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톰린슨은 근대 사회의 과학 기술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달하면서 발생한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연계성을 통해 국경을 허물어뜨린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즉 세계화에 대해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자신이 위치한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다른 먼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보와 기술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 또한 확대되어 문화는 고유한 영토를 벗어나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세계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항공여행을 예시로 들어 우리가 이동한 공간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거리의 이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는 내가 위치해 있던 곳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 영토에 침범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화는 단순한 문화 통일이 아니라 이질적인 인간·국가·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나는 복잡한 단일도시화인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자본주의 시장의 현상이지만 경제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치·문화·기술 등 동시적이고 복합적으로 연결된 과정인 것이다. 그는 세계화의 복합 연계성을 근대성의 개념으로 이야기하며, 근대성의 특징인 불연속성에 대해 설명한다. 불연속성이란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의 특성 지니면서 발전했지만 전근대사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사회인 것을 의미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유사하나 세계화는 전근대세계에 완전히 뿌리 박혀있지 않으며, 세계적 근대성은 다른 형태로 재구성 하여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톰린슨은 3장부터 대중매체가 보편화된 현대에 이르러 서로 다른 문화들 간의 접촉으로 야기되는 세계화를 제국주의 이론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이론인 ‘탈영토화’ 개념을 제시한다. 탈영토화란 문화·지리·사회적인 영토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의 상실로서, 이것은 세계화의 문화적 조건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와 영토의 연결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기술이라도 인간이 물리적 지역성을 완전히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탈영토화가 궁극적으로 지역성의 종말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관계의 확장이 우리가 거주하는 물리적 지역에 영향을 미쳐 더욱 복잡한 문화적 공간이 형성됨을 의미한다. 즉, 톰린슨은 문화적 세계화가 문화 제국주의를 구축할 것이라는 지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문화권 간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되면서 일어나는 문제로 해석해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근대 문화의 특징을 결정하는 요인들로 자본주의와 매스컴 등을 꼽고, 현재의 문화 제국주의 이론은 서구의 문화적 산물을 비서구로 주입한 것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문화 제국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방향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는 과학 기술이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강력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연약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결국 선구의 자본주의 문화는 사회적 목표의 의미를 상실한 연약한 것이므로 제국주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화 제국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도구로서의 문화라는 편협한 시각 때문에 문화를 광범위하고 복잡·다양한 생활세계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이데올로기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설명한다. 즉, 이는 현대의 문화가 19C 후반 제국주의 시대의 문화와는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문화적 세계화는 세계 통합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서도 상호 작용에 의한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화는 서구, 중심부의 일방적인 문화 주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과정이다. 결국 문화 복잡성은 단일 도시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바를 읽어보면 세계화와 문화는 마치 ‘양날의 검’과 같았다. 문화의 세계화는 국가와 인종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하나 된 세계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자칫하면 문화가 지배의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중심부와 초국적 기업의 정치·경제·문화적 힘이 하나의 헤게모니를 지닌 동질의 세계 문화를 출현시키는가?’ 하는 그의 물음은 그동안 문화의 세계화를 단선적이며 일방적이고 단순하게 여긴 편협한 시각에 새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이 물음에 대해 그는 물론 서구 문화가 문화 제국주의 개념이 등장한 것처럼 단일 세계 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순하게 통합된 세계 문화가 부상할 것이라는 생각에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다.이제 우리는 근대 사회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는 단순히 언어영역만이 아니라 전화나 컴퓨터 통신망 같은 현대의 기술과 신문, TV, 라디오, 영화, 음악과 같은 대중매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TV나 영화에서 접하게 되는 오지의 원주민들의 낯선 삶을 그저 바라볼 뿐이지만, 실은 매체가 우리를 그들의 문화 영토로 데려가 그들의 삶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톰린슨은 세계 시민, 즉 코스모폴리탄이 된다는 것은 관심이 직접적인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 소속감, 관여성, 책임감을 인식하고 광범위한 관심을 전체 일상의 영역으로 통합할 수 있는 문화적 성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진정한 이상
