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교육 정책한국학과 이름한국 문화예술 교육 정책 배경의무교육 시스템교육정책 배경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1990년 이전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 단체나 예술가 개인을 지원, 작품을 보전하는 데 중점을 둔 공급 중심의 정책이었으나 1990년 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면서 규제 중심이던 법령들이 개정되어 문화 진흥을 위한 체계적 중장기 문화 예술 정책을 수립했다. 2003년 정부는 공급과 매개 부분에 한정됐던 문화예술 정책의 수요 부분까지 확장하기를 원했다. 이에 2003년 문화행정혁신 위원회는 지역사회 문화 기반 시설과 학교 간 연계체계 구축을 통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추진 계획을 발표함으로 정책 기본 방향을 수립하기 시작함 2004년 문화부는 문화 예술 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으로 개개인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사회의 문화 역량 강화라는 정책 비전을 구체적 설정해 추진했음 추진 목표는 1. 학교 문화예술 교육의 질적 개선과 양적 확대 2. 사회 문화 예술 교육의 다양화 및 기회 확대 3. 문화예술 교육의 가치와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 4.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제반 여건 마련 등을 설정 200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됐고 문화부와 교과부의 유기적 협력과 정책 협의에 힘입어 문화예술 교육 지원 법이 제정됨 문화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교과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는 점이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잠재되어온 수요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3* 문화예술교육활성화중장기전략 개개인의 문화에 참여적 삶의 질 향상과 사회의 문화 역량 강화라는 목표로 두고 참여 기회 확대 및 내실화, 사회적 소수자 문화적 권리 신장, 문화예술교육 전문 인력 양성, 지식 정보 확충 및 국제적 위상 확보의 4대 정책 영역을 설정했음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예술교육정책이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됐다. 창의적 미래 인재 육성을 목표 지식 습득뿐아니라 문화적 소양과 튼튼한 체력 바른 인성 등을 고루 갖추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식해 문화부와 교과부는 문화예술 , 체육교육 활성화 방안을 위해 문화부 교과부 공동 TF 발족을 함의무교육 시스템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교육정책 배경한국 문화예술 교육 정책 배경의무교육 시스템학교시스템 현재 초,중등 교육과정은 제 7차 교육과정의 2007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이 혼재되어 운영되며 2011 개정 교육 과정 적용을 앞두고 있음 초 1 - 중 3까지 ; 공통 교육과정 고등 1 - 3 까지 ; 선택 교육과정 교육 내용은 기본교과 선택교과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됨학교 시스템 지원 및 관리 주체 학교 교육과정의 일반 교과 및 예술 교과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과부가 관리하고 문화 관광부가 교원과 교장 교감 장학사 등 경영자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전문성 증진을 위해 문화예술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함의무교육 시스템교육정책 배경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학교 문화예술교육 주체의무교육 시스템교육정책 배경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교원 양성 체계 학교 형태의 교원 양성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며 교원 양성기관은 사범계 학교와 비사검계 학교로 나뉨 교육대학은 초등학교 정교사 2급을 양성하고 사범대학은 중등학교 정교사 2급을 양성함학교 문화예술교육 주체의무교육 시스템교육정책 배경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예술 강사 양성 체계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공예,사진,디자인 등 총 8개의 분야 내 활동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에 따라 지원 자격이 다름 문화예술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학 문화예술 관련 전공을 졸업한 경우가 많다. 예술 강사는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실기심사 3차 선발 강사 연수 참여의 과정을 거쳐 선발되며 선발된 강사는 연간 교육 활동을 진행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성과를 위해 핵심 인력 양성과 관계자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문화예술교육 아르떼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대상은 예술 강사와 전국 초 중고등 교원 및 문화기반 시설 예술 교육 기획자 등등이다. 교원과 예술 강사의 역할분담 예술 강사는 창의적 체험 활동을 지원한다. 학교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자유롭게 구성 할 수 있으며 최근 주 5일제 수업에 따라 동아리 활동에 예술 강사를 지원한다.