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과 진보신문 비교·분석-지면구성과 성향별 특징 비교-- 목 차 -Ⅰ. 들어가며Ⅱ. 지면 구성0. 기사 배열2. 논설과 칼럼3. 광고Ⅲ. 성향별 특징Ⅳ. 마치며Ⅰ. 들어가며신문은 언론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대표적인 매스커뮤니케이터로서 인간의 지식, 행위, 의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미디어이다.근대적인 신문이 출현한 것은 서구에서 활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화와 함께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이때부터 신문은 국민의 목소리이며, 언론의 창으로써 오늘날까지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우리 신문은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의 정치적 갈등기에 좌우익으로 갈려 투쟁하는 ‘정론지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정부수립 후 좌익 신문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에 따라 오늘날과 같은 보수·진보 성향의 신문구도가 형성되었다. , , 는 스스로를 보수지(保守紙)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신문(이하 보수신문)이다. 또한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신문(이하 진보신문)은 와 이 있다. 이 글에서는 4.11. 선거를 기점으로 하여 2012. 4. 4.(수) ~ 4. 10.(화)까지의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의 형식적·내용적 구성의 차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지면구성1. 기사 배열국내 신문은 보통 28~32면의 본섹션과 몇 개의 부문별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뉴스는 기사의 성격과 중요성에 따라 배열되는데, 1면은 그날의 주요 뉴스가 나온다. 또한 거의 모든 신문들이 가로짜기를 하고 있는데, 기사의 중요도에 따라 머릿기사가 왼쪽 상단에 위치하며 오른쪽 하단을 잇는 대각선을 따라 배열된다. 아래 참고중앙일보경향신문2012. 4. 4. 수. 신문(예시) 1면크기가로 320mm× 세로 430mm가로 385mm× 세로 540mm면수36면 (부록 제외)32면1면 배열-머릿기사는 사진과 함께 왼쪽에 치우친 중간부분에 위치.-1면의 아래 1/3이 광고-머릿기사는 왼쪽에 치우쳐있고, 사진은 오른쪽에 위치.-1면의 아래 1/4이상이 광고각 신문사의 성향에 따라 중요시하고 싶은 기사를 강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논설과 칼럼논설과 칼럼은 뉴스 피처(news feature)라고도 하는데, 뉴스 피처란 시사적 사건에 관한 것으로써 논설, 칼럼, 인사탐방, 시사만화, 연극이나 텔레비전 평을 말한다. 이들이 객관적 보도 뉴스와 다른 것은 그 속에 기사 작성자의 개인적 의견이나 느낌이 삽입된다는 데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논설과 칼럼이다.에서는 평균 4면이 논설과 칼럼을 모아놓은 오피니언 면으로 확보되어 있었고, 상대적으로 용지 크기가 큰 에서는 평균 3면이 오피니언 면으로 지정되어있었다.3. 광고광고는 신문 지면의 60%를 차지하면서 신문사 재원의 젖줄이기도 하다. 이하 참고중앙일보경향신문2012. 4. 7. 토.신문(예시) 1면1면의 광고 수상단 광고 2, 아래 광고 1상단 광고 2, 아래 광고 1광고 수15개의 면에 다양한 광고가 있음.10개의 면 아래에 광고가 있음.전면 광고 면의 수8면3면특징총 44면 중 8면은 전면광고이며, 나머지 36면 중 면적 큰 광고가 15의 면에 차지하고 있었다.총 28면 중 3면은 전면광고이며, 나머지 25면 중 10개에 면적이 큰 광고가 차지하고 있었다.에서는 4.7. 신문을 예로 들었지만, 조사기간 내에 살펴본 바로는 일반적인 광고형태(배너형 광고, 하단 광고 등)을 제외하고도, 책을 소개나 영화 소개 등을 포함한다면 신문에 광고가 안들어간 면이 거의 없었다.Ⅲ. 성향별 특징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의 성향별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주요뉴스를 싣는 1면의 기사들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다음 참고 (*각 신문 기사에서 특히 강조한 머릿기사 제목에 밑줄처리)중앙일보경향신문4. 4. 수.-왕따가 부른 오클랜드 참사-민주당 “MB·박근혜 청문회 세워야” 박근혜 “야당 이상해져…특검이나 응해라”-이명박 대통령과 권재진 장관-재벌개혁 공약 점수, 민주·진보·새누리 순-총리실, 전공노 간부 징계 배후조종-쌍용차 해고자 또… 22번째 희생4. 5. 목.-김용민 막말 파문…나꼼수 세습공천의 덫-박종헌 공군참모총장 돌연 사의-장진수 ‘입막음 대가’ 5000만원 공개-이상득 지역구 민원 총리실서 개입 확인-참여정부 문건은 경찰자료였다-청계천 수놓은 174명 선거벽보-국정원 "명예훼손 고소"에 김미화 "당당하게 맞설 것"4. 6. 금.-김용민 거취에 쏠리는 눈 … 나꼼수 눈치보는 민주당-종로 1.6 중구 1.8%P 차…수도권 접전-새누리 실현가능성, 민주 개혁성 높아-류충렬 "5000만원 지인이 마련해줘"-부재자투표 시작-'막말' 김용민 사퇴 여부 선거쟁점 부상-정치권 복지 비판한 재정부 '선거법 위반'4. 7. 토.-이용득 "나 X도 아닌 최고위원…" 김용민에 사퇴 압박 문자-미, 일본 쓰나미 표류선 포탄 쏴 수장-여야, 재벌개혁·조세·보육 분야 진보성 강화-살해된 여성 ‘112 전화’ 7분36초간 연결됐었다-검찰 “참여정부는 수사 대상 아니다”-제50기 수습기자·사원 최종 합격자4. 9. 월.-MB 심판 선거 63% 야당 심판하자 59%-순찰자 10m 앞 갇혔던 그녀 6시간 동안 살아있었다.-북한 3차 핵실험 징후-“출동한 경찰들 수색않고 졸기만”-MB심판 대 김용민심판4. 10. 화-사찰 vs 막말 누가 더 셀까-길이30m·무게 92t 北공개 3단로켓 사진 보니-경찰 또 거짓말 … CCTV도 감췄다-"경찰 무성의·은폐"-청 대포폰에 박영준 착·발신 기록-수도권 절반이 접전… 50여곳 승부처-안철수 "투표율 70% 넘으면 노래하며 춤추겠다"-고개 숙인 경찰 총수에서 정치적 기사가 가장 많을 시기인 선거기간(4.4.~4.10) 내에 성향이 다른 두 신문의 1면의 머릿기사 제목을 살펴보았다. 각 신문사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사를 1면에 싣고, 1면에 기사 중 더욱 강조하고 싶은 기사의 제목의 폰트를 키우고, 진하게 처리하였다.(*2012.4.4.수. 두 신문 글씨체 비교 예시 참고)특히, 의 경우 강조하는 기사와 보통 기사의 폰트 크기차이가 약 5배이상 컸고, 굵기 또한 확실하게 차이가 났다. (예시 1)왕따민주당(예시 1)이에 비해, 은 폰트 크기차이는 같았지만, 굵기에만 차이를 뒀다. (예시 2)