창작극 의 감상 및 분석일시 : 2011.11.15. Tue 8pm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1. 창작극 의 Plot 분석■발단“남은 것은 한없는 무기력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와 고립,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이 해무가 주는 공포다. 어둠 속에서는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 속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는 내레이션으로 극은 시작한다. 갑판에서 매일 술과 함께 사는 ‘완호 아제’, 항로를 책임지는 ‘강선장’, 다혈질의 성격으로 서로 만나기만하면 으르렁대는 ‘경구’와 ‘호영’, 올해 운수가 삼재라며 자신 때문에 만선이 되지 않는다며 자책하는 말더듬이 ‘창욱’ 그리고 어수룩하고 순수한 막내 ‘동식’은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전진호’에서의 삶을 꾸려나간다. 이들은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젠가 어신(漁神)이 도와줄 거라 믿으며 만선의 희망을 품고 계속 전진한다.■전개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려도 잡혀 올라오는 것은 없다. 만선의 꿈이 계속 엇나가자, ‘전진호’의 선원 ‘경구’는 조선족을 몰래 한국에 실어다 주는 ‘밀항선’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그동안 함께 동고동락해온 선원들이지만, 밀항선의 제안을 받자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밀항을 돕자는 ‘경구’와 해경에 걸렸다간 징역살이를 면치 못한다며 반대하는 ‘호영’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결국 밀항을 돕게 된 ‘전진호’는 ‘율녀’와 ‘홍매’를 비롯한 조선족 4명을 태우고 밀입국을 시도한다. 4명의 조선족은 각자 다른 사연을 품고 밀항을 택했다. ‘율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홍매’는 오빠를 찾기 위해서이다. 남자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 속옷까지 뺏어간다’며 선원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선원과 조선족들은 함께 식사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친해진다. ‘동식’과 ‘홍매’는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사랑을 싹틔워 나간다. 일기 예보에서는 심한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뒤에서는 해경이 쫓아오고 있다.■위기태풍이한다. 시간이 흘러 시체가 바닷물에 둥둥 떠오르자, 차라리 시신에 피를 내어 상어 밥이 되게 하자고 결정한다. 서로 누가 시신을 훼손시킬 것인지 고민하던 중, ‘완호 아제’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자처한다. ‘동식’에게 모든 사건의 전황을 전해들은 ‘홍매’는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동료를 잃은 슬픔에 좌절한다. ‘동식’은 그런 ‘홍매’를 위로하고 보듬어 준다.■절정무거운 안개, 짙은 해무가 ‘전진호’를 뒤덮는다. 이제 ‘전진호’는 ‘해무’라는 덫에 갇힌 쥐 신세다. 선원들은 죽은 조선족들을 기리는 위령제를 하기로 한다. ‘완호아제’는 “술 하난 뿌린다고 피 묻은 손이 깨끗해지나. 이건 씻길 죄가 아니야”라며 죄책감을 느낀다. ‘동식’은 ‘홍매’를 숨겨왔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고, ‘홍매’와 결혼하겠다며 그녀가 신고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부탁한다. 이에 선원들은 ‘홍매’ 역시 어쩔 수 없는 조선족이고 목포에 닿자마자 신고할게 뻔 하다며 크게 동요한다. 이에 ‘강선장’은 더 이상의 살인은 없다며 ‘홍매’를 살려준다. ‘완호 아제’는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에 자꾸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그 맛나던 술도 이제 맛이 나지 않는다던 ‘완호아제’는 “자꾸 보이네...내게 말을 거네...”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하다 결국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안개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안개는 마치 죽은 조선족의 넋과 혼이라도 된 듯이 ‘전진호’를 스멀스멀 가둬온다. ‘완호아제’가 죽자 ‘경구’와 ‘호영’은 서로의 책임이라며 다투게 된다. ‘경구’는 ‘창욱’에게 ‘홍매’를 강간하도록 한다. ‘동식’은 ‘홍매’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며 미안해한다.■결말태풍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전해진다. 하지만 위치가 맞는다면 ‘전진호’가 있는 여기가 지금 풍랑 속이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이에 ‘강선장’은 배를 버리고 구명보트를 내리고 탈출하자고 한다. ‘명진호’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제 해경은 ‘전진호’를 잡으려 한다.멍을 내어 이들은 더욱 우왕좌왕 방황하던 중 해경이 나타나고, ‘강선장’은 계속해서 전진을 외치며 ‘전진호’는 태풍 속으로 사라진다.2. 작품 분석(1)주요 등장인물①완호 아제: ‘완호 아제’는 모든 것을 달관하는 듯, 늘 술을 달고 사는 ‘전진호’의 정신적 지주이다.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극의 무게를 더해 묵직함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그는 선장과 선원들의 갈등에 관여하지 않고 지켜보는 듯하지만, 때로는 꾸짖기도 하며 갈등을 중재한다. 수장한 조선족들의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르자 피를 묻히는 일은 죽을 날이 머지않은 자신이 하겠다며 앞장서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연약한 심성을 가진 그는 조선족들의 환청이 자꾸 들리는 듯 하다가 결국에는 죄책감에 못 이겨 바닷물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만다. 그의 자살이후 선원들의 동요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 만가고 전진호의 운명은 더욱 나락으로 치닫게 된다.②강선장: ‘강선장’ 역시 선원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전진호’의 선장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강단 굳은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너그러운 사람 좋은 품성을 지녔다가도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누구보다 냉철하게 결심하여 선원들을 설득한다. 배를 버리고 구명보트를 내리기로 하지만 선원들은 반대하고, 해경이 쫓아오자 결국 ‘전진호’를 이름대로 전진시킨다.③경구와 호영: 이 극에서 ‘경구’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에 의해 ‘전진호’가 밀항을 시도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경구’는 시종일관 밀항선을 반대하는 ‘호영’과 의견이 부딪힌다. ‘완호아제’가 죽고 나서도 ‘경구’와 ‘호영’은 완호 아제가 칼질을 한 것이 서로의 책임이라며 다투게 된다. ‘경구’는 어수룩한 ‘창욱’에게 ‘홍매’를 강간하게 하고, 배에 구멍을 내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으며, ‘호영’ 또한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경구’와 늘 부딪히며 둘 사이의 의견 조율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④창욱: ‘창욱’은 늘 말을 더듬으며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다. 