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동의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지게 되면서 우리의 믿음 생활이 더욱 확실하게 되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를 가져서 더욱 힘 있게 예수님을 섬기게 됩니다2-1. 예수님의 존재,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과학적’으로 알기 위해선 어떤 분석이 필요한가요?①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증거자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라고 믿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적은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독도가 우리 땅인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②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증거자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라고 믿는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적은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독도가 우리 땅인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2-2. 예수님의 존재,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과학적’으로 알기 위해선 어떤 분석이 필요한가요?③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의 ‘상황적인 증거’(정황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1) 만약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다른 이유 없이 왜 한강다리가 갑자기 무너졌었다고 기록해 놓았을까?→ 예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도망간 제자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도 의심했는데, 왜 그는 제자들이 전도하러 떠난 지역 중에 가장 먼 나라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까?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과 ‘성경 전체’를 믿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기독교가 다른 종교의 관점과 구별되는 점은, 기록에 대한 진실 여부(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증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조사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성경을 모두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이유가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거나,또는 부활에 대한 좋은 증거라 할만한 증거들이 없다면,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정리하자면,기독교는 검증이 가능합니다.
히브리어 원전석의시편 1편 2절본문: 시편 1편 2절? 개관앞선 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취하는 삶의 태도를 삼중 평행 대구법을 사용하여 소극적 측면으로 제시하였다. 이제 본절에서는 이와 달리 복 있는 사람이 갖는 적극적인 측면을 제시한다. 이는 우선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는 것(=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 문장[키 임 베토라토 아도나이 헤페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접속사-가정: 한글개역성경에 '오직'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앞선 1절에 제시된 소극적인 측면보다 본절이 제시된 적극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달한다. 원문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참으로(indeed)', '진실로(truly)'로 번역 가능한 '키'만사용하여도 강조나 강화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본문은 여기에 '그러나 오히려'(but rather)로 번역할 수 있는 '임'까지 추가로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오히려 앞의 내용보다 더욱 강조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로 번역할 수 있는 '키 임'을 통해 저자는, 앞선 1절의 소극적 자세 또한 가치가 있고 중요하지만, 2절에 나오는 적극적 태도가 더욱 중요하며,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때 참으로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전치사-명사여,단,연계형: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을 계시하신 여호와 그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율법'에 해당하는 '토라트'의 원형 '토라'는 본래 화살을 쏘거나 어떤 물건 따위를 던져 특정한 지시물을 가리키는 것을 의미하는 '야라'에서 유래한 단어로, 방향을 모르는 자들에게 바른 방향을 지시해 주거나 그릇 행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규범을 교훈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문의 의미를 통해, 여호와의 율법은 모호하지 않고, 참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여호와의 율법은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가름해 주는 척도이자 기준이 된다.