「청산별곡」연구1. 연구사 검토「청산별곡」은 고려 속가 가운데서 고려 시대의 사회상과 더불어 고려 사람들의 생활관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구성에 있어서는 논리성이 두드러지며, 내용 또한 고도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음악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잘 배려되어 있음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 노래에 대한 연구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청산별곡의 작품 주석은 양주동), 김형규), 박병채), 김완진) 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에 힘입어 작품의 의미나 형태, 주제의 연구도 크게 진척되었다.) 청산별곡의 내용 연구를 종합해 보면 현실 도피의 노래, 적극적 현실 인식의 노래, 유랑인생활상의 노래, 비애적 사랑 노래 등으로 요약된다. 청산별곡을 현실 도피의 노래로 해석한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실 참여, 백성의 생활상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두됨으로써 양자가 대립되었다. 그러나 청산별곡을 일상적 언어의 쓰기의 방법으로 읽을 경우 문학 작품을 문학으로서 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문학 창작 욕구와 결부시켜 볼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피안지향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청산별곡의 청산이 어디냐고 묻는다던가 고려시대에 세상살기가 얼마나 험했기에 청산을 찾아 나섰겠느냐고 묻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의미가 제시하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청산별곡에 대한 연구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2. 구성 및 분석청산별곡은 에 그 전문이 실려 있다.1. 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애 살어리랏다멀위랑 ?래랑 먹고청산애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2. 우러라 우러라 새여자고니러 우러라 새여널라와 시름한 나도자고니러 우니노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3. 가던 새 가던 새 본다믈아래 가던새 본다잉무든 장글란 가지고믈아래 가던 새 본다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4. 이링공 뎌링공 ?야나즈란 디내와 숀뎌오리도 가리도 업슨바므란 엇디 호리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5. 어디래 살어리랏다??자기 구조개랑 먹고바?래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7.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에졍지 가다가 드로라사?미 짐대예 올아셔奚琴을 혀거를 드로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8. 가다니 브른 도긔설진 강수를 비조라조롱곳 누로기 매와잡?와니 내엇디 ?리잇고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청산별곡은 1연부터 6연까지 1단락 그리고 7, 8연을 또 하나의 단락으로 나누어 파악할 수 있다. 1연부터 6연까지는 ‘청산에 살어리랏다’와 ‘바ㄹㆍ래 살어리랏다’라는 의미 지향을 표출하고 있는데 실상 여기서 청산이나 바다는 대별되는 세계가 아니다. 청산이나 바다는 대조를 통한 반복적 시어로서 둘 다 자연을 표상하는 시어이다. 1연에서 화자는 청산이라는 자연에서 살겠노라는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데 2-5연에서는 그러한 자신의 내면적 심경을 노래하고 6연에서 다시 한번 자연에서 살겠노라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현실 상황으로 전환되는 7, 8연에서는 화자의 현실 상황 즉 외적 상황이 드러나 있다. 지금까지 청산별곡의 구조는 1-4연과 6-8이 기?승?전?결의 구성법에 의존했다는 견해로 풀이되었다. 그러나 필자가 파악한 바 1-6연까지는 기?승에 해당하고 7연은 전에, 8연은 결에 해당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1연에서 자연에 대한 갈망은 자신의 시름에도 불구하고 6연에 이르러 강조 반복된다. 그러나 청산이나 바다에 대한 자신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을 7연에서 맞이하게 된다. 청산별곡의 7연은 바로 상상의 세계, 내면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전환의 의미를 가진다. 8연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자신의 현실이 술에 이끌릴 수 밖에 없음을 말함으로써 화자의 갈등을 결론적으로 시사한다. 이상의 작품 구조에 대한 얼개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1연 ? 자연에의 갈망2연 ? 화자의 시름 - 기3연 ? 떠나가는 새를 봄4연 ? 화자의 고독5연 ? 화자의 시름 - 승6연 ? 상관법에 의해 반복된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정교한 구성상의 특징은 청산별곡이 개인 창작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한 청산별곡이 합성된 노래였을 것이라는 가정도 수긍하기 어렵게 한다. )3. 의 형성 배경고려 시대 가운데에서 고려 말기는 몽골 제국의 침략기로 가장 어두운 시대였다. 몽골의 장군 살리타이가 제1차 침입한 시기(1231)로부터 원나라가 멸망(1368)할 때까지 약 137년 간은 몽골의 직접, 간접적 영향으로 많은 고통을 받은 시대였다. )박노준)은 의 제작 시기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몽고족의 제2차 내침이 있던 고종 19년(1232년) 이후 고종 44년 (1257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간주하면 족하다.”