순수함을 버리지 않는 인물이다. 밀항을 돕다 만나게 된 조선족 ‘홍매’가 갑판 위에서 멀미를 하자 도와주면서 동식은 그녀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게 된다. 조선족이 모두 죽고 ‘홍매’만 살아남자, ‘동식’은 다른 선원들로부터 그녀를 안심시키고 끝까지 지켜나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⑥홍매를 비롯한 조선족들: 쑥스러운 조선족 처녀 ‘홍매’가 부르는 노래 “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모두 다 갔다. 잘살아보겠다고 모두 다 갔다. 눈물로 헤어져서 모두 다갔다. 산다는 게 뭐이기에...”는 그녀를 비롯한 조선족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목숨을 건 밀항을 시도했지만, ‘전진호 사람들’로 대표되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희생자들이다. 결국 홍매만 살아남고, 그들이 품었던 한국에서의 꿈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2)주제 및 메시지이 극은 뜻대로 만선이 되지 않자 밀항을 도와 돈을 벌고자 했던 선원들을 통해 욕망의 추구가 극한에 치닫게 될수록 내면의 추악함과 마주하게 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들은 얄팍한 욕망을 좇다가 결국 ‘태풍’과 ‘해무’라는 거대한 자연에 갇혀 살인 아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욕망에 눈이 먼 나약한 인간, 그들이 궁지에 몰려 서로 어떻게 갈등을 형성하고 풀어 가는지를 관찰 할 수 있었다. 나아가 사실적인 내면과 갈등의 표현을 통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저들과 똑같은 인간이구나.’이라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다.‘해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무의 첫 번째 의미는 ‘전진호’ 사람들을 해경으로부터 숨겨주는 일종의 보호막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안개 속에 잠시 가려 있던 피투성이가 된 ‘전진호’의 욕망은 서서히 그 추태함을 드러낸다. 두 번째 의미는 죽은 조선족들의 넋이라는 것이다. ‘완호 아제’가 죽은 자들의 환청이 계속 들린다고 했던 것처럼, 해무가 ‘전진호’를 뒤덮으면 그것은 마치 배가 죽은 의 광기를 안고 사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며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미처 알지 못했던 죄의식과 죄책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3. 연기포스터에는 ‘동식’을 연기한 송새벽과 ‘홍매’를 연기한 손수정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둘의 비중은 적었고, 오히려 다른 선원들과 선장의 갈등이 전개의 주요 축이었다. 이 연극이 ‘사실주의 연극’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관람하였을 때 일단 인물들은 전라도 사투리와 연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사실감을 높여주었다. 또한 ‘완호 아제’의 초연한 듯 하지만 깊은 내면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항상 날카로운 ‘경구’와 ‘호영’의 대립 연기는 극의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동식’을 맡은 배우 송새벽은 대중에게 영화에서도 익숙하듯, 연극에서도 중얼거리는 듯한 어조로 인물에 녹아든다. 그의 톤은 작품마다 크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어찌 보면 그의 연기가 발전이 없는 듯 보이지만, 결국 만나는 작품마다 완벽히 그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홍매에게 수줍은 듯 “나...니가 좋은 것 같다. 손 한 번 잡아보자”라는 동식의 대사는 무거운 극의 분위기 속에서도 관객에게 엷은 웃음을 짓게 하는 포인트가 된다. ‘동식’의 송새벽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을 맡은 배우들은 정말 어느 고기잡이배에 그런 인물들이 있을 것만 같은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마이크가 없어도 배우들은 효과적인 발성을 통해 관객들에게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었다.대사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행동에서도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는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애쓴 흔적인 것 같았다. 슬픈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눈에서는 진짜 눈물이 흐르고, 태풍이 몰아치는 순간에는 선원들이 정말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을 뒤집어 쓴 듯 물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 위해 ‘완호 아제’는 진짜 담배를 피웠다. 배가 흔들리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몸을 제대로 가누지다.
2011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 감상 및 분석1. 연극 의 Text 분석(1)Plot■[제 1막] ; 발단영국의 리어왕에게는 거너릴·리건·코딜리어라는 3명의 딸이 있었다. 연로한 리어왕은 왕좌에서 물러나면서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 주기로 결정한다. 이에 그는 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보라고 한다. 첫째 거너릴과 둘째 리건은 온갖 허례와 가식적인 말로 그를 기쁘게 하였으나, 셋째 코딜리어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할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격노한 리어왕은 국토를 거너릴과 리건에게만 나누어주고 코딜리어는 나라에서 쫓아내버린다. 켄트 백작은 리어왕이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라며 극구 말리지만 리어왕은 막무가내였다. 글로스터 백작에게는 정실부인이 낳은 에드거와, 첩이 낳은 서자 에드먼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드먼드는 권세에 눈이 멀어 교묘한 계략과 음모로 형 에드거를 쫓아내고 아버지를 모함한다.■[제 2막] ; 전개에드거는 에드먼드의 모함에 빠져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글로스터 백작은 격노하여 에드먼드에게 재산을 상속할 것을 약속한다. 콘월 백작은 에드먼드를 부하로 삼는다. 변장한 켄트는 오즈월드를 혼내주는데 에드먼드, 글로스터, 콘월백작, 리건이 등장한다. 콘월 백작은 켄트에게 족쇄를 채우라 명령한다. 에드거는 미치광이 톰 행세를 한다. 족쇄를 차고 있는 켄트를 발견한 리어왕이 리건 역시 거너릴과 다름없음을 깨닫고 절규하고 두 딸을 저주한다.■[제 3막] ; 위기켄트는 리어왕을 모시는 기사를 만나 프랑스로 가서 지금 왕이 겪는 고초를 알려 달라 부탁한다. 황야의 폭풍우 속에서 떠도는 리어왕과 광대가 대화를 나누고, 켄트는 정신을 점점 잃어가는 리어왕을 만나 폭풍우를 피할 오두막으로 안내한다. 글로스터는 에드먼드에게 리어왕을 몰래 도와야겠다고 말하지만, 에드먼드는 이를 콘월 백작에게 밀고하여 공적을 세우고 재산을 얻고자 작심한다. 황야의 오두막에서 리어왕, 켄트, 광대는 미치광이 톰(에드거)를 만난다. 글로스터는 리어왕 일행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자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코딜리어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에서 우러난 것이라 말한다. 