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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와 조선시대교육 평가B괜찮아요
    「교육철학및교육사 과제」유교와조선시대 교육목차1. 유교란 무엇인가?2. 우리나라의 유교3. 조선시대의 교육4. 유교와 조선시대 교육과의 관계5. 출처1. 유교란?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 ‘공자교’라고도 한다.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의 최고이념으로 삼고, ‘수신 · 제가 ·치국 ·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춘추시대 말기, 유교를 창시한 중국의 공자의 시대는 봉건적 의례제도가 근본적으로 붕괴되었고 정치적 위기로 인한 도덕적 타락이 매우 우려되었던 시기이다. 당시 공자는 대응책으로 휴머니즘 사상을 주장하였다. 그는 먼저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에 힘을 써야한다고 하여 개인의 인품과 지도자적 자질의 밑바탕이 되는 도덕심을 강조하였다. 즉, 유교는 공자가 초기의 주나라를 동경하며 국가를 바로잡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자 했던 사상이다.즉, 인(仁) 사상을 바탕으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시하는 사상이다. 유교는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는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을 말한다. 오륜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말한다.2. 우리나라의 유교수용과정우리나라에 유교가 처음 들어온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내며 국학을 세운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유교가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소수림왕 때 태학을 세워 유교의 기본 경전인 오륜과 사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였고, 백제에서도 오륜을 전담하여 가르치는 오경박사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왕인이 일본에 까지 천자문 등을 전수한 기록을 통하여 보면 사회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또한 청년들의 유교정신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는 유교를 도입하여 기초를 세운 시기로서 유교의 도입 및 확립 시기였다.고려시대에는 유교가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려 문종 때에 이르러 구재를 설치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교의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무인정권이 계속됨에 따라 유교는 다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조선시대는 유교의 부흥기로서 건국 초부터 유교를 장려하고 발전시켰다. 건국 초기 정도전은 유교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임을 주장하여 유교의 국교화를 주장하였다. 조선왕조는 억불숭유정책을 시행하여 우리나라에서 유교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중기에는 퇴계의 사상과 율골의 사상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학자를 배출하여 유교의 학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왕성한 발전을 이루었다.이렇듯 유교는 민족의 사상적 지주로서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3. 조선시대의 교육조선의 교육기관은 크게 관학(官學)과 사학(私學)으로 구분된다. 관학은 최고교육기관으로서의 성균관과 초 ·중급 교육기관으로서 사학, 지방의 향교가 있었다. 이러한 관학은 조선 전기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한 조선왕조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사회전반에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었다.서원과 서당, 사학은 다시 서원과 서당으로 나눌 수 있다. 서원은 15세기 말 사림파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함께 학문적 역량이 축적되면서 자체적으로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서 운영되다가 퇴계 이황에 의해 유생들이 몸가짐을 바로잡으며 교육을 받는 장소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말기에 가면 지방사족들이 자신들의 향촌 주도권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하면서 많은 폐단을 낳았다. 이 때문에 대원군은 중요한 몇 개의 서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서원을 철폐시키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한편 서당은 양반 자제의 초급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일반 평민의 자제들도 교육을 받는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서울의 양반들은 각각 집안에 사숙을 설치하여 개인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서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성장과 함께 교육을 받는 대상이 양반 위주에서 일반 평민까지 확대되었다.4. 유교와 조선시대 교육과의 관계조선은 억불정책을 실행했으며 유교, 곧 성리학의 철학적 이론으로 무장된 도학을 국가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세종 때에는 유교적 교화체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유교 사회의 기틀을 확립했다. 조선 초기에 사화가 일어났고 조선 중기 16세기에는 도학의 이상정치가 조광조 등 사림파에 의해 추구되다가 실패했지만 결국 이들이 정치의 담당자가 되는 사림 정치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부터 소수서원을 비롯하여 서원설립이 활발해져서 향촌의 유림활동이 확산되고 지역사회에서 향약을 시행하면서 향촌질서의 유교적 교화가 심화되었다. 이 시대에 성리학 발전을 이루었으며 퇴계이황, 율곡, 이이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인문/어학| 2015.03.28| 5페이지| 1,5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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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사회적발달단계
