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ing to Byzantium 보고서이 시의 제목으로 되어 있는 Byzantium은 5세기와 6세기 Byzantine 왕국의 수도인 Istanbul의 옛 지명이다. 이 시에서 Yeats는 Byzantium을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모순, 갈등, 생성, 변화의 자연 세계와 대조가 되는 질서와 조화의 영원 세계, 예술 세계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Yeats는 Byzantium은 그에게 예술적 에너지와 시대를 초월한 영원의 세계이며 고도로 발전된 지적이고 예술적인 문화의 장소를 의미한다고 적고 있었다. 이 시는 그의 60세 이후의 작품이니 노경에 처한 그는 더 이상 의존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쇠퇴해 가는 육체의 세계에 환멸과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며, 한편 영원한 예술의 세계, 정신의 세계의 비전에 사로잡혀 그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의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시의 1연에서 시인은 이미 Byzantium으로 항하고 있다. 그의 육체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일상적 자연 세계를 저쪽으로 바라보며 마음은 영원의 나라를 향하여 배를 저어가고 있는 것이다. ‘all summer long’이란 말은 가장 왕성한 청춘 시기를 암시하는 말이고, ‘Monuments’란 말은 비석은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므로 영원한 가치를 말하는 것인데 그러한 추상적인 말 대신에 기념비라는 물건을 제시함으로써 불멸의 예술 작품 같은 구체적인 대상물을 암시한다. 2연에서 시인은 노인이 영혼의 세계의 가치를 모르고 육체적인 쇠퇴만을 슬퍼한다면 그것은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육체는 영혼을 싸 감는 옷과 같은 것이니 육체가 쇠잔하여 낡은 옷과 같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영혼이 좋아서 (육체에서의 해방을 가져오는 까닭에) 손뼉을 치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지 않는 한, 노인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막대기에 누더기 코트를 걸쳐놓은 허수아비는 Yeats가 노인의 비유로 잘 쓰는 이미지로서 뼈만 남은 골격에다 가죽만 흐느적거리는 노인의 모습에 잘 어울린다. 3연에서 시인은 이미 완전히 육체의 세계를 벗어나 영혼의 성도 즉, 신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다. Yeats가 이 시에서 말하는 영혼의 천국은 곧 예술의 나라이기 때문에 신의 성화 속에 서 있는 성자의 이미지는 황금 모자이크 속에 새겨진 인물인 것이다. 시인은 그 성자들에게 그 성화로부터 나와서 자기를 중심으로 빙빙 돌면서 자기의 영혼에 노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적인 욕망의 병이 들고 생명이 한정되어 있는 동물계에 얽매어서 스스로 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기의 심장을 소멸시켜 달라고 호소한다. 심장이란 이지 생활을 대표하는 두뇌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육체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썩을 수 있는 육체에서 벗어나서 그 성자들의 이미지에 동화되고 싶어 한다. 비록 그가 지금 Byzantium에 있을지라도 육체가 있는 한은 그 영원한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육체를 소멸하고서 ‘artifice of eternity’에 결합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artifice of eternity’라고 한 것은 예술가가 그리는 이미지의 세계, 즉 예술의 영원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4연에서는 시인은 3연에서 호소한 예술의 영원 세계에 자기가 동화되고 싶다는 말을 더욱 부연한다. 즉 일단 육체를 버리고 자연에서 벗어나면 두 번 다시 유한한 생명의 자연물로 된 육체의 형체를 갖지 않고 ’황금 나이팅게일‘과 같은 썩지도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형체로 환생하겠다고 말한다. 이 황금 새에 대해서는 Yeats가 다음과 같이 주를 붙이고 있다. "비잔티움 황제의 궁전에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며, 노래하는 인공의 새가 있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직접 체험하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재료로 하여 지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의 세계로 형상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