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파노라마(테리 홀) 독서보고서이 책의 저자 테리 홀은 성경 공부 방법과 성경 개관을 가르치며 창조적인 교재를 사용하여 성경 파노라마 세미나를 시작한 사람이다. 테리 홀은 달라스 신학교를 졸업했고, 시카고에 있는 무디성경대학에서 10년간 성서학 교수로 일하면서 신입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체계적인 성경 지식을 확립해주었다. 또한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처럼 성경의 미로를 쉽게 잘 헤쳐나가도록 한내해주는 바이블 네비게이션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성경 파노라마는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그는 입체적인 성경 공부법을 보여준다. 성경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역사의 큰 물줄기를 보여주며, 그것이 성경 지도 어디에서 언제 펼쳐질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규명한다. 여기에 성경 각 권의 중요 주제와 중심인물들을 연상법으로 재미있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그만의 장기이다. 또한 그는 유머 감각이 풍부하여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성경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데 탁월하다. 그의 안내를 따라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성경 66권의 큰 흐름이 보이게 될 것이다.1장 먼저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 크리스천들에게 성격은 방대한 규모의 퍼즐 맞추기 와도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고 단지 수많은 조각만을 본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조각을 모으는 전문적인 수집가들이다. 우리는 주일마다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 이야기의 작은 조각들을 줍는다. 그러나 많은 성경조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어떻게 짜 맞춰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를 자각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성경을 이용하여 그릇된 가르침을 전한다. 그들은 시편이나 잠언이나 예언서의 어느 한 구절을 성경 전체의 문맥으로부터 뚝 떼어내 해석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것과 정반대로 말하신다. 우리는 성경 각 권을 물론 모든 구절들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경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합적 접근방법이고 다른 비가 된 에스더는 적의 위협으로부터 동포를 구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침묵기라 불리는 4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등장했다. 성경은 시작할 때와 똑같이 끝난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로 시작한 것과 같이 어떠한 악도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을 맺는다. 성경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일에 대해 포괄적이고도 통일된 이야기를 전한다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2장 여덟 기둥으로 성경의 맥을 잡아라, 성경을 내용별로 묶었을 때 역사, 체험, 예언의 세 범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봤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서로 토대를 닦으시고, 다음에 이어지는 성경들을 그 위에 세우셨다. 모세오경은 성경이라는 논의 모판과도 같다. 성경의 주요 주제가 구약의 처음 5권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시작을 기록한다. 창세기는 우주적인 갈등인 선과 악의 세력 사이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성경의 처음5권으로 구성된 이 중대한 토대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타자에 의해 비롯되지 않은 완전함의 총체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 간음, 절도를 범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라는 명령으로 요약되었다. 구원은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은혜를 기초로 하고, 인간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았다. 율법서 5권에는 인간의 일관된 본성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인간은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조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려는 성향을 드러낸다. 구약의 역사서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한 민족의 이야기 안에서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이방 민족 가운데서 택해 최초의 요한계시록에서 완벽하게 복원된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경을 주신 주된 목적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곧 영생을 의미한다. 3장 구약시대를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만일 성경을 지구에 비유하자면, 이 지구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의 큰 대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구약의 대륙은 신약의 대륙에 비해 더 크고, 더 어둡고, 탐사가 덜 된 땅이다. 대체로 우리는 역사서, 체험서, 예언서라는 세 그루의 나무를 한 시간 정도 정밀하게 조사한 뒤에 깊은 숲에서 나온다. 주제별로 보았을 때, 구약과 신약은 각각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 세 부분이 역사, 체험, 예언이라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스더서 이후에 계속되는 구약의 줄거리를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구약의 역사서들은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하나의 이야기가 지속된다. 17권의 역사서는 주로 히브리 민족의 과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5권의 체험서에는 개인의 현재 체험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마지막 17권의 예언서는 장래에 더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우리를 다시 민족적인 영역으로 이끌어간다. 구약성경이 5권씩 세그룹과 12권씩 두 그룹으로 배열되어 있는 점을 주목하라. 우리가 가진 구약성경이 이처럼 완벽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열두 시대는 구약의 이야기를 이루는 기본적인 틀로서 나머지 구약성경 28권의 시대적 배경이 된다. 성경 통독을 결심했을 때, 이처럼 신구약을 시대순으로 읽어나가면 지루하지 않게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사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구약의 전경을 효율적으로 감상하려면 구약의 줄거리를 빠르게 전개하는 11권의 기본적인 책들을 읽으면서 각 장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는 것이 좋다. 