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학벌,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주제를 선택한 동기9주차 수업에서 ‘차이와 불평등’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례가 다뤄졌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차이’는 단순히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른 정도나 상태를 의미할 뿐인데, 어째서 이러한 차이가 차별의 요소로 변질되는 것일까?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한번쯤은 불평등한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선천적인 요소든(성, 연령, 인종 등 생물학적 기준), 후천적인 요소든(직업, 신분, 부, 소속집단) 이 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모든 것을 갖춘 완전체가 될 수 없기에 누구나 한번은 불평등을 겪게 된다고 확신한다. 불평등의 문제는 일상 속에서 흔히 겪는 작은 것부터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시 되는 것까지 그 범위가 넓고,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프게도 그러한 불평등에 대해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는다.하지만, 불평등의 문제는 이미 사회, 경제, 문화에 걸쳐 사회 전반적으로 발생 가능하고, 발생되어진 문제이다. 누구나 평등해야 할 사회의 각 구성원은 이러한 불평등을 체감함으로써 구성원간의 연대감이 떨어지고, 심리적인 박탈감과 범죄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얼마 전 읽은 책을 참고하여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차별에 초점을 맞춰 알아보기로 하였다.일단 제목이 조금은 자극적이고 급진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학벌이 카스트 제도에 빗댈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차별 요소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물론 학벌은 애초에 개인의 선택이 불가능한 선천적 요소가 아닌데다가, 우리사회는 비교적 계급이동에 있어 개방된 사회라 생각한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에 따른 솔직한 결실에 대해 그 노력과 능력에 대한 대가로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합당한 격차는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차별은 다르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학벌에 의해 선을 긋는 사회 풍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진다.앞서 말한 책에서 저자는 다명할 때, 그것은 사회학 적으로는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정치학 적으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에 의해 파당적으로 분배되는 붕당적사회임을, 경제학적으로는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부와 권력을 소수의 학벌집단이 독점으로 차지하는 독과점사회임을,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의 형성, 결혼, 취업, 자긍심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임을 두루 뜻한다는 의미다.』 1)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p.10 따라서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급박하고 시급한 핵심적 의제 중 하나를 학벌주의로 보고 레포트 주제로 정해보았다.※ 주제에 대한 자료조사 과정1. 주 교재인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의 차이와 불평등 챕터를 읽고 주제를 선택한 동기를 작성하는데 참고하였다.2. 9주차 강의 ppt에서 불평등의 요소(성, 연령, 인종 등 생물학적 기준, 직업, 신분, 부, 소속집단)를 참고하여 임의로 선천적, 후천적 요인으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계급이동에 있어 ‘개방적인 사회’라는 개념 또한 발췌하여 주제 선택 동기를 작성하는데 참고했다.3.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 저자 김동훈’을 읽고 책에서 인용한 부분은 주석을 달았다.4. 사례조사에서, 1)신한은행의 사례는 국제일보 기사를 참고했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200&key=20120724.220012121302) 안현수 선수의 사례는 인터넷 신문 미디어스의 기사를 참고했다.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833) 지방대의 사례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기사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였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96224) 로스쿨의 사례는 법률저널에 양재규 변신용 대출 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 수준에 비례해 차등을 뒀다는 것이다. 대출 승인 여부와 대출 금리에 영향을 주는 신용 평점을 석·박사 학위 소유자에는 54점을 주면서 고졸 이하 대출자에는 4분의 1에 불과한 13점을 줬다.따라서 신한은행이 2008~2011년 동안 개인 신용대출을 거절한 4만4368명 가운데 1만4138명(31.9%)은 학력이 낮아 대출에 실패했으며, 15만1648명의 개인 신용대출 중 그나마 대출에 성공한 7만3796명(48.7%)은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하락해 이자 17억 원을 더 냈다.감사원은 "학력은 직업이나 급여 등에 이미 영향을 줘 신용 평점에 반영됐는데, 학력을 따로 평가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학력차별 신용평가 모델'은 2008년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쉽게 받아냈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공분은 더더욱 크다. 