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잔타 석굴사원 건축인도 대륙 북서부 데칸 고원에 밀집 조성되어 있는 석굴사원 가운데 아잔타 석굴사원은 대표적인 불교 석굴로 주목받아 왔다. 대략 30개의 석굴이 U자형 계곡의 상부 암벽에 빙 둘러 조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네곳은 차이티야(예배굴)이고 나머지 스물 여섯 곳은 비하라(승원굴)이다. 그러나 이렇듯 대규모의 석굴사원을 조성한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아잔타 석굴사원은 차이티야 4곳과 비하라 26곳 등 30여 개 굴실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 차이티야의 석굴 가운데 초기에 만들어진 제 9굴과 제 10굴은 영역상 제 1굴에서부터 향좌측으로 계속해서 배치되어 있는 제 13굴, 제14굴까지의 비하라에 주석하던 승려들의 예배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9굴의 평면은 통례와는 달리 말발굽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인데, 내부공간은 좌우 열주(각 8개씩)에 의하여 폭이 큰 신랑(nave)과 폭이 좁은 좌우 통로로 3분할 되어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신랑 정면의 좁은 전고에 신랑을 3칸으로 분절하는 두 기둥을 세웠으며 그 기둥 안 깊숙한 곳에는 광장을 투과하여 들어온 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스투파가 봉안되어 있다. 제9굴 내부의 기둥은 순수 팔각형으로 장식조각은 물로 주두나 주좌마저도 표현되어 있지 않고 다만 그림으로만 장엄하여 초기의 단순 명쾌한 기둥을 그대로 전하여 준다.천정을 보면 신랑 위는 궁륭형 천정, 측랑과 후진 요도 위는 기둥 높이의 평천정, 스투파 위는 보울트와 연결된 1/4구형 돔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 목조건물에서 지붕을 떠받치기 위하여 사용했던 굽은 서까래의 흔적만이 돔 부분에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예배드리는 장소로 마련된 공간인만큼 석굴 내부는 기둥 높이의 2배 이상되는 장엄한 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제 10굴은 파사드가 무너져 버려서 그 원형을 알 수 없는데, 나중에 정면 전체를 지금과 같이 창틀 모양으로 보수 하였다. 평면 구조는 제 9굴과 같은데 후진부를 반원형 공간으로 만든 점과 측면 열주량이 13칸으로 확대된 점, 스투파도 석굴 규모에 맞게 확대되고 이에 따라 후진부도 12칸으로 확대된 점 등이 다르며 제9굴에 비하여 네배의 규모를 가진 대형 차이티야이다.) 따라서 파사드 상부의 광창도 제9굴에 비하면 훨씬 커지긴 하였으나 굴속이 깊어져서 스투파 부근은 매우 어둡다. 기둥은 제 9굴과 마찬가지로 평면이 팔각형이고 주두나 주좌를 두지 않고 다만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천정 각부의 구성은 제 9굴과 비슷하지만 측랑과 후진 천정을 1/4 원통형의 굽은 천정으로 만든 점, 신랑 천정은 서까래와 소란반자틀을 회화적으로 처리하였으나 측랑 천정과 후진부 천정에는 석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후기 차이티야에서 제19굴과 제26굴의 관계는 초기 차이티야에서 제9굴과 제10굴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제 19굴의 내부구조는 제 10굴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제9굴이나 제10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굴 앞 부분의 전웅과 정면 암벽 앞쪽에 전웅을 세워 만든 현과도 새로운 방식의 출입시설이다. 파사드에서 창과 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벽면에 부조상을 가득 조성한 점도 달라졌다. 내부에서는 스투파에서 형태구성의 변화는 물론이고 그 정면 감실에 입불을 새긴 점도 혁신적이다. 내부 기둥은 주열 밑 바닥을 신랑이나 측랑의 바닥보다 한 단 높여 온통 주좌를 두고 기둥몸을 아래에서 위로 가면서 다양하게 깎고 다듬어서 다면체로 만들고 아랫몸에 모를 내어 턱을 둔 자리에 부조를 했다. 그리고 기둥몸에 꽅무늬띠를 위아래로 여러 번 둘렀다. 기둥몸 상단에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항아리와 정사각형 판석을 얹고 그 위에 두팔 달린 주두를 얹고, 주두 표면에 중앙에 불좌상, 좌우 팔에는 비천이나 코끼리를 탄 여인 등을 부조로 새겨 놓은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아잔타의 30개 석굴 가운데 차이티야 4곳을 제외한 26곳은 비하라이다. 이 비하라는 제 8굴, 제12굴, 제13굴이 여기에 해당된다. 승가의 초기 비하라의 기본 구조는 입구, 중정, 중정에 면하여 있는 승방들로 이루어졌는데, 제 8굴과 제 12굴은 입구 부분이 무너저 원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13굴의 입구는 전면 계단, 난간, 단순한 사각형의 벽기둥 문설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2굴은 향좌측벽과 후벽에는 각각 승방 4개씩을 배치하였으나 향우측벽에는 웬일인지 승방 1개만을 조성하여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었다. 승방은 대개 1~3평 정도의 소규모여서 한 사람이 최소한의 면적만을 허용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중정에는 함께 식사를 하도록 의자용 석단이 설치 되어 있는 석굴도 있었으나, 초기에는 후기의 대승 교단 비하라에서처럼 중정이 다용도로 활용되지는 않았던 것같다. 이곳의 비하라 중 제3굴, 제12굴, 제19굴은 초기의 비하라로 아잔타의 비하라와 거의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칸막이벽을 깎아 세운 다음 입구를 꿇은 점이 조금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후기에 조성된 비하라는 21개소 이다. 