에드거는 글로스터가 자살할 것을 알고 그가 자살에 실패하는 것처럼 꾸민다. 리어왕과 글로스터가 만나 서로를 알아챈다. 오즈월드는 에드거와 싸우다 죽어가면서 거너릴이 에드먼드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를 전한다. 에드거는 거너릴이 꾸민 음모에 대해 알게 된다. 코딜리어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리어왕이 만나고, 왕은 딸에게 용서를 구한다.■[제 5막] ; 결말에드먼드, 리건, 올바니 공작, 거너릴이 전쟁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있다. 에드거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올바니 공작에게 오즈월드의 편지를 전해 준다. 리어왕과 코델리어가 전쟁의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가게 된다. 에드먼드는 코딜리어를 목을 졸라 죽일 것을 명령한다. 거너릴과 리건은 에드먼드를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에드거가 등장해 에드먼드와 결투를 치르고, 에드먼드가 죽게 된다. 거너릴은 리건을 독살하고 자살한다. 에드먼드가 죽기 직전 코딜리어가 위험하다고 알려주지만 이때 시종이 코딜리어의 죽음을 전한다. 리어왕은 코딜리어의 시신을 안고 등장해 절규하다가 운명한다.(2)이중 Plot을 통한 비극성 강화『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비극 작품보다도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리어왕』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자아를 인식하는 관점에서 볼 대 리어왕과 글로스터가 겪는 정신적 고통과 갈등이 중심적인 문제가 되므로 이 두 등장인물을 주 대상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리어왕』은 이중플롯을 사용하고 있다. 주 플롯(main plot)의 리어왕과 부 플롯(sub plot)의 글로스터로 이루어지는데, 두 플롯 간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글로스터가 겪는 고통은 리어왕이 체험하는 정신적 변화를 한층 더 부각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진실 되지 못한 두 딸들의 말에 어리석게 속아 모든 것을 잃고 황폐해진 리어왕처럼, 글로스터 역시 권세와 재력에 눈이 먼 서자 에드먼드의 간교한 음모에 속아 에드거를 불신하여 내쫓고 모든 에드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웃으면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의 이런 죽음은 리어왕의 죽음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리어왕』의 주 플롯(main plot)과 부 플롯(sub plot)은 서로 탄탄한 연결점을 보여 인물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연결고리를 통해 리어왕과 딸들 사이의 갈등, 리어왕의 내적 갈등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극적 긴장감과 비극적인 카타르시스 또한 더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2. 작품 분석(1)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연극 의 비교고전 작품을 현대식으로 각색한 연극이었기에 지레 지루할 것이라는 짐작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접했던 연극은 소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규모의 연극, 그리고 주제도 연애나 단순한 재미를 위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대극장에서 상연되는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연극을 접한다는 것이 다소 낯설었다. 그래서 고전극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익숙한 작품이기에 원작과 비교해가며 감상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연극을 보고나서 원작 『리어왕』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연극 은 우선 원작 Text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우선 150분이라는 시간적 제약에 의해 생략된 부분이 조금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에드먼드가 심각하게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척을 하다가 에드거를 마주치는 장면이다. 원작에서는 에드먼드가 점성술을 통해 자식과 부모간의 불화, 우정의 단교, 나라의 분열, 군대의 반란, 국왕과 귀족에 대한 모략에 대한 예언을 형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지만 연극에서는 생략되었다.(제 1막 제 2장) 또한 켄트가 도버 근처의 프랑스군 진영에서 한 신사와 나눈 대화 장면은 연극에서 생략되었다.(제 4막 제 3장) 또한 요즘의 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원작의 고전적 문어체 대사는 현대식으로 바꾸어 표현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광대의 의미심장한 대사는 연극에서 조금 더 쉽게 풀어서 표현되었으며, 성적인은 더욱 커져가고, 코딜리어와 재회하여 용서를 빌지만 코딜리어는 결국 죽게 되고 리 어왕 또한 울분을 토하다 죽게 된다.이러한 리어왕은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의 전형이다. 자신의 욕망, 어리석음과 무지를 깨달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느끼다가 코딜리어의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했던 한 아버지의 욕망은 결국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어지며 비극의 발단 이 된다.②거너릴과 리건: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에드먼드에 대한 사랑의 집착, 소유욕으로 인해 서로 질투하고 시기한다. 자매는 재산을 얻기 위해 담합하여 아버지를 배신하고, 에드먼드를 얻기 위해 남편 또한 배신한다. 결국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위선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들의 삶을 파국으로 이르게 한다.③코딜리어: 자신의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쫓기 까지 한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고, 프랑스에서도 아버 지를 향한 효심은 여전히 깊다. 아버지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다 결국 죽게 되는 코딜리어는 욕망의 늪에 빠진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진심과 진실의 눈을 가진 인물이다.④글로스터 백작: 리어왕과 함께 연극을 끌고 나가는 중심인물이며, 리어왕과 마찬가지로 서자 에드먼드에게 속아 적자 에드거를 내쫓는다. 그는 눈이 뽑힌 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과 진실을 비로소 바로 보게 되며, 거지로 변장한 에드거에게 보살핌을 받는 비극적 상황을 연출한다.⑤에드거: 에드거는 동생 에드먼드의 음모에 빠져 떠돌이 신세를 지게 된다. 코딜리어와 비슷한 인 물로 그려지는데, 코딜리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서도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돕 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적 유대를 형성하는 인물이다.