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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키사라기 감상문
    한 남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내는 구석의 테이블 한 켠에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책 몇 권을 꺼내 보란 듯이 장식한다. 행여 더럽혀질 세라 비닐로 포장해 놓은 남자의 컬렉션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동시에 남자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예정된 멤버 전원이 모이고, 이들은 사망 1주년 추모회를 시작한다. 추모의 대상은 1년 전 자살한 아이돌 가수 ‘키사라기 미키’. 통칭 ‘미키짱’이다. 아이돌 가수 관련 모임이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의 그들답게 모임은 그저 추도회로 끝나지 않는다. 미키짱의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추리극으로 변하기 때문이다내가 이 영화를 접한 것은 2008년. 인터넷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바로 영화 출연 배우 중 한명인 카자와 츠루유기가 우스꽝스러운 머리띠를 하고 연쇄살인범이 추궁 당할 때 지을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영화의 스틸컷이었다. 당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일본드라마를 많이 보곤 했었는데 그 중 이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도 몇몇 있었다. 작품 속의 그는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를 무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국제 테러리스트이기도 했고 사춘기 딸과의 정서적 교류에 서투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연약한 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역할에서나 그는 진지하고 소심한 몸짓에 애써 당당하게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독특한 느낌의 배우였다.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담긴 스틸컷은 내 호기심을 무척이나 자극했다.영화의 구성은 매우 간단하지만 줄거리는 복잡하다. 등장인물은 공무원 ‘이에모토’, 알바생 ‘스네이크’, 백수 ‘딸기공주’, 농촌총각 ‘얏쿤’, 모임 제안자 ‘오다유지’ 다섯 명이 전부다. 인터넷에서 만나 미키짱의 1주년 추도회라는 명목으로 모인 이 다섯 남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이에모토와 얏쿤의 기대와 달리 오다유지의 말 한마디로 걷잡을 수 없는 진지함과 무거움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오다유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녀는 자살한 게 아냐.았다는데 여기서의 가벼움은 진정한 가벼움이라기 보다, 관객들을 무거움에 중독시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할리우드 식의 과장되고 스펙터클한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저 예산 영화인 이 ‘키사라기’를 최고의 작품으로 뽑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치밀한 ‘각본’이다. 거듭되는 반전으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면서도 차곡차곡 드러나는 단서들을 모아 하나의 이상적인 결론을 맺는다. 굳이 장소나 인물, 사건의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고도 ‘스토리’ 하나로 보는 눈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연극의 시나리오가 영화의 원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영화는 죽음에 관련된 여러 사실들 중 결말에 필요한 단서들을 재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인데, 이 단서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제각각 이다. 덕분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 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고르게 돌아가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범인으로 지목된 딸기공주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신을 범인으로 몰았던 오다유지를 오히려 용의선상에 올린다. 오다유지가 범인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얏쿤이다. 오다유지를 용의선상에서 내리는 인물은 이에모토지만, 그 과정에서 쓰인 단서를 제시하는 것은 스네이크다. 이렇게 다섯 인물은 서로가 서로와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있다.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간에, 스토리가 있는 것에는 결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대중작품의 경우 마케팅적 측면에서 생각할 때, 작품이 끝나도 지속적으로 대중의 관심과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향후 후속작을 내든 관련 상품을 판매하든 마케팅 활동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한 작품은 결말이 상당히 중요하다. 결말에 따라 작품의 인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이 추리해낸 가설이 진실이라 믿을 뿐이다. 언론에 알려진 것이 진실일지, 이들의 가설이 진실일 지 작품은 전혀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를이 증거는 새로운 용의자를 지목하는데 사용한다. 최종적으로 한번도 용의자로 지목을 받지 않은 가장 객관적인 인물이 그 단서들을 조합해 새로운 결론은 만든다. 범인이라는 증거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와 만나 새로운 범인을 지목하고, 그 범인이 내세운 증거는 다시 다른 반대증거와 만나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서로 발전하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 흐름을 정리하면 이야기가 발전되는 부분엔 반드시 A와 A’가 만나 B가 되는 과정이 숨어있었다. 이는 지금껏 알지 못했지만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각본이 잘 짜여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각본을 잘 살리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고,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달려있다. 영화 ‘키사라기’는 주인공인 배우들의 연기력도 관전 포인트다.