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서론 ? 오만과 편견의 재해석본론 ?Ⅰ. 신부와 편견 내용 요약-Ⅱ. 인도의 결혼제도-Ⅲ.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영화-Ⅳ. 소설은 영화화 되면서 자본과 기술정치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미침결론 ? 신부와 편견을 보고서소설의 영화화 수업 다음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인도영화는 제인 오스틴 원작 을 인도 문화에 맞게 각색해 제작한 영화이다. 자야가 큰언니 제인, 둘째는 라리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로 보면 되고, 셋째 융통성 제로 모범생인 동생이름 마야. 막내 말썽꾸러기 라키는 넷째 리디아역이다. 미스터 빙리는 발라지. 미스터 다아시는 미국인으로 나오는 다아시 이다. 위컴도 똑같이 위컴으로 나온다. 동생하고 트러블 있는 것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나온다.대략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인도의 작은 농촌에서 부모님과 세 자매와 함께 사는 라리타는 독서를 좋아하고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당차고 똑 부러지는 아가씨다. 라리타는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신랑의 친구들인 다아시와 발라지를 알게 되는데, 발라지는 인도계 영국인이고 다아시는 미국 호텔 재벌가의 아들이다. 피로연 파티를 계기로 명문가의 아들인 발라지는 라리타의 언니, 자야에게 마음을 뺐기고 다아시는 라리타에게 끌리게 되지만 다아시의 인도를 깔보는 듯한 태도 때문에 라리타의 마음은 돌아선다. 그 대신 다아시와는 오래된 원한이 있는 조니 위컴이 나타나서 라리타의 호감을 사게 된다. 하지만 집에는 콜리사부라는 미국회계사 일을 하는 인도인이 나타난다. 콜리는 사대주의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인마냥 미국을 찬양하고 인도를 비하한다. 이에 라리타는 직설적인 말들로 콜리에게 대답하며 올곧은 자신의 성격을 보여준다. 지속적인 콜리의 관심에도 라리타는 돈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사랑으로 결혼하려는 의지를 내비치면 콜리를 포기시켰다. 그러나 콜리는 라리타의 친구인 찬드라에게 구혼을 하고 찬드라는 콜리를 받아들인다. 이에 라리타 가족은 콜리의 결혼식을 보러 미국을 향하는데, 영국을 경유해서 가는 도중 자야와 라리타 가족은 발라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 곳에서 발라지 여동생에게 미국에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란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서 다아시를 만나게 된다. 다아시는 미국행 비행기에서 라리타에게 진심을 전하고 라리타는 다아시를 다시 보게 된다. 이 후 둘은 서로의 오해를 풀게 되고 자야와 발라지 또한 인도로 돌아와 오해를 풀고 결혼하게 된다.이렇듯 은 인도의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도영화의 특징들을 살려 잘 표현하였다. 예전에 결혼과 관련된 교양수업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인도에는 연애문화가 없고 ‘다우리’라는 엄청난 액수의 신부 지참금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집안에 4명의 딸이 있는 라리타 집안은 거의 저주에 가깝다. 신랑 집안에서는 지참금을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신부를 원하고, 신부 측에서는 지참금을 조금 주면서 조건이 좋은 신랑을 원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제도 때문에 인도에서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의사보다 양가의 이해합의가 맞아 떨어져야 성사되는 일종의 계약에 가깝다. 그리고 )인도 사회는 아직 보수적이라서 이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고 부부끼리 사이가 안 좋아지면 보통 여자가 참고 지낸다. 그리고 인도에는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계급에 속하는 집안끼리만 결혼을 한다. 만약 낮은 계급에 속하는 남자나 여자가 서로 연애하거나 결혼하려 한다면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고, 특이한 경우 이런 계급 갈등 때문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결혼은 전통적인 결혼을 거의 안하고 보통 1~2시간 안에 결혼식이 끝나며 연애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니 연애결혼을 많이들 한다. 그리고 인도와 비슷한 것이 한국도 지참금이 있지만 인도보다는 낮은 편이며,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인도에서는 여자가 한국여자처럼 독립하게 살지 않기 때문에 결혼 후 보통 시댁과 같이 살지만 한국은 부부끼리 따로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힘이 계속 높아져 이혼율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인도의 결혼문화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았을 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결혼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라리타가 외모만이 아닌 결단력 있는 마음까지 이쁘고 멋있어 보였다.다음으로 흔히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영화에 대해 알아보면, 뮤지컬적인 요소, 화려한 의상 등이 억지스럽고 과장되게 보여지는 특징이 있다. 뮤지컬적인 요소는 영화의 중간점검인 느낌이 많이 들고, 가사의 내용, 배우들의 표정들은 극중 인물의 심리나 영화의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6번의 뮤지컬 적 요소가 등장했다. 