문화예술교육 커리큘럼학교 내 예술강사 지원 사업 2000년 국악협회에서 추진한 강사 파견 사업으로부터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2009년까지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 총 5개 분야 예술강사를 초 중등에 파견했고 2010년부터 공예 사진 디자인 분야를 추가해 총 8개 분야가 파견하기 시작함. 예술 꽃 씨앗학교 2008년부터 시작된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장기적, 체계적으로 지원하여 학생들이 평생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창의력과 꿈을 펼칠 수 있는 문화예술 교육의 우수 모델로 키워내게 한 사업 선도학교 지원 사업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학교 실정에 맞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선도학교를 선정하여 문화예술교육을 지원 활용 할 수 있게 하는 사업 창의경영학교 지원 사업 예술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중 운영하여 내실 있는 심화 교육을 강화하고 특화된 교육을 실행함.학교 외 문화예술기관 문화학교 운영 사업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지역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사업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2012년 전면적 실시된 주 5일 수업제에 더불어 청소년 창의,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제고됨에 건강한 여가 문화 조성 및 인성 교육,공동체 화합을 이끌어내고자 시작된 사업 방학 예술 캠프 방학기간 동안 예술 캠프를 통해 예술 체험 학습과 사회성 함양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 대학생 문화예술교육 자원봉사 지원 사업 대학생-초등학생간의 문화예술 체험의 교육 및 향유를 목적으로 둠의무교육 시스템교육정책 배경예술교육 주체커리큘럼{nameOfApplication=Show}
‘오이디푸스 왕’과거와 현재를 묶어서 표현한 게 색달랐다. 왜 과거와 현재를 묶어서 연출을 했을까? 하고 생각 했을 때 떠오르는 건 과거의 일이 결코 죽은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역사는 계속된다는 것을 말하고자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도 들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오이디푸스가 선왕을 죽이는 장면은 참 인상 깊었다. 작품을 읽었을 때와는 상반되게 영화 속에서 오이디푸스는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고 분노에 가득 쌓여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남편이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슬퍼하고 절망하다 분노에 휩싸여 길을 지나가던 테베의 선왕 일행을 죽인 것 같다. 죽이는 장면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했다. 한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듯 마구 뛰어나가며 그 일행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일행에게 돌아와 한 사람을 또 죽이고 다시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그러다가는 또 다시 돌아와서 선왕을 죽인다. 이 장면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에 분노했기에,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기에 절망과 분노에 가득 찬 인간의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순간의 화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기 싫어도 계속해서 테베 쪽으로 가게 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표현한 것 같았다. 또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가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듣고 손등을 물어뜯는 데 이 손등을 물어뜯는 버릇은 오이디푸스가 영화 내내 보여주던 행동인데 아마도 모자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예언을 듣고 미친 여자 마냥 하녀들과 궁전 뜰을 뛰어다니던 모습은 아마 이후에 그녀가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더 극대화시키기 위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장면은 참 충격적이었다. 보이는 세상 속에 살고 보이는 것만 믿지만 진실을 모르는 오이디푸스의 모습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지만 진실을 아는 테이레시아스의 모습은 반전이 일어나면서 무언의 교훈을 주는 듯 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에 미친 듯 뛰어다니고 소리치며 분노를 표출했고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운명에 미친 여자 마냥 실성한 듯 웃고 다니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어쩌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비극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참 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숙명의 비극이고 또 어떻게 보면 운명이란 이름의 막장이라고 생각했다.