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찌질한 백수 스토커역을 능청맞게 소화한 딸기공주 역의 ‘카자와 츠루유기’와 줄곧 조연에만 머물렀지만 그만큼 많은 작품을 거치며 착실히 쌓은 내공을 보여주는 오다유지 역의 ‘산타마리아 유스케’는 흥행성 작품을 여럿 거치며 유명해진 스네이크역의 ‘코이데 케이스케’, 이에모토 역의 ‘오구리 슌’ 등의 젊은 배우들과의 경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런 2대2 구조에 얏쿤 역의 ‘츠카지 무가’ 또한 극 전체 분위기의 농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해내며 조화를 이루었다.저마다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이들을 더욱 빛낸 것이 바로 독특한 ‘캐릭터’다. 평범한 공무원이지만 미키짱 오타쿠로 팬레터를 200통이나 보내고 그녀의 사진이나 인터뷰 기사 등을 컬렉션으로 모으는 취미를 가진 ‘이에모토’는 단정하고 올바른 공무원과 아이돌 오타쿠라는 이중성을 지닌 존재답게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오타쿠로서의 그가 이리저리 편을 바꾸고, 공무원으로서의 그가 그 편을 단단하게 만든다.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 이상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인물 역시 이에모토다. 미키짱에 대한 집착은 다섯 중 제일인 이에모토는 가하고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는 인물이다자신이 만든 상한 애플파이를 가져와 혼자 먹고 배탈이 나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얏쿤은 캐릭터상의 반전이 있는 인물이다. 배탈로 처음부터 이야기에 참여하지 못해 극중의 배우들도, 심지어 관객들도 그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변이 묻어버린 정장 바지대신 청바지로 갈아입고 기어이 장을 진정시키고 난 후의 그는 다른 네명의 인물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중간부터 참여하지만 곧장 이야기의 핵심으로 뛰어들 파괴력을 지닌 인물이다.오다유지는 이야기 진행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이다.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중간에 범인으로 몰리는 것도 그다. 개인적으로 다섯 명의 남자들 중 미키짱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한참 유행에 뒤떨어졌지만 본인은 트렌디하다고 주장하는 얏쿤의 캐주얼 복장을 진지하게 지적하기도 하고, 몰래 이에모토의 컬렉션을 훔쳐보려는 스네이크를 저지하기도 하는 모습은 처음엔 그저 ‘딱딱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중반부에 미키짱의 책임이 그의 탓으로 돌려졌을 때 그가 받을 충격과 죄책감이 관객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캐릭터 자체의 반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에 남았던 인물이 딸기공주다. “나는 스토커가 아냐. 그냥 지켜봤을 뿐이야.” 라고 말하며 스토커임을 부정하는 그의 말은 딸기공주라는 캐릭터 특유의 4차원성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그가 정말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얏쿤의 반전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반전이라면, 딸기공주의 반전은 알았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반전이다. 관객들은 그때부터 그를 단순한 오타쿠 스토커로 생각했던 것에 미안해지기 시작하고, 그 미안함이 딸기공주라는 케릭터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진다. 상영 당시 인기투표에서 희대의 아이돌인 이에모토 역의 ‘오구리 슌’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물 역시 딸기공주였다. 얏쿤의 반전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하게 만든다.청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은 시각이다. 작가는 시작적으로도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는데, 바로 ‘재현’ 장면이다. 저마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미키짱이 죽던 날을 더듬어 가는 재현 장면에서 감독은 화면을 2차원으로 구성한다. 원근감에 근거한 3차원은 배경뿐, 그 안을 거니는 인물들은 전부 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2차원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촬영기법이 미숙한 학생들이 UCC공모전에서 스캐너만을 이용해 촬영을 하는 인상을 준다.이런 2차원적인 구성은 작품이 무거워질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구성이 ‘키사라기’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에 더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의 감상 평에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떠올릴 때 재현장면을 중심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 장면의 앞 뒤 장면을 끼워 맞추며 전체적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재현한다. 나 또한 그랬다. 평소 흔히 접하는 영상물에서 보기 힘든 독특하고 낯선 점이 오히려 기억을 강조하는 것이다.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난 그저 거듭되는 반전에 놀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놀랐을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필수교양 중 하나인 ‘대학국어작문’이라는 과목을 통해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 후에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며 작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었을 지 생각해보니 또 한번 놀랐다. 하나의 성을 쌓듯 작은 조각들을 모아 결말에서 그들을 한데 묶는 이 시나리오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곤 지금 교양수업 ‘대중예술의 이해’를 통해 ‘낯선 것’이 가진 예술적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영화를 보니 영화는 낯선 것들 투성이였다. 오타쿠라는 소재, 촬영 기법, 배우의 연기변신, 지금까지 몰랐었던 이야기의 구조까지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 투성이였다. 나에게 있어 ‘키사라기’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예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다.
    독후감/창작| 2012.11.07| 4페이지| 1,0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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