    Erikson의심리사회적 발달단계와나의 인생21살. 벌써 나는 20대 초반이 되었다. 21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어떠한 발달단계를 거쳐 왔는지 현재 어떤 발달단계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교육심리 과목을 수강하고 이 과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발달단계와 나의 삶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Erikson은 심리사회적 발단단계를 8단계로 나누었는데 1단계는 신뢰 대 불신이다. 이때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이때 너무 어려서 기억을 할 수 없지만 친척들이나 부모님에게 들은 바로는 엄마와 떨어져서는 1분도 못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모유수유를 하셨고 내가 첫째였기 때문에 내가 배가고프거나 무언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바로 해결해주셨다고 한다. 이러한 엄마의 정성덕분에 나는 신뢰감을 잘 형성할 수 있었다.2단계는 자율성 대 수치 및 의심이다. 이 시기의 나 또한 나에게는 기억이 많이 없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서나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돌이켜 보면 엄마는 첫 아이여서 그런지 내가 무엇을 혼자하게 두기보다는 다 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까지도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의견을 거의 따르는 편이고 자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3단계는 주도성 대 죄의식이다. 내 기억으로 나는 그렇게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질문도 많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이 내가 질문을 하거나 무언가를 궁금해 할 때 대답은 잘 해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동생들을 키우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동생들이 질문을 하면 간단히만 대답해주시고 더 자세한 대답은 안 해주신다. 또 아빠의 경우, 조금의 실수에도 쉽게 타이르시고 큰소리를 내신다. 이러한 부모님의 모습으로 봤을 때 나에게도 이러하셨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주도적으로 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단체생활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스스로 내 탓으로 돌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이런 나의 현재 성격으로 보았을 때 나는 3단계 발달단계에서 부족한 발달을 이룬 것 같다.4단계는 근면성과 열등감이다. 6~11세이면 내가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나이이다. 처음으로 스스로 친구를 만들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맺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갔던 시기이다. 나는 유난히 선생님들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무엇을 하든지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열심히 하였다. 다행히도 결과가 따라주어서 선생님께 항상 칭찬을 받았고 그 칭찬에 힘입어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였다. 즉 나는 내가 했던 것들에 대한 인정을 부모님과 선생님께 받음으로써 근면성을 기를 수 있었다. 간혹 성취하지 못한 일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으나 근면성이 더 큰 것 같다.5단계는 정체감 대 역할혼미이다. Erikson은 이 시기를 1단계 못지않게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하였다. 이 시기는 사춘기를 겪을 시기이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나의 존재나 가치에 대한 고민이 크게 없었다. 직업선택에 있어서의 고민은 항상 있었지만 역할혼미를 초래할 만큼의 큰 고민은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 친구들과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또 친구 같은 엄마가 있어 비밀 하나 없이 다 털어놓고 얘기하며 사춘기 시절을 순탄하게 보냈다. 지금 사춘기인 내 동생을 보면 나의 사춘기는 사춘기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나의 청년기는 위기 없이 조용한 시기였다.6단계는 친밀성대 고립이다. 이 시기가 현재 내가 속해있는 단계이다.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6단계와 관련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하려한다.7단계는 생산성 대 침체이다. 이 시기는 앞으로 내가 도달해야할 단계이다. 나는 절대로 침체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잘 찾아 취업을 하고 이 시기에는 그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싶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8단계는 통합성 대 절망이다.