대형 비하라는 9개소, 비교적 소규모인 비하라는 8개소이고 10개소는 미완성 굴이다. 먼저 대형 비하라는 많은 승려들이 거처하고 다양한 집회 및 예불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 내부에는 중정, 외부에는 전정을 넓게 확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부는 전랑, 후랑, 좌우측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면벽에는 통로나 창을 내어 출입과 채광에 대비하였다. 승방의 위치과 객수를 살펴보면 측벽에는 대개 좌우대칭으로 승방을 배열하였으며 후벽에도 승방을 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제 15굴, 제20굴, 제22굴 등에서는 굴의 규모가 소형이라서 후벽에 승방을 두지 않았다. 승방가운데 앞에 전실을 따로 마련하고 내부에 연결 통로를 낸 특수한 예로 제4굴과 제22굴에서만 볼 수 있다. 불당은 주로 후벽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평면은 전후이실 형식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제16굴처럼 불당 좌우에 곁방을 붙여 놓아 3실형을 이룬 경우도 있다. 불당과 좌우 사당을 마련한 경우도 있는데 제 2굴, 제21굴, 제23굴에서처럼 후벽에 나란히 배치한 경우, 제6굴처럼 후벽 중앙에 불당, 전실 좌우에 사당을 배치한 경우도 있다. 위의 내용처럼 초기의 차이티야를 중심으로 초기의 비하라군이 형성되었듯이, 후기에는 차이티야를 초기 석굴군으로부터 멀리 ㄸ?ㄹ어진 곳에 자리잡게 하고 그주위에 비하라군을 형성해 나갔음을 알게되었다. 좌향을 보면 초기에 남향으로 자리잡았으나 점차로 남동향, 북동향, 서남향으로 석굴사원의 위치를 정하여 나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고암 이응노 미술관을 다녀와서...이응노 미술관에 먼저 도착했을 때, 건물의 특이한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프랑스의 건축가들이 디자인했다. 한국적인 처마의 느낌과 한옥 구조, 고암선생의 문자추상 작품 등에서 모티프를 따와서 디자인 되었다. 곳곳에서 한옥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특히 천장의 경우에는 뒤쪽에 걸려있는 고암선생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건물이 자연채광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미술관 내부가 바깥쪽처럼 밝은 것 같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또 커튼이 전혀 없고 유리로 투명하게 되어있어서 로비에 있을 때는 이곳이 안인지 밖인지를 구분하기가 모호한 특이한 구조였다. 건축물 구경을 마치고 미술작품을 구경했다.이응노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고, 가난한 화가였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기이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상황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처음 일관에 들어서서 특히 관심있게 본 그림은 양색시라는 작품입니다. 짧은 치마차림에 딱 붙는 셔츠를 입고 있는 이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스포츠 신문 속 만화같이 재치있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응노의 그림 중 이런 작품도 있다는 점이 신선했고, 그들의 얼굴에 볼터치를 그린 점과 머리의 웨이브를 표현한 점들을 보면서 그림을 요목조목 보는 재미를 느꼈습니다.또한 취야란 그림은 해방전후의 혼란스러움과 전쟁직후의 고단함을 그린 그림이였다는데, 이것은 그 자신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집 안에서 고단하던 하루를 끝내고 술잔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검게 표현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지속에 쌓여 고된 일을 하는 하층 서민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잘 차려진 양복을 입은 고급 술집의 손님이 아닌 해방전후 힘들었던 우리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일 겁니다.또한 스위스의 아침이라는 작품은 ‘먼나라 가는길 도중에 있는 옛 건물을 이종진에게’라는 추신이 적혀있었는데 동화 속 그림책에 나오는 성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것은 한국화로 그려진 작품이였는데, 절벽위의 성같은 느낌을 받았고, 뒤에 있는 흐릿하게 그려진 산의 모습과 희미한 안개를 표현한 면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것을 느끼고 그렸다는 점을 여러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경험을 하고 싶었고, 또한 당연히 경험한 것을 그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통해서 잠시나마 그와 같이 여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설책속에 주인공처럼 그의 그림을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림을 감상해 보았습니다. 그의 옥 생활 중 그린 그림들은 그가 느꼈을 정신적인 고통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는 간첩으로 오인받아 옥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60년대 유럽전역과 미국 등의 서구 화단에 이름을 떨치며 한국을 알렸던 그는 조국에서는 간첩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가 휘말렸던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1967년 당시 6월 8일에 있었던 총선에서 부정 선거 시비로 4·19 이후 최대 규모의 데모가 발생하자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확대 조작된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옥생활 중 느꼈을 여러 정신적인 고통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표현되어져 있었습니다.