1. 스타니슬랍스키 이전까지 이야기 속 배우가 무엇인가?-> 브라운관 같은 매체 연기가 생기며 연극인들이 무대를 버리거나 옮겨갔고 전통연극의 제작비는 십 년에 거의 두 배씩 치솟았고 영화와 텔레비전의 심각한 도전을 받아왔기에 무대 연극이 적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연극은 영화와 텔레비전의 치명적인 도전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 위해 구경을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던 중 단 한가지,어떤 미디어도 수용할 수 없는 살아있는 배우의 존재라는 해답을 찾았다. 연극 공연이 갖고 있는 무대, 공간이라는 희소성이 바로 연극이 살아 있는 이유이며 역시 관객이 살아 있는 배우를 보며 호흡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이전의 배우란 무엇인가? 에 대해 말하자면 연극의 진정한 힘과 아름다움의 존재 이유는 바로 휴머니티에 있으며 배우의 휴머니티가 관객의 휴머니티와 서로 만나는 곳에 있는데 연극은 주어진 순간에 창조됐다가 이내 사라진다. 이 때문에 연극은 시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 중 인간은 모방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연기가 시작됐다는 말처럼 모방의 본능과 놀이의 본능 즉 본능적으로 인간은 연극을 하게 되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배우의 연기예술은 신체적인 잠재력에 대한 찬양을 담고 있었기에 연기의 시작은 인간의 내면(본능)으로부터 찬양을 하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연극은 배우가 관객에게 실생활에서 쌓인 해로운 긴장을 제거 시키거나 정화된 상태를 만들어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감정정화 작용과 유사한 감정이입의 마술을 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는 관객에게 연민과 공포의 비극적 감정을 일으킴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배우는 관객의 감정을 깨끗하게 만들고 정화해줘야 한다. 변형은 배우의 생명이었다. 그러나 배우는 ‘자의식’이 있기에 변하기가 어려워 가면을 쓰는 행위를 했다. 쉽게 변할 수 있는 가면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행위의 패턴이었다. 연기란 일상적인 삶의 원칙의 변형과 확장에 기초를 둔다. 현대에는 옛날처럼 가면을 쓰지 않지만 의식으로서 가면을 쓰는 행위를 취하기도 한다. 배우의 재능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인물 표현 묘사를 넘어 그 인물의 정신을 포착해 그 속에서 보편적 인간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을 창조하는 게 중요하며 모든 배우의 근본적인 과제는 흉내를 내는 ‘가장’과 그 인물이 되는 ‘존재’에 있다. 그리고 배우는 광기가 있어야 한다. 광기는 일종의 통제된 정신분열증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배우가 스스로의 얼굴이나 동질성을 잃는다면 연기 미학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광기가 병적인 광기로 변할 것이므로 자의식이 발동되면서도 재현할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보다는 가상의 삶을 꿈꾸는 것과 연기는 가장과 존재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태여야하며 그 존재로써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2. 스타니슬랍스키, 메이어홀드, 브레이트, 아르토 앙토네스타니슬랍스키는 감정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감정을 중요시하는 심리적 사실주의 연극을 한 게 특징이다. 스타니는 근본적인 대상에 대한 표현방법을 제시하고 배우의 진지성과 영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역을 연기하지 말고 등장 인물 속에 살아야 한다 주장했고 자연주의연극에 영향을 받아 배우는 현실을 재현해야 함은 물론 자신의 주관적인 현실도 창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재현을 넘어 네 자신의 인물을 만들라 강조했다. 흔히 그의 방법론을 존재론적 자연주의라 부른다. 스타니는 배우들이 극중 인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재형성함으로 자신을 진정한 극중 인물의 현실 속에 존재 시키려 했다. 초기의 스타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후기에는 내제된 내적 진실과 외부에 대한 관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스타니는 과장된 연기가 존재의 상태 연기가 아니라 생각해 새로운 연기의 토대를 구축했다.메이어 홀드는 스타니의 제자인데 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은 또 다른 삶이라는 말에 반대하며 연극은 허구라 강조했다. 허구로서의 동작과 행동을 만드는 게 관객에게 파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극장주의, 구조주의, 형식주의 연극을 중시했다. 그래서 스타니의 연극은 관객에게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한다며 분개했다. 스타니는 삼각형 구조의 연극을 한 것과 다르게 메이어는 직선구조의 구성을 가졌다.메이어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 하는 게 뭘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그의 연극은 춤과 무용 아크로바틱 등이 많이 나타나며 변형됐다. 메이어는 생체역학이라는 특수한 훈련 프로그램을 고안했다.스타니는 내적인 진실을 외부로 이끌어내는 심리적인 훈련을 강조한 것에 비해 사실주의 연극 추구 배우는 실제 인물에 몰입하여 연기해야 하는 메소드 주장하며 내적 연기를 원했음
