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태권도의 역사일단 무예란 자기보호 내지 방어의 본능과 종족보호의 본능을 위해 있으며 본능을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신체활동을 하며 생활도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맨손투쟁 형태인 투기와 자위무술이 발달되었다. 태권도 또한 이러한 이유로 발생하게 되었고, 한민족 무예의 뿌리는 동이무예이며 동이겨례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동이겨례는 배달겨례를 말하며 배달겨례는 바로 한민족을 일컫는다.이에 앞서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큰 틀을 잡아보자면, 일단 자기 방어동작에서 비롯되었고, 신라 때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일본 가라데, 중국 무술 등이 난입이 했고, 거듭된 단합과 분열, 태권도계 표류까지 이르러 결국 김운용의 등장으로 태권도계 정립, 확립이 된다.삼국시대에 존재하던 무예의 형태는 이러하다.먼저 고구려의 무예이다. 고구려는 삼국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크고, 상무정신이 강했던 국가이다. 여기서 상무정신이란 무술을 높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만큼 고구려에선 무술에 대한 비중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무적 전통은 한, 위, 진, 수, 당 등의 대외세력과 세력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구려의 대표적 무예집단에는 선배(조의선인)이 있는데, 이 조의선인 출신에는 연개소문 장군과 을지문덕 장군 등이 있다. 고구려 민족고유에 대한 확실한 고증은 1910년 1930년 1937년 일본인에 의해 이루어진 고구려 유적 조사단의 답사에 의해서 이다. 이 답사는 고구려 수도 “환구성 통구 지방”에서 최초로 이루어 졌고, 삼실총의 장사도, 무용총의 겨루기도, 각저총의 씨름도가 여기에 포함되며 특히 무용총의 겨루기도에서 두 무사가 겨루는 자세가 태권도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이 뿐만 아니라 위략, 삼국지동이전, 양서주서 및 여러 고분들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강력한 군사기술을 보유함과 두 가지 이상의 도수무예가 존재, 발로 공격하는 기법이 사용됨을 알 수가 있다.다음은 삼국시대 중 백제의 무예이다.백제는 성읍국가를 거느리는 현재의 한반도를 약 992년 동안 지배하고 있던 국가이다. 신라의 무예는 백제의 건국, 고구려의 침입 등 세력 팽창과 영토확장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면서 발달되었다. 신라의 대표적 무예진답에는 화랑도가 있고, 이 화랑도는 무사도의 용맹과 충, 효를 기조로 국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정신이 강하였으며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바탕으로 삼았으며 국가인재를 배출하였다.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사군이충(충성으로 임금을 섬긴다.), 임전무퇴(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사친이효(효도로서 어버이를 섬긴다.), 살생유택(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교우이신(믿음으로 벗을 사귄다.) 이렇게 5가지가 있다.신라의 사료에는 화랑도에 대한 기록들,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이 있으며 이것들로 화랑들이 수련한 다양한 무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호국무예가 중교와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굴암의 금강 역사상의 주먹 모양은 현재 바른 주먹모양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다음은 고려시대의 무예이다.고려는 신라와 발해로 나뉘어 있던 한민족을 왕건이 통일함으로써 시작하였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무예이름은 “수박희”, “오병수박희”, “태껸”이었고, 수박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박희의 기술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어 수박이 어떤 특징의 무예인지는 알기 어렵다. 약간의 특징을 써보자면 무인들에게 매우 성행했던 보편적 무예였고 벼슬과 승진에 직결된 필수적인 무예였다. 그리고 휘두르는 기술을 포함하는 입식타격의 무예였다고 한다.고려사에 보면 “이의민이 맨주먹으로 기둥을 치니 서까래가 움직였고, 두 경승이 주먹으로 벽을 치니 주먹이 벽을 뚫고 나갔다”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수박희는 관람 유희의 성격도 가질 만큼 기교적인 다양성을 가진 무예이다. 고려사에 “왕은 상춘성에 남아서 수박희를 보았다”, “왕은 화비궁에 행하시어 수박희를 보았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다음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탁견, 수벽, 탁견희, 권법 등의 이기초기술이라는 것이다. 다른 여러 무예에 비해 오늘날의 태권도와 가장 직접적으로 역사적 연관을 가진 무예인 택견은 조선후기부터 지금까지 존속하는 무예이며 동시에 한국 무예로서의 독특성을 가진 무예이다. 이에 관한 사료는 해동죽지, 재물보 ,혜원 신윤복, 대쾌도, 송덕기 선생의 인터뷰 등이 있다.일제강점기 이후의 한국무예에는 5대 기간도장의 설립과 분화가 나타난다.8.15 광복 직후 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조선연무관, YMCA권법부가 설립된다. 이 5대 관들은 분화하여 10개관으로 나뉘었고, 1978년 태권도 총 본관 이사회결의에 따라 통합이 된다. 10관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1관-송무관(전정웅), 2관-한무관(이교윤), 3관-창무관(이남석), 4관-무덕관(최남도), 5관-오도관(곽병오), 6관-강덕원(이금홍), 7관-정도관(이용우), 8관-지도관(이종우), 9관-청도관(엄운규), 10관-관리관(김인석)이 있다.청도관은 해방직후 가장먼저 창설된 도장으로 이원국관장이 개관하였다. 이원국은 중,고등학교 과정을 일본에서 마치고 가라데를 수련하였다 1944년 한국으로 건너와 영신학교 대강당에서 당수도를 가르치고 1946년 2월 정식으로 ‘당수도 청도관’간판을 내걸고 후진을 양성 하였다 2대 손덕성, 3대 엄운규가 있다. 이원국의 밀항 이후 청도관은 이용우의 정도관, 고재천의 청룡관, 최홍희의 오도관을 분화하였다.송무관은 1946년 5월 개성 동흥동에서 노병직에 의해 정식으로 개관하였고 이원국와 일본 유학시절, 송도관의 후나고시 선생 밑에서 가라데를 배웠다. 관명의 유래는 소나무의 푸르고 역동적인 기개라는 상징적의미를 가지고 있고 2대 관장은 이영섭, 3대관장은 강원식으로 명맥을 이어갔다.무덕관은 황기에 의해 서울 용산역 부근 철도국에서 운수부우회 당수도부로 시작하였고 모든 관원들이 철도국 직원이었으며, 수련장소 또한 철도국건물에서 임시로 만들어 지도했다고 한다. 5대 기간도장 중에 가장 관세가 컸다. 