그룹 성경공부에 딱 맞는 한층 더 흥미로운 방법도 있다. 각 장 제목의 첫 글자를 짜 맞추어 그 책의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창세기처럼 긴 이 지도의 독특한 상징 부호는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기적으로 일곱 번이나 죄에 빠졌음을 상기시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서 다음으로 어려운 것이 왕궁 시대에 관한 책들이라고 말한다. 왕국 시대란 유대인들이 원하여 세운 왕에 의해 통치를 받던 시기를 뜻하는데, 구약에는 이 시기에 관한 역사서가 6권 있다. 왕국 시대는 41명의 왕과 1명의 여왕의 치세를 포괄하며, 모든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이 시대의 막이 내린다.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하에 이르는 지도는 지리적 특징보다 상징적 특징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왕국의 소리굽쇠 손잡이 부분이 성경책 두 권 반을 차지한다. 사울은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즉위하지만 이후의 왕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 반면 다윗은 사무엘하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함으로 등장한다. 열왕기상은 왕이 솔로몬이라는 것만 빼면 사무엘상하와 비슷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열왕기상의 후반부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왕궁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고 기록한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실제로 존재했던 곳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5장 구약 드라마 속 줄거리의 핵심을 잡는다, 모든 것의 시작을 기록한 창세기는 최초의 유일한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아담, 하와, 셋,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삶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아담에서 요셉에 이르는 세대를 유심히 관찰한다. 창세기 말미에서 애굽에 내려갔던 유대인들은 70명에 불과했지만, 400년의 노예생활 동안에 그 수가 무려 350만 명으로 불어났다. 이후에 열 가지 재앙, 유월절, 홍해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에서 나오는 물 등 일련의 사건들이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 모세는 사막의 여행자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선발하여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게 하셨다. 레위기는 죄를 속하기 위한 다섯 가지 주요 제사와 그것들의 효과기상하의 주석이다. 역대하의 기자는 솔로몬 시대에서 포로 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유다의 역사를 요약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기준으로 각각의 왕들에게 점수를 매겼다.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이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폐허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갔던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52일동안의 열띤 작업으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스룹바벨을 시키시어 성전을 재건하게 하는 동안, 사탄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에서 유대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하만의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다. 욥기의 주제어를 고난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이야기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기 때문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찬양하는 부분과 더 크게 역사해달라고 간청하는 부분으로 균등하게 나누어진다. 잠언915개 구절에는 분별력 있고 유익한 삶을 위한 실제적인 지침들이 나타난다. 때늦은 깨달음이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까닭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솔로몬의 전도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30세 미만의 유대 남자들은 결혼생활의 성에 관한 입문서 격인 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사야서는 성경66권의 축소판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의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확정된 사실로 명확히 선포한 탓에 인기투표에서 그만 꼴찌를 차지하고 말았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고난을 몹시 슬퍼했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다. 에스겔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유다의 징계에 대해 먼저 설명한 뒤에 기쁨에 대해 설명했는데, 각각 24장씩 균등하게 배분하여 기록을 남겼다. 에스겔이 성전에 대한 기대를 진작시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을 동안, 다니엘은 바벨론 왕국의 권력자들에게 이방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신명기와 유사하다. 요엘의 시대에 파괴적인 메뚜기재앙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유다를 침략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요 3:16)지금 기독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예수교' 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교파를 따라서 '장로교'니 '감리교'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맨 처음에 기독교를 무어라고 불렀을까요?1. 기독교의 첫 이름기독교는 맨 처음에는 그냥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성경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도 계시겠지만,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책으로 되어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 신약이 기독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을 펴보면 맨 처음에 나오는 네 권의 책은 전부 '복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 복음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 1절을 보면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그리고 마가복음 1장 15절을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주님이 전한 말씀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기독교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이 말은 한문 글자 뜻대로 '복된 소리'란 뜻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기쁜 소식', 또는 "좋은 뉴스(good news)'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기독교 메시지를 '좋은 뉴스', 또는 '기쁜 뉴스'라고 불렀습니다.