때문에 금감원도 지도·감독 책임이 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신한은행은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최근 부랴부랴 신용평가 모델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2. 파벌로 이어지는 학력 차별안현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쇼트트랙, 빙상 스타였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5연패를 달성하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 쇼트트랙의 자랑으로 떠올랐다.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안현수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한국 최고의 빙상 스타였던 것이다.하지만 2011년 안현수는 한국대표팀이 아닌 러시아대표팀 선수가 됐다. 한국 빙상계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에서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던 중, 2014 소치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 빙상연맹 측에서 꾸준한 러브콜을 제의한 끝에 귀화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안현수는 큰 이변이 없는 한 다시는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그런 안현수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은 이전 귀화, 동포 선수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호의적이다. 물론 일부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대다수는 안현수의 결정을 고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군 면제를 위해 승부 담합이라는 사상 초유의 문제까지 겹치고 파벌, 학벌이 빙상 계에 깊숙하게 있는 것이 또 한 번 드러나면서 쇼트트랙은 '최악의 스포츠'로 그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안현수는 파벌 싸움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고 러시아로 귀화하는 ‘최고의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이러한 파벌 역시 학력에 따라 견고하게 자기들만의 벽을 구축하려는 잘못된 차별의식의 폐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우리는 안현수라는 최고의 자원을 다른 나라에 내주는 아픔을 맛보게 됐다.3. 지방대 = 지잡대(?!)'지잡대' 무시, 나도 경험해봤다!- '지잡대'라고 칭하면서 지방대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있어서 그러진 않나요? 지방대 다닌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혹시 이런 경험 있나요?지인:"서울에서 생활할 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같이 아르바이트 하던 사람이 저한테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방대 다니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니까 그 쪽에서 "아.."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닌데, 제가 지방에서 학교 다닌다고 말하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시 받는 구나'"은송:"서울권 대학 아니면, 무조건 '지잡대'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는 제가 다니는 학교 너무 좋은데(웃음)."효정:"저는 지방대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도 겪은 적 있어요. 홍보대사 활동할 때, 앉는 좌석을 정해줬었는데 그 기준이 어이가 없더군요. 학교별로 앉히는데, 수도권 대학이랑 지방 대학을 나눠서 앉히더라고요. 활동 처음 시작할 때 하던 '선서'도 서울권 대학 학생이 했어요. 그때 정말 서러웠죠.“4. 로스쿨제도의 문제점과 사법시험 존치의 필요성그동안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계층이동의 기회이자 공정한 경쟁의 대명사인 사법고시맞는 학력 차별 부분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려 한다.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의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제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고졸 출신도 법조인이 될 수 있으나,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에서는 로스쿨이라는 대학원 출신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이는 법조인 선발에 있어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두는 것이라 볼 수 있다.그동안 사법시험에는 고졸 출신도 매년 여러 명이 합격해왔다. 2012년도 사법연수원 제41기 중에도 고졸 출신이 2명이나 있는 만큼 법조계에 뜻을 두고 있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의 선발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또한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20% 정도 되고 2001년에는 34%에나 이르렀다. 연령도 로스쿨 합격자보다 사법시험 합격자의 평균연령이 더 높고,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는 변리사.공인회계사.의사.경찰관.군장교.공무원.은행원.일반회사원.자영업자 등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다. 