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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기업 실패사례 분석 평가A+최고예요
    국내기업 실패사례 분석인사관리교수님경영정보학과200863000홍길동어렸을 적 나는 과자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과자를 즐겨 먹는다. 특히 과자에 대한 추억이 많은 곳이 바로 군시절이다. 군시절에 소위 과자파티라고 하여 과자를 먹던 때를 회상하며 리포트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과자파티를 할때 같은 소대원들끼리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걷어 20000원 조금 넘게 과자를 PX에서 사서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그 밑에 신문지 하나를 깔고 과자를 먹는게 주말 중 우리 소대원들의 몇 개 안되는 군시절 행복 중 하나였다. 그때 그 많은 과자들 중에 나는 유독 오예스와 에이스라는 과자를 굉장히 좋아했다. 리포트 주제를 받으면서 어떤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군시절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추억이 깃들어 있는 오예스와 에이스의 기업 해태제과의 그룹인 나의 추억속에 해태그룹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해태그룹은 과자류·청량음료·농산물가공업체인 해태제과(주)를 모기업으로 하여 형성된 기업집단으로 1997년 부도로 해체되었다. 해태그룹의 역사는 1945년 해태제과합명회사를 설립하여 제과업으로 성장해 왔다. 1968년에 현재의 해태농수산(주) 및 전신인 감귤냉장판매(주)를 설립하여 농수산물의 수집·가공처리 및 아이스크림 제조업에 진출하였다. 1973년에는 미국의 베아트릭스사와의 합작투자 회사인 메도골드코리아를 인수하여 해태유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각종 낙농제품의 제조·가공 및 국내판매, 청량음료 제조·목장경영·축산물판매 등으로 사업분야를 확장하였으며, 1974년에는 해태관광(주)을 설립하여 관광업에도 진출하였다. 1978년 해태상사(주)를 설립하여 무역업에 진출하였으며 1979년 해태전자㈜를 설립하여 사업부문을 다각화했는데 이는 67년 롯데가 등장, 제과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다른 부문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77년 박병규 회장이 타계하자 1981년 3인 동거체제는 끝이 나고 박병규 회장의 아들인 박건배 (주)코래드를 설립하였고 1988년 해태음료가 해태농수산을 흡수합병하였다. 해태제과식품(주)·해태유업(주)·해태주조(주)·해태관광(주)·해태농업개발(주)·해태상사(주)·해태유통(주)·해태 타이거즈 등이 있다. 1997년 11월 주력기업인 해태제과(주)가 부도를 냈고, 이듬해 15개 계열사 중 해태상사(주)와 해태 타이거즈만 남고 해체되었다. 1999년 해태산업의 제과사업부문과 해태가루비는 해태제과에 흡수·합병되었고 해태상사, 해태중공업, 대한포장, 해태텔레콤, 해태I&C 등은 파산하였다. 1999년 12월 해태상사(주)는 법원으로부터 재산보전 처분이 결정되어, 2000년 5월부터 법정관리가 시작되었고, 11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2001년 7월 30일 해태타이거즈는 기아에 인수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위 내용과 같이 해태그룹은 1997년 부도가 나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15개의 계열사에 1만 4천여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재계순위 24위인 해태그룹이였다. 그런 명실상부한 해태그룹이 부도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당시의 해태그룹은 인켈, 나우정밀 인수 등 전자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미진금속을 모태로 설립한 해태중공업에서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하면서 부채가 크게 증가해 자금난을 겪게 된다. 해태그룹은 특히 1997년 8월21일에 만기가 된 어음 1천1백98억 원 중 2백억 원을 다음날인 22일 오후까지 결제하지 못했으나 조흥은행과 한일은행 등이 자금을 지원, 부도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더구나 1997년 들어 한보사태, 기아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국가부도사태인 IMF사태의 진입으로 결국 부도위기에 처하게 됐으며, 급기야 보유 부동산 및 투자주식 일부를 매각하는 자구책을 마련하였으나 결국 1997년 11월1일부로 해태제과를 비롯한 해태그룹 3개 계열사가 부도를 냈다. 부도를 낸 해태제과, 해태전자, 대한포장공업 등 해태 3개 계열사는 지난달 31일 조흥은행 남산지점에 돌아온 어음 1백억 원 등 모두 1백96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 해태전자, 해태중공업, 해태산업 등 3개사는 법정관리를 각각 신청한다. 화의신청을 한 해태제과는 법원의 재산 보전처분이 떨어지기 전에 부도를 냄으로써 화의개시결정이 내려지기까지 3개월가량 당좌거래가 중단돼 현금으로만 영업을 하게 된다. 97년 11월 부도가 난뒤 99년 비로소 법정관리를 인가받아 회생을 모색 했던 해태 전자. 해태의 위기는 국내 오디오브랜드 1위 업체인 인켈을 인수한데서 싹트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96년 11월 인켈과 합병으로 해태는 전자업계의 새 기대주로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LG전자등 대형 전자업체들을 따돌리고 인켈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해태는 전자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있다는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해태는 인켈 인수를 통해 '식품'이라는 그룹 이미지를 벗고 멀티미디어 전자그룹을 지향한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97년 2월부터 인켈 인수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부도'에 이르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태그룹의 주 실패요인은 오너의 자질과 경영 능력 부족이다. 불과 32세가 되던 해 젊은 총수가 된 박건배 회장 밑바닥을 철두철미하게 체험할 기회 없이 곧바로 임원진에 합류하였다. 젊음과 패기를 가진 그룹의 총수는 그를 제어할 만한 아버지나 원로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연히 사업다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기존에 해오던 사업 이외에 다른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아버지의 그늘을 탈피하여 자신만의 사업 영역을 키워가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박건배 회장의 해태그룹 경영에서 볼 수 있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1981년 경영권을 인수하여 1983년에 회장으로 취임하고 난 다음에 각사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후에 박 회장이ㅡ 행보는 지나치게 대외활동이 많았다. 