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평정 대혜종고 선사스님인물평전 : 대혜종고 선사스님I. 서론1II. 본론11. 대혜스님의 생애(生涯) 12. 시대적 상황43. 중심사상(中心思想)6(1) 간화선6III. 결론7■ 참고문헌9Ⅰ. 서론‘밥 먹는 시간을 빼곤 자리에 앉지 않고 오로지 걸어 다니면서 화두를 참구한 행선(行禪) 수행자, 고봉 스님 한밤중 도반이 떨어트린 목침소리를 듣고 단박에 활연 대오했다는 선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대혜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절이자 고봉 스님이 “3년 내에 깨우치지 못하면 죽겠다.”“잠이 깊이 들어 꿈도 생각도 없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때에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화두를 들고 참구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은 한국불교 수행의 핵심.1700년간 한국불교가 매달려 이어온 큰 명제였다. 간화선 수행법을 창시한 중국 대혜 종고(1089∼1163)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깨달음 자리를 조금이나마 더 알기 위해 쉴 틈없이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대혜종고 선사는 하루도 간화선(看話蟬)의 완성자로 알려진 선사의 파격적인 반어법이 격외의 선지를 은연히 드러낸다.이 시대의가장 본보기가 대는 스님이시다.현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이러한 때..나라가 풍전등화인 때에 홀연히 나타나 사대부들에게 빛을 던져주고...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은 사람이 대혜 종고스님이다.나아가야 할 방향..올바른 가치관으로서의 간화선을 제창하여..그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지고 용감하게 전진하게 한 것이다.Ⅱ. 본론1. 대혜스님의 생애(生涯)대혜(大慧宗高: 1089∼1163)스님은 안휘성(安徽省) 선주시(宣州 쉬안저우) 안국현(安國縣) 사람으로, 철종(哲宗) 원우(元祐) 4년 11월 10일에 태어났다. 속성은 해(奚)씨이고, 자는 담해(曇海)이며, 호는 묘희(妙喜)ㆍ운문(雲門)이고, 사호(賜號)는 ‘불일(佛日)’이고, 시호(諡號) 보각선사(普覺禪師)다.12세에 향교(鄕校)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13세 때에 향교에서 친구와 함께 장난을 치다가 스승의 사모(帽)를 망가뜨려 변상해주고 집에 돌으나 겨우 잠들었을 때에는 문득 없어진다. 만약 이러할진대 어찌 생사를 당적하겠느냐?”라고 묻자 대혜스님은 “참으로 이것이 저의 의심하는 바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담당스님을 모시며 바른 불법을 공부한지 7년이 지나서 27세 때에 담당스님이 천화(遷化)하였는데, 유언으로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스님에게 찾아갈 것을 권하였다.대혜스님은 문준과 같이 극문(克文) 문하에 있던 덕홍각범(德洪覺範)을 만나고, 다시 장상영(張商英)을 만나 묘희(妙喜)라는 법호와 담회(曇晦)라는 자(字)를 받았다. 34세 문준 스님의 유언을 생각하고 원오 스님을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원오스님이 있는 장산(蔣山)이 너무 멀어 중간에 있는 태평사(太平寺) 평보융회하(平普融會下)에서 지냈다. 36세 원오스님은 경사천령사(京師千寧寺)를 관리할 것을 임명(任命)받게 되었다. 37세 4월 드디어 천령사 회상을 찾아가 원오스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대혜스님이 “제가 생각하니 이 몸이 아직 깨어있을 때는 주재하여도 자못 수면할 때는 캄캄하여 주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수화풍이 분산(임종시)하여 중고(衆苦)가 치연(熾然)히 일어날 때 어찌 회환전도(回換顚倒)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자, 원오스님은 다만 손을 내젖으며 “그만하고 그만 하라. 다만 망상을 쉬어라. 그대가 지금 말하는 허다한 망상이 단절 될 때에 그대 스스로 오매항일처(寤寐恒一處)에 도달하리라” 라고 하였다. 처음 듣는 것이어서 믿어지지 않아서 매일 “내가 깰 때(寤)와 잠잘 때(寐)가 분명 둘이거늘 어찌 감히 입을 열어 선(禪)을 말하리오. 다만 오매항일이라는 부처님 말씀이 망령된 말이라면 내 병을 제거할 것이 없지만, 부처님 말씀이 과연 중생을 기만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가 아직 미달한 것이다.”라고 스스로 발원하고 반성하였다. 원오스님을 모신지 42일이 경과한 5월 13일(37세) 스승의 승좌설법(陞坐說法)을 듣게 되었다.“어떤 스님이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이 모든 부처님의 나온 곳입니까?' 운문 스님이 말서도 대혜 스님의 도력을 사모하여 사대부들이 서신으로 도를 물으므로 진회는 꼴보기 싫어하여 10년 만에 형주로부터 서신왕래가 불편한 매양(梅楊)으로 귀양터를 옮겨 버렸다. 대혜 스님이 두 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이에 제자 장구성이 승상이 되어 13년 만에 석방되니, 대혜 스님도 유배가 풀리게 되었으므로 이 기간을 흰옷을 입고 머리를 기른 상태(白衣長髮冠中)에서 설법한 시기(說法期)라고 부른다.소흥 25년 67세 사면으로 유배가 풀릴 때까지 13년 중 10년 간은 유배생활 중에서도 선덕기연(先德機緣)의 어(語)를 모으고 염제(拈提)해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소흥 26년 68세 조정의 뜻에 의하여 아육왕산(阿育王山) 광이선사(廣利禪寺)에 주하면서 천동산(天童山)에 있던 묵조선 최고선사 굉지선사(宏智正覺)를 방문하여 비로소 道로써 사귐을 가졌다.소흥 27년 69세에 조동선의 제 일인자 굉지정각 선사가 입적하자 굉지선사의 유언에 따라 그 장례를 집행하였다.소흥 28년 70세 나라의 칙명으로 徑山에 돌아와 주석하고 효종제(孝宗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때 묘희암(妙喜庵)이라는 친서를 하사 받으면서 호를 대혜(大慧)라 하였다.소흥 31년 73세 명월당(明月堂)으로 퇴거하였다.융흥 원년(1163) 75세 조금 앓다가 8월 9일 대중을 모아놓고 “나는 오늘 가리라.” 하고 다음과 같이 마지막 법문을 하였다.生也只任麻 (생야지임마)死也只任麻 (사야지임마)有偈與無偈 (유게여무게)是甚麻熟大 (이심마숙대)生이란 다만 이와 같다.死란 다만 이와 같다.말 있음과 말 없음이여.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문도들은 명월당을 묘희암(妙喜庵)으로 고치고, 보각선사(普覺禪師)라 시호하고 탑을 보광(寶光)이라고 명명하였다.이상의 대혜 스님의 연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황제통치기간연보북송철종(哲宗) 소황제조후(趙煦)1085~1100원우(元祐) 4년 11월 10일 탄생휘종(徽宗) 현황제조길(趙佶)1100~112516세(崇寧 3년 1104) 출가21세(1109년) 때 음과 같다.1004년북쪽의 요나라가 남하하자 진종은 요나라에 대해 매년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화의을 맺었다. 