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감상평중경삼림은 명작으로 소문난 홍콩영화중 하나이다. 각종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아직도 그 순위를 지키고 있으며 작품을 수십번씩 보는 매니아들도 있는 작품이다. 물론 동사서독도 이런 매니아들이 많고 왕가위 감독 스스로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명감독이다.이렇듯 감독은 왕가위에 주연목록만 대충 훑어도 남자주인공에 양조위, 금성무 여자주인공에 임청하다. 심지어 1994년에 제작되었기에 파릇파릇 젊은 모습의 양조위와 금성무를 볼수 있기에 여성분들은 한층 더 즐거울 수 있겠다. 다만 만 40세의 임청하는 선글라스를 끝내 벗지 않아서 남성분들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던져주기도 한다.또 중경삼림, 아니 왕가위 감독의 작품의 특징이랄수도 있는 함축적이고 시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대사와 독특한 영상미가 중경삼림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어 이에 주목하며 영화를 관람하면 더욱 즐겁다. 또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면 홍콩 반환을 3년 남겨둔 시점인 1994년의 홍콩인의 감정에 이입하여 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영화이다.중경삼림은 2개의 옴니버스영화로 구성되어있다. 1부격에선 금성무와 임청하가 주연을 맡았고 2부격에선 양조위와 왕정문이 주연을 맡아 열연하였다. 두 이야기 사이에 크게 연관성은 없다. 다만 두 남자 주인공들이 자주 애용하는 야식집이 같다는 것과. 각 작품에 아주잠깐씩 서로 다른 편의 인물들이 비춰 지나가는 정도이다. 이것도 워낙에 빨라서 자세히 찾아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못할 시청자가 많으리라 생각된다.이제 줄거리를 살펴보겠다.1부에서 사복경찰관인 아무(경찰233)는 방금 막 실연을 당한 상태이다. 옛 연인의 이름은 메이이고 파인애플 통조림을 좋아하던 여자다. 아무와 5년을 사귀다가 아무가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헤어지게 된다. 아무는 만우절에 들었기에 한달만 가는 농담이길 바라며 5월 1일 자신의 생일까지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한 개씩 사서 모은다. 그러다 결국 5월 1일을 맞이 하고 2시간 유통기한 남은 통조적는다면 만년 후로 해야겠다" 는 광고에도 차용된적이 있는 유명한 대사를 하면서 말이다.통조림을 모조리 먹은 아무는 자주 가던 야식집에 가서 평소 자기를 좋아했다는 다른 점원 메이를 찾아 보지만 그녀도 이미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떠난 후이다. 아무는 2명의 메이에게 동시에 버림받았다면서 다시는 메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바에 들어가 술을 마신다. 취기가 오른 아무는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겟다는 생각을 하며 바에 들어온 노란머리의 임청하에게 접근한다.임청하는 이 작품에서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단지 노란머리를 한 여자이다. 임청하는 사실마약밀매업을 하는 뒷세계를 사는 여자이다. 인도인들을 이용해서 마약을 해외로 반출시키려다 인도인들에게 오히려 마약을 도둑 맞고 마약업자에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통조림으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음을 협박 받는 상황이다. 결국 인도인들은 찾지 못하고 임청하는 도주 끝에 자신을 협박하던 마약업자를 권총으로 죽이고 방금 바에 들어와서 술로 지친 몸을 달래려고 한다. 마침내 바에서 마주한 아무와 임청하는 술을 진탕 마시고 쉬러 호텔에 간다. 아무는 그녀와의 잠자리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정말로 단지 쉬러 들어온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주 끝에 한 사람을 살해 하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임청하를 아무는 밤새 지켜보며 샐러드 4접시를 먹어치우며 영화 2편을 본다. 그리곤 날이 밝자“그녀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구두도 깨끗해야 한다” 면서 그녀의 구두를 자신의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 주고 떠난다. 그리고 임청하는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 떠나가는 아무의 뒷모습을 지켜본다.아무는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달리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 면서 조깅을 한다.그리고 “오늘은 나를 찾는 사람이 없겠지”라면서 삐삐를 철조망에 버리고 가는데 이때 삐삐가 울리며 생일축하한다는 이름모를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이 메시지만 으로도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1부가 끝난다.2부 캘리포니안 드림을 즐겨 듣는 발랄한 아가씨다. 아미는 양조위를 몰래 짝사랑 하게 된다. 그렇게 몰래 훔쳐만 보던 나날이 계속 되다 양조위의 옛애인이 양조위에게 전해 달라며 편지를 놓고 가는데 그 편지 안에는 양조위의 집 열쇠가 동봉되어 있다. 양조위는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며 집안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을 위로 하고 있다. 결국 아미는 “자신은 몽유병 환자” 라며 편지 속에서 열쇠를 꺼내고 양조위의 집에 몰래 들어가 양조위의 자취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새침한척 관심없는척 양조위와는 긴 대화를 나누지 않는 귀여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엔 옛애인이 돌아온것 같다는, 또 집안의 사물들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낀 양조위에 의해 스토킹과도 같던 우렁각시행각도 들통이 나버린다. 그 순간 양조위는 아미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지고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겠다며 캘리포니아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미는 오지 않고 야식집 사장이 아미가 전해주라고 했다는 편지만 한 장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양조위는 “그녀는 정말 캘리포니아로 간 것이다”라며 이별을 알리는 편지라고 지레짐작하고 편지를 버린다. 곧 비가 내리고 젖은 편지를 찾아가는 양조위의 손이 화면에 비친다. 다 젖은 편지를 정성스레 펴서 빵 데우는 기계안에 넣고 말려서 내용을 읽어보는데, 그 내용은 직접 손으로 쓴 비행기표이다. 출발일은 정확히 1년뒤. 