먼저 자야와 발라지가 서로 잘되 가는 것에 대한 축하와 콜리사부 신부 감으로 지목된 라리타를 위한 자매들의 위로(?), 조니위컴 마저 떠나면서 모든 남자가 떠난 후 허전해진 라리타의 마음을 노래한 것 등이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인도시장과 인도의 문화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뮤지컬화는 문맹률이 높은 인도의 특성을 반영하여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한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뮤지컬은 스토리 이해를 원활하게 해주었으며 스토리만의 전개로 지루해 질 수 있는 영화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발리우드영화는 매력적인 인도만의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인의 눈을 인도영화에 맞추게 하는 특징이 있다.
돼지의왕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모두가 숨을 쉬고 땅을 내딛는 이 현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아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라. 약간의 사소한 차이는 있겠지만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사회가 언제나 갑을관계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기업과 기업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존재하는 중 갑을관계는 꼭 형성된다. 이것이 힘에 의해서든, 돈에 의해서든, 어떠한 수단을 통해 존재하는데, 이를 학교에 빗대어 표현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연상호 감독의 2011년도 작품인 이라는 작품이다.이러한 갑을관계, 즉 약육강식의 현실을 군대나 학창 시절로 빗대어 표현한 작품은 많다. 이 작품 또한 그 중 하나로 나이 설정을 중1로 잡아 어리고 다른 작품에 비해 예상치 못한 전개가 있었다고 본다. 보통 의 엄석대처럼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며 학교 선생님마저 자유롭게 대하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 그리고 이에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낙심하고 엄석대의 종노릇을 하는 상황에 대한 처절함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반을 주름 잡는 아이들은 학업 성적이 좋아서 교사의 별 터치가 없고, 선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반에서 아이들 위에 우뚝 서 있다. 이런 아이들이 착하면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나 위계질서를 잡는답시고 다른 아이들을 희롱하여 괴롭히기에 반 아이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간다. 주인공 경민과 종석 또한 이유 없이 당하는 아이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분에 겨워하고 상황을 전복시키는 것을 꿈꾸지만 마냥 꿈으로만 생각해보지 실현 가능성이 아예 0이다. 이러던 와중 이들의 바램을 실현시켜 줄 인물이 등장하는데 철이다. 그는 학급의 우두머리 아이들에게 폭력위의 폭력으로 맞선다. 철이는 몇 번의 정학과 퇴학을 거치지만 굴하지 않고 살을 찌우는 것이 행복이나 자기 자신을 위한 행복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임을 모르고 살을 찌우는 돼지나 다름없던 아이들의 왕이 된다.이처럼 영화는 돼지의 왕이 기존 세력을 꺾고 새로운 왕으로 군림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돼지의 왕은 생각보다 약했으며 어머니의 힘겨운 생활을 보며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제 나온다. 원래 정상적으로는 돼지들은 왕을 따라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힘을 모아 이겨내 보고자 했던 기존 우두머리 세력들에 반항하여 새로운 왕을 만들어 내던지, 자신이 돼지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돼지의 왕에게 원한을 품는다. 그래서 철이, 돼지의 왕은 종석, 돼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이렇듯 잘못 표현 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결말들이 다른 작품과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에서는 권선징악이 다뤄졌는데, 이와 달리, 은 비극을 강조한 애니메이션이다.그리고 극 중 나이키 운동화와 게스 청바지, 이것들 또한 한시대의 부와 명예를 상징한다고 본다. 실제로 극의 배경으로 설정된 80년대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브랜드가 부의 상징이었다. 극에서 우두머리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다. 나이키 운동화는 지배적 질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인 셈이다. 또 하나 게스 청바지를 들 수 있다. 10만원이 넘어가는 게스 청바지 역시 부의 상징이며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다. 그러한 게스 청바지를 종석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입고 온다. 돼지 중 한 마리였던 종석이가 우두머리들의 전유물에 손을 댄 것이다. 빨간 상표가 있는 게스 청바지는 여자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입고 온 종석은 순식간에 그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결코 돼지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공고한 계급의식. 