또한 요나라의 침공과 동시에 서쪽의 탕구트족은 서하라는 이름의 나라을 세워 송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이것도 1044년재물을 보내는것으로 화의을 맺었다. 그 결과 획득한 평화을 토대로 경제적 발전이 촉진되었다. 그러나 국방비의 증가와 대상인, 대지주을 증가로 일어난 세수(稅收) 감소등에 대해 개혁이 촉구되어 6대 황제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을 등용하여 국정개혁에 나섰다. 이 움직임은 왕안석의 신법(新法)이라 불리었고, 주로 영세농민의 보호와 대상인, 대지주의 억제를 목표로 했으나, 신법은 지주ㆍ상인세력과 그쪽 출신인 관료(舊法派)의 반대에 부딪쳤다.북송의 제7대 황제(재위 1085~1100)인 철종은10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으나 어려서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 1086~93년 원우연간에는 할머니 고태후가 섭정을 맡았다. 그녀는 사마광ㆍ문언박 등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신종 때의 모든 신법정책을 배척했다. 고태후가 죽은 뒤 철종은 친정을 시작하여 신종 때의 모든 신법정책을 다시 회복시켰다. 변법파인 장돈ㆍ증포 등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원우연간 때의 나이 많은 대신 10명을 파면했다. 이로 인해 신법과 구법 양당간의 보복과 분쟁의 국면이 형성되었다. 이들의 다툼은 나날이 격렬하게 증가하여 서서히 송나라의 국력을 기울게 하였다.이때쯤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은 1115년스스로 금나라을 세웠고, 송나라는 금나라에 대해 함께 요나라을 공격하자는 약속을 맺었다. 1121년요나라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 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요나라의 잔당과 손을 잡은 사실이 들어나 금나라의 분노를 사서 1127년 카이펑이 공격당해 함락되고 황제 흠종(欽宗), 태상황(太上皇) 휘종(徽宗)을 북쪽으로 사로잡아 갔다. 흠종의 동생이었던 조구(趙構)는 남쪽으로 천도하여 항주에서 즉위하여, 1127년 고종(高宗)이 되었다. 처음엔 악비(岳飛)등의 활약으로 인해 금나라에게 강력하게 저항했으여 衡州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반면에 목조선을 편 굉지 스님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唐末ㆍ五代 때부터 주창되어온 敎外別傳ㆍ不立文字가 강하게 주창되고 보편화 되었으며, 대혜스님의 경우처럼 儒ㆍ佛ㆍ道의 三敎一致가 주창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大慧만이 아니라 당시 宋代 禪林에 일반화 된 경향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굉지 스님과 대혜 스님으로 대표되는 묵조선과 간화선의 대립에서 보듯이, 당시에 유행하던 문자선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묵조선이 나왔으며, 묵조선을 수행하는 스님들 중의 일부 잘못된 수행자에 대한 비판으로 간화선이 나와서 묵조선 자체를 비판하였는데, ?照禪측에서는 看話禪을 향하여 依文解義를 弄하여 詩歌와 文章에 빠지고 古則公案을 拈弄하고, 古人의 軌跡에만 ?守하여 오로지作佛見性만을 목표로 삼은 것이 看話禪이라 비판하였으며, 看話禪측에서는 ?照禪을 향하여반대로 오직 枯木死灰와 같이 寂?으로 枯坐하여 하등의 활용도 없고 아무런 知見토 없다 하여 暗證禪이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글로서 남겨져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결국 간화선이 더욱 번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간화선이 더 수승하다고 확정할 수는 없는 것이며, 결국 세력싸움에서 승자의 사상이 더 중시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성공하고 세력을 넓혀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역사상 늘 반복되어 오던 일로서, 세계의 역사 또한 승자의 역사이듯이 불교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된다.3. 중심사상(中心思想)대혜스님은 ‘禪’을 ‘無’의 철학으로 새롭게 전개시켰으며, 당시 진헐청료가 주장했던 묵고선을 전제로 묵조선을 邪禪이라고 비판하고, 간화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당시 진헐청료에게 묵조선을 배우던 사대부를 향한 것이었으므로 묵조사선이라는 말을 일반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대혜스님의 간화선은 16년간 귀양생활중에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러 사대부들과의 書信(서신)들을 모은 대혜서 가 근본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1) 간화선간면,
제 1강 논리학의 의미와 목적1. 논리학의 의미와 목적1) 논리학의 의미논리(論理,logic)란 “말하다(logos)"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 legein(말하다 동사).생각이나 추론이 지녀야 하는 원리나 법칙, 사물의 이치나 법칙성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말, 판단, 개념,정의, 이유, 사유, 이성(理性), 진리, 법칙, 도(道), 원리, 말씀,dialogue(둘이 대화), monologue(독백), prologue(앞에서 말하는 것), apology(변명),psychology(심리학), sociology(사회학), anthropology(인류학), methodology(방범론)? 논리학의 정의- 「Logos」 는 원래 (말하다, 모은다, 배열한다. 등의 뜻 동사로부터 생겨난 명사언어라는 뜻 외에 이성, 사상, 진리, 법칙,도 등의 뜻의 학문.? 논리학의 본성→학문=지식의 조직체. =체계화된 지식.? 올바른 지식의 체계를 형성하는데 의거해야 할 사고의 법칙이나 추리의 형식을 연구.? 올바른 사고와 올바르지 않은 사고, 과학적인 사고와 비과학적인 사고를 구별한다.?논리학은 사고형식인 여러 가지 개념과 판단이라는 형식으로 성립한다.【논리(論理,Logos)란 말에관한 학문에 의미를 둔다이성(理性)모든사람에게 이해,진리를 전달함에 신빙성을 지녀야 한다.말,판단,개념,정의,이유,사유,진리,법칙,등 상대방에게 설득,이해 설명 주장 이론.(객관화)ex)한사물을 놓고 볼 때 각자의 생각이 틀릴 때,= 주관적인 판단“이성적(理性的)객관적으로 볼 때 한사물을 놓고 동일성을 표현할 때 =,논리“】2) 논리학의 목적? 논리적 사고란 비판적 사고(반성적 사고)? 일정한 이유나 근거를 통해 주장이나 결론을 내리거나 혹은 수용하려는 사고? 합리적 비판이란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성적 사고)? 