하지만 행선지를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다. 1 년이 지나고 아미는 스튜어디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일하던 야식집으로 돌아왔는데 익숙한 캘리포니아 드림의 음악이 들리고 그 낡고 폐업한 가게 안에는 양조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만남속에서 양조위는 도저히 행선지는 알아 보지 못했다면서 자신에게 비행도중 틈틈이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아미는 “이번 비행은 길어요”라면서 여전히 새침한 속이 뻔이 보이는 귀여운 도도함을 드러내며 자신이 비행기표를 다시 한 장 써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목적지는 어디로제작된 일이다. 1부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부분이지만 어지러운 카메라워크와 고속촬영기법중에 주인공만 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는(이런 장면을 위해서 주인공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주변을 포함해서 고속촬영하는 독특한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모습. 복잡한 도심의 풍경. 실연당한 두남자의 독특한 실연스트레스 해소법. 쉽게 다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당시 홍콩의 불안한 사회 심리를 반영하는 듯하다. 더욱이 알다시피 홍콩은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영국의 자치령으로 존속하고 잇었고, 또한 지리상으로 섬나라이며 도시국가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홍콩반환 당시의 홍콩인들의 심리는 불안감과 혼란감, 그리고 기대감이 한 대 어우러져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중경삼림은 이 정서를 4남녀로 왕가위 식으로 풀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중경삼림이란 제목에서 중경은 빌딩과 도시를 상징하며 삼림은 빌딩과 도시가 마치 숲처럼 펼져져서 삼림을 이루고 이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울창한 삼림안에서 서로 헤메일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이제 작게 들어가서 1부에 집중해 보겠다. 금성무는 대만 출신의 영어 중국어 등이 유창한 사복 경찰이다. 실연의 아픔을 잊어 보려 아주 작게 스쳐지나갓던 옛 여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이미 결혼을 했거나 자신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이에 금성무는 폭식과 조깅으로 반발한다. 자신의 생일이 유통기한 날짜인 통조림을 30개 가량 먹어치우고 하룻밤에 샐러드를 4접시를 먹는다. 그리곤 눈물흘리지 않겠다며 조깅으로 몸의 수분을 빼내려고 한다.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한상자 안고 있던 금성무가 지나가던 거지에게 통조림을 권하자 거지조차 먹지 않는 장면이다. 거지조차 안먹는 자신의 생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금성무는 모조리 먹어 버린다. 축하 받아야할 생일에 실연의 아픔을 느끼며 자신의 생일이 유통기한 만기일인 통조림을 먹는 모습은 정말 모순의 극한을 느끼게 했다.또하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은 금성무가 마지하셨다” 라고 말하면서 구두는 벗어서 닦아주기 까지 하는데 잘 때 가장 불편한 선그라스는 안벗겨주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신을 가리고 싶어 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배려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각박한 현대를, 홍콩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모순적 배려를 표현한 것 같다.이름도 호칭도 없는 노란가발머리의 임청하는 파인애플을 좋아하냐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묻는 금성무에게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니까.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 라면서 타인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없는 모습을 우리에게 답해준다. 또 임청하는 노란가발을 쓰고 다니며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 라면서 레인코트를 입고 선그라스를 쓰고 다닌다. 노란가발을 쓰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쉽게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느끼게 해줬고, 비올날을 대비해 맑은 날에도 레인코트를 입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우울한 날을 대비하면서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당시 홍콩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닌가 느끼게 했다. 선그라스는 2부의 여자주인공이 아미도 애용하는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여러 가지의미가 있는 장치겠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타인으로부터 감추고 타인을 다른 색으로 변조하여 보는 장치로서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극중 금성무는 “선그라스는 장님인 사람과 장님인척 하는 사람, 그리고 실연당한 사람이 쓰는것” 이라고 얘기 하지만 그것만으로 선그라스라는 소품을 왕가위 감독이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또 중요한 장치는 삐삐이다. 중국의 삐삐 음성사서함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교환원이 존재한다.자신의 번호와 비밀번호를 말해주면 교환원이 메시지를 읽어 주는 형식이다. 금성무의 번호는 386, 비밀번호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인데 교환원에게 매일 ‘너를 영원히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에도 아무것도 아닌 타인에게 ‘너를 영원히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식적이고 가벼운 현대인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라고각한다.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검토법학부 2003100732 박상길들어가며노무현 정부때의 행정도시건설와 수도 이전문제로 불거진 헌재의 결정과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의 사건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결국은 새로운 행정도시 개발안인 세종시 발전안이 등장했고 이 세종시안은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에 있어 왔다. 이에 세종시안이란 과연 무엇이고 원안과 수정안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원안 지지자와 수정안 지지자들의 의견을 살펴보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I. 