로 직서하는 것을 꾸준하게 반대하였는데 이렇게 의견이 다른 점 때문에 세종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은 끝까지 용어의 개선을 원했고 따라서 실록을 대조하여 당시 용어를 그대로 직서하여 수교고려사를 편찬할 수 밖 에 없었다. 참월한 명칭의 직서문제가 일단 ‘수교고려사’를 통하여 해결 되었으며 이후 직서주의는 권제의 ‘고려사전문’을 거쳐 ‘고려사’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참칭한 용어의 직서를 강경히 반대하는 변계량의 주장으로 반포가 중지 되었다.제4차의 고려사 편찬은 세종 20년에 승지 허후의 발의로 기전체에 의한 고려사 개수가 제기되고 이를 허락하여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 사이에 신개(申勘)와 권제(權庶)에게 개수를 명하며 이루어졌다. 이에 고려사전문(高麗史全文)이 완성되어 왕에게 바쳐졌다. 이 책에서 보완·개수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 ‘고려사전문’이라는 명칭에서 보여지듯이 ‘고려실록’을 통하여 소략한 기사를 많이 보충하여 그 내용을 풍부히 하였다는 점, 둘째 고려왕조에서 사용된 용어를 원래의 기록대로 직서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권제가 자신의 조상에 대한 기술을 사실과 다르게 기술했고 또 남의 청탁을 받고 고쳐 쓰는 등 공정성이 결여되어 반포가 중지 되었다.이후 세종은 1446년(세종 28) 10월 고려사전문의 고려 말기 기사에서 태조의 선대 도조(度祖)·환조(桓祖)로부터 태조에 이르는 기록에 빠진 내용들을 발견하고, 1449년(세종 31) 정월 우찬성 김종서(金宗瑞), 이조판서 정인지(鄭麟趾), 호조참판 이선제(李先齊) 등에게 개찬을 명하였다. 이때 전에 사용하던 사체(史體)에 문제가 있다고 논의가 되어 종래의 편년체에서 기전체로 편찬하기로 결정하였다.이는 세종의 대에서 완성되지 못하고 문종 대에 이르러서 편찬 작업이 완료되었다. 오랜 시간을 끌던 고려사의 편찬과정은 세종의 사후에야 완성되기에 이른다. 진통을 겪던 역사서의 편찬 작업이 세종이 죽자 단기간에 완성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마 역사서들이 상당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하들에게 일정한 원칙을 강조하던 세종의 부재도 이러한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문/어학| 2014.06.01| 6페이지| 1,500원| 조회(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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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요약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요약Ⅰ. 작가 소개테네시 윌리암스는 1911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났다 그가 초창기 작품집《천사들의 전투》(Battle of Angels)와 《27대의 목화 실은 마차 외 1인 극집》(27 Wagons full of cotton and Other One-Act Plays)를 발표했을 때는 아직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허나 1945년 《유리동물원》과 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발표하여 일류 작가로 도약했다.그가 《유리동물원》으로 유명작가로 거듭나자 그에게 물질적인 안락이 주어졌고 맨하탄으로 집을 옮긴다. 허나 이러한 풍요로움은 그를 예술적 무력함에 빠지게 하였다. 그는 목적의식의 상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그는 결코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신물이 나는 반응을 나타내었다. 이 현상은 바로 테네시 윌리암스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속물성에 대한 환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그는 극작이 가져다 준 성공을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증상을 나타낸다. 그는 다수 극작가들이 그러하듯 성공작을 토대로 더 큰 성공으로 도약하려는 욕망이 나타나지 않고 더 이상 희곡을 집필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는 역설적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는 안과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는 작가정신을 다시 회복하며 자연과 원시성이 있는 멕시코로 이주한다. 그 곳에서 그는 창작에 몰두하였고 그 결과가 《포오카의 밤》이라는 타이틀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바뀐 대작이었던 것이다.테네시 윌리암스는 결코 세속적 성공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작가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창작을 위한 투쟁이라고 보며 작가의 가슴, 몸, 정신이 칼 끝에 서서 생존을 위해 집중해야 하는 과정이 창작에 절실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성공한 작가에게 부여된 것은 사회적 자아(페르소나)를 나타내는 마스크였다.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허위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의 표정을 지어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월리암스는 성공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자아는 거울 속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성공이 제공하는 안일을 과감하게 버리고자 한다. 그가 원시적인 멕시코로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그 곳에서 만든《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매우 생생한 배경 설정과 생동감 있는 성격 묘사로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월리암스가 이 작품에서 남부의 퇴폐적 이상주의와 이민자들의 원시적 사실주의를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이슈를 극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월리암스는 관객들이 비극적 희생물인 블랑쉬에게 값싼 동정을 가지는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건전한 지각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작가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이어져 그를 최고의 극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다. 1947년 뉴욕 배리모어 극장 공연은 대성공을 가져왔고 이후 런던공연, 발레 등에서 대중적 인기를 입증하였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마지막 걸작에 해당하는 장미문신은 1951년 2월에 뉴욕에서 공연되었으며, 비평가들에게 “불균형적인 희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인의 끈질긴 생활력과 색감에 대한 직관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따라서 테레사 헬번과 존 가스너가 1940년에 뉴 스쿨 극작가 세미나와 극작가 협회에서 윌리암스를 선출한 사건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Ⅱ. 