다양한 전공과 사회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법조인으로 진출하도록 하는 데에는 사법시험으로 충분하다.따라서 로스쿨 제도의 전면적 시행은 고액의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라는 고학력자를 위한 제도이며, 이는 결국 사법시험제도에 비해 법조계 진입장벽을 훨씬 높여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키는 또 하나의 불평등을 낳을 뿐이다.※ 그 사례가 지닌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가?위의 두 사례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학벌의 벽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권력이나 부의 독점과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매우 미묘하고 일상화된 문화적 편견과 차별이다. ²『개인이 사회적 존재가 되는 계기에 반드시 학벌이 끼어들며 학벌이 끼어든 그 순간에 개인은 사라지고 개인의 정체성은 학벌이라는 집단적 이미지에 매몰되어버린다. 만일 학벌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을 가하면 콤플렉스, 패자의 심리적 보상행위 등을 운운한다.』 2)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p.27 대학에 관한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점 중 하나는 ‘쓸데없이’ 높은 대학 진학률이다. 다시 말해
1. 골수진보와 패션진보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무엇보다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우리 생활 속 가장 밀접한 부분이기에 무섭다. 하지만 나는 FTA의 효율성을 면면히 따지고 어느 쪽이 맞는지 손을 들어주기 전에 당시 촛불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광우병 공포와 분노에 의해 ‘선동’이라는 이름으로 허무하게 휘둘린 대중의 모습.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2002 월드컵 거리 응원인파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머릿수가 시청 앞 광장을 채웠고, 이들 중에는 분명한 신념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 모르게 정의로워 보이고 세련 되 보이는 모습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패션진보’ 또한 존재했다.나는 종로에 약속이 있어 나가던 중, 지하철 개찰구에서 광우병 선전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당시 나와 비슷해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들이었는데 자기들 끼리 깔깔거리며 전단지 아르바이트 하듯이 가볍게 광우병 선전물을 나눠주는 것을 보고 과연 저 중에서 촛불,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내가 즐겨 하던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의견을 피력했다. 스스로를 ‘배운 여성들’이라 칭하며 너도 나도 촛불시위를 장려하고 촛불시위 인증 샷이 올라오는 그 곳을 보며 나는 촛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촛불의 본질을 흐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래서 최소한 본인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혈기를 올리는 것인지는 알고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글을 올렸지만 운영자에게서 까지 ‘촛불의 힘이 커지자 경계하는 수구 꼴통’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으며 장렬하게 강퇴 처리 되었다. 원래는 정치이야기와 크게 상관이 없는 미용커뮤니티였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계기로 갑자기 한 쪽의 정치색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기가 막혔다. 촛불의 힘은 그랬다. 무서운 속도와 강도로 똘똘 뭉친 군중의 힘은 ‘선동에 휘둘린 우매한 대중’을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는 촛불시위가 옆길로 새나가게 하는 데에도 든든한 몫을 했다.2. 선동의 횃불로 변질된 촛불에게 시민들은 등을 돌렸다나는 이렇듯 쉽게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덕분에 쇠고기 수입반대 뒤에 반정부·반미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에 촛불이 이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시 촛불집회에는 행사목적인 쇠고기수입반대와는 전혀 다른 4·11총선 부정의혹, 핵발전소 없는 사회, 지하철 9호선문제등의 구호와 플래카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밀접한 문제인 광우병을 걱정하는 마음에 너도 나도 모인 순수한 촛불이 아니라 현 정권 자체의 반대를 위한 반대 촛불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옆길로 새나간 촛불은 결국 이것이 무엇을 위한 시위인지 참가자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린 끝에 도랑에 빠졌다. 광우병괴담은 거짓으로 판명됐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미국산 소뼈를 원료로 만든 화장품을 쓰면 얼굴이 망가진다.’ 등의 괴담이 이젠 통하지 않게 됐다. 시민들이 광우병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또한 야당정치인, 정당들의 이중적 행태와 부도덕성으로 시민들로부터 신뢰성을 상실한 것도 큰 원인이다. 정동영 고문과 홍근수 목사는 자녀를 모두 미국에 조기유학 시켰다. 이들 자녀들이 현지에서 한 번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미국현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하면서도 이를 수입하지 말라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은 반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종북 활동을 하면서도 북한에 가서 살기 싫어하는 사람들, 전교조를 지지하면서도 자기 자식교육은 전교조교사에 맡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국민들은 믿음을 줄 리 없다. 