원안과 수정안1. 행정수도 건설세종시안의 원점은 노무현 정부때로 돌아가야한다. 대선당시 노무현 후보는 대선공약중 하나로 충청권에 행정부처를 이전하여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하였다. 목표는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충청권의 표심을 사로잡았고 충청권의 힘 뿐만은 아니었으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공약의 실천을 위해 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을 추진하였다.그러나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지지기반이 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라는 관습법이 있으므로 행정수도를 건설하여 수도를 옮기려면 헌법을 개헌해야 한다는 납득하기 힘든 판결을 받으며 행정수도 건설법안은 무산되었고 본인 자신은 사상초유의 탄핵심판까지 받게 되었다.그러나 이로 인해 수도권의 과밀화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명박대통령은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의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행정수도안은 몇가지 비판을 받으며 결국 원안을 백지화 하고 수정안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2. 세종시 발전안 -원안출발점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공약이고 당선후 2005년 3월 2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이 국회통과되고 3월 2일 2006년 1월 1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탄생하여 추진되고 있었다. 법정위원회 10개와 전담TF와 협의체, 위원회등 총 19개 1000여명이 참석하여 2005년 부터 200세종시가 그냥 허허벌판의 아무도 찾지 않는 땅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원형지형태로 토지를 싸게 제공하고 각종 세제와 규제를 완화 시켜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또 역차별의 문제를 가져온다. 현재 진행 개발중인 다른 혁신도시등에서 똑같은 수준의 인센티브를 요구한다고들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비판은 정치적 신뢰성의 문제이다. 이처럼 거대한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 이다.3. 원안과 수정안의 비교분석원안과 수정안을 하나씩 검토하며 비교해 보겠다.먼저 도시의 성격은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 과학 중심의 경제도시의 성격으로 변화하였다. 행정기관의 이전이 백지화 하였으므로 단지 신도시개발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사업기간은 2030년에서 2020년까지 단기집중개발로 변경되었다. 이는 정책의 시행이 늦어 짐에 따른 충청도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듯 보이나 공사기간은 언제든 연장혹은 단축 될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례들로 볼때 30년의 시간이 가장 적절한 공사기간이라고 하는 우려도 있다. 무조건 단축시킨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또한 자족용지의 비율이 6.7%에서 20.7%로 3배 정도 늘어 났는데 자족용지가 늘어남에 따라 부수시설이 들어 설 수 있고 자족도시화 할 가능성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따라 일자리 창출효과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III. 찬반 양론1. 원안찬성론원안찬성론자들은 행정기관의 일부가 이전해서 효율성이 무조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1964∼97년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이전계획을 14차례나 수립했고, 1973년·80년·90년 세 차례에 걸쳐 59개 기관들을 옮겼다. 이렇게 해서 서울 광화문, 경기 과천, 대전 등지로 행정부처가 나눠져 있지만, 국정 운영에 어떠한 심각한 장애나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중도록 세종시를 인근 9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묶어 400만 명의 광역권으로 가꾸도록 세종시건설법은 규정하고 있다.” (-위동일)또한 원형지 형태로 싸게 토지를 제공하는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세종시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부지 조성원가(3.3㎡당 약 227만원·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밝힌 세종시 산업용지의 조성 예정가격)의 6분의 1에 불과한 3.3㎡당 36만∼40만원에 원형지가 공급된다. 이와 관련해 국무총리실은 “기업이 원형지로 공급받은 뒤 터를 고르는 조성 작업이 필요한데 이 비용이 평당 약 38만원 정도 된다”며 “그러면 총 매입 비용은 평당 78만∼80만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산업단지에서 공급하는 가격과 유사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물론 원형지 가격과 최종 조성지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원형지는 미개발 상태인 토지를 일컫는다. 그러나 세종시의 원형지는 맨땅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간선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초적 기반시설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 산업입지정책과 쪽은 “아마도 세종시의 맨땅 값은 평당 20만원 정도 되고, 여기에 기반시설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 원형지 가격이 평당 40만원 정도로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업이 이 원형지를 받은 뒤 조성하는 데 들여야 할 추가 비용은 총리실이 주장하는 평당 38만원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적정 이윤을 포기한 채 기업에게 원형지 형태로 땅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도 분명하다.이와 관련해 이용섭 의원(민주당)은 “삼성(165만㎡)·한화(60만㎡)·웅진(66만㎡) 등 50만㎡ 이상 투자하는 3개 대기업에 3.3㎡당 36만∼40만원에 땅을 제공하면 부지 조성 예정가격에 견줘 볼 때 총 1조6500억원의 대규모 특혜가 제공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정부는 특히 부지 50만㎡ 이상 입주하는 기업에만 원형지 형태로 3.3㎡당 36만∼40만원 선에 제공하기로 했다. 파격적인 혜택을 누리려면 50만㎡ 이상을 구입해야 한다고용인구(행정기관, 산업단지, 대학 등)가 2만9천명, 그에 따른 유발고용(교육, 문화, 의료 등)이 5만5천명으로, 고용자 1인당 가구원수를 감안하면 총인구는 17만명 수준으로 추산- 발전안은 자족용지를 3배 확충하고, 맞춤형 부지공급,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 통해 2020년까지 ‘일자리 25만개,인구 50만명’을 달성할 수 있다.