그 안을 침범한 종석이가 받은 댓가는 너무나도 큰 것 이었다.계급 구조 속에 갇힌 철, 경민, 종석 이외에 찬영이라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찬영은 새로 전학을 와서 종석의 반에 온 인물이다. 공부도 잘하고 낙천적인 성격에 인기를 받게 된 찬영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된 기존 억압세력들은 이를 제지하고자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한 민에 대해 찬영은 저항을 하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그리고 찬영은 스스로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권력 구조로 들어간다. 저항을 해서 아무런 소용도 없고 이대로 순응을 하는 것이 살아남는 거라고 내면화한 셈이다. 그리고 저항을 꿈꾸는 종석, 경민을 만류한다.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정보화 사회 혹은 과학기술혁명의 시대’ 라 일컬어질 정도로 기술이 급속한 변화를 격고 있으며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업과 정부는 본격적인 기술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국민의 일상생활도 각종 첨단 기술이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의 혜택 속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기술의 실체와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첨단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각종 이데올로기에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기술의 발전은 삶의 질 향상과 사회의 진보를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 사회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인간이 기술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현재의 시점은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깊은 인식과 시각정립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지만 우리는 “기술이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는 상식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상은 기술과 사회에 관한 진지한 문제제기에 익숙하지 않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의 성격에도 잘 나타나 있다.시중에 나도는 수많은 미래학 관련 서적들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사실의 정확한 이해에 도움을 주기 보자는 오히려 과장과 신비화를 조장하여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또한 사회과학자들이나 과학기술자들이 기술의 사회적 의미에 관한 논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술과 사회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걸음마단계라고 생각한다.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접근하는 가장 강력한 관점은 기술결정론이다.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그 자체의 고유한 발전 논리, 즉 공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경로를 밟는다고 가정한다.이러한 관전에 의하면, 사회구조는 기술의 논리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단지 기술발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사회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발전한 기술은 사회의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심지어는 사회의 변화가 모두 기술의 속성과 영향력으로만 설명되기도 한다.더 나아가서 기술결정론은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회집단에게 보편적인 이익이 된다고 간주하고 있고, 기술의 중립성과 기술중심적인 사고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고 있다. 기술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립적인데 기술은 사회와 무관하게 중립적으로 발전하며, 특정한 집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집단에게 공동의 선이 된다는 것이다.또한 기술결정론에 의하면 기술이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판도라의 상자이며, 다른 변수들은 모두 기술발전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술은 독립변수이며 사회는 종속변수인 것이다. 기술결정론의 대표적인 예로는 등자가 봉건제를 낳았다는 주장, 인쇄술이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주장, 기계가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기술결정론은 과거 사회를 해석하는 데에는 물론 현재 사회의 변화를 규명하고 미래 사회를 전망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정보화사회에서는 기존의 기계기술이 지적 기술로 대체됨에 따라, 경제활동, 사회구성, 정치형태, 생활양식, 가치판단의 기준이 급격한 변동으로 겪는다. 경제 부분의 중심은 제 2차 산업에서 제 3차 산업으로 이동하고, 기술직, 서비스직, 관료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극격히 증가한다, 또한 현대 사회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개방사회이기 때문에 지식 엘리트가 정책 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며, 첨단기술의 보급으로 국가 간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국제 사회의 규모도 거대해진다.