학과현대사회와 대중음악학번 이름감사합니다.2Whatever happens3Michael Jackson(1958-2009)'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라 불리는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은 5살 때부터 잭슨 파이브란 그룹으로 활동하며 메인 보컬을 맡았으며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그때 나이가 14살이었다. 그는 솔로 데뷔 후 4년 만에 계약사에서 나와 혼자 독립을 하는데 프로듀서 '퀸시존스'와 만나 1979년 솔로앨범 off the wall이 15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며 그래미 어워드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그 뒤 1892년 발표된 스릴러는 1억 400만장의 판매를 올려 최다 판매앨범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1993년과 2005년에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재판을 통해 각각 무혐의 판결을 받으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2009년 7월부터 런던에서 This Is It 앨범 발매공연이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저택에서 급성 프로포폴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주치의가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치사량 주입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그의 사후에 2010년 제52회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수여받았으며, 잭슨의 자녀들이 대리 수상했다.4Whatever happensWhatever happens 는 마이클 잭슨의 2001년 앨범 invincible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각종 차트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그의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수 많은 히트곡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 중 한 곡이다. 깊고 진한 잭슨의 소울 창법을 느낄 수 있는 이 곡은 미국의 록 그룹 '산타나'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가 곡 작업에 참여해 그의 신들린 듯한 기타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Michael Jackson / whatever happens그는 다시 미소를 짓지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죠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려 애쓰죠 그녀는 머물 수가 없어요 겪어왔던 모든 일들로 지쳐있어요 그녀는 말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 손을 놓지 말아요' 모든 게 잘 될거야 라고 그는 그녀를 확신시켜요 하지만 그녀는 그가 하는 한 마디도 듣지 않지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그녀는 두려워하죠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하죠, 그래서 기도하죠 무엇이든, 그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손을 놓지 말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손을 놓지 말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손을 놓지 말아요 내 손을 놓지 말아요 내 손을 놓지 말아요 그는 밤낮으로 일하고 있죠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생각하죠 전에 가졌었던 모든 꿈들을 잊으며 그는 이것이 세상의 끝이 아님을 그렇게 고달파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모르죠 그녀는 설명하려 애써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라고 무엇이든, 그 무슨 일이 일어나든He gives another smile, tries to understand her side To show that he cares She can't stay in the room She's consumed with everything that's been goin' on She says Whatever happens, don't let go of my hand Everything will be alright, he assures her But she doesn't hear a word that he says Preoccupied, she's afraid Afraid what they've been doing's not right He doesn't know what to say, so he prays Whatever, whatever, whatever Whatever happens, don't let go of my hand Whatever happens, don't let go of my hand Don't let go of my hand Don't let go of my hand He's working day and night, thinks he'll make her happy Forgetting all the dreams that he had He doesn't realize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It doesn't have to be that bad She tries to explain, It's you that makes me happy, Whatever, whatever, whatever5Whatever happens67감상하기마지막으로{nameOfApplication=Show}