작품해설테네시 윌리암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관객들에게 많은 상징물을 제시하여 극적 구조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지명과 인명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극의 진행을 암시하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블랑쉬가 타는 전차의 이름이며 이는 실제적인 이름이지만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삶의 과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전철명과 지명을 엮어서 이 전철을 타고 오는 블랑쉬의 운명을 상징화하고 있다고 본다.블랑쉬는 이름 그대로 불어로 ‘흰색’을 의미하고 그녀를 이름과 상응하게 성격을 구축하기 위해 흰옷을 입게 한다. 그녀는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녀의 영적 순결성과는 거리가 먼 육체적 퇴폐성에 빠지고 만다. 어린 남편 알랜이 그녀로 인해 자살하자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술과 섹스에 의존하고 결국 그녀는 흰색의 순결성을 지키지 못하고 육체적 타락을 자초하여 역설적 상징이 된다.블랑쉬 류의 인간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환상적 외관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쉽게 타락의 길을 걸어간다. 이는 스탠리의 사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위선적인 존재로 낙인찍힌다. 블랑쉬의 상징물과 대조를 이루는 스탠리의 상징물은 “블루 피아노” 곡과 원색의 볼링 셔츠이다. 피아노곡은 자유분방함과 음울하고 원시적인 성적 경향을 내포하는데 이는 블랑쉬의 심리상태에 따라 지속적으로 연주된다. 또한 볼링 셔츠는 그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 셔츠는 스탠리의 맨몸과 연결되는데 이는 블랑쉬의 세련된 의상과 비교되며 문명 대 원시의 대조를 이룬다.
    독후감/창작| 2014.06.01| 2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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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감상문 -저자 김우중 회장 평가A+최고예요
    과 목 명: 국제무역이론‘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는 대우의 전 회장 김우중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재계 서열 2위를 달리던 그룹을 이끌었던 자이고 당시 많은 사람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그의 경영철학이 담긴 책이라 여러 책 가운데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80년대 말에 초본으로 출판되었으며 그 당시 김우중 회장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책머리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있다.‘젊은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두 가지 즐거움을 준다. 그들로부터 푸른 기운과 순수한 사고를 느끼게 됨이 즐거움의 첫째요, 나의 남다른 경험을 그들에게 전해주는 나눔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그래서 유난히 나는 젊은이들과 얘기하기를 좋아한다.’이러한 구절을 읽으면서 필자는 김우중 회장이 얼마나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즐겨했는가를 알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당시 자신의 경영철학을 담은 이 책을 썼던 그 마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지내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것으로 나타낸다. 우리사회의 교육은 형식에만 갇혀있는 것으로 창의적인 인간을 창조해내는데 한계점이 있다고 보았다. 더욱이 이러한 실정에 있어서 어른들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간 스토리가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에 대해 선뜻 얘기하는 어른들의 수가 많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여 나타내고자 하였다.이 책의 내용 중 인상 깊은 것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회사에서 일한 근무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자신이 대우의 근로자들과 함께 남들보다 두 배를 더 밤새워 일하면서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였다고 하며 현재 어떤 젊은이들은 근무시간에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고 심심하여 견딜 수 없다고 불평하는 자세를 꼬집었다. 자신과 대우의 근로자들은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가 아니라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일하였다는 점에 대해서 그는 9 to 5 와 5 to 9 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솔직히 이러한 구절을 읽었을 때 현재 추구하는 근로시간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허나 이러한 생각은 시간에 대한 개념에 한정된 것이었다. 김우중 회장의 근면 성실한 모습과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 자세는 현재에도 본받을만한 점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탄하고 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낀다고 하였다. 김우중 회장이 필자에게 그러한 존경심을 불러왔고 시간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또한 그는 낮잠이라는 개념자체를 부정하는 듯하였다. 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대목이었다. 사회에서 일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며 남유럽 사람들의 적당주의가 우리나라에 스며들은 결과라고 하였다. 느긋함이 몸과 마음에 베어있음을 얘기하며 그는 적당주의라는 이 상황을 넘어서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낮잠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시간완벽주의로써 살아가는 것이 그의 철학인 것이다. 필자는 사실 잠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잠을 자며 보냈던 많은 시간들이 너무 허무하게 흘러갔고 그 시간에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더 했었다면 지금쯤 나의 모습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김우중 회장의 잠자는 시간도 아끼는 마음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또 다른 이야기로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젊은이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보다. 김우중 회장은 희생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며 개인주의 사상이 서양에서 흘러들어와 사람들이 개인적이고 현실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렸을 때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여 이러한 개인주의 사상에 물들어버린 젊은이들의 모습에 적응할 수 없었나보다. 