⑥에드먼드: 좋은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늘 서자 콤플렉스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권세와 재 물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모함한다. 또한 공작부인인 거너릴과 리건을 유혹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한다. 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에 코딜리어가 위험하다고 알리는 장면에서 늦 게나마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은 신분 의 사람들에게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충고하는 역할을 한다.(3)주제 및 메시지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연극 또한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비극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한순간의 오해로 비롯된 갈등의 시작이 엄청난 죽음과 파멸을 낳았음을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즉, 연극 은 선인의 행동과 악인의 행동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어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선과 악에 대하여 고민하도록 하며, 연민과 교훈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한다.3. 연기단연 잊을 수 없는 연기는 주인공 ‘리어왕’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였다. 사진을 보니 영화나 다른 연극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신 배우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격노하는 장면에서는 벼락이 칠 듯 호통 치다가도, 머리에 꽃덤불 왕관을 쓰고 정신을 잃어가는 리어왕을 표현할 때는 ‘귀여운 할아버지’ 같았다. 두 딸에게 저주를 내리는 모습에서는 물론 대사의 내용도 무시무시하지만, 마구 분노하여 한마디 한마디를 강조할 때 마다 내 가슴이 서늘했다. 리어왕이 처한 상황이 점점 비극으로 곤두박질치고, 그가 저주를 하며 호통을 칠 때 마다 ‘저러한 비극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와 같은 안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거너릴과 리건을 맡은 두 여자 배우의 연기는 물론 분장에서도 풍겨져 나왔지만, 대사와 함께 곁들여지니 더욱 표독스러웠다. 날카로운 그녀들의 목소리는 관객 입장에서도 매우 실감나게 무섭도록 얄밉고도 악랄했다. 코딜리어의 연기는 비교적 차분했으며, 그녀의 분신으로 ‘무용’이 등장하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없는 몸동작이었지만, 격정적인 그녀의 상황과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코딜리어의 마음을 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글로스터 역을 맡은 배우는 목소리가 갈라질 듯 거칠어서 처음에는 귀를 긁는 소리처럼 거슬렸지만,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크게 거슬린다는 느낌은 없어지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연기는 광대의 연기였다. 실제로 작고 마른 체구의 배다.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현황과문제점 및 대안1.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개요 ………………………………12.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현황 및 성공요인 ……………1~23.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문제점 및 대안 ………………3~4[별도]?참고 자료1.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개요? 개최기간 : 2012년 4월 28일(토) ~ 5월 20일(일) (23일간)? 장 소 : 이천시 설봉공원 및 도예촌 일원? 주 제 : “도자, 나눔 그리고 휴식”? 주 최 : 이천도자기축제추진위원회? 내 용 : 도자전시 판매, 시연, 체험·참여행사, 공연행사 등? 입 장 권 : 5,000원 (예매가 3,000원)? 현장답사 : 2012년 4월 28일(토), 11시 ~ 14시, 동서울터미널↔이천 시외버스터미널2.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현황 및 성공요인현재 전국의 각 지역단체가 개최하는 지역 축제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경기도 세계 도자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이천·여주·광주의 도자기 축제는 지역 특산품 도자기를 테마로 축제를 개최하여 성공한 지역 축제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관광 수입의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어 정책적으로 연구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도 이천은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된 토기 제작의 역사와 삼국의토기 문화와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공예부문으로 인정받은 고장이며 그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이천시는 지역의 역사적 특징을 살려 1987년 작은 도자기 전시 판매로 축제를 시작하였지만, 규모가 작고 도예가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예산도 부족했으며 행사 수입도 적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자체의 축제 활성화에 대한 고민 끝에 이천 도자기 축제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게 되면서 올해로 26회 째를 맞이하며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전시 형태가 아니라 상품화 개발로 국내 최대 도예품 전시 및 구매가 가능해졌다. 개막식(4/27) 다음 날인 축제의 첫날지는 이천을 대표하는 도예가들의 작품 전시, 도자기 체험, 이벤트 행사, 판매, 공연, 특산물 먹거리 체험 등이었다.개인 공방 위주의 도자기 전시관은 4개 정도 되었으며 각자 마련된 부스에서는 개성과 멋을 살린 도자기를 전시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막걸리 도자기, 찻잔, 그릇, 접시, 꽃병, 오카리나, 액세서리 등 평소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저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닌 도자기들이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나는 특히 꽃무늬가 새겨진 조그마한 찻잔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흙 본연의 느낌을 살려 투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것이 무척 예뻤다. ‘흙·물·불’이라는 자연의 요소만을 사용하여 장인의 땀방울과 손길로 요리조리 빚어내면 예쁘고 실용적인 도자기가 탄생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흙이 물과 불을 만나 도자기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도 신기한 일이지만, 태고로부터 이어오던 인간의 문화이자 생활인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느끼게 하는 바가 큰 것 같았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유의 방식을 지켜가며 도자기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는 장인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전시관에서는 나와 같은 도자기 초보들을 위해 도자기가 탄생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통해 쉽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도자기 전시와 함께 판매를 하고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의 관광객이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축제 첫날이라 그런지 전시관에는 자리와 상품이 아직 덜 차서 휑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도자지기의 하루’라는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이 장인과 함께 직접 도공이 되어 물레를 만져보고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뭉툭했던 흙덩이가 물레와 손길을 거치자 유연하고 부드러운 도자기로 완성되는 과정이 매우 신선했다.