최기호)는 의 제작 시기를 박노준과는 달리 몽골군이 고려를 지배하고 수탈하던 고려 후기로 보고 있다.“몽골이 제1차 일본 정벌(1274)을 하는 시기보다 3년 전인 1271년부터 1281년 전후이며, 지리산 남쪽 바닷가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노래하여 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4. 의 지은이지금까지 연구한 것으로 귀족, 정치인, 지식층, 승려, 피난민, 농민, 어민, 화전민, 개성 거주 서민, 전란에 가담한 농민, 어민, 이서), 노예, 광대 그리고 궁중에 잡혀 온 관비나 관기 등이라는 여러 주장이 있다.이승명)은 이 노래의 결구의 방식, 고도의 상징성으로 보아 무식한 이나 서민이 지은 노래가 아니라고 하며, 학식이 있는 귀족 계급이 지은 노래라고 하였다.정병욱)도 의 구조 분석과 거기 담겨 있는 깊은 철학과 집요한 삶의 추구, 시적인 분위기 등을 보아서 작자 계층은 의 작자들 못지않은 지식층임이 분명하다고 하였다.그러나 김학성은 이 평상적인 삶을 갈망하나 허용되지 않은 긴박한 상황에서 청산과 바다로 이동하는 쫓기는 처지의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좀 더 범위를 좁혀서 묘청, 무신란 이후 계속적인 일련의 사태에 참여한 무리들, 망이, 망소이 등 민란에 가담한 농민, 어민, 노예, 광대 중 어느 하나나 또는 혼합 집단이 지은 반란민들의 노래라고 하였다.최기호)는 은 평민들이 지은 민요적인 노래임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다음 )과 을 비교해보면, 주제가 거의 일치하고 8절로 되어있는 구성에서도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의 주제 요약1절 - 영남의 가혹한 공출과 부역(처절한 생활).2절 ? 몽골의 가혹한 수탈로 고통 받는 백성(눈물 속의 백성).3절 ? 부역으로 우마와 백성이 밤낮으로 시달림(처절한 현실 생활).4절 ? 농부나 어부도 전쟁터로 모두 끌려감(전쟁으로 고통 받는 백성).5절 ? 죽음의 전쟁터로 끌려가는 젊은이와 처자들의 통곡과 이별(애통하는 이별).6절 ? 도망친 빈집들과 실농(失農)한 마을들(실농의 아픔).7절 ? 병든 백성들의 절망적인 한탄(도탄에 빠진 백성의 절망).8절 ? 몽골 황제의 덕으로 태평성대를 기원함(체념과 엉뚱한 기대).의 주제 요약1절 ? 차라리 청산에 가서 머루 대래 따먹고 사는 것이 낫겠다(처절한 현실 생활).2절 ? 시름 많은 나는 울고 또 운다(눈물 속의 백성).3절 ? 농사를 짓지 못하는 슬픔(실농의 아픔).4절 ? 외롭고, 캄캄한 밤을 어떻게 지낸단 말인가?(극도의 고독).5절 ? 누가, 어디서 던진 돌인지도 모르고 돌에 맞아 운다(억울함).6절 ? 차라리 바다에 가서 남누재, 굴조개 먹고 사는 것이 낫겠다(처절한 현실 생활).7절 ? 돛대박이에서 해금을 켜는 소리를 듣는다(구슬픈 해금소리).8절 ?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며 잊어 보자(술로 체념).최기호는 두 시의 형식이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며, 의 근원이 되는 시는 원감국사의 이고 이것을 원감국사가 시로 지어 불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역은 지리산 남쪽 바닷가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노래하여 이 형성되었다고 추정한다.5. 의 후렴구‘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의 의미는 무엇이냐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악기의 여음구라는 견해와 몽‘어히요 어히요 이히야어 / 나니나노 나니나노 나니 / 나니나노나니나’를 예로 들면서, ‘나니나노 나니나노 나니 / 나니나노나니나’를 피리의 구음으로 보았는데, 이처럼 도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는 원래 태평소)(날라리), 호적))의 구음으로 ‘날리날리 날라셩 날라리 날라’에서 ㄴ이 탈락하여 의 여음구가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날라셩’의 ‘셩’은 바라)나 징의 소리를 중간에 넣었다는 것이다.최기호는 의 후렴을 몽골어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는데, 고려 시기에 몽골어 차용어는 아주 광범위하게 차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말이름(가라말, 절다말, 아질개말, 부루말 등), 매이름(보라매, 송골매, 수친, 나친, 쿽친 등), 군대 용어(바오달, 다로가치, 고도리 등), 음식 이름(수라, 설렁탕, 타락죽 등), 제주도 땅이름(사라오름, 어승생, 아라동, 오라동, 항파두리 등)에 몽골어가 차용된 것을 볼 수 있다.몽골어의 ‘이기다, 승리하다, 정복하다, 극복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의 기본형으로 ‘я?а?’ 이다. 어간은 ‘я?а-[얄라]’인데, 몽골어는 어간만으로도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과거를 나타내는 종결어미는 ‘-?аа’와 ‘-в’가 있다. 그러니까 ‘я?аа’[얄라]는 ‘이겼다’, ‘방금 이겼다’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먼 과거나 완료형 종결어미에는 ‘-сан’[상, 승]이 있다. 그래서 ‘я?сан’[얄르상, 얄승]이라고 하면 ‘이겼다. 이겼노라’가 된다. 또 미래시제 ‘-?’ 뒤에 ‘-сан’이 붙으면 ‘я?а?сан’[얄라흐승]이 되는데, 이것은 말하는 사람의 소망이나 희망을 나타내어 ‘이겼으면 좋겠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청유형으로는 ‘я?ъя’[얄리야]가 되어서 ‘이기자, 이깁시다.’라는 뜻이 된다. 즉, ‘я?а[얄라]’와 ‘я?ъя’[얄리야], ‘я?сан’[얄상], ‘я?а?сан’[얄라흐승] 등이 반복되어 쓰이면서 의 후렴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의 후렴이 정착장한다.