전에 아테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지식과 소식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소식이라고 하면 큰 관심을 갖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뉴스는 누구든지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TV나 라디오를 들을 때에 뉴스를 많이 듣습니다. 왜 우리가 신문을 사서 읽습니까? 그것은 바로 신문 안에 뉴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마는, 우리 민족은 일본이 항복했다고 하는 뉴스를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십지어 어떤 이는 기뻐서 날뛰다가 뇌출혈로 죽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뉴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큰 뉴스도 있고 작은 뉴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연말이 되면 금년에는 제일 큰 뉴스가 무엇이었는지 선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우주가 창조되고,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로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이었을까요? 또는 동양에서 제일 큰 뉴스는 무엇이었습니까? 징기스칸이 200만 대군을 몰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간 것이었을까요? 이 소식은 정말 대단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면 서양에서는 무엇이 가장 큰 뉴스였을까요? 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콜롬부스가 대서양을 횡단해서 신 대륙을 발견한 것이었을까요?이러한 소식들은 물론 굉장한 뉴스거리에 속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국에서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이었을까요? 신라가 반도를 통일한 사건이었을까요? 아니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것이었을까요? 아마 그 시대에 신문이 있었다면 이러한 사건들은 당연히 빅 뉴스로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뉴스라고 해서 모두 다 " 좋은 뉴스"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은 큰 뉴스지만, 좋은 뉴스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뉴스인 동시에 또한 제일 좋은 뉴스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또한 좋은 뉴스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좋은 뉴스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이 항복했다고 하는 소식은 한국 민족에게는 좋은 뉴스입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좋은 뉴스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뉴스는 크고 좋은 뉴스이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뉴스가 되지 못하는 뉴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일 큰 뉴스이면서, 또한 제일 기쁘고,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뉴스가 있을까요? 성경은 바로 이러한 뉴스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제가 바로 이런 뉴스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2. 우주 최대의 뉴스기독교가 전하는 메시지는 우주가 생긴 이후에 제일 크고 기쁜 뉴스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들은 뉴스 중데 가장 좋은 뉴스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좋은 뉴스입니다. 복음은 북태평양에 사는 에스키모인이나, 남양군도에 사는 흑인들, 그리고 백인이나 황인종 모두에게 다 기쁨을 주는 뉴스입니다. 그래서 처음 기독교를 전한 사람들은 기독교 메시지를 그냥 복음, 즉 '좋은 뉴스'라고 소개했습니다. 자 그러면 그들이 전한 뉴스의 내용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가 전하는 좋은 뉴스를 간단하게 요약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자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제부터 이 말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은 첫째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천지와 인간을 만드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뉴스는 우주적인 뉴스입니다. 이것은 온 우주에 선포되어야 할 큰 뉴스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3. 하나님의 사랑여기에서 말하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짐승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그것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으나, 특별히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전하는 첫째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는 민족과 민족이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은 슬픔이나 고통, 시기와 미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귀한 것을 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생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녀입니다. 아마 부모 중에 외아들을 둔 사람이 있디면, 그에게 있어서 그 아들처럼 귀중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외아들을 주셨다고 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돕고 구원하고,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모든 민족들이 듣고 놀랄 만한 큰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식은 천지가 듣고 진동할 만한 뉴스입니다.또한 성경은 "누구든지 그(외아들)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예비해 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만 알아도 여러분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종교이며, 독생자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이며,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는 종교입니다. 