그리고 정보통신의 벌전으로 인간 사이에는 새로운 네트워크화가 형성되어 조화로운 공동체 사회가 건설되며, 인간의 가치도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바뀐다. 효율적인 경제활동, 합리적인 사회제도, 생활의 편리함, 인류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유토피아가 바로 정보화사회이며, 기술과 사회의 관계라고 생각한다.정보기술의 중요성.우리 사회는 이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를 접어들고 있다. 정보사회란 발전된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나 조직이 그렇지 아니한 경우보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서는 사회를 의미한다. 즉 정보사회는 경쟁사회다. 모든 분야에 있어 정보의 가치 내지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으며, 오늘날 정보기술이 떨어짐은 결국 정보사회에서의 도태 됨 을 의미하는 것이다.산업혁명의 기초를 이루었던 물질문명의 기술이 정보기술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면서 인간들의 삶과 사회 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오늘날 정보기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낙관적인 측면과 비관적인 측면 양쪽 모두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선 낙관적인 측면으로는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정보기술로 인해 다양화 및 개방화를 통한 가치관의 변화와 정보의 원활한 유통으로 인한 사회생활 전 분야에서의 정보이용 및 정보시스템의 일반화가 이루어졌다.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기존의 산업구조는 소품종 대량 생산하는 그리고 하드웨어형 구조를 중시하는 사회였다면, 이제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개별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서비스 산업 즉 소프트웨어형 구조로 전환 되게 되었다.그리고 기술적 측면으로는 기술집약적인 공업화 사회에서 지식집약적인 정보화 사회 형태로 전환되기 위한 첨당 통신기술이 주도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보기술의 발달은 국제화, 개방화의 추세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간의 교류가 증대되고 있으며 기업 또한 해외진출 확대와 서비스 시장의 국제화등으로 국제적인 상호 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매체발달의 의미일반적으로 인간의 역사는 통신매체의 발달에다라 몇차례의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혁명을 경험해 왔으며, daniel bell은 이를 1,말(speech)의 발명 2.글(writing)의 발명 3.인쇄(printing)의 발명 4.원격통신(telecommunication)의 발명의 네단계로 구분하여 "말"은 집단적인 수렵.채취생활에서 중추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었고, "글"은 농경사회에서 최초의 도시를 성립시키는 근거가 되었으며 "인쇄술"은 산업사회로 이끄는 기반이 되었다 도한 원격통신은 정보화사회의 토대가 된다고 하였다최근 멀티미디어 기술의 변화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물결은 처음에는 미디어 기술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차차 사회의 전 역역으로 확대되어 사회제도와 무형의 의식까지를 변화시키는, 마치 도미노 현상을 연상시키고 있다.현 사회는 정보기술의 발전(기술적), 정보경제로의 진전(경제적), 정보활등의 증가(직업적), 네트워크화의 진전(공간적), 정보의 증가(문화적)를 바탕으로 매체의 발달 및 변화가 찾아왔다. 반도체 기술의 집적화로 인한 제작에서의 자원소모가 줄어들고, 집적화로 인한 고밀도화, 복잡화(다기능화)를 띄면서 경박단소, 즉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형태로 매체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정보처리기술에서의 디지털화, 전문화, 다채널화(대용량, 광대역화), 다기능화로 인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한꺼번에 이용 가능 할 수 있는 등, 용이하면서 다양한 매체의 환경의 변화가 찾아왔다.이러한 매체발달의 의미를 알아보자면 크게 인간적 의미, 사회적 의미의 두 분류를 포함한다. 인간적 의미에서 매체발달은 인간능력의 확대, 다시 말하자면 감각기관 의 확장을 의미한다. 또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사고능력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의미에서는 수직적 대인관계에서 수평적 관계의 형태를 띄게 되었으며 비교적 고립적인 관계에서 다수와 연결되는 네트워크적 관계를 띄게 된다.또한 매체변화에 대른 개인형태의 변화를 알아보자면 사회의 가치, 규범, 정보를 다음세대에 전수하기 용이해 졌으며, 사회 구성원 간의 교육의 도구로써 발전하여 사회화 기능을 띄게 되었다는 점이 있다. 또한 컴퓨터, 통신의 발달로 의사소통의 범위가 확대되어 정보유통의 양방향 기능(상호작용성)이 강화됨에 따라 기득권 세력이 점유해온 정보의 독점상태를 와해시키고 개개인의 정보수집 및 관리능력이 증가(정보 선택폭의 증가, 선택 가능한 내용의 증가)되었다. 또한 경박단소의 형태로 발전한 매체를 이용하여 이동성이 증가함으로써 공간적, 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났으며, 정보의 양과 질의 비약적인 향상을 가져왔다.하지만 이러한 긍적적 측면이 아닌 부정적 측면 또한 내포하고 있다.