전원 생활의 소박한 흥이 담긴 문학 , 田家時調-차례-1. 전가의 개념2. 17세기 전가 작품(1) 이휘일 - 전가팔곡(2) 김득신 - 전가(3) 강희맹 - 전가(4) 그 외의 17세기 田家 작품3. 18세기 전가 작품(1) 夏日田園雜興 效范楊二家體 二十四首 - 茶山 정약용(2) 田家 - 燕巖 박지원4. 전가 장르의 특징과 배경5. 맺음말1.전가의 개념전가(田家)는 전가시조(田家時調)라고도 불리는데, 전원(田園) 및 농가(農家) 생활을 주요 배경이나 소재로 하여, 그 속에서의 소회(所懷), 흥취(興趣), 체험(體驗)을 주된 관심사로 노래한 시조를 가리킨다. 자연은 문학의 영원한 제재(題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은 항상 자연을 질박하고 영원하며 순수한 것으로 수용하였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관의 모습은 16세기와 17세기를 기점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16세기 이전의 작품에서 자연은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형상화되는데 이러한 자연의 형상을 강호(江湖)라 하고 이는 17세기의 주된 자연관인 ‘전원’에서 표현되는 자연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강호’와 ‘전원’의 형상에 대해 규정지을 필요가 있겠다. 똑같은 자연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16세기에 주로 인식되는 자연의 모습인 ‘강호‘는 앞서 말했듯이 성리학적 이념으로 바라본 자연의 모습으로, 혼탁한 현실에 대비되는 청정한 이념적 공간을 표상하거나, 우주 만물의 이치는 모두 통하므로 자연 속에 그 이치가 들어있다는 관념적 공간 등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언어적 특질에 있어서도 생활 언어보다는 대단히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것들로 주로 쓰였으며 시적 대상이 원경으로 포착되어 서정 자아와의 거리가 뚜렷하다. 반면에 ’전원’은 17세기에 들어 주로 드러나는 자연관으로 강호와는 달리 이념적 공간으로서의 자연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현실과의 대립 의식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며 자연의 서의 양반 지주적 성격을 갖는다. 다만 그 신분은 양반지주에서 업농(業農)으로서의 자영농 쪽으로 이행하는 단계의 맹아(萌芽)적 위치에 놓여 있지 않은가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자영농적 성향을 잠재적으로 보유한 사족이 향촌사회에서 농인과 농부를 이끌거나 또는 어울리기도 하면서 농경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전가시조라 할 수 있다.)전가나 도연명적 삶에 대한 지향은 17세기 자연인식의 중요한 국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17세기 전가에서 자연의 공간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제시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 전가에서 자연이라는 공간은 강호나 전원과는 달리 세속과 격절되지 않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 존립기반을 갖춘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이다. 때문에 공간의 모습은 객관화되어 나타나는데, 공간의 완전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경영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표명한 것도, 전가에서 자연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그런 능력 자체가 이념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2. 17세기 전가 작품(1) 이휘일 - 전가팔곡은 총 8수로 이루어져있다. 첫 수는 전체를 아우르는 시적화자의 시각이 드러나 있고, 그 다음 네 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따른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사시가(四時歌)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세 수에서는 농촌생활의 하루일과를 이야기하고 있다.원풍(願豊)세상(世上)의 ?린 몸이 견무(?畝)의 늘거가니세상일에 서툴러 버림받은 이 몸이 밭이랑 사이에서 늙어가니밧겻일 내 모?고 ?? 일 므?일고.세상 밖의 일은 내가 알 수 없고, 또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고.이 중(中)의 우국성심(憂國誠心)은 년풍(年豊)을 원?노라.이 속에서도 나라 위한 마음은 풍년을 원하노라.→ 우선 첫 수에서는 재지사족의 입장에서 향촌공동체의 안정을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농촌의 세세한 일은 모른다고 하면서 원하는 것은 풍년이라고 하고 있는百舌)이 소??다.새벽이 돌아와 사위 밝아지니 온간 것들이 소리하는구나.일거라 하?들아 밧보러 가쟈스라.일어나거라, 아이들아. 밭을 살펴보러 가자꾸나.밤?이 이슬 긔운에 얼마나 길었?고 ?노라.밤사이 이슬기운에 얼마나 곡식이 길어났는고 하노라.→ 새벽이 되자 부지런히 일어나 밭으로 나가기를 권유하고 있다. 또한 종장에서는 농작물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오(午)보리밥 지어 담고 도트랏 ?을 ?여보리밥 푸짐하게 지어 담고 명아주 국을 끓여?골? 농부(農夫)들을 진시(?時)에 머겨스라.배를 곯는 농부들을 제 때에 먹이어라.아?야 ? 그릇 올녀라 친(親)히 맛바 보내리라아이야! 한 그릇 가져오너라. 내 친히 맛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 보내리라.→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에게 줄 들밥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허기진 농부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제 때에 먹이고자 하는 농부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직접 맛을 보고 보낸다는 종장에서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을 넘어 농부들과 한층 더 가까워져 있다.석(夕)서산(西山)애 ? 지고 풀 긋테 이슬난다.서산에 해 떨어지고 풀 끝엔 이슬이 묻어난다.호뮈를 둘너메고 ?듸여 가쟈스라호미를 둘러매고 달을 등에 지고 집에 돌아가자꾸나.이 중(中)의 즐거운 ?을 닐러 무슴?리오이런 생활의 즐거운 재미를 남들에게 말하여 무엇하리오.