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단계이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8단계에 도달하여 내 삶을 돌아볼 때 후회스럽거나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지금까지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에 맞추어 나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지금 나의 발달단계는 6단계, 친밀성대 고립이다. 그래서 나의 현재 발달단계의 위기에 관해 더 자세히 말해보려한다.20살이 되고 대학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친구도 있었고 선배, 후배, 교수님 등 많은 종류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교친구, 선생님, 가족이 내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그래서 인지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었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친하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고민이 끝도 없었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져 타지에 와 친구들과 선배, 후배 등 많은 사람들에게 의지하려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나는 정말 죽을 때 까지 함께하고픈 친구 다섯 명이 생겼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은 서로 달랐지만 마음도 너무 잘 맞고 아침부터 저녁, 심지어 주말까지 함께 있었다. 함께 놀러 다니고 공부도 같이하는 등 많은 추억들을 함께 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평생 함께 가자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리 오래 유지 되지 못하였다. 2학년이 되고 남자아이들은 군대에 가고 여자아이들과 나는 각자의 일로 바빠지면서 서로에게 소홀해 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사소한 의견차이가 큰 다툼으로 번져 사이가 뒤틀리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그 아이들과 나는 서로 마주쳐도 본채 만 채 인사마저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사랑과 관심을 주고 믿고 있었던 친구들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에 두 달 정도 많은 우울감과 고립감에 빠져있었다. 즉 Erikson이 말했듯이 친밀감 형성에 실패하여 고립감을 느꼈던 것이다.
    사회과학| 2015.03.28| 4페이지| 1,500원| 조회(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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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대혁명 요약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에 시작해 1794년 7월 27일에 끝난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이다.Ⅰ. 원인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의 모순에서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첫 번째로, 정치적인 면에서 봉건제도와 근대 제도가 뒤엉켜 일어난 혼란이라고 본다. 구제도인 앙시앵 레짐 아래에서는 2%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제 1신분(추기경을 비롯한 로마 카톨릭 고위 성직자)과 제 2신분인 귀족은 면세혜택을 누리면서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98%를 차지하던 제 3신분인 평민은 많은 세금을 내야 했지만 정치참여 과정에서는 배제되었다. 왕실의 무리한 지출활동으로 인해 루이 14세부터 프랑스의 경제적인 부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미국 독립 전쟁의 참전으로 재정은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파산 지경에 이른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제 3신분에게 세금을 더 부담시키게 되었고 점점 확대되어 부과되다가 루이 16세에 들어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불만이 극에 달하였다.두 번째로 사회적인 원인으로 신분제의 다양성과 모순을 들 수 있다. 당시의 신분은 크게 승려와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구분되지만 각 신분 내부에도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즉, 같은 승려라 하더라도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져 상층의 경우는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였으나 하층의 승려는 오히려 평민에 가까운 생활을 함으로써 그 차이가 심하였다. 그리고 귀족 중에도 대 귀족과 몰락 귀족으로 나뉘어져서 몰락 귀족의 경우는 하층 승려와 마찬가지로 평민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였다. 또한 평민도 가장 어려운 생활을 하는 일반 평민이 있는 반면에 특권 계급과 유사한 생활을 하는 부르주아 층도 있었다.세 번째, 사상적인 원인으로는 새로운 사상이 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이 시기에는 볼테르와 루소 등의 계몽사상이 등장하여 비판 정신과 합리주의 사상, 진보 사상을 전파하였으며 존 로크 등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론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경제 사상 면에서 국가 통제가 강했던 중상주의에 반대해 중농주의 사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자유 경제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새로운 계급 즉, 중산층이 등장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상층의 부르주아지와 하층의 소규모 수공업자 즉,"Sans-Cullotes"로 나누어진다.