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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과 토론의자유
    생각과 토론의 자유201004266 정솔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권력을 갖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원리로서,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된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의 의사를 결정할 때 국민투표에 의해 대표를 선출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되는 국민투표의 원리는 다수결의 원칙으로서,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원리이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는 이 원리는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수의 의견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시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과연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일까 하는 것이다. 옛날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려는 심리가 강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의견이니 그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모방심리까지 더하여 다수의 의견에는 그만큼 더 힘이 실리게 된다. 소수의 의견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란 매우 어렵다. 가장 쉬운 예로, '지구가 둥글다'는 명백한 사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의견은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그것이 인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와 같은 소수의 의견을 제시한 몇몇 유명한 과학자나 발명가들로 인해 지금의 학문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여전히 소수의 의견에는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적다.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예와 같은 특수한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을 타당하다고 여기며, 많은 곳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이런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정해진 진리라는 것은 진정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될 수 있을까? 과거의 과학 분야에서 진리라고 여겨졌던 천동설이 당시 이단으로 여겨졌던 지동설 원리에 진리의 자리를 빼앗긴 이러한 사례를 본다면 진리는 가변의 존재가 되는 것인데, 진리가 변한다면 과연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그렇다면 진리는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시해 볼 수 있다.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진리는 가변의 존재이며, 특정하게 정해질 수 없다. 우리는 완벽하고 완전하지 못하다. 끊임없이 변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섣불리 어떠한 것이 진리라고 여긴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며 통념이 변한다. 배우는 학문이 발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가치관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과거의 오래된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분명 미래에는 사라지거나 더 발전하여 세분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진리라고 믿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먼 미래에는 진정한 진리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수의 원리를 따르기도 하며, 소수의 의견에 다수가 허물어지기도 하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초등학교 도덕시간부터 배워오는 에티켓,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고, 소수의 의견도 무시하지 말고 수렴해야 하며, 한쪽의 의견보다는 절충안을 찾도록 하는 이러한 교육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다수결의 원리보다도 더 필요한 원칙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가장 쉽게 잊는 가장 밑바닥의 원리가 때로는 가장 정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독후감/창작| 2014.01.02| 1페이지| 1,000원| 조회(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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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이란무엇인가
    교양이란 무엇인가?201004266 정 솔교양이란 어떠한 실용적인 목적보다 개인의 호기심이나 욕구를 통해 배움을 이뤄나가는, 배움 그 자체를 위하여 배우는 행위를 통해 사회의 억압이나 강요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키워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적 의미의 교양이 지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그래서 상위계층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이며, 이로 인해 '교양적이다, 교양이 있다'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고 한다면, 책에서 화자가 주장하는 의견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교양이 무엇이냐는 주제에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지식적인 면을 더 많이 우선시 했다. 조금 더 배우는 것, 평소 배우고 싶었던 흥미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는 것 등의 배움과 지식에 관한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책에 등장한 카토슈이치 선생의 예화와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예시를 통해 교양에 대해 지식적인 측면 뿐 만 아니라 인성과 같은 예의나 범절, 에티켓 등의 의미를 첨가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정의를 내렸고, 이에 따라서 교양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인을 의미한 다기 보다는 인성과 지식을 동시에 겸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식인과 교양인을 분리해서 두고 생각해보니, 현대에는 진정한 교양인보다는 교양인을 빙자한 지식인이 팽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내린 학문적이며 도덕적인 의미가 결합된 교양이라는 단어는 과거에 비해 그 의미 또한 많이 퇴색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양인이라 칭하긴 조금 모호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선비들을 예로 들면 내가 왜 현대인들을 단순한 지식인이라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현대에는 정보의 풍년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의 바다, 인터넷 상에서 바라 본 지식인들의 행동은 마녀사냥이라는 말을 등장하게 할 만큼 그 상태가 좋지 못하다. 과거의 선비들은 본인의 심지가 곧고 강하여 본인들의 지식과 배움의 정도와 상관없이 본인의 길을 택했고,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교양의 의미는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고 본다.덧붙여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의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난 교양이 어쩌면 요즈음은 또 다른 강요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가 이다. 또한 어디까지가 교양이 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기본으로 갖추어야할, 강요되어야 할 모습인지 또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 배워지던 소소한 학문들이 점차 개인의 이력서에 보탬이 되기 위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다가 오고 있다. 또 앞선 세대의 판단에 의해 필수 시 되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양과 같은 학문들 역시 사회에 나가기 위한 필수 준비단계가 된다면 이것 또한 교양이라 칭하기는 불편하지 않을까?