그는 가난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성하나로 하얀 종이가 아닌 책 한부분을 찢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화장지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정신이 그를 대표하게 만든 콜라주 기법을 만들어 냈고 세계적인 화가가 되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정말 대단한 열성을 가진 화가였다고 생각합니다.다시 작품으로 넘어가서 설명을 하자면 대전 교도소에서 바라본 풍경이란 작품은 참 고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터치기법과 하늘 속 구름을 보면 그의 그림은 고요해 보이는 동시에 불안한 정서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이였습니다.앞에 작품은 그가 소를 그린 작품인데, 소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고, 소를 희극화시켜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그림은 한없는 생명력과 기운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전시한 실을 지나 3,4 전시실로 가보니 강현욱 씨가 Hello! Media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강현욱 씨는 목원대학교 미대를 나와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주로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며 잠재적 역량을 인정받아 온 작가라고 한다.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구조, 불안, 안정, 위협, 심리적인 압박, 압박속의 우리, 그리고 수많은 질문들 [...]‘ 이런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은 지금 현재의 현대인들의 마음속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적혀있는 단어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길게 설명해 놓은 것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이 작품은 sick puppy 2011 이란 작품이다. 상업적으로 제작된 로봇 강아지에게 알츠하이머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인공지능 하이테크 기술이 범람하는 우리사회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귀엽고 친근한 모습을 보이던 강아지가 바이러스로 인해 기억, 구조, 감염, 파괴의 과정을 겪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며, 관객은 현대 자본주의 거대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무기력함과 우울증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이처럼 강현욱의 작품들은 실험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표현하는 것 같다.
창(羌)족창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 중의 하나이다. 창족은 고대의 중국의 서부고원지대, 지금의 깐수성과 칭하이성 일대에 살았던 목축인이었다. 3천 년전의 창족의 거점지는 황하 상류일대와 황수일대가 중심이었다. 기원 전 5세기 춘추전국 시기에 서부 고원지대에 살았던 창인들은 외적의 징병과 좋은 토지를 찾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세 부류로 누늬어서 움직였는데,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한족과 융합이 되었고,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짱족과 융합이 되었고, 남쪽 민장 상류지역에 넘어온 사람들이 오늘날의 창족이다. 창인은 중국 서북부의 고원지대에서 외부의 침입과 국가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의 쓰촨 서북부의 깊은 계곡 속으로 숨어 들어왔다. 하지만 이들 앞에는 각박한 생존환경이 버티고 있었서 한편으로는 목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냥과 농업을 하면서 이들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2000년전에 축조되었다는 도평 강채는 현재도 그야말로 천연요새 그 차체이다. 이들은 외부로 부터의 적과 야생동물들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주거환경을 요새화 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뒤쪽으로는 험한 산이 막아주고, 전면은 급물살의 협곡으로 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진입하려면 이 고성에서 한 판 목숨을 건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요새중의 요새에 계획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부로부터 튼튼히 방어하기 위해 주위에 많은 돌을 이용하여 높게 담을 쌓아 집과 망대를 지었다.창족은 돌로 지은 석실에서 살았다. 이러한 돌집은 2층과 3층의 두 종류가 있다. 이들은 집을 지을 때 자연수를 이용하여 용도별 수로를 만들고 그 위에 돌과 나무로만 성 혹은 도시를 만들었다.