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魂2012130835 국제어문학부 김준태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절대 어른이 될 것 같지 않았고 군대에 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꼬마아이들에게 아저씨로 불리고 있고 군대에도 가야한다. 올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나 또한 죽을것이란 걸 머리만으로가 아니라 어느정도나마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죽음은 의학적으로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의 종말, 개체를 구성하는 전조직 세포의 생활기능 정지로 정의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죽음의 의미는 육체적 측면으로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렇다면 육체의 죽음 후 영혼은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영혼은 육체가 소멸함에 따라 함께 사라지는 필멸의 존재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먼저 귀류법을 이용하려 한다. 영혼을 불멸하는 존재로 가정하면 영혼은 어느 특정한 시점에 탄생하여 영생을 누리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발생한 시점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데 아마 그것은 신학자에 의하면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였을 때일 것이며 진화론자에 의하면 무생물에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하였을 때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을 때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태초의 영혼들의 개체수는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영혼은 육체를 빌어 현신(現身)하므로 특정한 순간에 죽음에 이르는 생명과 탄생하는 것들은 그 수에 있어 같아야한다. 예를 들면 핵폭탄에 10억명의 인명이 손실된다면 그 순간 10억의 생명이 순식간에 탄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필멸한다’라는 명제를 부정했을때 그 과정에서 모순이 일어나므로 간접적으로 영혼은 멸한다고 밝힐 수 있다.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책 phaidon에서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는데 그 증거는 세가지이다. 첫번째는 상기론으로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의 본질을 알고 있음을 들어 탄생이전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합성되지 않는 존재는 소멸되지 않음을 들어 영혼또한 합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존재하는 개별 대상속에 대립되는 두가지 속성이 존재할 수 없음을 증거로 육체에 생(生)을 부여하는 영혼에 죽음이라는 속성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세가지 증거들을 반박하며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부정하려한다. 우선 대표적으로 상기론은 우리는 아름다움, 멋짐과 같은 관념적 이데아들을 배운적이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관념적 이데아들은 우리의 탄생이전에 어떤 존재에 의해 알게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인 경험으로 얻게 된다고 보는게 합당할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아름다운것들을 보고 그들에게서 공통적인 아름다움을 추출해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합성되지 않은 것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속성은 물질세계에 제한되는 성격이다. 이는 영혼과 같은 비물질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같은 합성의 논리를 영혼에 갖다대는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생명을 주입하기 때문에 영혼은 삶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에따라 동시에 죽음이라는 속성을 지닐 수 없다는 주장은 모순율을 잘못 이해한것이다. 영혼이 생명을 주입하는 것이지 생명이라는 속성자체를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영혼이 생명이라는 속성자체를 지니고 있다면 위의 주장은 합당할 것이다.
를 읽고초등학교 때 '메멘토‘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주인공은 10분이상 지속되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10분 전의 일을 기억못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10분 뿐이니 엄청난 불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기억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의 작가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을 듯한 인물 푸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축복받은 능력일수 있지만, 또 한편으론 불행을 가져오는 능력이다. 보통 사람들은 암기력이 좋은 사람을 똑똑한 사람인양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억을 많이 하면 지식의 양이 풍부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푸네스의 기억장치는 보통사람들의 기억장치와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듯 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화, 개념화 시키는 능력,즉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인데 푸네스는 이러한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억들이 쓰레기 하차장 같다고 얘기하고있다.작가 보르헤스는 이러한 푸네스를 보고 사고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과거부터 인간들은 지식을 쌓아 왔고 그러한 지식은 후대에 까지 전해져 온다. 하지만 선조들이 물려준 지식은 푸네스와 같은 지식이라기 보다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정보를 종합하여 인과관계와 원리를 파악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위에서 생성된 지식이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이 곧 사고이지만, 푸네스는 단순히 자신의 오감으로 느낀 정보들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한다. 푸네스는 자동차의 부품은 다 기억하고 있을 지라도, 자동차의 작동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푸네스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는 우리들에게 이것 이상의 의미를 주고 있다. 현재의 우리가 읽어도 무엇인가 깨닫게 된다. 우선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져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학생 스스로 사고하는 학습이 아니라 선생님이 암기위주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학생들은 배우지 않은 것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보지 않은 것은 상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푸네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한 푸네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지식의 습득보다는 전인적인 사고,통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현대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정보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의 양이 방대하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방대한 정보를 습득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정보의 습득에만 급급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보를 습득하고 사고를 해야 진정한 지식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학문을 할 때에도 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과거 고대시대에서는 철학자가 모든 학문을 주관한다고 할 만큼 철학의 틀안에서 학문을 연구 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학문의 분야가 세세하게 나눠져 있어서, 한 분야의 학문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래서 같은 수학이라도 대수학를 전공한 사람은 기하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통합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