혁명을 촉발시킨 근인(近因)으로는 먼저, 국민 대다수의 누적된 불평불만과 루이 16세 시기의 4대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 지원으로 인한 재정 파탄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1778년 이래의 흉작으로 인한 식량 위기를 들 수 있는데 이 시기 이전까지의 농민의 생활 수준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의 기대치에 현실이 뒤따르지 못 할 때 혁명이 발생한다는 현대의 혁명 이론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왕은 3부회를 소집하게 되는데 이 의회에 참석한 귀족들로부터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게 된다.Ⅱ. 경과1)삼부회에서 국민의회로전국 삼부회는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궁에서 개최되었다. 성직자·귀족의원은 각 300명, 제 3 신분은 약 600명이었다. 국민의회는 7월초 "헌법제정의회"로 이름을 바꾸고 헌법과 의회정치의 개설 작업에 착수했는데, 아르투아백작 등 궁정 보수파는 국왕에게 압력을 넣어 베르사유 부근에 군대를 집결시켜 파리 시민들을 긴장시켰다.2)바스티유 습격7월 11일 국왕 루이 16세는 사태의 책임을 물어 삼부회의 최고책임자 네케르를 파면하였다. 파리는 자치제(commune)의 확립으로 발전해 갔으며, 왕은 이에 군대를 철수시키고 네케르를 재 등용하였으며 라파예트를 국민위병대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3)봉건적 특권의 폐지와 인권선언바스티유감옥의 습격 소식이 지방에 전해지자 파리에서 일어난 운동에 호응하듯 격렬한 농민소요가 일어났다. 바스티유 함락과 더불어 베르사유 행진은 프랑스혁명 초기의 극적 사건으로서 이로써 의회는 왕으로부터 독립, 민중에게 예속되었다.4)1791년 헌법입헌의회는 이미 A.바르나브의 주장에 의거 일원제(一院制)와 국왕의 정지적(停止的) 거부권을 정하여 입헌군주제의 근간을 구축하였으나, 재정의 개선은 C.M.탈레랑의 제안대로 교회재산의 국유화와 매각(賣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의회에서는 바르나브 등이 헌법의 완성을 서둘러 9월에 전편(全編)을 채택하고 해산하였다.5)혁명전쟁의 시작1791년 10월 1일 소집된 입법의회에서는 왕권을 수호하려는 푀이양당과 왕권을 제약하려는 지롱드당이 대립하였다.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는 이 때 마르세이유의 의용군이 부른 진군가이다.6)8월 10일 사건파리 여러 구(區)의 국민위병대, 시총평의회(市總評議會)는 2개의 진영으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입법의회에서는 지롱드당이 우위에 섰으며 1792년 7월 11일에는 "조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협력을 요청하였다. 9월초 베르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격분한 민중은 9월 2일과 3일 아베이감옥을 습격하여 선서거부 성직자 등 죄수를 학살하였다.7)국민공회(國民公會)의 성립발미전투에서의 승리가 알려진 1792년 9월 21일 신헌법을 작성하기 위해 국민공회가 소집되었다. 지롱드당이 결의한 마라의 재판은 파리 민중의 신경을 자극하였으며 그가 석방된 뒤 봉기의 기운이 급속히 고조되어, 93년 5월 31일과 6월 2일에 국민공회 포위로 지롱드당 의원의 대다수가 추방당하였다.8)자코뱅당의 독재정치산악파는 평원파의 소극적인 지지를 받고 공안위원회를 축으로 내전의 긴박한 정세 아래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독재정치를 실시하였다.또 9월에 개력위원회가 발족되고, 11월에 공화력(共和曆;혁명력)이 공포, 실시되었다.9)로베스피에르 정권의 성립자코뱅당 독재에 의한 공화력 2년의 공포정치는 민중운동의 정치적 압력을 배경으로 하여 의회주의를 한걸음 넘어선 혁명정부를 축으로 하여서 감행되었다. 이로써 독재타도의 기운은 높아지고, 공안위원회 내부의 대립도 얽혀 7월 27일에 온건파의 반혁명이 일어나 로베스피에르는 사형을 당하고 자코뱅당은 몰락하였다. 이것을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 부른다.
    사회과학| 2015.03.28| 3페이지| 1,000원| 조회(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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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교육학개론 과제』시각장애학교 아이들의유쾌한 동거동락 이야기「안녕, 하세요!」요즘 내가 빠져있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라는 드라마인데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실제로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지만 뛰어난 연기력덕분에 나로 하여금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내가 시각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드라마가 전부는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나는 AVC라는 청소년봉사단체를 통해 용인에 있는 ‘소망의 집’으로 1박2일 동안 봉사캠프를 갔었다. 소망의 집은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는데 일반복지시설들과는 다르게 센터 안에 일반 가정집 10여 가구가 각각 거주하고 있는 형태였다. 1인 가구부터 부모님과 아이들로 이루어진 4인 가구까지 다양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 방에 들어갔는데 컴퓨터, 오디오와 같은 전자기기와 피아노가 있었다. 혼자생각하기에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기기들을 사용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주머니께서 시각장애인들이 아무것도 못할 줄 아냐며 눈이 안보일 뿐이지 일반인들과 똑같이 생활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괜히 창피해지면서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시각장애는 일반적으로 의학적, 법적, 교육적 정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또 시대나 사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기도 하고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게 정의되기도 한다.