문제에 대해 기존의 답이 아니라 새롭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답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객관화 능력): 사회의 지도자 양성연역추리 삼단논법 {대전제 → 소전제 → 결론}대전직 주어와 술어와 연결사만을 그 구성요소로 하여 성립하고 있는 형식상 가장 단순한 판단주어(subject): 어떤 규정성의 담지체로서의 개개의 사물을 나타냄.술어(predicate): 주어로 나타나 있는 대대의 사물에 갖추어져 있는 어떤 특정한 규정성연결사(copula): 주어와 술어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함. ~은, ~는, ~이다, ~이, 아니다. 등②가언판단(hypothetical judgment): 하나의 정언판단을 p로 그것과 다른 정언판단을 q로표시하면 “p이면q이다”로 표시할 수 있는 판단③ 선언판단(disjunctive judgement): p와 q를 두 개의 다른 정언판단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p 또는q이다”로 표시할 수 있는 판단전칭판단: 단지 주어의 외연의 모두에 대하여 그것들이 어떠한 공통의 규정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는 정언판단특칭판단: 단지 주어의 의연의 일부에 대한판단Pspss전칭긍정판단(A판단): 전칭부정판단(E판단):모든 s는 p이다 모든 s는 p가 아니다(술어가 주어 전체를 긍정) (술어가 주어 전체를부정)[전칭긍전판단, 전칭부정판단, = 모든 사물을 지칭 ]특칭긍정판단(I판단): 특칭부정판단(O판단):p약간의 s 는p이다. 약간의 s는 p가아니다.sp Ps[ 특칭전판단, 특칭부정판단, =사물의 일부분을 지칭* 주연과 부주연: 정언판단은 모두 주어와 술어의 두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두 개의개념 사이에 성립하고 있는 그 외연에 관한 일정한 상호 규정적인 관계① 주연(distributed): 정언판단에 있어서의 주어와 술어 사이에 한 편의 외연이 다른 한편의 외연 속에 그 일부로서 완전히 포섭되어 있거나 또는 그것으로부터 와전히 배제되어 있어서 한편의 외연이 미치는 범위가 다른 한 편의 외연에 의하여 명확하게 한정되어 있는 경우그 주어 또는 술어는 주연되어 있다고 한다.[술어가 전체를 지시할 때]② 부주연(undistributed): 포섭과 배제의 관계가 주어 또는 술어의 외연의 일부에만 관계가지고 한 편의 외연이 미족 역시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중국은 도시 농촌간 식수 분배로 인한 갈등에 직면했다. 호주도 극심한 가뭄으로 가장 비옥한 농지를 잃었다.(H) 마지막으로 고효율과 대체 자원의 개발로 원자재의 가격 상승은 무한한 효율을 보장할수없었다.(I)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 이 모든논쟁은 경제 정치적 역학 관계와 관련한 것이다.우리는 개발에 따른 달콤한 성과를 분배해 왔다. 이제는 그로 인한 책임을 나눌 시점이다.- 요르겐 의르스트륌 몰러(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 부교수),세계화의 고통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 《 중앙일보》 2007년 10월 23일자 해외칼럼(원출처 : 《 예일 글로벌 온라인(Yale Global Onlie) 》 2007년 10월 19일자)(2) 비판적 사고의 구성 요소 질문① 필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가?② 필자는 이 글 전체의 주요 문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그 문제는 ( )이다.③ (C)에서 필자는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어떤 용어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 ): 용어의 의미:? (I)에서 필자가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당연시하고 있는 가정(배경 지식)은무엇인지 하나만 지적해 보시오.? 여러분은 (E)에서 어던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가?? (B)에서 “선진국들은 자신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지만그들이 지겠다는 책임. 즉 비용 분담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라는 주장에서이끌어낸 결론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주장인가?? (D)에서 필자는 ‘살림을 개간해 대체 연료 생산을 위해 옥수수 재배지를 만들자는제안;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서 그는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가?? 필자는 위의 글에서 주로 어떤 관점에서 세계화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있는지 하나만선택하시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예술적)관점? (C)단락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마지막 문장, 즉 “(배출권 거래제는) 이론상 공정해보이지만 실상은 선진국에 유리할 수밖에 없a사상이론6원리를 연구하고 요가 수행무(無)다원적 적취설多元的 積聚說4.니야야Ny?ya실천수행그룻된 지(知)를 제거하고 만유(萬有)의 진실을 앎5.베단따Ved?nta사상이론브라만을 인식순수 희열일원적 가현설一元的 假現說6.미망사Mim??s?실천수행제식을 통해서*因中有果論(satk?ryav?da): 결과는 원인과 동일하다(혹은 원인 가운데 先在한다.):상키야 아드와이따 베단따.*因中無果論(asatk?ryav?da): 결과는 원인과 다르다.: 니야야, 와이세시카, 경량부(sautr?ntika), 毘婆娑(vaibh?sika), 불교1. 인도대표 학파와 논리.1)Mim??s?학파* 성상주론(聲常住論= 성현현론, 聲顯現論) [↔ 성무상론(성발생론):불교]- 음성은 허공의 속성으로, 인간이 말을 할 때 나타남으로써 들리게 된다.* 불교의 아뽀하 이론을 격렬하게 공격함 - 말의 대상은 ‘우성(牛性:Cow-ness)'등의개물에 구비된 보편이다.[아포하(apoha, 他의 배제): ‘소’라는 말은 소 이외의 것의 배제를 의미하며 실재하는 대상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2) Vai?e?ika학파의 논리? 실체(實,dravya): 원자(지, 수, 화, 풍), 허공, 시간, 방위, 아뜨만, 의(意: manas)? 속성(德, gu?a, 성질):17종~24종: 색,미, 향, 가촉성, 수, 량, 결합, 분리...? 운동(業, karma, 작용): 상승, 하강, 수축, 신장, 진행? 보편(同, s?m?nya): 공통성? 특수(異, vi?e?a): 어떤 개체를 다른 것에서 구별하는 관념의 기반이 되는것? 내속(內屬,和合, samav?ya): 불가분리하게 성립하는 둘 사이의 관계: 예 - 항아리와흑갈색? 비존재(無, abh?va): 未生無, 已滅無, 相對無, 絶對無3)니야야 학파(Naiy?yika.정리학파)의논리? 인식수단(量,pram??a) ?인식대상(所量(prameya): NBH. 인식수단(pram??a)에 의해대상(artha)이 이해될 때 성공적인 행동(prav?ttis?marthy든 존재는오직 식 뿐이다.有相唯識說(s?k?ravijn?nav?da): 식은 형상을 갖는다. 우리의 지식은 감각지와 감관지로 구분하는데 감각지의 경우 그 형상이 그대로 우리의 식과 일치하는 진실이다. 