첫째로,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를 대중화 시키는 역할이 증가됨에 따라 문화 상품화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전파의 도구적 측면으로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로, 넘쳐나는 정보의 무분별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인하여 비판적이고 분석적 사고능력을 상실할 수 있고 규격화, 획일화로 인하여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 또한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하여 삶의 가치나 방식을 매체에 의존하려는 양상이 발생 가능하다. 셋째, 자유로운 발신 가능성의 증대, 특히 다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증대됨에 따라 네트워크상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정보전파에 대한 희박해짐 책임감과 이를 악용적으로 이용하는 사회문제적 측면을 들 수 있다. 넷째, 인간능력의 확대, 감각기관의 확장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매체의 특성으로 인한 인간 감각기관의 일부만 사용하는 경향이 발생 할 수 있다.
뉴미디어로 인한 대의민주주의의 변화 (SNS를 중심으로)21세기 IT기술이 튀니지, 이집트 등 20세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뉴미디어, 특히 SNS가 민주화의 횃불, 시민혁명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이처럼 SNS는 정치·경제·사회·문화 환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기존의 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정치문화에서는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SNS를 통해 정보의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고, 대중과 실시간 소통하는 ‘21세기형 직접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우리 정치권에서도 SNS를 통한 시민과 정치가들의 실시간 소통은 물론, 이슈와 현안에 대해서도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가히 직접 민주주의라고 할 만하다.과연 그렇다면 SNS는 어떤 특징으로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정치틀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첫째는 정보 권력의 평등화다. 기존의 제도 권력은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비제도 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점유하고 있는 정보의 가치 자체에서 비롯되는 불균형은 결과 즉, 권력 소유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러나 SNS와 같은 기술의 진화로 인한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은 적은 비용으로 다양하고 수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정보 권력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기존의 제도 권력보다는 비제도 권력에게 유리한 이점을 제공했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는 비제도 권력을 권력의 주체로 등장시킴으로써 권력을 특정한 주체로부터 탈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권력의 관계는 권력행위자와 권력수용자라는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가 아닌, 권력행위자와 권력행위자 간의 관계로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둘째는 개인의 주체화와 집단화다. 정보의 평등화와 더불어 소셜 미디어는 개인이 하나의 권력 주체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 시대’의 특징은 ‘정보화 시대’가 가져온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를 다시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집시키는 ‘네트워크화된 집단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보화 시대의 집단화와는 분명 차별화되는데, 왜냐하면 정보화 시대에서는 정보생산자와 정보수용자를 구분하며, 그러한 집단 내에서 맡은 역할 또한 고정되어 있는 데 반해, 소셜 미디어 시대에서는 저마다 다양한 권력 자원과 특수화된 권력 수단을 보유한 개인들이 저마다 다양한 권력의 주체이자, 정보프로듀서로서 네트워크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각 개인들은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가 원하는 다양한 요구에 자신을 부합시키면서, 어떤 때는 정보의 생산자로, 어떤 때는 정보의 전달자로, 어떤 때는 소통의 대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종합적으로 SNS의 등장으로 인한 대의민주주의의 변화를 살펴본다면 우선 정보의 평등화로 각 주체 간 권력의 평등화가 이뤄지면서 각 개인이 투표 이외에 직접 정치 과정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 됐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탈근대 이후 정체성의 상실과 파편화되어가고 있던 개인이 점차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집단적 정체성과 능동적이게 바뀌면서 이를 통해 시민 주체들은 제도 권력을 비판과 견제를 이끌어 나가며 기존의 수동적 유권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서 정치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