먼저 의학적으로는 보통 시력과 시야, 광각, 색각에 의해서 정의되는데 시력은 물체의 존재 및 그 형태를 인식하는 능력을 말하며 시야는 눈으로 한 점을 주시하고 있을 때 볼 수 있는 외계의 범위를 의미한다. 즉, 의학적으로 시력, 시야, 색각 등을 측정하여 협착, 감도저하, 암점 등으로 인한 시야결손 등이 나타나면 시각장애로 판정한다.법적으로는 교정시력이 20/70(0.3)이하인 경우를 시각장애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저 시력과 맹으로 나누는데 그 기준은 20/200(0.1)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법적인 시각장애의 정의를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근거해 제1급부터 제6급까지 정의하고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 특수교육대상자를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시각계의 손상이 심하여 시각 가능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거나 보조공학기기의 지원을 받아야 시각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시각에 의한 학습이 곤란하여 특정의 광학기구·학습매체 등을 통하여 학습하거나 촉각 또는 청각을 학습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교육대상자를 정의하고 있다.마지막으로 교육적으로는 교육적 맹과 교육적 저 시력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국립 특수교육원에서는 시각장애를 「두 눈 중 좋은 쪽 눈의 교정시력이 0.3 미만이거나 교정한 상태에서 학습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자」로 정의한다. 맹은 「두 눈 중 좋은 쪽 눈의 교정시력이 0.05미만이거나 두 눈 중 좋은 쪽 눈의 시야가 20도 이하인 자 또는 학습에 시각을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촉각이나 청각을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 저 시력은 「두 눈의 교정시력이 0.05이상 0.3미만인 자 또는 저 시력 기구나 시각적 환경이나 방법의 수정 및 개선을 통하여 시각적 과제를 학습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한다.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로 인하여 학습을 하는데 3가지 기본적인 제한성을 가지게 된다. 3가지는 경험의 범위와 다양성의 제한성, 보행능력의 제한성,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제한성이다. 이러한 제한성 때문에 시각장애학생들은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다감각 기능을 기를 수 있게 학습을 도와야 한다. 또한 보행훈련, 사회성 강화교육이 필요하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인 상동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교사들의 관찰이 필요하다. 또 지적인 측면에서 시각적 모방이 불가능하여 언어발달에 지체를 가져올 수 있어 시각적 경험과 관련된 언어지도에 있어서 특별히 유의하여 지도해야 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시각장애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조용한 상태의 수동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어 대인관계가 소극적이고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장애에 따른 어려움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시각장애학생과 주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위의 내용은 내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조사해본 내용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교육적 측면을 중점으로 알아보았다.올해 초, 우연히 인터넷에서 ‘안녕, 하세요!’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개봉당시에는 일부영화관에서만 상영이 되어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 과제를 고민하던 중 이 영화가 생각나 과제를 기회로 삼아 다운받아 보게 되었다.‘안녕, 하세요!’라는 영화는 제 13회 장애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인천의 시각장애특수학교 ‘혜광학교’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혜광학교는 56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을 교육하는 특수학교이다. 유치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 그리고 중도실명 성인을 위한 재활반, 전공과 등 모든 교육과정을 학생중심의 맞춤교육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이다.1시간 반 가량의 영화에는 초등부 아이들부터 고등부 아이들까지 여러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휴지풀기를 가장 좋아하는 귀여운 사고뭉치 초등과정 지혜부터 훌륭한 즉흥연주를 자랑하는 중학과정 희원과 수빈 콤비, 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대상에 빛나는 고등과정 보혜까지 이곳의 아이들은 오롯이 세상에 나가기 전 각자 자신만의 개성과 재능을 기르며 홀로서기를 배워가고 있었다. 영화 도입부에 혜광학교의 교사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이상봉선생님의 모습이 제일 처음 그려졌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서 시잔 찍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 찍는 것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여 거절했지만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 아이들을 한 발짝 다가가게 하기위해 촬영을 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안녕, 하세요!’