명사,남,단-3남,단,접미사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이러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즐거워하여'로 번역된 '헤페초'는 '기쁨', '소원'을 의미하는 명사 '헤페츠'에 3인칭 단수 소유격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그의 기쁨(소원)'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복 있는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즐거움이자 성취하고자 하는 소원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는 악인과 함께 죄를 도모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산다.? 두 번째 문장[우베토라토 예흐게 요맘 붸라일라]→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Qal,미,3남,단접속사-전치사-명사,여,단-3남,단,접미어: 그리고, (율법을 즐거워한) 그 결과'묵상하다'는 의미로 번역된 '예흐게'의 원형은 '하가'인데, 이는 본래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의미한다(사 8:19). 여호와의 율법은 어떤 상징이나 그림 따위가 아닌 읽을 수 있는 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들을 읽고 암송할 수 있다. 복 있는 사람은 그가 즐거워하며 성취하기를 소원하는 여호와의 율법을 중단 없이 입으로 되뇌면서 그것을 묵상하는 삶을 산다. 이러한 삶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했던 여호와를 사랑하는 방법(신 6:4-9)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에서 계시되는 묵상은 물론 입으로 율법의 말씀을 외우며 마음으로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상반 절에 나오는바 율법에 대하여 감정적 즐거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생활 가운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1절에서 말하고 있는 멸망하는 자가 생활 가운데서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율법을 실현하는 실천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았다. 이는 '주야로'란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는 '낮과 밤', '하루 종일'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복 있는 사람은 낮에 율법을 묵상할 뿐 아니라 잠자리에 드는 밤중에도 율법과 함께하며 더 나아가 일생 동안 한 순간도 빠짐없이 율법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율법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 삶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히브리어 원전석의기말고사 과제출애굽기 3장 13-14절1. 본문 각 단수어의 분해본문: 출애굽기 3:13?→ 직역: 그 때에 모세가 말했다 / 하나님께★ 그 때에()/그가 말했다→ 계속법, Qal,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기본형→ BDB: (Qal) to say, speak, answer, to say in one's heart)★ 모세가→ 고유명사,★ ~에게→ 전치사,★ 그 하나님(들)에게→ 정관사, 명사, 남성, 복수,?→ 직역: 보소서 / 내가 들어 갑니다 /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보소서→ 지시사, 불변화사,★ 내가→ 인칭대명사, 1인칭 공성(나), 단수,★ 들어갑니다→ Qal, 능동형, 분사,(기본형→ BDB: (Qal) to go, enter, come in)★ ~에게→ 전치사,★ 자손들→ 명사, 남성, 복수, 연계형,★ 이스라엘→ 고유명사,?→ 직역: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할 것이다→ 접속법, Qal, 완료, 1인칭 공성(나), 단수,★ 그들/에게()→ 전치사, 3인칭 남성, 복수, 접미어,?→ 직역: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 명, 남성, 복수, 연계형,★ 너희들 조상의 → 명, 남성, 복수, 2인칭 남성, 복수, 접미어,★ 그가 나를 보내셨다→ Qal, 완료, 3인칭 남성, 단수, 1인칭 공성(나), 단수, 접미어,(기본형→ BDB: (Qal) send forth, extend, let loose)★ 너희~에게()→ 전치사, 2인칭 남성, 복수, 접미어, 완료,?→ 직역: 그러면 그들이 내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말할 것입니다→ 접속법, Qal, 완료, 3인칭 공성(그들), 복수,★ 나에게→ 전치사, 1인칭 공성(나), 단수, 접미어,?→ 직역: 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은 무엇인가?→ 의문사(what),★ 그의 이름→ 명사, 남성, 단수, 3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직역: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겠습니까?★ ~가 무엇을 할까요?→ 의문사 (what may~: ~가…을 할까요?)★ 내가 말할 것이다→ Qal, 미완료, 1인칭 공성(나), 단수,★ 그들/에게()→ 전치사, 3인칭 남성, 복수, 접미어,본문: 출애굽기 3:14?→ 직역: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그가 말했다→ 계속법, Qal,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 하나님께서→ 명사, 남성, 복수,★ ~에게→ 전치사,★ 모세→ 고유명사,?→ 직역: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 자로 존재한다 →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나는~이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 Qal, 미완료, 1인칭 공성(나), 단수,(기본형→ BDB: to be, become (Qal) to happen, fall out, occur, take place)★ ~하는 자(것)→ 관계사(who),★ ‘나는~이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 Qal, 미완료, 1인칭 공성(나), 단수,?