同形象無想唯識說(nir?k?ravijn?nav?da): 식은 형상을 갖지 않는다. 照明性(prak??a)을 갖는 식만 실재하고 形象(?k?ra)은 허구하고 주장한다. 離形象無形象知識論: 설일체유부, 감각영상인 형상은 외부대상에 속한것, : 식이 형상을 갖지않는다. 離형상지식론(식은 형상과 遊離되어 있다). 범주적 외계가 실재한다.有形象知識論: 경량부, 감각영상인 형상은 식 자체에 속한 것. 식이 그대로 형상과 일치한다. 同형상지식론(식이 그대로 형상과 일치한다). 극미의 집적으로서 외계가 실재한다.제 9강 불교논리학의 완성1. 디그나가의 불교논리학 성립디그나가(Dign?ga, 陳那, 480~540)에 의해서 성립된 불교논리학은 인도 논리학에 아주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因의 三相說’, ‘九句因說’의 정비를 통하여 논리학을 형식적으로 정비하고 ‘아포하(apoha)론’과 ‘Arthakriya'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불교인식론을 확립했다.1)三支作法宗(pratijn?): 저 산에 불이 있다.因(hetu) : 연기가 있기 때문에.喩(d????nta): 마치 아궁이와 같이.주장: 저 산에 불이 있다.有法(dharmin) 法(dharma)所證(s?dhya)이유: 연기가 있기 때문에. 能證(s?dhana)긍적적 실례: 연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 마치 아궁이와 같이.부정적 실례: 불이 없는 곳에는 결코 연기가 없다. 마치 호수와 같이.2) 因의 三相設? 遍是宗法性(pak?adharmatva): 인이 종의 법, 즉 추리의 주제에 속학 것이어야 한다.? 同品定有性(sapak?esattvam): 인이 동품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異品遍무性(vipak?esattvam): 因이 異品에는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3) 九句因說추론(比量)이나 논증(能證)에서 중심적 서
1강 공자(孔子)공자(B.C.551~479)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이다.조상은 송나라 사람이라하나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예이므로 은나라에 속한다. 선대가 예(禮)를 맡는 관직인 사례관(司禮官)을 여러 차례 지냈기에 공자는 예에 통달했다고 이름났다. 공자는 예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의문(儀文) 제도의 의의를 찾고자 했다.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예(禮)의 제도는 붕괴되어 갔다. 공자의 뜻은 주나라의 문화를 다시세우는 것이었다.1. 공자사상의 요체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에 의거하며, 인(仁)에 의지하며 예(藝)에 노닌다.(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술이(述而)」)이 말은 공자사상의 핵심을 말한 대목이다. 도(道)와 덕(德)과 인(仁)은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이것이 예(藝)로 구체화된다. 예(藝)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여섯가지로 고대 중국교육의 과목이다. 이중에서 가강 핵심적인 것은 예(禮)이므로 여기서는 예(禮)만을 다루자고 한다.공자가 추구한 도(道)는 인(仁)과 같은 내용이고, 이 인(仁)은 의(義)와 중용(中庸)의 덕으로 나타나고, 행동으로는 예(禮)로 구체화된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충서지도(忠恕之道)로 구체화 되는데 이는 다른사람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고, 이것은 아주 공정한 마음의 상태이다. 공정한 마음은 합리적 판단으로 나타나고 일의 처리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무리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가장 합당한 처방을 내린다. 이것이 중용의 덕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 자세가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예(禮)이다. 에는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겨내는 것이므로 어떤의미에서 본다면 의(義)의 행동이 구체화되면 예가되고 중용의 덕이 구체화 되면 예가 된다고 할수 있다.1)도(道)공자가 말하였다. “아침에 도(道)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제4리인(里仁) “子 曰 朝聞道 夕死司矣”)라고 말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道)는 공자가 추구한사람을 알 수 없다.”(제20 「요왈(堯曰)」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支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위 인용문에서는 명(命)이 강조된다. 극기복례(克己復禮)에 맞추어서 보면,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기는 것이 명(命)을 아는 것과 연결된다.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인(仁)은 예(禮)의 기초임을 알 수 있다.3)덕(德): 의(義)와 중용(中庸)이다.덕(德)이 뜻하는 것은 중용(中庸)이다.공자가 말하였다. “중용의 덕(德)은 지극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중용의 덕을 행하는 이는 드물다.”(제6「雍也」)중용을 지키면 사사로운 뜻, 반드시 하는 것, 고집, 이기심을 끊을수 있다.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는데, 그것은 사사로운 뜻, 반드시 하는 것, 고집, 이기심이다.(제9 「子罕」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위의 네가지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이다. 중용의 덕에 의거해야 비로소 한쪽에 치우친 견해를 없앨 수 있다.자공(子貢)이 물었다. “사(師)와 상(商)은 누가 더 어집니까?” 공자가 말하였다.“사(師)는 지나치고 상(商)은 모자란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그러면 사(師)가 낫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제11 「先進」)위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공자는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 “중용”을 중시하였다. 이런 ‘중용’의 정신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잘 나타난다.공자가 제자를 가르칠 때도, 그 사람의 지나침과 모자람을 헤아려서 그에 맞추어 모자람도 없고 지나침도 없게 하고자 하였다. 앞에서 중용의 덕은 네 가지가 없는 것이라고 하였는흥데, 이를 확장하면 소요자재하는 덕으로 바꾼다. 또한 중용의 덕은 의(義)로 이어진다.