이러한 소식은 모든 인류가 갈구하고, 또 듣기는 원하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전하는 소식은 제일 크고 좋은 뉴스이며, 또 누구에게나 필요한 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기독교를 전한 사람들은 그 소식을 그냥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뉴스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앞에서 우리는 이 내용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이 세상에는 영적, 육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가난하며(호4:6), 생활에서도 가난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러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심아담의 타락이후 온 인류는 사단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원죄라는 족쇄가 그들을 묶어 우상과 사신을 섬기며 방탕과 질병 속에서 저주의 사슬에 매어 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러한 마귀의 사슬에서 포로 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심죄로 눈이 멀어 천국과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는 인류에게 믿음 안에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령한 눈을 열어 주시는 분입니다.- 눈먼 자를 자유케 하심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자유케 하신 분입니다.(행10:38) 길가의 풀 한포기도 돌맹이에 눌리면 누렇게 시들어 버리고 말 듯, 인류도 마귀의 압박에 눌려 영적, 도덕적, 생활적으로 눌려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권세로 우리를 풀어놓아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예수님의 이름“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는 대답한바 있습니다.(마 16:15이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는 교회가 성장한다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with) 계시고 우리 안에(in) 내주하시고 우리 위에(upon)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중에서 우리 위에 임재하시는 성령은 초자연적인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 이러한 성령의 권능을 특별히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말할수 있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는 성령에 대해 열려 있고 그분의 은사와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는 교회이다.초대 교회는 핍박 가운데에서도 성령의 위로와 권능으로 성장하였다. 20세기 이후에도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는 교파를 초월하여 큰 부흥을 경험하였다. 오늘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된 것도 성령께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사역, 신유 사역, 선교와 대사회 사역 등에 기름부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사역을 원하는 교회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구하고 의지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영적인 세계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배운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영적인 은사나 축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비결 가운데 특별히 전이의 원리가 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사람의 안수 기도를 받거나 그런 사람의 강의를 들을 때 기름은 전이될 수 있다. 또 기름부음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을 읽거나 그런 사람과 대화할 때 전이될 수 있다. 그 책이 설사 오래 전에 저술되었다 하더라도 저자가 성령의 사람이었다면 그 기름부으심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이될 수 있다. 성령의 기름은 영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전이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엘리야의 기름부으심이 엘리사에게 전이된 경우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고 그런 영감을 받기까지 부지런히 엘리야를 쫓아다녔다. 길갈, 벧엘, 그리고 여리고까지 엘리야를 따라 다녔고 기름부으심을 달라고 간청했다. 그 결과 그는 강한 권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믿음의 사람을 만나고 따라가야 한다.디모데후서 1장 6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4시간 경배와 기도를 드리라는 명령을 하셨다.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 향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때를 그린 요한계시록에서도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드린다. 이 향은 바로 성도의 기도인 것이다(계 5:8).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성령께서는 더 강력한 기도 운동을 일으키신다. 필자는 몇 년 전 미국 교회성장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던 게리 맥킨토시(Gary McIntosh) 박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교회컨설팅 분야에서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교회성장학자였다. 맥킨토시 박사는 한국교회의 기도의 열정에 대해 칭찬하면서 미국에서도 기도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교회가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하며 그러한 훈련을 통하여 기도의 능력과 파장이 더욱 넓어지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성장하기 원하는 교회는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 운동의 전략도 필요하다.조지 바나(George Barna)가 말한 것처럼 기도에 대해 가르치고 기도 모임을 활성화하고 기도 응답의 내용에 대해 찬양하고 간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과 구역의 기도가 생활화될 때 교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미국 휴스턴의 챔피온 포레스트 침례교회(Champion Forest Baptist Church)의 기도 사역은 많은 교회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이 교회는 기도하는 별실에서 한 주간 내내 기도 사역을 하면서 매주 약 150개의 새로운 기도 응답들을 체험하고 있다. 기도요청은 그 교회 교인뿐 아니라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약 400여 명의 기도 사역자들이 매일 기도하고 있고, 기도요청 카드와 응답 카드들은 매주 수백 통이 나가고 있다. 이 교회의 기도방은 교회에서 가장 분주한 방이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방이다. 