    독후감/창작| 2014.01.02| 1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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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톤 평가A좋아요
    크리톤 (플라톤)201004266 정 솔크리톤과 소크라테스, 두 친구의 대화이다. 크리톤은 자신의 돈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탈옥이 가능하다며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종용하고 있고, 소크라테스는 반면에 최선의 것, 옳은 것들을 내세우며 크리톤의 권유를 거절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이론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는 것과, 따르기 싫다면 국가를 설득하라는 것과, 그것마저도 싫다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명분을 따르겠다고 했고, 사형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한다.소크라테스의 이 세 가지 명분을 우리는 악법도 법이기에 따르는 것과, 침묵하며 저항하지 않는 것, 선택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침묵과 동의는 다르다. 침묵은 아무런 의사 표현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상황에 침묵을 하는 것은, 이 본문과 같이 악법에 대해 침묵을 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얼마 전 우리나라에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다. 요즘 들어 선거철이 다가오면 이슈화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투표율이다. 유명 인사들이 너도 나도 공석에 나와 투표율에 대한 공략을 걸어 투표율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만큼 최근의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격이 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투표권이지만 사람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 귀찮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갖가지 이유로 본인들의 권리를 버린다. 이것은 침묵이라 할 수 있으며 방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 항상 옳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여 나온 원리가 다수결의 원리이다. 우리가 침묵을 하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하는 이유도 다수의 목소리를 듣고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 위함이다. 결코 나의 의견이 옳고 따라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인간이기에 내가 옳고 그르다 판단할 이성이 있는 것이지만 그만큼 다른 다수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는 것도 인간의 이성이기에 '항상' 이라는, '무조건' 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이 본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소크라테스의 '남이 나에게 해를 끼쳤어도,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해를 끼치면 안 된다' 는 문구이다. 정말 답답하다고 여겨질 만큼 옳은 것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막혀 보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이런 이론이 현대에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여기며 편한 것, 이득이 되는 것만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본인에게 손해가 끼쳐도 옳은 것을 추구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은 크게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한사람씩, 조금씩만 옳은 것을 추구하고자 노력한다면 아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옳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옳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다. 조금 씩 더 참여를 하는 모습에서도, 조금 손해를 보아도 옳게 살려고 하는 모습에서도, '나 하나쯤은' 이란 생각보다 '나라도' 라는 생각이 참 필요하다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독후감/창작| 2014.01.02| 1페이지| 1,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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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201004266 정 솔이 소설은 베르테르가 절친한 친구에게 본인이 사랑하는 여인 로테에 대해 전한 편지형식의 소설로, 베르테르의 짝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베르테르는 자신에게 친절한,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행을 베푸는 로테라는 여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고, 로테 역시 그를 그리며 설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로테를 잊지 못한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나며 그녀를 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잊지 못한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돌아왔고, 알베르트와 함께 이미 한 가정을 꾸린 그녀를 보며 결국 자살로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한다. 후에 로테는 베르테르가 자신을 짝사랑했으며, 본인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베르테르를 월계수 나무 밑에 묻어줌으로서 그에게 그의 마음을 보답한다.짝사랑의 아픔, 그 한계를 이기지 못해서 본인의 목숨을 버린 베르테르의 모습을 보며, 인간에게는 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던 나는 안타까운 지금의 현실의 모습을 보았다. 요즈음 벌어지는 많은 자살과 살인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 감정이 처음에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집착과 나약함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사랑했던 그 감정만으로는, 비록 짝사랑이었을지언정 그것은 죄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집착이라는 감정으로 진화하면서 죄악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번 저질러진 죄악은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원인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현실이 더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데, 그것이 죄악을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더하여 죄악은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도 범죄라고 하지만, 본인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또한 나는 죄악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유교사상에도 보면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였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소중히 여겨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하였다. 즉 손상시키는 것만으로도 불효가 되는데, 하물며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은 죄악이라 말하기에 충분하다. 또,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어려서부터 나의 목숨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내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따라서 자살에 대한 나의 의견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베르테르의 자살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다. 누구라도 겪는 것이 짝사랑이다. 심지어 '첫사랑은 대게 짝사랑으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짝사랑이란 흔한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감히 그 사랑의 깊이를 판단할 수 는 없지만, 또 누구에게서라도 사랑의 정도는 수치화 될 수 없겠지만, 그렇기에 누구나 가슴속에 자기 나름의 진한 깊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것 또한 나의 생각이다.