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해서 사전에 미리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의(義)로 견줄 뿐이다.” (제4 「里仁」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此)이 인용문에서 보면 의(義)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리(事理)를 공정하게 보는 것이臣 父父 子子) (제12 「안연」)공자의 정치사상은 질서를 세워서 권력의 목[權分]을 정하는 것에 근거를 두고, 덕성의 교화를 중시하고, 강제적인 힘의 사용을 반대하고, 경제적 약탈과 포악한 정치를 반대하는 것이 그 구체적 주장이다. 이는 공자가 주장한 예에서 나온 것이고 이 중에서 정명(正名)이 가장 중요하다.3. 공자에 대한 사상사적 평가1) 森三樹三郞의 견해예(禮)는 사회적 질서의 전부였다. 예(는 신분의 격식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으므로, 예(禮)를 지킨다는 것은 그데로 봉건적 신분 질서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예(禮)는 법을 대신해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었으므로, 이 예를 강조하는 유교는 보수주의.전통주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적 흐름이다. 공자가 예(禮)의 필요를 강조할 때는 이미 주(周)의 봉건제가 붕괴하였던 때이므로 그것은 시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고, 일종의 이상주의(理想主義)라고 평가할 수 있다.한(漢)의 숙손통(淑孫通)이 유교의 효용을 설명하기를 “함께 나아가 탈취하기는 어려워도 함께 수성(守城)하기는 쉽다”고 하는 것도 유교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예(例)이다. 유교는 기존 질서를 지키는데 가장 적합한 사상이다.2)侯外廬의 견해공자는 춘추말기의 대사상가이다. 공자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노에주 귀족의 이익을 대표하고, 몰락하는 귀족통치를 구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공자의 사상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는 것은 인(仁)이다. 그러나 공자의 인(仁)은 분명히 계급성을 나타내고 있다.인(仁)은 노예주 귀족의 전통 예제(禮制)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4가지 하지말라는 조목을 이용하여 자신을 구속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추상적이고 도덕 개념인 ‘인(仁)’과 예(禮)가 모두 계급적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는 보수주의 입장에서 출발하여 ‘정명(正名)’을 주장하고, 서주(西周)의 예악(禮樂)제도의 부활을 주장하였다.2강 맹자(孟子)맹자(B.C.372~289)는 이름은 가(軻)이고, 자(梁惠王)의 물음에 답하였다. 땅이 사방으로 백 리(理)이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할수 있습니다. 왕께서 백성에게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적게하고, 깊이 밭 갈고 쉽게 김매며, 장정이 한가한 날에 효제(孝悌: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순종하는 일)와 충신(忠信: 충성과 신의)을 닦게 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그 어버이와 형(兄)을 섬기고 [집을] 나가서는 어른과 윗사람을 모십니다. [그러면] 가령 몽둥이를 만들어서라도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양해왕(梁惠王) 상」)힘으로 인(仁)을 행하는 척하는 것이 패도(覇道)이고 ,····덕(德)으로 인(仁)을 행하는 것이 왕도(王道)이다. ······· 힘으로 사람을 복종하게 하면, [진정]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힘이 대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덕(德)으로 사람을 복종하게 하면, 마음 속에서 기뻐하면서 성심(誠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컨대, 70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한 것과 같다.(「공손축(公孫丑) 상」)맹자의 이상적인 토지는 정전제도(井田制度)이다.정전제도는 공전(公田)을 농사짓고 난 다음에 자기 땅을 농사 짓는 것으로 공유재산도 있으면서 사유재산도 있는 것이다.2) 민본주의(民本主義): 백성이 근본이다.백성이 귀하고, 사직(社稷:국가 또는 조정)이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그러므로 구민(丘民)에게 [신임을] 얻으면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으면 제후(諸侯)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으면 대부(大夫)가 된다.(「진심(盡心) 하」)맹자가 말하였다. 삼대(三代: 하 · 은 · 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 때문이고, 삼대가 천하를 잃은 것은 불인(不仁) 때문이다. 나라가 흥하고 없어지고,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어찌해서 그러한가? 대게 인을 근거하면 백성을 얻게 되고, 불인(不仁)에 근거하면 백성을 잃게 된다. (「이루(離婁) 상」)3. 수양론(修養論) 상」)맹자가 말하였다. 물의 성품[성품]은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수 없지만,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눌 수도 없는가? 사람의 성품[性]이 선[善]한 것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사람이 불선(不善)함이 없는 것은 물이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음을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이 불선함이 없는 것은 물이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물은 쳐서 위로 올라가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성품이겠는가? 그 세력이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이 불선(不善)을 행할 수 있지만, 그 성품도 이와 같을 이치일 뿐이다. (「고자(告子) 상」 )위 내용은 비유이지 증명을 한 것은 아니다. 물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의 성품은 선(善)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없다고 해도 되고,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의 성품은 선(善)하다고 해도 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4강 순자(荀子)순자는 이름은 황(況)이고 현재 호북성(湖北省)과 산서성(山西省)의 남부에 있는 조(趙)나라 사람이다. 