이러한 기도 사역을 통해 그 교회는 12년 만에 5배로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다먼 슉(Damon Shooks) 목사는 피로 물러갈찌어다. 너는 패배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를 결박하노라.” 성장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권세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믿음의 용사들만이 마지막 때에 강력한 영혼의 추수를 하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영적 전쟁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해 나가자!세계선교에 대한 꿈을 품자성장하는 교회는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교회이다. 필자가 영국에 있을 때 엔샴(Eynsham)이라는 마을의 한 성공회 교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교회에 대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의 교인 수는 약 150명 정도였는데 세계선교에 대한 의식이 있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각 나라의 선교사들이나 기독교 지도자들을 모시고 그 국가의 기독교에 대한 특강과 설교를 듣고 중보기도를 하는 교회였다. 필자가 한국교회에 대해 강의한 후에 그 교회 교인들은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를 해 주었다. 그 때 필자는 마음 속으로 “교회는 크지 않지만 교인들의 의식은 세계적이구나”하며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다.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 15)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제자들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에서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계 복음화에 대한 꿈을 심어주셨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요 14:12)이라고 격려하고 비전을 제시해 주셨다. 한국교회도 21세기를 맞아 선교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모두 다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선교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세계선교에 대한 꿈을 심어줄 때 교회는 정체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조용기 목사님은 일찍부터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셨다. 영어와 여러 외국어로 설교하고 전 세계 만방에 복음을 증거하는 꿈을 가졌다. 외국어고통을 겪고 있다. 2006년도에 이혼한 커플이 거의 13만 쌍에 이를 정도로 부부간 관계도 파괴되고 있다.오늘날 재물이나 사회적 환경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과 희망이다. 필자가 올해 2월 달에 화장실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케냐의 빈민촌을 방문했을 때 발견한 것은 절망의 바이러스였다. 그들에게는 당면한 물질보다도 삶에 대한 희망이 더 필요해 보였다. 올해 3월 달에는 홍콩에 가서 4차원의 영성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홍콩에서 수십 개의 빌딩을 가지고 있는 어느 크리스천 재벌의 집에 초청을 받게 되었다. 그 때 그 재벌 회장과 사모님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돈으로도, 학식으로도, 환경의 조건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의 병이다.교회가 하나님 말씀과 복음의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과 희망을 주어야만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은 모두 다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있는 교회이다. 치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여러분은 육체와 마음에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가? 하늘을 향해 믿음의 스위치를 올리라. 그러면 하늘로부터 치유의 능력의 전기가 통하게 될 것이다. 교회 안에 치유의 전기가 임해야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다.불신자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라올해 2월 달에 아프리카 케냐에 가서 목회자들을 위하여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 영성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다. 그 때 구속복음교회(Redeemed Gospel Church)를 창시한 키퉁가(Kitunga)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분은 1974년에 빈민가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는 2만 명이 넘는 성도들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이 목사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2천 개의 교회를 가진 교단으로 발전시켰다.필자는 이 교회의 주일날 3부 예배에서 설교한 후에 키퉁가 목사님이 개척한 최초의 빈민가 교회를광을 돌리는 것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루이스 플라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첫 단계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끊는 것이고 그 다음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쇠퇴하는 교회에는 원망과 불평의 말들이 돌아다니지만 성장하는 교회에는 축복과 감사의 말들이 넘쳐난다.찬미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찬양의 깊이를 좌우한다. 찬양 기도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에 초점을 두고 묵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감탄과 찬양이 우러나오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시 107: 8),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시 59: 16∼17),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 (시 68:19),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해 (히 13:8),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시 71:22),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 (계 4:8) 등에 대해 계속 찬양할 수 있다. 성장하는 교회에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가 언제나 끊이지 않는다. 찬양 기도는 그 교회 성도들의 영성의 바로미터이다.리차드 포스터는 우리의 찬양에 기뻐하시고 감동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눈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존재하시면서 그저 무감각하게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 입술의 작은 고백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으시고 우리의 사랑에 감동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 주님은 정말로 기뻐하신다.