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작가 중 한명이다. 내 생각에 그녀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녀의 프랑스적 기질과 독특한 동양의 정서와 벨기에의 유머러스함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그녀의 소설 중 가장 처음으로 접한 ‘살인자의 건강법’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이 책은 절대로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만든다.그녀는 단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겨우 그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이 책이 가진 모든 비밀과 과거의 이야기들이 모두 폭로된다. 한 남자가 공항에 앉아있다. 남자는 곧 비행기를 탈 것이라 예측하지만 우연찮게도 비행기는 뜨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공항에 대기한다. 그 남자의 주변은 한산하며 그 남자의 인생 또한 한산함이 무르익은 시점이다. 그리고 그런 그 남자의 앞에 또 다른 남자 한명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텍스토르 텍셀. 그의 이름에서조차 그야말로 소설가만이 행할 수 있는 언어적 유희가 잘 나타난다. 두 명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눈다. 텍스토르 텍셀은 계속해서 대기 중인 남자를 화내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들며 그가 가진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주인공에게 들이민다. 주인공은 너무나도 짜증나고 화가 나지만 그의 비상한 말재주에 맞서며 무의미한 자기 방어적 대화를 펼쳐나간다. 그러는 와중에 텍셀은 점차 베일을 벗겨가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필사적으로 전달한다.이 이야기 방식은 정말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그저 진부한 책들에 점점 지쳐갈 무렵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의 책을 읽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반전이 있다. 역겹기 그지없는 텍셀의 과거를 나열하던 작가는 문득 생각이 났는지 현실세계를 비꼬기 시작한다. 그녀는 아주 말짱하게 깔끔한 한 남자를 속속들이 들어내고 마침내는 기막힌 반전으로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그녀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양심을 결코 들춰내려 하지 않았던 화이트칼라의 현실상을 극채색으로 물들인다. 주인공의 가장 깊숙이 숨겨진 내면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인 양 방관하던 우리를 숨막히게 몰아세우고 결국 이야기의 후반에 가서는 우리를 텍셀의 혓바닥 위에서 놀아나게 만든다. 그녀는 우리의 내면을 간파했던 것일까.
아름다운 가게를 둘러보다.11월 5일. 나는 평소처럼 아름다운 가게에 들렀다. 물론 과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살피는 것은 꽤나 오래된 습관이었다. 처음으로 아름다운 가게에 들어간 것은 대학생활 도중 작업복이 필요해서였다. 친구들이 아름다운 가게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나는 싼 가격에 작업복을 구하기에 적격인 그 곳을 찾았다. 그 곳을 처음 들렀을 때의 독특한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곳은 어릴 적 학교에서 자주 했던 벼룩시장이 그대로 옮겨진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쳤지만 아직도 자신의 주인을 못 찾은 모양인 여러 물건들이 나름대로 다시 단장을 하고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각종 옷가지, 신발 등에서부터 가구, 벨트, 애견용 장난감까지. 그저 책이나 문구류가 몇 개 있겠거니 하는 내 생각 외로 물건의 종류도 다양했다.처음엔 괜히 뻘쭘해서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그만 나와 버렸다. 새 제품을 사지 않고 중고제품 중에서 무언가를 산다는 게 왠지 한 손엔 테이크아웃 커피와 한 손엔 최신형 휴대폰을 든 그야말로 도시여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뒤 나는 그 가게를 다시 찾았다. 난방 기구가 없는 과실에서 벌벌 떨며 밤새 물레를 찰 것이냐, 아니면 그나마 작업복이라도 구해 옷이라도 따듯하게 입고 작업을 할 것이냐 라는 기로에서 결국 난 감기가 걸리지 않는 쪽을 택하였다. 나는 다시 복지관으로 향했다. 의외로 새로운 작업복을 고르는 일은 재미가 쏠쏠했다. 전혀 뒤죽박죽 모양인 셔츠들이 죽 늘어서 있는 옷걸이는 자세히 살피다보면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 디자인의 옷을 찾아볼 수 있었다. 흔히들 ‘건진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나 역시 그 날 내 작업복을 ‘건졌다.’ 그것도 두 개나.그 날 이후, 나는 자주 아름다운 가게를 들렀다. 싼 가격에 그야말로 쓸 만한 물건들을 산다는 게 재미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학교 복지관에 있는 가게뿐만이 아니고 신설동역, 미아역, 미아삼거리역 등 내가 주로 움직이는 동선에 있는 가게들을 모두 둘러보게 되었다. 왜냐면 이 가게는 다른 여느 가게들과 달리 가게마다 팔고 있는 제품이 거의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것도 있었다. (아마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량으로 기증을 받거나 스스로 생산하거나 하는 제품들 같았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그 지역 사람들이 다시 나눠 쓰고 싶은 것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이 가게의 볼거리였다.