촛불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바라지 않아야 그 순수한 의미가 사람들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필 수 있었을 것이다.3. 촛불의 의의와 가능성 ? 세상은 감정에 동요한 사람들이 움직인다.하지만 촛불의 의미 자체는 굉장했다. ‘선동에 휘둘린 몇몇 우매한 대중’들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몰랐을 것이고, 그들은 역사적 의미보다는 단순한 선동적 슬로건에 이성적 판단을 내맡겼다. 촛불시위와 자주 비교되는 3.1운동역시 비슷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그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우내 장터로 뛰쳐나간 운동가들이 ‘청교도 교세 확장에 이용당하는 사람들’ 정도로 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3.1운동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를 다음 단계로 전진시켰고 당대나 지금이나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남았다.선동 슬로건에 의한 단순한 감정적 동요로 분노의 촛불을 활활 태우는 어린 중,고등학생들(혹은 대학생도 포함)의 모습은 아직은 미숙한 모습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적 판단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에 동요하여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촛불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촛불을 경험한 학생들, 또는 위에서 말한 우매한 대중의 일부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른 행동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전반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고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자의에 의해 나갔던, 타의에 의해 휩쓸려서 나갔던, 자신의 행위가 이미 세상의 수레바퀴를 움직여놓았고, 이제 그들은 그들이 움직인 수레바퀴에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감정을 넘어서는 사고의 체계를 쌓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촛불들은 그렇게 큰 횃불이 되어 세상을 밝힐 것이다.
을 읽고『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을 떠올려 보자.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탈레반’,‘오사마 빈 라덴’, ‘모 교회 선교단 피랍사건’등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한 나라를 떠올렸을 때 이보다 더 숨 막히는 느낌을 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아프가니스탄은 왕정붕괴, 탈레반의 득세, 미국의 침공 등 혼돈의 역사 속을 거치면서 현재도 2백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쟁지역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이중삼중의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두 여자(마리암과 라일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복선과 반전은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진정한 소설의 묘미를 보여준다. 동시에, 필연적인 전개와 설득력 있는 서술은 진하게 가슴을 울린다. 소련, 탈레반, 미국 등 전범국의 행태를 정치적 차원이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서술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책의 마지막에서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낸 이후, 라일라와 그녀의 남편 타리크는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고아원을 개조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고, 인질극 사태까지 겪은 우리에게 이 소설은 그 어떤 나라 사람들과도 다른 각도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이민자이며 의사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수혜를 받은 이민자로서 이 책에서도 조국인 아프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숨기지 않는 동시에, 또 다른 조국인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카불로 돌아온 라일라와 타리크가 나눈 대사 중,“어쩌면 이것은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부시의 폭탄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되면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이 구절은 아프간의 악을 청산하기 위해서 또 다른 필요악을 허용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떠한 잔혹함이 있을지 모르는 미국의 침공과정은 생략한 채, 아프간을 탈환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다. 얼핏 전쟁을 미화하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위험한 서술이다. 저자가 이 책을 비롯하여 미국 문단에서 인정받는데 있어 이 부분도 간과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프간에 대한 무지함으로 인해 그 땅에 대해 쉽게 판단을 한다. 아프간의 아픔은 묵인한 채, 파병이 논의되고 우방으로서의 미국과의 관계증진에 관한 토의가 진행된다. 