황기는 이원국과 노병직와 교분이 두터웠으나, 단증 문제로 신경중심)1961 9/16 대한태수도협회창설1962 10월 제 43회 전국 체육대회 시범종목을 참가1963 2/23 대한체육회에 28번째로 정식경기단체로 가맹1963 10/4 전주에서 개최된 제 44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참가1965 8/5 태수도>태권도로 명칭 변경 (대한태권도협회)1966 3월 최홍희 [국제 태권도 연맹(ITF)]결성1971 3/20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국기 태권도’ 휘호를 하사받음1972 11/30 국기원건립1973 2/6 중앙도장을 태권도의 전당 ‘국기원’으로 명명1973 5/25 제 1회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국기원)1973 5/28 세계 태권도 연맹(WTF)창립1988 서울올림픽에서 시범종목 채택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김제경선수 금메달 (남자 +80KG 급)1996 12/10 정부에서 10개의 한국 문화상징물 지정(한글, 태권도, 한복, 김치와 불고기, 불국사와 석굴암, 고려인삼, 탈춤, 세계적 예술인, 설악산, 종묘제례악)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채택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80KG 급 문대성 선수 금메달2008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2012 런던올림픽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식 종목품새품새 설명에 앞서 태권도의 ‘한’철학에 대해서 알아보겠다.태권도의 태권은 음이고 도는 양이다. 도 태권이 동이라면 도는 정이며 태권이 형이하학적 개념이라면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이 처럼 음양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태권도에서 도는 무도의 본질로 작용하며 그 근본원리가 된다.이러한 ‘한’철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손과 발의 기술체계인 서기, 막기, 지르기, 차기 등 공방의 기법을 일정한 틀로 구성된 학습체계가 바로 품새인 것이다. 품새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심신의 조화로운 활동을 위한 철학적 행위예술이라 할 수 있다. 품새의 ‘한’철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수련하는 과정에서 심미적 예술성에 탐닉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주 오래전엔 품새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고 형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었다. 그것이 품세라다. 역은 곧 변화라는 뜻이다. 변화라는 것은 친지만물의 기본적 성격을 말하는데 팔괘를 정리한다. 팔괘에는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이 있다. 팰괘가 변화하는 것은 음과 양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고대로부터 동양인들은 변화의 중심점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태극’이라고 하였다.태극 품새란 우주의 근본을 뜻하는 음양의 팔괘선을 따라 동작을 구성한 것으로 한민족 태극 사상의 5대 정신인 평화의 정신, 배달의 정신, 창조의 정신, 광명의 정신, 무궁의 정신이 담겨있다.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한 유단자 품새에는 단군의 사상, 홍익인간의 사상, 십진사상, 음양사상, ‘한’사상이 함양되어 있다. 십진 품새의 십장생에는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이 있다. 품과 동작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동작은 모든 개체의 동작 하나를 간주하고 움직이는 상태의 모양을 동작 이라하고, 그 동작의 결과는 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품새에는 품새 선이 있는데 이 품새 선은 품새를 할 때 품새 선에 따라 수련하기위해 있는 것이다. 품새 선이란 품새를 할 때 발의 위치와 그 이동방향을 선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또 품새에 있어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기합이다. 기합이란 기의 모음을 뜻하고 에너지를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정신을 흐트리지 않고 한 곳에 모아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여 어떠한 목적 수행을 위한 집중력을 드러내는 방편이기도하다.다음은 팔괘에 대한 설명이다. 앞서 말했듯이 팔괘에는 여덟 가지로 된 부호를 자연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여덟 가지 현상인 하늘, 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데, 이것의 상징은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이라고 한다.먼저 건은 하늘과 양을 나타내고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시초의 뜻을 지닌다. 태는 연못을 나타내며 속으로 단단하고 겉으로 부드럽다는 뜻을 지닌다. 이는 불을 나타내며 뜨겁고 밝은 것을 내포하고, 진은 우레를 나타내고 큰 힘과 위엄의.
진보 언론에 대하여진보란?진보란 원래 변화에 대한 적극적 내지 급진적 태도를 말하는 개념이어서 사회주의 같은 이념적 좌표를 의미하는 좌파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최근까지도 이 두 용어는 같은 뜻을 의미하는 동의어처럼 혼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진보란 다름 아닌 사회체제의 진보, 즉 사회주의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했다. 이 같은 진보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확고한 믿음이 되었으며, 건국 후 최초로 진보라는 단어를 정당 명칭에 붙인 진보당의 조봉암 역시 진보주의를 사회체제의 발전을 지향하는 사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일어난 소련과 동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붕괴는 이 같은 유물론적 진보사관에 파산선고를 내린 것에 다름없었다.그 결과 공산권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용어 사용에 있어서도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공산주의를 지키려는 세력이 보수파가 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진보파가 되고 말았다. 이념갈등이 첨예한 한국의 경우는 파급력이 더욱 컸는데 소련의 붕괴로부터 큰 충격을 받은 한국 좌파운동권은 퇴조를 맞게 되었다. 좌파혁명세력들 특히 친북혁명세력 중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주사파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진보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 대신 진보라는 단어는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용어가 되었다. 제17대 대통령선거 패배 후 통합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손학규가 새로운 진보노선을 내걸면서 자신의 진보는 좌도, 우도 아닌 진보라고 말했듯이 진보라는 용어는 이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철학적 개념이나 좌우이념과 무관한 또는 이를 초월하는 의미로 쓰이는 상황이 되었다. 제18대 총선 후 출범한 정세균 체제 하의 민주당이 그릇된 보수와 낡은 진보를 극복하고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3의 발전모델을 제시한 당 지도부의 뉴 민주당선언안을 둘러싸고 현재 치열한 당내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제 중판단 기준에 따라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져 왔다.