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먼저, 용기 내어 건네는 유쾌한 인사 “안녕, 하세요!”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혜광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영화가 다 끝난 후 특히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첫 번째 아이가 제일 먼저 등장했던 지혜였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인 지혜는 첫 등장부터 너무 밝은 아이었다. 앞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경사로를 내려오고 걷다가 정수기에 머리를 부딪쳐도 울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우면서도 너무 귀여웠다. 지혜는 음악성이 뛰어난 아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핸드폰에서 울리는 멜로디를 그대로 치고 있었는데 눈이 보이는 아이들에 비해 훨씬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씩씩하고 밝은 지혜도 선생님께 혼나는 일이 있었는데 화장실에 있는 휴지를 다 뽑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혜가 있을 때 벨소리가 울리면 그 전화는 무슨 전화이든 무조건 받아야했다. 아니면 지혜는 대성통곡을 하며 불안 증세를 보였다. 영화에서 지혜의 이런 행동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원인이고 아이가 왜 이러는지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 행동들이 시각장애와 관련이 있는 행동들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모델 지혜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두 번째로 내가 관심이 갔던 아이는 중도실명을 한 지훈이었다. 지훈이는 초등학교 6학년아이로 전맹이 아닌 저 시력인 아이었다. 전맹과 저 시력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고 한다. 저 시력은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한데 지훈이의 경우에는 빛이 보이는 아이었다. 내가 지훈이에게 특히 더 눈이 갔던 것은 중도실명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어릴 적, 의료사고로 스티븐 존스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려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당장 내일이라도 사고나 병으로 인해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 당장 1분도 눈을 감고 있는 게 답답하고 무서운데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게 없다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지훈이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변호사를 동시에 꿈꾸고 있는 아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지훈이는 눈이 부셔서 늘 모자를 써야 해서 모자를 신중히 고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항상 모자를 쓰는 게 싫을 수도 있는데 지훈이는 웃으며 모자를 쓰는 게 자신의 컨셉이라며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은 나도 함께 미소 짓게 하였다.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가슴 졸이며 보았던 장면이 있다. 바로 중학교 3학년인 희원이와 수빈이가 집에 가는 장면이었다. 희원이는 아직 집에 혼자 가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는 아이었는데 촬영 때문이었는지 보행지도 선생님이 동행하지 않았다. 희원이는 지팡이를 짚으며 걷고 있었고 수빈이는 그런 희원이의 옷자락을 잡고 뒤에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방향을 잘못 잡아 차도로 들어서있었다. 8차선 차도 한가운데까지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동행하던 VJ가 차도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아이들이 방향을 바꿔 다시 인도로 향했다. 아이들은 집 근처 골목을 계속 빙빙 돌면서 1시간가량을 헤맨 끝에야 집을 찾았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을 느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인도에 걸쳐져 세워진 차들, 좁은 골목에 다니는 큰 트럭들이 그냥 피해가면 되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보행안내를 해주는 장치들이 길에 더 설치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독후감/창작| 2015.03.28| 5페이지| 1,000원| 조회(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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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러브 를 보고
