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상상의 공감- 김애란의 ‘스카이 콩콩'을 읽고요즘은 ‘스카이 콩콩’을 타는 아이들을 보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도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 볼 수 있었고 한 번쯤 타보고 싶은 놀이기구였다. 어릴 적 고모 집에 놀러 가서 ‘스카이 콩콩’을 타는 사촌 언니가 멋있어 보여서 한번 타 봤다가 넘어져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스카이 콩콩’과 나는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다. 사실 작품을 읽으면서 ‘스카이 콩콩’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 말고는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했던 ‘전파상’이라든지 주인공의 형이 실수로(?) 1등을 한 ‘고무동력기대회’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었음에도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주인공의 생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 어릴 적 내가 했던 생각들과 상당히 공감되었기 때문이다.이 책은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시각(1인칭)으로 주로 자신의 가족사를 풀어내고 있다.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서인지 표현이나 서술방식이 상당히 간단명료하다. 또 1인칭 주인공 시점인 탓에 주인공의 감정이나 생각들이 잘 나타나 있어 내가 주인공이 되어 글을 읽고 있는 듯했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형의 눈이 나쁘다는 것을 안 주인공의 아버지가 TV를 없애려 했을 때는 내 컴퓨터를 없애려고 했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라 소설 속 형제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때 아버지에 대한 반발 심리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귀여운 자신만의 반항을 하는 것이 그러했다. 이 소설에서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의 복잡한 감정이나 무언가를 애써 표현 또는 서술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스카이 콩콩을 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무척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무리하게 서술하려 하기보다는 ‘스카이 콩콩을 탔다.’라는 어찌 보면 추상적인 말로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사 왔던 다 녹아버린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보고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스카이 콩콩’을 탄다. 어쩌면 그때 주인공은 아버지가 자신을 혼낸 일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가 미워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었지만, 자신을 위해 사온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보며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형의 두 번째 고무동력기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스카이 콩콩’을 타게 된다. 주인공은 평소 형에게 과학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고무동력기 대회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자신이 무시했던 형의 방법을 따라 하는 광경을 보고 형에게 정말 재능이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주인공은 다시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탄다. 형에 대한 인정과 감탄이 담겨 있는 '스카이 콩콩'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스카이 콩콩을 탔다.’라는 표현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는 서술해내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간단하게 풀어낸 멋진 표현이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은 '스카이 콩콩'을 타는 자신의 모습을 고독하고 우아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스카이 콩콩'을 타며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주인공이 우아하게 머리를 휘날리며 천천히 하늘로 솟았다 내려왔다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하지만 이 상상은 작품 말미 '아마도' 성인이 돼 버린 듯한 주인공의 고백에 여지없이 깨진다. 성인이 된 듯한 주인공은 사실 '스카이 콩콩'의 점프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으며 '스카이 콩콩'을 타는 자신의 모습은 경박하고 우스워 보인다고 했다. 또한 '스카이 콩콩'을 타며 느꼈던 것들과 보았던 것들은 거짓말이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조금은 현실적이지 못했던 '스카이 콩콩'에 대한 서술과 작품 전체에 현실성을 부과한 멋진 반전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