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용어로는 진보 외에도 진화라든가 발전, 개발, 성장, 혁신 등과 같은 용어들도 있다.진보의 의미는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천해 왔으며 시대마다 진보를 자임하고 주도한 세력도 달라져 왔다. 16, 17, 18세기 서양근대사의 전환기에는 진보를 주도한 세력이 과학기술적 진보를 신봉하던 지식인과 자본가계급,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대변세력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근대 경제질서와 국가가 확립되는 과정에서는 노동자, 빈민, 그리고 이들을 정신적, 정치적으로 대변한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전망이 진보로 간주되었다. 그 후 사회주의적 진보를 추구한 세력은 크게 보아 국가사회주의적 혁명주의 노선과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 노선으로 양분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전자가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였다. 전자는 90년대부터 자본주의적 정치와 경제의 도입을 통한 개혁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후자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전자에 의해 수정주의 혹은 개량주의로 비판을 받아왔고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새로운 자본주의 및 보수주의와 새로운 사회운동에 의해 양면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실사회주의권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정치질서의 도입이 새로운 진보인 것 같은 현상이, 서구 자본주의권에서는 계급초월적인 신 사회운동이 ‘새로운 진보’인 것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을 각각 과학기술주의적 진보관, 자본주의적 진보관, 사회주의적 진보관, 참여민주주의적 진보관이라고 한다면, 이 다양한 진보관들은 사실상 표면적인 양사오가는 달리 어느 하나다 다른 것들을 대체시키거나 절멸시킨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단지 어떤 하나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공존, 경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양상은 20세기를 통해 세계사적으로 진행되었고,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진보관들 사이의 경합 양상이 특히 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지게 되었다.진다. 서양사상의 주도권을 유럽에서 이어받은 미국은 과학의 발달을 기초로 한 선진사회이다. 다시 말하면 관념적 세계에서 과학적 세계로 이행을 했다고 보면 되는데 이로 인해 실용주의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고 거기에 기반을 둔 진보주의 철학이 점차 대두되기 시작했다.① 진보주의의 역사-19세기 말에 발단하여 191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 융성기를 맞이했으며, 50년대 중엽에 소멸한 미국의 신교육운동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총칭한다.교육을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기본적 수단>이라고 보고 교사중심주의·교과만능주의에 반대하여 아동의 자유·활동·흥미·자발성을 존중하는 아동중심주의의 입장에 서서 구체적인 생활경험을 통한 학습을 강조하였다.② 진보주의의 시대적 관점에서 본 발생 배경-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사상 유래 없는 풍요와 인간다운 생활을 확보해 준 반면에 비인간화 현상이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교육적인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서양 각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학교 및 대안학교 운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③ 진보주의의 교육 역사적 관점에서 본 발생 배경-교사중심의 전통학교에서는 아동의 인격이나 자발성 그리고 개인적인 특수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개혁운동은 `아동으로부터의 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제시하였다.다양한 좌파세력들한국의 좌파세력은 몇 갈래로 나뉘는데, 첫째는 혁명적인 방법으로 해방된 조선에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려 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및 그 전통을 이어받은 그 후의 지하혁명조직들이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박헌영은 해방직후에는 평양의 소련군정당국의 지도와 지원 아래에서 그리고 그 후에는 김일성과 그의 조선노동당의 지도 아래에서 인민민주주의정권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미군정과 우파세력의 저지로 뜻대로 되지 않자 곧바로 혁명적 방식의 신 전술 로 전환하여 전국적인 봉기를 꾀하고 대한민국이 건립된 후에는 빨치산작전으로 이를 파괴하려 했으며 끝내는온건좌익세력들이다. 이들은 해방정국에서 재빨리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정국을 선도했다. 그러나 보수우파의 협력거부와 당 내외 조선공산당계열의 견제로 무력화되었다. 여운형의 조선인민당은 사회노동당-근로인민당으로 이어졌으나 그의 암살을 계기로 이들 온건좌익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붕괴되고 말았다. 근로인민당의 일부 온건파들은 건국 후 조봉암의 진보당에 합류했다.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조봉암은 진보당을 한국적 진보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창당한다고 선언했다. 진보당은 조봉암의 처형으로 창당 1년여 만에 붕괴되었으나 잔류세력은 4.19이후 혁신계의 주류세력을 이루어 5공화국 때까지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셋째는 건국 후 최초로 결성된 조소앙의 사회당과 그 후에 창당된 사회민주주의 또는 민주사회주의세력이다. 이들은 의회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사회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정통 좌익세력과는 구별된다. 특히 1950년대 후반 이후의 민주사회주의세력은 반공노선을 선명하게 표명함으로써 다른 좌파들과 구별되었다. 서상일의 민혁당과 정화암의 민사당은 이런 의미에서 한국 진보정당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혁당은 한국에서 최초로 영국의 패이비언 사회주의노선을 따랐다. 진보당과 이들 두 온건좌파정당들은 김일성의 남침과 인권탄압을 맹렬히 규탄함으로써 서구 사회민주주의정당과 같은 면모를 보였다. 이들의 온건좌파정당 전통은 1960~70년대 박정희 전두환 정권 기간에 사회대중당 등 혁신정당으로 이어졌으나 80년대에 주사파를 비롯한 혁명적 사회의 세력이 출현함으로써 쇠퇴했다.넷째는 1980년대의 민족민주민중노선에 입각한 NL파의 좌파통일운동세력이다. 