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건축설비공학과200833319김 종 윤‘백년 동안의 고독’. 책을 읽기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왜 제목이 백년 동안의 고독일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책을 맨 뒤에서부터 앞으로 천천히 넘겨보았다. 그리고 책 표지에 쓰여진 제목을 다시 보았다. 그때 생각난 것은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난 이때 ‘죽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책 제목인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백년은 우리가 한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우리가 이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결국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고독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순간 인생의 허무함과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시작과 끝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 ‘끝’이 다가오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즐겁고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책의 맨 뒤에는 이라는 것이 있었고, 여러 가지로 이 책을 해설해 주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알려졌다. 그런데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하나였다. ‘너에게 끝은 온다. 그런데 슬퍼하지 말아라.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따라서 즐겨라. 지금 이 순간을. 그것이 너의 인생이다.’.이 책은 1966년,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가 멕시코시티에 18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매일 여덟 시간씩 집필에 매달린 끝에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지막 구절에 마침표를 찍고, 이 책은 이듬해 6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다메리카나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출간된다. 그리고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노벨 문학상’.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상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큰 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다양한 의미를 불어넣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나는’ 이 책이 의미하는 바의 ‘모든 것’은 모르겠다. 이 작품은 1900년대의 그 당시 역사들과 상황들을 알면 더 깊게 보인다고 한다. 2014년의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은 ‘힘을 내’라는 말을 던져준 것 같다. 이 작품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다고는 하나, 지금의 나에게는 그 명성의 전부를 볼 수 있는 식견이 부족하여 아쉽다.내가 평소에 해피엔딩을 좋아해서 일까. 처음 가문의 시작과 행복한 날들이 책에 펼쳐질 때만 해도 좋았다.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놀랐고, 그 순간은 흥미로웠다. 어린 아이들이 곱게 성장하는 모습이 즐거웠고, 사랑에 아파하고 고뇌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지만, 이야기를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무너져갔다. 책을 넘길 때마다 그들에게는 비극이 찾아왔고, 주인공들의 삶은 하나둘씩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부터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지루했다. 처음에 눈을 크게 뜨고 읽고 있던 내 눈은 그 때부터 반쯤 감겼다.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간혹 내 눈살은 찌푸려졌다. 그들의 끝을 알기 싫었고, 그들의 후손에게 찾아올 또 다른 비극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 일가족의 마지막 아이가 개미들에게 끌려가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는 ‘아!’하고 깊은 탄식을 토해내었다. 끝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끝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그러나 미처 마지막 줄을 다 읽어내기도 전에, 그는 자기가 결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거울의 도시, 아니 신기루의 도시가, 바람에 날려 없어질 터이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책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에게 비참한 끝을 알게 되어서 느끼게 되는 씁쓸한 마음과 끝을 본 후련함을 동시에 주면서 말이다.