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향에 따른 만혼과 잦은 유산, 호르몬 균형을 저해하는 장기간의 피임방법 사용의 증가 등으로 불임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표본조사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우리나라 기혼부부의 불임발생비율은 임신경험이 없는 일차성 불임의 경우 13.5%로 부부 7쌍 중 1명으로 추정됐다.아이를 낳기 위한 다른 모든 시술에 실패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갖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대리모 출산 만이 남게 된 불임부부나 선천적인 자궁의 기형을 가진 부부들은 어쩔수 없이 대리모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대리모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의 의뢰를 받아 아기를 대신 낳아 주는 여자를 뜻하는 것으로 이러한 불임부부에게 대리모의 등장의도는 바람직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의 고통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대리모가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듯하다. 대리모의 지원자들은 주로 이혼 여성이거나 가족 치료비를 구하는 여성, 신용불량자나 파산자, 사채 채무자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지원자의 나이는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에서부터 30대 중반의 기혼 여성까지 다양했으며 그 중에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난자 매매에 나서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난자는 지원자의 조건에 따라 보통 2백만~3백만 원에 거래된다.대체로 이들의 매개체로는 포털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브로커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대리모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 프로필 등을 올려놓으면 의뢰인을 대신한 브로커들이 접촉해 온다는 것이다. 의뢰인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친권 포기각서를 요구한다. 시술할 병원도 정하고 건강 검진도 받는다. 착상에 성공하면 본격적인 계약이 발효된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뢰인이 지정하는 태교 음악을 듣고 태교 책을 읽기도 해야 한다. 어떤 대리모 지원자는 자신의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자신의 외모와 건강을 내세우며 자신의 장점을 피력하기도 하는 말도 안돼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오늘날 눈부신 의학발달은 대리출산을 찾는 불임부부의 수를 크게 증가시켰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대리출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대리출산의 도덕성과 절차의 합법성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대리 출산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먼저 대리출산에 대한 옹호론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대리출산 옹호자의 경우 크게 자유지상주의적 관점과 공리주의 관점에서 대리출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즉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대리출산을 의뢰하고 수행하는 것은 계약 당사자들간의 정당한 대가를 교환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며 이는 선택의 자유행위라는 입장이다. 물론 선택의 자유 역시 사회적 가치라는 한계를 가지지만 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써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함을 강조한다.다음은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불임부부에게는 아이를, 경제적 여건이 필요한 대리모에게는 경제적 대가를 제공해줌으로써 불임부부와 대리모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공익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최대의,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상적 경향에 근거한다.하지만 옹호론자의 주장에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첫 번째, 애초에 대리 임신이라는 것은 자발적인 거래가 아니다. 대리모는 출산 전에, 임신기간과 출산 후에 생길 수 있는 아이와의 유대감을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아이와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대리모는 그 유대관계를 포기함으로써 많은 보상을 얻는다. 하지만 이 유대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자신에게 미치는지 대리모는 알지 못한채 대리 임신을 한다. 이것은 분명 정보의 불공평성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부당한 거래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보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유대감이라는 것에 보상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든다.아무리 계약에 의해서 임신했다 하더라도 임신과정에서 대리모는 아이에 대해 엄마로서의 강력한 연대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렇게 낳은 아이를 단순히 계약 때문이건, 인도적인 이유에서 때문이건 의뢰자에게 넘겨주는 것은 대리모에게 윤리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만약 대리모가 태아에게 정서적 연대감을 형성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고 하면 임신 중 태아의 성장에 엄청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울러 이럴 경우 대리모는 단순히 아이를 숙성시키는 기계나 인간 인큐베이터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앞서 살펴 보았듯이 대리모의 지원자들의 상당수는 신용불량자이거나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대리 임신을 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돈이 필요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많다. 즉 전적으로 자발적 동의가 아니었던 셈이다. 실예로 경기 일산에서 6개월 된 딸과 사는 B(29)씨는 신용불량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과 상의한 끝에 대리모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라는 인터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두 번째, '몸'이 거래의 수단이 되며 여성을 임신기계로 도구화 하고 자궁을 상품화 할 염려가 있다.다큐멘터리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제 당신은 신용 카드만 있으면 당신의 성별에 관계없이 맞춤형 아기를 얻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등장한 최첨단 기술과 인터넷을 활용한 아기 주문 생산, 유통 사업을 조명한 작품. 이스라엘 기업가인 도론은 대리모를 통해 원하는 아기를 얻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온라인으로 구입된 난자와 정자는 수정되어 냉동 상태로 보관되며, 액화 질소 통에 담겨 인도로 운반되어 인도인 대리모의 몸에서 출생하게 된다. 더 나은 생활 여건과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난자 제공자와 대리모들. 마치 자신이 로봇 같다고 말하는 어느 대리모의 말처럼 인도인 대리모들은 성공적인 출산을 위하여 임신 기간 동안 철저하게 관리되고, 자기 명의의 집, 현금 등 원하는 것을 얻게 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이 다큐멘터리는 ‘아이 생산’이라는 내용으로 정자와 난자의 기증, 그리고 대리모에 대해 윤리적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치 임신을 상품인냥 대리모 전문 병원을 소개한다. 병원에서 지내는 대리모를 전문교육을 받을 필요 없고, 건강한 가임기 여성 중에서 임신한 경험이 있어 성공적으로 출산했던 여성으로서 경제여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강한의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임신 가능한 여성이 돈을 받고 대신 출산해주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돈을 받고 출산이 잘못되어 자궁 적출을 하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본인 책임을 지며, 양육권을 행사하지 못한다.