대부분 민족주의자들인 이들 중 상당수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따르면서 무조건적인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이른바 종북파가 되었다. 이들 주사파세력은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빠져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와 주한미군철수를 지지함으로써 사실상 과거 박헌영계의 혁명적 좌익세력처럼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들 주사파 집단은 김대중 노무현서 평등파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종북파라고 비판한 민노당 내 NL파 핵심세력도 이들에게 동조하고 있다.다섯째는 198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해 가고 있는 여러 갈래의 진보적인 지식인 그룹이다. 이들은 평등, 분배, 사회적 공정, 시장만능주의 배격, 신자유주의 반대, 환경 등을 강조하는 학자 전문가들이며 그 중 상당수가 시민단체들을 이끌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정통 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참여 또는 지원했지만 많은 수는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채 반보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지식인들은 여러 유형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좌파적 시민 사회론자들, 급진적 민주주의론자, 진보적 민족주의자, 그리고 각종 진보성향의 자유주의자 등 다양한 이념을 갖고 있다.온건진보세력의 역사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원리로 하는 나라지만 건국과정에서부터 흔히 좌파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구 반동의 사회체제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온건한 진보세력은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혁명적 극좌세력과는 달리, 건국 당시부터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그리고 더불어 잘 사는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현대 민주주의국가의 뼈대를 만들고 발전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첫째, 중경임시정부가 건국에 대비해서 기본요강으로 삼기위해 1941년에 확정한 건국강령의 의의와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국강령은 1948년에 건국 후 최초의 온건사회주의정당인 사회당을 창당한 삼균주의자 조소앙이 기초한 것이다. 삼균주의는 최초의 한국판 사회민주주의노선이며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영향을 미쳐 한국의 자유 시장 경제체제에 많은 진보적 규정을 넣게 했다.둘째, 해방정국에서 보수 세력이 보인 진보 세력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45년 9월, 나중에 한국 민주당을 창당한 보수 세력의 지도자 송진우, 조병옥, 이인 등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항할 주목할 만한 강령을 공표했다. 이 강령 제3항은 향후의 한국정치를 위해 보수와 진보 두 갈래의 정당을 만들다.
진화는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에 의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판매용으로 찍은 1,170권의 초판은 꺼내놓기가 무섭게 당일로 몽땅 다 팔려나가는 진기록을 세우며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이 창조주의 은총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결과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도발 그 자체였다.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 : 종의기원 출간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종의 기원’ 출간 소식을 접한 두 백작 부인의 얘기가 당시 상황을 잘 전해준다. “얘기 들으셨어요? 다윈 선생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냈다는데, 글쎄 원숭이가 진화하여 우리가 되었다고 했다네요.” “어찌 그리 남세스러운 말이 있답니까? 제발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랍시다. 만일 혹시 그것이 사실이라도 절대로 남들이 모르게 합시다.” 1844년 1월 11일 다윈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식물학자 후커(Joseph Hooker)에게 쓴 편지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 분포와 남미 대륙에서 발견한 화석 자료, 그리고 비글호 항해에서 돌아온 후에 수집한 온갖 자료들을 바탕으로 생물의 종은 결코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하며 이는 “마치 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은” 심경이라고 쓰고 있다.“영국성공회” 우리가 그동안 다윈을 오해한것에 대해 사과한다조물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의 기원’의 불온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다윈에게 가해진 종교적 또는 사회적 탄압은 사실 그리 심하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는 다윈의 주검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시는 것에 대해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형질이 자연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면 자연선택의 궁극적인 결과로 신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종인 인간이 진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영국의 종교계는 다윈의 이론을 신의 인간 창조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다분히 진보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다윈의 해를 맞이하며 영국의 성공회가 “우리가 그 동안 당신을 오해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에 관한 다윈의 속뜻을 오해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적 분위기로 볼 때 성공회의 의도는 당연히 전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금년에는 로마 교황청도 다윈의 이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이 참에 종교와 과학간의 진솔한 비움, 귀 기울임, 그리고 받아들임이 일어나길 기대해본다.모든생명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복잡한 생물들이 보다 단순한 생물들로부터 진화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단순한 생물들의 구조가 모두 언제나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보다 복잡한 생물들도 등장한 것이지 모든 생물들이 좀더 복잡하게 변화하는 방향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세포생물 중에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변화도 겪지 않고 살아 남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분화된 것들도 있다. 