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을 해야 해서 나는 구경만 했지만, 보기만 해도 흙의 부드러움이 손끝에 전해지는 듯 했다. 아이와 장인이 함께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램이 있었는데, 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흙과 도자기의 감촉을 느끼게 해주어 교육적으로도 효과적이며 도자기 문화가 낯선 외국인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이밖에 페이스페인팅, 장작가마불지피기, 클레이 올림픽, 다도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특히 아이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겼다.이밖에 어르신들을 위한 전통 공연, 지역 특산물 먹거리 장터와 같은 코너도 있었다. 이천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쌀을 비롯하여 쌀로 만든 과자, 한정식, 떡, 한우, 고구마, 산수유, 막걸리, 파전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입장권 5,000원 중에는 상품권 2,000원이 포함되어 있어 축제 기간 동안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할인 받을 수 있었다. 상품권은 더운 날씨 속에 먹거리와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공원 한편에는 공연 무대가 마련되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여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흥겹게 해주었다.축제가 열리고 있는 설봉공원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도 좋고 주위가 온통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었다. 입구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있고 공원 구석구석 전시관, 조각품, 공방, 장작 가마, 다도 체험관이 위치하고 있어서 매우 넓지만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공원을 걸어서 구경했지만, 산자락까지는 도자풍속의 마차가 다니고 있어서 수레를 타고 마차여행을 하듯 설봉공원의 온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다.이 밖에 나는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축제 기간 중에는 국제 도자 워크숍 및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이 노하우와 도자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또한 이번 축제의 주제‘도자, 나눔 그리고 휴식’과 어울리게 도자 치유 워크숍이 열려 도자에서 찾는 몸-마음-영혼의 치유를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 요소를 손으로 느끼고 가마에서 구워지는 동안 인내의 시간을 거치는 도자기 완성 과정을 통해서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치유할 수 모이게 한 요인으로 보였다. 이천 도자기 축제의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살펴보면 관광의 4대 요소인 먹거리·살거리·볼거리·즐길 거리가 모두 충족되어 관광객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점, 판매 행사를 통해 고용·숙박·교통 등의 지역 경제를 살리고 관광객 유치를 가능하게 하는 수익성이 가미된 축제라는 점, 외국인들에게 도자기 문화를 소개하고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 전통 도예 산업에 발전을 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 관광객 편의를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시민 자원봉사를 활용하며 외국인 통역 서비스를 실시해 고객 편의를 고려했다는 점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요인이 다양하게 확인되는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 어떠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3. 제 26회 이천 도자기 축제의 문제점 및 대안(1)도자기 전시 및 판매와 체험 프로그램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줘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천 도자기 축제는 온갖 요소를 한데 버무려 놓기만 해놓고 양념이 빠진 것 같아 오히려 요소들이 따로 놀아 섞이지 않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의 연결은 어떤 테마가 정해져 있어서 맥이 이어지는 것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각 전시장은 주제별로 나뉘어서 분류되어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단순히 ‘1전시관’, ‘2전시관’, ‘3전시관’등으로만 나뉘어 있고 마냥 부스를 치고 도자기만 나열해놓아 축제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공방이나 백화점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공방 주인들도 그리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도자기를 소개·홍보하고 있지 않아서 관광객도 무작정 ‘도자기 축제에 왔으니 도자기를 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구경만 하고 나가는 것이 다수여서 아쉬웠다. 테마가 있는 도자기를 감상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가며 도자기와 이천에 대한 개성 있는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기회가 되었을 텐데 스토리텔링 면에서 잘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그리고 전시를 하다가 비싸게 도자기를 내놓고 판매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전시와 판매가 한꺼번에 가능하다는 점은 좋지만 모든 도자기 상품이 판매로 연결되어 축제가 너무 상업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도 많았지만 우리와 같은 학생이나 청소년들끼리 축제를 즐기러 왔을 때 비싼 가격의 도자기를 선뜻 사기에는 무리인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지만 주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어른들을 위한 전시인 것 같았고, 미래의 도예 꿈나무가 될 수 있는 어린 관광객을 위해 값싸고 예쁜 액세서리나 작은 도자기를 판매하거나 무료 체험 프로그램이나 증정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2)먹거리 장터방문하기 전에 이천 도자기 축제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ceramic.or.kr)를 둘러보았는데, 홈페이지에서는 축제장 내에서 이천 쌀로 지은 한정식, 민속 음식, 패스트푸드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서 한껏 기대하였다. 