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임신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리모 2명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그들의 편의를 위해 양쪽 모두 쌍둥이일 때 낙태를 시킨다. 이는 부모가 될 사람은 ‘구매자’로서 아이를 ‘상품’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또한 뱃속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대리모가 어떻게 생활하는 임신과정을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나중에 아이가 태어날 때 받으러 오는 시스템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10달 동안 뱃속에 아이를 품고 기르다가 낳자마자 아이랑 헤어지는 대리모의 마음은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미어지는 상처도 아물지 않고 대리모로서 역할을 다시 수행하는 모습과 늙은 산모보다 아이가 우선으로 하는 병원의 모습을 보며 아이를 만드는 공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또한 대리모에 대해 멸시하는 시각이 있다.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를 도와주는 이타적인 대리모라는 명함 보다는 주변에는 자신이 대리모인 것을 비밀로 하고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척하는 것도 문제이다. 아직도 대리모는 음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큰돈을 받는다. 다른 일을 10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안정을 취하며 대신 출산만 해주는 것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일을 구하지 않고 직업 대리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태교란 근본적으로 뱃속의 태아를 가르치는 것이다. 태교의 핵심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태아가 닮는다는 데 있다. 어머니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그대로 태아도 보고 듣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좋은 태교란 어머니가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며 생각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머니의 시청각적 반응과 심리적 상태를 그대로 닮는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로봇 같다고 말하는 이러한 아기 공장과 같은 곳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좋은 태교가 될수 있을까? 그리고 태교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이곳에서 사가는 사람들은 그만큼 아이를 사랑하고 아껴줄수 있을지 의문이든다.
부러진 화살을 보고0700825 황순상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며 이는 사법부를 상징한다. 국내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도 어김없이 디케가 있다. 오른손에는 저울을, 왼손에는 법전을 든 채 앉아 있다. 공평하고 정의롭고 엄정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미이다.하지만 공평하고 정의로워야할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심각하다. 법률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은 성인 1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2%(854명)가 ‘사법부가 불공정한 판결을 한다’고 답변했다고 1일 발표했다. 10명중 8명이 사법부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가히 우리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사법부의 불신에 불씨를 짚힌것은 바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도가니와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다.2007년 석궁교수를 다룬사건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격렬한 몸싸움,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cm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 곧이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 피의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그러나 피의자 김경호가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았던 재판은 난항을 거듭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 엇갈리는 진술! 결정적인 증거 ‘부러진 화살’은 행방이 묘연한데…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며 재판장에게도 독설을 서슴지 않는 김경호의 불같은 성격에 변호사들은 하나둘씩 변론을 포기하지만, 마지막으로 선임된 자칭 ‘양아치 변호사’ 박준의 등장으로 재판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이 영화는 "법정에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 아래 법정 그 자체를 조롱하는 영화다 .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낀 것은 그저 답답함이었다. 피해자의 옷에 묻은 피가 누구의 피인지 혹은 부러진 화살이 어디로 갔는지 등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보다는 이미 결정되있는 순서에 따라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가 석궁을 들고 판사를 위협한 것은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이러한 혈흔감정이나 부러진화살을 찾지 못한 사실은 큰 의미가 없는 것 이었을지도 모른다.물론 기본적으로 교수가 교수 지위 소송에서 패하고 그것에 대한 복수심에 아파트를 찾아가 협박한 것은 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합리적 판단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는 증거물에 대한 어떤 명확한 검증이나 이해도 없이 재판을 진행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짜맞추기 재판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 307조를 보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자이에 의한 사실 인정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적정한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이 요청된다고 되어있다. 변호사가 증거에 대해 반론을 하고 합리적으로 적장한 증거가 아님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판사는 무리하게 재판을 이끌어냈다. 공정하게 세상을 보고 정의롭게 판단해야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강자의 입장에서서 일방적인 판결을 내린 것 이다.만약 이 피해자가 판사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재판이 이렇게 진행될수 있을까? 아닐것이다. 법앞에 모두가 평등해야한다는 대전제가 법의 집행기구인 법원안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가 같은 판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법부의 권력에 도전했기 때문에 이들은 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하려고 하고 형을 무리하게 집행하려고 하는 것이다.내부비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전관예우, 현관예우가 비일비재한 사법부의 폐쇠된 권력이 이 영화에서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뿐만아니라 거액을 들여 고용한 거대 로펌들을 방패삼아, 고위직 인사나 재벌, 정치인, 유명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요리조리 빠져 나가면서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사법 당국은 그와 같이 사법질서를 조롱하는 그들의 행각에 대해 엄히 단죄하여 법치주의를 굳건히 함과 동시에 국법질서의 안정성을 세우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그들의 주장에 휩쓸리거나 아예 동조하는 등을 통해 스스로 '법치'의 최일선 담당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