이렇듯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얼마 전에 타계한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는 그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1989)’에서 만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를 담은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한 종의 인간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도 아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amoral)이며 비효율적인 자연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다윈의 자연선택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서양의 자연관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Scala Naturae 즉 ‘거대한 존재의 사슬(Great Chain of Being)’ 개념이었다. 거대한 사다리의 저 밑바닥에는 박테리아와 원생생물 등 이른바 단세포생물들이 있고 위로 오를수록 곤충,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드디어 맨 꼭대기에는 인간이 서 있다고 믿었다. 다윈 자신은 원래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을 펼쳐 보인다’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evolvere’에서 파생되어 나온 ‘evolution’이란 용어의 사용을 꺼려했다. 그 대신 그는 ‘세대간 돌연변이(transmutation)’ 또는 '수정된 상속(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복잡한 생물들이 보다 단순한 생물들로부터 진화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단순한 생물들의 구조가 모두 언제나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보다 복잡한 생물들도 등장한 것이지 모든 생물들이 좀더 복잡하게 변화하는 방향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세포생물 중에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변화도 겪지 않고 살아 남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분화된 것들도 있다. 이렇듯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얼마 전에 타계한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는 그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1989)’에서 만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를 담은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한 종의 인간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도 아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amoral)이며 비효율적인 자연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다윈의 자연선택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서양의 자연관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Scala Naturae 즉 ‘거대한 존재의 사슬(Great Chain of Being)’ 개념이었다. 거대한 사다리의 저 밑바닥에는 박테리아와 원생생물 등 이른바 단세포생물들이 있고 위로 오를수록 곤충,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드디어 맨 꼭대기에는 인간이 서 있다고 믿었다. 다윈 자신은 원래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을 펼쳐 보인다’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evolvere’에서 파생되어 나온 ‘evolution’이란 용어의 사용을 꺼려했다. 그 대신 그는 ‘세대간 돌연변이(transmutation)’ 또는 '수정된 상속(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종의 기원’이 판을 거듭하며 다윈은 결국 너무나 굳어버린 용어인 ‘evolution’을 받아들이지만, 그의 일기에는 이 세상의 온갖 생명체들을 논할 때 “나는 결코 어느 것이 하등하거나 고등하다고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진보라는 말 속에는 목적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 만일 진보가 ‘향상’이라는 개념으로 쓰인 것이라면 거의 모든 생물들이 나타내 보이는 적응 현상들은 다 나름대로 예전 상태보다 향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개선이나 효율의 관점에서 진보를 얘기하려면 각각의 생물이 처해 있는 환경 내에서 분석해야 한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잣대에 맞춰 다른 동물들의 능력을 비교할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을 비교하면 초음파를 보낸 후 그것이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한 박쥐들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인간보다 훨씬 진보했다고 평가해야 옳을 일이다. 따라서 진화의 역사에서 객관적인 진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이다.이 같은 진보의 개념을 인간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한 것이 바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다.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철학이나 골튼(Francis Galton)의 우생학은 사실 언명만으로 당위언명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의 언저리를 위험하게 넘나들었다. 다윈 자신은 그의 이론을 인간사에 적용시키는 일보다 진화의 메커니즘 자체에 훨씬 더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던 그의 ‘전도사들’의 성급한 진보주의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이데올로기와 가치 논쟁에 휘말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진화는 상대적인 개념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란 철저하게 상대적인 개념이다. 생물은 결코 절대적인 수준에서 미래지향적인 진보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만 하면 선택 받는다는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 진화의 기본원리이다. 