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문화의 이해< 2차 과제>?사진을 제외한 분량은 3페이지 정도입니다경복궁 답사-궁궐, 역사 속에 살고있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요즘 도대체 추운날씨는 누그러들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복궁에 가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여느때처럼 잠깐가서 멋진 사진을 찍고오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혹시나 남아있는 예전의 손때의 흔적이라도 찾기위해, 오랜시간 머물러 있을 것이므로 장갑에 목도리,따뜻한 물과 배낭에 사진기를 챙겨 아무에게도 말하지않고 혼자 출발했다. 경복궁역에 내려 광화문 궁궐담장을 향해 걸어가는길, 매번 이용하던 코스이지만, 답사를 하는 의미에서 생각해보니 지하철을 타고 내리자마자 역을 나와 바로 궁궐의 옆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니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탐사를 다 끝내고 나올때는 광화문으로 나와 세종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백악산과 어우러진 경복궁의 풍경을 뒤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답사를 마무리를 지었다. 어쨌든, 역에 도착하여 나오니 이내 익숙치 않은 광화문의 뒷모습이 보인다. 일상에서 접하는 광화문의 화려한 앞모습은 익숙했지만, 그가 품고 보호하고있던 궐 내에서 뒷모습을 보니 어쩌면 앞보다 뒷모습이 더 역사의 장면엔 잘 어울리는 듯하다.사실 지난 번 답사를 할 때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예전과는 사뭇 다른 답사를 위해 음성가이드를 구매하고 혼자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발걸음을 옮겨 흥례문을 지나 영제교에 다다르니 아무리 얼어붙은 금천이라도 건너기 전에 예의를 차려보이며 주위의 동물들의 눈치를 살폈다. 걔중엔 혼자 혀를 내밀고 있는 천록상도 보였는데 괜히 웃음이 나다가 이내 든 생각이, 임금이 행차할 때도 저 천록상을 보지 않았겠나? 그럼 그때 그 근엄한 왕도 피식 웃음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근정문으로 향하며 답도에 새겨진 봉황을 한번 살펴보고, 저렇게 경사진 곳에 왕의 가마를 내리면 올라가다 넘어지진 않을까 괜한걱정과 함께 답도 앞에 한번 서보기도 하고 돌아보기도 하며 문에 들어섰다.근정전을 마주하게 된 순간에는 아무리 오래된 궁궐이고, 옛모습을 그대로 갖추지 못한 궐이라해도 그런사실을 잊고 역사 속의 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선비들이 꿈속에서라도 들어오고 싶어했다는 이 넓은 조정 양옆에 위치한 품계석은 의미를 모르면 한낱 돌덩이일뿐이지만, 이것이 바로 옛날 신하들이 정렬할 때 기준을 삼는 순서가있으며 지위가있는 비석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마치 이 돌 자체가 진짜선비인양 보여 돌들이 당장이라도 근정전을 향해 허리숙여 인사할 것 같다. 가운데 어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걸어 근정전에 오르려니 그 높이가 높아 마치 아무나 올라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월대위의 사신과 십이지신상은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모습은 마치 여유로운듯 보이지만 눈을 부릅뜨고 이사람 저사람 살펴보며 옛주인이 떠나간 궁을 자기들은 남아서 수호하는 듯하다.근정전에 올라 가운데에 서서 돌아보니 어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넓게 펼쳐진 조정과 저멀리 겹겹의 문들이 보인다.멋있는 풍경에 탄성이 나오는 것도 잠시, 나는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임금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런데 임금이 당대 최고의 권력을 지닌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에 대담하고 당찬 성격과 자신감 있는 왕이 아니었다면 근정전에서 조정신려들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내심 아무도 모르게 긴장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궁안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궁밖의, 나라안의 모든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자신이 있는 근정전쪽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근정전 내부를 살펴보니 천장에서 강의시간에 배운 칠조룡이 자리잡고 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여서 놀랐지만 그보다도 아무도 천장을 바라보지 않는 것에 더 놀라며 칠조룡을 뒤로하고 한바퀴 빙 돌아본 후 지붕의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잡상들에 눈맞춤 하고서야 사정전으로 들어섰다. 근정전을 보고난 후라 사정전은 아담해보이지만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집무실이 화려할 필요는 없는 것일테니까.그런데 정말 황당한일을 목격했다. 사정전 위를 구경하던 한 남성이 뒷짐을 지고 가래를 끌어모아 사정전앞에 침을 뱉는 것이었다. 사정전 사진을 찍던 나는 벙 쪄있었는데 이윽고 그의 입에서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마치 나를 향해 침을 뱉은 것처럼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며 이게 무슨상황인가 생각을 하다보니, 외국인관광객 전체에 대한 생각으로미쳐, 본질적으로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궁을 돌아보게 되면 대다수가 외국인 관광객이지만, 한국인 가이드나,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과 함께 답사를 하는 관광객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외국인의 눈에는 이 건물이 어떤곳이고, 저 건물은 어떤 곳인지 분간을 하지못하고 처음에만 신기해하며 볼수록 그저 비슷한 구조의 건물들이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없는 궁궐은, 그들의 눈에 미술적 작품에 가깝게 비칠 것이다. 