※ 발전안은 거점고용 8만8천명, 유발고용 15만8천명“ (-위동일)그리고 정치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조건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국가 백년대계와 국가경쟁력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잘못된 원안을 수정하여 수정안을 내놓은 만큼 이것이야 말로 민주적인 정치라고 주장한다.3. 비판행정수도를 일부 이전하는 원안의 경우 찬성론자들의 말처럼 전혀 비효율이 생기지 않지는 않을것이다. 물리적 거리 120km가 생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비효율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업무방식의 개선을통해 비효율성을 줄이는것은 가능할 것이고 이점은 원안의 약점인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도 많은 언론들이 이점을 가장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그러나 행정기관의 이전이 없는 수정안대로 진행되게 되면 현재 진행중인 여타 다른 혁신도시들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진다. 다른 혁신도시들과 겹치지 않게 사업을 골라서 이전을 허락한다는데 그럼 얼마나 다른 기업들이 올 것 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또 정부기관들이 이전해 오면 적어도 확실한 공무원들과 그 수요에 따란 일자리창출효과가 발생할 것 이고 이는 확정적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이 없이 기업들과 민간에 의존하게 되면 그들의 투자에 따라 도시인구와 일자리는 유동적으로 변하게 되어 안정적이지 못하게 된다.게다가 그 이전해오는 기업들은 실제 그 기업의 중심이 이전 한다기 보다는 일종의 지부형태의 이전이 더 많고 대학들의 경우도 고려대의 일부 캠퍼스가 이전 할뿐 고려대 전체가 이전하는 것도 아니다. 또 세종시에 대학이 신설될경우 그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겠다.또한 사실더이상 당해 공공사업에 이용할 필요가 없게 된 때, 즉 공익상의 필요가 소멸한 때에는 원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그 토지 등의 소유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사업시행자가 같은 법 소정의 절차에 따라 취득한 토지 등이 일정한 기간 내에 그 취득목적사업인 공공사업의 폐지·변경 등의 사유로 그 공공사업에 이용될 필요가 없어졌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발생하면 사업시행자의 주관적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환매권자가 토지 등을 환매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나. 토지의 취득목적인 도로개설 및 녹지조성의 도시계획사업이 일부 시행된 상태에서 그 토지를 포함한 일대의 토지들에 대한 택지개발사업실시계획이 승인되어 그 계획에 맞추어 토지이용계획이 정하여지고 택지조성 및 아파트건축공사가 시행되고 있는 경우, 토지의 원소유자가 공공용지의취득및손실보상에관한특례법에 따라 그 토지를 환매할 수 있다고 한 사례.다. 이른바 “공익사업의 변환”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투자기관이 사업인정을 받아 토지를 협의취득 또는 수용한 경우 그 사업인정을 받은 공익사업이 공익성의 정도가 높은 토지수용법 제3조 제1호 내지 제4호에 규정된 다른 공익사업으로 변경된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는 것으로서,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제도라고 할 것인바, ‘나’항의 도시계획사업을 위하여 취득한 토지에 대하여 그 후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택지개발사업은 토지수용법 제3조 제5호 소정의 주택의 건설 또는 택지의 조성에 관한 사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같은 법 제3조 제1호 내지 제4호의 어느 공익사업에도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이에 대하여는 공익사업의 변환이 허용될 여지가 없다.라. 택지개발촉진법 제2조, 도시계획법 제2조 제1항 제1호 (나)목에 의하면, 도로, 공원 및 녹지의 시설용지도 택지개발촉진법 소정의 공공시설용지 즉 택지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나’항의 토지가 택지개발사업에 있어서 토지이용계획상 위와 같은 공공시설용지로 지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한능하다.
영미 대중문화 레포트한?미?영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와 나아갈 점2007. 05. 23.지난 4월 23일 인터넷 신문인 프로메테우스지에서는 ‘군 가산점제 논란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국방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등이 군필자 인센티브를 다시 시행하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서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젊은 군필자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군 가산점제 부활을 심심찮게 언급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초헌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한국사회의 양분 구도에 편승하려 하고 있는 동안,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쳐 온 한국사회의 성 평등 지수는 더 후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1999년 이미 위헌 판결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는 폐지된 후 8년이 된 지금까지도 기사에서도 보이다시피 정치권의 대선 전략에 이용될 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군 가산점제가 거론될 때마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찬반 양측이 성대결과도 같은 구도를 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TV에서 군복무 기간으로 24개월은 너무 짧으며 3년이 적당할 것 같다는 발언을 한 여성의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군삼녀’라는 이름으로 퍼지며 몰매를 맞기도 했다.