친구와 함께 곰을 피해 달아나던 한 철학자(어떤 이들은 수학자라고 말하기도 한다)의 이야기가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칫 곰이 무척 느린 동물이라고 착각하지만 평지나 내리막길에서 곰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한참 헐레벌떡 달리던 철학자(또는 수학자)가 홀연 걸음을 멈추고 신발끈을 고쳐 매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다 쓸데없는 일일세. 우린 결코 저 곰보다 빨리 달릴 수 없네.” 그러자 그는 “내가 저 곰보다 빨리 달릴 필요는 없네. 그저 자네보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진로소주 일본진출 성공사례1. (주)진로 연혁1924년 평남 용강에서 진천양주상회(眞泉釀酎商會)로 설립되어 1951년 3월 부산 동화양조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53년 10월 서울로 이전하고 영등포구 신길동에 공장을 신축하였다. 1954년 서광주조(주), 1966년 진로주조(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가, 1975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1973년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으며, 1986년 (주)진로종합유통을 설립하고, 1988년 풍원양조(주)를 인수하였다.1989년 연합전선(주) 경영권을 인수하고, 광고대행사 지티비를 설립하였다. 1991년 진로-COORS 합작맥주회사 설립을 조인하고 1992년 진로위스키(주)를 흡수합병하였다. 2000년 위스키사업을 진로발렌타인(주)에 양도하였고 2003년 회사정리절차를 개시하였고 2004년 회사정리계획 인가가 결정되었다. 2005년 회사정리절차 종결이 결정되면서 하이트맥주(주)에 편입되었다. 2006년 생수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주)석수와퓨리스를 설립하였고 2007년 마산공장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여 (주)엠엘을 설립하였다.2. 해외시장 진출 배경정부는 국산양주 시장을 육성하여 외국산양주 수입을 줄일 목적으로 1976년부터 주류 수출 실적에 따른 원료의 수입, 가공비율을 인상하였다. 또한 국산양주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국내 생산이 가능한 주류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이후 82년까지 국내경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장기불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출용 진로소주는 1979년에 일본시장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기업성장을 위해서는 사업다변화와 함께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전사 차원의 전략추진이었다.3. 시장 환경 조사1) 문화적 조사?-거리의 근접성일반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바라는 기업들은 자국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국가나 언어가 비슷한 국가의 시장에 우선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사업 환경과 문화가 다르면 기업들은 위협과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통제가 용이하고 관리하기가 편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비슷한 생활양식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 및 쌀 소비 문화권에 속해 있고, 소주라는 독특한 주류를 소비하고 있어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유리하다. 왜냐하면 주류소비문화에 관한 소비자들의 관심사항이나 구매 특징 등에 있어서 동일한 소비자 그룹을 형성할 수 있어 국내의 전략을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했다.-?표적 소비자층이 존재특정시장에 자사제품을 가장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인이나 조직을 표적그룹으로 선정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포지셔닝 하는 전략은 신 시장에의 성공적 진출을 위해 종종 사용되어 진다. 즉 해외에 있는 근로자들이나 해외 이주자들을 표적소비자층으로 선정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포지셔닝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처음 일본에 상륙한 진로 소주도 재일 동포들을 주 고객으로 포지셔닝 했다. 즉 재일 동포들의 존재는 진로가 일본시장에 진출함에 있어 일종의 불안감 해소 및 촉매 역할을 했다.2) 경제적 환경-?일본의 주류시장 규모일본의 인구는 약 1억2천5백만 명으로 한국의 2.8배에 해당하며, 주류시장의 볼륨도 한국의 약 4배에 해당한다. 또한 일본인의 일인당 주류소비량은 81리터로 우리나라의 일인당 57리터에 비해 많은 편이다. 또한 가장 관심사인 소주시장은 매년 성장 중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진로가 진출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었다.?-일본의 유통구조⑴영세한 소매업체 중심의 유통시스템: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소매업체수가 많으며 이는 유통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⑵다단계의 유통경로: 제조업체에서 소매점으로 바로 연결되는 제품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개가 도매점을 거친다.⑶제조업체는 계열화를 통한 유통전반을 장악하고 있다.4. 현지 마케팅 전략1) 제품 전략?-제품의 이미지 개선 시도일본 현지에서 진로는 소주가 아닌 "진로"라는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제품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였다. 현재 진로는 일본 내 평론가들에 의해서 '진로는 소주라는 주종을 떠나 "진로는 진로"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고 까지 평가받고 있다. 인지도 조사를 해 보아도 진로가 소주가 아니라는 소비자 응답이 많다. 즉, 일본 소비자들에게 진로는 소주도 아니고, 위스키도 아닌 그냥 진로일 뿐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제품의 현지화진로는 일본으로 소주를 처음 수출할 때 일본인 취향에 맞게 일본 수출용 소주를 따로 개발하였다. 일본 애주가들은 단맛이 나는 소주를 싫어하기 때문에 국내 시판용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당도를 크게 낮추었다. 또한 소주를 다른 음료와 칵테일해서 마시는 습성을 겨냥해 담백하면서도 순수한 맛을 내어 칵테일하기에 적당하게 개발하였다. 이처럼 현지에 맞도록 철저하게 품질을 적응시켜 수출용 진로 소주를 따로 개발하였다. 또한 제품 디자인도 현지화 하였는데, 투명한 초록색 병에 빨간색의 'JINRO'가 새겨진 노란색 라벨을 채택함으로써 이국적인 느낌과 고급스러운 인상을 풍기게 하였다. 이처럼 진로는 맛뿐만 아니라 용기와 로고 라벨 디자인 등 제품을 현지화 하였다.?-신제품 개발일본은 '진로 캔'도 선보였다. 맥주처럼 마실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상품이었다. 역시 다른 상품보다 가격은 높게 책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각 편의점에서 '진로 캔'의 매출은 1위를 기록하였다. 