지하에 미로와 같은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에서 각 건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이들은 집을 지을 때, 수직추를 이용하지 않고 도면도 그리지 않을뿐더러, 버팀목이나 지지대를 이용하지 않고도 눈짐작이나 경험을 이용하여 집을 짓는다. 고도로 발달된 석장의 기술이다. 석벽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얇아진다. 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본 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직을 이루고 있다.2층이나 3층을 지을 때는 단단한 나무를 깔아서 층수를 구별한다. 이 나무는 바깥으로 뻗어 나오게 하여 처마를 만들고 아래 면의 벽을 보호한다.지붕은 나무나 돌판을 이용하여 평평하게 만들고 다시 이 위에 두껍게 흙을 덮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다시 네 모서리에는 돌을 세워서 울타리를 만든다. 다 만들어진 이런 돌집은 벽이 단정하고, 안이 넓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더욱이 아주 단단하여 수명이 수백 년이나 된다. 심지어는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튼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일반적으로 집의 맨 아래층에는 가축을 키우는 장소이다.그리고 2층에는 화로를 만들어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 화로를 중심으로 생활의 공간이 형성된다. 이 화로는 음식을 만드는 곳이지만 겨울에는 난로로 이용된다. 이와같이 창족의 거주형태는 일반 중국인들과는 다르다. 거실에 난로를 놓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 차를 끓이고, 난방을 하는 모습이 장족들과도 유사했다. 냉방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두려워했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그리고 3층에는 양식을 저장하는 창고로 이용되며, 손님이 왔을 때 기거하는 장소로 제공되기도 한다. 더욱이 옥상은 각종 곡식을 거둬들인 후 건조하거나 타작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이들이 섬기는 흰 돌을 놓는 장소이다. 이 흰 돌은 이들이 섬기는 모든 신들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위층을 올라가는 도구는 통나무로 깎아서 만든 층계가 이용되는데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렵다고 한다.이들은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계곡이나 높은 산등성, 대략 2000m-3000m사이에 집을 짓는다. 그리고 보온을 유지하고 바람을 막기 위해 동쪽이나 남쪽에 아주 작은 창문을 낸다. 요즈음은 교통이 편리하고 기온이 높은 비교적 높은 계곡지대에 집들을 많이 짓고 있다고 한다.이곳 에는 도평 강채의 대표적 건축물 댜오러우(망대)가 있다. 이 댜오러우는 마을의 중심부나 입구, 그리고 위험한 지역에 건설되어있다. 전쟁시에는 이 높은 댜오러우에서 적의 동태를 관찰하고 각 집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하는 장소로, 그리고 적을 대항하여 최후까지 싸우는 장소이다. 형태는 4각형, 6각형, 8각형 등이 있으며, 높이는 일반적으로 30m 정도이다. 창족 건축물 중에서 가장 탁월한 건축예술을 나타낸다.
< 목 차 >Ⅰ. 서론1. 그린피스에 대한 소개⑴ 그린피스의 구성⑵ 그린피스의 역사Ⅱ. 본론1. 정책과정과 그린피스의 영향⑴ 사례① GMO(Genetic Modified Organism)⑵ 사례② 포경⑶ 사례③ 반플루토늄 캠페인⑷ 사례④ 기후협약2. 그린피스 활동의 의의3. 그린피스의 활동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까닭Ⅲ. 결론1. 환경NGO의 환경정책에 대한 영향력 제고를 위한 방안Ⅳ. 참고문헌Ⅰ. 서론현재 우리 인류가 당면한 환경위기는 단순히 공해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삶과 생존이 근원적으로 위협을 받는 문명사적 위기라 할 수 있다. 이는 2003년 여름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기상이변이 결과한 수많은 인명피해와 천문학적 경제손실만으로도 그 실체가 감지된다. 2003년 여름에 지구촌을 엄습한 폭염, 가뭄, 홍수 등의 기상이변은 그 강도나 피해의 정도 등에 있어 과거의 기상이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중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7,8월 연일 섭씨 40도 이상의 폭염이 계속되어 그때까지의 더위 기록들을 가볍게 제쳤다. 독일 기상청은 1870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뭄과 더위가 이렇게 장기간 계속된 예가 없었다고 발표했으며, 한 신문은 이런 기상이변이 계속된다면 수십 년 후 베를린을 비롯한 중부 유럽이 사막으로 변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의 기상청 관계자는 계속되는 더위와 가뭄을 재앙이라고까지 규정했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중국과 달리 홍수로 인해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십만여 ha의 토지가 유실되는 등 심각한 경제 손실이 유발되기도 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로 자부하는 프랑스에서는 폭염으로 1만 3천여 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된, 대참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프랑스인이 한꺼번에 사망한 예는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상이변이 2003년에만 국한된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1980년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 종의 국제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 국제포경위원회(IWC), 런던(해양투기)협약, 자연과 천연자원 보호를 위한 국제 연맹(IUCNNR), 유독 물질의 투기와 처리에 관한 오슬로 및 파리 협약, 남국조약 체제를 위한 회의 등 다수의 국제기관과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어떠한 정당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독립적인 비정치 단체이다. 