남녀간의 강한 대립은 군 가산점제에 한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출범한 이래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호주제 폐지 등의 몇몇 정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효성이 없거나 과도한 요구를 해왔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또한 실제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운동을 희화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페미니즘과 여성해방운동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남성과 여성 서로간의 입장과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그것에 대한 왜곡되어 희화화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을 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성 차별과 관련하여 대립을 완화시키고 합의점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서 그 첫걸음은 여성해방운동의 의의와 집단이 중심이 되었는데, 기혼여성이 법적 권리와 여성 고용의 기회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참정권 문제는 1860년대 중반부터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 같은 움직임은 밀John Stuart Mill이 1867년 개혁법 조항에 여성을 포함시키고자 한 시도가 실패된 이후에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여성참정권을 위한 전국협회(National Society for Women's Suffrage)의 형성을 유도하였다. 동시에 사회적 페미니즘은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취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제라는 이슈는 페미니즘 이슈로서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반해, 조세핀 버틀러Josephine Butler의 전염병법(Contagious Diseases Acts)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통해서 매춘이 좀더 현저한 이슈가 되었다. 1873년 엠마 페터슨Emma Paterson에 의해 만들어진 영국여성노동조합연맹은 이 단체에 의해 영감을 받아 설립되었던 미국의 조합보다 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당시 여성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반적 사회운동에 포섭되었던 ‘여성들의 운동’이 많았다는 점이다. 즉 봉건주의 철폐운동이나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 노동자들의 계급해방 운동 등에 여성들의 참여가 이루어져 여성 독자적인 이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여타의 단체에 귀속된 운동과 성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과 다른 차원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주목하여 여성운동이 전개되어 왔다는 특징이 있다. 이념상으로는 주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여성운동은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인간이며, 남성과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자유주의 페미니즘자유주의 이론은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인간의 성별이나 인종, 연령 등 개인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이론이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의 기본적인적 구성물의 소유자로서, 인간 본성은 시대와 지역을 추월하여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인간 본성에 대한 규정은 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여성억압의 기원과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와 분석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남성에게와는 달리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부여되는 법 규정이 여성의 권리 획득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법적으로 여성을 보호하여 여성해방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자유주의 진영의 여성노동운동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주로 여성의 평등권 획득을 목적으로 활동해 나갔다. 당시에 법률상으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던 ‘여성노동보호법’이 있었는데, 이런 다양한 공장법은 여성들이 가사일과 육아 등 ‘여성의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여성의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야간노동을 완전히 금지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여성노동보호법이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하여 여성의 경제적인 활동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이에 반대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였다.영국에서 최초의 조직적인 여성노동운동은 1857년 최초의 여성노동운동단테인 여성고용촉진협회(Society for the Promotion of the Employment of Women; 이하 촉진협회)의 창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또한 남성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여성들의 가입을 받지 않던 노동조합으로 인하여, 여성들은 그녀들만의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해야 했다, 이에 등장한 것이 1874년 엠마 페터슨Emma Paterson이 주도하여 창립한 여성보호공제동맹(Women's Protective and Provident League; 이하 공제동맹)이었다. 18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들 두 조직은 서로 연대하여 여성의 평등권 획득을 위한 운동을 펼쳐나갔다.이런 여성노동운동전선은 남성들의 노동운동과 분리되어 실행되었는데, 이는 여성노동운동이 평등을 주장하며 여 고용주들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 온 자유주의자들의 반대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영국 여성노동운동이 사회주의 이념에 의거해 본격적으로 조동운동을 전개해 가기 시작한 것은, 1888년 7월 5일 발행한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Bryant and May) 성냥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이 파업은 공제동맹 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노동조합운동단체로의 전환 추진의 촉매가 되었다. 