단순하게 진로 소주만을 고집하지 않고 각 시장에 알맞은 상품은 계속 개발해야 한다.2) 가격 전략-고 가격 고품질 정책일반적으로 국내기업들은 미국이나 EU,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 진출할 때 저 가격 정책을 사용하는데 반해, 진로는 고 가격 고품질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일본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 일단 저급품으로 인식된 제품은 품질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중급품이나 고급품으로 전환되기가 어렵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엄청난 광고비와 마케팅 노력 및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처음부터 고 가격 고품질 정책을 고수하기로 하였다. 또한 일본 소비자들이 품질에는 까다롭지만 가격에는 덜 민감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시장 점유율 확대보다는 이익극대화에 목표를 두어, 고 가격 고품질 전략을 택하였다. 진로 소주는 다른 일본 소주보다 가격이 13%~16% 정도 비싼데, 이런 고 가격은 "위스키에 가까운 고급 소주"라는 이미지를 뿌리내리게 하였다. 불황으로 양주 마시기가 부담스러운 애주가들에게 "양주 같은 소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런 고 가격 고품질 정책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고 가격 정책과 함께 고급 제품의 이미지를 남기도록 브랜드 관리를 하였다.3) 촉진 전략-매체를 통한 촉진고액의 TV광고비를 치루면서 일본 업체와 광고 전면전을 펼쳐 소비자 인지 율을 높였다.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진로는 어디까지나 진로", "누구나 즐겁게 마시는 술"이라는 광고 전략을 세웠다. 또한 비록 진로 소주가 한국 고유의 상표이긴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는 것과 고가격의 고품질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탈소주, 무국적, 고가격' 소주임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진로의 진로로서의 이미지가 일본인들에 인식될 수 있었다.
창의적 문제 해결력Ⅰ. 서론창의성은 사고와 행동에서 변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이전에 연결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진기한 아이디어나 개념들과 결합하는 것은 변화를 요구한다. 또한 교실에서 창의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하며, 비록 오류가 있는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교실 분위기는 창의적인 행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필수 요소이다. 창의적인 사고에서의 대부분의 장애 요소는 새롭거나 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비롯되는 불안정한 감정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은 자기가 한 반응에 대하여 다른 학생들이나 교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불안정한 감정을 갖게 될 때 그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더욱 두드러진 현상은 학생들의 반응에 대하여 단순히 옳고 그름만을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것은 맞느냐?”라고 직접적으로 답의 옳고 그름만을 판단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교사나 다른 동료들이 자기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신뢰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자기의 능력을 갖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그 정답의 옳고 그름만에 초점을 두고 오랫동안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커지는 반면에, 옳고 그름에 대해 항상 판단을 하도록 교육받은 학생들은 자기의 의견에 대한 논리의 타당성을 주장할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후자의 경우, 그 결과는 자신감, 만족감을 갖게 할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탐색에 대하여도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Ⅱ. 창의성(창의력)의 의미창의성은 무엇인가? 「창의성은 새로움에 이르게 하는 개인의 사고 관련 특성』이다. 새로움은 창의적 사고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면서 결정적인 특성이다. 창의적 사고의 최종적인 판정 기준은 이 새로움(독창성)에 있으며 특정한 사고과정이 아무리 고상하고 신기하다고 해도 새로움이 없융통성한 가지 문제 사태에 대하여 접근하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가하는 사고 능력이다.3. 사고의 독창성기존 지식의 통합이나 재구성이 아니라 새로운 반응의 도출을 의미한다.4. 사고의 정교성주어진 문제를 세분화하여 전개시키거나 문제에 포함된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고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5. 사고의 조직성복잡한 문제사태를 보다 간결하게 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사물, 사상간의 구조적, 기능적 관련성을 고려한다.6. 지각적 개방성문제사태에 대하여 민감하게 사실대로의 지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장독립적 지각 같은 것을 의미한다.7. 성격적 요인창의적 성격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판에 대한 개방적 성격, 독립적 판단 태도, 전통적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 현대 지식에 대한 회의적 태도 등으로 이루어진다.Ⅳ. 창의적 문제해결(CPS)의 의미‘창의적 문제해결’은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면서도 창의성과 문제해결에 각기 포함되는 의미로 혹은 문제해결과 상호 교환되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여기서는 먼저 창의성, 문제해결력, 창의적 문제해결에 대한 고찰을 통해 창의적 문제해결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창의성’이란 ‘문제상황에 적절한 새롭고 독창적인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창의성의 개념은 인지적 측면과 정의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인지적 측면에는 확산적 사고와 활동, 일반적 영역에서의 지식 기반, 특정 영역에서의 지식 기반, 독창성, 유창성, 융통성, 추상성, 정교성, 재정의, 민감성, 제한에 대한 저항성 등이 포함되며, 정의적 측면에는 애매 모호함에 대한 참을성과 개방성, 동기 및 동기화, 과제에 초점 맞추기, 인내심,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성, 위험 감수 의지, 자신이나 결정에 대한 확신 등이 포함된다.‘문제해결’에 있어서 문제란 목표와 장애물로 구성된다. 목표에 도달하는데 장애가 있어서 즉각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문제해결자는 현재 상태의 노력 결과로서의 산출물은 문제해결자의 목표상태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아동들의 문제해결은 그 자신에게 창의적인 과정이라고 보고, 문제해결의 정의 자체를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내린다.