세상도 많이 바뀌어 젊은 사람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바쁜 세상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는 점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긴 것 같았다.그는 또한 방관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였다. 방관자의 자세라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설명하며 위에서 말했던 적당주의에 대한 이야기와 연계하였다.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지 않고 제 구실을 다하려는 의식이 없어지는 순간 방관자와 적당주의와 무감각이 자신을 비집고 들어온다고 하였다. 주인은 결코 방관하지 않는다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다.한편 여성의 취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필자도 여자인지라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그 당시는 현재보다 더욱 여성의 취업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시대였고 그에 대한 김우중 회장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하였다. 읽고 난 뒤에 느낀 점은 김우중 회장이 여성들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 구절에 대해서는 너무 일반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이 당시의 80년대를 기준으로 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의 여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그 정도였나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는 여성들이 스스로 발견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사실상 그도 여성들이 사회적인 위치에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남자와 동등하게 일을 해나가기를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언젠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인생의 변화가 찾아오고 그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젊은 시절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굉장히 중요도를 표하였는데 이는 다르게 나타내면 젊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김우중 회장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해보라고 제안하였다. 경험이라는 것은 굉장한 자산이 될 것이며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빼놓고는 경험하지 않을 것은 없다고 하였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모두 경험을 하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어버리는 일이 많고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내다버리는 일이 많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경험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필자는 김우중 회장의 일단 무엇이든지 해보라는 말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따라야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무슨 일이던지 해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연애도 하고 삽도 잡아보고 운전대도 잡아보고 배낭도 메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다는 그의 말에 따라서 방바닥에 붙인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무엇이든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결국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경험하는 편이 낫다는 그의 철학이 그를 그 당시 거대한 CEO의 자리로 올라가게 만들었고 그러한 그의 철학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경험한 것만을 알 수 있고 경험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며 경험이라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하나뿐인 삶의 교과서라는 그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그의 책에서 강조하는 4가지 지침이 있다. 우선 첫째 시간이 나는 대로 여행을 할 것이며 두 번째 여러 방면의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것. 그리고 세 번 째 모든 일에 의욕을 가지고 임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라는 충고를 곁들인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며 이를 통한 비전을 확고히 하라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 의식의 확대를 통해 서로를 위함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김우중 회장은 젊은이들의 정신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젊은 시절은 인생의 기초를 닦고 다지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기초를 제대로 갖추는 사람은 그 인생이 튼튼하게 설계되고 풍성하게 빛날 것이라고 하였다. 반대로 이러한 행동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당장의 즐거움에 빠져서 기초를 허술하게 갖추게 되고 이는 자신의 인생을 마치 모래위의 지은 집과 같이 만들어 아슬아슬 할 것이라고 하였다.필자는 김우중 회장의 이러한 충고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냥 알아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왔던 모든 일들에 대해 생각하였고 그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은 기회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하지만 경험의 부족과 적당주의라는 그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그 당시 그 많은 기회들을 날려버리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그렇게 놓쳐버렸던 많은 기회들과 그 때의 충족되지 못했던 많은 조건들을 또 다른 경험의 축적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실패도 또 다른 경험의 일부이며 이는 삶의 방향을 또 한 번 알려주는 지침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하여 당시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어떠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지 고뇌하는 방향으로 연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독후감/창작| 2014.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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