또한 남성노동운동가들도 드디어 여성을 포함시킨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해 가기 시작하였다. 1889년 회원자격을 숙련도, 직종, 특히 성별에 관계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전국 가스 노동자 및 일반 노동자 조합(National Union of Gasworkers and General Labourers)이 설립되었다. 이어 1890년에는 여성노동보호법을 지지하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고 1891년 총회에서는 공제동맹의 명칭을 여성노동조합연맹(Women's Trade Union League)로 개칭하여 사회주의적인 신조합주의 노동조합운동단체로 거듭났다.19세기 영국 여성노동운동의 한계점당대 영국의 여성노동운동은 나름대로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던 특징대로 영국의 당시 여성운동은 일반적인 사회운동에 포섭된 형태로 나타났다. 즉 여성운동이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전개되었던 것이 아니라, 참정권 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의 다른 형태를 띠고 그 안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를 계기로 여성운동이 여타 사회운동의 조직력과 전략을 배우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한 한계점으로 드러난다.더욱 두드러지는 한계점은 당시의 페미니즘, 특히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상류층 여성들이 하층 여성 노동자들의 평등권을 얻어낸다는 명목으로 실행했던 운동들은 단지 그들의 도덕주의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평등권자들이 주장해왔던 ‘자매애’는 여성 노동자들과의 상호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으로 독립할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시기의 여성들에게 그러한 것을 이루기에는 버거운 점이 많았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많은 여성이 군부대를 비롯하여 생산 공장과 사무직 사원으로 일하였고 애국적이 공적 활동에 동참하였지만 정부와 대중매체는 전쟁이 끝나면 여성이 그들의 전통적인 역할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노동조합도 여성이 저임금을 받음으로써 남성 노동자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전쟁 후 대부분의 공장은 숙련도와 연공 서열에 상관없이 여성의 재고용을 거부하였고 다시 자녀 중심적이며 소비 의식적이고 모든 가사에 책임을 지는 가정 주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냉전과 함께 전통적인 가정성은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는 보루로 간주되었고 여성은 모성과 가정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여성의 정치적 과업은 건전한 시민의 양육에 있었다. 결국 1950년대 들어 ‘여성의 신비’를 부각시키며 냉전과 함께 등장한 가정이데올로기는 ‘공화주의적 모성’의 현대화된 해석으로 여성의 본연의 자리가 가정과 모성에 있다고 정의되면서 여성의 노동 참여는 단지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책임의 확대라는 한도 내에서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이내 ‘여성의 신비’의 수동성과 비정치적 성격에 이의가 제기되면서 새로운 페미니즘과 여성해방 운동(women's liveration movement)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을 2차 여성운동이라고 한다.2차 여성운동제2차 여성운동은 1960년대 후반 등장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주도하였다.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의 변화뿐 만 아니라,「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여성의 결혼?육아 활동이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여성억압의 원인이므로 진정한 여성해방은 출산?양육 등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레드 스타킹스(Red stockings), 페미니스트(The Feminist), 뉴욕 급되었다.
문화교류와 문명충돌에 있어서의 전쟁론이선이 교수님경희대학교 법학부 3학년 2003100732 박상길모든 문명은 각기 독자적이고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를 크게 양분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특징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동서양의 문화는 각기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인류의 문명을 진보 시켜왔다. 하지만 이 문화교류에 가장큰 역할을 담당한것은 슬프게도 전쟁이라는 폭력적 수단이었다. 이에 본 레포트에서 동서양의 문명란 무엇이고, 그에 대한 교류는 무엇이며, 문명의 충돌과 교류의 수단으로서의 전쟁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I. 동양과 서양문명1. 동서의 개념동양(orient), 동방(the east), 서양(Occident), 서방(the west)으로 각기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기준이있다.(1)동양적 기준의 동서원대(1280~1367)에 큰바다를 기준으로 동쪽 바다(eastern ocean)와 서쪽바다(western ocean)로 나누었다. 여기에는 저유명한 정화의 원정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의 이스트와 웨스트의 개념과는 판이하다. 단순하게 지리적으로 중국남해를 기준으로 선을 그어 동쪽바다와 서쪽바다를 나눈 개념이었다. 이때는 중세적 동양이 제시한 동서양의 기준으로 지리적인 기준이다.(2)서양적 기준의 동서서양적기준은 근세에 와서 유럽중심주의적인 사고로 제시한 개념이다. 순수자기중심주의적 발상으로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인위적으로 동서를 나누어 놓고 선진적 유럽(서양)과 후진적 동양(오리엔트, 혹은 동양)으로 사고 하였다. 또한 모든 면에서 동서간의 관계를 대립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철학적 기준이다.2. 동서상이의 역사적 연원문화를 향유하는 모든 존재는 같은 인종 같은 인간이지만 동서의 역사적 환경적 영향에 따라 같은 철학도 달라지게 된다. 동과 서는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왔고 이에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근래에 선진서양과 후진동양의 발상은 근세이 발생하면서 정복 통치자가 발생하여 통치자가 군림하는 '도'가 성립되어 각기 ‘도’와 ‘시’의 문명이 발달하게 된다.5. 