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영 미 희 곡 개 설담당교수학 과영 어 영 문 학 과학 번이 름벙어리 웨이터과제를 수행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헤롤드 핀터란 극작가의 벙어리 웨이터(Dumb Waiter)를 접하게 되었다. 단지 제목만 보고선 처음에 레스토랑의 말 못하는 웨이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무심코 펼쳐든 벙어리 웨이터는 다소 당황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아온 희곡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듯했다. 공연을 목적인 희곡에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하고 있으나 다른 보통 희곡과 다른 그 무언가가 벙어리 웨이터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짜여진 연극 대본, 특히 사실주의 연극 대본과 같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만이 연속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벙어리 웨이터와 같은 연극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사회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색해하며 극에 빠져들지 못해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은 재밌고 잘 짜여진 이야기의 허구로만 버무려진 사실주의 연극 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작가들이 짜 놓은 플롯대로 극을 보아온 탓에 당연히 이런 극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혹은 그 극의 내용은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우물쭈물하며 한동안 망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처음에 이 글을 읽었을 때 벤과 구스의 대화가 너무 간결하고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아 당황했다. 지하실에 있게 된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음침함이 물씬 풍기는 지하실 방에서의 벤과 구스는 영양가가 없는 무마건조한 말만 주고받을 뿐이다. 둘이 알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있긴 한데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관객(독자)에게 그들의 상황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내용의 파악이 우선이기에 나는 영화 ‘올드 보이’의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감금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나름대로의 상황을 만들어가며 읽어보기도 했다. 3번 정도 정독을 하며 읽어본 결과, 그들의 무미건조한 대화 나열과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행동들의 연속에서 지루함을 느꼈다. 물론 의미 없는 단순한 행동만은 아닐 것이다. 상징적인 행동들이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연극의 작품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무대위의 배우들의 말은 그 인물을 파악하는데 꽤 비중을 차지한다. 무대지시나 주위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또한 인물들의 어떤 유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소하나마 내가 그들의 대화에서 알아낸 것은 누군가의 지시(상부의 어떤 알려지지 않은 사람)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지하실로 온 것이라는 점이다. 벤과 구스의 대화 속에서 그는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전화를 통하여 메시지만 보낼 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무언가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듯하며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닦는 모습은 그들이 킬러 혹은 살인청부업자라는 암시를 주었다. 벙어리 웨이터의 주인공은 단 두 명, 벤과 구스이다.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 속의 지하실에서 그들은 문은 열고 들어올 누군가를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상부의 지시에 어긋나는 것은 죽음을 예고하며 따라서 이들은 절대 복종하고 있다.무대상에서 보여주진 않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벤과 구스가 있는 사회는 폭력과 피로 얼룩진 하나의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이 결국 극작가가 의미하는 현대 사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음침하고 어두운 지하실을 현대 사회를 상징하도록 조그만 소세계를 형성했으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 역시 현대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희극적 요소로 보인 벤과 구스의 말장난, 예를 들면 원정경기를 하러 갔다는 축구팀의 이야기나, 벤이 하는 말 그대로 구스가 주체를 자신을 중심으로 바꾸는 그러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화의 단절을 뜻하기도 한다고 보아진다. 서로의 뜻이 통하지 않아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제 목소리만 내면서 남의 안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개인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벙어리 웨이터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매번 음식물을 적은 메시지만 올 뿐 그들의 요구는 좌절되는 모습에서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 코드가 맞지 않아 서로의 말은 허공에서 부딪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