연극계의 시지프스- 희곡작가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프랑스 연극에 있어,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아웃사이더의 자세를 견지했으며, 그의 연극미학은 동시대에 활약했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외젠 이오네스코(Eug ne Ionesco, 1912-1993), 로베르 뺑제(Robert Pinget, 1920-) 등의 부조리 연극론의 담론을 공유하고 있다. 이란 무엇인가? 2차 대전 후 파리는 온갖 부조리가 횡행했다. 정신적 공허감이 파리의 공기를 뒤덮었으며, 시민들은 여전히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이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어수선하게 돌아갔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에서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는다는 명제 하에서 출발한 연극이 부조리 연극이다. 뿐만 아니라 '부조리연극'은 전통을 거부하고,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과 의미 없는 단어들의 주절거림 등의 실험적인 작법들을 그들 자신의 연극 언어로 상정했다. 따라서 '주네'를 비롯한 부조리 연극의 극작가들은 논리가 아닌 비논리, 이성이 아닌 감정, 구조가 아닌 구조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20세기 전반기의 프랑스 철학계를 지배했던 앙리 베르그송(Hanri Bergson, 1859-1941)이 "의식의 직접 소여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 es imm diates de la conscience, 1889)"이란 저서에서 밝혔듯이, 언어는 그리고 그 언어를 둘러싼 의식의 표피물들은 사유의 꼭지점 위에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엔 "윤곽이 뚜렷하게 정해진 어휘는 인간들의 제반 인상들 중에서도 안정감 있고 보편적이며 따라서 비개성적인 내용을 저장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때에 따라서 생각들 가운데서 가장 덜 개성적이거나 거리감이 있는 생각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쓰여 있다. 즉 언어의 붕장 콕토(Jean Cocteau, 1887-1963)가 그의 소설에 매혹되어 결국 법원에 그의 사형선고를 종신형으로 감원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그의 문학적 재능은 뛰어난 것이었다. 60년대 프랑스연극계를 모로코태생의 스페인 희곡작가인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 1932-)의 시대라고 했을 때, 50년대 누보 떼아뜨르(Nouveau T tre, 신연극)의 시대는 장 주네의 시대였다. 그의 첫 희곡 작품은 "사형수 감시"(Haute Surveillance)란 제목의 희곡이었지만, 첫 번째로 공연된 작품은 "하녀들"(Les Bonnes)이란 세 개의 시퀀스로 나뉘어진 단막극의 작품이었다. "하녀들"이 초연된 1947년의 연극은 그 시대 관객들과 비평가들에게 하나의 충격이긴 했으나, 그 이상의 반향은 없었다. 단지 인상적이었다는 것이 하녀들이란 연극에 관한 비평가들의 견해였다. 그러다 1961년 장 마리 세로(Jean Marie Sereau)의 연출에 의한 연극이 희곡작가 "장 주네"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66년 리빙 시어터(Living Theatre)에 의한 연출은 이 희곡 작품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하였다. 이후 많은 극단들이 앞다투어 장 주네 희곡을 공연하였으며 이 중에서도 아르헨티나 태생의 연출가로 뉘리아 에스페르(Nuria Espert)란 극단을 이끌며 공연하던, "빅토르 가르시아"(Victor Garcia)가 가장 독창적인 연출력으로 장 주네 연극의 새로운 창조를 선 보였다고 평가 받았다. 우리는 하녀들이란 희곡작품을 장 주네 연극의 출발점으로 보고 이 작품을 문학적 텍스트로 분석하려 한다.*솔랑주(Solange)와 클레르(Craire) 두 자매는 하녀이다. 그녀들은 대부루조아인 마님(Madam)을 모시고 마치 종처럼 혹은 가구들처럼 살고 있다. 검은 하녀 복장을 늘 착용해야 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부엌과 다락방이 유일한 생활공간이다. 마님은 하녀들을 인간이라기보다 물체처럼 취급한다. 마님 앞에서 모르는 마님은 하녀들에게 옷을 나누어주겠다고 선심을 쓰고, 그 동안 클레르는 부엌에서 수면제를 다량 투입한 보리수차를 가지고 나와 마님에게 마시도록 은근히 강요한다. 그러나 잘못 놓인 수화기 때문에 하녀들은 나리의 석방소식을 마님에게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다. 보리수차를 마시려던 마님은 환성을 올리며 나리를 찾아 무대를 뛰쳐나간다. 마치 노래부르듯 마님이 도망간다라고 말하면서. 그 대사는 보리수차로 마님을 독살하려던 하녀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 갔음을 조롱하듯 들린다. 세번째 시퀀스에서 솔랑주는 방안의 물체들을 잘못 정돈하고 항상 서툴러서 놀이나 실수의 흔적들을 남기는 '클레르'를 심하게 모욕한다. 그리고 범행이 발각되기 전에 서둘러 도망가자고 재촉한다. 그러나 클레르는 도망갈 곳도, 해결책도 없다는 절망을 드러낸다. 두 하녀 사이에는 거의 발작적인 애증 관계가 펼쳐지고 그 동안 억눌러왔던 광기들이 폭발한다. 불안과 광기가 교차되면서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클레르는 관객의 면전에서 다시 검은 하녀 복장 위에 마님의 흰 드레스를 입고 마님의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언니 솔랑주를 하녀로 다루면서 다량의 수면제가 든 보리수차를 가져오도록 명령한다. 주저하는 솔랑주를 다그쳐 보리수차를 받아든 클레르는 마님처럼 우아하게 보리수 차를 마시고 쓰러질 때 막이 내린다.희곡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축은 두 자매와 마님과의 관계, 그리고 두 자매의 관계와 서로 얽혀 들어가는 데 있다. 마님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증오하는 클레르와 솔랑주는 마님 놀이를 통해서 의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결극 자기파괴의 행위로 말미암아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마님 놀이란 억압받고 있는 욕망에 대한 그들 자신의 투영이며, 또한 그것은 흉내내기에 다름 아니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와 이미지의 중첩은 마님과 솔랑주와 클레르의 사이에 반사되고 있다. 