성경은 우리에게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면한다 (시 40:3; 149:1). 이것은 우리가 항상 새로운 찬양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찬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감사와 감격으로 찬양해야 한다. 새 마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새로운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해다.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을까? 1938년 윌리엄 T 그랜트의 후원 하에 알리 복 박사에 의해 장기종단 연구가 시작되었다. 1930년대 말 입학한 하버드 학생 중 신체적, 심리적으로 건강한 268명의 삶을 72년간 추적하면서 인간의 성장에 관한 역사상 가장 폭넓고 장기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67년 베일런트가 이 연구를 이어받았다. 연구대상자들이 40줄에 들었을 때 상원의원, 대통령, 베스트셀러작가 등 최초 예상대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도 많았지만, 50세에는 정신질환을 겪은 대상자도 1/3이나 되었다. 베일런트가 밝혀낸 행복의 조건은 지능, 학력, 조상, 유복한 어린시절, 콜레스테롤수치, 정기 건강검진등은 아니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첫째 조건은 고통에 대처하는 ‘건강한 방어기제’였다. 이어서 둘째는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술, 운동, 비만이었다. 이중 5,6가지를 충족한 사람의 절반은 80세에도 행복했고, 3가지 미만의 조건을 갖춘사람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었고 이미 사망했을 확률이 3배나 높았다. 그 밖에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은 대학시절의 규칙적 운동유무가 50세의 우울증 진단과 관련이 있었고 80세 이후에 행복을 결정짓는 최대의 조건은 지식이나 계급이 아니라 47세 까지 형성한 ‘인간관계’였다. 부모, 형제, 친구관계가 행복한 노후를 예견한다. 1939년 글루엑(이너시티) 연구와 터먼연구(IQ150 이상 여성)가 그랜트 연구에 포함되었다. 이너시티 집단은 이너시티 소년원에 수감된 학생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평범한 소년들로 대부분 이민자의 자녀로 가난하고 유급한 경험들이 있는 집단이었다. 이너시티 집단 중 교육수준, 음주, 흡연, 비만의 네가지 요소만 통제된다면 계급,IQ,수입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베일런트는 말한다. 그보다는 결혼과 믿음이 행복의 조건이었다. 행복연구의 대가 에드 디너는 베일런트의 연구가 일반화하기 쉽지 않은 대상자만을 선택했지만 깊이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하며 깊이는 덜하지만, 145국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아니라. 피넬리의 생에를 통해 얻을수 있는 진정한 교훈은 그는 불우한 유년기에 얽메이지 않았으며 어린 시절 자기가 가지지못했던 것들을 자식들에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그는 인생초년에 성공적 삶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모두 경험했다. 열악한 환경에 일곱 형제, 부모의 불화, 어머니의 우울증, 무학 아버지… 이 연구 이전까지 이런 요소들이 한 인간을 비참한 노년으로 귀결시키는지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연구원들은 이 소년을 ‘유순하고 두려움에 질려 움츠러들어 있으며 좋은 인상을 주려 노력하지만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에 덧붙여 정신과 의사는 그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기록했다. 그 후 피델리의 가정은 형제가 서로 단단히 결속했으며 군에 복무한 후 제대군인원호지원금을 받아 마련한 주택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으며, 자기 일을 성취했고, 자식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며,매사에 감사할 줄 알았다. 47세 때는 대 저택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고, 65세에는 사업지분을 동료들에게 모두 되돌려주고 아내와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과거에 대해서도 행복하게 기억했으며 부모에대해서도 좋게 이야기 할 정도로 관용의 폭이 넓어져 있었다. 그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은 그를 키워준 누이보다도 다정다감하고 부유했던 삼촌 부부였다. 삼촌부부는 그에게 모델이 되었다. 그는 불우한 유년기에 얽매이지 않았고 50년간 아내를 사랑했으며, 몸에 병이 생겨도 스스로 환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피델리가 주는 교훈은 객관적 건강상태보다는 주관적 건강상태가 성공적인 노화의 조건이 된다는 것과, 인간관계의 회복은 감사하는 자세와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들여다 볼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50십년동안 아내를 사랑했으며 몸에 병이 생겼을 때조차도 아프다고 느낀 적이없었다. 그는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쌓아올린 전부를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었다.과거가 미래를 예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조금 실망스럽지만) 온통 여름 별장을 짓는 일이었다. 하지만 70세에 은퇴한 후 병원을 떠나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의학윤리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헤이스팅스연구소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그는 자잘한 삶의 걱정에 떠나 있었다. 점점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에덤카슨의 청소년기는 정체성 과업을 이루는데 지연되고 실패했지만 마지막 30년은 2500년 전에 공자가 예측한 대로 이루어 졌다. 50에 지천명 60세에 이순, 70에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무의식적 방어기제 중에는 투사, 수동공격성, 분열, 행동화, 환상과 같은 기제들이 사춘기나 인격장애의 특성과 연관짓기도 한다. 이런 미 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자기도취,자위,사디즘, 마조히즘, 흠잡기, 아동학대, 과음 등의 죄악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한 방어기제로 발전하기도한다. 승화,유머,이타주의,억제 등이다. 젊어서 창녀가 늙어서 수녀가 되고 성적욕망에 잡혔던 젋은 귀족이 늙어 성 프란체스코가 되는것과 같다. 정서적 발달과 생물학적 뇌의 연결경로 특히 욕망과 이성을 통합하는 능력은 40세 이후 꾸준히 발달한다.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성숙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행운도 필요하고 계속적인 두뇌의 발달이 필요하다. 알코올 중독이나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뇌 손상은 개인을 미성숙상태에 머물게 한다. 뉴욕시 법정 변호사 빌로먼은 불행했지만 상류사회의 관습에 따라 유려한 외모로 자신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는 휴가도 즐기지 않았고 사회참여도 없었다. 