    희망을 보는 아이들(영화 ‘글러브’를 보고)특수교육학 개론 첫 시간, 이 과제를 받은 후 어떤 책이 좋을지, 어떤 영화가 좋을지 수도 없이 검색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작년에 보았던 ‘오직 그대만’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인데 앞이 보이지 않지만 당차게 세상살이를 해나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과제를 위해 몇 권의 책을 사서 읽기도 하였지만 그 영화를 떠올린 순간 보고 싶었는데 못 보았던 영화 한편이 생각났다. 제목은 ‘글러브’였고 청각장애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터넷에서 예고편을 보았던 생각이 들면서 이 기회에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았다.영화의 배경은 충주에 있는 청각장애학교인 충주성심학교였다. 시각장애인이나 정신지체장애인에 관한 영화는 많이 보았었는데 청각장애인에 관한 영화는 ‘도가니’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영화의 시작은 유명한 한 야구선수가 시골의 한 청각장애학교 야구부의 코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 코치와 아이들이 대면하는 장면에서 코치는 아이들이 듣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막말을 하고 관심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했다. 물론 경기 중에 신호를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일 것이지만 그 아이들의 가능성조차 무시해버리는 코치의 모습이 마치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과 겹쳐보였다. 야구부의 존폐에 관해 운영위원회까지 열리고 청각장애아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지도층마저 그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는 묻지도 않은 채 야구부를 없애겠다고 하는 장면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원래 장애가 없던 촉망받는 야구 꿈나무였지만 후천적 청각장애를 얻어 성심학교로 오게 된 남자아이가 코치의 권유로 야구를 하기로 결정하고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엄마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넌 정상이야! 그런 장애아들이랑 너가 왜 같이 있어야 되는데! 넌 말도 할 수 있고 사람 입모양도 읽을 수 있어. 평생 너가 못 듣는다는 거 세상 사람들 다 모르게 살 수 있어!’ 엄마는 아들이 장애를 얻었다는 것을 심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이 무슨 짐승이라도 되듯 소리쳤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 군산상고와 연습경기를 치르는 장면에서 상고 선수들이 성심학교 선수들에게 일부러 져주는 모습은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도 정말 자존심상하고 힘이 빠졌다. 사라질 위기까지 갔었던 성심학교의 야구부가 드디어 애정을 갖게 된 코치에 의해 살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기뻤다. 연습경기를 마치고 말도 안 되는 거리의 길을 뛰어와 소리지르는 것을 두려워 말라던, 감정표현을 무서워말라던 코치의 말에 소리를 지르던 야구부 아이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던 중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조차 닫아버리는 청각장애인들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소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1승은 하지 못했지만 야구부가 제대로 자리 잡게 되고 심지어 학교에 활기를 찾아주게 된 영화의 엔딩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오늘 이 감상문을 쓰기 위해 충주성심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던 중 천안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사가 장애학생을 성폭행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도가니’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지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반항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났다. 일반아이들보다 더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아이들에게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청각장애아들을 포함해 모든 장애아동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것만큼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남들보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격지심을 가지고 꿈과 희망을 놓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성심학교처럼 아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의지와 활력을 줄 수 있는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우리보다 뭔가 부족하다고 해서 불쌍하게 보거나 안쓰럽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그렇게 보는 시선마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꿈과 의지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많은 장애아동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을 다르게 보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이 꿈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 아이들로 보야야 할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경기를 보러가고 싶다. 실화라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고 나에게는 장애인을 대하는 부분에서 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5.03.28| 2페이지| 1,000원| 조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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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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