심리학자 "자끄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에 의하면 거울영상은 이중자아를 의미한다고 했다. 라깡의 초기이론에 해당하의 모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두 자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억누를 수 없는 마님에의 동경과 증오이다. 이 뒤틀린 의식은 두 자매의 마님 놀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하녀들에게 부여함으로써 연극은 부조리극의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장 주네는 이 두 자매와 마님을 통해서 당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비추고 있다. 그 모순이란 다름 아닌 전쟁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이며 부루조아와 프로레타리아로 대립되는 당대의 정치적 병리현상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어진다. 솔랑주와 클레르는 근친상간에다 동성애를 하기도 하며, 이들은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그러다 그 음모가 탈로 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외부로 향한 칼은 방향을 돌려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치닺는다. 두 자매의 의식세계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이 말은 현실과 환상이 두 자매에게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두 자매에게는 환상이 현실이 되며 현실이 환상이 된다. 그리고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극작가 자신이 서 있다. 장 주네의 연극미학은 이렇듯 혼돈된 세계에 대한 자기 발언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님과 나리는 중산층계급의 허영과 이중심리를, 솔랑주와 클레르는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자기분열을 암시하는 것이다. 주네는 이 연극에서 세계에 대한 모든 부조리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일탈행위가 자기부정의 모순으로, 사회병리현상으로 전도된다는 것이다.동시대의 자연과학자 조르쥬 깡기옘(Georges Canguilhem, 1904-1995)이 그의 저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 관한 몇 가지 질문를 위한 시론"(An Essay on Some Problem Concerning the Normal and Pathological, 1943)에서 "규범은 위반을 통해서만 그 자체로서 인정된다. 기능은 와해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생은 자연히 부적응,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만 의식과 과학에 떠오른다"라고 밝히고 있다. 깡기옘은 생은 결코 멈추지 않는 초월적 어디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고, 주네는 "망각입니다. 우리들 행동의 대부분에는 애매한 것이라든가 방랑자의 불확실한 상황이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그 불확실한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그 상황을 뛰어 넘으려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즉, 이 말은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이라는 벽 앞에 있는 자의 심리적 박탈감을 자기부정의 언어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숨겨진 욕망을 발견했으며, 또한 도처에 절망이 깔려 있는 불안한 상황을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세상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존재의 부조리를 깨뜨리려는 제의(Ritual)로써의 연극론이 탄생한 것이다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그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써 시를 썼던 것과 동일한 행위로써 주네는 그 자신의, 그러니까 내부로부터의 고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글쓰기(criture)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작품 '하녀들'에 관한 장 주네 자신의 견해를 들어봄으로써 우리는 문제의 희곡작품에 좀 더 핵심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보이는 세계를, 즉 신들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행위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하는 부류의 연극의 우울함에 대해서 당시 이미 불만을 품고 있었던 나는, 하나의 차이를 만들어내서 그것이 낭송조의 어투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연극 위에 또 하나의 연극을 올려놓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등장 인물이라는 것을 없애 버리고-등장 인물이란 보통 심리상의 약속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므로-그 대신 몇 개의 상징적 기호를 획득하려고 했다. 그 기호들은 그것이 우선 의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 것에 얽혀 있어서, 그 연결에 의해서만 작가를 관객과 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