→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며 흥취감에 젖어 있는 농부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자신의 하루일과에 자족감을 느끼며 이런 흥취의 소중함을 일깨워 권면(勸勉)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은 사계절과 하루일과를 통해 안정된 향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당쟁이나 여러 정치적 요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힘쓴 이휘일은 43세 되던 해에 영해 저곡으로 거처를 옮겨 살았는데 시기상 그곳에서의 생활과 경험이 전가팔곡의 창작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휘일은 직접 농사를 짓진 않았지만 저곡에서 지낸 오랜 경험으로 농민들의 삶이지은 이유 알기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와 같은 패설류의 시대적 양상과 그 원인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 지어졌을 시기로 추정되는 성종시대에 패설류의 산출 양이 다른 시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원인을 크게 사회적은 면과 사상적인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사회적인 동인은 문물의 정비에 따른 국가의 안정과 사대부의 안정, 그리고 그 안정에서 생긴 퇴거문인의 한가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일찍이 홍문관 등의 기관을 통해 교우관계가 신장되면서 동료들과 나누었던 ‘우스운 이야기’를 벼슬에서 물러난 한가한 틈을 타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적인 동인으로는 국가의 안정에 따른 사상적 여유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이때에는 성리학이 절대적 권위를 행세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강희맹이 를 지은 것은 국가의 안정에 따른 퇴거문인의 한가함과 사상적 여유, 작가의 연륜에 따른 정신적 여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4) 그 외의 17세기 田家 작품◎김광욱 - 전원시조김광욱의 전원시조는 전가와는 구분되는 형식으로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ㅺㅼ○뒷집의?을?이것츤보리말못?다즌온아마고찌허쥐비저괴야낸이열어날줄렷???입이니?아쓴아먹으리라.→ 뒷집의 술 쌀을 꾸니 거친 보리 한 말이 채 못 차다 휘저어 헤치며 마구 찧어서 쥐어 빚어 괴아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달거나 쓰거나 먹으리라.ㄳㅺㅣ○)질감아조히싯고바희알래?물길어풋粥?게쑤고)절이지히ㅡ어낸이世上에이두맛시야?이알ㅏ?노라.→ 질가마 깨끗이 씻고 바위 아래 샘물 길어 팥죽 달게 쑤고 절인지 이끌어 내니 세상에 이 두 맛이야 남이 알까 하노라.3. 18세기 전가 작품(1) 夏日田園雜興 效范楊二家體 二十四首 - 茶山 정약용삶이 순탄치 못했던 다산은 부자유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의 공간을 그리워했다. 또한 전원에서 노동하며 살고자하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다산의 시는 유배지의 전원이든, 고향의 전원이든 하나의 삶의 장하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잔잔한 흥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정약용은 이 전가시에서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과장이나 수식 없이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화자는 표면적으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회화적인 분위기를 띤다. 또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자신의 직접적인 감정이입을 절제하고 거리를 유지하지만 대상에 대한 긍정으로 심리적으로는 가까워지고 융화된다.◆夏日田園雜興效范楊二家)體二十四首 全文春事微茫不可追 봄의 일은 아득하여 따라잡을 수 없어라靑梅結子柳垂垂 푸른 매화 열매 맺고 버들가지 늘어졌는데綠陰窓戶深生暈 푸른 그늘 창문 깊숙이 등불 그림자 생기니正是先生點易時 정히 선생께서 시문을 고치는 때이로세十旬淹病度芳菲 십순 동안 병상에서 꽃다운 계절 보내고初?人扶强出? 이제야 남의 부축받아 애써 사립을 나오니怪有密香來觸鼻 괴이하게도 은밀한 향기가 코를 찔러라들百花如雪野薔薇 장미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었네그려石榴紅綻近端陽 단오절 가까운 때에 석류꽃 붉게 피니事事幽閑事事忙 일마다 한적하고도 일마다 바쁘구려天賜暫晴容?繭 하늘은 잠시 맑아 주어 누에고치를 말리겠고地留春水賴移秧 땅에는 봄물이 고여 모내기를 할 만하네絶憐紅藥舊時容 몹시도 어여쁘던 작약꽃 옛모습은破碎殘?落?封 붉은 뺨 산산이 부서져 개미둑에 떨어졌네豈有栗花香可採 어찌 밤나무 꽃에 향기를 딸 게 있으랴만梢頭無數著飢蜂 나무 끝에 주린 벌들이 수없이 엉겼네그려蠶後桑枝竝蕩然 누에 친 뒤 뽕나무 가지 모두 텅 비었는데摘餘新葉始柔姸 따낸 자리에 새 잎이 부드럽게 돋아나누나如今竭力輸身分 이제야말로 나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再作家私度一年 다시 집안일 돌보아 일 년을 지내리라延緣野屋麥平垣 농부의 집 보리밭 언덕을 따라 내려가나니隱約茅茨見一痕 초가집 마을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어라坐數夕陽煙起處 가만히 앉아 석양에 연기 나는 곳 헤어 보니始知原是幾家村 원래 몇 집의 마을인가를 비로소 알겠네蒜?生鬚玉瓣成 마늘에선 수염 나와 하얀 꽃잎을 이루었고瓜藤疊葉隱黃英 오이넝쿨 겹친 잎새엔 노란 꽃이 숨어 있네筍鷄剩
이용악 시와 故鄕모티프-≪分水嶺≫, ≪낡은 집≫, ≪오랑캐꽃≫을 중심으로-Ⅰ. 들어가며1. 연구사 검토2. 문제제기Ⅱ. 이용악의 ‘故鄕喪失感’Ⅲ. 작품에 나타난 고향 모티프1. 첫 시집 ≪分水嶺≫2. 둘째 시집 ≪낡은 집≫3. 셋째 시집 ≪오랑캐꽃≫Ⅳ. 맺음말Ⅰ. 들어가며1. 연구사 검토이용악(李庸岳)은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일본 도쿄 소재 상지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에 유학. 그 기간 중 「신인문학」 1935년 3월호에 시 ‘패배다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이 무렵 함경북도 명천 태생인 김종한(金種漢)과 더불어 동인지 「이인(二人)」을 발간한 바 있고, 개인 시집으로는 첫 시집 「분수령」(1937), 두 번째 시집 「낡은 집」(1938), 세 번째 시집 「오랑캐 꽃」(1947),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1947)을 발간하는 등 시기적으로는 193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시작 활동을 하였으며, 을유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복역 중 6·25를 맞이하여 그 이후는 월북한 것으로 되어 있다.)