그래서 사전지식이 없는 관광객들은 이 곳들 전체가 얼마나 조심하게 다뤄야할 한국이라는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지를 알지 못한 채 산책하듯이 걷다가 다 구경도 하기전에 이 미로같은 곳을 그냥 나가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황당한 사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 궁에 여러 보조적 장치나 언어 가이드들의 추가 정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분명히 다수의 외국인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곳을 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외국인들에게는 궁궐에 대한 가이드나 정보에 따라 이 전통적 장소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정도가 확연히 차이나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점을 보완하여 후에 궁에 왔을 때에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함께 공감하는 눈빛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어쨌든 조금은 찜찜한 기분으로 강녕전에 들어섰다. 강녕전이 만일 복원된 곳이 아니라 예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둘러보니, 이 곳이야 말로 왕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믿음이 든다. 우리도 침실에서 잠이 들기전에 그리고 잠에서 깨고 난 직후에 가장 솔직해지며 그 때만큼은 치장이 없고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꼭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내면에 대한 생각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임금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왕이란 자리가 생각처럼 모든 것을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의 자리가 아니기에 주위의 위협으로부터도 상시 경계해야하므로 평범한 인간이 모든 것을 놓고 잠을 자는 시간에도 왕은 왕이란 신분 자체로 편안잠에 드는 적도 드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이 곳을 지나 조금 작은 교태전에 들어서니 문들이 아담하다. 음양의 조화를 가장 잘 드러낸 곳으로, 구조를 보면 마치 강녕전이 교태전을 감싸 보호하고 있는 느낌이다.왕만큼 많은 업무를 담당했을 왕비의 처소. 남성우월주의 시대의 조선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바로 그 지위에 있는 왕비는 이 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역시 생각했던 것 만큼 순탄 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 이다. 그래서 아미산을 두고 지칠때마다 바라보지않았을까. 지금은 계절이 겨울이니만큼 봄에 는 화사하며 아름다웠던 아미 산 굴뚝이 조금은 황량해보인 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니면 원래 앞만보고 걷는 우리나라 현대인의 습관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답사하는 시민들은 아미산을 향하여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자경전을 향하여 직진한다. 씁쓸한 마음으로 나도 자경전으로 발걸음을 돌려 자경전의 화려한 담장을 오랫동안 살펴보다가 십장생 굴뚝의 그림에 감탄하며 이후 동궁일대까지 감상하고 경회루로 향했다. 그런데 가기 전에 돌아본 곳에 갑자기 거대하고 낯선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국립민속 박물관이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궁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런 박물관은 나중에 따로 가기로하고 다시 발길을 경회루로 돌렸다.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경회루, 하지만 겨울이라 조금은 추워보인다. 그런데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지금 계절의 이모습은 역사 속의 경회루의 겨울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경회루는 ‘누’의 건물형태로 사방이 뚫려있으니 옛 선조들도 추운 겨울에 경회루에 들르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화려한 연회의 장소로 알고있는 경회루가, 그 당시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즐겁고 웃음만 넘치는 장소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사실 저 곳에서 마음놓고 연회만 즐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궐내에서는 모든 곳이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잊을 수 없는 긴장감 감도는 곳이었을 것이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신분 사회에서, 경회루에서 신하들과 왕이 함께 연회를 즐길 때에 신하들은 왕 앞에서 마음껏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며, 왕은 웃음짓는 와중에도 은연중 그런 그들을 살피고 경계했을 것이다. 외신들을 접견할때도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회 중에도 마음 속으론 정치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경회루에서 등돌리며 수정전을 만나는 것도 잊지않았다. 우리나라 위대한 문화유산 훈민정음이 창제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이었던 이 곳. 처음엔 이름이 수정전이라하여 익숙치 못한 건물이라 생각하였지만 이내 집현전이 있던 곳이라 하니, 갑자기 그 터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다. 이래서 역사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또 한번 깨닫는다. 또 이 일대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궐내각사가 펼쳐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공허할 뿐인 이곳 앞에서 혼자 머릿속에서나마 건물의 풍경을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