부시는 어떻게 해서든 많은 이들을 연루시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정작 모든 것을 거둬가는 것은 미국이면서 그는 모든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고 전 세계를 향해 거짓말을 토해낸다. 위에서 인용했던 구절에서, 라일라 역시 그 거짓말로 인해 혹시나 찾아올지 모르는 아프간의 내일을 한 번 더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사실 우리 역시 아프간 및 이슬람 지역에 대해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사용하는‘테러’라는 단어도 이러한 정치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테러’라는 단어 자체가 이슬람 지역을 악으로 치부하는 서방세계의 편견이 개입된 단어이다. 우리가 이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아프간에 적용한다는 것은 그 발생 원리는 모른 채 일부 극단적인 현실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과거 호수였기 때문에 분지의 형태를 하고 있어, 네팔 계곡으로 불렸으며 집보다 사람이 많고, 사람보다 신이 많은 나라기에 제목이 ‘전통을 품은 신들의 계곡’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전 세계 산악인들의 꿈이자 목표인 히말라야 산맥 외에도 여러 종교가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가장 먼저 소개된 것은 파슈파티나트 힌두교 사원.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갠지스 강을 신성시 여기듯, 네팔의 힌두교도들은 이 파슈파티나트 사원 주위로 흐르는 바그마티 강을 신성시 한다. 이 곳 에서는 청소, 목욕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며 화장터와 함께 있기 때문에 화장터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화장모습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신을 씻기고 화장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어떤 유대인 부부는 이를 두고 하나의 쇼로 보인다고까지 했다. 물론 이렇게 공개적인 화장 방식은 웬만한 나라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므로 저렇게 느끼는 것이 이해가 간다. 나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는 아직도 조장, 풍장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린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사람을 반기는 것만큼이나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 또한 중요하므로 어느 문화에서도 시신을 함부로 내다버리듯 취급하는 곳은 없다. 다만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방식이 다를 뿐 죽은 자를 편히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기에 이스라엘 부부의 인터뷰는 조금 경솔하게 느껴졌다.다음으로 소개된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는 엄연히 불교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의 신을 경배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부처역시 힌두교의 신으로 생각하기에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네팔은 워낙 많은 소수민족의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기에 서로의 종교를 배려하는 관용이 일찍 자리 잡힌 것 같다. 만약 네팔처럼 우리나라 절에 기독교인들을 위한 기도공간이 마련된다면 불교 종파에서는 ‘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시가 급하게 처리해 버리려 노력할 것이다. 네팔 인들은 종교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종교기에 종교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올바른 종교문화를 정착시킨 것 같다.그러나 카트만두의 옛 왕궁인 하누만도카에서는 네팔의 소수 민족 중 하나인 네와르 족의 전통 문화를 잠시 엿볼 수 있었는데 7세 여자 아이를 힌두교의 신과 결혼 시키는 의식이다. 문화를 존중함에 있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나는 식인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듯이, 어린 여자아이의 인권이 유린되는 이러한 전통은 조금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곧이어 또 다시 네와르 족의 전통식당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네와르 족은 네팔에서 주류 민족인 듯하다. 처음 큰 공작새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지만 이내 곧 사람의 발을 발견하고 전통 의상임을 알아챘는데, 내가 이제껏 본 전통 의상 중 에서 동물을 형상화 한 의상은 봤어도 이렇게 동물의 모습을 똑같이 만든 의상은 처음 보기에 굉장히 인상 깊었고 입어보고 싶었다. 이 곳 사람들은 전통 문화 (음식, 공연, 음악)를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 것이 이들의 문화적 가치를 더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전통을 계승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전통에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옥진 여사가 별세하면서 현재 1인 창무극을 계승할 공식적인 전수자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는 기사를 접하며 씁쓸한 마음이 남았던 것과 대비되는 내용이었다.왕의 요구르트라는 뜻을 지닌 주주더히 역시 비교적 간단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방법을 계승하여 만들고 있었는데, 나는 우리 어머니가 해주시는 그 어떤 음식보다도 된장을 굉장히 좋아한다. 