순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전국시대의 말기라고 할 수 있고, 이 시대적 상황이 그의 사상에 반영된다. 맹자가 어떻게 천하를 통일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다면, 순자는 통일된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1. 성악설(性惡設)사람의 성품은 악하다. 반드시 사법(師法)을 긷린 뒤에야 [사람의 성품은] 바르게 되고, 예의(禮義)을 얻은 뒤에야 [사람의 성품은] 다스려 진다. (「성악편(性惡篇)」 )성인(聖人)은 사려(思慮)을 쌓고, 인위적인 것을 익혔으므로, [성인은] 예의(禮義)를 생기게 하고, 법도(法度)를 일으킨다. 따라서 ‘예의’와 ‘법도’란 성인의 인위적인 노력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성품에서 고의(故意)로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악편(性惡篇)」)무릇 요(堯)와 우(禹)임금과 군자가 귀(貴)하다고 하는 것은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化性] 인위적인 것을 일으킬 수 ]이다.
鹿柴(녹채)당/唐 왕유/王維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빈산엔 사람 보이지 않고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간간이 들려오는 말소리뿐.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석양이 깊은 숲에 들어復照靑苔上(복조청태상) 푸른 이끼를 더 푸르게 비추네.*녹채(鹿柴)-야생사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나무 말뚝 울타리. *공(空)-비다. *산(山)-산 *공산(空山)-사람기척이 없는 고요한 산. *견(見)-보다. *단(但)-다만. 오직. *문(聞)-듣다. *어(語)-말. *향(響)-울림. *반(返)-되돌리다. *경(景)-경치. *반경(返景)-석양 빛. *심(深)-깊다. *림(林)-숲. *복(復)-다시. *조(照)비추다. *태(苔)-이끼.작가 소개왕유(王維) (701-761)당나라 성당기의 시인이다. 자는 마힐(摩詰), 태원(太原)(산서성/山西省) 사람이다. 시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백(李白)과 시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두보(杜甫)와 함께 성당 삼대시인으로 헤아려진다. 왕유는 경건한 불교 신자로서 시에 불교적 색채가 짙어서 시불(詩佛)이라고도 일컬어진다.신동이라 일컬어질 만큼 시, 음악, 서, 회화 등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15세에 과거 준비를 위하여 장안에 올라가서 21세에 진사가 되어 20년간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비교적 평온하게 살았는데, 755년 안록산의 난으로 반군에 붙잡혀 강제로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반란이 평정된 후에 반군의 벼슬을 하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으나 아우인 진(縉)의 탄원으로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가볍게 처리되었다.그 후 상서우승(尙書右丞)이라는 높은 지위의 벼슬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왕우승(王右丞)이라고도 불리며, 이백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맹호연과 병칭되는 자연시파의 거두이다.43세에서 58세까지를 은둔기라 하는데, 본래 한적한 생활을 좋아하여 30세경에 아내와 사별하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종남산(終南山)에 별장을 짓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탐닉했다. 남종화(南宗畵)의 비조로 일컬어지며, 절대 다수의 시는 전원생활과 산수풍경을 소재로 썼고, 색채이미지와 선의 이미지를 시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며 찰나적인 자연의 인상에 뛰어났다. 불교의 선리(禪理)에도 능통하여 불가어(佛家語)를 삽입한 시도 많고 시속에 화경을 넣어 공간과 동작 활용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이 있다.이 시의 시제인 는 망천(輞川) 20경의 하나이다. 망천 20경은 서안으로부터 동남쪽으로 50킬로, 태령산맥(泰嶺)의 북녘 기슭인 남전현(藍田縣)에 있다. 망천은 남전현 서남쪽 50킬로를 흐르는 아름다운 계류로 강바닥의 크고 작은 돌멩이마저 보일 정도로 맑다. 망천에는 장안 귀족들의 별장이 많아서 왕유도 여기에 별장을 가지고 틈이 날 때마다 여기에 와서 한적한 생활을 즐기곤 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배적(裵迪)과 함께 정리한 이 있다.감상평산 속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그저 말소리가 은은히 들릴 만큼 고요하다. 그런데 저녁 햇살이 숲 속 깊이 들어서 보이지 않던 푸른 이끼를 선명하게 차근차근 비추어준다. 이 시에서 ‘텅 빈 산(空山)’과 ‘석양볕(返景)’ 그리고 ‘푸른 이끼(靑苔)’의 시어는 절묘하다. 불교에서 무었을 깨달음이라 하는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었인가?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공(空)이다. 공 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본이 되는 핵심사상이다.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하는 사물이 자기를 형성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따라 화합하여 일시적으로 모습을 이루고 있을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존재의 실상(實像)을 밝힌 진리이다. 우리의 마음도 실체가 없다. 자성(自性)이 없다. 무자성(無自性) 즉, 공이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이 깨달음이고,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으려는 경계가 공의 세계이다.작자는 전반 2구에서 산이 고요하여 간신히 사람의 말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라고 하고 있어 고요함을 읊고 있으며, 후반 2구에서 한낮에는 햇살을 막는 숲이었지만 저녁이 되어 햇살이 낮게 숲 속 깊이 들어 푸른 이끼를 신선하게 비추어주며 햇살이 움직임에 따라 이끼의 빛이 순간마다 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보일 듯 말듯 한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모습 위에다 이끼가 푸르게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만히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듯하다. 