자꾸만 죽음과 끝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내가 재미있었던 내용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다음은 책의 내용이다.“몇 달이 지난 다음, 나이가 거의 200살이나 되고 자기가 지은 노래를 나눠주면서 가끔 마콘도 마을에 들르던 현인 프랜시스코가 돌아왔다. 현인 프랜시스코는 그의 노래를 통해서 그가 이곳으로 오던 중에 들른 모든 곳, 마나우레에서부터 늪지대까지 거치는 동안 들은 소식을 전해주었으며, 남에게 알려줄 소식이나 전할 말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5센타보만 내면 그 얘기를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끝에다 첨부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우르슬라는 혹시 고향을 떠난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의 소식을 들을까 해서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가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본디 이름은 아무도 몰랐고, 언젠가 악마와 임기응변식 토론을 벌여서 이겼기 때문에 현인이라고 불리게 된 프랜시스코는 불면증이 마콘도를 휩쓸게 되자 어느 날 밤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카타리노의 가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모여들었다.”난 이 내용을 읽으면서 현인 프랜시스코가 신기했다. 신기했던건 그가 200살을 먹은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가 하는 일이 신기했다. 자신의 노래에 소식을 붙여 나르는 사람. 노래가 세월을 흘러 길어지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 나와 관련된 내용은 없을까 하고, 그를 둘러앉아 경청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이 상상되고 떠올랐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그 노래 속에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을 것이다. 즐거운 소식이 담겨있을 수도 있고, 우르슬라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슬픈 소식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우리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함께 듣는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한다. 이 이야기는 짧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마음속에 깊게 남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첨단 문명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지루함이랄까. 누군가에게 내 소식을 전달하기에 10초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되는 ‘빠른 시대’. 난 현인 프랜시스코의 내용을 읽고,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고, 새해가 멀지 않았다. 현인 프랜시스코가 노래에 소식을 전하듯, 나도 내 소식을 손 편지에 담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로 보내고 싶어졌다.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게 봤던 얘기는 ‘불면증’ 이야기와 불면증으로 생기는 ‘기억상실증’ 이야기이다. 다음은 책의 내용이다.“며칠 사이에 그는 실험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그가 계속해서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도움이 되라고 그 모든 것들의 이름을 종이쪽지에 써서 사방에 붙여놓았다. 아버지가 놀란 표정으로 어릴 적에 가장 감명 깊었던 어떤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걱정스런 어조로 얘기했을 때, 아우렐리아노는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를 얘기해 주었고, 그 얘기를 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곧 그 방법을 실천에 옮겨 집안 여기저기에 쪽지를 붙이며 돌아다녔고, 심지어는 밖으로 나가 마을에 온통 종이쪽지를 달아두었다. 그는 먹을 듬뿍 찍은 붓으로 온갖 이름을 다 표시해 두었다. ‘책상 · 의자 · 시계 · 문 · 침대 · 냄비 ······.’ 그는 동물 우리로 가서 식물과 짐승의 이름도 표시했다. ‘소 · 염소 · 돼지 · 암탉 · 바나나 · 카사아 · 바칼라듐 ······.’