어머니가 담그신 된장의 비결은 전통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 요즘 세상에 서울에서 된장을 직접 담가 먹는 가정은 드물기에(혹은 직접 담근다고 해도 간소화된 방식을 따르기에) 나는 어머니의 전통적 그 방식, 그 맛 자체를 굉장히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 주주더히 역시 내가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 어떤 요거트보다 네팔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임에 확신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살인, 어린이 성폭행 등이 하루가 멀다하게 연이어 터지며 흉흉함을 더해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대문 밖에 나서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에게 억압당하는 것이 무섭고 싫은 것이다.한편, 우리는 스스로의 신체를 억압하기도 한다. 바로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시선의 대립 때문이다. 지금 적어도 서울권에서는 스키니 핏, 혹은 슬림 핏의 바지가 유행이다. 하루 종일 명동, 홍대, 강남을 돌아다녀본들 요즘 세상에 90년대 가수들이 입던 힙합바지를 입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너무 꽉 조이는 스키니 바지보다 비교적 움직임이 편안한 힙합바지가 다시 유행하길 애타게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시선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의 자유를 포기하고 스키니한 바지에 몸을 구겨 넣으며 신체를 억압하는 것 이다.따라서 나는 우리가 지난 수업시간에 감상한 영화 4편에 대해 신체를 억압당하는 것인가, 스스로의 신체를 억압하는 것인가 라는 기준에 따라 분류해 보았다. 나의 기준에 따르면‘We feed the world’는 신체의 자유를 억압당한 사례, ‘좋은 밤 되세요’ 와 ‘기묘한 이야기 ? 엑스트라’는 신체의 자유를 억압당함과 동시에 스스로 억압한 사례, ‘우익청년 윤성호’는 신체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을 벗어나려 노력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먼저 ‘We feed the world’의 닭들은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신체에 대해 자각이 없다. 사람과 가장 가까이하는 강아지도 거울을 보여주면 굉장히 낯설어 하듯, 슬프게도 동물에게는 ‘자아’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기계 안에서 죽어가는 순간, 고통만이 존재할 뿐 ‘내가 왜 남의 손에 이끌려 이 기계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에 대한 성찰이 없다. 따라서 이 영화 속 닭들은 신체의 자유를 스스로 억압할 수도, 억압당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억압을 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씁쓸했다.다음으로 ‘좋은 밤 되세요’는 둘 다 나에게 관련이 있는 소재였기에 큰 충격을 주었던 내용이다. 나는 재수학원에 있는 동안 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새벽에 공부하는 것이 더 잘 맞았지만 학원의 규칙상 모든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똑같이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애초부터 잠을 잘 생각으로 스스로 책상에 엎드려 본 적은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최면상태에 빠지다시피 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름대로 노력의 일환으로 잠을 깨기 위해 일어서서 공부를 해본 적도 있지만 그대로 서서 졸아서 넘어지기도 했고, 벌칙으로 졸 때마다 반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지만 한 달에 아이스크림 값으로 10만원을 넘게 지출하고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덕분에 정말 많이 맞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매를 맞으면서도 이것이 성공하는 길이라면..하고 무식하고 미련하게 1년을 버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토록 나를 억압하는 곳에 스스로 걸어들어감으로써 과연 무얼 얻었는가? 하는 서러운 의문이 든다. 그 당시 억압은 나에게 스트레스만을 남겼을 뿐, 공부는 결국 내 패턴대로 하는 것이 옳았던 것 같다. 잠시 욕심에 빠져 스스로를 과하게 채찍질하고 억압하는 것이 내가 성공하는 길이라고 착각에 빠진 세월이 아쉽고 눈물 난다. 무슨 일이던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임했을 때 성과가 나는 것이지 강제성은 전시상황의 군인이 아니라면 아무런 효율이 없다고 크게 깨달았다. ‘좋은 밤 되세요’의 주인공 역시 부모의 등살에 못 이겨 신체적 억압을 당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 자신도 욕심이 생겨 시술에 동의했으므로 스스로 억압했다고 볼 수 있다. 자의건 타의건 신체의 억압에 대한 결과는 마지막에 그가 살인마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그 대가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알 수 있다.이러한 면에서 ‘우익청년 윤 성호’는 현명했다. 사실 이 감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기에 딱 이 영화 하나만 본 뒤 생각해본 바로는, 그동안 윤 성호 감독이 독립영화, 예술영화 감독이기에 표현의 날개를 크게 펼치는 만큼 외부의 압력 혹은 따가운 시선도 항상 뒤따랐으리라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자신이 추구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억압을 역으로 재치 있게 풀어내며 풍자함으로써 윤 성호 감독은 스스로에게 닥쳐온 신체의 억압(뇌로 생각하여 손으로 만드는), 혹은 신체의 구속에 대하여 과감히 태클을 걸고 벗어나고자 애썼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