그러나 막상 축제장에 도착해서는 천막으로 만든 임시 공간에서 모든 음식점이 한꺼번에 붙어 있어 시끄러웠고, 온갖 음식 냄새에 환기도 여의치 않아 보여 쾌적하지 않고 매우 혼잡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줄도 매우 길고 빨리 먹고 빨리 나가야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나와 일행은 축제장을 얼른 둘러보고 밖에 나가서 식사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의 재미 중 먹는 재미도 꽤 큰 만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만큼 쾌적하고 알차며 이천의 특산품으로 만든 토속 요리 메뉴를 선보이는 등으로 개편된 식사 공간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또한 입장권 5,000원 중 제공된 2,000원의 상품권으로 축제장 내에서 파는 상품들을 할인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상품권으로 산수유 식초로 만든 슬러시를 사먹었는데 대충 만들었는지 슬러시가 아니라 그냥 산수유 맛이 약간 나는 식초 같아서 얼마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상품권 제공은 입장권에 포함된 관광객이 이미 낸 돈이기 때문에 축제의 수익성 마련을 위해 한 몫 하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미디어 정책변화 과정과 문제점에 대하여1. 198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미디어 정책 …………………………1(1)전두환 정부 (1981.3.~1988.2.) ……………………………………1(2)노태우 정부 (1988.2.~1993.2.) ……………………………………1(3)김영삼 정부 (1993.2.~1998.2.) ……………………………………2(4)김대중 정부 (1998.2.~2003.2.) ……………………………………2(5)노무현 정부 (2003.2.~2008.2.) …………………………………2~3(6)이명박 정부 (2008.2.~ 현재 ) ……………………………………32. 한국 미디어 정책의 변화 과정과 문제점 ………………………3~4[별도]?참고 자료1. 198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미디어 정책(1)전두환 정부 (1981.3.~1988. 2.)5·17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부는 강제적이면서도 회유하는 방식으로 미디어를 통제했다. 전두환 정부는 그들의 대표적인 언론 정책인 ‘언론통폐합’)을 실시하여 정부의 언론 통제구조를 단순화했다. 언론이 정부에 순응하고 협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 언론통폐합의 내용은 첫째, 신문은 중앙지와 지방지를 한정하여 신문경영을 보장하는 대신 경영주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여 정부에 유리하도록 개편하였다. 둘째, 방송구조를 공영방송제도로 개편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중앙통제의 국영 방송화 하였으며, 셋째, 지방뉴스의 취재와 공급을 일원화하여 뉴스통제를 용이하게 했다. 넷째,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언론인들에게 세뇌시켜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언론인을 양성하려 했다. 이로 인해 언론 기업들은 축소·흡수되어 대기업화를 이루고 소수과점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또한 언론 감독기구를 대폭 확대하고 ‘언론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정부의 구미에 맞지 않거나 법을 위반할 경우 통제하였다. 또한 언론 통제를 공식화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내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하여 보도지침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설이와 같이 전두환 정부는 언론과 미디어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여 통제를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정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소수과점체제를 이룬 이 시기의 언론기업들은 경제성장 및 광고시장의 발달에 힘입어 매출액을 증대시킬 수 있었기에 정부의 통제를 쉽게 받아들였고, 언론인들은 강압적인 통제와 회유책으로 정부에 순응하게 되었다.(2)노태우 정부 (1988.2.~1993.2.)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언론의 민주화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법과 방송법이 제정되면서 각종 규제가 철폐되었다. 또한 신문사 설립이 자유화되면서 신문과 방송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으며, 언론사에 대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여 시장의 논리에 의한 간접적 규제가 단행되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언론 자율화가 단행되었지만, 허가제나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 등을 두어 발행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전 정부의 보도지침을 이름만 바꾸어 사실상 언론과 미디어를 통제했다. 또한 교육방송 독립, 교통방송 설립, 서울방송의 설립 등 방송구조개편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국가의 방송통제정책의 연장선상에 불과했다. 또한 언론사의 광고 의존율이 높아짐에 따라 광고주의 영향력이 막대해져 정부의 언론사 소유주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부터 시도되었던 언론인들의 정치적 충원은 노태우 정부에 들어서 더욱 확대되었다. 이처럼 6·29 선언 이후 민주화 바람과 함께 등장한 노태우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과거 전두환 정부와 달리 전면적 수준이 아닌 차별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율성에 어느 정도 개선된 모습이 모였고 시장자유주의에 의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한 미디어와 언론은 힘을 더욱 키워나가는 등 한층 발전되었지만, 정부의 간접적인 통제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3)김영삼 정부 (1993.2.~1998.2.)김영삼 정부는 이른바 ‘문민정부’를 수립하며, 과거 정부보다 언론과 미디어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했고 실제로 전보다 언론의 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언론 개혁을 명분으로 실시되었으나, 이는 정부를 비판하는 ≪한겨레신문≫의 광고 수주를 방해하는 것과 함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보복성 조사였다. 