→ 직역: 그리고 그분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계속법, Qal,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 이같이(부정사 이하내용을)→ 부정사,?→ 직역: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 너(남자)는 말할 것이다→ Qal, 미완료, 2인칭 남성, 단수,★ 자손들/에게()→ 전치사, 명사, 남성, 복수, 연계형,★ 이스라엘→ 고유명사,?→ 직역: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스스로) 있는 자가→ Qal, 미완료, 1인칭 공성(나), 단수,★ 나를 보냈다→ Qal, 완료, 3인칭 남성, 단수, 1인칭 공성(나), 단수, 접미어,★ 너희들에게→ 전치사, 2인칭 남성, 복수, 접미어,2번과 3번. 각 ‘단수어’ 중에 한글 번역과 다른 의미완료를 지니고 있는 ‘단수어’들 설명한글 번역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완료의 차이나 강조점의 차이 설명[개역개정]13 모세가 하나님께 ②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②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②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②말하리이까14 하나님이 모세에게 ②이르시되 ①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②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②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새번역]13 모세가 하나님께 ②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②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②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14 하나님이 모세에게 ②대답하셨다. ①“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②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설명 ①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히브리어의 의미에는 ‘존재’의 의미 뿐 아니라 ‘사역’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 신학적 메시지에 더 설명됨) 하지만 우리말 성경(개정, 새번역)에서는 ‘존재’의 의미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설명 ② 라는 원형 단어의 변형이 ②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단어를 4번, 하나님은 이 단어를 3번 사용하셨다. 이를 통해 히브리어 원어구절은 같은 단어를 사용해 구문구조를 형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의미적으로 대칭이 아니라, 글 구조적으로 공통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글 성경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번역에 반영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모세의 표현 단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새번역도 마친가지다. 새번역성경의 번역은 “대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개역개정보다는 주고받는 주고형태를 더 잘 살렸지만 다른 단어도 사용했기 때문에 원어와 비슷한 구조로 보이게 하지는 못했다. 만약 한글로 표현한다면 ‘대답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의미를 모두 포괄시킬 것 같다.4. 히브리어 본문에 근거한 신학적 메시지★ 그의 이름→ 고대 세계 사람들은 이름()이 그 사람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에 대한 지식은 그 사람의 본성에 관한 지식과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을 부여했다. 또한 고대 근동 왕이나 군주들은 사신을 다른 지역에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기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거나 인장이 찍힌 편지를 주었다. 모세도 이러한 하나님의 신임을 요구했다.★ ‘나는~이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 이 단어는 “있다”라는 뜻의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의 ‘1인칭 미완료’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미완료‘형태의 동사는 완료되지 않는 동작이나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계속‘이라는 의미에는 ① 지속적인 동작/상태와 ② 반복적인 동작/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미완료는 문맥상 ’과거, 현재, 미래‘의 형태로 해석이 가능하고, ’가능(~할 수 있다)‘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미완료는 과거, 현재, 미래, 능력의 의미를 모두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2개가 관계사 (아쉐르)에 연결되었다. 결국 직역하자면,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할 수 있는) 자.“,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개념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시작과 끝이 있음)을 뛰어넘으시는 영원한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BDB사전에서는 특히 Qal형태의 의미를 “to happen, fall out, occur, take place”처럼 “일어나다, 발생하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적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과거 영원 전부터 일어나셨고 발생하셨던 분이시다. 