따라서 그린피스는 여하한 정부, 기업, 단체, 개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그린피스는 비폭력 원칙을 고수하며, 사람 혹은 재산에 대한 물리력의 사용을 거부한다. 그린피스의 활동은 여러 차원과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각 활동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본부 혹은 적합한 국가 지부에서 활동하는 국제 그린피스 요원이 조정한다. 그린피스 지부가 있는 국가에서의 활동은 해당국가 지부의 요원이 조직한다. 한편 특정 지역과 관계된 문제는 관련 국가 지부가 협조해 활동한다.⑴ 그린피스의 구성그린피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두고 있다. 국제본부의 법인격은 각국의 국내 그린피스와 달리 사단이 아닌 재단으로, 약 100명의 전문직원을 가지고 있다. 일상 재단업무를 담당하는 국제 사무국 외의 주요 조직기구로는 의사결정기관인 재단회의 (Council Meeting)와 국제적 집행기구인 중앙지도부가 있다. 중앙지도부는 모두 재단회의에서 선출되는 유럽대표 2명과 북아메리카 대표 2명 및 1명의 의장으로 이루어지며, 주요 업무는 국제 사무국 총무의 임명과 조직의 대외적 대표 및 정책의 집행이다. 반면, 재단회의는 25명의 각국 그린피스에서 파견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데, 그 중 의장을 제외한 나머지의 절반인 12명만이 투표권을 가진다. 그리고 중앙지도부의 선출과 매년 한 번씩 개최되어 예산을 확정하는 일이 주요업무에 해당한다. 국제본부는 각국 그린피스의 캠페인 회의를 거쳐 제안된 일반 국제문제들에 대해 구체적 행동강령을 제정하고 지시하며, 반핵투쟁과 같은 커다란 문제들에 대해서는 활동을다. 이러한 정책은 그 과정이 정책의제설정, 정책결정, 정책집행, 정책평가)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책 과정에 있어 행위자는 국내적, 국제적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또한 공식적, 비공식적 참여자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공식적 참여자는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등 정책과정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며, 비공식적 참여자)는 정책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나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정책 환경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서 공식적 참여자의 행위를 그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행위를 하게 된다.국내적 차원에서의 공식적 참여자는 대통령, 국회의원, 행정관료, 사법부)가 이에 해당하며 비공식적 참여자로는 정당, 일반국민, 언론매체, 이익집단, 전문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정책 결정의 공식적 참여자는 주권국가이며, 주권국가는 주로 국제기구나, 국가 간의 외교행위 등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 비공식적 참여자는 개별 국가의 국민, MNCs, INGO, 언론매체 등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국내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의 정책과정은 상호 연계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위에서 살펴본 결과 그린피스의 경우 정책과정에 있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비공식적인 참여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책과정을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이유로 그린피스는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정책 환경의 변화를 일으켜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린피스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첫째, 그린피스의 단독적인 행위로서 이는 과격한 시위나, 법적 대응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둘째, 다른 NGO와 같은 정책과정에서의 비공식 참여 집단과의 연대를 통한 방법이다. 셋째, 시민들에게 정책의 잘못된 점을 알려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이를 통해 정부 정책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다.