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기억을 상실해 가면 어느 날엔가 사람들은 모든 사물의 이름을 위에 써 붙인 글자를 읽고서 알기는 하겠지만, 결국 그 물건들의 쓰임새는 몽땅 잊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마콘도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기억상실증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방법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소의 목에 걸어놓은 간판이었다. ‘이것은 암소입니다. 암소는 아침마다 짜주면 젖을 냅니다. 그리고 소의 젖을 끓인 다음에 커피와 섞어서 먹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도망치려는 현실을 바동거리면서 붙잡으려 했지만, 그들의 기억을 지탱시켜야 할 단어들이 하나씩 둘씩 그들의 머리에서 사라져, 결국 그들은 글의 가치를 잊게 되었다.”
암페어 법칙1. 실험목적직선도선, 원형도선 및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류가 흐를 때 도선주위의 자기장의 세기를 측정하여 이론적인 자기장 분포 곡선과 일치하는가를 알고 암페어의 법칙과 비오-사바르의 법칙이 성립하는가를 확인한다.2. 실험원리솔레노이드매우 긴 솔레노이드 내부에서의 자기장은 암페어 법칙에 의해B= mu _{0} nI 이다. 이 때 n은 솔레노이드의 단위길이 당 도선의 감은 횟수이다. 즉 자기장의 세기는 코일의 반경이나 코일 내부의 위치에 무관하다. 그러나 실제 솔레노이드의 길이는 유한하고 내부 자기장도 균일하지 않으므로 보정이 필요하다.실제 솔레노이드의 중심축 상 임의의 점 0에서 자기장의 세기는B _{x}= { 1} over {2 } mu _{ 0}nI(cos theta _{ 1}+costheta _{ 2}) 이다.편의상 솔레노이드의 길이를 l, 중심을 원점으로 잡으면 중심(x=0; a=b=l/2)과 끝점 (x=l/2)에서 자기장의 세기는이 된다.3. 실험기구 및 장치① 컴퓨터 및 인터페이스 ② power amplifier ③ 전원장치(15V-5A) ④ 솔레노이드 ⑤ 버니어 캘리퍼 ⑥ A베이스 및 지지막대 ⑦ 자기장센서, 홀더 ⑧ 회전센서, 톱니막대 ⑨ 리드선, 랩 짹4. 실험방법(1) 컴퓨터를 켠다.(2) 회전센서를 디지털 채널 1, 2에 자기장 센서를 아날로그 채널 A에 power amplifier를 연결한다.(3) 인터페이스를 켠다.(4) 바탕 화면에 있는 ‘암페어 법칙.ds' 프로그램을 실행한다.(5) Experiment Setup 창에서 회전 센서를 클릭 한 후 Measurements 창에 position, Ch 1&2에 체크 한다.(6) Sample rate가 100 Hz로 맞춘다.(7) 자기장 센서를 클릭한다.(8) Magnetic Field Strength (1X) Ch1에 체크 한 후 (단위는 gauss) Low(1X)로 맞춘다.(9) power amplifier를 클릭 한 후 Measurements 창에 current, Ch B에 체크 한 후 Med(10X)로 맞춘다.(10) Signal Generator에서 DC voltage로 맞춘 후 10V로 값을 맞춘다.4-1 자기장 세기 측정(1) 인터페이스의 세팅이 끝나면 랩 짹 위에 솔레노이드를 올려 놓는다.(2) 자기장 센서의 Range Select를 1X로 맞추고 Radial Axial의 방향을 자기장 센서의 움직이는 방향으로 맞춘다.☞ 홀센서란 무엇 인가?(3) 자기장 센서를 솔레노이드 끝 쪽에 맞춘 후 Tare 버튼을 누른다.(4) Start 버튼을 누른 후 자기장 센서를 솔레노이드 안쪽으로 천천히 밀어 넣으며 측정을 시작한다.(5) 그래프가 매끄럽게 나올 때까지 실험을 여러번 반복한다.(6) 이때 나온 전류 값을 기록한다.(7) 다른 데이터 값들을 기록한다.4-2 감긴 횟수 계산(1) 솔레노이드를 바꾼다.(2) 실험 4-1의 (1)~(7)를 반복한다.4-3 감긴 횟수 계산(1) 솔레노이드를 바꾼다.(2) 실험 4-1의 (1)~(7)를 반복한다.5. 손가락 질문의 답☞ 홀센서란 무엇 인가?- 자기장을 검출하는 방법에 따라서 여러 가지 검출 센서들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센서가 홀센서이다. 홀센서의 원리는 반도체의 전극에 전류를 흐르게 한 수 수직방향으로 자기장을 흐르게 하고, 그 결과 전류의 방향과 자기장의 방향에 수직하게 전위차가 발생한다.6. 질문사항(1) 코일의 중앙에서 자기장센서를 반경방향으로 급격히 움직일 때 자기장(축방향)의 변화는 어떠한가?- 코일의 중앙에서는 자기력선의 밀도가 중심에서 크고 반경방향으로 갈수록 작아지므로 자기장의 크기도 반경방향으로 움직이면 조금 감소하게 된다.(2) 코일의 중심선 상에서 한쪽 끝에서의 자기장은 중앙에서의 자기장 값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실험1의 데이터값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략 절반의 차이가 난다.(3) 실험에서(3),(4)식과 같이 보정값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식에서 보면 자기장의 세기는 코일의 반경이나 코일내부의 위치에 무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측정하고자 하는 솔레노이드의 길이는 실제로 유한하고 솔레노이드 내부의 자기장도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보정을 해주어야 한다.