그리고 영원 후로 계속 일어나고 발생하실 분이시다. 우리가 ’일어나다, 발생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전제하는 것은, 시작하는 어느 한 시점과 지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념은 전 우주 안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시간과 공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세상 안과 밖을 모두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주 안의 개념만으로 가두어서는 안된다. 이 설명을 심화하기 위해 해석을 좀 더 확장해보자면, 하나님은 ”무언가가 생기기 위해선 반드시 원인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넘어서시는 분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과는 다르게 원인으로부터 자유롭고, 결과물은 항상 그 결과의 원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하나님은 존재의 원인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에서도 영향을 받아 존재하신 분이 아닌, 완전한 자존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자존성과 초월성, 그리고 절대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제11장 거듭남을 위한 인자의 역할제11장 거듭남을 위한 인자의 역할1.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첫 번째 표적 직전에 등장하는 인자 칭호는 다른 칭호들을 흡수하며 십자가의 죽음까지 예수님의 생애를 끌고 간다.?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이스라엘의 왕’(12:13), ‘하나님의 아들’(1:49), ‘인자’(1:51) 칭호는 독립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특별히 왕 칭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시에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환호하는 모습과 함께 소개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상황에서 이 왕 칭호는 조롱과 비난의 칭호로 바뀌기도 함.역설적으로 예수님은 빌라도의 입술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의 왕이심을 드러내셨으며(19:14, “보라 너희 왕이로다”), 십자가의 명패에 세계 언어로(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19:19)이라 기록됨으로써 예수님이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세계의 왕 되심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음.“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세계의 왕 되심하나님의 아들(1:49)인자(1:51)이스라엘의왕(12:13)??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요한복음 시작 단계에서 나다나엘의 고백(1:49,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은 예수님의 정체를 미리 밝혀주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정체는 들리움에서 성취되며 빈 무덤을 통해서 드러나고,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이해는 그의 십자가 죽음인 영광 뒤에 가능하다. 또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으로 동시에 소개하고 있는데, 두 칭호는 상호보완적이다.?“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 내용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다나엘의 고백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고백의 성취를 보게 만든다. 또한 “나사렛”이라는 지역성을 가진 예수님은 그 지역 이름을 따른 칭호를 통해서 예언의 성취적인 성격을 나타낸다.특별히 십자가 명패에 ‘인자’ 칭호와 ‘하나님의 아들’ 칭호가 누락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음. 예수님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들어날 뿐만 아니라 그 정체를 밝히 보여주는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서 다른 칭호들을 흡수하는 이 두 가지 칭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칭호는 복음서의 시작부터 요한복음의 이야기 전개를 이끌지만 진공상태가 모든 것을 흡수하듯이 십자가의 죽음이 이전의 칭호들을 흡수하며 그 문자적인 실체를 드러내도록 만든다. 즉 그 칭호들의 실체가 십자가에서 증거 됨.인자의 죽음은 유대인들의 반응에 역설적으로 반영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으로 일치되는 기회를 제공함.(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인자와 하나님의 아들: 정체 (key word: 잠긴 문)예수님의 두 번의 방문(20:19; 20:26)에 대해 공통적으로 ‘잠겨 있던 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현하신 예수님’이 나타난다.? “기적적인 출현”이라는 공통점? 잠긴 문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 혹은 정체의 새로운 면을 드러냄? 십자가에 달린 흔적을 보여주면서도 잠긴 문을 통과한 예수님C. K. Barrett. “그의 상처들을 보여줄 정도로 한때 온전한 육체였으며 또한 잠긴 문을 통과할 정도로 충분히 비물질적이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비한 능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인자가 들리움에서 그의 육의 기능을 완수하자마자 하나님께 돌아감으로써 그의 부활 뒤에 인자가 육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을 반영- 들리움을 통해 인자의 실제 정체가 드러나게 됨.