특히 그는 일제의 온갖 수탈과 핍박으로 인해 농촌해체와 궁핍화가 극심해가던 1930년대 중·후반 이 땅의 척박한 민족적 현실과 고통스런 민중적 삶을 날카롭게 묘파하면서 당대 민족문학의 한 핵심이라 할 유·이민(流移民)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함으로써 일제강점 말기 이 땅 시사에 문학의 현실적·사회적·역사적 응전력을 제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그는 분단 이후 남북 간에 고조된 냉전 이데올로기의 격화로 인해 오랫동안 월북시인으로 분류되어 그의 시와 삶은 물론 그에 대한 연구마저도 불온시 내지 금기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70~80년대 들어 온 국민의 민주화 열기와 그로 인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1988년 정부에 의해 이른바 납·월북문인에 대한해금조치가 이루어짐으로써 이용악의 작품 간행과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이용악의 시들은 소년 시절의 가혹한 현실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을 노래한 현실주의시로 (혹자는 이것을 민중시로도 부르고 있다) 확산하고 있다고 본다.)용악의 시가 초기에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고, 『분수령』이후 소박한 정서로 당시의 피폐한 농촌현실을 여실히 묘사했으며, 해방 이후 좌익에 경도되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의 시작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조적 평가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결합」)으로 혹은 「모더니즘에 경향문학을 가미한 인생파 시인」)이라는 절충적인 입장들이 지배적이다. 혹자는 용악을 「민족시인」)의 위상에서, 혹자는 「순수한 민중시인」)의 위상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쪽도 있으나 「눈 나리는 거리에서」,「길」 같은 시 구절에서 추출될 수 있는 친일적 요소, 김동환·최재서·김종한 같은 친일적인 주위인물, 결혼 이후에 지니게 된 소시민성 등으로 미루어 보아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 친일성이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고 나중에는 그 같은 행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는 사실이다.)이용악이 초기시에서 모더니즘적 요소와 함께 리얼리즘적 성향이 검출되는 것은 당시의 정신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온갖 품팔이 노동꾼으로 고생하며 학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상지대한 유학시절의 도시체험은 이용악으로 하여금 김기림·김광균과 같은 도시적 상상력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이용악시의 출발점을 카프계의 프로시와 모더니즘의 장식적 도시풍경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그런데, 이용악이 그런 계층적 성분에서 비롯된 현실인식 능력은 명분보다는 실질 우선의 감각과 엇물려 있는 능력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한 시인들이 구호나 슬로건류의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이용악은 유연성 있는 대응과 변모를 해나갔다. 친일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련의 시편들도 이와 같은 이용악의 감각과 연결시킬 수 있다.2. 문제제기용악의 시적 도정에서 『분수령』이후 일관성 있게 묘사되고 있는 고향모티프를 중심으로, 용악의 경우 현재의 시간성 속에서 고향으로부터 송두리째 뿌리 뽑혀 나가는 시대적 비극성에 그의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용악의 이런 관심은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에서 일관성있게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용악의 시를 관류하는 고향모티프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고, 그의 시세계를 파악해보고자 한다.Ⅱ. 이용악의 ‘故鄕喪失感’이용악은 전통적으로 미의 예찬대상이 되거나 인간사와 대비되어 그 영원성, 교훈성 등을 드러내는 세계 또는 현실도피의 장이 되어왔던 자연을 새롭게 해석하였는데, 그의 ‘故鄕喪失感’ 역시 시대적 상황과 결부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尹永川도 고향상실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여기서의 고향은 독특한 시적 정조 또는 단순한 회고적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물이 아니라, 고통받는 삶과 역사의 시적 등가물로 치환되어 있다.)이와 같이 ‘고향’은 어린 시절 자신의 고난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고 또 ‘털보네’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앞서의 자연적 인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곳은 ‘역사의 비극이 담긴 현장’이 되는 것이다. 이용악의 고향은 형이상학적 정신의 공간도 아니며 자신이 보호받고 기댈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이 점은 다음의 『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라는 작품에서도 확인된다.도망하고 싶던 너의아들가슴 한구석이 늘 차그웠길래고향아되지굴같은 방 등장불은밤마다 밤새도록 꺼지고싶지 않었지드듸어 나는 떠나고야말았다곧얼음 녹아내려도 잔디풀 푸르기 전마음의 불꽃 거느리고멀리로 낯선 곳으로 갔더니라그러나 너는 보드러운 손을가슴에 얹은대로 떼지않었다내 곳곳을 헤매여 살길 어드울때빗돌처럼 우득현이 거리에 섰을때고향아너의 불음이 귀에 담기어짐을막을 길이 없었다· · · · · · · (중 략) · · · · · · ·나는 그리워서 모두 그리워먼길을 돌아왔다 만버들방천에도 가고싶지 않고물방앗간도 보고싶지 않고고향아가슴에 가로누운 가시덤불돌아온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향의 부드러운 손은 화자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타관을 헤매며 ‘살길 어드울때’,‘ 또는 갈 길을 잊고 거리에 비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때일수록 고향의 ’불음이 귀에 담기어짐을/막을 길‘ 없다. 