방연댐퍼화재 시 비상구를 통해 탈출하는 사람들의 질식사를 막기 위해 급기 또는 배기딕트에 설치하여 다른 구역으로 연기가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는 댐퍼(자연 댐퍼). 실내에 설치된 연감지기에 의해 화재 초기에 발생된 연기를 탐지하여 덕트를 폐쇄.* 본 자료는 사진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밋빛 시대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개인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이유란 ‘사랑하기 위해서’이다.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랑’이란 말은 빼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해하고, 때로는 아파하며, 그것을 통해 인생을 알게 된다.내가 생각 하고 추구하는 삶. 그것은 곧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1901년 피카소의 친구 카스헤마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에 피카소는 파리로 건너가 슬픔과 현실을 잊으려 환락 속에서의 삶을 보냈다.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슬퍼했다. 그리고 그것을 차가운 청색으로 캔버스에 표현했다. 그의 차갑고 얼어붙은 마음을 그리는 것처럼. 그런 그에게 사랑이 다가왔다. 그리고 피카소 역시 사랑을 했다.1904년 즈음부터 피카소의 그림에 장미색을 조심스럽게 물들인 여인그녀의 이름은페르낭드 올리비에1904-1912The women of pablo picasso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 (1881-1966)는 장밋빛시대(1904~1906)에 그려진 수많은 작품들의 모델이었으며 피카소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가졌던 첫 번째 여인이었다.페르낭드 올리비에(원이름 아멜리에 랭)는 1881년 6월에 태어났다. 그녀는 유부남과 어린 소녀사이에서 태어났는데 2살 때 부친의 친척에게 맡겨져 성장하게 된다. 그녀의 나이 18세 되던해 그녀의 친척은 그녀를 나이많은 회계사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그녀는 결혼에 반대하여 도망치게 된다.그 후 그녀는 폴 페르세롱이라는 육체적, 성적으로 가학적인 남자와 결혼했으나, 그녀의 결혼 생활은 그리 길지 못하고 1900년 4월 다시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전남편에게 잡힐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서, 이름을 페르낭드 올리비에로 바꾸게 되었다.페르낭드는 1900~1905년 사이에 수많은 미술가와 조각가의 모델생활을 하게된다. 그녀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녀는 일반적인 사진모델이나 교육받은 모델과 같은 포즈를 절대 취한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매우 독창적인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그러던 중 1905년에 피카소와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의 만남 이후에 피카소는 그녀에게 다른사람의 모델을 포기하라고 요구 하였는데, 피카소는 당시에 무척 개인적이고, 이상하며 뭔가 기묘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피카소에게 페르낭드는 그의 첫 번째 사랑이었다.페르낭드가 다른 작가의 모델을 하려하면 피카소는 엄청난 질투심에 빠졌으며, 피카소는 외출할땐 종종 그녀를 아파트에 가둬놓고 문을 잠그기 까지 하였다한다. 그리고 그들이 헤어지기 전인 1906년~ 1912년까지 그녀는 오직 피카소의 모델만 하였다.1912년 피카소와 헤어졌을때 그녀의 나이 이제 32살이었으나 그녀가 피카소와 함께 있을때와 같은 삶의 방식은 그녀에게는 아무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살기가 매우 힘들어졌으며, 그녀는 수년간 골동품판매점 조수, 보모, 정육점 계산원, 캬바레, 카페(Lapin Agile)에서의 시낭송, 점성술 읽기 등등 손으로 셀수 없을 만큼 수많은 직업을 가졌었다.1927년 올리비에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피카소와의 생활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출판사를 찾지 못했고, 결국 1930년 석간지 르쏘(Le Soir)에 연재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녀의 폭로성기사는 이제 유명해지기 시작한 피카소를 대중 앞에 발가벗겨놓는 것과 같았다. 피카소와 변호사의 대응이 있었지만 이때는 이미 6회의 출간이 이루어진 뒤였다.페르낭드는 1940년에 또다시 경제적인 이유로 7~8회에 걸쳐 피카소에 대해 글을 썼으나 별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1956년 70세가 된 페르낭드는 관절염과 귀가먹어 병석에 누워지내고 있었다. 피카소는 그녀에게 그들 둘이 생존해있는동안 그녀의 오리지날 필사본을 출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피카소는 그녀의 남은 생애동안 매월 생활비를 보내주었는데 총 백만 프랑정도 되었다. 그녀의 자서전은 그들 둘다 사망하고도 수년이 지난 1988년 이후에 발간되었다.위의 그림들을 순서대로 관찰하다보면 장밋빛 시기에서 보이는 여러 작의 페르낭드 초상화를 거쳐 피카소는 큐비즘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피카소, “파블로, 파블로……, 오늘은 제발 이 문 좀 열어주고 가요.”“듣기 싫어. 당신은 내 거라구. 나만 당신을 그릴 수 있어.”“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우린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나마 모델이라도 서야 돈이 생기죠.”“그래서 또 그러겠다구?”“그래요. 그게 뭐가 잘못 된 거예요? 모델은 내 일이라구요.”