수입이 많았지만 1%만을 기부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사업실패로 자살했지만, 그는 부유한대 저택의 좋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그의 형도 건강하게 성장한 연구대상자였다. 대학때도 졸업후 전투에 참여해서도 빌 로먼은 책임감이 강하고 큰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었다. 그러 큰 원인중 하나는 알코올 중동이었으나 그는 우리의 질문서에 마지막까지 항상 건강하다, 만족하다, 좋다, 문제없다로 일관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삶은 건강과 거리가 멀었다, 당뇨,우울,폐색증등 병도 많았고 비만에 알코올의존, 흡연으로 노년에는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었고 주위엔 친구도없었고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의 세 번째 부인이 그를 극진히 대했지만 그는 그녀를 함부로 무시하며 대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늘 어린시절이나 20대라고 대답했다, 현재 행복하다고 느낀적은 없다. 죽기직전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린 평행선을 그리며 각자 살았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럭키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양가 조부모는 모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모두 경관,사업등을 하며 평범하게 성공했다. 럭키는 대학졸업후 두개의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그는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건강은 객관적으로 볼 때 페인보다도 좋지 않았다. 고열압,췌장염, 비만이있다. 하지만 늘 활력이 있었고 70세에는 그의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럭키는 오랫동안 사귄 친구들이 많았고 가정도 화목했으며 술도 적당히 즐겼고 금연했다. 스스로는 사교활동을 안하는 편이라 했지만, 요트클럽 회장에 주말마다 스키, 럭비를 즐기고 교회활동도 열심이었다. 45세 때 “은퇴 후에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휴양시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스키를 즐기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사후세계를 믿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결혼생활도 매우 행복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여행하고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는 은퇴후 65세에는 시나리오르 쓰기도 하고 수채화를 그리는 등 취미활동과 해양학연구위원을 배움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럭키의 수입은 페인의 10%수준이었지만 그보다 건강했다. 60세 이후에 행복과불행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음 여석가를 통해 분류했다. 첫째, 신체질환 유무, 둘째, 신체적강에 대한 주관척 평가에 따라, 셋째, 신체적 무능상태의 지속 정도에 따라. 넷째, 1980년대 반발이 거세졌다. 유전자 결정론과 6년, 10년, 30년에 걸친 인성변화연구들이 인격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발표했다. 젊은 시절 내성적인사람이나, 신경증 환자는 중년에도 내성작인 사람이고 신경증 환자였다. 멀쩡한 사람은 수 십년이 지나도 멀쩡했다. 2000년 무렵 나는 행복한 노년에 이른 내 연구 대상자들이 1945년 당시에는 C등급을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겪은 이들을 제외하면 하버드 생들의 노년의 적응 양상은 그들의 대학시절 적응양상에 거의 일치했다. 즉 행복하고 건강한 청소년기는 행복한 노년을 예견하는 결정적 지표였다. 그러나 삶을 흑백논리고 규정할 수 없듯이 역설은 가능하다. 인격은 기질과 성격의 총합이다. 기질은 변하기 어렵지만, 성격은 변한다. 인격을 개인의 적응 양상으로 정의하여 학대를 받은 여성이 성인이 되어 구타하는 남성과 결혼하는가, 여성보호소 운영에 참여하는가 로 구분한다면, 인격은 많은 변화를 거칠 것이다. 성격은 환경과 성숙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70년 동안 꾸준히 성숙한다. 불행을 극복하는 회복 탄력성 역시 변화를 이끈다. 회복탄력성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 방어기제를 꾸준히 발달시킨다. 물론 그것이 외모와 같은 유전적인 것일 때도 많고, 성인이 되어서는 지적능력이나 방어기제일 때도 많다. 즉 인과관계가 서로 뒤집힐 때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유대는 그저 존재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섭취하고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너시티 대상자 41명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들이 47세에 이르렀을 때 정상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보다 만성실업이나 빈곤선 이하 생활을 하는 확률은 높지 않았다. 70세에 불행하고 병약한 삶을 사는 사람은 단 9명 뿐이었다. 즉 행복한 청소년 기는 행복한 노년을 예견하지만 불행한 청소년기가 불행한 노년을 예견하지는 못한다. 삶은 변화하고 수 많은 불연속성으
열두 바구니 기적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2∼13)?예수님께서 안드레의 믿음에 역사하심으로, 한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량에 불과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만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마친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복을 주시되 우리가 그 복을 낭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살되 그 복을 어려운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어 더불어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우리가 믿음으로 내어 놓을 때 예수님께서 차고 넘치게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 한 사람이 믿음으로 내어 놓은 것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수만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을 정도로 풍성히 되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믿음을 심고, 주님께서 그 믿음에 풍성히 주신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좁은 문이 생명문이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인생은 항상 문을 찾는 것으로 시작하고 종결합니다. 우리는 유치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초븡중븡고등학교, 대학교의 문을 두드려 직장의 문을 찾고 취직하여 출세의 문을 두드리고 결혼의 문을 두드립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의 문을 찾고 두드리는데 찾는 중에 두 가지 문에 맞딱뜨려집니다. 하나는 좁은 문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들어가는데 힘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습니다. 