동서상이의 가치관적 연원가치관은 자연환경과 생활문화에서 원천적으로 철학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동양은 지관적이고 관조적이며 자연에 순응하여 갈등이나 대립보다는 자연을 찬미하는 철학이 정신세계의 최하단부에 깔려있는데 이는 안정적이고 살기 좋았던 기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하지만 서양은 어렵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극복하자면 자연과 투쟁하고 대립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에 따라 온정적 가치관보다는 의지적인 사유가 필요하게 되고 이것이 철학의 밑바탕에 깔리게 된다.이런 결과로서 동양은 절대성, 주관객관, 내용과 형식,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을 대립이나 분리가 아닌 융합으로 보는 철학이 발생하였고,서양은 상대성, 융화가 아닌 대립과 분리로 파악하는 철학이 발달하였다.6. 동서양의 문명의 특징.서양은 고대사회를 벗어나고 고대도시국가인 폴리스 시대부터 지중해를 중심에 두고 활동하였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고대부터 내려온 자연적, 철학적 영향을 바탕으로 교류와 교역을 하게 되었고, 이는 후에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면서 대양중심적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이를 정리 해보면 서양의 문화는 개방적이고, 진출적이라고 할수 있으며 결국엔 자연개척적 문명이라 평할수 있다.동양은 고대 농경사회부터 대륙적 활동을 주로 펼쳐 왔다. 자급자족이 거의 완결했기 때문에 정착해서 사는 문명이 발달했고, 때문에 교류와 교역의 필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때문에 폐쇄성, 순응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이는 결국 자연순종적 문명이라 평가 할수 있겠다.7. 동서교류의 필요성.동서 문명은 여러모로 대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는 각기 고유한 자연환경과 문명전통에 최선으로 적응한 결과이며, 장단은 있지만 우열은 없다.교류란 다름이 있어야 이루어지는법이다. 지금까지 동서양의 문명이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다. 이제 동서의 문화교류에 있어서의 전쟁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수의도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자. 전쟁의 정치적 목적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왜냐하면 적어도 국가간의 전쟁에 있어선 어떠한 목표가 필수 적이고 이 목표가 적을 완전 무저항의 굴복상태로 만드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민족의 전쟁은 언제나 정치적인 상황에서 비롯되고 오로지 정치적인 동기 때문에 일어 난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적인 행위이다.3. 전쟁의 여러 사례들이 목적들은 세력이나 영향권보장 또는 확장을 위한 수단인 적도 있었으며. 영토나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무력이 사용된 적도 있었다. 프랑스혁명 사살의 확장을 방지하기 위하여 결집된 유럽국가들과 프랑스 사이에 나폴레옹 전쟁이 치러지기도 했으며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이 한국가내 통치사상이 다른 정치세력간에 내전으로 현실화 되기도 했고 독일 통일 과정에서 분할된 독일 공국들과의 연대를 차단할 목적으로 프러시아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기도 했다.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같이 범 게르만대 범 슬라브족을 대변한 동맹조직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나 아리안족의 생존권 혹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구축이라는 명분과 실리를 앞세운 세력들이 전쟁을 수단으로 활용한 경우도 있어왔다.4. 전쟁의 목적에 따른 성격(1) 종교전쟁종교적 신념차이엣 비롯되어 수행한 전쟁이다. 다만 정치적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매우 많으나 앞서 말했듯이 전쟁이란 정치의 수단중 하나라는 가정하에 정치를 차치하고서 나머지를 생각했을때 그 전쟁의 성격이 종교적이라는 것이 종교전쟁이다.그 역사적 사례로는- 십자군 전쟁 (1096-1270까지 7차례 수행된 전쟁)-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 되면서 전개된 카톨릭, 이슬람과 각 종족간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 세르비아 내의 코소보사태도 종족간 이교도간의 대립이 주원인이다.(2) 이념전쟁종교적 신념 차이뿐 아니라 이념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내세운 정치집단들이 정치의 수단으로서 전쟁을 한 사례로 이들의 목적은 상대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신라통일전쟁(668 민족, 지역적 개념의 통일을 위해 벌어진 전쟁)- 보오전쟁(1866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에 의해 벌어진 독일 통일을 위해 벌인 전쟁)- 스페인내전(1975 프랑코장군이 이끈 반란군의 승리로 정권을 찬탈한 전쟁)- 6일전쟁(1967 소련의 지원으로 이집트의 군사력강화와 고립이 두려워진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가함으로 써 차후를 대비한 예방적 전쟁)5. 전쟁의 결과전쟁은 비정상적인 극한 상황에서 빚어진 하나의 현상으로 그 결과 역시 정상적인 상상의 범위와 수준을 초월하게 된다. 전쟁의 참가 여부를 떠나서 막대한 인명, 재산등의 물리적 손실과 정신적 파괴와 정신적 상흔을 남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치 체계의 전복, 사회질서의 대 격변과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게된다.(1) 물리적 인명피해와 정신적 상처전쟁은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 하며 최대의 적을 사살함으로써 승리에 가까워 지는 행위이다. 때문에 살인이 정당화 되며 많은 인명피해가 나게 된다. 비단 수행당사자인 군인뿐만 아니라 비전투민간인과 이때 사망한 가족들까지고 인명피해를 겪게 되며, 비인간적 행위를 바라보며 겪는 정신적 상처와 전쟁후에 남은 이들이 겪게되는 정신적 상처도 전쟁의 결과물이다.(2) 경제적 재화손실과 자연훼손전쟁은 엄청난 전비를 비출하게 된다. 평상시 국가 운영에는 필요하지 않은 각종 파괴 무기와 군인들의 유지비용, 물자등이 전쟁으로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이는 패전국에게 부과되는 전쟁보상금을 제하고도 기본적으로 전쟁양국의 당사자가 겪게 되는 운명이다.또 전쟁의 결과로 국토가 훼손되며 각종 오염물질의 배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기 마련이다. 이또한 막대한 전쟁으로 인한 손해중 하나이다. 자연은 돈으로 이루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전쟁은 승패를 떠나 수행 그 자체로 많은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에 어부지리 겪으로 전쟁당사자외의 제 3자가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가까운 예로 한국전쟁직후 일본의 경제 부흥이나 세체이라고 바라볼때에 이 모든 것들을 직접적으로 변모시키는 전쟁을 치른후에 기존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4) 문명의 교류독일군의 동부전선 참모장이었던 E.