    독후감/창작| 2014.01.02| 1페이지| 1,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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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형의 집
    인형의 집201004266 정 솔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라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온실 속 화초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극 속에서 노라의 이러한 면모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현명하고 차근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쉽고 편해 보이는 방법을 통해 일을 해결하고도 그 사건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한 모습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남편인 헤르마의 역할 역시 아내 노라의 이러한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에 일조하는 것처럼 보여진 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인형의 집’ 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 같다. 노라를 작은 새, 종달새 등에 비유하며 새장 속의 애완용 새,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인형과 같이 그려냄으로 과거에 힘이 없던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냈으며, 스스로 인형이 되기를 거부하고 새 삶을 찾으려 하는 결말 부분의 노라의 변화된 모습으로 극을 마친다.내가 노라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구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구분 그리고 자신 있어하는 분야와 자신 없는 분야의 구분이 뚜렷하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관심이 있고, 잘하는 분야에서는 자신감을 보이기 때문에 거침없이 추진하려 하며, 일을 처리할 때에도 충동적이며 급진적인 편이다. 하지만 반면에 내가 약하고 꺼려하는, 그래서 부족함을 보이는 방면에서는 매우 수동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하고, 피하려고 하는 도피적 성향이 강하다. 내가 약점을 가장 많이 보이는 분야 중에 가장 첫 번째는 경제적인 분야이다. 단순하게 금전이 오고 가는 기본적인 거래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기에 손가락에서 금전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나만을 위한 문구인 것처럼이나 거리낌이 없지만, 금액이 커지고 일종의 거래 계약서나 문서가 필요 시 되는 분야에서는 한 없이 기피증상을 보인다. 따라서 내가 노라였다면 계약서에 함부로 서명을 하는 행위는, 특히 그것이 어떠한 파장을 이끌고 오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서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급전을 위한 육체적인 노고와 나의 소중한 물품을 떠나 보내는 일만큼은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이 작품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안타까운 생각은 노라와 헤르마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부부관계에서 문득문득 보여지는 상하관계와 같은 모습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남녀평등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며 여성의 인권에 대해 주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될 만큼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과거 남성우월사상의 흔적이 많이 보여지는 가정에서 자란 나는 남녀의 관계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남편의 둥지아래 있는 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점에서 노라의 이런 모습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고, 다시 한 번 절대, 결코 나는 노라와 같지 되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우리나라는 과거에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생활 면에서도 사회 면에서도 매우 뚜렷했다. 그래서 이에 따르는 여성의 지위나 가치 역시도 남성의 지위나 가치에 비해 한 없이 낮았다. 점차 시대에 시대를 거듭하면서 매우 큰 발전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조부모님 세대에는 이 같은 생각이 쉬이 변화되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우리의 조부모님, 그리고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아들에 대한 선호가 조금은 남아있으며, 어려서 시키는 태권도, 피아노, 발레 등의 취미활동에서도 아직 남자아이가 하는 활동과 여자아이가 하는 활동의 구분이 선명하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생활에서의 구분은 사회에서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등학교의 문과와 이과의 비율에서도, 대학의 전공에서도 여성이 많은 전공과 남성이 많은 전공이 나뉜다. 더 나아가 아직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 고깝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있으며,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에 대한 구분도 아직은 명확하다. 또한 최근 정치분야에서 여자 대통령에 대한 문제가 조금씩 제기되면서 남녀평등이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이 작품에 드러난 노라를 바라보면서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도 되었지만, 특히 취업을 눈 앞에 둔 나에게는 여성의 능력이라는 면을 먼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인권과 지위에 대해 스스로 높아지려거든 그만한 능력을 먼저 갖추어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라가 인형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노라에게 자립하려는 의지와 그에 맞는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해 지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그리고 내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나로서는 나 스스로 관리하는 법, 나를 개발하는 법에 대해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사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세상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고, 변화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후감/창작| 2014.01.02| 2페이지| 1,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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