반면 넓은 문은 쉽고 편하기 때문누가 우리에게 해를 입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에도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의 가죽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아버지께서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예비하고 계십니다.두 주인 -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2∼24)??만일 우리에게 눈이 없다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몸에 어두움이 꽉 차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빛과 눈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모든 것이 다 보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어디로 가는지’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지으셨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세상을 보면 옳고 그른 것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죽음 저 건너편에 영생의 나라도 보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캄캄하고 답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서 삽니다. 이 세상의 부귀공명만 따라서 살다가 순식간에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습니다. 하루는 귀찮아서 그릇에 난 구멍을 막아 버렸다가 할머니께 콩나물 다 썩는다고 혼난적도 있습니다. 콩나물이 물을 하나도 못 먹는것처럼 보여도 잘 크는 것처럼 성경을 읽는것도 마찬가지 입니다.?어떤 것은 읽으면 이름만 잔뜩 있고 귀찮아 못읽겠다 싶은 것도 있지만 무조건 ‘믿습니다’하고 다 읽으면 신기하게 영적인 양식이 됩니다. 신령한 양식인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은 우리 영혼이 사는 양식이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신령한 양식을 주옵소서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먹을 수 있도록 신령한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육신의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필요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채워주십니다.“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b)?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미 다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진행되는 과정일 뿐입니다.??나는 기도할 때마다 내가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하나도 남김없이 내게 다 이루어지도록 믿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 원수마귀는 아예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 버렸고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 역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늘에서 이미 계획한 뜻을 거역하고 옆길로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뜻대로 나가면 매를 맞습니다. 설사 매를 안 맞는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아서 고생스럽습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닦아 놓으신 고속도로를 버리고 자기가 길을 닦으며 나아가면 자신만 고생할 뿐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하나님이 다 결정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내가 이 세상에 아내를 사랑해서 아내에게 무엇을 해 줄때도 칭찬을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들에게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나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누가 인정하든 말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십니다. 부모 공경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했다고 떠벌리고 자랑하면 그것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넘치는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상 받는 구제와 받지 못하는 구제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4)우리가 구제할 때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는 자기의 전토를 다 팔아서 구제에 내놓았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나바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그의 선행에는 아무리 진실된 마음으로 해도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신력(信力)이 인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머리털 하나 세지 못하고 자기 키도 크게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맹세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맹세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예수님이 내 보증이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 없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귀한 것입니다.아담의 갈비뼈 -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1∼32)신명기 24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남자가 결혼한 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내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낮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계수할 때에도 여자는 숫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 여자를 무시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부부일신으로 만드신 데서 연유한다고 봐야 합니다. ?하와는 원래 아담의 갈비뼈로 피조되었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자연적으로 여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숫자를 헤아릴때 여자의 숫자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짓고 타락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성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9장 3절로 1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묻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남자가 무슨 연유에서든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그러자 주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