과거 군사정권의 권위적 정책과 비민주적인 제도를 타파하고 언론을 개혁하려던 김영삼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신문 시장을 정상화하고 ‘김영삼 언론장학생’ 등으로 개선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결국 간접적인 통제가 지속되었고, 언론과 미디어는 정부의 민주 정책이라는 명목 아래 공익보다는 사익을 극대화한 거대 자본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는 언론이 지녀야할 보편성·공공성·균형성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후 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재벌 그룹들은 계열신문사를 수중에서 놓게 된다.(4)김대중 정부 (1998.2.~2003.2.)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자율개혁’을 토대로 정부조직을 개편하여 오랫동안 언론 통제 기능을 수행하던 공보처가 폐지되고 국정홍보처가 부활했으며, 신문·방송 행정부문은 문화관광부에 흡수되었다. 과거 정권에서는 언론 관련 업무를 여러 기관에 분산시켜 관장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분산되어 있던 업무를 청와대 공보수석실로 단일화 했다. 특히 국정홍보처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거 정권의 언론 통제의 산실이던 공보처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 언론과 정치권의 유착 의혹이 커지자 서울의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단행 하였지만, 신문 개혁에 초점을 둔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은 김영삼 정부 때와 차이 없이 이 또한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실시된 언론 탄압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에 제정되었다가 IMF 경제위기 직후 폐지되었던 신문고시를 부활시켰다. 신문고시)는 ‘신문업에 있어서의 불공정한 거래 행위의 유형 및 기준’으로, 신문고시 시행 이전에는 각 신문사들은 독자를 늘리기 위해 경품 제공을 하거나 무가지를 강제 투입하는 등의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문 고시는 1998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폐지되2008.2.)노무현 참여정부 정부 출범 직후 일부 매체만 출입이 가능했던 기자실이 폐쇄되어 브리핑 룸으로 전환되고 개방형 취재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는 기자실 출입이 제한되어 있던 인터넷 언론사에게 진입장벽을 없애고 기존 언론의 기득권을 낮추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접근할 수 있는 매체 수는 많아졌지만 취재기자의 정부부처 방문을 제한하여 사실상 정부가 정보를 제한하여 공급하게 된 것이다. 2007년에는 이를 수정한 취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여 브리핑 룸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또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신문을 신문 발전 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신문법을 제정하고 인터넷 신문의 개념과 등록에 대한 규정을 법제화 했다. 또한 언론 중재법을 마련하여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었을 때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과 절차를 완화하고 소송을 제기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요약하면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며 오보 및 과장 보도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악의적인 보도에 피해를 입었을 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언론에 불신을 느끼고 임기 내내 언론과 갈등 양상을 보여 언론 개혁 방안으로 기자실을 브리핑 룸으로 바꾸었으나, 그로 인해 정부와 언론의 대립은 더욱 커져갔다. 또한 인터넷 매체를 육성하여 폭넓게 성장했으나 이 또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6)이명박 정부 (2008.2.~현재)이명박 정부는 ‘press friendly’라는 구호를 걸고 언론에 협조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에 노무현 정부가 시행했던 브리핑 룸 통폐합, 정부부처 사무실 출입금지 등 언론 통제적 조치를 상당 부분 완화하려 했으며, 이를 통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과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형성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시작할 때의 취지와는 달리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대립은 어느 정권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며, 보수 정권인 현 정부는 2008년 광우병 관련 보도나 촛불집회 등에 전국적으로비판이 뜨거웠다. ‘미디어 법’ 찬반 논란의 가장 큰 이유는 신문과 방송 모두를 소유한 거대 언론사가 모든 의제에 개입하여 마음대로 조정하고 민주적 여론의 공공성과 언론의 다양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방송 민영화 정책을 통해 민영 방송사들 간 경쟁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미디어 산업의 발전이 촉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으나, 이 역시 방송의 공공성을 해치고 시청률 전쟁만 과열시킬 뿐이라는 이유로 방송사와 정부는 여전히 대립구도에 서있다. 이 밖에 방송국 인사 임명과 관련하여 친 정부적 낙하산 인사 문제로 방송 노조의 파업과 정부의 대립이 여전히 문제되고 있다.2. 한국 미디어 정책의 변화 과정과 문제점지금까지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정부의 미디어 정책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정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정부가 직·간접적으로든 미디어와 언론 시장에 개입 하여 규제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자면,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언론통폐합 정책을 비롯하여 정권과 언론의 유착이 지속되었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언론정책이 기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정권에 협조적인 언론을 만들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노태우 정부부터 특이한 점은 이전의 강압적 통제구조를 단순화하거나 강경한 미디어 정책 대신 회유 정책을 사용하여 정부가 언론에 각종 자본과 언론공익사업을 지원해주면서 광고주에 대한 압력을 가하고 언론인을 정치적으로 충원하여 경영하게 하는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군사정권 아래 자본을 축적했던 미디어가 6·29 선언 이후 시장의 경쟁에 진입하면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변화한 것과 맞물린다. 정부와 미디어 사이에 새로운 연결고리인 ‘자본’이 자리매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언론은 정부의 허가제, 애매한 정책 속에서 하나의 권력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질적 경쟁보다는 양적 경쟁 즉, 판매나 시청률 경쟁이 과열되었고 소수 거대 언론사들이 시장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