박 회장은 1984년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 부총재, 1984~1986년 대한역도연맹 회장, 1990년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 12대 총재, 1990년 세계 보이스카우트 연맹 이사 척하는 과정에서 오너가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해도 사업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배치하는 일이 힘든데, 이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상태에서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한 부분을 사회활동에 투자하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 든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우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업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잘 알지 못한 채 진출한 신규 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연결된다. 그런데 잘 알려면 예외적으로 비범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전부를 걸고 일한다고 이야기할정도로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오너가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자전기와 중공업에 진출하면서 대외활동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이 부분들이 한때 재계 순위 24위까지 올랐던 해태그룹의 몰락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레포트를 준비하면서 여러 해태그룹의 정보를 찾아보다 보니 박건배 회장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박건배 회장의 경영 자질 부족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는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밑바닥의 경험도 해보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기업이 총수가 되고 아버지가 너무 큰 그늘이였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사업다각화에 큰 비중을 뒀다고 위에서도 언급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박건배 회장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이 자기가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만약 기존에 해오던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면 어땠을까? 해태제과를 중점으로 키워 롯데 등 제과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더라도 굳건히 해태제과에 중점을 두어서 세계 속의 제과 기업으로 키웠다면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대외활동을 줄이고 자율경영체제가 아닌 회사가 돌아가는 일에 하나하나 열정을 가지고 기업을 진두지휘 하였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오너의 자질과 경영 능력 부족이 해태그룹의 몰락에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다. 무능한 2세보다는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반 자의반으로 사업세계 몸을 담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박건배 회장이 그 말과 맞는 인물인 것 같다. 사업이란 그야말로 전부를 건다는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분야중에 하나인데 재벌 2세의 박건배 회장은 여유로운 가정 환경 속에서 아버지의 축적한 부로 여유롭게 이런저런 경험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몰입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너의 자질 부족을 미리 알아 차리고 기업들에서 유능한 전문경영인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면 해태그룹이 그렇게 힘없이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개선방안은 해태제과를 중점으로 하여 해태제과를 세계속의 해태제과를 중점을 두고 천천히 전자전기,중공업에 조금씩 발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 전자전기,중공업에 입지를 다져야 했다. 너무 급하게 규모를 확장한 부분이 아쉽다. 그리고 자율경영체제를 절대로 선택하면 안됐다. 자기의 능력을 정확하게 입증해 보인적도 없는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총수가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몰입하지도 않고 대외활동에 무게중심을 많이 쏟고 자율경영체제로 전자전기와 중공업에서의 입지를 다지려고 했다는 점은 굉장한 무모한 행동이며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으로 경영능력부족 가장 큰 요인이다. 오너의 자질과 경영 능력 부족으로 큰 규모의 대기업도 단기간 내 무너지게 하는 것을 보니 그때 해태의 주주총회를 통해 박건배 회장이 퇴임하고 유능한 전문경영인으로 경영권을 승계 하였으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 것 같다. 2세의 한계를 유실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저의 최종 꿈도 무역회사의 경영자가 되는 것이 꿈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기업의 여러 가지 방면으로의 실패사례를 지켜보며 흥미로운 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경영자가 꿈이면서도 이런 실례를 많은 방면으로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분야에 관심을 더 두면서 찾아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레포트의 목적으로 말고도 관심있는 국내기업들의 여러방면의 자료들도
    경영/경제| 2011.07.02| 3페이지| 1,500원| 조회(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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