곧 정중동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시인은 순간적인 직관으로 빈산의 석양 무렵 깊은 숲 속에 비쳐 드는 한 줄기 저녁 햇살에 반사되는 이끼의 푸른빛의 변함을 들릴 듯 말듯 한 사람의 음성을 배경으로 하여 시각과 청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 사회와 불교 생명 윤리차 례불교 생명 윤리 본문 요약Ⅰ. 불교 생명 윤리 ? 총론? 불교의 세계관? 불교의 인간관? 불교의 생명관? 불교의 윤리관? 분야별 요약문1.불교의 세계관불교란 불법(佛法)을 신앙하는 종교라고 정의 할 경우, 불교의 목표는 이런 신앙과 수행을 통해 괴로움(苦)의 현실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이라는 이상을 달성하는 데 있다. 그리고 특징으로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등을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듯이 세계가 연기하는 것 변치 않고 동일하게 남아 있는 자아와 같은 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여길 수도 없는 것(無我) 연기법을 근거로 삼아 무상과 무아와 고와 열반 이라는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부처님 사상의 근본이다. 그리고 무상(無常) 이란 배후에 놓인 어떤 영원불변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서, 끊임없는 변화와 덧없이 사라짐 변화를 함축하는 무상에도 그이유와 근거는 분명히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다르마(dharma 法), 즉 연기법(緣起法)이다. 우파니샤드와 불교의 차이는 이 아트만의인정과 부정에 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아트만이랑 영원불변의 참다운 주체 또는 마음의 모든 기능을 통 일 제어하는 ‘나’로서, 인간의 본체인 이 아트만이 전 우주의 근본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과 동일하다는 소위 범아일여 (梵我一如) 사상이 우파니샤드의 핵심이다. 이리하여 오온무아설(五蘊無我說)이 주장되기에 이른다. 오온이랑 색(色rupa,물질적 작용),수(受,vedana,감각작용),상(想,sanna,표상 작용), 행(行,sankhara, 의지작용),식(識,vinnana,사유식별작용) 의 다섯가지 작용을 말하는데 비로서 그것들이 ‘자아처럼 보이는 것’을 구성하고 있을 뿐, 그 요소들을 떠나서는 수레도 인간도 그리고 자아도 관념상의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이 연기하므로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 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는데 대승불교의 무상과 무아는(無自性) 의 공(空)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된다 무수한 조건들이 끝적으로 존재하는 자성(自性)과 같은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이처럼 연기하는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는 것이므로 “일체의 모든 곳은 공이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두 연기한 것인“물질적인 것도 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이 곧 물질적인 것이다”고 한다. 이렇게 색과 공 무두 공이므로 색은 곧 공이 되고 공은 곧 색이 된다.그러므로 둘이 아닌 것이 된다. 바로 이런 진여가세계 일체의 진상인 것이다.그 깨달음의 내용이 되는 것이 바로 연기이기 때문이다. 연기야말로 어떤 한 인간의 출현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우주의 근본 이법으로서의 다르마 이다.연기란(pratltyasamutpada)란 세상의 모든 것은 무수한 조건(prarltya)들이 서로 화합(sam)하여 발생(utpada)한다는 것을 뜻한다.연기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 있다. 첫째, 세상모든 현상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가리키는 일종의 외인연 外因緣 이다.둘째,생生 사死 노老 등 일체 중생의 고통이 어떻게 상관적으로 발생 소멸하는가를 보여 주는 일종의 내인연內因緣으로서 불교 기반이다.외인연으로서의 연기는 고정된 실유의 성품이란 없는 것이니, 단지 인연에 따라 화합하여 일어날 뿐이고 여러 인연이 각각이 화합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연기에 의해 성립된 온 생명의 큰 바다를 법계라고 부른다.2. 불교의 인간관불교에서 인간은 윤회와 해탈의 과정이라는 생명을 가진 사물이 자신이 지은 행위의 영향력에 따라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되풀이하며 흘러가는 것을 일러 윤회라 한다.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일러 해탈이라 정확히 사람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은 윤회의 다섯 단계 중 하나인 인이다.manu가 사유를 능히 생각을 가지고 일을 꾸며 사유 관찰하는 까닭에 마누샤라 이름한다.생각과 신체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교만을 가지고 있으나 이 교만을 능히 파괴할 수도 있으므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불교에서는 인간은 창조신과 피조물, 하늘과 땅이라는 두 실재자 사이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채 어리석게도 일체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기지만, 그것을 체득하여 깨달으면 번뇌의 불꽃이 가라앉는 다는 사법인의 가르침, 그리고 괴로움이라는 현상을 직시해 괴로움의 발생 과정을 알아내어, 괴로움의 제거 방법을 통해 괴로움의 소멸 상태에 이른다는 사성제의 가르침 등은 모두 미오 간의 관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십이연기의 첫 단계인 무명은 무지, 즉 연기법이 세상의 이치인 다르마가 된다는 점을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한 것을 말한다.십이연기의 첫단계인 무명은 무지,즉 연기법이 세상의 이치인 다르마가 된다는 점을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한 것을 말한다. 행은 의지는 무지에서 나온 맹목적인 삶의 의지이다. 식이 일종의 인식 주관이라면 명색은 빗물질적인 관념적인 대상과 물질적 대상이고 육입은 이런대상을 인식하는 주관과 명색이라고 하는 인식 대상과 육입 이라고 하는 인식 기관 세가지가 화합하여 일어남을 의미한다. 촉을 통해서 완벽한 인식 작용이 성립하는데,그렇게 되면 수가 일어난다 수란 어떤 느낌. 즉 인식을 함으로써 그 결과로 즐겁다, 괴롭다는 느낌이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갈증 상태에서와 같이 아주 간절하게원하는 것이 대즉 갈망과 욕망이다.