토탈리콜[ 미래의 도시 모습 ]지금의 건축물들은 모두 지면을 중심으로 건물을 쌓아 올렸었는데, 토탈리콜 초반 부분에 보여지는 미래 건축물들은 위에서 아래로 지어지는 집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그리고 건물들이 복잡하게 지어진 이유는, 영화의 설정상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결과적으로 집들이 오밀조밀 계속해서 연속으로 지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어찌보면 숨 막히게 보이지만, 머지않아 근 미래에 우리 인간도 살아가는 땅이 부족해지면 발생 할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된다.[실생활 가전제품 속의 컴퓨터]근 미래에는 컴퓨터를 독립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영화에서와 같이 냉장고 문에는 컴퓨터가 붙어있다. 냉장고 문으로 뉴스를 볼 수도 있으며, 사진을 저장할 수도 있고, 메모도 남길 수 있다. 또한 맨아래 사진처럼 벽을 이용하여 TV를 볼 수 있다. 이렇듯 근 미래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실생활 용품에 컴퓨터가 삽입되어지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홀로그램 ]홀로그램이란 영상이 3차원이고, 실물과 똑같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사진으로서, 홀로그래피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며, 입체상을 재현하는 간섭 줄무늬를 기록한 매체이다. 현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신용카드에 붙어 있는 홀로그램이다. 신용카드에는 위조 방지를 위하여 반사형 홀로그램이 붙어 있다. 그래서 카드의 고유한 문양을 표현한 3차원 입체영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저장 매체로도 사용되고 있다. 홀로그램은 평면의 정보를 한 점에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문을 통하여 방안을 들여다보듯이 홀로그램의 작은 조각으로도 전체 홀로그램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홀로그램에 저장된 정보는 오염이나 파손에 매우 잘 견딜 수 있고, 용량면에서도 다른 저장 매체에 비해 우수하다. 나아가서는 연속적인 영상을 재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홀로그램을 이용한 영화제작도 가능하며 사람의 골격구조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으므로 의학적 용도로도 사용가능하다. 이밖에도 건축, 자동차 설계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자기부상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현재의 엘리베이터는 대부분 도르레를 이용하여 위에서 잡아당기기 때문에 수직이동만 가능하지만, 전자석을 이용한 엘리베이터는 영화에서처럼 사방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불어 장점으로는, 현재 엘리베이터 공간에 그대로 설치하는 것도 가능해서, 각광받는 엘리베이터 기술이다. 자기부상 자동차의 원리는 차량에 고성능의 전자기장치(자석)를 사용하고 선로에 전기를 이용하여 차량하부에 순간적인 자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두 자석의 극이 같으면 반발로 차량이 부상하고 극이 다르도록 변경하면 흡입력이 작용하여 차량을 앞으로 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운송수단은 바퀴와 엔진이 없어 가볍고 소음과 진동이 없는 우수한 승차감과 빠른 속도가 장점이며, 이러한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궤도의 전자극을 초당 수천번씩 변환할 수 있는 제어기술과 강력한 반발력을 만들 수 있는 전자석의 개발, 그리고 충분한 전력을 손실 없이 궤도에 보낼 수 있는 송전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개발은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개발되어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시험 운행한 바가 있다. 이러한 기술을 자동차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경량 소형의 강력한 전자석 개발의 선행은 물론 모든 도로에 전자기 궤도를 부설해야 하므로 실용성은 열차에 비해 매우 떨어집니다. 이는 도착지와 운행노선이 결정된 대량수송용의 열차와는 달리 자유로운 노선으로 운행하는 자동차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모든 도로에 궤도를 부설하지 못하면 바퀴가 없는 자기부상 자동차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이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전기도 경제적으로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