결국 다시 먼 길을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가슴에 가로누운 가시덤불‘은 가시지 않고 사늘한 바람만 불어올 따름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슬픔이 물결처럼 막막하게 일어난다. 화자는 다시 고향의 품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와 같은 심리구조는 ’막막한 고향→떠남→막막한 타향→고향으로 귀환→막막한 고향→떠남‘의 악순환의 구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향과 타향을 전전해보지만 어느 곳에서도 가슴에 꽃을 피울 수 없는 깊은 고난 속에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즉, 초기시에 두드러진 자의식적 시편들은 바로 이런 개인적 유랑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Ⅲ. 작품에 나타난 고향 모티프1. 첫 시집 『분수령』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북쪽』 전문이 작품은 첫 시집 『분수령』에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의 두 번째 시집 『낡은 집』과 함께 1930년대 후반 일본 동경의 삼문사에서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들 시는 기본적으로 일본 유학시절 동경에서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예의 시집에 실려 있지 않은 초기작 9편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면 이 경우 이용악은 진한 향수를 시적 정서의 주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이용악의 시는 1930년대 중반 이후 1940년대 말까지의 역사 사회적 현실과 함께 했다. 그러므로 이 시기 대부분의 우리 시에 드러나 있는 고향상실의식은 사실 민족 상실의식, 즉 국권 상실의식의 한 변형된 표현이라고도 해야 할 터이다. ) 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위 작품에서의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노랑고양이 울어 울어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나의 동무는도토리의 꿈을 키웠다.그가 아홉살 되던 해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탐스럽게 열던 살구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낡은 집』 전문이 작품은 텍스트의 발화자인 용악의 고향을 작품배경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또한 여기서 일어나는 비극적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담화를 짤막하게 정리하면, 누대에 걸쳐 힘겹게 살아 온 털보네가 전사회적인 궁핍으로 말미암아 오랑캐령이나 러시아로 야밤도주하여, 결국 그들의 집이 폐가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담론에서 드러나는 아들의 탄생과 고향떠남은 한 가족사를 관통하는 연합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과 통합된다면, 이 담론의 진실은 한 시대를 관류하여 부각되는 사회의 부조리를 대변하게 된다.한 가족사의 궁핍으로 인한 고향떠남, 그리고 간접화접에 의해 드러나는 비인간화라는 모티프들은 동시대의 집단의식과 통합되어 시대적인 질곡을 의미화 전면에 돌출시키고 있다. 비록 이러한 고발이 ‘찻길’이라는 근대화의 표정과 간접화법이라는 우회로를 취하여 이루어진 것임은 분명하다 할지라도, 이런 소극적 저항행위는 일제의 강점기 아래에서 성취된 것이기에 우리 민족사 전면에 그 의미가 커다랗게 증폭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관계망에서 용악의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고향모티프의 비극적 배경은 식민지치하에서 황폐화 되어가는 조국의 현실상황이라고 다.
통일에 대한 찬성 입장주제문 : 통일의 달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막대한 분단관리비용의 지출을 종결시키는 한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영역에서 다양한 편익들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으므로, 통일의 필요성을 깨달아야한다.1) 서론분단으로 인하여 나 자신과 우리 민족은 어떤 제약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통일이 나와 우리민족에게 가져다 줄 편익은 무엇인가를 이해하여 통일의 필요성을 인지한다.2) 본론① 통일을 정치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을 해소시키고 동북아지역의 평화에 기여한다.② 통일을 경제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창출하고 한반도를 동북아 번영의 중심국가로 이끈다.③ 통일을 사회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분단으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한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조화로운 민족공동체를 구현시킨다.④ 통일을 문화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남북이산가족 등 분단으로 인해 생이별을 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한다.3) 결론통일은 민족적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 민족적 차원의 지속적 노력과 인내와 헌신이 필요하다.