집착으로서,갈망의 대상을 끝까지 놓지않고 간직하려는 것을 말한다. 유란 일종의 있음으로서 갈망 하는 그것이 나의 소유로서 실체적으로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하여 업이 있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생 이일어나니 그런 식으로 해서 삶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결과 마침내 늙어죽음이라는 노사가 일어난다. 결국 생과 노사라고 하는 우리 모두의 괴로움은 이렇게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삶의 의지로 인해 전개되는 그런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십이연기에는 이처럼 괴로움의 발생 과정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소멸 과정도 함께 포함되어있다. 무명으로 인해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은, 무명을 제거하면 괴로움도 사라진다는 것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무지로 인해 괴로움 속에서 헤매는 미계에 있지만 자각을 하의전통 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대승불교의 유식사상은 ‘심정본정 객진소염‘이라는 정과 염의구조를알라야라는 말에 저장 이라는 뜻이 있듯이, 심리적 경험 활동에 의해 산출되는 잠재적 형성력들을 출적하여 간직하고 있는 의식을 말한다.유식사상 심정본정보다는 범부의 마음상태를 해명하는 객진소염쪽에 비중을 더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 여래사상에서는 심정본정쪽에 강조점을 두고 객진소염과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으며 여래장은 불성으로 표현된다.3. 불교의 생명관생기론에서는 생물과 무생물을 근본적으로 다른 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생물이란 영혼과 같은 신비로운 생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이다. 기족교적 정신주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자연현상을 움직이는 기계라도 주장하는 이론인 기계론에서는 생물은 물질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고 생명현상을 물리화학적 성질로 환원하여 설명하는데 이런식의 물질주의가 근대 과학에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의 과학에서는 생명이란 정신아닌 물질이라는 식의 안순성의 산물이 아니라 고도의 복잡성의 조직체인 유기체로 본다. 유기체란 상호의존적 복잡성을 본질로하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가 된다. 생명의 이런 상호의존적 본질이야말로 불교의 연기적 생명관과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생명현상이나 생명체에 해당하는 불교용어로는 중생이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범부란 깨닫지 못하여 윤회의 삶을 사는 보통의 인간을 뜻한다. 경전에는 색에 물들에 집착하여 얽매여 있으므로 중생이라 한다. 유정이란 정식이나 업식을 지칭한다. 마치 달리는 수레의 쇄기처럼 행위에 매여 있으므로 유정이라 한다. 생식이란 개체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유전현상을 가리킨다. 진화란 변이에 의해 환경적응력이 증가는 것, 다시 말해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발전의 과정을 의미한다. 생식과 진화를 근본으로 생명현상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며 불일불이 불상부단 현상이 된다. 인간의 사고 흐름과 기억 속에 일관되게 유지되고 상정되는 경험의 저장소ㅓ를 정보의 업력은 알리야식에 보관되며 전승된다.4. 불교의 윤리관불교 윤리의 기본적 입장은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되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적인 윤리는 선과악의 분별속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과악의 상대적인 분별의 근저에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번뇌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의 선을 유류선이라고 부른다. 선과 악을 초월하여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선이며 무루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에서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고 도덕 판단을 내릴 때, 그 대상이 되는 것에는 개인의 행동이나 사회 구조 등이 해당된다. 이처럼 도덕 판단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이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업설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업과 보 사이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과업보의 사상을 다룸에 있어 꼭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좋은 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과업보의 필연적 관계성을 잘 인식하여 언제나 선업을 쌓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즐거운 과보에 대한 목마른 기대는 집착과 번뇌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과업보에 속박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인과업보의 사상이 선과 악에 대한 불교적 도덕 판단의 기초를 이룬다. 진실이란 오직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타를 가르치시니, 때로는 번뇌에 가까운 것일지라도 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중생을 깨닫게 하여 그들에게 진정한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는 선.불선을 초월하여 어떠한 방편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반야와 자비와 방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된다. 자비 이타행의 궁극적 목적은 신체적 고통의 감소에 머물지 않고 일체의 번뇌가 제거된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중생 제도에 있으며, 이런 궁극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