루덴도르프 장군이 1935년에 《총력전론:Der Totale Krieg》 의 저서를 쓴이후 널리 쓰인 총력전(total war)이란 용어는 ‘현대전에 있어서는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심리 등 각 분야의 힘을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전쟁목적에 투입할 것이 요구되고, 또한 군인뿐만 아니라 군민(軍民) 전체의 전쟁참가가 불가피하게 되었으므로 결국 전국토가 전장화하고 국가 전체가 병영화하게 되었다’ 라는 내용으로 한국가의 총력의 대결을 전쟁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때문에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은 한국가의 전체가 맞부딪히게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문명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비단 전투에 관계된 전략, 전투기술, 전투용무기의 교류뿐만이 아니라. 한 국가가 향유하는 문화와 문물, 종교, 가치관 등의 전면적인 교류가 있기 마련이다.가까운 예로 임진왜란을 지내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물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알수 있다. 현재 우리가 먹은 김치가 붉은색이 된것도 임진왜란을 겪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고춧가루 덕분인것이다. 또한 일본은 조선침략의 결과로 조선으로부터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포로로 잡아간 도자기 기술자에 의해 획기적으로 요업(窯業)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약탈하여 간 많은 서적은 성리학(性理學) 등 그들의 학문에 크게 기여하였다.이런 눈에 띄이는 문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교류도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부분은 정확히는 교류를 통한 변화 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도성을 버린 선조에게 민중이 느낀 분노와 실망감.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 그러면서도 일본인이 빠르게 받아들인 우수한 기술에 대한 부러움등은 지금의 현대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또한 십자군 원정때 이루어진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세계의 문명충돌은 엄청난 문명의 교류를 가져왔다.
성과문학 독서감상문 2003100732 법학부 박상길불가능의 굴레『흑백텔레비전 꺼짐』을 읽고-본문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난주에 개인사정으로 수업에 빠지게 된 점, 수강생으로서 사죄드립니다. 지난주의 과제 중국인거리 독후감은 뒤에 동봉하오니 같이 봐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흑백텔레비전이 등장해서 거울의 명상때처럼 흑백텔레비전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는가 했는데 흑백텔레비전은 안나오고 흑백테이프만 나왔다. 소설은 중국인의 거리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강하게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고 조금씩 알려주며 사라지는 정원. 그리고 남자의 재미있는 독백체로 진행되는 이야기. 또한 마지막의 반전이 지루하지 않게 읽혀졌다.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하원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는데 결혼식날 하원은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난 어느날 정치적 희생양이 될 위기의 순간에 그녀의 이복 언니 정원이 나타나서 조금씩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하원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건네준다. 비디오 안에는 그녀의 고백이 담겨있는데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래서 떠날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하겠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알게된 후 일도는 하원의 언니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간다.이 소설은 거울의 명상처럼 강한 인상의 비유가 쓰이지는 않았지만 잘 찾아보면 발견해 낼수 있는 ‘꺼리’가 많다. 이 이야기에는 굉장히 현실적인 단어사용이 눈에 뜨인다.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지명, 잘 알지도 못하는 술이름(사실 유명한 것들이다), 아시아나 항공사라던가 할리데이비슨같은 각종 상표명. 타이타닉이나 케니G, 리키마틴 같은 가수 이름까지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 구체적인 실명들은 내가 3번째 이 소설을 읽었을 때에야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일까? 내 생각으로는 어쩌면 드라마같은 소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현실에 가깝게 붙여 보여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이런 구체적인 고유명사들을 자꾸 읽다 보면 마치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 않은가?하원은 ‘뜨거운 설탕을 눌러붙지 않게 볶을’ 수 있는 여자라고 자처 한다. 나는 이 말의 의미가 불가능한것, 사랑하기 불가능한,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일도는 현재 정치적 희생양이 되기 직전의 상황에 처해있는데, 하원 또한 마음대로 뿌려진 씨앗의 희생양이다. 또한 밝지 않은 과거를 가진 여자이기도 하다. 하원은 과거에 굉장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괌으로 도망친 후에 일도의 모든 것을 조사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일도는 첫 결혼을 다리를 저는 여자와 하고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일도는 ‘처음의 선택이 마지막 선택이고 이 굴레를 벗어 날수 없다고’ 되내이며 첫 아내와 같이 다리를 ‘절룩’이며 비슷한 상처를 가진 정원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힘겹게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엔 없다며...... 이 이야기는 과거와 굴레가 테마인것 같은데 흑백테이프는 과거의 영상을 매번 반복해서 흑백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아버지를 사랑했던 일이 사랑했던 남자의 결혼식에서 도망쳐서 자살을 할 만큼 슬픈 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