비둘기강의를 다 듣고 집에 가는 길. 후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반대편 보도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차도로 내려온다. 비쩍 마른 모습을 보니 먹이를 찾아 내려간 듯 했지만 마땅히 부리질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그것도 아닌 듯하다. 무엇이 그를 차도로 내쫓은 걸까.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습지만은 않다.집 주변에 비둘기가 엄청나게 많던 어릴 적엔 비둘기에게 과자를 뿌려주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더랬다. 그저 과자 몇 개 던져놓으면 어느새 비둘기 여럿이 모여와서 열심히 과자를 쪼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해서 과자 한 봉지를 다 비둘기에게 주어 버렸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 비둘기들은 푸둥푸둥 살이 올라 아무리 내쫓아도 잘 날지도 않고 제 딴엔 잽싸게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 때면 비둘기들도 잡담을 나누는지 놀이터 한구석에 여럿이 모여 있었다. 어쩌면 비둘기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초등학생 때였다. 그 날도 놀이터 주변에 비둘기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누워 있는 비둘기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둘기가 자는 줄 알고 신기한 마음에 다가섰다. 비둘기는 나를 봤는지 잽싸게 일어나서 달아나려 했지만 버둥거리기만 할 뿐, 날지도 걷지도 못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둘기 다리에 실이 묶여있었다. 사실 실은 그냥 묶여있었던 게 아니라 비둘기의 다리를 거의 잘라내고 있었다. 비둘기는 마구 퍼덕거렸지만 나는 그 비둘기를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에 얼른 낚아채어 두 손으로 들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비둘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 사이 친구 한 명이 다가오기에 나는 비둘기의 상태를 말해주고 비둘기를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아파트 단지의 비둘기 아저씨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비둘기에게 밥을 주고 게다가 아프면 치료도 해주는 아저씨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비둘기를 데리고 그 아저씨의 집으로 찾아갔다.아저씨는 마침 집 앞에서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비둘기를 보여주자 아저씨는 집안으로 들어가 어떤 상자를 하나 꺼내왔다. 곧바로 우리에게서 비둘기를 데려가더니 퍼덕이는 비둘기 날개를 손으로 꽉 잡고선 실을 끊어내고 다리에 뭔가 바르더니 하얀 붕대 같은 것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아저씨가 손을 놓자 비둘기는 잠시 푸드덕거리더니 곧 날아갔다. 아저씨가 우리를 칭찬하며 사탕 하나씩을 손에 쥐어줬다. 아저씨는 사람들이 버린 실 뭉치가 비둘기 다리에 걸려서 저렇게 다리를 잃게 되는 비둘기가 많다고 그러셨다. 생각해보니 우리 동네엔 한 쪽 다리가 반만 있는 비둘기들이 정말 많았다. 사람들이 아무도 비둘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아저씨는 자기가 대신 그 책임을 물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셨다.그러나 그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린 반상회 때문에 나와 비둘기는 멀어졌다. 엄마는 나에게 더 이상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을 엄포했다. 비둘기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비둘기들이 싸는 똥으로 아파트가 더러워진다는 것이었다. 그후 비둘기에게 밥을 조금이라도 주려하면 이웃 아줌마들이 나를 나무랐다. 비둘기 아저씨를 찾아가보았다. 아저씨는 이미 아파트 내에서 왕따를 당했고 결국 몇 달 뒤 이사를 했다.나 역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친구들과 노느라 비둘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숙제를 하러 친구네 집에 가는데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 하나가 밖으로 나가는 그 앞을 비둘기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차는 빠르게 다가왔고 결국 그 비둘기는 빠르게 달리는 차의 바퀴에 짓눌려버렸다.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던 내가 다시 그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을 때 남은 것은 내장이 삐져나온 붉은 핏덩어리와 더 이상 날지 못할 회색빛깃털뿐이었다. 가해자는 사라져 버리고 피해자의 유해만 바닥에 버려진 것이다. 끔찍한 광경 속에 비둘기의 다리가 보였다. 하얀 붕대가 메여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독특했다.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다시 한 번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 이제 알법하다. 우리나라는 정말 전 국토가 박물관이었다. 전국 각지에 자신만의 색을 갖춘 문화유적지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굳이 한곳에 모여서 관광객에게 보여 지기 위한 존재로써 남아있지 않고 그 자리 그 곳에서 처음부터 제 자리를 지키며 굳건히 서 있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었다. 책의 처음이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사실, 프랑스 한 평론가가 말한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말은 나에겐 조금 충격이었다. 나의 인생 목표순의 그것도 조금 높은 순위에 랭크 되어있는 루브르 박물관 가보기가 어느새 ‘루브르 공동묘지 가보기’로 이름을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이제는 그 목표보다 조금 더 상위에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부터 답사하기’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보게 된 것은 바로 다산 초당의 실과 허였다. 다산 초당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신성놀음과 같은 세월을 기닌 유적이 아니었다. 처음 그이 목민심서로 인해 다산초당이란 장소를 교과서에서 미세하게나마 접했을 때 그 곳은 마치 속세를 모두 잊은 그 어떤 신선의 한적한 장소를 표현한 듯 했다. 그러나 그곳은 어찌되었든 사람이 살던 곳이다. 제 아무리 반듯한 사람이라도 18년의 유배기간을 죽어라 공부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유배시절 그의 명저로 손꼽히는 등 여러 글이 그의 유배생활 18년 중 마지막 5년간에 모여 있다는 것도 그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나는 차라리 살갑다. 교과서에서처럼 어떻게 저렇게 반듯한 사람이 있을까 나 같으면 그러지 못할 텐데 하며 그를 추앙하는 것보다 아 역시 저분도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을 조금 더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그의 시와 그림 에서 그의 살가움은 조금 더 다가온다. 정약용의 사무치게 외로운 그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여 쓸쓸하기도 했다. 이제 그 곳을 이해한 나에게 그 곳은 더 이상 수학여행에서 하듯이 그냥 스쳐 지나갈 장소가 아니다. 일찍이 나의 선조가 살아있던 곳이고, 그의 외로움과 애민이 남아있는 곳이다.작가는 어느새 다산초당을 살짝 벗어나 천일각에서 구룡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원한 풍경. 나의 마음은 책을 읽으며 벌써 그 곳을 향해 달려갈 듯하다. 그의 유배 시에는 천일각 건물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마 적당한 바위나 그루터기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갔을 그였다. 조용히 앉아 너무도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그가 했던 생각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정약용에 대한 틀어박힌 생각은 오로지 애민이며, 자신만의 정도를 걷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연민을 함께 생각하지 않는 한 그의 위대한 발자취를 미처 따라 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