위와 같은 방법은 각각 단독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키거나 GMO에 긍정적인 국가나 기업들에 대한 정책도 일시적으로 유보)시키는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⑵ 사례② 포경현재 포경행위는 IWC)(국제포경회의)를 통해 상업적 포경행위가 1986년 이래 금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렇듯 포경에 대한 정책은 IWC라는 국제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IWC는 강제력을 지닌 국제기구의 형태가 아니므로 체약국들의 행위가 강한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IWC는 그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IWC는 상업적 포경행위만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같은 국가에서 행해지는 과학포경이나 혹은 혼획, 좌초를 위장한 각 국가의 불법 포경행위에 대하여 뚜렷한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IWC의 행위자는 체약국의 각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린피스는 이들의 정책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GMO와 같다고 볼 수 있다.그린피스는 포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첫째 고래는 수산자원이 아닌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이라는 점이다. 고래는 한 번에 수천 수만개의 알을 낳는 어류가 아니라 2~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 번식률이 아주 낮은 포유류다. 따라서 육지에 사는 야생동물들이 야생조수보호법등 관련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것처럼 고래 또한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고래는 바다의 깃대종이다.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 정점에 위치한 고래는 바다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셋째, 포경을 허용하게 된다면 당장은 일부 어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어장의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고래의 수를 늘려 호주,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와 같은 나라처럼 고래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함으로서 고래보호와 상업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넷째, 고래가 수명이 길고 자연 환경에서 생존율이 높다 해도 번식 속도가 느리고 오염이나 사고로 죽는 고래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어 포경까지 허용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고래들이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게국도 쉽게 핵 무장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시각이라고 전했다.그린피스가 플루토늄 유입에 대해 반대 시위를 펼친 사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001년 4월, 독일 남서부 만하임에서 그린피스 대원들이 자신들의 몸을 수송 열차 칸에 체인으로 고정시키는 등 극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특수 장비를 동원 이들을 열차에서 떼어냈으며 시위대원 68명을 체포함으로써 수송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브레머하펜 항구에서 핵폐기물 반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아무런 대책 없이 핵폐기물을 들여오는 독일의 핵폐기물 처리 정책을 비판했다. 또한 그린피스 대원들은 2004년 7일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로 통하는 터널입구 위 절벽에 "플루토늄을 막아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반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셰르부르 항에서 반대 시위를 벌여온 환경 운동가들은 2004년 10월 플루토늄을 운송하기 위해 대기 중인 트럭 주위에서 인간 사슬을 만들고 고속도로를 봉쇄하며 위험한 방사능 물질의 운송에 강력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그린피스 회원 10여명이 경찰에 강제 해산된 뒤 연행됐다.이외에도 그린피스는 지속적으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으나, 국제적인 정책에 크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입항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되거나, 시위를 통해서 유입경로를 잠시 막아 시기를 늦추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비정부단체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⑷ 사례④ 기후협약기후변화를 방지하는 문제는 오존층 파괴를 규제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광범위해서 각종 생태계, 해수면의 상승, 산림황폐화, 에너지, 폐기물처리, 자원개발에 관한 주권 등의 문제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부분적인 접근방법에 의해 다루는 것은 실효성이 없고, 이들 모두를 전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데에 기후협약의 어려운 점이 있다.그러나 국가들 사이에 이해가 엇갈림에 따라 기후변화협약에서 온실효과기체를 강력하게 규제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온실효과 기체를 방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