- 예수님의 기능적 임무?인자와 하나님의 아들: 내려움-올라감+ 내려옴-올라감의 구조는 예수님의 ‘인자’ 호칭을 주고, 결과적으로 사명을 성취하게 함.- Schnackenburg. 예수님께서 내려옴과 올라감의 구조 안에서 그의 임무가 성취되는 과정을 통해 인자로 불린다고 주장한다(1:51; 9:35; 12:34).- 인자는 그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 인자의 특징을 드러내는 들리움을 통해서 사명을 성취하며, 내려옴과 올라감의 구조를 통해 정체를 드러낸다.- 성육신 사건이 인자의 사명의 출발점이며 들리움은 그의 사명의 최종목적지가 됨.2. 인자와 거듭남-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다시/위로부터의 출생, 모태, 물과 성령으로부터의 거듭남,육과 영으로부터의 출생, 영으로부터의 출생‘ ? 출생 이미지의 분위기를 나타냄? 다시/위로부터의 출생과 그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짐.? “무엇으로부터 태어날 수 있는가”, “무엇에 의해 태어날 수 있는가”- 요 3:14 - 거듭남의 필요성과 성격에 대한 강조가 끝나자마자“무엇에 의해”라는 내용이 펼쳐짐 ? 방법을 지칭하는 “무엇에 의해”는 다시/위로부터의 출생 주제를 대신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방법은 3장 8절까지 설명, 9절 부터는 그 배경이 등장함.[대조]모세가 뱀을문자적으로 들어 올린 것은비유적인 상징이 됨비유적인 인자의 들리움은문자적인 들어 올림이 됨- 요한은 ‘무엇이 거듭남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에 대한 답으로 주제를 변경함(거듭남 → 인자의 들리움)?인자: 중심 칭호- ‘인자' 및 ‘하나님의 아들' 칭호: 예수님의 역할과 정체를 드러냄.- (요 1:41) 첫 번째 언급된 메시아 칭호도 완전한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불충분함- 요한은 이 칭호에 덧붙여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 칭호’를 사용 → 예수님께서직접 사용하시는 인자 칭호를 통해 그의 사명의 성취를 전개시킴.- 인자 칭호: 이 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낳고 예수님의 운명을 해석하는데 기여함.?인자와 들리움- 요한복음에서 사용하는 예수님의 칭호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에 새로운 개념을 내포하게 되며 그 의미가 변형됨..- 인자 칭호는 ‘육' 및 '들리움'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의미를 생성함.- 육을 통해 그 정체를 드러내는 인자 → 들리움인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의 사명을 마침.- 거듭남을 상징하는 부활 후 → 도마의 고백 →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일치됨.- 인자의 역할의 구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 발생 → 들리움과 올라감을 통해서 기독론적 칭호의 뚜렷한 구별이 이루어짐.- 거듭남을 상징하는 부활, 부활의 토대가 되는 들리움 →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분기점이 됨 → 이와 관련한 인자 칭호의 기능은 이러한 구별을 위한 기초가 됨.(요 6:53) 인자 칭호: 영생을 얻기 위해 그의 육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과 관련시킴.- 인자 칭호와 관련한 주요 요소: 이 칭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분위기에서, 즉 들리움의 상황에서 사용하심.- 예수님의 운명을 결정짓는 개념: 들리움- 인자 칭호를 통해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통로가 됨.- 예수님께 적용된 다른 칭호들을 흡수 → 다른 칭호들을 들리움을 중심으로 펼쳐지게 만듦.- 인자의 ‘들리움’이 성취(십자가 죽음): 죽음의 명목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표출 → ‘유대인의 왕’이라는 선언이 이루어짐.요한은 여러 기독론적 칭호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제시하던 예수님의 정체를 마지막 표적인 부활 사건에서 드러나도록 인자의 들리움을 그 정점으로 삼음.?인자 칭호와 표적- 표적들이 이야기 전개 속에서 인자와 관련됨.- 인자 칭호: 요한복음의 구조 속에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사용→ 표적의 책에만 등장함. (표적이 모두 기술된 후에는 등장하지 않음.)인자 칭호가 등장하는 시점은 표적과의 관련성을 드러내 줌.- 인자의 등장과 더불어 첫 번째 표적이 시작 → 마지막 표적의 기초가 되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의 영광이 드러남.- 첫 번째 표적이 마지막 표적을 예고, 이어지는 표적들의 방향을 제공.- 첫 번째 표적 전에 등장하는 인자 칭호는 다른 칭호들의 서론과 같음.- 이 칭호를 예수님 자신이 직접 사용 → 다른 칭호들의 방향을 이끔.- 예수님의 정체를 알려주는 인자 칭호, 예수님의 행적을 이끌며 그 정체를 밝혀주는 표적 → 상호 관련성을 가짐, 요한복음의 이야기를 조정함.- 인자: 표적을 행하심, 동시에 그 표적의 주인공, 그 표적의 성취 대상이 되심.→ 표적을 통해서 그 운명을 성취함.?인자 칭호의 배경적인 용례와 의미(용례: 쓰고 있는 예)- 인자 칭호의 용례: 만드는 ‘비교점’을 제시 → 이 칭호가 어떻게 활용되며 그 기능을 수행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함. 요한복음 안에서 고착화되는 이 칭호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독서 보고서6. 독서명:침례교회의 특성 되돌아보기(신약성서적 교회 회복을 위하여)“오늘날 퍼지고 있는 춘천 한마음교회의 부활복음에 대처하는침례교인들의 자세”“침례교회의 특성 되돌아보기”라는 책을 통해 침례교의 정체성과 그동안 걸어온 자취를 보면서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끝에 지금 이렇게 침례교 신학이 전해지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침례교, 특히 한국 침례교회에서 일어난 최근 소식까지 언급되어 있어, 한국교회의 사역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리와 구분이 잘 되어있어서 내용이 많더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시험 기말 과제를 준비하면서 독창적인 주제와 제목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요즘 내가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춘천 한마음 교회의 ‘부활복음’을 이 책에 비추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글을 한 번 써 보았다. 