창의성, 문제해결, 문제해결과 창의적인 사고과정을 연결짓는 연구들을 종합하면, ‘창의적 문제해결’이란 ‘일반적인 영역의 지식과 기능 기반, 동기적 요인, 특정영역의 지식과 기능기반을 토대로 확산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산출물 혹은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사고과정’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이상에서 제시된 창의적 문제해결력의 다섯 가지 요소들은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 과정을 통해서 학습자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Ⅴ. 창의적 문제해결(CPS)의 중요성창의성을 특성으로 보느냐, 인지과정으로 보느냐에 따라 교육가능성의 여부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즉, 창의성을 인지과정으로 볼 때 교육가능성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창의성 교육은 아직까지는 초보단계이므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시대는 갈수록 창의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그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큰 특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관심을 가지며, 지식의 축적보다는 지식의 창출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사고의 특성은 곧 창의성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창의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가 더욱더 부각되는 인간의 인지적?정서적 정신 작용의 하나이다. 기존의 교육에서 강조되었던 추론이나 논리는 이들 정신작용을 대신할 수 있는 정보산업기자제의 발달로 인해 그 가치가 차츰 약화되고, 대신에 정보를 획득하고 획득된 정보를 기초로 사고하며, 새로운 해결책을 고안해내는 등 보다 더 고차원적인 지적 기능이 강조되어 가고 있다. 이런 고차원의 지적 기능 중에서도 창의성은 갈수록 더욱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창의적 사은 이 3가지 요소가 일반적인 문제해결 과정에서 관여하는 것과는 그 질적 측면에서 상당히 다르다고 본다. 그 질적 측면의 차이로 인해 학자들은 문제해결이라는 용어 앞에 ‘창의적’(creative)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며 일반적 문제해결 과정과 차별화하고 있다.Ⅶ. 창의적 문제해결(CPS)의 단계1. 문제 이해하기여러분이 적절한 문제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음을 확신하라. 적절한 문제인지, 바른 방식으로 문제를 진술하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은 여러분이 몇 개의 생산적인 대답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구성요소의 2가지 단계는 :1) 사실 발견CPS의 주요한 목표와 시작점을 인지하고 선택하라. 많은 곤란한 상태의 양상을 여러 각도에서 탐구하고, 여러분이 노력할 CPS에 대한 주요한 초점이 될 양상을 결정하라2) 문제 발견많은 가능성 있는 문제 진술을 산출하고 사용할 구체적 문제 진술을 선택하고 구조화하라.3) 아이디어 산출하기여러분이 노력할 CPS에 대한 초점이나 방향이 분명히 세워지고, 문제 진술이 목표화되고 초점화되었다면 여러분은 해결책으로서 잠재력을 가진 아이디어를 산출해야 한다. 이 구성요소는 한 단계뿐이다.4) 아이디어 발견문제 진술에 반응하는 많은 새롭고, 색다른,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산하라. 그리고 나서 가장 유망한 가능성을 인지하라.2. 행동 계획하기여러분이 많은 새롭고 유망한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가졌다면 유용한 해결책이 되도록 그것들을 분석하고 정제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 구성요소에서 성공적인 해결책이나 행동계획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은 2개의 단계를 포함한다.1) 해결책 찾기가장 유망한 가능성을 주의 깊게 조사하고 잠재적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들 을 형성하고 구체화하라.2) 수용잠재적인 해결책을 탐구하고 성공적인 수행의 기회를 증진시키고, 저항을 극복하기 위 해 지지할 자원과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나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발전시키고, 여러분의 행동을 조정하고 필요에 따라을 해야 하며, 양이 질을 낳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산출해 내야한다는 것이다.판스는 창의적 문제 해결(Creative Problem Solving:CPS) 모델의 기본 가정과 틀은 오스본의 것과 유사하나 창의성과 문제 해결 과정을 한층 깊이 결부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한 모델을 더욱 정교하게 구상하여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Ⅸ. 창의적 문제해결(CPS)신장을 위한 ICT활용교육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와 방법 등을 계획하고 자기의 역할에 충실함은 물론 각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협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개진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ICT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이를 분석하여 결과물을 산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ICT를 활용한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창의적 사고 기능의 각 구성 요소 즉, 일반적 영역의 지식과 기능, 동기적 요인, 확산적?비판적 사고 기능 등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프로젝트 학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이와 같이 의견 개진과 함께 ICT라는 도구의 효율적 사용을 통하여 문제에 대한 답을 이끌어 내고 이를 결과물로 표현함으로써 창의적 문제해결과 함께 정보 생산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ICT를 활용한 프로젝트 기반 학습은 ICT가 주는 강력한 효과를 활용하여 학생 스스로 자료를 수집, 정리, 해석하여 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이르는 즉,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Ⅹ. 창의적 문제해결(CPS)신장을 위한 계발기법1. 시각적 사고어떠한 생각이나 상상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보거나 머리 속의 생각을 종이 위에 고정시 키는 것을 시각화라고 한다. 예를 들면, 건축가가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이라든가 과학자 가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을 스케치하는 것이라든가 또는 시인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