통일에 대한 찬성 입장주제문 : 통일의 달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막대한 분단관리비용의 지출을 종결시키는 한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영역에서 다양한 편익들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으므로, 통일의 필요성을 깨달아야한다.1) 서론제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하고 점령하게 되어 시작된 남북 분단은 동북아시아의 냉전 구도를 지속시켰으며, 남북 간의 적대적 체제와 이념 경쟁으로 인해 상호간에 불신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다.민족의 분단으로 북한은 권위주의적이고 사회동원을 강조하는 정치 문화를 형성하여 국제 무대에서의 대립과 민주주의의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산가족의 고통은 이로 말할 수 없으며,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생활의 불편함과 지역 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받게 하였다. 또한, 남북한 상호경쟁과 군사적 대치로 막대한 국방비 및 군수 관련 지출을 하였으며, 자원의 분할 사용으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고, 분단이 지속될수록 민족의 동질성이 훼손되고, 민족사의 방향이 왜곡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이처럼 남북 분단이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초래한다면, 통일은 이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비용을 소멸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통일의 성취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해결하고, 손실된 민족의 정체성을 복원하며,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하는 도약의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인명의 살상과 전 국토의 피폐화를 초래할 전쟁의 공포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방 시킬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분단이라는 환경적 장애에 구속되지 않는 열린 사고의 민주정치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다원성 속에서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구현되는 성숙한 선진사회로의 전이가 모색될 것이다. 경제영역에서는 경제규모의 확대가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 등을 토대로 국가 번영과 선진적 복지사회의 구축을 위한 전 방위적 노력이 주도될 것이다.이 발표문은 분단으로 인하여 나 자신과 우리 민족은 어떤 제약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통일이 나와 우리민족에게 가져다 줄 편익은 무엇인가를 이해하여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 시키고자 한다.2) 본론 : 통일의 필요성① 통일을 정치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을 해소시키고 동북아지역의 평화에 기여한다.통일은 남북한의 주민, 영토 및 여타 자산들을 하나로 독립적 국가주권 하에 귀결시키는 정치적 통합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통합의 완성을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불안한 정세는 남북한 발전의 장애요인이 되어 왔다.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지역의 불안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이 지역은 물론이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② 통일을 경제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창출하고 한반도를 동북아 번영의 중심국가로 이끈다.통일은 한반도에 단일경제권을 형성시킴으로써 내수시장의 확대를 도모하고 남북한 인적·물적 자원의 상호보완성을 높여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남북이 통합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북아시대의 번영을 주도할 것이다.[참고]남한의 2006년도 공식 국방비는 22조 8천억 원으로 전?해경 및 병무관련 비용을 포함하면 남한의 방위비는 24조 원에 달하고 있다.지난 20년의 국방비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연간 국방비가 평균 8% 이상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통일부 통계자료 2006 -③ 통일을 사회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분단으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한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조화로운 민족공동체를 구현시킨다.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조화로운 민족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60여 년간의 남북분단은 민족 구성원 간 상호불신, 반목 및 갈등을 부추기며 민족통합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이 되어 왔다. 통일국가의 실현은 우리 민족의 총체적 역량을 재 결집 시키며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추동력을 제공할 것이다.④ 통일을 문화적 측면에서 보는 입장→ 통일은 남북이산가족 등 분단으로 인해 생이별을 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한다.분단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남북으로 갈려있는 이산가족들이다. 남북 간 분단 상황에서 장기간 교류와 왕래가 두절된 채 고통 받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함께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중차대한 과제이다. 통일은 무엇보다 먼저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해소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