쓸 수 있는 분량이 많지 않아 좀 많이 아쉽지만 목회를 앞두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가장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쓰게 되었다.최근에 춘천 한마음 교회에서 시작된 소위 ‘부활 복음’이라고 불리는 메시지는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특별히 한마음 교회가 침례교회 인만큼 침례교 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성로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과 학자들이 최근에는 매년 ‘부활복음 세미나’를 열어서 전국 초교파적으로 목사, 사모, 선교사들을 초대해 교육하고, 성도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나사렛 예수의 부활의 사실을 통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더 확신하고 그분과 더욱 더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 침례교회의 정체성에 어떤 자극과 반응을 주는지 궁금해졌다. 이 글에서 ‘부활 복음’이라는 것이 주는 침례교 정체성에 비추어 보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에 대해 탐구해볼 것이다.춘천 한마음 교회에서 전파하고 있는 부활복음은 대체로 나사렛 예수의 부활의 역사적 해석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신학적인 해석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내용들이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보다 오히려 복음을 전에 들어본 사람들 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 매너리즘에 빠진 성도들이 더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신약성서적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에서 부활이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면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순으로 시간의 흐름에 맞게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와는 반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다음에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제자들의 상황보다 오히려 바울의 상황에 놓여진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까지의 상황에 있는 현시대 사람들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성서적이고 침례교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하지만 춘천 한마음 교회의 내부 모습을 보거나 그들이 전하는 전도지, 공부하는 교재들을 보면, 그들이 전하는 부활복음은 굉장히 편협한 모습을 띄고 있다. 십자가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성령의 역사도 부활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처럼 표현이 되어있는 모습을 관찰했으며 침례교가 가지면 위험한 신조주의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이견 없이 받아들여야할 신앙생활의 기준과 규범이 되어가는 모습이 교회 내에서 되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신앙을 객관화하고 규정화하면서 다른 신학적 영향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틀리게 바라보게 만들고 있음을 부활복음에 빠진 사람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울타리 안에서 자유로운 신학을 구축하는 것을 허용하는 침례교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모습이 부활복음을 전하는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만큼 십자가의 은혜와 성육신, 동정녀 탄생, 성령의 자율적 역사 등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열린 태도로 부활복음을 전해야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부활복음의 움직임에 대해 침례교회에서 조심해야할 것은 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교회 양적 성장의 방법론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나온 대로 성령의 역사하심과 우리의 자유의지 안에서 생겨난다, 이 두 부분이 함께 역할을 하는 것이 중도적인 입장이며 그것이 침례교에서 대부분 인정하는 신학이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4-5절에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고 말했고,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간이 믿음을 갖고 행동이 변화되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셔야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간과하는 태도로 ”예수를 믿어도 사람이 변하지 않았던 것을 부활복음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로 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기에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